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선(纯善)
글 / 귀진(歸真)
[정견망] 순수한 선(纯善), 그는 관념을 지니지 않은 자연의 표출이며 본성의 표현이다. 순수한 선(纯善)은 아름답지도 부드럽지도 않고, 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틀이 없고 고려가 없다. 순수한 선(纯善)은 물질과 정신의 화목한 통일이다. 순수한 선(纯善)은 포용과 이해의 일체이며 만사만물에 대한 소통이다. 지순(至純), 지선(至善) 그것이 바로 반본귀진의 과정이다.
그러나 부동한 물질, 부동한 생명에는 부동한 표준이 존재한다. 마치 강철은 도자기가 녹이 쓸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도자기 또한 강철의 단단함을 영원히 체험할 수 없다. 그것은 물질의 구성 본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관념을 지니고 다른 사람을 가늠한다면 영원히 관용할 수 없고 영원히 자신의 관념에 의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거슬리게 느껴져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두개의 서로 다른 생명이고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시기이든지를 막론하고 마땅히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데 표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만이 비로소 바다의 용량이 있게 되며 비로소 다른 사람의 우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성(成), 주(住), 괴(壞)는 자연법칙이고 우주의 원용한 기제(機制)를 믿어야 비로소 차분하게 일체를 마주할 수 있다.똑같이 어떠한 시기이든지를 막론하고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바 그렇게 하면 진실을 잃어 영원할 수 없는데 그것은 생명에는 자신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선(善)이 선할 수 있음은 선(善)을 행하는 사람이 자신이 선(善)을 행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선(善)을 위하여 선할 때 본신에는 공리색채(功利色彩)와 목적성을 지니고 있어 순수하지 못하다. 때문에 진실한 선(眞善)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하기 위하여 선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다. 고대글자 중의 선(善)은 한마리의 양(羊)과 풀(草)한포기였다. 양에게 푸른 풀을 주는 것이 비로소 선을 위한 것인바 자신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양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특점과 접수능력을 충분하게 고려하고 선을 행하여야 비로소 선과(善果)를 맺을 수 있다.
생명이 진, 선, 인에 동화하면 저도 모르게 지선지순(至善至纯)에 도달할 수 있다.
2003-12-12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12/12/24883p.html
즉 정해져 있으나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큰 범위든 작은 범위든 모두 정해져 있으나 일부 불안정한 요소가 있어서 작은 범위에서는 선택이 가능하고 이는 우주적으로 자유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 공간에서는 인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기계처럼 신들이 사람을 통제하여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면 이 윤회라는 시스템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택을 하는 그 순간 신이 생각하는 방향(출제자의 의도)과 일치한다면 바로 바른 선택을 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연인 것이다. 신의 성품에 부합하는 것이 신이 배치한 대로 따르는 것이며 이 선택대로 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고 도움이 될 것이다.
선택을 잘못하면 신들의 의도와 반대방향으로 가기에 반드시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그럼 그에 대해 다시 배치를 해야 하며 동시에 난이도도 조정을 해야 한다. 그럼 실험을 다시 해야 하고 신들도 야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부당한 선택을 강요받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최대한 나를 포함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가 기왕에 뭇 생명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른 이들도 우리와 같이 선택을 하면서 살 것이다. 그럼 다른 이들이 선택을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고 응원해줄 수 있다. 만약 모두가 모두에게 삶의 선택을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불만, 불평등, 각종 사회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며 그동안 저평가되어왔던 이 윤회라는 시스템의 위상을 높이는 작용을 하여 신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윤회는 과거의 교훈, 현재의 선택(태도표시), 미래의 설계라는 의미가 담긴 시스템이다. 이 세 가지 기본 규칙을 바탕으로 다음 생이 존재한다는 개념인데 신으로 성취될 때까지 계속 새로운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규칙은 모두 심성을 바로 잡고 스스로 경험한 지혜, 배운 일체를 통해서 다른 생명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심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시립대 교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만 줄곧 이야기 하며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현재만 줄곧 이야기하고 지금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고 당장 눈앞의 것만 신경을 쓴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만 잔뜩 말하며 자신이 미래에 기대감만 잔뜩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 교수는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중요한 것으로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현재에는 이렇게 이어졌고 미래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즉 나의 입장에서는 우주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며 기승전결이 있어야 건강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윤회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시스템인데 다만 수많은 생명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출제자의 의도와 멀어졌고 다들 세 가지를 모두 중시하여 균형을 이루어야하는데 편향적으로 한, 두 가지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다보니 결국 최후에는 심성이 부패되고 수많은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나타났다.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지 출제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생명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출제자의 의도와 멀어졌다고 하여 출제자가 문제를 잘못 낸 것이 아니며 시험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이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지는 않은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는 당연히 알 것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알고도 일부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 것이며 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자신의 기준에 상대방을 맞추지 말고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하고 입장이 난처하지 않게 배려하려고 하였다면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모두에게 원하는 기준이 있고 자신만의 다른 이에게 요구사항과 색안경을 가지고 사는데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상대방이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서로가 잘못되지 않았는데도 서로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난이도와 기준이 높다면 당연히 출제자의 의도와는 부합되지 않는다. 물론 엄하게 말해야할 때는 엄하게 말하는 것이 맞지만 최대한 선의로 좋은 말로 풀어서 상대의 입장이 난처하지 않게 또한 봉사정신에서 잘 대해 줄 수도 있음에도 조그만 이익과 조그만 자존심으로 상대방을 깍아 내리는데 신들이 이것을 원하겠는가? 설사 엄하게 말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고 고려해줄 수 있는 것으로 우주 중의 서비스 정신이라는 말은 정부가 국민 상대로만 복지, 대국민 서비스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모든 생명이 모든 생명에게 그렇게 복지,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대해야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라고 했더니 서로에게 바라는 난이도가 높고 기준이 높은데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말인가? 결국 윤회 시스템의 참여 생명과 그 생명 배후의 신들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어놓고 한다는 말이 윤회시스템에 결함이 있네, 출제자가 문제가 있네, 형식이 잘못됐네 하면서 심성의 중요성은 말하지도 않는다. 윤회가 심성의 중요성을 알기 위한 것인데 지혜를 알면서도 쉽게 가르쳐주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만의 난이도를 요구하면서 상대방을 실험대상으로 삼는데 이것은 윤회시스템을 농락하는 것이며 출제자를 농락하는 것이다.
