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공간(時空間)과 기세계(氣世界)
3. 파동(波動)과 정보(情報)
4. 파동(波動)의 형태(形態)
5. 파동(波動)의 질(質)
6. 파동(波動)의 질서장(秩序場)
7. 파동(波動)의 감각(感覺)
8. 파동(波動)의 교감(交感)
9. 파동(波動)의 힘
10. 파동감각(波動感覺)의 훈련(訓練)
11. 파동(波動)의 이용(利用)
12. 기공(氣功)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발전(發展)
1. 의심할 만한 世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견고하고 확실한 실체로서 인식되고 있다. 물리법칙이라고 말하는 세계의 규칙들은 변덕을 부림으로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거나 불가측성으로 우리에게 혼란을 주지도 않는다. 안정되고 변하지 않는 확고한 법칙에 따라 유지되며 우리가 오감으로서 언제나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세인의 비웃음을 살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은 일반인의 예상과는 달리 오랜 역사 동안 우리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때로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했고, 때로는 종교적인 질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과학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이 세계의 실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행되는 물음이 바로 '세계는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만약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의 실체를 밝히고 규명하는 일은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그 법칙들을 벗어난 현상이나 인간의 능력은 속임수 또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 과학의 영역 밖으로 유배시키고 잊어버리거나 전능한 초월자가 개입한 기적으로서 그것을 경배하거나의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난 세기에 극도의 진보를 보인 양자역학의 업적에 의해서 우리는 '이 세계가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는 무엇'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세계의 실체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희미하고 애매하며 혼란스러운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과학자들의 뇌리를 사로잡게 되었고, '세계는 자존(自存)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依存)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물질적 세계는 그 자체로서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세계를 인식하는 의식(意識)이 있어야만이 존재할 수 있는 상대적이고 의존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많이 쌓여 가는 증거에 의해 굳어져가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아원자 입자들은 파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정 위치에 하나의 점으로 나타나는 입자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형태와 크기를 갖지 않고 시공간 속에 구름처럼 존재하는 파동으로서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의 실체는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입자에 더 가까운가, 파동에 더 가까운가? 이 질문의 답이 전자라면 세계는 입자적인 것에 가까울 것이고 후자의 것이라면 세계는 파동적인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머지 하나의 대답은 어느 쪽에 더 가깝다 말할 수 없으며 동시에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입자적인 것임과 동시에 파동적인 것이 되겠다. 어느 대답이 사실에 가까운 것일 지를 살펴보자.
물질이 전자라는 것만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전자가 뿌연 안개를 만들고 있는 공간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은 또 쿼크라 이름 붙인 여러 개의 초미립자들이 모인 것으로 보이는데 원자 이하의 존재들은 모두 전자와 같이 불확실한 존재들이다. 원자핵은 10의 22승 헤르츠의 엄청난 속도로 진동하고 있어서 정지된 상태의 그놈의 실체를 확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핵이 전자와 결합해서 비로소 원자라는 확인 가능한 물질이 되면 진동수가 10의 15승 헤르츠로 떨어진다. 원자들이 몇 개 결합하여 만들어진 분자는 10의 9승 헤르츠 정도로 진동수가 낮아진다. 분자들이 뭉쳐서 이루어진 세포의 단계가 되어야 10의 3승 헤르츠가 되어 감각이 반응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세포들이 모여서 구성된 인체의 진동수는 6.8에서 7.5헤르츠 사이가 된다. 이처럼 물질의 구성 질료들이 보다 많이, 보다 복잡하게, 보다 크게 결합될수록 전체적인 진동은 낮아지고 점점 더 안정된 존재로 변해간다. 다시 말하면 떨림 현상이 낮아지면서 우리의 인식체계가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견고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분자들이 결합하면 할수록 개개 분자들의 파동이 합해지면서 변조를 일으키고 이 변조된 파동이 물체의 파동이 된다.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하면 이 3개의 입자들이 갖고있는 고유한 파동들이 간섭현상을 일으킨 결과 하나의 변조된 파동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물분자의 파동이다. 물분자의 파동이 바로 물의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파동을 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물질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물분자의 파동을 내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분자 차원의 파동은 워낙 미약하고 진동이 초당 1억 회를 넘는 것이어서 그런 파동을 감지해서 구별해낼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다.
분자의 크기를 짐작해보기 위해서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한 컵의 바닷물을 떠서 전 세계의 바닷물에 골고루 섞은 다음에 다시 한 컵의 물을 떴을 때 그 컵에 처음 떴을 때의 컵에 들어있던 분자가 들어있는 개수는 약 7백개가 된다. 분자라는 것이 그토록 작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물질의 파동이 얼마나 미약한 것이겠는지, 왜 우리가 그 파동을 감지하기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물의 분자가 수없이 결합해서 부피가 커지면 마침내 우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상태의 물이 되는 것이다. 파동의 성격이 동일한 물이 많이 모이게 되면 그때의 파장은 변하지 않는 대신에 에너지가 높아져서 진폭만 커지게 된다. 한 그릇의 물이나 한 동이의 물이 내는 파동의 주파수는 같지만 진폭이 커지므로 파장의 힘이 세어진다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거대한 바다가 내는 파동은 대단히 크다. 하지만 물 속에 다른 물질들이 섞이게 되면 섞인 물질들의 파동과 물의 파동이 간섭현상을 일으켜 변조된 파동을 만들어내므로 물의 파동이 변화하게 된다. 그래서 바닷물의 파동은 순수한 물의 파동과 소금의 파동이 섞여서 변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우물물과 바닷물의 파동은 다른 것이고, 우물물이라 하더라도 성분이 다르므로 여러 우물의 물이 내는 파동은 각기 다른 것이 된다. 2. 時空間과 氣世界
- 의식은 세계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절대적인 전제조건 하에서 인식함으로 시공간은 인식의 절대불변의 척도가 되고 있다. 시공간의 개념이 없이는 의식은 어떠한 세계도 상상해낼 수가 없다. 물리적인 세계란 바로 시공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기 실에 있어서는 의식이 창조해낸 습관의 결과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과학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공간은 아인시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밝힌 빛의 절대적 속도에 구속을 받는다. 광속을 초과하는 속도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시공간이다. 그러나 빛이 달릴 수 있는 빛의 매질로서의 공간은 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점차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측정하는 공간적인 거리라는 것은 우주의 팽창이 가져온 산물이 아니라 빛에 의해 대상을 인식하는 의식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새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점으로 보이던 것이 망원경의 배율을 조절하면 점차로 확대되어 크게 보일 것이다. 아주 고 배율의 망원경이라고 가정하면 나중에는 바로 눈앞에 새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커진 것은 새가 아니라 망원경에 잡힌 새의 상이다. 새는 망원경의 배율에 관계없이 일정한 크기이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눈에 자기가 커지고 있던 말던 새는 전혀 관계치 않는다. 의식이 그것을 감지하기 전에는 우주는 거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광속이라는 것은 빛이라는 것을 정보로서 인식하는 의식에 소용이 되는 것이며 의식 이전의 우주는 광속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모든 물질은 의식이 가늠하는 공간적인 거리에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서로 간의 정보를 주고 받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환산되는 개념이며 파동적인 세계에서는 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없으므로 거리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가 빅뱅 이전의 한 점(절대거리 이내에 뭉쳐있는 상태)으로 뭉쳐있을 때 모든 것들이 정보를 주고받는데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전체가 하나였으므로 당시에도 파동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의 파동이었을 것이다. 만물의 파동이 하나로 변조된 유일한 형태의 파동이 있었을 것이다. 만물이 대폭발로 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을 때도 파동은 찢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시공간적 개념으로 볼 때 무한하게 끈이 늘어진 것이다. 아무리 늘어나도 그것은 결국 하나이다. 파동의 측면에서 볼 때 우주는 팽창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대로이다. 모든 은하수 같은 천체의 물질들이 극히 좁은 거리에 몰려들게 되면 모든 물질의 파동이 전부 하나로 통합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파동이 만나서 변조될 때는 간섭무늬가 만들어지고 이 간섭무늬는 원래의 파동에 대한 정보를 간직하게 된다는 것은 홀로그램의 원리가 밝혀지면서 입증된 것이다. 만물의 파동이 최종적으로 하나의 파동으로 변해서 더 이상 어떠한 변조도 진행되지 않게 되면 그때가 우주의 소멸상태 또는 수축의 최종단계가 될 것이다. 우주알이라고 부르는 이 특이점의 한가지 성격은 더 이상 파동의 변조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때 존재하는 유일한 한가지 파동은 사실 존재라고 하기는 어려운 무엇일 것이다. 초기에는 이 파동들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고 간섭무늬들 역시 하나인 전체에 동시적으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공간이 확대됨에 따라 빛은 오래도록 달려야 하는 고단한 신세가 되었지만 파동은 그 공간과 함께 커졌으므로 파동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크기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서 태아가 성장함에 따라 모체의 자궁이 같이 커짐으로 태아가 느끼는 자궁의 크기는 언제나 똑같이 여겨지는 것과 같다. 자궁은 팽창하는 우주의 공간이며 파동은 태아이다. 우주가 아무리 커져도 파동이 같이 커짐으로서 우주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입자들 사이의 파동의 끈은 시공간의 크기에 따라 늘어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그 끈의 길이는 언제나 동일하다. 이 파동의 끈이 끊어지거나 찢어지지 않는 이상 모든 만물은 여전히 하나의 통합체인 것이다. 우주의 팽창은 '물리적으로는 시공간의 확대'이지만 파동의 측면에서는 '다양성의 증가'이다. 하나였던 파동에서 수없이 많은 파동이 생겨났으며 이 파동들이 서로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간섭무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차원의 많은 수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의 증가는 거리의 증가와는 관계없이 존재한다. 시공간과 함께 늘어난 파동의 길이로 인해서 파동적 세계라는 또 하나의 실체는 언제나 통합성을 유지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며 이것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세계의 한 모습일 것으로 보인다.
