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계시의 내용은 파티마의 사도직인 푸른 군대에서 구입한 '비오 신부님과 암흑의 3일간'이라는 소 책자의 내용입니다.
일본 교 - 또 레오 스타인박크 신부 : 저 , 배 마태오(규환): 역
이 계시는 50년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받으셨던 비오신부님(1887년 ~1968년)이 바티칸의 헤로스박크 위원회에 보낸 사신(私信)이다. 현 시점(비오신부님 탄생 100주년되는 1987년)에서 이 메시지에 관한 성 교회의 공식적인 견해는 일체 발표되지 않았다.
1949년 12월 31일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나의 성심의 위대한 사랑을 재차 당신에게 가르치게 된 이 시간을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인류에게 나의 사랑은 크건만, 특히 자기 자신을 나에게 봉헌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의 사랑은 진정 위대합니다. 그들이야말로 내 사랑의 성체를 형식적으로 받고 있는 수많은 지독한 불경한 중에 피난처이며 나의 위로이기도합니다.
기도하시오. 특히 1950년은 성년이므로 기도하시오. 기도하고 나에게 보상하여 주시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은총의 때를 무시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에게도 갈 것입니다. 그 때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적에게 지배되지 못하게 기도 중에 인내하시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리시오.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으시오(대재난대비). 내 심판은 돌연 생각지 않을 때 그들의 위에 내리고 한 사람이라도 나의 손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나는 모든 자를 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한 사람을 지킵니다. 하늘의 태양, 달, 별들을 유의(留意)하시오.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에 그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시오. 기도 안에 일치하시오. 그래서 파괴의 천사가 당신들의 문전을 지나쳐 가도록 마음을 쓰고 있으시오. 그 때가 짧아지도록 기도하시오(대재난이).
나는 몇 번씩이나 인류에게 경고하여 바른 길로 돌아올 특별한 기회를 종종 주어 왔으나, 지금에야 사악함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징벌은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습니다. 나의 성심이 괴로워하고 피를 흘려도 나는 내 이름 때문에 그 징벌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든 인류에게 말하시오. 이러한 일들이 성취할 때가 왔다고, 사랑하는 자여, 신뢰하시오. 나는 당신들 안에 있으며 내 왕국은 영광을 받아 나의 이름은 해돋이부터 해가 빠지는 곳까지 축복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왕국은 끝이 없습니다.
나는 성년을 맞이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신으로 인하여 당신들을 축복합니다. 아멘.
1950년 1월 23일 - 기도하시오. 보상하시오. 마음을 불태워 금욕을 실천하시오. 위대한 일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도하시오. 인류는 마치 가장 무도회가 악마의 결혼피로연에 가는 모양으로 크게 좋아하고, 축제같이 소란하지만 실은 지옥의 깊은 못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습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손을 빌려주시오. 죄를 측정하는 말은 꽉 차 있습니다. 소름이 끼칠 사건이 일어나고, 보복의 날은 가까워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까우며 세계는 위장된 안전보장 안에 잠자고 있소. 신의 심판은 벼락치듯이 쳐 올 것이오. 신을 믿지 않는 이 사악한 인간들은 옛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지금의 죄악보다는 극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950년 1월 28일 - 집안의 창을 모두 가리시오. 밖을 보면 안되오(엘레닌이태양을 가릴때 엄청난성광에 의해서실명 할수도 잇기에 특히 새벽녁으로 조심). 축성된 초(교회에서쓰는 긴초 )에 불을 켜시오. 그것은 며칠이고 어둠(암흑3일)을 밝혀줄 것이오. 로사리오 기도를 하시오. 영적 성체 배령을 하시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시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오. 많은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팔을 벌리든지(하늘을향에 팔을 벌리시길) 땅에 엎디어 기도하시오. 집 밖에 나가면 안되오. 자기 자신의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여 두시오. 