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필명에서 "관찰자"는 이곳 빛의지구에서의 필명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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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찰자, 왕의귀환 회원자격 박탈을 건의합니다.
필명: 유전
http://cwgkorea.net/zbxe/455916
2011.05.02 13:15:09
나의 제법실상 연기법에 의하여 읽히고 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나이의 지금 상황에 대하여
전체 신나이 회원님들에게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내가 이곳 신나이에 오기 전 몇
년간은 리멤버님이 대표회원으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라소마님이 대표회원으로
있는데, 일단 리멤버님이 대표회원으로 있었을 때 내가 이곳에 와서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
었다는 경우를 가정하여 생각 해 보면,
나의 방식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몇몇 회원들의 건의에 의하여 문제가 제기 되었을 시
"인간완성"님의 경우와 같이 꽤나 오랜 기간을 거치고도 별 다른 조치 없이 자비와 사랑의 발로
로 인한 인내와 희생으로 감수했을 것이라 판단되며 그러나, 인간완성님과 다르게 나의 경우라면
그러한 오랜 기간을 거칠 필요도 없이 내 스스로 알아서 물러갔거나 획기적 방식의 변화를 통하
여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애썼을 것입니다. 그 이유로는 이곳이 정부지원 단체나 언론단체가
아니며, 비록 공개된 사이트이어서 회원의 입,탈회가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공공의 목적만을 위
한다고 할 수 없는 사적인 모임단체이며 카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곳이 정부지원 단체의 경
우라면 물러섬이 없이 인간완성님과 같은 방편을 법적인 보호 아래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완성님에 대하여 언급을 하게 되었는데 어차피 하게 된 상황에서 또 다시 불편
함을 느낄 몇몇 회원님들의 양해를 바라며 조금 더 언급 하겠습니다. 우선 도덕경 전체의 첫구절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름지어 이름하지만 항상
그 이름이 아니다)"에서 보듯이 이름은 항상 바뀔 수 있으며 道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
인간완성"이라는 필명에 대하여 연기법을 설명하자면, 그 이름이 대표적으로 쓰이는 형태의 예로
"(전인)교육을 통한 인간완성"이 있습니다. 나의 경우도 같습니다. 다만 그 층차는 확실히 다릅
니다.
내가 출판한 책(국립도서관 납본시 판매가 1원으로 책정) "사람이 살아가다"에도 쓰여 있듯이 "
양심을 통하여 사람(완전하다는 뜻이 포함 된)이 되어야 한다" 가 결론입니다. 사람에 대한 진정
한 의미를, 한면으로만 보면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창조주의 "인격신" 개념 정도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예수님을 좋아 하여도 여호와는 싫어 합니다. 여호와는 창조주가 아닙니다. 예
수님 보다 한참 낮은 등급의 神이지만 그러한 신을 구원하러 그 신의 아래에 있는 민족에게로 (
낮은 곳으로) 간 것으로 판단합니다. 부처를 뜻하는 불(佛)을 파자로 풀면 인간(人)이 아니다(弗
)가 되며 사람은 인격신이나 부처 보다 높은 존재로 창조주와 동급으로 그러나 어버이와 자식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최종적으로 현재의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각각의 창조주들이 되어야 합니
다. 그러나 자유의지도 있어서 어쩌면 스스로 영원히 사람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획에는
있지만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지체(delay)되고 영원의 시간동안 딜레이 되어 과정의 끝 없는 반
복만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체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은 창조주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과정에 있고 영원의 어느 순간까지 사람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사
람이 되어야 할 계획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창조주는 영원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
지만 그러나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결정은 각각의 개인이 해야 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은 2천년동안 진행되어 현재까지 말릴 수 없는 지경이고 앞으로 과학과
핵무기의 발달로 지하드라는 성전(聖戰)의 일환으로 핵전쟁도 불사 하겠다는 원리주의자들과 생
화학 무기로 인류 전체가 바이러스에 의하여 멸종 위기에 올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은 원래 구약