- 시공간은 입자적으로 드러난 세계이며 입자적인 세계의 특성은 개별성과 독립성이다. 각각의 입자는 다른 입자들과 독립되어 있는 존재이고 저마다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개체가 서로 상대를 인식하는 데는 반드시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의 교환을 통해 상대를 인식하는 세계가 바로 물리적인 세계이며 그 이름이 시공간이다.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대상은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영혼이나 귀신이라 이름하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것들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아닌 때문이다. 수억 광년 너머에 있는 우주 저편의 별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하나로 통합되어져 있다함은 파동의 끈에 의해 모든 정보의 전달이 전 우주적으로 즉시에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서로간의 정보의 전달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두 존재는 하나이다) 전일성이란 함은 전체와 부분이 같다는 의미이다. 우주의 어떤 작은 부분도 우주의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미립자가 우주 전체와 같다는 개념은 이미 2천5백년 전에 불교에서 나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찰나는 영원과 같다는 것은 불타의 가르침이었다. 기의 개념으로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하나의 미립자조차도 파동에 의해 전 우주와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미립자 하나에도 우주 전체에 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전일성은 입자적 세계인 시공간 내에서도 구현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홀로그램 입체 영상의 촬영과 재현이다. 원래 같은 광원에서 같은 순간 만들어 진 한 줄기의 레이저 광선이었기 때문에 B와 C는 동일한 파동의 광선이지만 건판 앞에서 만나기 직전에 C광선이 피사체에 반사된 사건 때문에 B와 C는 파동이 다른 광선이 되어 만나게 된다. 건판에 기록된 간섭 무늬는 C광선이 만났던 피사체의 형상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A광선과 동일한 파장의 레이저 광선을 동일한 각도에서 비추면 피사체가 있던 동일한 각도와 거리의 위치에 피사체의 형상이 입체적으로 재현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소용돌이치는 우주 간섭 무늬의 거대한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물을 한 방울만 마신다 해도 우리는 우주 전체의 정보를 마신 셈이 된다. 우리의 의식 파동이 우주 간섭무늬의 한 점과 이어져 있기만 하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우주의 정보와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여전히 우주와 우리는 하나의 통합체이며 내가 바로 우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3. 波動과 情報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외부세계의 정보를 의식이 해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의식이 해석할 수 있는 정보는 감각기관이 수용하는 다섯 가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 외의 형태는 의식에 의한 해석이 불가능함으로 그것은 정보가 아닌 것이다. 시각인식의 범위와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꿀벌이나 새보다 떨어진다. 소리 정보도 일정한 주파수 영역 이내의 것만 해석이 가능하다. 소리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박쥐나 돌고래가 훨씬 유능하다. 후각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은 개가 사람보다 1백 배나 더 뛰어나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인간은 매우 한정된 정보만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이런 오감의 정보는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것이어서 종합하여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 역시 개체별로 많은 편차를 보인다. 앞서 설명한 홀로그램 촬영의 예를 든다면 그런 방식으로 저장할 수 있는 피사체의 정보는 형상뿐이다. 사과를 홀로그램으로 촬영했다가 재현을 시켜도 본래의 피사체인 사과의 냄새는 복원되지 않고 그것의 맛도 재현해낼 수 없다. 만졌을 때의 촉감도 당연히 사라지고 없게 된다. 만약에 냄새와 맛과 질감의 정보를 전부 홀로그램적으로 저장할 수 있고 그것을 재현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과를 건판에 정보로서 기록했다가 언제라도 필요하면 그것을 복원해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감이 인식하는 모든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저장했다해도 그것의 재현이 원래 사과의 복원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오감의 정보가 사과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의 실체는 사과의 파동이며 그것을 꼭 그대로 저장하고 복원했을 때에만 우리는 물질을 정보적으로 저장했다가 다시 복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물질의 파동을 파동적인 세계에서 입자적인 세계로 재현해내는 것의 가능성을 일부 초능력자들이 보여주는 물질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어떤 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소유자는 드물지 않다. 마술이나 눈속임으로 밝혀진 예도 많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사례로서 학계에 보고된 것도 상당수 있다. 어떻게 사람의 신체에서 다이아몬드가 자라고 빈손에서 금반지가 만들어지는가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은 파동의 저장과 복원이라는 완전 홀로그램(Perfect Hologram)의 구현으로 풀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의 필름에서 수많은 사진들을 현상해 내고 홀로그램 건판 하나로 몇 번이라도 입체상을 재현할 수 있듯이 한 물체의 파동을 그대로 보관했다가 다시 시공간 속에서 복원할 수 있으면 우리는 이 세계로부터 모든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초능력자들이 물질화의 시범을 보일 때마다 이 세계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어딘가에서 잃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우주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니까. 다섯 가지 형태의 정보는 파동적인 측면에서 유사품을 만들어내기가 쉬워서 아주 쉽게 우리의 의식을 속일 수 있다. 게의 육질에서 나는 맛과 냄새와 흡사한 파동의 향료를 게살의 질감과 비슷한 파동을 내는 단백질과 섞어서 우리는 가짜 게맛살을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 우리의 감각은 그것을 진짜 게의 살과 구별하지 못하고 게의 살을 먹고 있는 것처럼 속게 된다. 오감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파동은 그만큼 단순하고 부분적인 것이다. 육감이란 어떤 대상의 파동이 우리의 파동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를 우리의 무의식이 해석한 것을 의식으로 넘겨준 결과이다. 이 정보는 대개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이런 능력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고 오감보다 더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육감은 미래에 닥칠 일을 느끼게 해주는 예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전생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에 재현해내기도 하며, 꿈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인간이 인지와 문명의 이기에 의존을 하면 할수록 여섯 번째의 감각기능은 퇴화되고 약해져서 이제는 이런 능력을 신비스럽게 보고 초능력으로 여기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이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일상적인 것으로 되찾을 수 있다. 만물의 파동이 바로 기(氣)이고 기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감(氣感)이라고 한다. 기감은 수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감에만 의지하지 않고 대상의 기를 직접 감각으로 받아들여 인식하는 또 하나의 감각기관을 가질 수 있다. 이 여섯 번째의 감각은 오감보다 탁월하며 오감이 결코 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파동을 다른 파동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하나의 파동을 우리가 느낀다고 할 때 그것이 사과의 것인지 귤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사람의 파동이라면 이 사람의 것인지 저 사람의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파동 자체가 정보로서 해석될 때 어떤 형태를 띠는지를 알아야 한다. 4. 波動의 形態
-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만물은 각자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다. 물은 물의 파동이 있고, 금은 금대로, 구리는 구리대로, 옥은 옥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자신의 고유한 파동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체이건 비생명체이건, 어류이건, 파충류이건, 금이던, 구리이던 간에 그것의 기운이 5행의 기운 중 어떤 것에 속하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그 중의 두 가지나 세 가지 특히 사람과 같은 경우처럼 다섯 가지 기운이 모두 배합된 물질이라고 판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행을 반드시 한자(漢字)의 뜻대로 나무, 불, 흙, 금속, 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물질 파동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형태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나무라고 해서 모두 목기(木氣)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는 파동이 화기(火氣)의 형태이고 플라타나스는 토기(土氣) 성격의 파동이다. 마찬가지로 동물 중에도 상어는 목기(木氣)의 파동을 가지고 있고 말은 화기(火氣)의 파동을 내는 동물이다. 어떻게 물질의 파동이 다섯 가지의 형태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그것은 오랜 옛날부터 기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며 이 체험적인 결과가 음양오행설과 결합되면서 하나의 이론으로 체계화되었던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음양오행의 이론과 기공수련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후반부에서 상세히 논할 예정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만 물질 파동인 기의 형태가 다섯 가지로 파악된 것은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한 체험에 뒷받침되고 상당히 정교하고 치밀한 학문적 체계의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그 체계는 동양의 의학과 문화 전반을 지배한 것이었음을 밝히는데 그친다. 또한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많은 선인들이 직접적인 체험으로서 확인해온 사실은 과학적인 검증에 못지 않게 신뢰할 만한 근거로서 충분한 조건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의 기공수련 단계를 거친 사람은 누구나 이 다섯 가지 형태의 기를 감각으로 구분해서 느낄 수 있다. 단지 아직까지도 인간의 과학기술은 이 물질의 파동을 기계적으로 검출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갖지 못하여 인간의 의식과 감각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의식과 감각을 통하여 이 세상의 물질들이 발산하는 기를 성격에 따라 구분해 들어가면 앞서 말한 오행의 기운을 한 단계 더 세분할 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섯 가지의 오행 기운은 각각이 음과 양의 기운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즉 같은 목기인데도 양의 목기와 음의 목기로 나뉘고 화기도 양의 화기와 음의 화기로 나뉜다는 것이다. 설명의 편의상 나뉜다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오행의 기운을 조화롭게 해주는 두 가지의 작용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오행으로 구분되는 물질 파동은 그것의 배합에 따라 물질의 고유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들 간의 질서를 낳고 있다. 이 질서의 법칙을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오행상생(五行相生)과 오행상극(五行相剋)의 이론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뒷장에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질 것이다. 이 장에서는 물질 파동인 기의 형태상 분류를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음양오행의 질서와 조화의 법칙은 뒤에서 다루기로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던 음양의 기운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날 때 여자에 대해서 남자가 내는 파동이 양기이며, 남자에 대해서 여자가 내는 기운이 음기이다. 이것은 남녀라는 양성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질서장의 소산이지 남자와 여자의 인체라는 물질이 갖는 고유의 파동인 오행기운과는 다른 것이다. 질서의 개념에서 볼 때 오행간에는 서로간에 상하(上下)와 고저(高低), 안과 밖이 없다. 기운들은 서로가 물고 물리는 상생과 상극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상하와 고저의 그리고 안과 밖의 조화를 가져오는 것이 음과 양이다. 부모와 자식은 개별적인 인격체로서의 관계는 오행적인 질서장을 이루어서 서로 상생하거나 상극하거나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오행이 상생 관계이면 둘의 사이가 좋고 상극관계이면 사이가 좋지 않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부모와 자식관계라는 질서가 생기는 순간 조화를 맞추는 음양의 기운이 생겨난다. 하늘이 높아서 양이고 땅이 낮아서 음인 것이 아니라 하늘은 땅에 대해서 양이고 땅은 하늘에 대하여 음이다. 상대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양이고 자식은 부모에 대하여 음이다. 여자는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음이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부모로서 양이 된다. 아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 여자의 기운은 그 아들에 대하여 양의 기운이며 젖을 빨고 있는 아들의 기운은 어머니에 대하여 음의 기운을 나타낸다. 오행의 질서는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기운으로 존재하지만 음양의 조화는 질서장내에서 지극히 상대적으로 드러나는 기운이다. 같은 남자들만의 질서장이 있다면 그 내에서 남자들은 양과 음으로 나뉘어 조화를 만들어낸다. 만약에 모두 똑같은 양기만을 고집하는 남자들의 집단이 있다면 지극히 분위기가 험악하고 살벌하게 될 것이고 음기를 갖는 여자들끼리만 모이면 질시와 반목이 거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연에서도 이러한 기운은 감각으로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쉽게 느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몸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계의 충만한 기운을 느껴왔으며 선천적이거나 또는 수련을 통해서 기감이 발달했던 사람들은 이런 기운의 성격과 형태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 능력에 의해 우리 자신의 몸을 보았을 때 오행의 기운과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의 기운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몸의 여러 장기들이 개별적으로는 기운이 충실한데도 몸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기운이 부분 부분에서 정체되어 머물고 있으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알았다. 이 때에 이 기운을 강화시키면 몸의 기운들이 잘 순환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운이 만들어지는 신체의 부위를 조사해 보니 한 군데가 아니라 세 군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통을 삼등분 했을 때 윗 부분과 위장 근처의 가운데 그리고 배꼽 아래의 세 군데에서 이 기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의학에서는 이런 기운을 만들어내는 세 곳을 하나의 장기(臟器)로 취급하여 각각 상초(上焦), 중초(中焦), 하초(下焦)라 하였고 이것을 하나로 말할 때는 삼초(三焦)라고 불렀다. 삼초는 무형(無形)의 가상적인 장기이다. 그리고 이 삼초에서 나와서 순환을 돕는 기운을 삼초의 기운이라 한다. 삼초기는 인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도 존재하며 인체의 삼초가 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물체가 있다. 지구상의 생명체에 삼초의 기운을 가장 강하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 태양계 행성 중의 해왕성이다.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도 삼초 기운을 생산하는 지점이 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한라산이다. 인체에서 삼초 기운은 여러 장부의 기 순환을 돕는 한편 배설을 순조롭게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제주도 사람들 중에 변비 환자가 많지 않은 것은 한라산의 기운이 삼초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물질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기운의 형태가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가 있으며 이 기운들은 서로 상생하고 상극해서 자연계의 질서를 만든다는 것과 이 질서에 조화를 부여하는 음양의 기운이 있고 순환을 도와주는 삼초의 기운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기운의 형태는 이것이 다인가? 하나가 더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오행의 기운을 보강해주는 기운이다. 삼초의 기운이 오행에 작용해서 그것의 흐름을 도와준다면 이 기운은 오행에 힘을 보태주고 약함을 보강하여 강고하게 만드는 기운이다. 음양이 하나의 질서장에 유연성을 부여한다면 이 기운은 질서장을 튼튼하고 강하게 만든다. 이 기운이 특히 강하게 발산되는 것이 생명체의 뼈이다. 그래서 이 기운을 우리는 골기(骨氣)라고 하는데 반드시 생명체의 뼈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뼈의 기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 잘못된 개념이다. 오행의 힘을 강화시키는 기운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인체에서 뼈가 담당하는 기능을 생각해보면 왜 골기가 뼈에서 느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체의 뼈는 오행의 기운으로 질서를 이루고 음양으로 조화된 장부를 지탱하고 그것들에 힘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기능적 역할에 비추어볼 때 뼈가 내는 파동은 골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빛, 소리, 맛, 냄새, 촉감의 다섯 가지 파동은 다시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를 가지며 이 다섯 가지 구성 요소는 모두 오행 중 한가지에 해당하는 형태의 파동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어떤 물체의 색깔과 소리와 맛과 냄새와 형상은 상당한 관련성을 갖는다. 맛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중에 단맛은 오행상 토형(土形)의 파동을 낸다. 그런데 색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토형의 파동을 갖는 것은 노란 색이다. 그러므로 단맛을 내는 물질은 노란 색을 띠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물질 중 가장 단맛의 대표적인 물질인 설탕은 흰색이다. 흰색은 파동의 형태로 볼 때 금형(金形)에 속한다. 색이 금에 속하는 설탕의 맛은 왜 토에 속하는 단맛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설탕은 화학적인 결정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설탕을 불에 녹여서 굳히면 사탕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이 흔히 국자로 만드는 것을 보라. 녹인 다음의 사탕의 색은 노란 색을 띤다. 소금은 짠맛의 대표적인 물질이다. 맛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중 짠맛은 수형(水形)의 파동이다. 그런데 소금의 색깔은 희다. 이것도 같은 이치로 설명이 가능하다. 소금으로 만든 간장은 익힐수록 시커먼 색이 된다. 검은 색이 바로 수(水)에 속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빛, 소리, 맛, 냄새, 촉감은 한 물질의 파동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물질을 오행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온 것처럼 자연계의 모든 물질이 파동으로서 자기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파동을 감지해서 그 형태와 성격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대상이 어떤 물질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작업과 상당히 유사한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군사용 함선의 일종인 잠수함에서 행해진다. 알다시피 잠수함은 물밑을 다니는 배다. 바다 속 깊이에는 빛도 들어오지 않고 전파도 침투하지 않으므로 잠수함은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고 레이더 같은 장비를 사용할 수도 없으며 전파에 의한 교신도 불가능하다. 즉 잠수함은 바다 밑에서 완전한 장님이다. 잠수함이 자기 주위를 살피고 어떤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물 속에서 전달율이 월등하게 높아지는 음파뿐이다. 그러니까 소리로서 모든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소리는 대단히 확실한 파동이어서 잠수함이 소리 파동을 이용해서 상대를 식별하는 방식은 우리가 기감으로서 물질을 판별하는 방법과 완전히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기공 수련을 통해서 물질의 파동을 감지하는 능력을 배가한 후에 기로서 세계와 대면할 때에 우리는 마치 잠수함과 같은 존재가 된다. 형사가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을 채취했더라도 전국민의 지문이 미리 수집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의 지문인지 대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잠수함이 이전에는 결코 수신해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음파를 수신했을 때는 그것의 발신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물위로 올라가서 잠망경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평시의 잠수함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쉴새없이 바다 속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소리의 발신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기록해 놓는 일이다. 한가지 우리가 잠수함보다 유리한 점은 특정 물질의 파동을 지정해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파동적 세계의 전일성이란 특성으로 인해서 우리는 우주 전체에 대한 정보와 닿아있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그것을 불러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파동으로서 즉시 우리에게 느껴진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연상하면서 그 파동을 느끼면 그때 감각에 올라오는 파동은 바로 북두칠성의 것이다. 그것도 일곱 개의 별 중에 몇 번째의 것만을 지정해서 느껴볼 수가 있다. 우리의 의식은 파동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의 모든 것과 즉시적인 교감이 가능하다. 때문에 언어로서 전할 수 있는 범주는 확인된 물질의 파형이 오행상 어느 것에 속하는 것인가에 그친다. 그 이상의 전달 방법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언젠가의 미래에 음파분석기처럼 인간의 의식과 감각을 대신해서 물질의 파동을 수신하고 분석하고 기록으로 보존하고 전할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도 요원한 미래의 일일 것으로 생각된다.
