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5·18 유족이 편지 낭독하자… 文대통령, 안경 벗고 눈물 닦아
대통령 기념사에 박수 24차례
보훈처 기획… 53분 최장 기록… 검색대만 통과하면 참석 가능
역대 최대 규모로 거행돼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의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해 방명록에 쓴 글. 문 대통령은“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청와대 |
기념식엔 문 대통령, 4부 요인, 여야 대표, 5·18 유족·유공자, 4·19 단체, 세월호 참사 유족, 일반 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해 1997년 정부 기념일 지정 이후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좌석 2000여 개는 행사 한 시간 전에 모두 찼고, 시민 수천 명이 중앙 통로에 도열해 문 대통령을 기다렸다. 문 대통령이 오전 9시 50분쯤 5·18묘지 정문인 '민주의 문'에 나타나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문재인'을 연호하는 사람도 많았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참석자들은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주요 인사들과 기념탑에 헌화·분향했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은 세월호 배지는 착용하지 않았다.
유족 안아준 文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 5·18 때 희생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를 안고 있다. /김영근 기자 |
5·18 유족 김소형(37)씨는 기념 공연 '슬픈 생일'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전남 완도에서 직장을 다녔던 아버지 김재평씨는 1980년 5월 18일 딸이 태어난 것을 보려고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 총탄에 사망했다. 김씨는 "5·18은 제가 이 세상에 왔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제 아버지를, 제 어머니의 남편을 빼앗아간 슬픔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씨가 낭독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자 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문 대통령은 퇴장하는 김씨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위로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이어 가수 권진원씨와 광주시립합창단이 '그대와 꽃피운다'를, 가수 전인권씨가 '상록수'를 불렀다. 전씨는 지난 대선 기간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의원을 지지했었다.
문 대통령 기념사는 15분 동안 이어졌다. ▲5·18 진상 규명 ▲헬기 사격, 발포 명령 규명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약속한 문 대통령 기념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수가 24회 나왔고, 기념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가 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했다. 문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각각 잡은 손을 흔들며 악보를 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일부 의원과 참석자들은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와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앞서 일부 참석자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여긴 왜 왔느냐"며 야유를 보냈다.
국가보훈처가 기획한 이날 기념식은 53분 동안 진행돼 역대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념식은 20분간 진행됐다. 그간 기념식엔 초청장 소지자만 참석할 수 있었지만, 올해 기념식장엔 누구나 검색대만 통과하면 들어올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행사가 끝난 뒤 윤상원·박기순씨, 김재평씨, 행방불명자 묘역을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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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zum.com/articles/38020282
국민들 가슴 뭉클하게 한 文 대통령 5·18기념식 3장면
유가족 보듬고…시민과 함께 입장…박수·환호 넘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유가족인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광주시민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특히 기념식에서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행사 하루가 지난 19일에도 모두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격식 없고 소탈한 모습에 시민들은 '감동적이었다', '대한민국이 함께 울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시민들에게 오랜 기억으로 남을 문 대통령의 감동적인 3개 장면을 모아봤다.
◇유가족 보듬으며 따뜻한 위로
전 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순간은 대통령의 기념사 뒤 이어진 기념공연에서다.
'슬픈 생일'을 주제로 한 이 무대는 1980년 5월18일에 태어났으나 사흘 뒤 계엄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37·여)의 사연이 모니터를 통해 소개됐다. 이어 소형씨가 직접 무대에서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영상을 지켜보면서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문 대통령은 소형씨가 편지 낭독 후 눈물을 흘리면서 무대 뒤로 나가는 순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형씨를 향해 걸어갔다.
두 팔을 벌려 소형씨를 안아주려 걸어 나가는 대통령의 돌발행동(?)에 기념식 참석자들은 물론 청와대 경호팀도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소형씨를 10여초간 꼭 껴안고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문 대통령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울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공식행사 뒤에는 소형씨와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함께 참배하는 애틋함을 보여줬다.
행사 뒤 소형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대통령께서 제 손을 잡아주면서 울지 말라고 하시더라. 아버지 묘소도 함께 참배하러 가자고 했다"며 "울고 있는 저에게 어깨도 빌려주시고 너무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내빈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17.5.18 |
◇시민들과 함께 입장하며 파격 행보
기념식장에 입장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 역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경호 등의 이유로 이전 대통령들이 모두 5·18묘역 정문인 '민주의 문'을 이용하지 않고 차량을 이용해 행사장에 우회 입장한 반면 문 대통령은 일반 시민들과 함께 '민주의 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입장 모습에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던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연호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의 문'을 이용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첫 대통령에 이름을 올렸다.
기념식장에 입장한 뒤에도 문 대통령은 몸을 낮춰가며 5·18유가족과 일반 시민들, 초청인사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눴고 이로 인해 기념식 시작이 4분가량 늦어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박용춘씨(69)는 "국가 최고 권력자인 문 대통령의 격식 없고 소탈한 모습은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시민들을 향해 이른바 '90도 폴더인사'를 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 역시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묘지 참배를 마친 뒤 나오며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17.5.18 |
◇13분 기념사에 시민들 23회 박수로 화답
그동안의 5·18기념식과 기념사가 고요하고 엄숙했다면
이번 37주년은 환호와 박수가 넘치는 무대였다.
