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공간을 본 것: 발광하던 아이들 배후의 선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날이 더워지면 특수교육 기관 아이들을 가르치긴 어렵다. 20대 젊은이 몇 명이 단체로 고함지르고 물건을 마구 부수며 심지어 삼층에서 전기기구를 집어던져 많은 관리인을 놀라게 했다. 나도 전력을 다해 이 발광하는 젊은이를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작하는 힘은 너무 세어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고 어른 네 명이 한사람을 끌어내지 못했다.
이런 광란 중에 나는 이런 젊은이를 은근히 주의해 보았더니 배후에 하나의 선이 있었다. 그 선을 따라서 보았더니 이 선은 건물 뒤에 비교적 높은 낡은 숙소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숙소는 큰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창고로 변했으며 이미 사람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해보니 이 낡은 숙소의 다른 공간에 한 마리 거대한 녹색 유충이 살고 있었다. 크기로 말하자면 북경대학 101호 건물보다 더 컸으며 또한 단단한 앞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매우 무서웠다. 그 형상은 마치 영화 <맨인블랙>에 나오는 괴수 같았다.
알고 보니 아이들 배후의 그 선은 바로 이 거대한 벌레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이 아이들을 발광하게 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오래 근무한 직원들의 설명을 연상하게 되었다. 과거 낡은 숙소를 사용하던 때에는 아이들이 발광할 때 더욱 흉악하게 사람을 때리고 무는 등 각종 일이 모두 있었다고 했다. 그 근원을 알고 난 후 나는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어째서 이 거대한 벌레가 사람이 많지 않은 산골에 나타나 아이들을 교란하는지 궁금했다.
알고보니 그것은 이 산언덕 “원주민”이었다. 이곳은 모든 벌레류는 그것에 관할되니 마땅히 벌레의 왕이었다. 수십 년 전 우리 교육기관이 이 산골에 세워졌는데 당시의 운영은 농업사회에 근접한 방식이어서 그리 많이 오염되지 않아 사람들도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근래에 이런 숙소를 창고로 사용하는데 기관에서는 유지를 잘하지 않아 주위에 많은 폐기물과 쓰레기를 쌓아두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드나들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근에 어두운 음귀들이 점령했다. 또 현대과학이 한걸음씩 스며들어 특히 살충제 화학 청결제 등으로 산 위의 수원과 생태계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물질공간의 곤충, 식물들을 위협을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다른 공간의 벌레 왕도 견딜 수 없었다. 그가 편안히 지낼 수 없어 보복하는 것으로 기관에 있는 아이들이 수시로 발광하는 일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연유를 알게 된 후 나는 그것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에게 간략하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다른 공간에서 알아들었다. 나는 기관이 환경을 오염시킨 정황을 상부에 보고하고 동시에 그것에게 아이들을 교란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우주는 정법하고 있고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왔다. 특수교육기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나는 송곳니가 사랑스러운 쌍둥이 형제가 내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장애가 있고 머리가 좋진 않지만 그들은 원래 천상의 용이 아닌가!
이번 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기관에서는 환경을 정리했고 우리는 평정을 회복했다.
아이들은 다시는 단체로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부터 나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표면으로부터 관찰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흔히 더욱 얽히게 하며 심지어 업을 지어 무고한 생명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여의치 않은 점을 만날 때 표면만 보아서는 안 되며 더욱 악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발광한 이유는 배후에 사람이 모르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한 힘을 발휘해 진상을 알려주어야만 진정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발표시간: 2014년 8월 14일
정견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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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부족한 점이 누구나 있을 수 있으며 마치 장애인 등은 외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더욱 좋은 미래를 위해서 선택했거나 배움을 위해서도 선택하고 자신을 보완하는 등의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삶을 택한 것을 존경스럽게 생각해야하며 몸이 좀 불편한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생애를 마쳤을 때 신으로 성취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업력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이던지 간에 분명히 삶이 끝나면 그는 큰 성취를 이룰 것이며 우리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우리와 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편견 없는 시각을 배울 기회의 장을 제공하기에 그들에게 얼마나 감사해야합니까?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댓글로 글이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 스스로의 집착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고려하면 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 집착을 크게 보아 나는 왜 이리 나쁘지라면서 자신을 채찍질 하지 않아야하는데 자신의 집착심은 먼지와 같아 닦아버리면 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자신의 가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집착을 닦아서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든 스스로의 집착을 보든 자신을 채찍질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부분을 닦아버리고 다음에 다시 하지 않는다면 신들이 볼 때 그 한 면에서 완벽한 생명이라 여기기에 이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희망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속인사회의 거센 흐름(大洪流), 큰 염색항아리(大染缸)의 오염으로 사람들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많은 것이 모두 그릇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잘살려고 하지 않는가? 