의 같은 족속으로 시작 하였지만 갈라져서 싸웠으며 기독교에는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이 승리하는
과정에 있으며 이슬람교는 마호메트 이후로 "평화"를 제1의 원리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순화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원리주의자들 때문에 그리고 기독교 삿된 권력자들에 의한 좋지 않은 면만을 부각하여 홍보한 결
과로 이슬람교의 교리 자체가 대단히 과격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다릅니다. 다만 한국의
조선시대 유교문화와 같은 수준에 있으며, "알라(Allah)"라는 이름은 영어의 "God"으로 쓰일 뿐
특정한 이름으로 쓰는 것이 아니어서 여호와 라는 이름 조차 사용이 허락될 수 없는 완전한 창조
주를 의미하여 "이름 없는 신 (무명신 無名神)"에 해당 됩니다.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교리적으
로 보면 석존과 예수님 또한 그들의 알라에 의하여 내려 온 높은 존재로 존중되고 있으나 조선시
대에서 천자(天子)가 하느님(天)을 대신할 수 없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신나이 회원들은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신나이 전체 메시지는
이슬람교 교리와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같다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이슬람교에도 다행히 구원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함부로 이름을 짓거나 부를 수 없어서
대명사의 의미로 알라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알라가 인간의 몸으로 온다는 자체는 현
재까지 인정할 수 없겠지만, 알라를 대신하여 사람이 그들을 구원하러 온다고 합니다. 이슬람교
에서 구원자이자 평화를 뜻하는 의미로 그들의 인사에서 사용되는 이름이 바로 "Salam" 입니다.
기독교에서의 살롬과는 약간 다른 발음이자 표기입니다. (검색어 "Salam 평화" 참조)
물론 내가 궁극적으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사용한 것은 이러한 이슬람 용어나 교리를 알
기 이전의 일입니다. 또 내가 우연히 도덕경을 해석하다가 깨달음이 시작 되었고, 도덕경에서 道
를 규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가 첫 구절이 되었는데 나(유전)
의 호적에 올라 있는 본명이 이상도(李尙導)로 나는 "도가도 이상도 (이상도의 도는 비선형적 방
식으로 항상 옳다)" 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여기서 항상 옳다의 의미는 전지전능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항상 주장하는 "진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양심이 커 가는 최고의 상태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적 양심에서의 옳음을 뜻합니다.
나의 깨달음이 우연을 가장하여 왔듯이 나의 이름 또한 이러한 우연이 있으며 내 모든 삶의 과정
이 이러한 우연의 연속에서 연기(緣起)되어 왔던 사항 중에서 아주 사소하다 할 정도의 예에 불
과한 이름에 관한 우연성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라는 신나이 메시지도 있지만 이러한
우연적 상황을 두고 타인들에게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있다면 신나이 메시지와
같이 "끌어 당김의 법칙"이 어떠한 형태로든 확실히 존재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의 이곳 신나이의 참가로 인하여 관찰자와 왕의귀환이 나에 대하여 논란을 일으
켰으며 그것이 어느정도 봉합된 상황에서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내 게시글에
대하여 "댓글 허용"을 막았고, 그동안 "셋샐동안"님과 "에니사번"님과의 마찰 속에 있었던 공격
이 잠시 나에게로 향했다가 내가 "끌어당김의 중지" 라는 댓글허용 불가의 방편으로 다시 셋샐동
안님에게 집중되는 현상에 따라 신나이 메시지를 근거로 신나이 스러운 "사랑하기 때문에 밀어내
침의 법칙"을 건의 합니다.
관찰자와 왕의귀환은 확실히 현재 셋샐동안님이나 재희님과 함께 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고 관찰
자가 주장하고 왕의귀환이 합세하여 의문을 제기하여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셋샐동안=재희(퀴프
/온오프/익명/../첫발자욱/이짜엠)" 이러한 팩트가 사실이든 아니든 함께 하기 곤란한 상황에 있
으며 이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분란을 막을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으나 수 없이 많은 끌어당긴 원
인의 모든 것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면 결단코 해결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끌어당김은 단
순히 한두가지 이유만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모든 원인이 뭉쳐서 하나의 형태로 나오는 결과라
고 신나이에서 말 하고 있습니다.