13분 동안 이어진 문 대통령의 5·18기념사에는 시민들이 23회의 박수를 보내는 파격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5·18 진상규명', '헬기사격과 발포명령자 규명,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등을 약속하면서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대통령이 기념사를 마친 순간에는 기념식장에 참석했던 1만여명의 시민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내며 대통령의 약속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 풀영상]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http://zum.com/?af=ay#!/v=2&tab=home&p=3&cm=newsbox&news=0372017060538356100
[ 사회적 질환, 자살①]순간의 오판 자살…남겨진 가족에겐 평생 고통
자살만큼 비극적인 결말은 없다.
당사자는 죽음으로 끝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살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 이상의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사진=당사자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겠지만 남겨진 가족에게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슬픔의 시작이다. 지난 2015년에만 한국에선 8만여명의 자살유가족이 생겨났다. ] |
▶자살 가정 붕괴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져…국가가 도와야 =“수십년간 형님, 동생하며 지내왔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와 달라는 외침에 ‘이제 그만 하라’며 핍박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난달 26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김향금(55) 씨는 2010년 12월10일 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집에 홀로 남아있던 남편이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만을 남기고 거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수십년간 국내 한 유명 통신사의 건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남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것은 실적압박이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평소 아부할 줄 모르는 남편은 번번히 승진에서 탈락했다”며 “자살 직전엔 24시간 쉬지 않고 울려오는 회사 문자에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김 씨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사망 후 이전과는 달라진 회사와 회사 동료들의 태도였다. 회사는 김 씨 남편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자살이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편 직장 선ㆍ후배들은 회사의 눈치를 보며 김 씨와의 연락을 끊어갔기 때문이다. 김 씨는 “회사에선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하는 대신 시부모님을 한번 찾아뵙고 위로해 달라는 요구조차 차일피일 미루며 모른 척 했다”며 하소연했다.
시댁 식구들이 보낸 원망의 눈초리도 김 씨의 마음을 후벼팠다. 김 씨는 “남편을 어떻게 챙겼길래 이런 문제가 생겼냐는 듯한 시댁 식구들의 질책과 따가운 눈초리가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의 죽음은 곧장 경제적인 압박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과 대입을 준비 중인 작은 아들의 학비를 대다보니 남편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도 금방 다 써버리고 거액의 담보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돈을 갚기 위해 식당 알바, 파출부 생활까지 해야했다.
김 씨는 “한 가정에서 남편이 자살로 죽을 경우 가정 경제가 붕괴하고, 아내가 죽을 경우 육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자살유가족이 자립할 수 없다면 가정과 사회에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자살을 예방하는 동시에 자살유가족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살한 고인들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게 없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살유가족을 편견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 장애인 가족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흉이었던 시절이 이젠 사라졌듯, 자살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바뀌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7년전 남편을 자살로 잃은 자살유가족 김향금 씨. [출처=본인 제공] |
▶“자살은 유가족에게 평생 마음병”
지난 3일 경기 고양 일산에서 만난 정규환(31) 씨는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닌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씻어낼 수 없는 마음 속 상처가 있었다. 12년전 어느 날 누구보다 의지하고 지냈던 누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져 가족들 곁을 떠났다. 누나의 죽음은 정 씨는 물론 정 씨 부모님들의 삶도 송두리째 허물어버렸다. 정 씨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아버지를 겪으며 서로 의지를 많이 해오다보니 누나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너무 컸다”며 “자식을 잃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 역시 1년간 생업을 접었고, 우리 가족은 대화와 웃음을 잃은 채 각자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설명했다.
1년간의 휴학 후 정 씨는 슬픔을 잊기 위해 정신없이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사랑과 애정이라는 감정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포악한 모습만 남은 정씨를 주변 사람들이 피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정 씨는 “약해진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으려 하다보니 오히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도 관계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런 정 씨의 마음 속 상처는,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호주로 떠났던 워킹홀리데이 1년을 통해 아물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에게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생활을 조금씩 털어놓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지금껏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아버지의 상처도 보이기 시작했단게 정 씨의 설명이다.
12년전 평소 의지하며 지내왔던 누나를 자살로 인해 잃은 정규환 씨. [사진=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
정 씨의 아버지 역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었다. 정 씨는 “아버지는 나처럼 마음을 치유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안고 살아가다보니 할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던 할머니에 대한 원망은 물론 자신의 부인, 자녀들에게까지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며 “어쩌면 아버지도 자살이란 비극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자살은 사망한 사람에겐 세상이 끝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만, 남겨진 유가족들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비극을 안겨주는 무서운 질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 정 씨의 생각이다.