잘살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이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고, 사람의 이기적인 심리를 조장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유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인 중에서 다투고 싸운다면, 이것은 우주의 특성과 상반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어린이를 가르칠 때, 어른은 흔히 그가 장래 속인사회 중에서 발붙일 곳이 있도록 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너는 좀 약게 놀아라.”라고 가르친다. ‘약다’는 것은 우리 이 우주 중에서 볼 때 이미 그릇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 개인의 이익을 담담히 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약은 것은 바로 개인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집착은 조그만 이기심이며 그것이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사회상의 문제로 체현되고 범죄가 되지 않으면 그로 하여금 잘못으로 여기고 심하게 질책할 수 없으며 모두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서로 감싸 주어야하는 것입니다. 집착심처럼 볼 수 없는 것도 있고 외적인 부분처럼 눈에 보일 수도 있는데 어느 면이든 모두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신들은 인세의 모든 생명이 잘 극복하고 난관을 잘 졸업하도록 돕고 있으며 절대로 당신으로 하여금 불공평하게 하려고 배치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응원하고 있으며 줄곧 기회를 주는 것으로 기회 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태도를 잘 표시하여 극복할 수 있는 만큼 극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보이던 안보이던 모두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보아야하며 내적인 단점은 사상의 기점에 대한 문제이기에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서 그것을 치유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고 외적인 단점은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인권 운동 등을 하면 더욱 자신의 삶이 값지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인권 운동은 외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만 신들은 자신의 시각을 중화시키고 자신의 집착을 닦으면 곧 이런 사람도 하나의 인권운동가라고 하며 감사하다고 표현합니다. 왜냐면 타인을 고려하여 편향적인 시각이나 집착을 닦아버렸고 곧 상대에게 기회를 주었으며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 되게끔 자신이 태도 표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곧 집착을 닦는 것은 인권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상대의 단점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내적인 단점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며 그의 장점을 더욱 잘 체현할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되 너무 심하게 질책하여 그의 다른 장점마저 쏙 들어가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외적인 단점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단점이라 여기지 말고 그에게 잘 대하고 그가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모두 자신이 다른 면에서 더욱 큰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 자신의 장점을 찾게 된다면 그 사람은 삶이 그때부터 방향이 바뀔 것이며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큰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이 희망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을 강화하고 현재의 심성표준에 따라 흘러가서는 안 되며 자신이 자신을 책임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 현재 흐름 중에서 초탈해 나오고 천상으로 되돌아가야합니다. 신들이 우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완벽할 수 없는 것으로 각종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며 살아가면서 생기는 각종 집착심은 그때그때마다 제거하면서 배려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즉 외적으로 문제가 좀 있을 수도 있으며 내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조그만 상처부터 생계가 곤란한 장애인등까지 있을 수 있으며 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쇠퇴해가는 심성의 흐름에 따라 배려하지 않는 각종 사심, 욕심 등의 집착 등이 있는 사람부터 심각해지면 정신병에 속하는 사람까지 천차만별입니다.
다음은 휴스턴 법회 설법 중의 내용입니다.
“나는 곧 이 법(法)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법(法)을 얻게 하며 최후까지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은 원만에 이를 수 있게 한다. 만약 어떤 사람 그가 금세(今世)에 수련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이 법(法)의 표면 이치를 알면 그는 곧 좋은 사람이 될 것이며, 이러면 사회에 대해서도 좋은 점이 있는 것으로 인심(人心)이 선을 향하게 할 수 있다.
현재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법률을 아무리 많이 제정할지라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다시 죄를 범하면 또 제정한다. 인류는 자신에 대한 제한이 너무나 많을 뿐만 아니라 인류는 현재 이미 어쩔 수 없이 인류가 자신을 위해 창조한 이 일체를 감당하고 있다. 자신을 봉폐함이 엄하면 엄할수록, 이 방면에서 더욱더 극단으로 나갈 것이며 동시에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실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은 법률조항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민족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불안하게 하는 인소(因素)는 바로 한 글자 ── 德(더)이다. 바로 사람의 心性(씬씽)이 안 되고, 지금의 사람이 사람의 규범을 잃어버림으로써 사회를 이토록 난잡해지게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모두 매우 높은 사상경지 중에 있고, 모두 매우 높은 心性(씬씽)이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떤 모양이겠는가?