자연의 힘이 떨며 움직이고 불이 비(유성비.유성먼지)와 같이 내리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 것이오. 용기를 가지시오.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1950년 2월 7일 - 이 기간은 동물을 돌보시오. 나는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이와 같이 모든 동물의 창조자이며 보호자요. 나는 앞서 당신에게 몇 가지 증표를 줄 것이니, 그 때 동물에게 많은 먹이를 주어 두시오. 내가 선택한 사람들의 소유물, 즉 동물까지도 보호하겠소. 그 때가 지나간 후에도 그들의 생계의 수단이 되어야 함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뜰에 나오면 안되오. 동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뜰에 나와도 안되고, 집 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는 자는 죽으며 집안의 창은 완전히 덮어 가리시오. 선출된 백성은 나의 노여움을 보지 못하오(일레닌빛때문). 나를 신뢰하시오. 그렇게 하면 나는 당신들을 지키겠소. 당신이 신뢰하기 때문에 나는 꼭 당신을 도우러 오겠소. 나의 재림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비를 보여 주겠소. 아주 비참한 징벌을 보면 그 때가 어떠한가를 잘 알 것이오. 이 임무를 집행할 나의 천사들은 벌써 날카로운 칼의 준비가 되어 있소. 천사들은 나를 비웃으며 계시를 믿지 않으려 한 모든 자들을 전멸시키는 것에 특별히 주위 할 것이오. 구름 안에서 '불(유성비)'이 폭풍우 같이 내리고, 온 땅 구석구석까지 퍼질 것이오. 폭풍과 악천후와 벼락과 지진이 온 땅위에 일어나고, 2일간 계속되며 불 비가 계속될 것이오. 그것은 어느 아주 추운 날 밤에 시작하며(10월17일가 11월5일사이 ) 이러한 일들은 신이 창조주이심을 증명하시기 위함이오.
나에게 바라는 자 그리고 나의 말을 믿는 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또 나의 메시지를 널리 펴는 자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오. 은총 안에 있으며, 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구하는 자들에게 위해는 일체 가하지 않겠소. 이 심판 날을 위하여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다음의 증표로서 당신에게 지시합니다. 그 밤은 아주 추우며 바람이 울부짓듯 불어오고, 잠시 후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면 문이나 창틀에 자물쇠를 잠그시오. 집 밖에 있는 사람과 말을 걸어도 안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려 죄를 통회하고, 나의 어머니의 보호하심을 기원하시오.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밖을 본다든가 해서는 안되며 이는 신의 노여움이 성스럽기 때문이오. 예수는 우리들이 신의 노여움을 그냥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그것은 신의 노여움은 공포에 떨면서도 가만히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오.
이 충고를 무시하는 자는 죽음을 당하오. 바람을 탄 독가스가 땅위에 고루 뿌려지고, 죄도 없으면서 괴로워하며 죽은 자는 순교자가 되고, 나의 왕국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될 것이오. 악마가 승리를 거둘 것이오. 그러나 3일째 밤은 지진과 큰불이 끝나며 다음 날은 다시 태양이 빛나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위에 평화의 영을 퍼뜨릴 것이오. 천지창조 이후 신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 들고 오시며, 이 대 환란(가까운 장래의 징벌)에 살아 남은 자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감사의 마음이 꽉 찰 것이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준비시키기 위해 나는 스위스, 벨기에, 스페인 등의 어느 사람을 선택하여 이 계시를 주었소.
1950년 성년에 많이 기도하시오. 로사리오 기도를 하시오. 단, 기도가 하늘에 닿도록 바르게 기도하시오. 곧 지독한, 이전에는 없었던 큰 재난,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지독한 징벌이 땅위를 방문할 것이오. 1950년의 전쟁은 이런 일들의 전조가 되는 것이오.
사람은 이러한 일들에 무관심한가! 모든 기대에 반하여 지금이라도 곧 자가들 위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곧 인내하고 참지 않으면 안되오. 전대미문의 일들인데 그 준비에 대하여 어찌 그렇게 무관심할 것인가? 신의 저울의 추가 땅위까지 닿았소.
나의 아버지의 분노가 전 세계를 향하여 내리고, 나는 지금까지 종종해 온 것과 같이 재차 당신을 통하여 세계에 경고합니다. 인간의 죄는 이제 헤아릴 수 없게 부풀어올라 있으며, 즉 교회에서의 불경, 위장된 종교활동으로의 깊은 죄의 교만, 참다운 형제애의 결여, 천한 복장, 특히 여름의 휴양지에서는 더하며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 찾소.