문구도매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 씨는 실용무용과를 졸업한 ‘춤꾼’이기도 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자살 방지에 보태고 싶다”며 “춤 공연과 강연 등으로 자살 시도자는 물론 유가족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삶을 앞으로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605153103806
'청문회 스타' 주진형이 말하는 '20년 지기' 김상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왼쪽)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특히 주진형 전 대표는 5일 CBS노컷뉴스에 "재벌 개혁과 불공정 거래 개선은 김상조 후보자 한 명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며 "결국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얼마나 할 것인가라는 의지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주 전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이날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공유하면서 "홍익대 전성인 선생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의혹 검증 공세에 관해 글을 썼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가 쓰는 글은 논리정연하고 꼼꼼하기가 짝이 없다"고 운을 뗐다.
"사실 김상조를 변명하는 것은 좀 객쩍은 일이다. 워낙 깨끗이 살아온 사람이다. 자기 자신 성품 탓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휘두르는 재벌을 상대로 전면에 나서서 싸우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 몸가짐에 신경을 써왔다."
주 전 대표는 "재벌들은 일종의 냄새 안 나는 독가스와 같다"고 지적했다.
"(그 독가스는) 한국 사회 어디든지 스며들어가 있다. 조금이라도 흉을 볼 건덕지가 있으면 그것을 침소봉대해서 여기저기, 주로 언론을 통해서 수근거리게 한다. 김상조에게도 그런 짓을 해봤지만 하나도 안 통했다. 지금까지 꼬투리 하나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청문회가 드러낸 것은 그의 과오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이었다."
그는 "나는 그(김 후보자)를 20년 간 봐왔다. 흠이 몇 개 있기는 하다"며 글을 이었다.
"첫째, 담배를 여전히 피워서 얼굴이 일찍 늙었다. 둘째, 옷을 못 입는다. 셋째, 상대방이 너무 허튼소리를 하면 참지 못하고 너무 티나게 픽 웃는다. 이 세 가지는 그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내가 지적질을 했지만 고쳐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것 말고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다. 아, 하나 더 있다. 나보다 머리숱이 많다."
◇ "김상조의 무기는 업무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이 둘 동시에 갖춘 사람 드물다"
(사진=주진형 전 대표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의원들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마나 자기들끼리는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듯한데, (상대방이) 국회 바깥으로 넘어가는 순간 장관이 됐든 참고인이 됐든 증인이 됐든 아무에게나 막말을 해도 상관 없다는 그 의식, 그것이 결국은 특권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가끔 그렇지 않은 의원들이 있으면 눈에 띄지만,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그렇다. 이 점을 김상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절감했다."
그는 "(의원들은 상대방에게) '이러이러한 의혹이 있는데 설명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죄를) 뒤집어씌우는 식으로 말한다"며 "그 버릇이 왜 꼭 그대로 가는지, 그것은 여야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김상조 후보자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이라고 보나'라는 물음에는 "업무에 있어서의 열정과 전문성"이라고 답했다.
"이 둘을 동시에 갖춘 사람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사람은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지치기 마련인데, 재벌 개혁 운동을 위해 무려 20여 년을 꾸준히 매달리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 분(김 후보자)은 지치지도 않는다. 게다가 남이 하는 말 대강대강 주워 듣고는 자기 진영에서 좋아하는 소리나 하면서 먹고 사는 경제학자들도 많은데, 김상조 씨는 항상 본인이 직접 꼼꼼하게 챙기고 고민하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뭔가를 생각하는 자세가 굉장히 훌륭하다."
주 전 대표는 "밖에서 개혁의 방향을 주창하는 것과 안에서 실제로 조직원을 동원해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라며 김 후보자를 향한 조언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굳어진 문화를 갖고 있고, 자기 나름의 안위와 커리어를 생각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직의 장으로서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열정을 갖고 자기들이 하던 업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일이다. 물론 (김상조 후보자가) '그것을 잘해 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지만, 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는 특히 "사실 지금까지 개혁성 인사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실제적인 변화는 별로 없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권을 쥔 사람이 공정거래, 그러니까 크게 보면 재벌 개혁과 불공정 거래 개선이라는 두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변화가 별로 없었던 것은) 정권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위원장 한 명이야 2, 3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도 이것을 뻔히 보고 있다. 결국 그 조직의 이해관계를 타파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이 무엇을 얼마나 할 것인가라는 의지에 달렸다. 김상조 후보자 한 명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http://news.zum.com/articles/39734518
[전문] 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경축사
“나라 위해 모든 것 바친 독립유공자들, 깊은 존경”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 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 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
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 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 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 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 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 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 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 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 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 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 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 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 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 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
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 모두 찾아내겠습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 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 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 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 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 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 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 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 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커졌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 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 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 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 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 전 세계와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 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 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 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 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 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 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 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 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 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 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 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 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 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 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 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와 역사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
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 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 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 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 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 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
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
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광석 - 그대잘가라 (노무현 추모)
듣고 있나요 - 이승철
[추모영상 노무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