5. 波動의 質
- 물질 파동의 형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홉 가지 형태의 것이 있다. 이 파동의 형태라는 것은 뇌파나 음파 또는 심전도와 같은 진동파를 측정하여 그림으로 그릴 때 파형(波形)으로 나타나는 성질이다. 오행과 삼초, 골기 등의 파동은 같은 파형에 속하는 파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파형이라도 주파수와 진폭이 어떠하냐에 따라 파동의 정보는 또 다른 차원으로 나눌 수가 있다. 감각으로 기 파동을 측정해보면 사물의 파동은 형태뿐만이 아니라 질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파동의 질적 차이는 바로 주파수와 진폭의 차이인 것으로 보인다.
파동을 질에 따라 고급한 파동과 저급한 파동으로 나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좀 어려운 문제이다. 고급과 저급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구별심이지 우주 자연의 본래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인식의 체계 중에서 상하귀천(上下貴賤)의 개념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는 습관이 있어서 파동에 대해서도 그런 방식의 분류가 된다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 파동의 상하귀천은 순전히 인간의 사념체계에 맞추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분류의 기준을 세워 보았다. 첫째, 육신적인 파동과 영적인 파동으로 나눌 때 영적인 파동을 고차원의 것으로 본다. 이런 분류에 따라 파동을 감각으로 구분해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고차원의 파동일수록 진폭이 낮고 주파수가 높은 성질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행상 같은 파동이라도 광물의 파동이 식물의 것보다, 식물의 파동이 동물의 것보다 주파수가 낮고 진폭이 크다는 것이다. 이 말은 보다 거칠고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파동의 강약은 고유한 진폭의 차이도 있지만 질량과도 함수관계가 있다. 한 그루의 전나무보다 전나무 숲이 내는 파동이 훨씬 강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행성과 같은 거대 질량체는 당연히 대단히 강한 파동체이다. 그러나 파동에 있어서 진폭의 크기보다는 주파수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고차원의 파동일수록 주파수가 높아서 보다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의 파동으로 감지가 된다. 태양계에 속하는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이와 같은 태양계의 기운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정이 거칠고 강한 것인 지도 모른다. 인류가 지구라는 혹성 위에 살면서 전쟁과 학살 등 여러 잔혹한 일들을 저지르는 이유가 태양계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도솔천이나 제석천 또는 기독교의 천국이 무형무색(無形無色)의 영적인 세계가 아니라 입자적으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계라면 그런 세계의 기운은 태양계와는 달리 포근하고 은은한 기운의 장소가 아닌가 짐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먼 외계의 기운을 몸으로 감지해 볼 때에 그런 기운의 천체들은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격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완성되어져갈수록 파동은 더욱 잔잔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파동의 형태적으로 진폭의 높낮이가 큰 편차를 보이지 않는 평탄한 것이 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도덕경》의 한 구절이 기 파동의 세계에서처럼 들어맞는 것도 없다. 기는 부드럽고 섬세할수록 거칠고 강한 파동을 잠재운다. 주파수가 낮고 진폭만 큰 파동은 조밀한 주파수를 가진 약한 파동의 층을 뚫지 못하고 파동이 섞이는 순간 고유성을 잃게 된다. 그러나 그 역일 때는 고주파의 파동은 저주파의 층을 침투하면서도 자기 성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거칠고 강한 기운의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면 이런 기운은 자가증폭(自家增幅)되어 집단 전체가 갈수록 흉포해진다. 그러나 부드럽고 은은한 기운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이때는 집단 전체가 평화스럽고 화목한 것으로 변해간다. 군중심리나 집단무의식은 바로 모여있는 사람들의 파동이 공조되어 같은 성격의 변조파로 바뀌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평소에는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 군대라는 집단에 속하게 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달라지는 것은 바로 파동의 단일화 현상 때문이다. 사람의 개성은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의 개성과 닮아가게 된다. 오랫동안 같이 산 부부의 경우 서로 닮게되는 것은 서로의 파동이 오랫동안 공조하여 비슷한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때 보다 고차원의 파동을 가진 쪽으로 저차원 파동의 배우자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난폭하고 거친 남자가 부드럽고 온화한 여자 쪽으로 따라오지 그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닮아서 난폭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강유(剛柔)로서 볼 때에 여자의 파동이 남자의 것보다 우성이다. 인격적 수양의 정도에 따라서나 배우자간의 상대성에 의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많다. 친구나 배우자의 선택은 기의 측면에서 보면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성격의 파동을 가진 사람들과 늘 함께 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암이나 당뇨, 고혈압, 또는 정도가 심한 정신병과 같은 난치도가 심할수록 필요한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기운이 된다. 북두칠성 레벨의 기운에는 웬만한 질병은 고칠 수 있는 힘이 있다. 만약에 더욱 고차원의 순수한 우주 파동의 힘이라고 할 때는 한 생명의 이상을 바로잡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런 차원의 기운이 만들어내는 많은 초능력들과 신비현상의 사례는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태양계나 칠성보다 그 근원적인 우주의 기운은 쉽게 감지하고 교감할 수 없을 만큼 극미한 진동감의 은은한 파동이지만 그런 차원으로 우리가 접근해갈수록 우주적 힘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마침내 우리가 의식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잔잔한 우주 파동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우주의 본 자리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불교의 공(空)이고 노자가 말하는 무(無)이고 도교의 허(虛)가 있는 자리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의 파동은 감지할 수 없는 것이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6. 波動의 秩序場
- 만물의 속성은 파동으로 드러나고 파동은 질서장을 형성하여 세계의 실체를 이룬다. 이와 같은 질서장은 극미한 입자의 세계에서부터 광활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파동적 세계에서 우리는 가장 작은 부분도 전체와 같다는 전일성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자연의 모든 질서장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입자의 세계와 같은 미시적인 질서장이나 태양계와 같은 거대한 질서장은 본질에서 거의 다르지 않은 것이다.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아홉 개의 행성과 지구 자체의 기운이 오행의 빈틈없는 질서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있게 된 조건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태양과의 적절한 거리에서 맞추어진 기온과 물의 존재, 바닷물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달의 인력, 비스듬한 자전축에 의한 계절의 변화, 대기를 붙잡아 두기에 꼭 맞는 적당한 지구의 크기와 인력 등, 많은 것들을 나열할 수가 있다. 그러나 파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는 오행의 배합이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진 질서장이라는 것에서 생명의 발원 조건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감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아홉 가지 파동의 기운이 마치 지구의 생명체를 위하여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지구의 생명체에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체 역시 이러한 태양계의 질서장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그것을 그림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체의 장기들은 5장(五臟)과 5부(五腑)로서 오행의 기운을 각각 이루고 있다. 이중에서 5장은 음의 오행에 해당하고 5부는 양의 오행에 해당되어 서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체의 세 곳에는 삼초가 있어서 이런 5장5부의 기운이 잘 순환될 수 있도록 하며 뼈는 각 장부에 골기를 보강하여 질서를 튼튼하게 유지시킨다. 이러한 신체의 각부분은 그대로 앞에서 살펴본 태양계의 각 행성의 기운과 연계되어 있다. 즉 화기(火氣)를 내는 심장과 소장은 화성(火星)의 기운에서 영향을 받게되고 금기의 장기인 폐와 대장은 금성(金星)의 기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자기의 남북극 기운은 태양과 달의 음양을 보조해서 신체의 앞면과 뒷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지구의 일부분도 떼어놓으면 그것 자체로서 오행의 질서장을 이룬다. 예를 들어 한반도를 오행적 질서장으로 그려내면 다음과 같이 된다.
