자유게시판
글 수 17,667
먼지로 덮인 역사를 뚫다
작자 : 혜생 (慧生)
[정견망] 나는 1994년 법을 얻은 제자로 사존의 보호하에 오늘까지 걸어왔다. 수련과정 중에 많은 체험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중 한 체험담을 동수들과 함께 하여 제고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아울러 잘 못된 점은 시정해 주기 바란다.
몇 개월 전, 가부좌 정공 중에 입정에 들자 눈앞에 작은 강이 나타났다. 조금 있다가 경기병(輕騎兵) 부대가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남송(南宋)의 깃발이고 병사들을 이끄는 사람은 악비(岳飛) 대원수 수하의 선봉장 양재흥(楊再興)이었다. 이 때 나는 ‘이것이 수심이화(隨心而化)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본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담담하게 보고 있었다. 순간 먼지에 파묻혀있던 오랜 한 시기 기억의 문이 열리면서 내가 바로 화면 중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는 단 번에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남송의 그 시대로 되돌아갔으며, 당시 사연은 이러했다. 어느 초겨울 새벽 해가 막 뜨려할 때 양재흥 장군은 명령을 받고 200여 명의 부하들과 말을 타고 적진을 정탐하러 떠났다. 가는 중에 먼저 지형을 관찰했다. 그곳은 지금의 하남이었다. 대략 수 백리 길의 지형을 정찰했을 때 갑자기 지평선에서 수없이 많은 깃발이 나타났다. 그들은 중원을 침입한 금나라의 큰 부대라는 것이 밝혀졌고 잠시 후에는 선봉부대의 인마도 똑똑히 보일정도로 근접해 오고 있었다. 평원지대이기 때문에 숨을 곳이 없었다.
용맹하고 지략이 있는 양재흥은 부하들과 상의하여 금군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후 타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두 명의 젊은 병사를 악비 대원수에게 보내 금군의 동향을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부하들 중 누구도 악비 대원수에게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혼자만 돌아가 살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재흥이 속히 적의 상태를 대원수께 보고 하라고 군령으로 재촉하자 두 명의 장병이 눈물을 머금고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나갔다.
그러자 양재흥은 장병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치밀하고 과감하게 작전을 전개했는데, 우선 금군(金軍)의 측면으로 우회하여 간 후, 명령에 따라 단기필마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금군 측면으로 달려 나갔다. 금군의 측면은 모두 보병으로 배치돼 있어 갑자기 들이닥친 기마대의 급습을 받고 금군은 대 혼란이 일었다. 이 한 기의 기마는 마치 맹호가 산에서 달려오는 듯하여 부딪히는 자들이 모두 쓰러지면서 십여 만의 금군 인마들이 뒤엉키게 되어 대혼란이 일어 금군의 장병들은 단 한 합도 싸워보지 못한 채 제대로 응전을 하지 못 했다.
최후에 중군(中軍)을 향해 달려가는데, 멀리서 보니 여러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가 금군의 총수인 금올출(金兀朮)이었다. 말을 급히 몰아 금올출을 죽이려 달려 나갔다. 그러자 금군은 자기들의 주장(主將)을 보호하기 위해 응전하면서 한편 후퇴를 하다가 다급해 지자 궁수들에게 적군 아군을 구분하지 말고 급히 화살을 쏠 것을 명하여 수만 개의 화살이 일제히 날리면서 금군들의 인마는 서로 엉켜 밟고 밟히면서 저희들끼리 무수히 다치고 죽어갔으며, 비명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양재흥은 추격 중에 몸에 화살을 맞았으나 손으로 화살대를 꺾어버리고 계속 나아가 싸웠다. 두 눈은 붉게 물들고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금올출을 추격하여 바로 앞에 다가갔을 때였다. 작은 개울에 당도 하자 단 번에 뛰어 넘어 가려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개울은 소상하(小商河)라고 불렀다. (강 이름이 가부좌 중에 떠올랐음)
당시의 겨울은 지금보다 추워서 강위에는 눈이 내려있었고 강물은 얇게 얼어 있었다. 인마가 밟고 지나간 데는 얕은 강물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이때 양재흥의 장병들과 말은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겨우 한 가닥의 숨결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말이 뛰어오르는 순간 미끄러져 사람과 말이 동시에 강바닥에 떨어져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양재흥이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모든 장수와 병사들은 이미 진중에서 다 전사하였고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크게 소리쳤다. “악 원수님, 못난 이 장수는 다시는 당신을 따라 나라를 보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무한한 슬픔이 밀려오고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절하여 죽었는데 강물 속에서 넘어지지 않은 채 서서 죽었다.