이 대 재난은 번개 불 같이 땅위에 덮쳐오며, 그 때 아침의 태양의 빛은 어둡고 암흑으로 바뀔 것이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후에는 누구든지 집에서 나오던가 창으로 밖을 보아서는 안되오(암흑의3일동안은 집에나와선는 안된다느말엘레닌의 힘때문에 그럼 )
). 나 자신이 번개와 우레에 쌓여서 올 것이며 사악한 자들은 나의 성심을 바라볼 것이오. 이 완전한 어두움 때문에 큰 환란이 일어나며 온 땅은 암흑에 쌓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포와 절망으로 죽을 것이오.
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나의 성심의 은총을 받을 것이오. 신과 같은 자는 누구일까? 하는 부르짖음이 많은 사람들의 몸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그러나 많은 사람은 밖에 마른 풀과 같이 불에 타 버릴 것이오. 신을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이오. 그것은 재난 뒤에 올바른 자가 새 출발 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 날 완전히 암흑이 시작되면 누구든지 외출하든지 창에서 밖을 보아서는 안되오. 암흑은 하루 낮, 밤 동안 계속되고 또 하루 한 밤 그리고 또 하루 한 밤, 그 다음 밤은 별이 빛나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태양이 빛날 것이오(암흑의3일을말함). 그 때는 봄이오! 암흑이 계속되는 동안 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올리브의 정원에서 잠자듯이 잠자서는 안되오. 끊임없이 기도하고 나에게 신뢰하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오. 나의 백성들을 모으시오. 지옥은 전 세계를 손에 넣었다고 믿을 것이오. 나는 다시 빼앗을 것이오. 만일 세계가 악행에서 정의로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이런 지독한 재난을 세계에 내리시는 것을 내가 가만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러나 나의 큰 사랑 때문에 이러한 고난은 역시 인류에 내리실 것이오. 많은 자가 나를 저주할 것이나 그래도 이 고난을 통하여 몇 천이라는 영혼이 구원받을 것이오.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나의 사랑의 깊이를 도저히 잴 수는 없을 것이오.
기도하시오! 기도하시오! 당신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 성 마리아, 성 요셉, 성 엘리사벳, 성 콘라도, 대천사 성 미카엘, 성 베드로, 작은 성 데레사, 거룩한 당신의 수호천사들이 중개자가 되어 주시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시오. 빛이 돌아오면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보호받으실 것을 모두가 감사하시오. 황폐는 극심할 것이나 당신의 신인 내가 땅위를 깨끗하게하여,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니 신뢰하시오.
(비오 신부님의 메시지는 여기서 끝났다. 전술의 메시지는 비오 신부님이 계시받은 그대로이다.)
비오 신부님이 지으신 '영성체 후 기도'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는, 저하고 같이 계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가 당신을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저는 너무 약해서 자주 넘어지는 자이오니, 제게 같이 계시어, 저를 용감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주님은 내 생명이시니 주님 없이는 무기력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빛이십니다. 예수님 없이는 저는 암흑 속에 빠지고 마나이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늘 예수님의 뜻을 실천케 하여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늘 주님의 소리를 듣고 주님을 따르도록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더욱 더 많이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 길동무가 되고저 하옵니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당신에게 늘 충실한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이렇게 적은 내 영혼이 주님에게 위로 받으실 곳이 되고,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어 드리고져 합니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세월은 더딘 것 같으나, 해는 벌써 저물어 갑니다. 즉, 우리 삶은 빨리 지나가고 죽음과 심판과 영원은 우리에게 빨리 닥쳐오기 때문에 도중에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늘 용기를 내는데는 주님이 제게 계신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멈춤멈춤 하는 동안에 죽음이 닥쳐옵니다. 저는 어두움과 유혹과 무미건조함(주: 기도해도 아무 기쁨과 영혼의 평화로움도 맛보지 못함)과, 적고 큰 십자가들, 영혼, 육신의 저 많은 고통, 번민들이 닥쳐와 이 귀양살이 밤에 주님 제게 주님이 꼭 필요하오니 늘 제게 머물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이 삶의 어두운 밤과 저 많은 위험속에 꼭 주님과 같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성체 속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본 당신 사도들과 같이 저도 성체를 영한 지금, 주님은 내게 어둠 속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두움을 헤쳐버리는 용기를 주시어, 제가 늘 꿋꿋하게 또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하여 주시고, 마침내 제 마음속에 유일한 기쁨과 평화가 깃들이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그래야 이 생명이 끝나는 날(죽음)에 꼭 주님과 함께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적어도 지금부터 제가 성체를 영할 때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에 길이 머물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저는 제게 과분한 영혼의 위로만을 주님께 받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늘 저와 함께 계셔 주시는 그 은총만을 주십소서 하고 애원할 따름입니다.