영남 지방은 금기가 강한 땅이며 호남 지방은 수기가 대표적인 기운이다. 충청도 지방은 토기가 가장 승한 지역이며 평안도 지방은 화기의 땅이다. 강원도의 기운은 목기이고 함경도 지방은 골기이며 제주도는 삼초 기운의 땅이다.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도 일대는 아홉 가지 파동의 기운이 고루 섞여서 감지된다. 이런 지역적인 대표 기운은 지역별로 사람의 기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기의 땅인 영남 사람들은 금기가 관장하는 장부인 폐와 대장의 기운이 강하다. 그래서 영남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뱃심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의 힘을 사용하는 씨름 선수 중에 영남인이 많다. 반면에 수기로 대표되는 호남의 경우 수기의 기관인 신장과 방광의 기운이 좋으며 이것은 바로 학문적 두뇌에 필요한 힘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호남에 뛰어난 학자가 많으며 이치에 밝다. 신장의 기능이 뛰어난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경우가 바르다. 토기가 강한 충청도는 토기의 기관인 위장이 튼실하여 언제나 넉넉한 살림살이가 보장된 땅이다. 배가 부르면 사람이 느긋해지는 이치로 충청도 사람들은 언제나 여유가 있고 곳간이 넉넉하다. 화기가 충천한 평안도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고 화기의 기운은 인당(앞이마)으로 뻗치는 것이어서 그 힘으로 싸울 때 박치기를 한다. 강원도 사람들은 충실한 목기의 덕분에 간과 쓸개의 기운이 강해서 간이 크고 겁이 없으며 목기의 상징인 덕(德)이 있다. 함경도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뼈가 튼튼하며 생활력이 강하다. 기질상으로는 다소 난폭한 유목민적 기질이 있어서 북구 사람들과 닮은 점이 많다. 함경도는 한반도의 두개골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이 곳의 골기는 반도의 척추인 태백산맥을 따라 한반도의 남쪽 끝까지 이어지고 있다. 골기가 한반도를 관통해서 흐르는 태백산맥의 중간인 오대산은 인체에서 볼 때 사람의 명이 들고나는 문이라 해서 명문(命門)이라 말하는 척추의 중심부이다. 이 오대산의 기운이 한반도의 지기(地氣)를 대표한다. 오대산의 기운이 강해지면 국운도 같이 상승하는 관계를 갖는다. 필자의 감각으로 재어본 바로는 매년 오대산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으므로 21세기에 대한민국의 국운은 계속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생명계를 우주가 질서적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태양이라는 거대한 항성의 에너지는 엄청난 거리의 이격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생명체를 위협할 정도이다. 태양광선의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한 두터운 대기층과 전리층, 그리고 이온층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나 태양의 강대한 양기를 조그만 달의 음기만으로 보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지구의 음양 기운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북두칠성의 거대한 음기가 태양의 양기를 상쇄하는데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오행의 기운이라도 태양에 속한 오행성의 것은 양에 가까운 기운인데 반하여 북두칠성의 기운은 파동의 성격상으로는 같은 오행의 기운이라도 그것은 음의 성격을 가진다. 파동의 기운에 대한 보정만이 아니라 태양의 엄청난 열기에 대하여는 북극성의 냉기가 지구 한열(寒熱)의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생명계가 얼마나 치밀하고 정밀한 보호장치 속에 놓여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자연계의 질서장내에는 물질들의 파동이 서로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상생과 상극이라는 보완과 균형 그리고 견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물질은 오행의 한가지 형태에 속하는 파동체이며 이러한 물질이 여러 종류 결합된 물체는 그 중 가장 성분비가 높은 물질의 파동을 물성(物性)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내고 있다. 물론 이것은 파동을 감지하는 인간의 감각이 대상 물체에서 가장 강하게 발산되어 나오는 파동을 가지고 오행 중의 어는 것인가를 판별하기 때문이지 나머지 성격의 파동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표성을 갖는 물체의 파동이 바로 해당되는 오행의 성격을 물체에 부여한다. 파동으로서 볼 때 사물의 물성(物性)은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게 된다. 물체들이 하나의 질서장 내에 존재하게 되면 이러한 물성에 따라서 어떤 것끼리는 돕고 어떤 것끼리는 견제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기운이 질서장내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억제한다. 이것으로서 자연은 질서와 조화를 추구한다. 오행의 상생상극은 자연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법칙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물이 금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상념과 조금 안 맞는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오행을 인간의 관념 체계 속에서 쉽게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자연계의 다섯 가지 물질을 대입한 것이지 금기(金氣)라는 것이 금속(金屬)의 기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금속류의 파동이 대개 금기(金氣)의 파동과 유사한 것이고 물의 파동이 수기(水氣)의 파동과 같은 점도 있으나 나무의 파동이 반드시 목기(木氣)가 아닌 것처럼 오행을 기계적으로 자연계의 물질로서의 나무, 불, 흙, 금속, 물에 대입할 필요는 없다. 금기(金氣)를 띤 물질의 물성이 금속과 비슷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대부분이 지구의 형성기에 지구에 부딪힌 소행성들이 외계로부터 날라 온 것이고 지구 물질의 대부분을 이루는 소행성들의 주성분이 철이라는 지구과학적 지식까지를 동원하면 금에서 수가 나온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그런 지식까지를 동원해서 오행학설을 세운 것으로 믿어지지는 않는다. 아무튼 물이 쇠에서 나온다는 추론이 다소 우리의 관념에 와 닿지 않더라도 크게 개의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오행간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에서 별 모양을 이루는 점선은 상극의 관계를 나타낸다. 상생은 어떤 기운이 어떤 기운으로부터 생겨난 것인지를 보여주고, 상극은 어떤 기운이 어떤 기운을 만나면 억제되고 제압이 되는 지를 보여준다. 목은 수에서 생기지만 금을 만나면 제압된다. 쇠가 나무보다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쇠로 된 도끼나 톱이 나무를 손쉽게 베어 넘어뜨리는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무는 쇠를 만나면 힘을 못쓰는 것이다. 그런데 쇠는 흙에서 생기며 흙의 기운으로부터는 도움을 받지만 불을 만나면 제압을 당한다. 불은 금속을 녹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의 기운은 목의 기운에는 이기지만 화의 기운에는 지게 되는 기운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금은 목을 극하고 화는 금을 극한다고 말한다. 또 불은 물을 만나면 꺼지게 됨으로 불(火)은 물로서 제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수극화(水克火)가 된다. 반면에 물길은 흙으로 쌓은 제방으로 막을 수 있고 흙은 물을 빨아들여 말리는 힘으로서 물의 힘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물을 막는 것은 흙이 되어 흙은 물의 상극이다. 토극수(土克水). 하지만 나무의 뿌리가 흙을 부수고 흙의 기운을 빨아올린다. 그래서 흙은 나무에 기운을 빼앗기는 신세가 됨으로 흙의 상극은 나무이다. 목극토(木克土). 그리고 진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따라야 한다. 질서가 깨지지 않으면서 변화하여 발전하기 위해 작용하는 질서장의 법칙이 바로 상생상극과 복승이다. 이 법칙은 의식주를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며 의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과 기술에도 빈틈없이 들어맞는 자연의 대법칙 중 으뜸이다. 옛 사람들은 집을 하나 지을 때도 대문과 본채, 사랑채 뒷간의 위치까지도 음양과 오행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였다. 대궐이나 절은 말할 것도 없고 망자(亡者)의 집인 음택(陰宅)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기쁘거나 슬픈 감정 또는 우울하거나 명랑한 기분 같은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쉬운데 마음이라는 것이야말로 5장6부의 기운이 어우러진 총체적인 결과물임을 알아야 한다. 오행에 따라 특정한 감정과 기분을 관장하는 장과 부의 기운을 달리함으로서 우리는 감정과 기분이라는 정신적 기능까지도 변화시킬 수가 있다. 성냄(怒)과 기쁨(喜), 고뇌(思)와 슬픔(悲) 그리고 두려움(恐)이라는 5정(五情)의 감정은 각각 오행의 하나에 속하게 되고 같은 오행의 장부가 내는 기운과 상태에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장부와 감정의 상태는 또한 전체 인체의 기운을 다섯 가지의 형태로 바꾸게 된다. 불안정(緩)과 흩어짐(散)과 고정됨(固)과 맺힘(緊)과 가라앉음(軟)의 다섯 가지 형태로 신체의 기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감정과 정신 등 비물질적인 개념들이 오행에 배속되는 것은 다음의 표와 같다. 7. 波動의 感覺
- 이제 앞에서 설명해온 오행과 음양, 삼초와 골기라는 파동들이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때에 과연 어떤 느낌으로 오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독자들 중에서는 과연 사람이 물질이 내는 파동을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 의심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파동을 느끼는 감각인 기감(氣感)이라는 것은 결코 초능력이 아니며 누구라도 약간의 수련과 훈련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새로 개발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치 않아서 무디어진 능력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공 수련이란 없는 칼을 대장간에서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있지만 녹슬고 무디어진 칼을 숫돌에 가는 과정이다. 나는 그런 칼이 없는데 하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칼이다. 다만 녹이 쓴 정도와 마모된 정도에는 차이가 있어서 다시 갈아서 날을 세우는데 드는 공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란 갈기만 하면 이 세상을 베고 우주를 두 동강낼 수 있는 마법의 신검(神劍)이다. 이 칼을 가는 방법과 벼리는 요령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지만 파동의 감각에 대한 설명에 꼭 필요한 것만 우선 설명을 조금 할까 한다. 인간의 손처럼 섬세하고 정밀한 센서는 없다. 맹인들의 손은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감각 기능이 발달되어 있어서 희미한 요철의 차이만으로도 글자를 읽어나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맹인들이야말로 기공 능력을 배양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는 제일 먼저 손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그 다음 기에 예민한 반응을 하는 곳은 바로 머리이다. 사실상 손보다는 머리가 우선일 수 있고 더욱 섬세하고 정밀한 파동의 감정은 머리가 더 우수하다. 그러나 머리는 생각하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고 의식이야말로 인간이 내는 파동 중 가장 강한 것이어서 자기 파동의 영향 때문에 외부 파동의 감각이 힘들어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머리로 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기 파동을 억제하고 약화시킬 수 있는 의식 훈련이 필요하다. 이게 사실 기공이라 말할 수 있다. 이 훈련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손보다 훨씬 정확한 파동감각을 머리로 느끼게 된다. 다음은 발이 되겠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우리는 손과 머리만으로도 파동의 세계와 교감하는데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목(木)의 기운은 오동나무 앞에서나 손바닥 위에 팥알이나 고구마를 올려놓고 느껴보면 알 수 있다. 목기가 관장하는 신체의 장부는 간(肝)과 담(膽)이고 오주(五主)로서는 근육의 기운이며 오근(五根) 중에서는 눈의 힘이다. 이 기운을 머리에서 느껴보면 목기는 인(仁)을 상징하는 기운이고 눈의 힘이기 때문에 눈이 있는 높이에서부터 위쪽으로 꽉 조이는 모자를 쓴 것처럼 두부 전체를 감고 올라가는 압박감으로 느껴진다. 목에 속하는 모든 물질의 파동은 전부 이와 같은 형태로 감각이 느껴진다. 간이 크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 성내거나 구애를 받지 않으며 대범한 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무의 잎과 풀들이 하나같이 푸른색인 것에서 보듯이 목이 색깔로 나타날 때는 청색이기 때문에 목형(木形)의 사람은 대개 안색이나 피부색이 파리하고 창백하다. 반면에 형상으로 볼 때는 나무는 장대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다가 어느 부분부터 가지가 사방으로 뻗으면서 잎이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목형인 사람은 대개 신체가 크고, 나무의 잎이 번성하는 지점이 사람으로 보면 어깨이기 때문에 어깨가 넓은 대신에 머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신체적인 특성을 보인다. 은행나무를 마주 보거나 당근이나 포도를 손위에 올렸을 때 느낄 수 있는 파동이 바로 화기의 파동이다. 화기는 심장(心臟)과 소장(小腸)을 다스리고 오주(五主)로는 피(血)를 관리하고 오근(五根)으로는 혀(舌)의 기운으로 나타난다. 혈맥을 담당하는 기운이기 때문에 화기를 받으면 온몸의 모세혈관이 전부 열리면서 혈액의 순환이 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 손바닥의 실핏줄들이 전부 열리면서 피가 흐르는 관계로 손바닥 전체에 가느다란 거미줄이 퍼져나가는 듯한 감을 받는다. 손이 저리는 감각이 아주 약하게 손바닥 전체에 느껴지는 것을 연상하면 비슷할 것이다.
머리로 느끼면 이 기운은 책받침을 겨드랑이에 문지른 다음에 머리카락에 갖다댈 때 느끼는 정전기의 감과 비슷하다. 머리카락 둘레에 아지랑이 같은 화아한 느낌이 오면 바로 화기의 파동이다. 이 기운은 두피 속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머리카락 바로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운이다. 마치 머리 상부에 아지랑이가 있는 것과 같다. 플라타나스 나무나 감자를 가지고 느껴볼 수 있는 기운이다. 토기가 관장하는 기관은 위장(胃腸)과 비장(脾臟)이다. 오주(五主)로는 살(肉)의 기운이고 오근(五根) 중에서는 입의 힘이다. 밥을 먹으면 위가 부풀어오르고 입에 바람을 넣으면 볼이 풍선처럼 부푸는 것과 같이 손에서 느낄 수 있는 토기의 감각은 밥을 배불리 먹었을 때나 입에 바람을 불어넣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손이 바람을 불어넣은 고무 장갑이 된 것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는 감각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손이 아주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장의 포만감이 손에서 느껴진다고 연상하면 이것과 비슷하다. 목기가 근육에 충만되는 욱신거림인 반면에 토기는 손의 살이 팽창하는 기운이어서 욱신거림이 아니라 풍선처럼 서서히 부풀어오르는 느낌이다.