전체 인류사회가 어떤 모양이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나쁜 일을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 대해 좋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 모두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 경찰마저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마다 모두 스스로 생각하여 인류의 도덕준칙(道德準則)을 수호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이런 일은 내가 주요하게 하려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 법(法)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법(法)을 얻고,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만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다 보면 그는 반드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법(法)이 사회상에 전해져서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이다.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법(法)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복잡한 환경 중에서, 현실이익 중에서 당신이 초탈해 나올 수 있다면 당신은 대단하며, 당신은 마땅히 원만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이 속에 무슨 조건이 있는가? 사람이 이 법(法)을 수련하면 물질적인 것들을 모두 가지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법(法)을 전할 때 나는 이 법(法)이 아주 널리 전해질 것을 고려했으며, 역사 중에서 오늘날 어떻게 법(法)을 전할 것인지를 다져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적으로나 무슨 내적으로나 문제만을 지적하자는 소리가 아니며 부족하다면 닦으면 되고 조금씩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으며 헬렌 켈러는 가장 잘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헬렌 켈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외부의 제약조건을 벽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본다는 것에 감사함을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이 헬렌 켈러는 자신이 보이지 않기에 자신이 만나고 접촉하는 일체에 더욱 관심을 가졌고 1904년 앤 설리번의 도움으로 일반인들도 힘들었다는 레드클리프 대학 졸업이라는 과업을 성취했습니다.
헬렌은 미국에서 시각장애인의 기금을 모금하는 운동을 벌이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일생을 공익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도 인권을 신장하였는데 모두 빛을 뿌린 것이며 그녀의 인생은 모두에게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며 희망이 있어서 선할 수 있었고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문둥병 환자들을 돌보았는데 마음속에서 거리감 없이 그들을 대했습니다. 쉽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그런 전염문제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그녀는 실제로 심성이 높았고 봉사기점이었기에 그런 병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집착이 내부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녀처럼 전염병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며 그녀는 전염병 문제도 사랑으로 감싸주었는데 우리는 그녀처럼 그렇게 심한 경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므로 더욱 자비와 사랑으로 일체를 포용하여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그렇게 자비심을 내어서 일반 사람들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면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대하고 배려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지 않고 쉽습니다. 이것은 비교가 아니라 환경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헬렌 켈러와 테레사 수녀와 같은 아름다운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 해냈다면 그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 있는 우리 모두는 정말로 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일면은 내가 내 방을 청소하듯이 스스로 닦아내면 되는 것이며 다른 이의 집착을 보았을 때도 자비심이 나와야합니다. 장애인들을 볼 때 마땅히 도와주어야하는 것처럼 마음 속의 집착, 배려하지 않는 태도 등은 모두 마음이 좀 불편한 것이므로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처럼 마음속의 자비심으로 그를 대해주어야 합니다.
수련자는 이런 상대의 부족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을 함께 해결하는데 거울로 봅니다. 그가 나를 좀 더 배려하기를 바란다면 그에게 화를 내고 그를 이겨서 얻어낼 것이 아니라 좀 담담하게 그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그의 드러나지 않는 내적 상처로 생각하고 가슴아파해 보십시오. 그에게 쉽게 화를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애인은 그저 몸이 좀 불편한 것으로서 역시 하나의 인격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집착과 아픔을 가지고 사는데 아픈 부분이 외적으로 드러났는가 아니면 내부에 존재하는가의 차이입니다. 신들이 보기엔 똑같이 가슴아파하시지만 사실 사람만이 스스로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의 내려온 심성의 흐름 중에 돈, 명예 등에 대해 집착하고 다른 이를 손해 보게 하고 해치고 있으며 고용주와 같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서로 배려할 줄을 모르는데 신들은 똑같이 수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좋게 바꾸고 좋은 사람이 될 기회와 상황을 배치하십니다. 만약 넘어가면 기뻐하시지만 넘어가지 못하고 또 좋지 못한 선택을 하면 정말 눈물을 흘리십니다.
문제에 직면한 자신의 마음이 중요하고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려면 가장 먼저 타인의 입장을 나를 배려하듯이 배려하고 이해해야합니다. 물론 정말 업력이 아닌데도 공격하는 나쁜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선의로 대하되 문제가 심해지면 이런 경우는 당연히 법적 대응을 하고 방어를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런 나쁜 사람의 경우는 상대방을 그때도 최대한 선의로 배려한다면 당신은 그 한 면에서 신의 품성을 초과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즉, 원래 신의 품성이 어느 정도를 그 한 면에서 요구한다면 당신은 그 한 면에서 신이 요구하는 품성을 초과한 것입니다.