금나라 병사들이 이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나 감히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향해 수만 발의 활을 쏘아 사람과 말이 모두 고슴도치가 되었다. 금군들은 그가 두렵고, 미웠지만 탄복감이 함께 교차하기도 했다. 금올출이 명령을 내려 양재흥의 시신과 전마를 강에서 끌어올렸는데 두 눈을 똑바로 뜬 채였다. 그들은 죽은 양재흥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함께 거두어 다음날 후히 장례를 치러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는 역사와 좀 다른 것이 있다. 나중에 양재흥이 보낸 두 전령의 보고를 받은 악비가, 밤사이에 아들 악운에게 5천 명의 정예부대를 주어 양재흥의 시신을 빼앗아 오게해 화장을 시켰다. 이때 나온 화살촉만 두 곡(斛 1곡은 10말)이 되어 군중의 장군과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입정에서 나오자 내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왜 이런 기억을 열어주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마 대법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역시 수련생인 가족들에게 이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생각의 실마리가 열리기만 하면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오열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다른 동수는 내게 글로 써 내라고 권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이것이 진실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수련생과 교류할 때 그녀가 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당신 자신의 관념이나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써내야만 진실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기왕 이런 기억을 열어주신 것은 이유가 있을 거에요. 이렇게 좋은 경력을 왜 써내지 않나요? 당신이 쓰는 과정이 제고의 과정이어요. 만일 수련생들이 보면 역시 촉진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침내 눈물을 멈추며 이 역사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연공할 때 또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두정포륜(頭頂抱輪)을 할 때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상하로 한번 진동했는데 주위의 모든 세포 역시 모두 진동했다. 그러면서 이 며칠간의 역사의 곤혹이 갑자기 확 열렸다. 알고 보니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생명의 기억 깊은 곳에 여전히 풀지 못한 정서가 맺힌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약속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었다. 악비장군을 따라 송나라 강토를 수복하지 못한 것과 또 그 때 함께 죽은 200여 명의 장병들을 여전히 생각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역시 정(情)이 아닌가! 이런 것을 깨닫게 되자 마음이 확 열렸다. 다시는 이 역사를 기억해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심은 여전히 진동이 매우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물을 흘린 또 다른 원인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부님을 따라 역사문화를 다진 것이다. 하나는 대의(大義)이며 또 하나는 대용(大勇)이었다. 당초 양재흥은 무예가 아주 높고 잘 싸웠다. 그래서 악비는 그를 복종시켜 유용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장병을 희생시켰으며 심지어 악비의 동생까지 그에게 죽었다. (원래 양재흥은 도적이었으나 악비에게 설득 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악비의 많은 장병과 동생까지 죽음을 당했다. 역자 주)
나중에 악비에게 사로잡힌 후 악비는 직접 그의 결박을 풀어주며 결코 자기 동생을 죽인 원한을 기억하지 않을 터이니 민족의 대의를 중하게 여겨, 집안을 보위하고 나라를 지킬 것을 권했던 것이다. 또한 싸움만 잘하는 무인이 되지 말고, 하늘을 떠받치는 남아(男兒)가 되라고 권했다. 악비의 이런 대의에 양재흥은 크게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신들도 분분히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이것은 백성들을 위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대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금이 모두 한결같다. 대용이라는 문화를 다지는데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당초 양재흥은 2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십만 금나라 군대를 대적하여 거의 만여 명을 죽인 것이다. 현장은 극히 참혹했으며 그런 용기는 하늘을 찔러 중신들이 분분히 구경을 하며 아울러 찬탄했다.