↑토기의 느낌
머리로 토기의 감각을 받아보면 머리 위에 책을 한 권 올려놓은 것 같은 묵직한 감으로 온다. 토기의 기운을 받으면 위와 비장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해서 때 아니게 시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머리 위가 묵직하고 손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면 토기의 파동을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줏대가 분명하고 주관이 서있어서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에 융통성과 친화력이 떨어지며 기운으로 남을 해칠 수도 있다. 금속은 단단하고 그것을 녹이면 매운 냄새가 나는 것처럼 금기는 단호하고 견고해서 폐(肺)와 대장(大腸)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배짱과 결합되면 무서운 추진력으로 일을 벌인다. 반면에 초지일관하는 힘이 약해서 하는 일이 용두사미로 끝나기 쉽다. 정치인이나 고급 관료들이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를 안 지어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금형 타입의 관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폐단이다. 목기와의 차이점은 목기가 머리 둘레를 조우는 압박감인데 반하여 수기는 화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점은 두피를 타고 머리 위쪽으로 올라간 수기는 꼭대기에서 모이게 되고 이 곳에서 마치 물기둥처럼 머리 위까지 뻗어 오른다는 것이다. 이 수기가 머리 위에 모인 것을 사람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상투가 달려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바람이 바다에서 물을 감아 올려 물기둥을 만든 것과 같이 정수리 위에 일어서 있는 기운이 수기 파동의 특성이다. 학자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줏대가 없고 시류에 아부하는 경향을 잘 보이는 것은 학문의 기운인 수기가 오정으로 볼 때는 두려움과 공포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이 역삼각형으로 턱이 뾰족하고 얼굴색이 검은 수형(水形)의 사람은 대개 겁이 많다. 귀의 힘이 발달해서 견문을 듣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데 능하지만 상황에 너무 끌려 다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 기운은 오행 중에서 화기와 더불어 모든 생명체의 근본 기운이고 또 뼈를 채워서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다. 뼈란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해야 하는 것인데 수기가 약하면 기운이 새나가서 뼈는 경직되고 유연성을 잃으면서 약해진다. 인체에서 수기를 저장해놓고 공급하는 저수지는 방광이며 한반도의 방광은 지리산이다. 삼초의 기운은 음나무나 숙주나물에서 느낄 수 있지만 오행의 기운과는 달리 손이나 머리로는 느끼기가 어려운 기운이다. 이 기운을 감각으로 받게 되면 턱 끝에서 아래쪽으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몸의 기운이 아래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기분은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삼초의 흐름이기 때문에 몸에 기운이 없어진다던가 하는 탈진감을 수반하지 않는다. 단지 삼초 기운의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삼초기운의 느낌
옛날에 지어진 절에 가면 해우소(解優所 : 변소)는 반드시 삼초 기운의 자리에 지어져 있다. 이 기운은 배설 기능을 도와주는 힘이기도 해서 삼초 자리의 해우소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일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참나무는 골기 파동이 가장 강하게 나오는 물체이다. 참나무에서 나오는 파동은 그야말로 뼈의 기운이기 때문에 손의 뼈가 찡하게 울리는 파동으로 온다. 계속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면 손의 뼈에서 울리는 느낌이 팔의 뼈를 타고 위로 올라온다. 머리로 느낄 때도 두개골 전체가 찡하게 울린다.
↑골기의 느낌
골기만을 강하게 받고 있으면 나중에는 몸 전체가 뼈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 된다. 물론 이런 정도의 감각은 기공의 수련이 어느 정도 된 후에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초보자도 손의 뼈에서는 쉽게 느낄 수 있다. 인체의 뼈는 오행 기운으로 보면 수기에 속하지만 골기라는 것이 별도로 더 있는 것을 보면 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만병은 뼈와 머리로부터 시작된다.
'존재한다'는 대답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여 놀라게 만든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그것도 인류의 대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성인들의 가르침 속에서 그러한 대답이 발견될 때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불타가 말하는 '색(色)과 공(空)', 노자의 '유(有)와 무(無)', 환인의 '시무시(始無始) 종무종(終無終)의 일(一)'과 같은 세계관은 이 세계를 유일한 실체로서 믿어 마지않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관이었음이 분명하다.
비범한 직관과 통찰에 의한 이런 세계관들은 뉴튼적 물리의 세계와는 양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서구의 과학은 한때 이러한 동양적 직관을 비웃을 수 있는 행복한 시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 세계는 과학적으로 견고하고 확실한 대상이었고 철학적 종교적으로는 실존하는 창조주가 만든 실체였으며 그 법칙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고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증거들 중의 첫 번째는 바로 물질의 입자가 보여주는 성격에서 나왔다. 원자를 발견함으로서 물질을 이루는 최종적인 구성체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세계의 견고한 실체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세계의 확실성에 대한 신뢰의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 즉 원자 이하의 존재들인 아원자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면서 과학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세계를 이루는 물질이라는 것은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보면 있는데 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마술과 같은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마술사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검은 모자가 관객이 눈을 뜨면 그 자리에 있고 눈만 감으면 사라지는 것이라면 관객에게는 모자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로 눈만 감으면 나타나고 눈을 뜨면 그 순간 사라지는 마법의 모자가 올려져 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은 모자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양자역학이 발견한 세계는 이런 마법의 모자와 같은 것이었다. 실체인지 허상인지,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점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전자의 검출 장치와 추적 설비를 통해서 과학자들이 그것의 행방을 찾아 나서면 어느 한 순간 모습을 보이지만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전자는 검출기의 형광막 위에 자기가 부딪힌 지점을 나타낸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점으로서 부딪힌 순간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밝은 빛을 내면서 부딪히기 전의 전자는 물질로서 시공간 내에 존재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최종적으로 밝혀진 위치 외에는 그것의 이동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전자가 움직인 경로를 점으로 찍어 연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이동 방향에 두 개의 좀은 틈(슬릿)을 만들면 하나의 전자는 두 곳의 틈을 동시에 통과하면서 빠져나간 흔적을 남긴다.
↑하나의 전자는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떨림이 진정되고 충분한 크기를 가진 것들을 물체라고 하고 세계는 그런 물체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결합에 의해 물질의 파동이 진정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음으로 세계는 인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질의 입자들이 결합할수록 파동이 진정되는 이유는 두 가지 파장이 다른 파동이 만나면 파동간의 간섭현상에 의해서 변조된 다른 파동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고주파로서 저주파를 만들어내는 원리가 이와 같은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진동수가 다른 파동이 서로 만나면 진동수는 줄어들면서 진폭은 두 파동의 에너지가 합해지는 것만큼 커지게 된다. 원자 두 개가 결합해서 하나의 분자를 이루면 이 분자의 파동은 두 원자의 파동이 합쳐져서 변조된 파동이 된다. 이때 파장은 길어지고 진폭은 커지게 된다.
물리적으로 어떤 물질을 규명하는 것은 그 물질을 이루고 있는 성분들의 배합과 결합 상태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이 내는 파동을 검출해서 그것의 특성을 분류할 수 있다면 물리적인 분석을 통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대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만물의 고유성을 구별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이 파동의 차이를 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파동의 형태와 성격이야말로 진정한 물질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세계의 실체는 바로 파동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능력이 파동의 차원에 미치지 못하므로 우리는 물질의 형태와 빛깔과 크기와 모양과 냄새와 맛과 감촉으로만 인지하고 있다. 물질의 파동이 오감이 감지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형태의 정보를 만들어내야만 우리는 그것을 세계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된 것이며 그것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의 모습에 불과하다. 세계는 우리의 인식 능력의 바깥에 있는 파동으로서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실체이며 참된 모습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는 물질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정보 가운데서 극히 일부분만을 의식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재조립해낸 것이다. 재조립의 과정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본질적으로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우리가 과연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다음 장에서 설명을 하겠지만 의식은 자주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을 세계라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파동이야말로 세계의 실체이며 드러난 물질들은 의식의 창조물이라고 볼 많은 증거와 이유들이 있다. 어쨌든 이 세계는 충분히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는 수상한 무엇이다.
우주가 지금보다 덜 팽창했을 때 시공간 속의 만물간의 거리는 지금보다 가까운 것이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팽창이 진행된 먼 미래에는 만물들 사이의 거리가 지금보다 더 멀어질까? 빛에 의해 인지하는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을 배제한 실체로서의 우주는 언제나 만물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한 것으로 나는 본다.
거리를 측정하는 수단이 빛이 아닌 파동일 경우에는 시공간은 완전히 허구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물질로부터 감지되는 정보가 있어야만 대상을 인식하게 되는데 정보의 전달방법 중에서 빛이라는 것이 가장 빠르다. 따라서 우리는 광속보다 더 빠른 정보의 전달 수단을 갖고있지 않으므로 광속의 제한 내에서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빛 이전에 존재하는 물질의 원초적인 형태가 파동이며 이것은 광속의 구속을 받지 않고 서로간의 정보를 교환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보의 교환이라는 것은 파동적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자적인 세계는 공간이라는 것을 갖지만 파동적인 세계는 공간이라는 것을 갖지 않으므로 우주가 팽창하던 축소하던, 팽창의 단계가 어디까지 가있던 관계없이 만물 사이의 거리는 없다는 것이다. 즉, 우주의 모든 물질은 본래 하나이며 현재도 하나이고 어떠한 미래에도 변함없는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우주는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세계와 흡사하다.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새를 한 마리 본다고 하자.
이것을 역순으로 유추해본다면 더욱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가 어느 날부터 축소되기 시작해서 만물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 모든 것들의 파동이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고 이 파동들은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키면서 변조파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팽창이나 수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만물들 간의 파동이 섞이는 변조는 무수하게 일어나고 매순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는 전 우주에 충만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폭발하였다는 가설을 믿기로 하면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인간의 의식이 파동의 세계를 감지하지 못하고 빛으로만 대상을 보기 때문에 우주는 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공간은 무한하며 우주의 넓이는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전자가 입자의 성격일 때는 시공간의 존재이지만 파동일 때는 시공간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미립자들의 거대결합체인 세계 역시 파동적 측면에서는 시공간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파동으로서의 세계가 실체이며 시공간이라는 것이야말로 의식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다.
입자들 사이의 파동이 무한하게 늘어나서 시공간 적인 거리에 관계없이 초광속(超光速)으로 정보를 교환한다는 사실은 유명한 닐스·보아의 실험으로 입증된 바가 있다. 그 결론은 역시 초광속의 정보전달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거리와는 무관하게 파동으로서 두 입자는 하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우주의 시공간이 광대하다 해도 파동적 세계로서의 우주는 무 거리의 통합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나라는 존재는 우주와 분리된 무엇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인 우주의 일부이며 내가 곧 우주라 말할 수 있다. 인체를 축소된 우주로 본 동양의학의 시각은 그런 점에서 전혀 틀리지 않은 것이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주장한 노장의 사상이나 만유일체(萬有一體)를 가르친 불교의 교리 역시 현대 과학을 앞지르는 위대한 통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있고 남이 있으며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고 너와 나는 서로가 다른 존재라고 하는 구별심은 의식이 만든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파동으로서 우리 모두는 하나의 생명체이고 분리될 수 없는 통합체이다.
그러나 시공간과 함께 펼쳐져 있는 파동적 세계는 통합성과 전일성(全一性)의 세계이다. 때문에 파동적 세계를 나는 시공간과 대비하여 기세계(氣世界)라고 부르고자 한다. 기 세계는 시공간과는 달리 우주 만물이 언제나 하나로 통합되어진 상태이며 전일성을 그 특성으로 갖는다고 생각한다.
촬영된 피사체의 형상이 공간상의 특정 위치에 입체적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기술을 홀로그램 사진술이라고 한다. 이의 실현에는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장치와 기술이 필요한 것이지만 원리의 설명은 어렵지 않다.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하나의 광원에서 나온 레이저 광선을(A광선이라고 하자) 분광 장치를 통해서 B와 C의 두 가닥으로 나눈 다음에 B광선은 그대로 건판으로 보내고 C광선은 촬영하고자 하는 피사체를 비추어 피사체에서 반사된 광선을 건판 앞에서 B광선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파동의 합성 변조가 이루어지고 이때 생긴 물결 형태의 간섭 무늬가 건판에 기록되는 것이다.
이 기술은 공상 과학 영화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도 소개된 것이지만 홀로그램 촬영술의 발명은 비단 입체 촬영 기술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엄청난 의의를 갖는 대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홀로그램 촬영에서 확인된 정보의 저장과 재현의 메커니즘은 우주와 세계를 설명하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그램은 바로 통합성과 전일성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물리적인 세계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 비밀은 피사체의 영상이 저장된 건판에 있다.
