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필요 하다고 판단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략 하겠습니다. 인물열전님이 아무리 궁금한 점이 있어도 나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앞의 7가지 질문은 생략하며 후의 다른 질문도 생략될 수 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양해 바랍니다. 질문8에 바로 위 7가지 질문에 대한 공통적인 해답 또한 인물열전님이 미리 써 놓았으니 그것 부터 답변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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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8. 깨달음은 많은 영성인들에게, 감정을 넘어서 이성을 넘어서 존재하는, 초이성적, 초관념적, 초관습적, "관조의 세계" 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감정이나 이성을 넘어서 도저히 관념적으로 말해질 수 없는 세계, 이른바 불립문자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체득, 체험하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는데,
이러한 많은 영성인의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신지요?
8. 유전: "깨달음은 초감정,초이성,초관념,초관습적" 관조의 세계다. , 인물열전님의 이 표현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모든 유태인들과 로마인들을 죄의 처벌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석존 또한 모든 인간들을 "중생"이라는 굴레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마치 눈뜬 장님과 같이 미망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의 7가지 질문은 세상의 관습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나 또한 초관습적 그러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오히려 괴물에 가까운 짓도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전쟁이 났을 경우 내 가족과 나라가 핵폭탄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전쟁 당사자에 해당 되는 나라 전체를 아에 초토화 시켜 버리는 일에도 찬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민간인들을 포함한 현재의 관습적 전쟁 행태에 매우 어긋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필요 하다면 그럴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채널링 메시지에서 보면 외계 존재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지구의 인류는 모두 "휴거"에 준하는 목성 점화, 이른바 "스타시스"라는 것을 계획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자신들을 따르는 인류만 미리 우주선을 보내어 구출 한다고 말해 온 적이 있습니다. 계획대로 아직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시도는 비슷하게 계속 되고 있으며, 이러한 계획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영성인들 또한 많습니다. 보편적 인류에 비하면 그 외계존재들은 어쩌면 깨달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 보면서 깨달았다고 하는 영성인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당연히 이렇게 초관습적입니다. 다만 어떻게 깨달았느냐가 중요하고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힘의 논리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이야 말로 이 우주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거부하면 뭐 하겠습니까? 힘으로 제압하는데야. 결국은 창조주도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진리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법"도 있기 때문에 힘의 논리 보다는 "불법(佛法)"을 우선 강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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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7. 무묘앙에오는 힌두교가 아니라 불교 쪽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힌두교인지요?
간략하게나마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유전님의 지식과 구분이 더 깔끔하고 명료한 것 같아서 부탁을 드려 봅니다.
17. 유전: 도덕경의 핵심 사상은 "생명 존중"입니다. 이것은 많은 번역자들이 대부분 공통으로 인식하는 현상으로 다른 생명을 함부로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무슨 일이든 계획 하거나 의도 하지도 말아라 라는 무위 사상이 주류를 이룹니다. 그런데 도덕경에서 도경의 마지막 장에 해당되는 37장을 보면,
도경 37장 (유전 번역)
道常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 무위한듯 하나 하지않는 것도 없으니 제후나 왕이 능히 (도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면 만물을 신장(神將)으로 화(化)하게 할 수 있을 것이나 그 화(化)를 욕심으로 짓는다면 (그에 상응하여) 나 또한 무명의 통나무(업業이라는 글자 하단의 木 부수에서 大로 변하여 가지치기로 자라난 큰 통나무 樸) 를 신장(神將)으로 삼아 진압할(鎭之) 것이다. 무명의 통나무는 다만 무욕한 신장(神將)으로만 힘쓸 것이니 깨끗하여 욕심을 내지 않으며(매우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뜻) 천하의 (욕심으로 지은)신장(神將)들은 스스로(상응된 댓가로) (평)정되리라.
무명의 통나무를 보내어 한번에 다 평정한다고 예언하는 것으로 도경이 끝납니다. 이것에 대한 해석에서 의혹이 있다면 비슷한 다른 내용이면서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인 42장을 보면,
도덕경 42장 (구름 이경숙 번역)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나니.....중략...사람들이 가르치는 바를 나 역시 가르치려고 하나니, 강하고 뻣뻣한 사람은 편한 죽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나는 장차 이를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으려 하느니라.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요 아에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편하게 죽이지도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이것을 최고의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삼겠답니다. 최고 가는 가르침이니 다른 가르침 보다 우선적으로 시행되는 가르침이 이렇게 살벌합니다.