윤회에는 형평성이라는 중요 출제 의도가 있는데 만약 높은 기준으로 요구하고 서로에게 상대방이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이 바라는 것을 강요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며 윤회를 엉망으로 만든 것은 참여자들과 배후의 신들이지, 절대로 윤회 시스템 자체의 결함이나 출제자의 부패가 아니다. 사실 엉망으로 만들려고 했던 일부 고층 세력(구세력과 그 잔재들)이 있는데 그것들의 뿌리는 이미 정법에 의해 처리가 되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지혜와 경험 등이 모두 심성을 이해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반드시 기준이 높고 가장 엄혹하고 가장 극단적인 문제가 가득한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지만이 자신들이 인정할 수 있고 비로소 미래로 진입할 수 있으며, 신으로 성취될 수 있는 생명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좋은 생명들을 마구잡이로 사람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인권을 탄압하는데 그것들은 최후에 인류를 멸망시키려했다! 그것들의 계획은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으며 모두 실패했다.
인류 사회의 큰 사건은 모두 천상과 대응되는 것이며 세계 대공황과 같은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인류 사회의 각종 큰 사건과 문제는 모두 하나의 사업설명회이며 그것들은 이 사업설명회의 타당성을 설명했는데 인류는 단점이 너무 많고 윤회라는 시스템은 문제가 너무 많아서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각종 사건, 문제로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여 검증해야한다고 하였는데 모두 거짓말이다. 그들은 인류와 윤회 중의 생명들을 승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승화를 반대하고 정법을 반대했으며 윤회의 기본 목적을 부정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목적을 품고 티베트에 가서 공(功)을 배우는데, 다른 사람을 사부로 모시고 장밀(藏密)을 배워 장래에 기공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돈을 벌려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진정하게 진수를 전해 받은 활불(活佛) 라마는 모두 아주 강한 공능이 있어, 공을 배우려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낼 수 있다. 그가 무엇을 하러 왔는가는 그 마음을 한번 보기만 하면 곧 안다: 여기에 와서 이것을 배우고, 나가서 기공사가 되어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며, 이 문(門)의 부처수련 방법을 파괴하려고 하는구나.
이처럼 엄숙한 부처수련 법문을, 당신으로 하여금 무슨 기공사가 되어 명리를 좇아 함부로 파괴하게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무슨 동기인가? 그러므로 아예 그에게 전하지 않아 진수를 전해 받을 수 없다. 물론, 사원(寺院)도 많아 겉모양의 것을 조금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마음이 바르지 않아 기공사가 되어 나쁜 일을 하려 할 때면 부체(附體)를 불러올 것이다. 부체동물도 공이 있지만 장밀이 아니다. 진정하게 법을 구하러 티베트에 간 사람은, 한번 가면 아마 그곳에 자리 잡고 나오지 않을 것인즉, 이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다.
이상하다. 현재 많은 도가 공법에서도 관정을 말한다. 도가는 맥으로 가는(走脈) 것인데 무슨 관정을 하는가? 내가 알기로는, 내가 남방에서 공을 전할 때, 특히 광동(廣東) 그 지방에 비교적 많았는데, 10여 가(家)나 되는 난잡한 공법이 관정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뜻인가? 그가 당신에게 관정해 줌으로써 당신은 그의 제자가 되고, 다시는 다른 공을 배울 수 없으며, 다른 공을 배우면 그가 당신을 징벌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짓을 한다.
이것은 사문왜도(邪門歪道)가 아닌가? 그가 전한 것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서, 군중들은 배운 후 좋은 신체를 얻으려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것을 해서는 뭘 하는가? 어떤 사람은, 그의 공을 연마(練)하면 다른 공을 연마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사람을 제도하여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남의 자제(子弟)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이 모두 이렇게 하고 있다.”
이 사업설명회에 수많은 신들이 에너지를 투자했고 곧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한 예가 많은데 누가 참여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며 누가 참여했다면 누가 그것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왜냐면 정법과 윤회의 형평성 문제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사람을 제도하려하고 사람을 승화시켜 천국세계로 갈 수 있도록 했는가? 아니면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인가? 안 그래도 다들 힘든 생명들에게 난이도를 더욱 가중시키고 더욱 못살게 굴었는데 이런 행위들로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남의 자제를 망치는 짓이 아닌가?! 그것이 위대한 신으로서 할 짓인가?
극소한 일부 세력이었던 그것들은 그것들의 몇 억 배도 넘는 마음으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자식처럼 대하는 정신들의 명예마저 함께 떨어뜨렸다! 그것들은 정법이 생명을 승화시키려고 하자 정법이 생명의 검증을 할 때 장점을 찾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약점을 잡아 괴롭히고 그것으로 떨어뜨리면서 자신들이 위덕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위덕이 아니라 정법을 아주 망쳐버린 것이며 인류사회로 봐도 인권을 탄압했고 사회를 어지럽게 하여 마땅히 누려야할 생활환경마저 잃게 했는데 어느 면으로 봐도 좋지 않은 것이다.