건판에 기록된 것은 복잡하게 얽힌 동심원 모양의 간섭무늬이고 이 무늬의 형태에서 우리는 원래의 피사체의 형상을 상상해 낼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동심원들로 이루어진 파동의 간섭무늬는 복잡한 형태와 빛깔에 대한 정보를 정밀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그대로 재현이 된다는 것과 함께 더욱 놀라운 한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홀로그램 정보가 담긴 건판을 둘로 나누어 그 한쪽에 레이저광을 비추면 피사체의 절반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반쪽을 다시 반으로 나누어서 비추어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건판의 아무리 작은 조각을 떼 내어 비추어도 거기에는 피사체의 전부가 나타난다. 원래의 건판을 잘게 쪼개면 쪼갤수록 재현된 피사체의 복원상이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형상이 재현되는데는 변함이 없다. 이런 홀로그램의 성질에서 우리는 파동이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는 그것의 극히 작은 일부분일지라도 전체의 정보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유추해낼 수 있는 대단히 엄청난 사실이 있다.
우리의 상상을 먼 옛날 우주의 시공간이 아주 작았던 팽창의 초기로 돌려보자.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응축되어 오직 하나뿐이었던 거대하고 강력한 파동으로부터 물질들이 분출되어 쏟아짐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파동들이 생겨나고 이것들이 서로 부딪혀 만들어낸 간섭무늬들이 시공간의 확대와 함께 한없이 늘어져 갔을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시공간 전체에 퍼진 간섭 무늬의 아주 작은 끝자락 하나를 붙잡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서 우주 전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정보를 시간이 걸리지 않고 즉시에 알 수 있다면 내가 우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에 대한 모든 정보가 동시적이고 즉시적으로 전 우주에 전달된다고 할 때 우주와 내가 하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과연 이와 같이 나는 우주 전체의 정보를 쥐고 있는가?
언제라도 내가 원할 때 그것을 홀로그램 영상처럼 재현해낼 수가 있는가?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인생과 모든 세계관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우주 정보를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배양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기공수련(氣功修鍊)이며 능력은 우주의 파동과 연결된 나의 파동 속에 있다. 그것을 우리는 기(氣)라고 부른다. 나의 기는 우주의 기와 연결되어 있는 우주 파동의 일부이다. 입자적인 세계만을 인식하는 의식의 제한된 능력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개별적이고 독립된 개체로서 자각하고 있을지라도 나의 파동, 나의 기는 이 순간에도 우주 전체와 나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기가 그것을 원하면 우주 속의 어떤 정보도 재현되며 어떤 존재도 나는 그것을 나로서 인식할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공(氣功)의 참된 의미이고 수련의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홀로그램적 세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999년 정신세계사刊 정신과학총서4, 홀로그램 우주(마이클 탤보트 著)》』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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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형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 혀로 감별할 수 있는 맛,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 피부로 감지하는 촉감의 다섯 가지이다. 이것을 우리는 오감이라고 한다. 모든 만물이 가진 고유한 파동은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파동을 인지해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다만 그 물질의 파동이 만들어 내는 것 중 다섯 가지 형태의 정보만을 받아들여서 대상을 파악한다. 그것도 극히 일부분의 것 만이다. 빛으로 정보를 보낸다 하더라도 시각 기관이 판독하는 범주는 부분적이어서 자외선과 적외선의 영역은 무시되어 버린다.
의식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은 홀로그램 촬영과 거의 흡사하다. 다섯 가지 형태의 정보를 각기 다른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이고 그때의 간섭무늬를 두뇌라는 건판에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의 파동이 형상과 맛과 냄새와 질감과 소리를 만들어내면 이 파동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대상의 것으로서 기억한다. 그래서 사과의 형상을 보면 맛을 연상해낼 수 있고 눈을 감고 사과의 맛을 보면서 형상을 그려내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두뇌가 모든 정보를 파동의 간섭무늬를 홀로그램적으로 두뇌에 저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장된 정보의 재현 과정도 홀로그램 입체영상의 재현과 거의 흡사하다. 두뇌의 어느 부분에서도 특정한 정보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두뇌의 한 조각만으로도 한 인간의 기억 전체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조각이 작으면 작을수록 기억은 희미하겠지만 담고 있는 범주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물질의 정보는 물질의 실체인 파동이 만들어내는 것 중에서 오감으로 수용 가능한 특정 형태의 것들이며 이것들은 파동의 간섭무늬로서 두뇌에 저장된다는 설명했다. 이런 관계로 우리의 두뇌에는 대상의 극히 일부분만이 저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식이 가공해낸 부분적인 정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단히 불완전하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한가지 있다. 물질의 실체이며 진정한 그것의 정보라고 할 수 있는 파동 그 자체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파동을 정보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을 우리는 육감(六感)이라고 말해왔다.
만물이 가진 파동을 우리는 그 물질의 기(氣)라고 말한다. 하지만 금이라 해도 다른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어떤 것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느냐에 따라 기가 달라진다. 금속이나 물이나 목재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같은 나무라도 참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잣나무, 은행나무, 플라타나스는 모두 기가 다르다. 하지만 금에 불순물이 섞여서 순도가 낮더라도 금 고유의 파동 형태는 살아있어서 99%의 순금이나 18금이나 기의 느낌으로서 금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는 있다. 같은 참나무라도 그것이 자란 지역이나 영향을 받은 기후조건이나 수령(樹齡)에 따라서 약간씩 파동이 다르긴 하지만 모든 참나무는 참나무 고유의 형태를 가짐으로 우리는 기로서 그것이 참나무라는 것을 가려낼 수 있다.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는데 이 별들의 구성물질과 성분은 별마다 차이가 많다. 때문에 별들은 모두 다른 고유한 기운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화성의 기운이 다르고, 수성의 기운이 다르고 해왕성, 천왕성의 기운이 모두 다르다. 즉 만물의 기는 그것의 구성 물질들 전체의 파동들이 변조된 파동이므로 파동의 성격과 세기는 전부 다른 것이다.
그렇게 볼 때에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의 기를 다 측정해서 목록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질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작업이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분류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생물 종의 분류조차 다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상들의 기운부터 하나씩 확인하고 그 차이점을 알아 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런 분류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가지치기 방식이다. 우선 대분류를 하고 그 분류별로 소단위로 분류하고 다시 하위 단계로 세분해 가는 것이다. 생물을 예로 들면 가장 큰 대분류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생물로 나누는 것이다. 다음에 동물이라는 대분류 중에서 포유류, 어류, 갑각류, 곤충, 파충류 등으로 나누어간다.
기를 같은 방법으로 형태와 성격에 따라 분류한다고 할 때, 제일 높은 단계의 대분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오행(五行)이라 말하는 다섯 가지이다. 모든 물질의 기는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 형태의 기운 중 하나이거나 또는 그것들의 배합이다.
아무튼 오행의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물질의 기운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자연계의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상생상극의 질서는 경직된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순환하면서 운행되는 조화로움을 갖추고 있다. 이 자연계의 질서에 조화를 부여하는 기운이 바로 음과 양의 두 가지 기운이다. 이 음양의 기운은 물질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질들 간의 질서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서로 다른 기를 가진 물질들이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의 질서장(秩序場)을 이루면 질서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태동되고 이것이 음양이라는 두 가지 기운으로 우리의 감각 세계 속에 포착되는 것이다.
질서만 있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이 질서는 금방 유연성을 상실한 경직된 것으로 바뀌어 결국은 질서를 해치게 됨으로 하나의 질서장 내에서 서로의 영향을 탄력적으로 수용하는 조화를 이룸으로서 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지향점이라고 하겠다.
음양은 우리가 감각으로서 알 수 있는 기운이긴 하지만 그것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특정한 대상에게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존재가 상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하나의 질서장에서 느끼게 되는 기운이다. 때문에 음양의 기운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기운이다. 사람의 인체는 오행의 기운이 모두 배합된 대단히 입체적인 파동을 내는 존재이다. 남자의 양기와 여자의 음기는 남녀 모두의 인체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기운이 아니다.
때로는 이 음양의 관계가 바뀌기도 한다. 남편 같은 아내와 아내 같은 남편이 만나서 살아도 그 조화 속에서 하나의 질서가 유지됨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자식이 부모 같고 부모가 자식 같은 관계를 갖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이때는 자식의 기운이 양이고 부모의 기운이 음이 된다. 그래서 그 전도된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만약에 남편이 사회적으로 무능해서 가사일을 맡고 아내가 먹여 살린다고 하자. 이때는 아내 쪽의 기운이 양이 된다. 당연히 남편의 기운은 음기로서 양기를 도와주는 쪽에 서야 이 집안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질서가 바뀌었는데 조화가 따라주지 못해서 남자가 가부장적인 권위를 고집하고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양기의 표출) 이 집안의 질서는 유지되지 못하고 깨진다.
옛날의 가부장적인 대가족제도는 질서와 조화를 지극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집단이었다. 시어머니는 양이고 며느리는 음이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늙으면 곳간의 열쇠를 며느리한테 내어 준다. 집안의 경영을 며느리한테 위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집안의 살림에 대한 권한은 며느리의 것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며느리에게 노후를 의탁하는 입장이 된다. 즉 질서가 바뀌는 것이다. 이때는 조화도 바뀌어서 며느리가 양이 된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계속 집안 일에 간섭을 하면서 며느리의 양기를 침해하면 집안의 질서가 깨지고 불화가 생긴다.
그렇다면 기운으로서의 음양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살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음양은 존재성에서 나오는 기운이 아니라 상대성에서 나오는 기운이므로 상대성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환경을 상대적인 질서장으로 본다면 지구상의 생명이 받는 양기의 근원 중 으뜸은 바로 태양이다. 태양의 기운은 그 자체로서 양기인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을 받아서 반사하는 상대적 존재인 달에 대하여 양기이다. 달이 지구에 미치는 기운은 태양의 기운에 대하여 음기이다. 태양은 달에 비교할 때 엄청나게 큰 물질이다. 그러나 이 물질적 양의 차이에서 오는 기울어짐은 지구와의 거리가 상쇄해주고 있다. 태양은 크지만 멀리 있고 달은 작지만 가까이 있어서 지구의 생명은 균형 잡힌 음양의 기운을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구 자체도 음양의 기운을 제공하고 있다. 지자기(地磁氣)라는 것이다. 남극자기의 힘은 북극에 대하여 음이고 북극기운은 남극기운에 대하여 양이다. 지구상의 생명계라는 질서장은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남북극에서 오는 양기와 음기를 음양의 근원적인 공급지로 삼고 있다.
물질의 고유한 파동인 오행과 음양의 기운이 크게 대별할 수 있는 기운의 전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여러 가지 기운들이 정체되어 있거나 잘 순환되지 않으면 각 질서장은 서로 고립될 것이고 세계의 생명력은 반감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자연계에는 모든 질서장들의 내부에서 기운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러 질서장들 사이에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보조적인 기운이 있다. 이 기운은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체의 기운을 감지하면서 우리의 내부에서 찾아진 것으로 짐작된다.
지구상의 생명체에 골기를 공급해주는 곳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인 명왕성이다. 한반도에 골기를 공급해주는 지점은 오대산이다. 오대산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모든 나무들이 힘차게 일자로 곧게 뻗어있음을 볼 수 있다. 오대산의 나무 중에 허리가 굽은 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오대산의 골기를 나무들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서 자연에서 감각으로 찾아낼 수 있는 파동들인 기의 대분류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 물질의 고유한 파동은 오행의 다섯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이 오행의 기운이 하나의 질서장을 이루면 조화를 부여하는 음양이 있게 되고 이 질서장의 기운을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삼초의 기운이 있고, 질서장에 힘을 보강하여 튼튼하게 만드는 골기라는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감각으로 찾아낼 수 있는 파동의 형태는 오행의 다섯 개와 음양의 두 개, 거기에 삼초와 골기를 합하여 모두 아홉 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파동들 간의 관계와 법칙을 밝힌 것이 음양오행설이라는 동양의 사유체계이다. 세계가 입자적인 세계와 파동적인 세계의 양면을 갖는다고 할 때, 물리학은 입자적 세계에서 드러나는 관계와 법칙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기와 음양오행은 입자적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파동적 세계의 법칙에 대한 학문이다. 때문에 이것은 서양의 과학보다 월씬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입자적 세계는 입자적인 방법으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파동적 세계는 파동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으므로 파동적 세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동양에서는 같은 파동인 의식과 감각으로 접근해 간 것이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양립될 수 있으며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파동의 형태와 정보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를 할까 한다. 만물은 고유의 파동을 가지고 있으며 파동에 담긴 내용중 인간의 의식이 해독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형태의 파동이 정보로서 의식에 전달되고 그것으로서 우리는 외부 세계를 인식하게 됨을 설명했다.
정보의 요소를 오행으로 구분해 보면 아래의 표와 같이 된다.