예수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제가 늘 찾는 것은 주님 당신뿐이고, 주님의 그 사랑과 은총,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과 주님의 마음과 주의 성신 안에 사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할 뿐이지, 다른 상급은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그것뿐입니다. 실천하는 사랑, 굳센 사랑만을 제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오로지 전심전력으로 주님만을 사랑하여 이 세상이 끝난 다음이라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주님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멘
(마지막으로 잠시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기구하여 줄 사람들을 위하여 기구하고 오늘 다시 죄에 떨어지지 않도록 예수님께 잘 빌어주시도록 우리의 어머님이신 성모마리아께 자기 전부를 바치며, 언제나 착한 자녀가 되겠다고 약속드리며 오늘 하루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성자(聖者) Padre Pio(비오 신부)
※ 이 내용은 인터넷에서 비오 신부님과 관련된 내용을 발취한 것입니다.
- 피에트렐치나 전경 -
이태리의 남부에 있는 베네벤토 주. 그곳에는 삐에트렐치나(Pietrelcina,'작은 돌'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조그만 산간마을이 있다. 1887년 5월 25일. 웬만큼 확대되지 않은 이태리 지도에는 나타나있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마을에서 50년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오상(五傷)을 몸에 지니고 고백성사를 통해 인간들을 완전한 회개로 이끄셨던 20세기의 위대한 복자(성인 품에 오르기 전의 호칭) 비오 신부가 아버지 그라찌오 포르조네와 어머니 주세피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후 14시간만인 그 다음날 아침 8시에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으로 유아세례를 받아 프란체스코 포르조네(Francesco Forgione)로 불리운 그는 마을 대부분이 그렇듯이 집안은 매우 가난했지만 그리스도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전통의 농군 집안에서 자라났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부끄럼을 잘 타고 연약하지만 누군가 신성 모독적인 언행을 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 슬피 우는 그런 소년기를 보냈다
1903년 1월 6일, 16세의 어린 프란체스코 포르조네는 모르코네의 카푸친회 수도원에 자원 입회하여 같은 해 1월 22일 비오 형제의 이름으로 프란치스칸 수도복을 입었다. 철저한 단식 생활과 마귀의 시험에 시달리는 생활로 인해 허약해지는 건강이 문제였지만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수도원의 수련생활을 보내었다. 7년 6개월간의 수도서원을 마친 그는 1910년 8월 10일 베네벤토의 주교좌 성당에서 비오 신부로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자신의 고향 삐에트렐치나 본당에서 생활했다. 매 미사마다 메멘토(죽은 이들을 기억)와 감사기도에 빠져 시간관념을 잃곤 해서 동료들과 신도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 훗날 아름다운 비오 신부의 '영성체 후 기도'를 낳는다. 같은해 8월 마지막 날부터 그의 두 손과 발에 흔적없는 성흔의 현상이 일어남으로 인해 허약한 그에게 육체적 고통이 더욱 가중되었다. 그후 병약하지만 점점 훌륭한 영적 지도신부가 된 그는 가르가노 산 위에 위치한 무명의 외딴 곳, 뿔리아 지방의 산 죠반니 로톤도의 한 낡은 작은 수도원과 버려진 작은 성당으로 옮겨와 심혈을 기울인 미사에의 몰입, 끊임없이 바치는 묵주기도의 생활 중 1918년 9월 20일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오상, 즉 그의 영적 아버지이자 수도원 창립자인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이 받았던 오상의 특은(特恩)을 받는다. 이러한 오상의 기적이 소문 나자 뿔리아 지방은 물론이거니와 이태리 전역.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들과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꾼들의 발길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비오 신부의 고해소에는 밤낮으로 고백성사를 드리기 위한 순례객 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고 불치병의 환자들은 치유의 기적을 얻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비오 신부는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오상을 확인하려고 미사와 고해소를 찾는 이들 - 내적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 - 은 가차없이 쫓아 내었으며 오상을 특종화하려는 기자들이나 문인들 또는 오상은 허구이며 조작으로 순진한 대중의 무지를 악용하는 현혹가로 비판하는 무신론자 및 타신자들은 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문제점들을 적재 적소에 해결 및 치유하는 기적을 행함으로써 굴복시키고 개종시켰다. 