정법 중에서 위치를 정해야한다는 것이 불안하여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 자신의 미래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아무리 심각한 악행도 서슴지 않았는데 모든 우주와 뭇 생명에 봉사한다는 기점의 우주특성-진선인과 차이가 얼마나 큰가? 모두 위배되었다! 그것들 중 일부가 설사 미래로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절대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정도로 부끄러울 것이다! 그것들은 에너지를 투자받아 마치 정법을 도우려고 한 것처럼 말했지만 모두 사기를 치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회 속에서 희생되고 있는가? 사회가 얼마나 혼란해졌는가? 정신들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그것들은 천상에서 에너지가 바로 우리의 자본금과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투자받은 자본금을 가지고 먹고 튀었다.
먹고 튀었으면 유야무야되는 것이며 본래 근거가 없고 뿌리가 없으며 우주특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유지하고 떠들고 다니는 세력이 도망갔기에 유야무야되었으며 수습은 고스란히 사기당한 생명과 체계가 떠맡게 되었다. 또한 인권을 박해당한 쪽의 진상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 문제도 결국 폭로되고 있고 석가불이 과거 받은 교란, 예수님이 받은 교란, 파룬다파 박해 사건 등은 모두 이렇게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진실이 드러났으며 진상이 폭로되고 있다.
그것들은 도망갈 수 있다고 여겼지만 도망칠 수 없는 것으로 특히 이번 정법은 전 우주 전체를 범위로 하는 것인데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에너지를 먹고 튀어 아무리 에너지가 많아도 공허한 것으로 그것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담보로 그런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다! 이 망가진 일체를 어찌 책임지려하며 윤회라는 시스템의 명예를 손상시킨 것은 어찌 책임질지, 참으로 의문이다. 이것은 교훈으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사기설명회에 에너지를 투자하지 말아야하며 더 이상 그 어떤 생명도 형평성 문제가 가져온 불평등을 통해서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하고 그 누구도 자유의지,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리하자면 윤회는 삶이 끝이 나면 잘잘못과 여러 가지 사항을 정리한 다음 새로운 삶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 속에서 여러 사회 문제가 나타나고 본래 의도와 어긋나자 그것이 심성을 되돌려 바로 잡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지혜나 법의 제정 등의 외부적 문제로 보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후처리 프로세스만을 두었는데 그것들은 하고 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인류를 아예 없애려고 갖가지 멸망 예언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뿌리부터 잘못된 견해로 심성이 부패되어 생긴 문제를 후처리 프로세스, 처벌 방법 등으로 해결한다니 말이 되는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덮어 감추고 스스로 바꾸려 들지 않은 것들이 무슨 불평을 한다는 말인가? 앞, 뒤가 말이 안 되지만 많은 생명과 수많은 신들이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보았고 불평이 많았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또 말했다. 우리 사람마다 모두 안으로 수련한다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心性(씬씽)에서 찾고, 무엇을 잘하지 못했으면 스스로 원인을 찾아 다음번에 잘할 것이며,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사회도 좋게 변하고 도덕도 되돌아 승화되며, 정신문명도 좋게 변하고 치안상황도 좋게 변해, 또 경찰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다른 사람이 상관할 필요 없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의 마음 안으로 찾는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법률이 점차 완비되어 가고 점차 완벽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여전히 나쁜 짓을 하는가? 법이 있어도 따르지 않는가? 바로 당신이 그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나쁜 일을 할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내심을 향해 수련한다면, 그럼 확연히 달라진다. 또 당신이 불공평한 일에 대해 나설 필요도 없다.”
사실 머리를 씻고 지상이던 천상이던 전생의 기억을 지우고 태어나기에 심성의 부패가 적든 많든 이 인류사회 속에서 한번 주변 생명들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좋은 사람이 되기 힘들다는 견해였고 결론만을 해석한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곧 심성에서 생긴 것이며 범죄를 저지르는 자의 심성을 단속해야지, 그의 심성의 문제는 묵인하고 지혜와 제도 등으로 생명을 압박하는데 그럼 보이지 않을 때 계속한다는 그 문제가 심성의 문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고 통탄할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심성을 단속해야한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데 누군가가 태어났다면 사회 중의 많은 이들도 그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신경을 써주고 배려하여 그에게 심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기회가 없다면 모르지만 만났는데 알려주지 않으면 책임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본래 윤회라는 시스템은 모두가 모두에게 배려하고 봉사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한 학교개념이었다.
생각의 경우를 나누어 보자면 우리는 나이 많은 이들의 지혜를 존중하고 배워야한다. 아무리 장점이 보이지 않아도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태어날 때 사회에는 이미 태어나서 활동하고 나이 들어가는 수많은 생명이 있다. 이 선임자라 할 수 있는 생명들은 윤회라는 시스템의 학생이지만 선배로서 태어나는 새싹들을 위해 스스로의 심성을 갈고 닦아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이 있어야한다. 이는 신들이 윤회를 바라보는 개념으로 윤회 중에 학습한 지혜를 통해서 심성을 갈고 닦고 이 심성을 후임들에게 잘 전달해주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태어나는 새싹이 오히려 심성이 좋은 경우가 있다. 지상에서의 전생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거나 천상에서 지상으로 육화한 사람 등의 특수한 경우는 이미 사회 중에 있는 이들보다 심성이 더 좋고 품성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다면 후임자의 장점을 통해서 그의 심성을 배워야하는 것이며 겸손도 함께 닦을 수 있다.
위의 경우들처럼 윤회의 목적은 승화이며 반본 귀진하는 것이다. 윤회의 핵심은 역시 각종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심성을 갈고 닦는 것인데 매 상황마다 최대한의 생명에게 배려하여 위덕을 세우는 것이 목표이다. 그 한 면, 한 면이 모여서 윤회를 졸업하게 되면 수많은 천국세계에서 자신이 이룬 심성이 어디에 부합되면 그 천국세계에서 그 생명을 모셔가고 지상개념으로 스카웃한다. 천국세계로 가면 천인이며 지상으로 내려오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즉, 윤회가 초-중-고등학교의 개념이라면 천국세계는 대학교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음은 2010년 뉴욕법회설법 중의 내용입니다.