현대적인 잠수함은 대단히 정밀하고 효율적인 고감도의 음파수신기와 수신된 음파를 분석할 수 있는 파형 분석 장치를 가지고 있다. 잠수함의 외벽에 설치된 하이드로폰을 통해서 수신된 모든 음파는 분석 장치를 통해서 하나의 파형으로 컴퓨터의 모니터에 그려진다. 모든 소리는 각자 고유한 파형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보고 지금 잠수함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 적국의 군함인지 지나가는 어선인지 혹은 고래인지 판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수함이 소리의 파형으로 대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져야 하는 작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바다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수집해서 어떤 것이 내는 소리가 어떤 파형으로 나오는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사전에 수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의 군함이 내는 스크류 소리가 어떤 특성을 갖고 어떤 파형으로 그려지는 지에 대한 사전 확인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정밀한 장치로서 소리를 분석한다 하더라도 그게 어떤 나라의 어떤 종류의 군함인지 판단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잠수함의 컴퓨터는 수신된 음파의 파형을 사전에 확인이 끝난 수많은 소리의 파형과 일일이 대조해서 그 소리의 주인공을 판단하게 된다.
우리가 기공 수련을 하면 세상의 모든 물질이 내는 파동을 감각으로 감지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파동의 감각만으로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반드시 그 파동의 발신체가 무엇인지 다른 오감을 빌려 확인해야 하고 한번 확인한 파동의 형태를 기억해 놓는다면 다음부터는 기감만으로 대상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인간의 놀라운 잠재능력으로 인해서 주위의 몇몇 대상들에 대해서는 파동의 형태에 대한 확인이 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물론 인간의 감각적인 느낌을 잠수함의 분석 장치가 하는 것처럼 또는 뇌파측정기가 하는 것처럼 파형이나 신호로 그려내기는 불가능하고 감각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것도 역시 감각에 의해서만이 가능하지 종이에 그려진 파형이나 숫자적인 데이터로서의 보존과 전달은 아직 불가능하다.
- 여기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미 확인된 몇 가지 대상의 파동 형태가 오행상 어떤 것에 해당되는 지를 표로서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동의학이나 기공을 공부하고 수련하려는 사람은 전회에서 설명한 정보의 5요소와 오행의 대응 및 아래의 파동형태별 5행의 대응관계를 완전히 숙지해서 외우는 것이 필수이다. 이것을 외워 두지 않으면 동의학이나 기공수련은 불가능하다. 아주 달달달 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심장'하면 바로 '화(火)', '가야산'하면 '목기(木氣)의 산' 하고 바로 바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외우지 않고 동의학이나 기공을 하겠다는 사람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서 산수를 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림 1>은 같은 세기의 파동인데도 주파수와 파형이 다른 세 개의 파동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고, <그림 2>는 같은 파형, 같은 주파수의 파동이면서 진폭과 세기가서로 다른 세 개의 파동이다.
↑그림1. 파형과 주파수는 다르지만 진폭과 세기가 같은 파동들
↑그림2. 파형과 주파수는 같지만 진폭과 세기가 다른 파동들
예를 들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는 오행상 화(火)에 속하는 나무로서 파동의 형태는 같지만 성격상 미세한 차이가 있다. 당근이나 고추와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작은 물체의 기와 대단히 큰 물체의 기는 또 힘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희양산은 화기의 산이고 화성(火星)은 화기를 지구상에 보내오는 행성인데 이런 산이나 별의 기운은 같은 화기라도 그 힘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강력한 기운이다.
둘째, 생물체의 진화 단계상 보다 진화된 동물의 파동을 고차원의 것으로 본다.
셋째, 인간의 육체에 보다 이로운 성격의 것을 보다 고차원의 것으로 본다.
넷째, 두 가지 파동 중 동화력(同化力)이 더욱 강한 파동을 고차원의 것으로 본다.
다섯 째, 어떤 물질에 대한 침투력이 더욱 강한 파동을 보다 고차원의 것으로 본다.
태양계의 파동과 북두칠성의 파동을 비교해보면 태양계 행성의 오행 기운은 신체 장부의 주파수와 비슷해서 육신과의 공조가 쉽게 이루어진다. 이 말은 우리 몸이 태양계의 기운은 쉽게 느끼고 빠르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반면에 북두칠성으로부터 오는 오행의 기운은 우리의 의식이 내는 영적인 파동과 비슷해서 대단히 은은한 감각으로 포착이 된다. 북두칠성과 비교해 볼 때 태양계의 기운은 형태는 같아도 성질에 있어서는 거칠고 강한 파동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우주 속에서 어떤 대상과도 기로서 즉시적인 교감이 가능하다. 그런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는 태양계만이 아니라 북두칠성이나 다른 성단들과 여러 은하들의 기운을 체감해볼 수 있는 것이다. 망원경으로 먼 우주의 별들을 찾고있는 천문학자들처럼 기공자들은 자신의 염력(念力)에 의한 교감으로서 우주의 심연을 살펴볼 수가 있다. 우주 의식의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파동은 더욱 잔잔하고 말할 수 없이 은은하며 지극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기운이다. 물론 그런 기운일수록 보다 밝은 영성(靈性)과 공력이 없다면 감각으로 포착할 수가 없다. 교감이 안 되는 것이다.
처음 기공 수련을 하는 사람한테는 지구상의 물질이나 산에서 기를 느껴보는 것이 제일 쉽고 그런 파동을 쉽게 감지할 정도가 되면 태양계의 행성 기운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북두칠성의 기운을 감각으로 받으려면 좀더 수련이 필요하다. 고차원의 파동일수록 감지가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영성과 의식을 우주 심층의 파동 차원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교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고차원의 기운일수록 우리의 육신보다는 의식과 영혼에 그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보다 본질적인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태양계의 기운은 육신적 생명력인 정기(精氣)의 원천이고 북두칠성의 기운은 정신적 생명력인 신기(神氣)의 근원이다. 태양계의 기운으로 신체 장부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 질병에서 회복되고 건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영혼을 밝게 하고 의식의 힘을 고양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생명력의 회복으로 연결된다. 즉 육신의 조화와 질서로 정신의 군형을 찾는 것도 길이지만 더욱 확실한 길은 정신과 영혼의 기운을 찾아서 육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길이다.
야생의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파동의 성격이 거칠고 강하다. 그런 동물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파동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짐승 같은 놈'이라거나 '개만도 못한 인간'같은 욕을 한다.
- 의식이 내는 파동은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게 되는데, 사람은 감정의 제어를 함으로서 의식의 파동을 조절할 수가 있다. 분기(憤氣), 노기(怒氣), 살기(殺氣)등은 의식의 파동 중에서 가장 거칠고 강한 것들이다. 이런 파동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 가장 강한 파동은 평온하고 평화로운 사람의 의식이 내는 부드럽고 은은한 파동이다. 자연계의 파동으로서 확인해보면 강진동의 파동은 약진동의 파동 앞에서 힘없이 부숴진다. 약진동보다는 미진동의 파동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진실로 강한 사람이야말로 부드러운 사람이다.
명상과 기공 수련을 통해 자기의 의식파를 보다 부드럽고 은은하며 섬세한 것으로 변화시켜나가면 성격이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면서 온화하게 변하게 되는데 내면적인 힘은 그럴수록 더욱더 강해짐을 알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파동을 보다 고급한 차원의 것으로 바꾸지 못하면 교감할 수 있는 외부 세계의 파동도 그 한계에 머물게 된다. 파동적 세계는 물질적 존재의 정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존재의 정보들까지도 함께 있는 세계이며 그 세계의 경계는 공간적 경계가 아니라 파동의 형태와 성격이 만들어내는 경계이다. 역사상의 많은 위대한 성인들과 악인들의 파동은 여전히 그 세계에 넘실거리고 있다. 성인의 기와 교감하고 그들의 파동과 하나가 되어보면 그들의 가있는 자리를 알 수 있다. 파동의 성질로서 성취한 내면적 차원의 높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파동들과 늘 함께 함으로서 우리의 파동을 그것에 공조시켜 맞추어갈 수 있다.
기공 수련을 하는 것은 육신의 기운을 강화시키자는 것보다는 우주적인 기운과 늘 교감함으로서 우리의 영적 기운을 순화시키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입하는데 목적이 있다 할 것이다. 파동은 다른 파동과의 간섭과 변조를 통해서 언제나 형태와 성질이 바뀌는 것이므로 동물과 교감하면 어느새 동물의 파동과 닮아갈 것이요, 악인과 교감하면 악인의 파동을 닮게될 것이고, 성인(聖人)과 교감하면 성인의 파동과 닮아갈 것이다. 이런 파동의 동화작용을 통해서 기공 수련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감각으로 이와 같은 점을 확인해 볼 때는 태양계와 북두칠성의 차이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감각에 전해져오는 기운의 힘은 태양계가 훨씬 강하고 센 것으로 느껴지지만 파동의 위력은 진동의 강약이 아니라 주파수와 질에 있는 것이어서 부드럽고 섬세한 칠성의 기운이 훨씬 강하고 미치는 영향이 위력적이다. 이것은 기 치료의 경우에 태양계의 기운보다도 칠성의 기운이 더욱 빠르게 근본적인 치료의 효과를 내는데서 잘 확인할 수가 있다. 위장병이나 소화불량, 변비, 신경통 등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증상에는 장부에 직접 작용하는 태양계의 기운만으로도 치유될 수가 있고 기공사의 개인적 기운으로도 이루어질 수가 있다.
아홉 가지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질서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몇 가지 예로써 살펴보자. 우선 우리가 살고있는 이 태양계의 파동적인 질서장은 아래 그림과 같다.
(그림1 : 태양계 행성의 오행 질서도)
(그림2 : 인체의 오행 질서도)
(그림3 : 한반도의 오행 질서도)
지방별로 대표되는 기운이 이와 같다는 것이지 그 지역에는 꼭 그 하나의 기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남 지방에도 수기나 화기가 강하게 나오는 곳이 있고 호남지역에도 금기나 목기가 강한 산들이 있다. 다만 전체를 대표할만하게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기운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삼초의 기운이어서 먹고 마시는 관광업이나 유흥 산업이 발달하기 좋다. 삼초 기운의 특성은 흘러내리는 것이어서 머물지 않게 한다. 때문에 들렀다가 곧 떠나는 관광객의 땅이며 타지의 사람이 들어와도 곧 흘러서 다시 나가게 되지 제주도에 머물기가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어느 나라 어떤 지역이던지 다 한반도와 같이 오행의 기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땅 가운데서 한반도처럼 오행이 그야말로 절묘하게 입체적으로 배합된 땅은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오행상으로 볼 때도 한반도는 금수강산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 지구의 생명계라는 질서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운이 태양계의 것만은 아니다. 태양계의 행성들과 지구 자체의 기운에 못지 않은 강한 파동이 오는 별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북두칠성이다. 이 북두칠성의 일곱개 별은 태양계의 행성들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오행과 삼초 골기의 기운을 지구에 보내오고 있다.
↑ 북두칠성의 오행 질서도
이 다섯 가지 물성의 상호 관계를 옛사람들은 자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사물의 성질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나무와 불과 흙과 쇠와 물이 그것이다. 나무를 비벼서 불을 만들 수 있으므로 불은 나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즉 나무는 불을 낳는 성질이 있다하여 이것을 목생화(木生火)라 했다. 나무와 불의 관계는 나무가 어미(母)가 되고 불이 자식(子)이 된다. 오행의 법칙에서 모는 자를 낳고 도우며 자는 모로부터 나오고 그 도움을 받는 관계에 있다. 다음으로 불은 흙을 낳는 어미가 되는데, 흙이 불에서 나온다는 개념은 아마도 옛사람들이 화산의 분출을 보고 연상했거나 흙으로 빚은 그릇을 불에 구울 때 흙이 더욱 단단해지고 광택이 나는 것에서 끌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불은 흙을 낳고 흙은 불에서 나오는 것이 된다. 이 관계를 화생토(火生土)라 한다. 또 금속은 땅에 묻혀 있다가 파내어지므로 쇠가 흙 속에서 나온다는 것에 비유해서 토기(土氣)를 금기(金氣)를 낳는 모체로 상정하였다. 이것이 토생금(土生金)의 관계다. 여기까지는 관념적으로 별 무리 없는 연결인 것으로 보이는데 음양오행설은 그 다음의 금이 낳는 것으로 물을 들고 있다.