한편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찾아온 불치병의 환자에게는 비오 신부의 전구(轉求)로 완치하는 기적 또한 적지 않았는데 이 모든 기적은 항상 전제조건으로서 오로지 영혼의 구원을 위한 기적들이었다. 이와 같은 비오 신부의 오상을 보고 받은 교황청에서는 특사를 파견하여 조사하는 한편 포쨔(Foggia)의 관구장으로부터 위임받은 루이지 로마넬리 박사는 무신론자인 로마의 비냐미 박사와 함께 이 기적의 오상의 현상-고통의 초자연적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15개월간 비오 신부를 감독하며 다섯 군데의 상처들을 진찰, 임상적 실험 끝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썼다.
[비오 신부의 손에 있는 외상은 붉은 색깔의 얇은 피막으로 덮여있음. 혈반이나 종창 또는 조직의 염증 반응은 보이지 않았음. 본인은 이 상처가 표면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바임. 본인의 손가락으로 눌러본 결과, 손의 두께 전체에 걸쳐 빈 공간이 있음을 감지했음. 힘을 더 주었더라면 본인의 손가락이 구멍 안에서 서로 닿았을지는 확인할 수 없었음. 큰 힘을 주면 응당 환자에게 너무 큰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그에게 주야로 이런 어려운 시험을 되풀이했음. 그러나 매번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으므로 본인은 이를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음. 두발의 상처 역시 두 손의 특징과 똑같았음. 그러나 발의 두께 때문에 손에서와 같은 시험을 할 수는 없었음. 옆구리의 상처는 갈비뼈에 나란히, 편편하게 베인 상처로서, 7-8센티미터 길이이고 연한 조직에 파여 있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심하게 피가 나고 있었음. 이 피는 동맥 혈액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처의 모양으로 보아 상처는 표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 상처를 둘러싼 조직은 염증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으나,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을 호소했음. 본인은 15개월동안 비오 신부를 다섯 번에 걸쳐 진찰했음. 본인은 몇 가지 잠정적 변이(變異)를 확인하였으나, 임상적으로 이 상처를 어느 부류에 넣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 단서를 얻지 못했음.]
이 전염되지도, 곪지도 않는 현상의 상처들 -오히려 이 오상에서는 향수보다도 더 좋은 성덕의 향기가 발하였다.-을 더욱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비오 신부는 극단적으로 세심한 임상 진찰까지 받았고 그의 모든 기관은 철저하게 분석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에 찻잔하나 만큼의 피를 흘리는 몸이 과거에 매우 허약했고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던 그의 폐 질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져 기관, 정신, 신경, 그 어디에도 질병의 징후는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과학의 접근을 멀리하는 초자연적 존재로써 받아들여 알기 쉽고 객관적으로 쓴 페스타 박사의 보고서에 의해 교황청 상부층과 비오 신부의 장상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불식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비로서 그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2년 넘는 인륜상의 이러한 실험이 비오 신부에게는 오상에서 오는 고통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그에 대한 비방 또한 매우 심해져 교황령에 의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해야만 했지만 그는 교황청과 그의 장상들의 뜻에 순명하며 자신의 오상외에 그 깊은 굴욕을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었고 그 전부터 그의 전구를 간절히 바라는 영적 형제 자매들에게는 이처소재(二處所在-사람이 다른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하여 그들의 청을 들어 주었다.