“나는, 과거의 종교든 각종 신앙이든, 또한 각종 수련 방식, 그것은 다만 인류에게 수련과 각종 신에 대해 인식하는 문화를 다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약 이러한 사람, 이러한 각자(覺者)들이 와서 이 문화를 다지지 않았다면, 현재 사람은 무엇을 수련이라 하는지, 천상에 신이 있는지, 어떤 신이 있는지를 모른다.
부처가 있고 도가 있으며, 또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 여호와 이런 신들이 있고, 물론 또 많고 많은 각종 신들이 있는데, 그들은 인류가 신을 인식하는 문화를 다졌으며, 사람에게 역사의 과정 중에서 신은 어떠하고, 신은 어떤 표현이며, 무엇이 수련이고, 수련은 모두 어떤 형식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인식하도록 했다.
이 문화를 다진 후, 내가 오늘 법을 전하는데 많이 수월했으며, 나는 더는 무엇이 신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어떻게 해야만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많고 많은 가장 표면적인 것을 나는 모두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모두 이해했고 모두 알게 되었으며, 이 문화는 이미 다져졌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상 그러한 각자들이 세상에 내려온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니다.
오늘날의 대법제자는 우주가 정법(正法)하는 때를 만난 것으로, 다시 말해서 누가 말했든지 간에, 예언이든, 혹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부 현상과 요해한 일부 정황이든, 바로 이 일보에 이른 것이며, 대법제자는 최후의 이 일보의 일을 하고 있다.”
다음은 북미순회설법 중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법을 들을 때,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상을 어떻게 창조하고 규범 지을 것인가? 법을 어떻게 말하려면, 거기에 맞게 인류의 문화와 인간의 이 사상을 육성해야 한다. 전 세계의 사람이 모두 무엇이 德(더)이며, 무엇이 믿음(信)이고, 무엇이 선(善)이며, 무엇이 악(惡)이고, 좋고 나쁨인지를 알고 있는데,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마치 한 막(幕)의 연극과 같은 것으로서, 당신들은 국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영웅인물(英雄人物)에서 강도에 이르기까지,(웃음) 문인(文人), 명인(名人)에서 영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신들이 한 것이다. 여러분은 웃지 말라! 강도 배역을 맡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오늘 설법할 때 사람은 강도가 무엇인지 모르며, 강도의 행위는 어떠하고 사상 감정은 어떠한지, 강도는 어떤 형상인지 모를 것이다. 법(法) 속에는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알 것이다. 『삼국연의』는 하나의 ‘의(義)’를 말하였다. 한 조대(朝代)를 지나면서 세 개의 세력이 서로 겨루는 중에서 충분히 ‘의(義)’의 내포를 표현해 냈다. 더욱이 한 조대(朝代)라는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이 ‘의(義)’의 심층문화를 표현해 냈지만, 오늘날 법을 전하게 되어서야 인류는 비로소 ‘의(義)’에 대해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무엇이 의(義)이고, 의(義)의 표면 뜻과 내포에서 파생된 상호관계와 심층에 반영된 뜻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단지 이 글자의 표면 뜻만 알 것이 아니라 내포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 물론 『삼국연의』 중에서는 사람의 지모(智謀) 등의 내포도 표현하였다.
그 남송(南宋)의 악비(岳飛)는 ‘충(忠)’을 표현하였다. 무엇이 ‘충(忠)’인지 당신은 단지 말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 조대(朝代)의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사람은 진정으로 그것의 진정한 내포와 심층관계에 이르기까지의 행위를 이해하게 되었다.
역사상으로 또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있었으며, 또 공자(孔子)의 중용사상(中庸思想)이 제기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등이 있었다. 석가모니, 노자(老子), 예수의 출현은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무엇이 바른 믿음(正信)이고, 수련(修煉)이며, 무엇이 불(佛), 도(道), 신(神)인지 이 일체를 진정하게 인식시켰다.
역사적으로는 오늘날 인류의 사상을 풍부하게 했고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법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인류의 일체 역사과정에서 모두 이러한 기초를 다졌다. 다시 말해서 대법을 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의 문화를 육성했는바, 법은 인류의 문화에 부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 문화의 산물은 더욱 아니다. 이는 바로 이 5천 년 중에서 우리가 한 것이다.”
그리고 윤회의 목표를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수련을 통해서 불도신으로 성취되는 것이며 이는 역사 중에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노자의 오천언, 기독교의 성경, 석가불의 경문 등은 모두 역사 중에 기록되어있는 것이며 비록 최후의 흐름까지 인류를 책임을 지지는 못했지만 길이길이 심성의 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역사 중에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성취된 이들도 그의 주변 사회 생명들의 심성에 도움을 주고 갔으며 그들은 윤회의 시스템에 이름이 지워지고 신적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그 한 생의 일이 없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내가 에너지를 먹고 튀는 현상에 대해서 폭로한 것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며 형평성을 지금부터라도 조정하여 최대한 난관을 쉽게 바꾸라는 것이다. 그 강도는 역사상에서 심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지만 그 강도도 자신의 죄과를 이미 다 갚고 있으며 역사상의 위덕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태도표시가 가장 중요하다. 정법이 시작되기 전에는 역사적으로 정법을 위해 사상과 문화를 다진다는 기본 목적과 의의가 있었고 최후에 정법을 돕겠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정법이 시작되고서는 절대로 그 어떤 형평성을 어지럽히고 생명을 괴롭히는 짓은 해서는 안 되며 일반 생명이 정법의 일체를 함부로 좌지우지 할 수 없으며 누가 참여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것들의 수뇌는 이미 소탕되었지만 잔재와 일부 신들과 생명이 남았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이런 윤회나 형평성 등에 대해 몰랐다가 지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에 형평성 등의 문제에서 기여할 수 있고 위덕을 세울 수 있으며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법에 장애를 조성했지만 이용당한 생명에게 그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돌을 던질 수는 없기 때문에 비록 조금 부끄러울지라도 정법의 승화를 진정으로 도와야한다. 나는 그들이 정말 잘되기를 바란다.