관찰자는 이곳 신나이 카페가 아닌 다른 영성 카페에서 거의 주인이나 다름 없을 정도의 운영진
으로 보이며 그곳의 운영진은 관찰자 혼자만이 아닌데다가 포탈에서의 카페는 활동 상황에 따라
포탈에서의 운영지원금이 매월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곳 스태프들에게 금전적인 문제도
예상된다 하겠습니다. 또한 그 카페에서의 주 활동이 "세라피스, 오라소마 명상센터"에 대한 고
액의 비지니스로 적극적 홍보로 이용되고 있는 점은 재희님이 신나이에서 오랜 기간 어려운 시간
과 노동력으로 관리자로서의 봉사와 희생으로 인내한 것과는 다릅니다.
즉 관찰자가 아무리 비지니스와 상관 없다고 주장을 하여도 그가 이미 그러한 비지니스를 하고
있고 그가 카페의 주요 활동을 비지니스로 함께 하는 한 그것은 결국 비지니스로 (금전적 수입)
연결이 될 것이며 비지니스를 접지 않는 한 그러한 시도는 형태만 바뀔 뿐 이곳 뿐이 아니라 그
어디라도 계속적으로 시도될 것이기 때문이며 지금껏 그래 왔습니다. 좋은 매너와 립서비스로 순
진하고 여리며 어린 여성들에게는 매우 달콤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러한 것을 예상하고 쓴 것이 아니었지만 또 우연이 겹쳐서 미리 써서 신나이 게시
판에 올려 놓게 된 사항이며 진정한 신나이 스러움은 블랙홀과 같이 "끌어당김의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제법실상 연기법 중의 하나입니다.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가 하나입니다.
이러한 나의 의견이 대표회원님과 운영진들의 판단하에 부합하는 면이 인정 된다면, 관찰자와 그
에 적극적으로 (암묵적 합의에 의한) 동조하여 확대시킨 왕의귀환에게 책임을 물어 그 둘의 신나
이 회원 자격을 박탈할 것에 대하여 의결사항으로 올려줄 것을 건의합니다.
이 글은 여러 회원님들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댓글 허용"이 될 것이며 다만, 관찰자와
왕의귀환의 의견은 해당 당사자이기 때문에 받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안건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
며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고 댓글을 달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찰자와 왕의귀환의 선택이
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선택까지 합쳐서 회원 여러님들의 바른 판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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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2011.04.30 11:10:09
발가락 하나가 썩어 들어갈 때 소중한 발가락이지만 그 발가락으로 인하여 다른 나머지 발가락 까지 썩어 들어갈 것을 염려하는 경우에 해당되며 이러한 경우에 있어 때로는 나중에 발가락이 문제가 아니라 발 전체를 잘라내야 하는 경우나 아에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경우도 확실히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와 사랑은 진리를 찾아가게 하는 길이기는 하지만 의(義)라고 하는 수단을 필요로 합니다. 무조건적이고 분별 없는 자비와 사랑은 오히려 상대를 죽이는 길에 이르게도 하며 상대만이 아니라 전체가 죽음으로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공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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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나이 메시지에서 공의(公義)에 대한 부분
필명: 유전
http://cwgkorea.net/zbxe/454566
2011.04.30 12:43:43
신과 나눈 이야기 - <家長의 길>
‘삶이 두렵고 혼란스럽다’ 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결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가장의 길”은 원래 힘겹고 험난한 길이다.
혼자 있다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가 쉬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딸려 있을 때,
그들에게 최대한 “잘해주고 싶은 욕구”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삶의 목적”을 소위 ‘안정을 얻는 것’으로 안다면, 돈이 없음을 “불행”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급료’로 볼 것이며? 무엇을 ‘일의 목적’으로 볼 것이냐? 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관계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신의 급료”, 우리가 ‘신을 위해 일할 때 받게 되는 급료’에는 물질적 행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더불어 ‘물질적 안락’ 역시 우리의 것이 된다.
어느 누구든, “신의 급료”가 주는 “영적 평온”을 일단 한번 누리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물질적 안락’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가족의 물질적 안락”까지도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신의 의식까지 올라서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다른 사람의 영혼이란 없다”는 것과,
모든 영혼이 평온하게 살길 바라는 건 칭찬받을 일이긴 하나,
“각자의 영혼은 순간마다 자기 나름의 운명을 선택”해야 하고,
또 실제로 “선택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남을 고의로 불행에 빠뜨리거나, 학대하거나 파멸시키는 것은 고귀한 행동이 아니며,
또한 자신에게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도록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 놓은 인연자”들을 무시하는 것 역시 똑같이
“온당치 못한 짓”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들을 자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나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가능한 한 빨리 완벽하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는 결코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들을 진실로 축복하는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불필요한 존재로 느낄 때” 이다.