비오 신부는 생전에 거룩한 주님의 사업을 두 가지 남겼는데 <기도단체>와 <고통을 더는 집>이다. 현 시대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이며 재난들의 참된 근원은 하느님을 망각하는 것으로서 비오 신부의 이 두 사업은 규칙이나 계획이 아닌, 단지 복음에서 따온 것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에서 태동된 기도는 '하느님께 호소'하며 결속을 이루어낸다. 비오 신부의 <기도단체>의 독창성은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 온갖 이탈과 돌발적인 것과 무분별함을 피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건으로 사제의 존재, 교회의 지향과 일치하는 비오 신부의 지향들에 따른 묵주기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전례개혁에 완전히 충실하게 거행되는 미사,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것 안에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의 안내에 따라 기도하기 위해, 그리고 형제적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일 때 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현존하시는 믿음과 사랑의 난로들이 되십시오." 비오 신부의 소명을 위한 심원한 연속선상의 성령의 줄기 속에서 그의 고해소 내에서의 사도직의 전환점으로 나타난 귀중한 보석과 같은 <기도단체>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한 그의 커다란 사랑으로 성장하여 그 외적인 구조물인 <고통을 더는 집-CASA Sollievo della Sofferenza>안에서 구체화된다. "모든 환자 안에는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모든 가난한 사람 안 에는 초췌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모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은 이중으로 현존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가난한 환자 안에서 주 그리스도 님을 맞아 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통을 더는 집>의 시공식(1947년)을 가졌다. 같은 해에 런던 출신의 이코노미스트 지의 편집장이던 바르바라 워드양은 비오 신부를 찾아와 예산도 없이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해 하면서도 비오 신부에게 개신교도인 약혼자를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여 결혼하게 해 달라는 은총을 전구한다. 이 은총이 이루어져 그녀의 약혼자인 잭슨( 그당시 U.N.R.A UN구제 부흥 사업국의 전무 이사)의 중개로 비오 신부는 이태리 포쨔 출신으로 뉴욕시장을 지냈으며 U.N.R.A의 회장이었던 피오렐로 라 과르디아의 이름으로 이억 오천만 리레의 기부금을 받았고 비오 신부의 열렬한 후원자인 파리의 브루나토는 삼백 오십만 프랑을 기부하는 등 전 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기증과 기부금으로 <고통을 더는 집>을 축조해 나갔다. 그리고 전에 비오 신부의 오상을 시험하고 여러 번 검사하면서 모진 고통을 주었던 의사들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오상임을 확신한 몇 명의 의사들-은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첨단 병원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오 신부를 도와 일하게 된다. 약 9년에 걸친 공사 끝에 이 <고통을 더는 집>은 1956년 5월5일 축성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국제 관상동맥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비오 신부와 병원 운영 시스템을 본 세계 유수의 의사들은 세상 다른 어느 곳과는 달리 '몸과 영혼'을 돌보는 기도단체의 봉사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 갔다. 훗날 이 병원은 비오 신부의 유언에 따라 교황청 직속 관할기구로 소속되어 교황청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환자의 인격을 억압하고 간과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악화된 전문화의 시대에 이곳은 아주 다급한 호소에 응답하여 영혼없이 육체적 치유만으로 남으려 하는 세상에 오늘날까지 봉사하고 있다.