윤회를 방금 말한 것 같이 승화로 이해하는 것이 신의 의도였으나 실험에서 반드시 목적이 성사되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 인류사회는 성장하면서 물질적인 면은 성장했으나 오히려 정신적인 면, 이 심성에 있어서는 교란을 받고 하락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현재 다시 정법이 시작되었으며 법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심성, 양심을 단속하고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불평하는 것은 바로 내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심성이 엉망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이며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알려주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 알라는 말인가라는 것이다.
신들은 이 때문에 무언의 배치를 하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알려줄 수 있으며 학교에서는 도덕을 가르치고 사회에서는 인권을 가르치며 사회 시스템과 일상생활 속에서 힌트를 남겨두어 스스로 알 수 있게 하려고 각종 실험을 다 하고 있다. 신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모르며 그래도 우리에게 불평하지 않는데 우리도 불평하지 말고 누구의 탓도 하지 말며 스스로 심성을 잘 갈고 닦아야한다. 모두를 배려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최대한 다른 이의 입장과 사정을 고려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정말 어렵지 않은 것이며 지금은 심성을 바로잡는 정법이 시작되었는데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그것은 미래에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며 설사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지라도 신들이 당신들을 영원히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윤회가 지금은 저평가 되었지만 이 윤회도 생명의 승화를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생명의 승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법에 부합하며 이 정법을 통해서 윤회의 평가도 확실히 높아지게 될 것이다.
신경문 중 대법의 복이라는 내용입니다.
“십년 정법에 건곤을 다시 만들어 무량(無量)한 중생을 괴멸 속에서 구도(救度)하였고 무량한 대궁(大穹)의 원용불멸(圓容不滅)의 법리와 무량한 지혜를 개창(開創)하였다. 이는 중생의 복이자 뭇 대법도(大法徒)의 위덕이다.
사부가 십 년간 대법을 전하자, 단지 세간(世間)만 하더라도 정수(定數)가 크게 고쳐져 역사적으로 정해진 혜성(彗星)의 재난이 이미 지나갔고, 제3차 대전을 이미 피했으며, 99년 천지가 훼멸될 근심이 이미 해소되었고, 법정인간(法正人間)이 눈앞에 다가왔다. 세간의 중생들은 대법과 대법도(大法徒)가 구도(救度)한 은혜를 갚을 것이다. 좋구나(善哉), 좋아(善哉), 정말 좋구나(善善哉)!
李洪志
2002년 5월 19일 ”
사실상 이미 증명한 것으로 무슨 세계 3차 대전, 별과 지구의 충돌, 각종 재난이 빗나간 것은 모두 심성을 되돌려 일어난 일이 아닌가? 인류에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는 정법시기 중에서 일어난 일이며 윤회도 목적이 일치하기에 덩달아 윤회의 평가도 올라갔다. 윤회에 불평하는 사람들의 배후 신들은 윤회를 같이 불평하고 있지만 윤회를 좋게 보고 있는 신들도 있다. 윤회도 하나의 시스템인데 회사개념으로 본다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윤회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 곧 윤회에 에너지를 투자하려는 신들이 많아질 것인데 그럼 윤회 안에서 좀 더 많은 생명이 본래의 순수한 승화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성의 상향을 원해서 윤회를 만들었지만 심성이 부패가 되면서 재난이 난무하고 점점 더 업력이 짙어지고 문제가 발생하자, 윤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결함이 있고 형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불평을 했었다. 헌데 구세력을 포함한 신들이 복잡하고 어려우며 극단적인 사회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지만이 인정한다고 하면서 윤회의 목적과 반대로 행동하고 에너지 투자를 했는데 그럼 본인들이 불러온 결과가 아닌가? 어찌 윤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하는가? 본인들이 윤회시스템에 테러를 가하고 있으면서 윤회시스템 자체의 문제라니?!
윤회 시스템은 난이도 어렵게 하고 서로 불신하며 믿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려하고 응원하고 좀 부족해도 포용하고 가슴으로 품고 선의로 알려주라고 했는데 무슨 시스템의 결함이라는 말인가? 어쨌든 정의 체계이던 부의 체계이던 대부분이 윤회에 대해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 현재는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다. 과거에는 윤회를 통해 아주 적은 면의 생명만이 목적에 부합하고 초월하였기에 대다수의 생명의 배후의 신들은 이 윤회라는 시스템을 좋지 않게 보고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았다.
윤회라는 시스템도 학교이면 학비(에너지)를 받아야하고 회사이면 투자(에너지)를 받아야 굴러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다들 불평, 불만만 앞세우는데 본인들이 심성을 좀 더 갈고 닦으려고 들지 않았기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다들 다른 이의 부정, 부패를 지적하지만 정작 자신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려는 이들도 있으며 정작 자신이 그런 이들의 위치에 올라가면 자신도 부정, 부패를 일삼게 된다. 그럼 심성이 마취되어 자신이 나쁜 짓을 하면서도 모르는 것이다.
누가 알려주면 덮어 감추려하고 인권을 함부로 대하는데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자신에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남에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심성 중 평등과 봉사의 면에서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어디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가? 차별하는 것이며 선한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지나가거나 죽으면 모두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매사에 자신의 심성에 나는 정직하고 선하게 나와 다른 이를 대하고 있는가를 물어야하며 기본 도덕준칙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그 선택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많은 이들이 본받게 될 것이다.