진선인 중에서 신이 요구하는 품성은 진, 선, 인이 다 있을지라도 신의 요구기준이 진과 선에 가깝다고 하면 이룬 기준이 강력한 인내에 도달했고 진과 선은 물론 강력한 힘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은 신을 능가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한 면에서 더욱 힘이 강력해진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이 요구하는 품성의 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70점을 넘기기만 하면 합격이라고 규정하고 배치하였는데 당신이 90점 이상으로 태도를 표현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신이 사람에게 준 기준을 초과한 것이며 그 한 문제에 대한 태도 표시를 아주 잘한 것입니다. 곧 뛰어난 학생이며 신들이 생각하기에 똑똑한 모범생입니다. 나쁜 사람의 경우는 정말 신들이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경우이든 최대한 선의로 배려하였는가, 아닌가가 주요 쟁점이고 견디지 못하는 상황인 경우 선의로 배려할 수 없을 수 있기에 이런 경우는 예외로 두어야합니다.
사실 신들은 사람이 내적으로 부족하든, 외적으로 부족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어린 아이와도 같이 보며 현재의 태도만을 보지 그가 얼마나 문제 있는가를 보지 않습니다. 그저 빨리 좋은 사람이 되어 되돌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집착도 에너지체이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하며 자신의 좋지 않은 사상을 당신의 생각, 사상 속에 주입하여 당신이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하는 생각 등을 하게 합니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 닦아버리지 못한다면 당신이 그때 집착이 준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덮어 감추거나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당신에게 기생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그런 좋지 못한 생각을 당신이 하지 않고 그런 사상을 부정하면 더 이상 빨아먹을 양분이 없어서 살지 못합니다. 그것이 빨아먹는 양분이 바로 집착이 사람에게 주는 사상으로 그런 사상을 생각하지 않고 부정하면 사람이 그런 사상을 생각하지 않기에 더 이상 사람의 사상 속의 에너지를 양분삼아 빨아먹지 못합니다. 집착은 좋지 못한 것이나 이런 집착에 의해서 살생이라던지 큰 외부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정말 희망이 있습니다.
집착은 먼지처럼 닦고 청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집착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이 좋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주왠선(영혼이라봐도 무방)은 빛이 납니다. 신들은 바로 이런 의지와 태도를 통해 닦아버리는 것을 중시할 뿐 얼마나 집착이 있다고 해서 이 사람을 문제 있다고 매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들이 학연, 지연 따위의 색안경에 집착하지 않고 사람의 진정한 미래를 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차별이 없고 평등하며 바로 신의 자비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말하는데, 그 기공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이 어찌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많은 기공사가 모두 자칭한 것이다. 나는 측정을 거쳤으며 내 손에는 나에 대해 과학연구 부문에서 측정한 자료가 있다. 많은 기공사가 가짜며 자칭한 것으로서, 허세를 부리며 사기 치는 것이 수두룩하다. 이 가짜 기공사도 병을 볼 수 있다. 왜 병을 볼 수 있는가? 그는 부체(附體)가 있는데, 부체가 없으면 그는 사람을 속이지도 못한다! 그 부체, 그것도 공을 내보낼 수 있으며 또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그것도 일종의 에너지 존재로서 속인을 제약하기란 아주 쉽다.
그러나 내가 말했지만, 그 부체가 병을 치료하려면 당신의 몸에 무엇을 내보내겠는가? 극미시하에서는 모두 그 부체의 형상인데, 당신의 몸에 내보내면,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神)을 청하기는 쉬워도 신을 보내기는 어렵다. 속인은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속인이 되려 하며, 그는 잠시 편안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당신은 연공인(煉功人)이며, 당신은 끊임없이 신체를 정화(淨化)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을 당신의 몸에 달라붙게 한다면 언제 당신이 그것을 내보낼 수 있겠는가? 또한 그것 역시 일정한 에너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그 法輪(파룬)이 어찌하여 그것이 들어오게 놔두는가? 스승님의 법신께서 우리들을 보호하고 계시지 않은가?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법신이 당신을 저지할 것이고, 당신을 점화(點化)해 줄 것이지만, 당신이 늘 이런 것을 보고는 당신을 더는 상관하지 않는데, 남을 강박하여 수련하게 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당신을 강박하여 수련하게 하거나 당신을 핍박하여 수련하게 할 수 없다.
당신 자신에 의거해 진정하게 제고해야지 당신이 제고하려 하지 않으면 누구도 방법이 없다. 이치도 당신에게 말해 주었고 법도 당신에게 말해 주었는데 당신 자신이 여전히 제고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럼 당신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한 것이기에 法輪(파룬)도 상관하지 않고, 나의 법신도 상관하지 않는데, 보증코 이러하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기공사의 장(場)에 가서 보고를 듣고는 집에 돌아와 아주 괴로워하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그 법신이 왜 당신을 위해 막아 주지 않는가?