1968년 9월 20일은 비오 신부가 오상을 받은지 50년이 되는 날로서 세계에 퍼져있는 기도단체(1968년에 726단체였으며 약 20개 국가에 68,000여명의 회원이 있었음)는 비오 신부의 오상 50주년 기념식 및 국제 대회를 9월 22일 금요일에 개최하기 위해 산 죠반니 로똔도로 모여 들었고 수 많은 순례객 또한 이 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 찾아와 산 죠반니 로똔도는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찼다. 그 전날(9월21일)부터 호흡곤란과 함께 심한 천식으로 고생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긴 했지만 이 날(9월22일) 미사가 비오 신부의 마지막 미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죽기 얼마 전 그는 매일 밤 하던 것처럼 원장 신부에게 강복을 받고 울며 고해 성사를 보았다. "제가 주님의 은총에 이렇게 형편없이 응답했고 성소의 선물에 대하여 주님께 충분히 감사드리지 못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 용서를 청해 주십시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중죄를 지었습니다....... 1887년 5월25일 태어날 때부터 1903년 1월22일 착복식때 까지, 태어난지 14시간 밖에 안된 5월 26일 8시에 세례를 받았던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은혜를 저버린 놈입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1968년 9월22일, 평상시와는 달리 새벽 5시 미사 전에 군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복을 주기 위해 창가에 나타나 잘 들리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자녀들이여, 내 자녀들이여!"라고 손수건을 흔들며 강복해 주었고 그 날 밤에도 다시 한번 그의 창문 앞에 모인 자녀들과 순례객들에게 나타나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손수건을 흔들며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작별을 고했다. 자정이 되었을 때 펠레그리노 신부를 불러 항상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그를 보며 함께 있어 주기를 애원하며 시간을 자주 묻고는 미사를 드렸는지 확인을 했다. 지금 미사 드리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응답하자 오늘 아침에는 당신이 나를 위해 미사를 드릴 것이라고 하며 고해성사를 청한 후 성사가 끝나자 "아들이여, 오늘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형제 수사님 들에게 나를 위하여 내가 끼친 모든 폐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해주고, 형제들과 내 영적 자매들에게 내 영혼을 위한 기도를 부탁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부축을 받아 휠체어로 베란다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들과 대지와 산 죠반니 로똔도를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 마지막 강복을 하는 듯 5분 동안 응시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한 얼굴로 식은 땀을 흘리며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하고는 "예수, 마리아"를 반복하다가 1968년 9월23일 2시 반 경에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입관식때 또 한번의 기적이 나타나는데 50년 동안 그렇게 피를 흘리며 고통받던 상처들이 갓난 아이의 피부처럼 매끄럽고 온전하게 되어 모든 사람들 -특히 무분별하고 잦은 시험으로 오상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려 했던,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의사들- 을 아연실색하게 하였다. 1968년 9월26일 19시. 밀랍처럼 창백하고 투명하며 빛을 발하는 형언할 수 없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수도회 총장신부를 비롯한 24명의 사제들이 장례미사를 거행하였으며 바오로 6세 교황의 추도문과 함께 수도원장은 모두에게 <비오 신부의 마지막 강복>을 전해 주었다. 이 땅의 작고 조용한 모퉁이 산 죠반니 로똔도의 지하 성당 안에 그의 유해는 안치되었다
항상 꽃들로 뒤덮인 무덤이 있고 비오 신부의 수많은 자녀들의 만남의 장소이며 영적인 은총의 장소. 비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오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구원의 중심 장소가 된 가르가노산의 외딴 모퉁이 산 죠반니 로똔도. 오늘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환자들과 기도단체와 순례자들. 모름지기 그들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강복을 내리는 비오 신부를 만날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더는 집에서, 십자가의 길에서, 비오 신부의 무덤에서, 작고 외딴 산마을 모퉁이에서.......
1999년 5월 2일 오전 10시.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비오 신부의 시복식을 공식으로 선포하셨다. 시성성의 의견을 받은 후: "우리는 만프레도니아의 대주교인 다리오의 빈첸조 형제와, 주교단의 많은 형제들(주교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의 염원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도직 권위에 의거해서 하느님의 거룩한 종,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님을 앞으로 복자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축일은, 교회법에 따라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그분이 하늘에서 다시 태어난 날인, 9월 23일로 정했습니다." 교황 님께서는 교회의 공식어인 라틴어로 읽으셨다. 세계 각처에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십 오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과 라테란 광장에 모인 이 십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산 죠반니 로똔도 마을에 모인 수많은 순례자들 - 이 날 비오 신부의 시복식 행사가 동시에 TV로 중계되었다 - 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베드로의 후계자의 연설에 응답하였고 각지의 신문사들은 이 행사를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시복식'이란 표제로 소개하였다
호오~이런 글을 여기서 접하다니..놀랍군요...12차원님 계속해서 정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