그럼 어느 면에 학비를 내고 에너지를 투자하라는 것인가? 바로 심성을 갈고 닦는 면에서 스스로 노력해야하며 다른 이에게 배우든 사회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던지 이 봉사 정신, 심성을 갈고 닦는 면에 시간을 들여서 심성이 향상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일체가 에너지의 흐름이라는데 매사에 자신의 사상이 뭇 생명에 봉사하는 기점에 부합하게 한다면 곧 자신이 시간과 생각을 투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에너지이고 말도 에너지라는데 자신이 심성을 갈고 닦는데 투자하는 것이 바로 윤회라는 시스템에 학비를 제출하고 에너지를 투자하며 윤회를 졸업하는 길인 것이다.
단순히 일만 하지 말고 일을 하는 중에 모두를 배려하는 등에 신경을 쓰고 어떻게 해야 다른 이를 고려하고 이해하며 감싸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긍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등이 바로 자신이 한 노력이고 역사이며 윤회라는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수료했다는 학기 성적 및 증거이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학업을 배우며 공무를 하는 등의 외적인 면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심성과 양심을 잘 이해하고 성품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다. 신들은 이 과정을 신의 성품을 닮아 간다라고 표현하시고 부모의 심정으로 아래의 일체를 응원하신다.
윤회라는 시스템에는 핵심적인 이치가 있는데 윤회 중에 있는 모든 생명이 이 학과 수업을 마스터해야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보는 시각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백지로 대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수많은 생명을 오픈 마인드, 백지로 대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을 퍼뜨리고 좋지 못한 말을 하면 나는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며 그를 보호해주거나 모른다면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들이 말한 소문을 가지고 당사자를 평가하지 않았다. 특히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백지로 대해야하며 진실을 정확히 알기 전까지 사람을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신들이 사람을 볼 때는 과거 잘못이나 업적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태도를 통해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다른 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문을 전하여 그의 명예를 일부로 떨어뜨리고 손상시키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사상과 시각이 매사에 조금씩 달랐는데 다른 이들이 문제가 이상하다는 것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다른 이들이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들 중에서는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했기에 살면서 부딪히는 점이 많았다. 내가 모두 옳다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기점에 차이가 많았으며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으로 보았다.
나는 항상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이 그의 입장에서 해석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기 일쑤였고 다른 이가 내 원 의도대로 해석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를 내가 수습해야할 때도 많았다. 나의 삶과 그의 삶은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며 그의 사상도 나와 다르기에 생각하는 것도 같을 수 없다. 나는 독특했고 도덕준칙이 남달랐기에 나는 백지처럼 대하여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좋게 해석하려했지만 많은 이들은 나를 백지처럼 대하지 못했다. 나는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입장에서 이중성을 가진 다른 말로 해석할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과 잣대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려고 하지만 나는 어릴 때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사실 자신이 옳고 다른 이가 틀렸다는 개념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이를 인정하지 않아야 자신의 자존심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격화되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소문으로 이간질을 하고 질투로 폭력을 사용하는 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박사학위를 내줄만한 인정을 받았는데도 계속 내주지 않을 수 있고 세대차이, 지역감정이라는 말로 이간질을 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장점이 많을 수 있는데 단점과 약점을 찾아서 상대방을 이기려고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하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면 그것이 옳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의 대중적인 생각이라고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최근에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했으며 그로인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직을 하는 이유를 물어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니 그 이직하려는 회사에서 하는 말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참고 근무하지 그랬어요라면서 자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주위에 물어서 들었던 답변은 더욱 황당한데 그런 사정을 그대로 말하니 마녀사냥 당했다며 그 사실을 숨기고 임금체불에 대해서만 말해야한다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서도 중시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어찌 생각해야하는가? 이 사람은 생계비가 부족해서 그 회사에서 최대한 참다가 나온 것인데 그 사람더러 취업이 어려우니 그곳에서 참지 그랬어요? 라거나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 그 사람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로 본다는데 뭔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의 지나간 과거이지만 이런 저런 대처법을 알려주었는데 정말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또 어떤 사람은 조리과 학생으로 휴학 중에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회사 직원의 실수로 손을 다쳐서 자신의 꿈을 접게 되었다. 조리과 학생인데 조리를 못하게 되었으니 사람과 시간을 잃어버렸고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도 악화되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치료비를 처음에는 준다고 했지만 연락도 없었고 노동청에 가서 말하니 그 회사 사람들이 와서 한다는 말이 우리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적반하장으로 막말을 하는데 겨우 300으로 마무리 짓자고 했다. 300으로 생계가 곤란해 보태고 있는 사람의 심정, 꿈을 접어야하는 사람의 심정 등을 모두 보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데 태도마저 불량하다. 그 때 나는 태도표시를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주었고 그를 응원해주었다.
두 사람 다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는데 이것은 인권에 관한 문제이고 모두가 이런 문제를 만날 수는 없다. 내가 겪든지 다른 이가 겪든지 이런 사건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다른 이를 보는 시각에서는 우리가 좀 더 눈높이를 다른 이에게 맞춰주고 기준을 낮춰서 다른 이의 장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그가 맞춰주기를 바라지만 정작 다른 이가 진정으로 내 요구사항을 원하는 지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자식에게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가 하면 부모에게도 그렇게 바라는 게 많다.
서로가 서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렇다면 그의 배경, 상황을 신경 쓰지 말고 그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해야 하며 상대방의 진심을 들어봐야 한다. 상대방이 처한 입장에 대해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 하며 상대방 뿐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대할 때에도 먼저 자신의 입장이 모두를 배려하는 것인가를 살펴봐야한다.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이를 함부로 정의하고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은 무시되는 것이 아닌가? 그 오해, 소문으로 인해 생기는 압력과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하는가? 만약 이렇게 했다면 이는 수많은 신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으로 이 백지로 보는 문제는 쉽지 않지만 해낸다면 정말 기립박수를 받을 일인 것이다.