무묘앙에오 라는 이름에서 앞의 무묘앙은 무명암(無名庵)이라는 한자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이름없는암자 라는 뜻으로 위에 설명한 이름없는통나무에 에오의 암자는 편한 죽음도 느낄 수 없었기때문에 끝 없이 자신의 소멸을 즉 윤회 없는 영원한 소멸을 주장해 왔던 것입니다. 아래에 에오가 써 놓은 글을 옮겨 왔는데 우주에서 받은 메시지 중의 혹성관리위원회나 생물관리위원회는 도덕경이 불경의 "마음" 보다는 물질과 생명을 다 같이 다루는 입장으로 보면 도교에서 담당하는 위원회로 보아도 무방하고 대웅전 뒤의 삼신각이나 칠성각에는 노자를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죄를 대웅전에서 빌고 복은 삼신각이나 칠성각에서 비는 것이 한국 절의 공통입니다. 또 도교는 무속 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온갖 神들을 관리하는 종교로 인식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교에서 생명존중이나 덕이 없으면 힌두교요, 불교에서 자비심이 없으면 힌두교입니다. 에오는 생명존중도 없고 덕도 없으며 자비는 더욱 없기 때문에 불교가 아니라 힌두교 라고 말한 것입니다.
*금후 인류의 처분에 대한 우주 회의록*
[생물관리위원회] - 지구뿐만 아니라 많은 혹성의 인류를 창조한 팀이자 혹성을 개발이용하는 입장에 있으며,혹성관리위원회와는 반목하기 쉽다.이른바 <건축업자나 성장기업>에 해당한다.
[혹성관리위원회] - 혹성 자체의 환경 조건이나 궤도 및 인간 이외의 기본 생물 설계 등을 관리하는 팀이자 혹성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서 생물관리위원회와는 반목하기 쉽다.이른바 혹성의 <지주>(地主)와 같다.
[심사위원회] - 중립적으로 의견을 조정하고 결단을 내리는 부문
[실태위원회] - 중립적인 자료 조사와 제공을 하는 팀
<현재상황>
-혹성관리위원회의 발언 - 지구상에서 현재의 우성인 두발 생물인 유인원(인간)이 현재 급속하게 혹성위의 자원을 소비하며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에 대한 처분을 허가해 주기 바란다.자원 소비만 보면 유인원의 생존을 위해서 이용되는 정도의 소비량뿐이기 때문에 혹성 전체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혼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
.....(중략)
-생물관리위원회의 발언 - 현재 두발 유인원은 환경과 공존하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생태계에 대한 영향은 그들 자신의 사회 문제가 될 것이므로 현 시점에서 처분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으로 본다.
-혹성관리위원회의 반론 - 거기에 관해서는 두발 유인원과 다른 생물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데이터에 나와 있다.생태계에 대한 비교적 무해한 산업 기술의 대부분은 이미 유인원의 지능 계급에 의해서 일부는 개발되어 있지만 경제적인 이해 관계가 중시되기 때문에 그 실현은 경제적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종료된 후가 되며,그 시점에서는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은 손쓸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실로 바보같은 일이지만 입에 들어가는 식료품이 자신의 눈앞에서 실제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두발 유인원은 확실한 파멸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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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9. 보시의 기준이 베품을 하는 내 기준인지요? 아니면 상대방의 기준인지요?
말하자면 상대방의 기준에선 고통이지만, 내 기준에선 상대방의 성장을 위한 순수한 호의이고 베품이었다면, 이것은 보시인지요?
아니면 내 기준에선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님으로 설령 고통이더라도, 상대방의 기준에서 그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보시인지요?
쉽게 비유를 하자면, 알콜 중독자에게 술을 끊도록 독방에 넣거나 전문치료를 적극적으로 강력히 권장하는 것이 진심으로 그가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내 기준에서 돕는 것임으로 보시인지요?
아니면 알콜 중독자가 술이 없어서 괴로워할때, 술이 알콜중독자에게 도움이 안되지만 상대방이 어쨋든 상대방 기준에서 원함으로 상대방의 기준에 맞춰서,
자비심(표현을 하자면)으로 술을 주는 것이 보시인지요?
9. 유전: 보시나 덕을 베푸는 기준은 층차 마다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른 것을 어떻게 기준을 잡느냐? 불교에서는 상대를 잘 헤아려서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시한다고 합니다. 타심통이 있는 보살급 이상이 되면 좋고 급수가 낮아도 자신만의 기준으로라도 양심에 따라 보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를 했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아야 한다고 금강경에 나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매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양심에 따라 판단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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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1. 혹, 유전님은 석존의 경지를 깨달은 분이신지요?
석존의 경지가 아니라면 유전님의 깨달음의 경지는 대략 어느 정도 인지요?
보시를 크게 할 수록 깨달음의 깊이 또한 깊어지는 것인지요?
혹, 유전님은 석존의 현생이신지요?