양재흥과 그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진중에서 거의 만 명이 되는 금군이 죽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들 역시 이 한 부분의 역사를 다지기 위해서 맡은 역할을 연기한데 불과하며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이 일체는 또 대법을 위해서 온 것이며, 사존의 자비심이 중생에 연결되는 것은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끝에 비로소 법연(法緣)이 닿은 것이다. 우리 역시 법을 얻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겪어 비로소 오늘에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우리와 연을 맺은 생명은 아마 우리 곁에 출현해 있을 것이다. 이 방면의 인연을 위해 과거에 생명의 대가를 지불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대법을 듣기 위해서거나, 오래된 서약의 기억을 열기 위해서거나!
여기까지 쓰자 내 마음은 많이 평화로워졌다. 사존께서 나의 이런 기억을 열어 글을 쓰게 하신 것은 바로 대법제자의 사명이 아닐까? 역사문화를 다지는 중에 내가 형성한 나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이번 금생에 여전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부동한 시기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너무나 깊이 낙인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승심, 쟁투심, 완고함, 뼛속에 지닌 살기 등이 심지어 이번 세의 신체에 흔적이 남아 병업의 방식으로 나로 하여금 17년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법을 얻은 삼 개월 만에 사존의 자비에 의해 풀렸는데 나는 이것이 살심(殺心)이 과중하여 지은 업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수련하여 어느 층에 오르면 그런 흔적의 마음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주변의 중생을 놓치지 않도록 깨우쳐준다. 역사상 우리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眞善忍好(眞善忍은 좋습니다). 얼른 사악한 당의 모든 조직을 탈퇴하여 광명과 영생을 선택하라.
이상은 개인이 본 것과 깨달음이며 층차가 유한하니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작자 : 혜생 (慧生)
[정견망] 나는 1994년 법을 얻은 제자로 사존의 보호하에 오늘까지 걸어왔다. 수련과정 중에 많은 체험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중 한 체험담을 동수들과 함께 하여 제고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아울러 잘 못된 점은 시정해 주기 바란다.
몇 개월 전, 가부좌 정공 중에 입정에 들자 눈앞에 작은 강이 나타났다. 조금 있다가 경기병(輕騎兵) 부대가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남송(南宋)의 깃발이고 병사들을 이끄는 사람은 악비(岳飛) 대원수 수하의 선봉장 양재흥(楊再興)이었다. 이 때 나는 ‘이것이 수심이화(隨心而化)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본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담담하게 보고 있었다. 순간 먼지에 파묻혀있던 오랜 한 시기 기억의 문이 열리면서 내가 바로 화면 중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는 단 번에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남송의 그 시대로 되돌아갔으며, 당시 사연은 이러했다. 어느 초겨울 새벽 해가 막 뜨려할 때 양재흥 장군은 명령을 받고 200여 명의 부하들과 말을 타고 적진을 정탐하러 떠났다. 가는 중에 먼저 지형을 관찰했다. 그곳은 지금의 하남이었다. 대략 수 백리 길의 지형을 정찰했을 때 갑자기 지평선에서 수없이 많은 깃발이 나타났다. 그들은 중원을 침입한 금나라의 큰 부대라는 것이 밝혀졌고 잠시 후에는 선봉부대의 인마도 똑똑히 보일정도로 근접해 오고 있었다. 평원지대이기 때문에 숨을 곳이 없었다.
용맹하고 지략이 있는 양재흥은 부하들과 상의하여 금군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후 타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두 명의 젊은 병사를 악비 대원수에게 보내 금군의 동향을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부하들 중 누구도 악비 대원수에게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혼자만 돌아가 살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재흥이 속히 적의 상태를 대원수께 보고 하라고 군령으로 재촉하자 두 명의 장병이 눈물을 머금고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나갔다.
