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어둠의 카르마를 씻는 길은 무엇일까?
카르마는 한 개인에게 검은색 에너지가 강하게 뭉쳐있거나 주변에 검은색 입자이든? 직선이든? 곡선이든? 상관없이 먹구름같은 에너지가 가득 채워진 것을 뜻한다.
이 카르마는 스스로 자신은 착하고 선하게 산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에게 꽉 차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선하다고 자부하는 기준치에 빛의 신들은 NO!라고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집단 폭력의 광기가 학생들부터 사회의 일터부터 세상곳곳에 등장하는데 특정 누군가를 향한 괴롭히기 폭력은 가해자들만 아니라 구경하는 방관자들(심적고통을 못느끼는 자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된다.
새까만 카르마를 씻는 길은 바로 타인의 당하는 부당한 고통에 대해서 본인이 당한것같이 가슴 아프다고 고통을 느끼면서 집단적 폭력의 광기가 나쁘고 올바르지 않다고 인식을 하는 마음자세를 강하게 가지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부당하고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그것을 직접 옆에서 보고 듣고도 알면서도 구경을 태연하게 하면서 당하는 사람이 "당해도 싸다" "재미있다" 등등의 심뽀를 유지한다면 본인의 카르마가 새까맣게 쌓이게 되는 일이다.
즉 직접적인 폭행의 가담자는 아닌 구경꾼이지만 방관자 입장을 떠나서 마음자세가 안타까움이나 피해자 입장에 서서 공감하는 자세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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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인간의 실상(뉴스속 사건사고의 인간군상)
(1)
어떤 인간들은 뉴스 속 사건사고 속 불행한 사건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불쌍하다 외치고 동정심 생긴다고 떠든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 있는 자기 가족은 죽이지못해서 발작하고 괴롭힌다.
(2)
어떤 인간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잘 웃는다.
그러나 정작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인간의 형상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자만한다. 이유는 집밖에서는 좋은 사람 대접을 받으니까~
(3) 99명 다른 인간들에게는 잘하면서 누군가 싫고 미운 단 1명이 있다면 그 싫어하는 1명 때문에 새까만 카르마업력이 형성되어서 본인의 에너지장을 꽉 채울수 있는것이다.
이유는 그 1명이 집단폭력 광기의 희생자였는데도, 그것을 직접 본인 눈앞에서 확인했는데도 못본체. 모른체. 안본척. 무덤덤. 감정동요가 일체 없이 천연덕스럽고 태연한 마음자세를 가졌다면, 이런 상황들을 다 지켜보는 빛의 신들은 분노를 한다.
즉 카르마업력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잔뜩 쌓는 길이다. 타인의 고통을 현장에서 목도를 하고도 태연한 자들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 억울해서 눈물을 쏟는데, 자신을 위한 눈물은 카르마청산에 도움이 안된다.
(4) 타인들 중 뉴스나 미디어 매체속 대상이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겪는 삶속 현장에서 가해자로서 악행들을 뻔뻔하게 자행하면서도 아무일도 아닌척, 태연한척, 잊어버린척, 다 지난일이니까~타령하는 자들은 본인이 쌓은 어둠심리가 카르마 업력의 새까만 기운대로 쌓이고 쌓인다는 것을 일체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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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하고 태연하고 침착한게 장땡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들은 공통적으로 살인할때 쾌감을 느낀다고 떠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자들은 살인을 할때 아주 침착하고 차분한 기분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은 수행이 잘되어서 그렇다고 해석할것인가?
영성계는 개념 왜곡을 시키는 자들의 헛소리들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런자들은 인간의 기본적 상식과 도덕을 파괴하는 발언들을 너무나 쉽게 지껄여대면서 스스로 깨달은 부처인냥 처세를 하는데,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사랑은 과연 몸끼리 부딪히는 성접촉인가? 사랑 개념을 이런 형이하학적인 말초신경 자극에만 촛점을 마추는 자들이 많기때문에 세상이 풍기문란의 도가니가 된것이다.
이삼한 성자는 개념들을 쉽고 간단하게 가르쳐주는 특별한 분이다. 복잡한 개념들은 대체로 생략해버리고 쉽게 누구나 알아듣고 실천하도록 설명해준다,
사랑에 대한 진실한 개념은 이삼한 성자가 설명한 것이 가장 정확하고 촛점이 뚜렷한 개념이다.
자기애가 아니라 이타성을 강조한다.
특히 본인 주변에서 가까이 접하는 자들을 향한 마음자세가 얼마나 올바른지? 여부가 진정한 사랑이며, 이것이 본인 의식 속의 업장을 다 태워서 카르마를 벗어난후에 열반의 길(차원)에 들어서는 쉬운 길이라고 강조를 했다.
셋째, 오욕(五慾)으로부터 멀어졌다.
명예를 탐하지 말라.
물질을 탐하지 말라.
색을 탐하지 말라.
술을 탐하지 말라.
고기를 탐하지 말라.
<여래의 가르침 '계(戒)'>
넷째, 진리 속에 있는 일을 알아보고 말하게 되었다.
나는 진실한 자요,
나는 진리를 말하는 자요,
나는 있는 것을 보는 자요,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다.
<안내서 '깨달음·Enlightenment'>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ambbma&logNo=222509269047&proxyReferer
회심
1997년 11월에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에서 유명한 마하초라 불교대학(Mahachula Buddhist University)에서 28일에 강연회를 가졌다.
나는 한국어에서 영어로, 대학의 부학장은 영어에서 태국어로 통역을 했다. 강연회는 오후 2시 반부터 3시 반까지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으며, 강연장에는 교수와 학생 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참석했다. 강연자에 대한 소개로 강연회를 시작했다.
"본 강연회의 강연자는 고타마 부처 이후 해탈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신 분으로서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세상에 있는 일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의와 양심을 가르치고 있다.”
곧이어 한국인 연사의 강연이 이어졌다.
나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고타마 부처의 가르침과 같지만, 고타마 부처가 밝히지 못한 몇 가지를 추가로 더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깨달은 자가 날 수 없었던 것은 깨달음의 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완전한 깨달음은 두 가지의 방법을 통해서 성취할 수가 있다.
하나는 고행을 통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통하는 방법이다.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이 방법을 선택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 고타마 붓다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고타마 붓다도 짧은 시일에 깨달음을 이룬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그 일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근본이 나약한 자가 고행을 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면 자기를 망치게 된다.
사랑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방법에 대해서 확인해보자.
이 방법은 알고 보면
누구나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첫째 조건은 거짓을 버려야 하는 일이다. 거짓이 없어지면 있는 일이 있는 그대로 보이게 되어있다.
두 번째 조건은 자신 속에 양심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끝없는 사랑을 자신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 가거나 비웃거나 해치려 한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가슴속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세상 일과 부딪칠 때마다 가슴 속에서 불을 일으킨다.
이 불이 의식 속에 있는 업을 태운다.
업이 타면 탈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의지가 커져서
결국에는 해탈에 이르게 되어
부처가 될 수 있다.
이 길은 누구나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길은 여러분 속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거짓을 버리고 있는 일을 보고,
그 있는 일 속에 있는 좋고 나쁜 일들을 세상에 알리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지 깨달음의 길과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