나비효과처럼 마치 다른 이들이 모두 동의하니 나도 동의했지만 이것이 옳지 못한 것이라면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입고 희생될 것이다. 누가 다른 이의 진심을 이해하고 사전에 오해를 차단하고 예방한다면 이는 신들이 반드시 좋은 미래를 챙겨주고 윤회의 한 과목을 잘 이해했다고 보시므로 상을 주실 것이다. 어느 신의 성품에 부합되면 어느 신이 상관하는 것으로 더욱 좋은 천국 세계로의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일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일체 생명에 대해 백지로 대하고 그의 단점이 보여도 장점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장점이 더욱 잘 체현되도록 도와준다면 신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타자동화를 잘 수료했다고 보며 아주 기뻐하신다. 왜냐면 모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는 것도 윤회의 중요 과목인데 이 책임감을 잘 이해했고 잘 표현했다고 신들이 보시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에게 봉사하는 기점을 배우는 것이 윤회라면 매 한 상황에 나와 다른 이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결정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사정이 있다면 그것을 고려하였다면 사람만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마저 감동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위덕이 얼마나 큰 것인가? 인세의 역사에 전해지지 않더라도 신들은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이 공간에서는 실패로 여길지라도 천상세계에서는 영적인 성공으로 본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신들이 원하는 일과 부합이 되면 이렇게 좋은 일인 것이며 신의 성품에 부합되면 아래에서도 성공을 하면서 위에서도 성공을 하는 일도 있다. 공격을 받으면 쉽지 않고 공격을 받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미래에는 심성을 잘 이해하는 일이 인류 공간에서 실패하지 않고도 영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인권사건을 겪었고 그 사건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했는데 미래에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고도 심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고 스스로 심성을 갈고 닦을 것이다. 윤회는 극단적인 사건이 있어야 스스로 심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주 혼란해야 심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생명이 부당하게 차별받아 절규하고 절망해야 심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윤회는 그저 배경이나 상황과 관련 없이 현재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며 현재의 직면한 상황을 통해서 심성을 바로 세워나가는 과정이다. 만약 극단적이고 혼란하게 만들어서 기본 배치나 직면한 상황에 난이도를 올린다면 이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정법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윤회라는 시스템은 생명을 승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형평성을 훼손하면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승화가 되지 못하게 한다면 이를 배치한 신과 이용당한 사람은 미래로 진입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부류가 주로 윤회가 나쁜 시스템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며 현재는 좋은 생명과 체계들도 덩달아 자신은 피해자이기에 똑같이 주장하는데 정법 중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윤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윤회라는 시스템의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심성을 이해하기 위해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생명들이 스스로의 심성을 바로잡아야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시스템 자체는 결함이나 문제가 없다. 사용자의 품성과 심성의 문제이지, 시스템의 잘못이 아니다. 이는 정법 중에서 모두 증명이 되고 있으며 미래에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양자 모두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결정해야하며 자신에게 적용하여 문제가 있다면 절대로 남에게 함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먼저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고 다른 이에 대해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지를 꼭 다른 이에게 물어보아야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지를 꼭 물어보아야한다. 또한 오해를 했다면 그 오해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 주어야하며 이때도 단점과 약점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물어보아야한다.
만약 내가 왜 물어보아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질이 정말 나쁜 것으로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며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이가 잘되길 바란다면 다른 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정말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통을 하고 대화를 해서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면 그런 방향으로 도와주어야한다.
흔히 사회 중에서는 답정너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질문과 답을 정해놓고 상대방이 따라주길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공평한 것으로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이해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정의해버리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왜냐면 그에게 하나의 압력을 조성하게 되며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대로 정의하면 상대방을 고정시킬 수 있으며 난처하게 만들 것이다. 상대방의 사상에 위압감을 조성하거나 조그만 문제를 크게 격화시키거나 고착화시켜서 상대방이 두려워하고 답이 보이지 않아 힘들어하게 만들 수 있다. 흔히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는데 주로 이렇게 된 일이다. 상대방은 걱정을 하고 싶지 않은데 걱정을 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조성하면 상대방이 다른 길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며 선택의 기로에 우왕좌왕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元神(왠선)은 불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전생의 사회활동 중에서 누구에게 빚을 졌을 수 있고, 누구를 괴롭혔을 수 있으며, 또는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 있는데, 그 채권자는 당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불교 중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아갈 것이며, 더 많이 받아 가면 다음번에 그가 다시 당신에게 갚아준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거꾸로 되는데, 바로 이렇게 돌아오고 돌아간다.”
“무엇이 대인지심인가?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참음은 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고,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성격이 좋지 않으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理智)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을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 ”
다시 말해서 위기감이 조성된 것이며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 흔히들 자식들에게 공부에 대해서 위기감을 조성하는데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학업 량을 선정하는 것이 좋고 굳이 위압감을 조성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 강압은 아이가 목표에 대한 희망, 호기심을 되려 잃게 할 수 있으며 효율을 되려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윤회 등의 시스템은 모두 희망을 위해서, 용기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우주의 복지 시스템이 본래 목적이다. 우리 사회의 학교도 복지 시스템 중 하나가 아닌가? 윤회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동시에 나의 장점을 표현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다.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시스템이며 미래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무슨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작은 상황에서도 희망과 감사함을 찾고 심성의 중요성을 배우는 흐름이 일반화 될 것이다. 일부 신들은 작은 행복이 모여 큰 행복 못지않다라고 표현하시는데 윤회라는 시스템은 바로 이런 교훈을 담고 있다.