11. 유전: 나는 석존의 현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불교를 따르는 종교인도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대한 깨달음을 한번에 증득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깨달음을 얻기 십년 전에도 꿈으로 생생한 각 종교별로의 메시지를 며칠씩 걸러 4번 (기독교, 불교, 도교, 유교) 받았고, 깨달을 당시에는 아에, 날이 밝은 훤한 아침 5층 건물의 옥상에서 반투명한 홀로그램으로 각 종교별 대표적 존재들의 형상이 내가 동쪽에 위치한 상태로 동쪽을 제외한 삼방에서 예수,석존,온갖생물(도교),갓난아기(유교)의 모습으로 보였고 이러한 형상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지만 그 이후로 본격적인 깨달음이 시작 되었고 시험도 시작 되었습니다. 보시만으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보시가 기본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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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2. 깨달음은 이를테면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의 궁극을 가리키는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발심, 혹은 상위차원의 지혜로 깨달음이 더 크게 열리거나 혹은 보시를 크게 해서, 그에 응당하는 인과를 받고 다시 그것이 인과적으로 더 커지는,
선순환적 궁극을, 석존의 깨달음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는데, 이 견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12. 유전: 내가 누누히 강조한 것 중의 하나가 "자유의지는 우주의 절대반지다"입니다. 악순환이든 선순환이든 본인이 바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끝이 없습니다. 진리의 길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로보트나 인형을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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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3. 유전님이 말하는 "깨달음" 이란 무엇인가요?
유전님의 관점에서 위 깨달음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쉽고 명료하게 설명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려 봅니다.
13. 유전: 수학에서 답을 알게 된 깨달음도 깨달음입니다. 고차원의 깨달음도 깨달음입니다. 무슨 공부든 열심히 자신의 의지로 하게 되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생활의 달인도 하나에 정진하여 나오는 깨달음 없이는 달인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너무 지나쳐서 깨달음 집착병이 되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양심에 따라 판단 하세요.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절제도 중요합니다. 과욕은 화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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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4. 석존의 깨달음을 얻어도 윤회를 하는지요?
만약 석존의 깨달음을 얻어도 윤회를 한다면 석존의 현생은 누구인지요? 혹시 유전님이신지요?
14. 유전: 자유의지는 절대반지 이기 때문에 창조주의 아들도 현세에 나오는 것이며 창조주 또한 나올 수 있습니다. 창조주에게 양심이 있다면 아들과 모든 부처들이 나와서 생고생을 하는 마당에 나올 것입니다. ㅎㅎ. 이러한 것은 윤회라 하지 않고 하화중생 이라고 한다 했습니다. 석존의 후생은 원효대사 다시 또 후생인 김대중 대통령으로 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냥 내 주장이고 설명 해 봐야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믿지 않아도 상관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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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5. 일반인들에게 자비와 사랑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고 생각되는데, 두 개념의 차이, 구분점에 중점을 두어서 유전님의 설명을 간략하게나마 들을 수 있을런지요?
15. 유전: 생명존중 -> 자비 -> 사랑 이렇게 순서대로 입니다. 이 순서만 보아도 대충 이해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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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6. 깨달음의 수준이 높다는 것의 잣대가 일반인들에게 모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 하나의 잣대로서 자비와 사랑의 깊이와 힘으로서 깨달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깨달음의 또 다른 잣대가 있는지요? 혹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요?
16. 유전: 생명존중 자비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모두 다르고 또 통찰적인 깨달음도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말이나 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사항이 아니라고 봅니다. 영적 전쟁이 아닌 영적인 스포츠 화쟁(和諍)이 좋기는 합니다. 수준을 다 알수는 없지만 서로 당사자들은 어느 정도 짐작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양심에 따라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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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은 이미 위에서 설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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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8. 진리를 배운다는 표현이 진리가 지식이나 관념적 차원의 이론적 공부 같다는 뉘앙스가 있는데, 유전님의 표현이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진리를 배우는 즐거움이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요?
지식과 관념 차원에서의 일반인들의 생각 속의 그것이 아니라면 그 "진리를 배우는 즐거움" 은, 어떤 것일런지요?
18. 유전: 한개의 층차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떠한 경계. 그 경계가 무너지면 처음에 대부분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한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마다 고통은 점점 줄어들고 즐거움만이 더욱 기대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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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9. 깨달음이 해탈이고 해탈이 번뇌와 고통에서 해방 되는 것이라면,
깨달은 자는, 혹은 석존의 경지에서의 깨달음은 번뇌와 고통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 입니다.
위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반박, 보충 등 유전님의 견해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19. 유전: 18번 질문과 약간 중복이군요. 부처 정도의 입장이 되면 무묘앙에오가 겪었던 공사상에서 나오는 공포는 모두 없어집니다. 위에 설명한 즐거운 새로운 세상으로 판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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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0.