금생수(金生水) 다음은 물이 나무를 낳는다는 수생목(水生木)이다. 이것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연결이다. 물이 없으면 죽고 물이 있으면 자라는 것이 나무이기 때문에 수(水)의 기운이 생(生)하게 하는 것은 목(木)이 되겠다.
↑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관계도
그러나 상극관계에 있는 기운이 상대 기운에게 언제나 지기만 하고 이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생과 상극 외에 복승(複勝)의 관계가 하나 더 있다. 나무(木)는 쇠(金)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쇠(金)를 이기는 불(火)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불이라는 자식을 통해서 쇠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자식 관계의 기운을 이용해서 자신을 극하는 기운에 맞설 수 있는 관계를 복승이라고 한다. 상생과 상극과 복승으로서 세계는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정체되지 않고 변화해 나가는 것이다. 오행의 기운이 만든 질서는 음양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유지되지만 자연은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진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 이와 같은 음양오행의 질서와 조화는 물질적 세계만이 아니라 4단7정(四端七情)으로 말해지는 인간의 감정과 같은 정신적 세계에도 그대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이 신체와 별개의 것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정서가 육신의 상태와 장부(臟腑)의 질서와 조화에서 빚어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장부와 감정 그리고 기운과의 상관 관계를 살펴보면 납득이 될 것이다. 간의 기운은 목기이다. 그리고 화내는 기운은 목기의 기운이다. 사람이 화를 내게 되면 간의 기운이 격렬해짐을 의미한다. '환장하겠다'는 말은 간이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난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의 기운은 안정을 잃게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불안정 상태가 오행상으로 볼 때는 목에 속하는 것이다. 간의 기운이 안정되고 늘 평화로운 사람을 우리는 어질다고 말한다. 어짐(仁)은 간의 목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목기가 상징하는 덕성은 바로 인(仁)이 된다. 평소에 대단히 어질던 사람이 자주 화를 내게 되면 간이 나빠지고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반면에 너무 심하게 웃게 되면 심장이 크게 울린다. 심장의 기운은 화기(火氣)이다. 그래서 웃게 되면 신체의 기가 흩어지게 된다. 심장의 기운이 과한 사람은 헤프게 웃고 다닌다. 예를 아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웃지 함부로 웃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예의(禮)는 화기에 속하는 덕성이며 심장의 기운이 양호한 사람은 예의가 바르게 된다.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신장의 기능과 관련이 깊다. 몹시 놀라면 오줌을 찔끔거리게 되는 이유는 신장의 기운이 놀라기 때문이다. 신장은 수기(水氣)에 속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어서 놀라거나 두려움에 몸의 수기가 동하면 신체의 기운은 가라앉아서 기운이 빠진 상태가 된다. 신장이 튼튼한 사람은 총명하고 영리하다. 그래서 수기가 대표하는 덕성은 지(智)이다. 옛날의 서당이나 서원은 대개 수기가 강한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이와 같이 오행의 상생과 상극은 물질의 질서장을 이루는 법칙이기도 하지만 생명체의 감정과 정서에도 똑같은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적 세계 역시 하나의 질서장이며 물질적 기운과 정신적 기운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로 해서 몸의 상태가 바뀌면 성격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성격적인 결함이나 정신병에 대한 대처는 반드시 육신의 질서와 조화를 맞추어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기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가 물질의 파동 감각을 신체에서 느끼는 감각 기관이 어디이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다. 우리의 몸은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파동체여서 외부 세계의 파동은 몸 전체로 공조하고 있다. 때문에 물질 파동은 우리 몸의 어디에서든지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신체는 특별히 감각이 예민하고 둔한 부분이 있으므로 기도 보다 쉽게 보다 강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파동에 대한 감각이 제일 예민한 부분은 아무래도 손이다. 사람의 손은 신체에서 감각 신경 세포가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파동의 성질들은 전부 인간의 머리와 손으로 감지해서 밝혀낸 것들이다. 만약에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기공을 배운 후에 자기가 직접 느껴보면 이 설명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과를 왜 금기(金氣)의 과일이라고 하는지 사과 한 알을 손 위에 올려놓고 파동을 느껴보면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1) 목기(木氣)
그래서 손에서 느껴지는 목기는 손의 근육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감각으로 온다. 염증이 있는 부위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욱신거림이 미약하게 일어나다가 나중에는 꽤 강하게 욱신거리는 느낌이 된다.
↑목기의 느낌
어떤 집이나 건물의 터에서 이와 같은 기운이 느껴지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화목하고 어진 품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주 싸우던 부부가 이사를 하고 나서 원만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땅의 기운이 사람의 성격이나 정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목기는 인(仁)을 키우는 기운이어서 덕성을 높인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진 사람은 의외로 겁이 없다. 겁은 오히려 난폭하거나 모난 사람이 더 많다. 인자(仁者)는 목기가 좋은 사람이라 간이 크고 튼실하다.
기질적으로는 볼 때 나무는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바람에 의해서 가지와 잎만 쉴새없이 움직인다. 목형인 사람은 이와 같은 나무의 성질을 닮아 활동성이 적은 대신에 손발의 놀림이 기민하고 정밀해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많다. 목재가 그런 것처럼 사람도 쓰임새가 많지만 바람에 나무가 잘 날이 없는 것처럼 주위로부터의 간섭이나 영향에 괴로움을 많이 느끼고 고독을 즐기려는 경향이 있다.
2) 화기(火氣)
↑화기의 느낌
화기는 영적인 기운인 신기(神氣)와 닿아있는 기운이어서 성직자나 무속인 또는 예술인에게서 강하게 나오는 파동이다. 또 사는 집이나 터가 화기의 기운이면 성직자, 무당 또는 정신병자가 많이 나온다. 수도처나 기도원, 또는 무당의 집이 대개 화기 자리이다. 세 소녀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파티마는 세계적으로 화기가 가장 강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는 악(岳이)자가 붙은 이름의 산이 대개 화기가 강한 바위산이고, 우리 나라에서 운전자들이 특히 성질이 급해지고 난폭한 것은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의 기운에서 받는 영향이 적지 않다. 과도한 화기는 심장의 기운을 강하게 만들어서 심장의 열이 머리 쪽으로 솟구치게 만든다. '화가 난다' 또는 '열 받는다'는 등의 표현은 모두 화기가 승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불의 형상은 아래가 둥글고 넓으며 불꽃의 윗 부분은 좁고 뾰족하다. 그래서 화기의 형상은 삼각형이다. 불의 기운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때문에 윗사람을 공경하는 예의(禮)를 상징하는 기운이다. 화기는 수분을 말리기 때문에 화기형의 사람은 대체로 마르고 얼굴이 붉다. 조직 내에서는 윗사람을 잘 모시기 때문에 상사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반면에 불은 늘 자신을 태우는 것이어서 내면적인 고뇌와 갈등이 많고 이것이 예술로 승화되어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을 태우기도 하지만 주위의 것에도 옮겨 붙고 화상을 입히는 것처럼 내면적인 고뇌와 갈등이 밖으로 표출되면 주위에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3) 토기(土氣)
위장과 비장은 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장부인 것처럼 토기는 오행의 중앙이며 중심이다. 그래서 토는 만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흙은 모이면 땅이 되고 땅은 만물이 딛고 살아가는 바탕이다. 비가 내리면 거센 물살이 흙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물이 흙 속에 담겨 호수나 내를 이루기도 하고 불이 나서 흙에 뿌리내린 모든 나무들을 재로 만들기도 하고, 빈땅에 식물이 씨앗들이 날아와 제멋대로 뿌리를 내리고 숲을 만들기도 하고, 쟁기나 불도저의 삽날이 흙을 깎기도 하지만 흙은 자기 혼자서 변덕을 부리거나 심술을 내는 일이 없다.
농부가 흙을 믿지 못하면 씨앗을 뿌릴 수 없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가을의 추수할 것을 믿고 1년 동안 땀을 흘리는 것은 바로 흙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기는 믿음(信)을 상징하는 기운이다. 토기형의 사람은 얼굴이 둥글고 원만하다. 성품도 믿음성이 있고 변덕이 없으며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친화력이 있어서 누구나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반면에 귀가 얇고 줏대가 없어서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성향이 있다. 집이나 건물의 터가 토기가 좋은 땅이면 반드시 재물이 쌓인다. 토기가 강한 집에서 살면 굶는 걱정은 안 해도 좋다.
위장의 기운이기 때문에 먹을 것을 그 기운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토기가 강한 계룡산에 올라가면 금새 배가 고파지고 어떤 음식이던지 맛이 있으며,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4) 금기(金氣)
사과를 머리 위에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느껴볼 수 있는 파동이다. 금의 기운은 폐(肺)와 대장(大腸)을 관장하지만 오주(五主)로 볼 때는 피부(皮)의 기운이고 오근(五根)일 때는 코(鼻)의 힘이다. 금기의 색은 흰색이며 나타내는 덕목은 의로움(義)이며 그 맛은 맵다.
금기는 온 몸의 피부를 통하여 기운이 움직이기 때문에 금기를 받고 있으면 피부의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난다. 그래서 손에서 느끼는 감각은 손끝을 건전지에 대었을 때와 같은 약한 전류감 같은 짜르르한 기분이 손바닥의 피부에서 느껴진다. 손의 근육 속에서 화농했을 때처럼 욱신거리는 감각은 목기이고 속살에서 부풀어오르는 느낌은 토기인데 반해 피부 겉면에서 저릿저릿한 전류 같은 것이 흐르면 금기이다. 욱신거리는 느낌과 팽창감과 전기감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정 기간 수련을 하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가 있다.
↑금기의 느낌
머리에서 느낄 때는 금기가 코의 힘이기 때문에 코의 뿌리가 있는 양미간의 높이에서부터 안면의 피부를 통해 턱까지 타고 내려오는 전류감으로 느껴진다. 눈에서부터 기운이 시작되어 머리 둘레 전체를 덮고 위로 올라가는 압박감은 목기이고 코에서부터 아래로 전기같이 타고 내려오는 것은 금기이다. 금기는 모발로 덮인 머리의 뒤쪽보다 피부가 노출된 안면부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는 기운이다.
금기가 형상으로 나타날 때는 정사각형이다. 네모로 각지고 피부가 좋고 흰 얼굴을 가진 사람이 금형인데 이런 사람은 의기가 있고 관운이 좋다. 그래서 금기의 기운이 강한 터에 자리잡은 집에서 고시 합격생이나 고위 공무원이 많이 나온다. 형상 중에서 정사각형은 가장 안정된 꼴이다.
또한 폐와 대장이 조절하는 감정은 슬픔이기 때문에 자기 연민이 강한 면이 있고, 울증에 빠지기 쉬우며 비극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역시 지사(志士)나 의사(義士) 중에 금형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5) 수기(水氣)
수기의 파동은 손에 검은콩이나 감 또는 양파를 올려놓고 느껴볼 수 있다. 수기는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을 관장하며 생식 비뇨기 전체의 기능을 좌우한다. 오주(五主)로 볼 때는 인체의 뼈를 채우고 있는 기운이며 오근(五根) 중에서는 귀의 힘이다. 색으로는 검은색이고 맛으로는 짠맛이 수의 기운이다. 물은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것이어서 기운을 느껴보면 인체기(人體氣)의 배출구인 손가락 끝으로 흘러서 새나가는 느낌을 준다. 이때의 기분은 열 손가락 끝으로 기운이 나가는 감각이 마치 손톱이 길어지고 있는 기분을 갖게 한다.
↑ 수기의 느낌
수기는 손보다도 머리로 느끼는 것이 더욱 확실하고 명료한 감각이다. 이 기운은 앞서 설명한 화기나 목기와 혼동하기 쉬운 감인데, 화기가 아지랑이처럼 머리카락 위에 맴도는 것과는 달리 수기는 귀의 힘이기 때문에 귀에서부터 머리 둘레를 따라 이마의 위쪽으로부터 두피를 타고 올라간다.
물을 담는 저수지나 그릇은 모두 위가 넓고 아래가 좁다 강의 단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의 형상은 역삼각형이고 색깔은 검으며 맛은 짜다. 또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장애물을 만나면 비켜가고 막혔으면 돌아간다. 이런 물의 성질과 같이 수형의 사람은 머리가 좋고 임기응변이 강하며 계산이 빠르다. 수기가 좋은 터에 자리한 집에서는 학자가 많이 배출된다.
6) 삼초(三焦)
7) 골기(骨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