그러자 양재흥은 장병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치밀하고 과감하게 작전을 전개했는데, 우선 금군(金軍)의 측면으로 우회하여 간 후, 명령에 따라 단기필마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금군 측면으로 달려 나갔다. 금군의 측면은 모두 보병으로 배치돼 있어 갑자기 들이닥친 기마대의 급습을 받고 금군은 대 혼란이 일었다. 이 한 기의 기마는 마치 맹호가 산에서 달려오는 듯하여 부딪히는 자들이 모두 쓰러지면서 십여 만의 금군 인마들이 뒤엉키게 되어 대혼란이 일어 금군의 장병들은 단 한 합도 싸워보지 못한 채 제대로 응전을 하지 못 했다.
최후에 중군(中軍)을 향해 달려가는데, 멀리서 보니 여러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가 금군의 총수인 금올출(金兀朮)이었다. 말을 급히 몰아 금올출을 죽이려 달려 나갔다. 그러자 금군은 자기들의 주장(主將)을 보호하기 위해 응전하면서 한편 후퇴를 하다가 다급해 지자 궁수들에게 적군 아군을 구분하지 말고 급히 화살을 쏠 것을 명하여 수만 개의 화살이 일제히 날리면서 금군들의 인마는 서로 엉켜 밟고 밟히면서 저희들끼리 무수히 다치고 죽어갔으며, 비명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양재흥은 추격 중에 몸에 화살을 맞았으나 손으로 화살대를 꺾어버리고 계속 나아가 싸웠다. 두 눈은 붉게 물들고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금올출을 추격하여 바로 앞에 다가갔을 때였다. 작은 개울에 당도 하자 단 번에 뛰어 넘어 가려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개울은 소상하(小商河)라고 불렀다. (강 이름이 가부좌 중에 떠올랐음)
당시의 겨울은 지금보다 추워서 강위에는 눈이 내려있었고 강물은 얇게 얼어 있었다. 인마가 밟고 지나간 데는 얕은 강물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이때 양재흥의 장병들과 말은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겨우 한 가닥의 숨결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말이 뛰어오르는 순간 미끄러져 사람과 말이 동시에 강바닥에 떨어져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양재흥이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모든 장수와 병사들은 이미 진중에서 다 전사하였고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크게 소리쳤다. “악 원수님, 못난 이 장수는 다시는 당신을 따라 나라를 보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무한한 슬픔이 밀려오고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절하여 죽었는데 강물 속에서 넘어지지 않은 채 서서 죽었다.
금나라 병사들이 이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나 감히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향해 수만 발의 활을 쏘아 사람과 말이 모두 고슴도치가 되었다. 금군들은 그가 두렵고, 미웠지만 탄복감이 함께 교차하기도 했다. 금올출이 명령을 내려 양재흥의 시신과 전마를 강에서 끌어올렸는데 두 눈을 똑바로 뜬 채였다. 그들은 죽은 양재흥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함께 거두어 다음날 후히 장례를 치러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는 역사와 좀 다른 것이 있다. 나중에 양재흥이 보낸 두 전령의 보고를 받은 악비가, 밤사이에 아들 악운에게 5천 명의 정예부대를 주어 양재흥의 시신을 빼앗아 오게해 화장을 시켰다. 이때 나온 화살촉만 두 곡(斛 1곡은 10말)이 되어 군중의 장군과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입정에서 나오자 내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왜 이런 기억을 열어주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마 대법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역시 수련생인 가족들에게 이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생각의 실마리가 열리기만 하면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오열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다른 동수는 내게 글로 써 내라고 권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이것이 진실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수련생과 교류할 때 그녀가 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당신 자신의 관념이나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써내야만 진실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기왕 이런 기억을 열어주신 것은 이유가 있을 거에요. 이렇게 좋은 경력을 왜 써내지 않나요? 당신이 쓰는 과정이 제고의 과정이어요. 