같은 의미로 “신에게 더없이 기뿐 순간”은,
우리가 “신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다.
종교나 성직자들이 가르친 “신”은 분노하고, 질투하고, 의존하기를 요구하는 신이었으나,
이런 존재는 신성을 향한 신경증적인 “대용품”이지 결코 신이 아닌 것이다.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연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사랑을 꽉 붙들어 매는 “아교풀”로 만들지
말고, 처음에는 끌어 당겼다가, 돌아서면 반발하는 “자석”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살아 남으려면 우리를 꽉 붙들어야 한다고 믿는 일이 생기면,
이것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해로움”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세상에 내 보내라!”,
그리고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체험하게 하라!”
이렇게 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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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위 신나이 메시지에서 소제목으로 되어 있는 "가장(家長)의 길" 이라는 뜻을 조금 더 생각 해 보면, 위의 번역본에서 혼동적으로 쓰이고 있는 "나"에 대한 구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특히 위 메시지의 끝 부분을 세번 정도 다시 읽어 본 내 생각을 밝혀 보면, "진리"에서 멀어지는 때에는 "아교풀"로 감싸 줄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돌아서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 반발하는 자석처럼 내 쳐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로움"을 줄 뿐이 아니라 방치할 경우 가족들 모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판단을 가장이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가장으로의 선출은 고진재(고도로 진화된 존재)로 나아갈 수록 세속적인 태어난 년도에 따른 나이에 의한 대접이나, 대중적 수준 이하의 집단적 의견 수렴 보다, 창조주의 진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 되는 선지식이 맡아야 한다. 불가에서는 가르치던 제자가 어느 순간 깨달음을 증득하여 스승 보다 높은 선지식이 되면 주장자 라고 하는 막대기(지팡이)를 제자에게 넘겨 주고 제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 물론 나는(유전) 아무리 선지식이라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하여도 그러한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까지 제자도 두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라가 전쟁 등의 이유로 완전히 망할 위기의 때 이거나 지구가 멸망하는 경우가 된다면 고려 해 볼 생각은 있다.
하여튼, 가장이 판단을 잘못하여 그 가족의 무리들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 가족들 전체가 사망에 이르는 길로 인도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첨언 하자면, 자식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더 베풀게 되는 입장에서의 여자 가장의 경우는 사실 잘 생각 해 보면 그 여자 가장의 불행이다. 자식들에게 때로는 대마왕으로 비춰질 수 있는 판단들 때문에 스스로도 괴로운 일이고 자비와 사랑의 방편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비와 사랑을 위한 다른 쪽 방편인 義까지 동시에 시행 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잘 했다 하여도 자식들은 결코 그것이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이 그냥 아버지를 대마왕이라 부르는 자식들과 같이 역시나 마귀할멈으로 인식 하기가 쉽다. 그렇게 인식될 때 남자 보다는 여자가 감정적으로 상처를 더 받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에서 판단이 더 어렵고 스스로도 더 불행 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신나이 메시지에서 가장의 역할은 신약에서 "돌아 온 탕아의 비유"와 같은 경우이다. 메시지에서 종교의 부정성이 언급되어 있는데, 신나이 전체 메시지에서는 석존과 예수님 이름을 그대로 호칭하며 높은 존재로 설명 되어 있고 인류 또한 그러한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기독교에서 잘못 알려져 구약과 신약이 함께 전하여진 상황에서 많은 부정성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정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베릭
- 2011.05.03
- 01:23:50
- (*.156.160.55)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는 시민들에게 자행되는 경찰의 엄청난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에 이를 알리겠다고 합니다. 티벳이나 미얀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믿기지 않겠지만, 바로 우리 한국의 현재 상황입니다. 어린 여학생들이 방패와 군화발에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고 분노로 밤을 지세우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어두운 힘이 크게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잡귀신들이 한반도에서 판을 치기 시작하여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의도대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 되었습니다.
미래의 인류문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영성국가’ 건설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있습니다.