("유전님 : 수준 높은 영성인에 대한 비판은 그 수준에서 또 다른 경계를 생각 해 보기 위한다는 뜻으로 한마디 하고 반응을 봅니다. 이것도 높은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세계간을 보는 또 다른 높은 수준이 있기 때문에 각 게시판마다 고수들끼리 치열하게 싸우죠. ")
개인적으로 토론이나 비판, 좀 더 원색적으로 다툼이나 싸움도, 영적성장, 혹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위에 고수들끼리의 치열한 다툼 등에 대한 견해에 나 역시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됩니다만. 그리고 이전 질문과 다소 중첩되는 감이 있습니다만.
반면 이것이 사랑이나 포용, 허용, 보편적으로 영성계에서 대세를 이루는 에고적 욕망에 기인한, 말하자면 마땅히 지양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자체적 의식의 괴리 또한 있습니다. 유진님께서도 표현한 위 고수들의 치열한 싸움이나 다툼, 또는 토론 등은 꼭 고수의 세계에서만 있는 것도 아닌 매우 보편적인 것 같은데요. 위 싸움, 치열한 대결들은 오히려 근본적인 진리로 인정 받고 있는, 사랑, 포용, 보시, 자비 와는 동 떨어져 보이는, 말하자면, 영적 수준이 낮은 에고(자아)의 행태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계신지요?
20. 유전: 16번의 답변에서 언급한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사상을 잘 연구 해 보기 바랍니다.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절차탁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양심에 따라 화쟁에 따른 경쟁 진리 논쟁의 공정한 스포츠로 승부를 인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누가 더 높은 선지식인 지는 제3자는 잘 몰라도 당사자들은 양심에 따라 대부분 어느 순간에 인식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비난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진정한 고수라면 깨끗이 승복하는 것을 더 자존감 있게 생각할 것입니다. 신선들은 진검 승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바둑을 두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업식에 따른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 정도 수준에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자세로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화쟁이라고 하는 것은 화평하게 간한다는 한자로 불교에서 석존의 방식을 뜻합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존재들의 세계에서 하나씩 찾아 와 간하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어루고 달래서 아라한과나 부처 수기도 주며 원융무애의 회통을 말합니다. 나는 자비만을 내세우는 입장이 아닙니다. 회초리로 말을 들을 때까지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양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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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21. 옳고 그름, 사랑, 자비, 깨달음, 다양한 표현들, 미사여구들이 있지만,
조금 차원을 달리해보자면, 실질적으로는 결국 에너지 싸움, 또는 교류...
에너지 레벨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천태만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에너지라는 표현이 그나마 관념적 오류나 허상을 좀 줄일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보시라는 것도 그것에 대한 개념적 관념적 접근 보다는,
결국 에너지 상승 관련한 관념적 내용물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리고 깨달음 역시 에너지에 대한 보다 고질적 이해단계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21. 유전: 어차피 세상은 자기 입장에 따라서 자신의 수준만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약하다고 여겨지면 패거리나 떼로 상대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일종의 연합입니다. 일불승에 해당되는 자등명, 자신의 십자가에 해당되는 양심을 우선 증득 해서 홀로서기가 가능해야 합니다. 양심도 수준별로 천태만상의 양심이 모두 다릅니다. 마을 이장의 양심이 있고 도지사의 양심이 있고 우주를 모두 포용해야 하는 양심도 있습니다. 우주적 양심에 도달하면 또 다른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권능도 따라 옵니다. 새로운 창조주가 되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 된다고 말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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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0. 위(어제 1차 질문과 답변에서) 유전님의 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생이 설총이라는 견해는,
깨달은 사람으로서 어떤 유전님의, 말하자면 깨달은 특권의 특별한 인지체계 또는 상위 차원에서 오는 지혜로서(일반인들에게는 소통되지 않는) 알게 된 진실인지요?
아니면 깨달은 사람으로서 와는 무관하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과 인지체계에서 오는, 일반인들이 함께 소통하는 추측성 확신, 또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과 추론 혹은 직관에 의한 확신인지요?
유전님의 주장을 믿고 안 믿고의 차원이 아니라, 유전님의 앎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앎의 바탕이 되는 세계에 대한 특별성, 보편성, 합리성 그리고 그와 같은 판단이 도출되는 과정의 배경과 근원에 대해서 순수하게(물론 관념적으로 표현하는 한계가 있겠지만) 묻고 싶습니다.
10. 유전: 석존의 두번에 걸친 후생에 대한 답변(오늘 14번에 해당)과 함께 위 글 전체의 내용을 기준으로 함께 판단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