만일 수련생들이 보면 역시 촉진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침내 눈물을 멈추며 이 역사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연공할 때 또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두정포륜(頭頂抱輪)을 할 때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상하로 한번 진동했는데 주위의 모든 세포 역시 모두 진동했다. 그러면서 이 며칠간의 역사의 곤혹이 갑자기 확 열렸다. 알고 보니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생명의 기억 깊은 곳에 여전히 풀지 못한 정서가 맺힌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약속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었다. 악비장군을 따라 송나라 강토를 수복하지 못한 것과 또 그 때 함께 죽은 200여 명의 장병들을 여전히 생각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역시 정(情)이 아닌가! 이런 것을 깨닫게 되자 마음이 확 열렸다. 다시는 이 역사를 기억해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심은 여전히 진동이 매우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물을 흘린 또 다른 원인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부님을 따라 역사문화를 다진 것이다. 하나는 대의(大義)이며 또 하나는 대용(大勇)이었다. 당초 양재흥은 무예가 아주 높고 잘 싸웠다. 그래서 악비는 그를 복종시켜 유용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장병을 희생시켰으며 심지어 악비의 동생까지 그에게 죽었다. (원래 양재흥은 도적이었으나 악비에게 설득 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악비의 많은 장병과 동생까지 죽음을 당했다. 역자 주)
나중에 악비에게 사로잡힌 후 악비는 직접 그의 결박을 풀어주며 결코 자기 동생을 죽인 원한을 기억하지 않을 터이니 민족의 대의를 중하게 여겨, 집안을 보위하고 나라를 지킬 것을 권했던 것이다. 또한 싸움만 잘하는 무인이 되지 말고, 하늘을 떠받치는 남아(男兒)가 되라고 권했다. 악비의 이런 대의에 양재흥은 크게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신들도 분분히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이것은 백성들을 위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대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금이 모두 한결같다. 대용이라는 문화를 다지는데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당초 양재흥은 2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십만 금나라 군대를 대적하여 거의 만여 명을 죽인 것이다. 현장은 극히 참혹했으며 그런 용기는 하늘을 찔러 중신들이 분분히 구경을 하며 아울러 찬탄했다.
양재흥과 그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진중에서 거의 만 명이 되는 금군이 죽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들 역시 이 한 부분의 역사를 다지기 위해서 맡은 역할을 연기한데 불과하며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이 일체는 또 대법을 위해서 온 것이며, 사존의 자비심이 중생에 연결되는 것은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끝에 비로소 법연(法緣)이 닿은 것이다. 우리 역시 법을 얻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겪어 비로소 오늘에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우리와 연을 맺은 생명은 아마 우리 곁에 출현해 있을 것이다. 이 방면의 인연을 위해 과거에 생명의 대가를 지불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대법을 듣기 위해서거나, 오래된 서약의 기억을 열기 위해서거나!
여기까지 쓰자 내 마음은 많이 평화로워졌다. 사존께서 나의 이런 기억을 열어 글을 쓰게 하신 것은 바로 대법제자의 사명이 아닐까? 역사문화를 다지는 중에 내가 형성한 나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이번 금생에 여전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부동한 시기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너무나 깊이 낙인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승심, 쟁투심, 완고함, 뼛속에 지닌 살기 등이 심지어 이번 세의 신체에 흔적이 남아 병업의 방식으로 나로 하여금 17년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법을 얻은 삼 개월 만에 사존의 자비에 의해 풀렸는데 나는 이것이 살심(殺心)이 과중하여 지은 업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수련하여 어느 층에 오르면 그런 흔적의 마음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주변의 중생을 놓치지 않도록 깨우쳐준다. 역사상 우리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眞善忍好(眞善忍은 좋습니다). 얼른 사악한 당의 모든 조직을 탈퇴하여 광명과 영생을 선택하라.
이상은 개인이 본 것과 깨달음이며 층차가 유한하니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