이들 잡귀나 아눈나킨이 사람들을 통제하여 장악하는 방법중에 하나가 ‘이데올로기선동’입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고 서로 적을 만들어 폭력과 살인을 하게 하여 그 힘으로 다시 법과 질서를 개편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방법인 것 같지만 생체바이러스보다 휠씬 더 강력한 ‘사념체’를 이용하여 인간의 의식에 뿌리 깊게 박아 정치인의 말 몇 마디에 행동과 정신까지 지배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우리 인간들은 4차원의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어 대부분이 노예처럼 조종당하고 목숨까지 바치는 일이 수 천 년의 역사 동안 반복 되어 왔습니다. 논리라는 존재의 의도도 아눈나킨에 의해 계획된것입니다.
경험론의 모든 파생형이 포함되며 인간의 감정보다 휠씬 우월하다는 깊은 세뇌가 '끊임 없이 작용하였습니다. '
논리는 오히려 비도덕성의 산물이며 커다란 관념의 구조를 이루는 기반이 되어 거기에 대한 영원한 노예로 전락 시키고 맙니다.
본의 아니게 극심한 시위에 말려들면 경찰을 때리지도 말고 맞지도 마세요.
불의에 대한 분노는 표출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에 계속 휘말리게 되면 폭력적인 상황이 계속 현실화 됩니다.
히틀러가 여론조작으로 게르만 민족의 폭력성을 체계적으로 계속 조장하여 군대를 출정시키는 것을 상기할 때 폭력적인 감정을 마음에 담는 다는 것은 커다란 전쟁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막 기상했을 때 그러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좌익 우익,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기독교, 불교, 사이비종교, 없는 자 있는 자 등 셀 수 없는 사념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대하며, 적으로 만듭니다.
영성인이라면 이러한 태도는 자제 해야 합니다. 타인의 존재는서로의 영혼과의 깊은 교감으로 인해 다른 존재가 내 안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손님이죠. 귀한 손님 대접하듯이 대해야 합니다.
사념에 의해 계속 다른 존재들을 평가 하고 적으로 대한다면, 커뮤니케이션 결손으로 5차원 세계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사념에 덜 오염된 많은 어린 학생들과 젊은층,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들의 주장은 순수 한 것입니다. 앞으로 잡귀들은 경제적으로 사람들을 계속 쥐어 짤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잡귀들에게 낙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민을 위하는 정책은 실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명맥을 유지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에너지는 엘리트층에 완전히 독점을 당하였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모두 에너지와 공산품, 식료품을 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고, 일자리도 많이 없어 질 것입니다.
국민들은 2008년 겨울 가장 가혹한 계절을 맞이할 것이며 2009년 봄 유례없는 경제파탄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민족 전체가 폭력적인 상념에 휘말릴 경우 전쟁이 발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도 물러 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3차원 현실세계는 모두 우리의 두뇌 속에 작용하는 이미지라는 것을요. 모든 실체는 서로의 동의하에 만들어지고 계획되며 현실화 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신뢰로 뭉치며 항상 신이 우리들에게 대하는 마음처럼 깊은 상념으로 긍정적인 세상을 염원하고 기도한다면, 그러한 낙원의 세계가 현실화 되며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영성 발전과 행복이라는 목표를 두고 에너지를 쏟으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분기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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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이나 보도뉴스에서 속보로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발표를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본문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대한 내용을 쓰고 난 이후에 발표된 뉴스입니다. 제법실상 연기법은 나(유전)만이 보는 실상 세계가 아니라 부처급 이상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그 세계의 크고 작음에 상관 없이 창조주의 역사하심을 매트릭스라는 갖혀진 세계에서가 아니라 그리고 환상이나 꿈이나 홀로그램이 아닌 일상적인 인간들의 모든 상황을 그대로 보고도 연동함을 알게 됩니다.
내가 위 본문 글을 올린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신나이 회원들과 함께 신나이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고 그러한 공부에 대해서 떠드는 일부 학생들을 잠시 교실 밖으로 내 보내기 위함입니다. 공부에 지장을 초래하게 만드는 요인 때문에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들까지 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을 방치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시끄러운 대상을 잠시 홀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은, 언제든 다시 준비가 되었을 때 모두가 함께 공부하기 위한 자비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