사회의 좋지 않은 면을 보고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다른 이에게도 심성을 알려주고 장점을 찾아서 알려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면 신들은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며 윤회라는 시스템의 끝에서 천국세계로의 귀환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 우리는 홀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포함한 무수한 생명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 무수한 생명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배려하듯이 많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윤회라는 시스템을 모두 함께 잘 졸업했으면 좋겠다.
다른 이의 단점은 작게 보고 문제가 있어도 선의로 말해주되 소문 등으로 부풀리지 말고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로 자비를 베풀며 장점은 칭찬을 아끼지 말고 그의 좋은 면을 배워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고 나와 다른 상황, 경험, 배경 등은 백지로 보고 홍대하게 이해해주는 것이 윤회의 핵심이다. 지금부터 스스로의 심성을 단속하고 상대방에게 심성의 중요성을 말해주면 사회 속에서는 항상 심성에 대한 이야기가 꽃이 필 것이고 모두를 배려하는 것이 불러온 각종 좋은 일이 사회 속에서 퍼질 것이다.
우리가 윤회 중에서 천국세계로 가지 못하고 다시 삶을 반복하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에 오는 것이지, 어디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윤회되는 범위 안의 사회 속에 있는 것이지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심성을 알리고 윤회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알린다면 많은 이들이 윤회의 목적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심성을 중시하며 모두를 배려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 설사 머리를 씻고 다시 태어나도 자신이 전생에 심성을 알린 것과 많은 이들이 심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배우며 자신도 비록 머리를 씻었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머리를 씻으면 기억이 사라져서 다음 생에 좋은 사람이 되라는 보장이 있는가라며 한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성자의 말씀과 지혜를 역사 속에서 보며 사회 중에서도 본받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도덕준칙을 우리가 보고 사회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곧 윤회의 목적에 부합하고 최종적으로 천국세계에 갈텐데 그럼 머리를 씻어서 좋은 사람이 되는가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심성을 중시여기고 모두를 배려하려고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며 이는 자신이 다시 태어날지라도 걱정 없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누가 태어나더라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이것은 위덕이 큰 것이다.
지금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심성을 바로 세우면 모두 자신의 미래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조그만 이익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번 생에 천국세계로 가야하지 않는가? 설사 부족해서 다시 태어날지라도 미래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흐름이 퍼지면 미래의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는 보증이 될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노력들이 모이면 그것은 길이 되고 실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법 시기이므로 충분히 이번 생애에 잘하면 천국세계로 갈 수 있다. 왜냐면 지금은 형평성면에서 어긋났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조금만 잘해도 위덕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여타 시대와 다르게 지금은 축복받은 시기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윤회를 졸업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이다. 외면적인 모습이나 시스템의 형식자체를 보고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가져야하며 스스로를 응원하고 모두를 배려하고 존재자체를 감사해야한다.
글의 본문과 같이 순수한 선을 위해서는 그 어떤 색안경도 있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소통하고 대화를 통해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어야한다. 우리가 모두를 이해하고 진정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모두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때 비로소 신의 성품을 이해하고 위대한 신으로의 여정을 끝마치고 귀환하게 될 것이다. 영광이 끝이 없는 미래를 위해 모두들 현재 자신에 대해 미래의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모든 난관을 잘 극복해나가길 바란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법인가? 이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眞(쩐)・善(싼)・忍(런), 그가 바로 불법의 최고 체현이며, 그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불법이다. 불법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체현 형식이 있으며,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지도 작용이 있는데, 층차가 낮을수록 표현이 더욱 번잡하다. 공기미립자・돌・나무・흙・강철・인체, 모든 물질 속에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이 존재하며; 고대에는 오행(五行)이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구성한다고 했는데, 역시 모두 眞(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이 존재한다.
수련하는 사람이 어느 층차까지 수련되면 다만 그 층차 중의 불법의 구체적인 체현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한 과위(果位)・층차(層次)다. 펼쳐 놓고 말하면 법은 매우 크다. 극히 높은 곳에 이르러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眞(쩐)・善(싼)・忍(런)이며, 각개 층차에서 현현(顯現)하면 극히 복잡하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도가(道家)에서는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사람에게는 물질신체가 있지만, 이 물질신체만 가지고는 완정(完整)한 사람을 구성할 수 없으며, 또 반드시 사람의 성격(脾氣)・천성(秉性)・특성(特性)・元神(왠선)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완정하고 독립적이며 자아개성을 가진 사람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서, 은하계와 기타 성계(星系)가 있고 또 생명과 물이 있는데, 이 우주 중의 만사만물, 이것은 물질로 존재하는 한 방면이고; 동시에 그것은 또 眞(쩐)・善(싼)・忍(런) 특성이 존재한다. 어떤 물질의 미립자 중이든지 모두 이런 특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극히 작은 미립자 중에도 모두 이런 특성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볼 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고 평가한다. 사람은 특성, 성격 등이 존재하며 언행에 있어서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의 삶은 수많은 선택이 모인 것이고 선택은 범위가 있다. 신들은 이 선택의 범위를 배치하고 조정하여 사람이 바른 인품을 형성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그 범위 속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신의 배려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봉사하고 모두 함께 승화되고 천국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삶은 필연과 우연이 모두 평행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동전의 양면으로 둘 다 맞는 것이다. 즉 모순이 아닌데 신이 정해준 삶의 배치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학교에 가느냐, 어느 직장에 갈 것이냐 등이 모두 배치 속에서 정해져 있을 수 있다. 큰 것은 필연으로 정해져있고 우리가 움직일 수 없지만 세부적인 것은 바꿀 수도 있는데 이것이 선택이고 우연이다. 간단히 말하면 큰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작은 범위에서도 비록 가이드라인이 되는 배치를 했지만 작은 범위의 배치는 비록 정해져 있으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