당신은 뭘 하러 간 것인가. 당신이 가서 듣는데, 당신은 구하러 간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귀에다 부어넣지 않으면 그것이 들어올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자신의 法輪(파룬)마저 변형되게 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 法輪(파룬)은 당신의 생명보다도 귀중하며, 그는 일종의 고급생명이기에 함부로 그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현재 가짜 기공사가 아주 많으며 어떤 사람은 명망이 아주 높다.
나는 중국 기공과학연구회의 지도자와 이야기했다. 나는, 고대에 달기(妲己)가 조정에 화란(禍亂)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그 여우가 아주 흉악했지만, 그것도 현재 그 가짜 기공사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전국에 화란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재난을 당하는가! 당신이 볼 때, 외관상으로는 마치 아주 좋아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몸에 그런 것이 있는가? 그가 내보내면 당신이 가지게 되는데 그야말로 너무나도 창궐(猖獗)하다. 그러므로 속인은 외관으로 보아내기가 아주 어렵다.”
“그가 왜문사도(歪門邪道)를 연마(練)하면 몸에 왜문사도의 것이 있을 수 있어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에게 청리(淸理)해 주어야 한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에게 무엇이든 모두 청리해 주며, 당신의 가정환경 역시 청리해 주어야 한다. 환경을 청리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것들이 당신을 교란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연공(煉功)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서로 다른 부족한 점과 집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집착이 강하거나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크면 곧 문제성 있는 저층차의 신들을 불러오게 되며 동물부체나 기타 사악한 마 등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이 바로 그것들의 사상이며 그들의 사상에 부합하는 것으로 그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생환경, 생존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사람의 사상 속에 원망이나 집착을 계속 집어넣어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자신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고 원망만 가득하게 하며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그 한 면, 한 면들에서 철저히 봉쇄하고 막아버리는 작용을 합니다.
좋은 사상과 에너지는 아름답고 긍정적이며 타인을 배려하는 방향의 생각을 불러오게 하지만 좋지 않은 사상과 에너지는 부정적이고 좋지 못하며 남을 해치고 자신만을 위하는 등의 생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사람이 집착이 있어도 다른 면에서는 좋을 수 있는데 이러면 집착이 있는 면에서는 좋지 않은 쪽으로 사상을 이끌려고 하고 집착이 없는 다른 좋은 면들에서는 좋은 쪽으로 사상을 이끌려고 하기에 어느 쪽의 면이 더 많은 가에 따라 좋은 선택을 하느냐, 좋지 못한 선택을 하느냐에 영향을 줍니다.
환경 등의 기타 요소도 있겠지만 주로는 자신의 좋고 좋지 않은 면들이 다른 공간에서 주입하는 생각과 사상에 따라 선택의 방향이 갈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좋은 존재들과 집착을 닦아버려 좋은 사람이 된 그 한 면에 부합하는 신을 포함한 빛의 존재들은 좋은 사상으로 인도할 것이고 집착을 포함한 좋지 못한 면에 부합하는 마를 포함한 어둠의 존재들은 좋지 못한 사상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이런 좋지 않은 면들은 미래에 더 이상 작용을 못하고 사람의 사상에 영향을 주어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데 이런 것들에게 통제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좋고 성품이 아름다운 글이나 영상 등을 보면 자신에게 아름다운 에너지가 생성되며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흐름을 이어주는데 이런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도 다른 공간에서 생명이 있는 것이며 좋은 에너지는 바르고 아름다운 성품으로 다른 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확장시킵니다.
허나 바르지 못한 언행 등은 모두 문제성 있는 존재들의 사상에 부합하기에 곧 그런 것들이 올라옵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과 문제를 덮어 감추면 마치 현실에서는 자존심을 세우고 남을 이긴 것 같아 득의양양해하지만 문제성 있는 다른 공간의 존재들(이것도 신이라고 하지만 정신이 아니며 심성에 문제가 있다.)이 올라옵니다. 왜냐면 사람의 집착과 부족한 점은 모두 그것들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므로 그것들이 올라와서 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집착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그런 것들을 떨쳐 버려야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폭력도 원인에 대한 기점을 보아야하지만 폭력을 사용해서 문제를 푸는 것은 정말로 최하책입니다. 설사 했다고 해도 쉽게 그런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으로 먼저 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폭력을 사용하여 푸는 이는 남을 해치고 나의 자존심을 세운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나의 기준에 타인을 맞추어 넣으려하는 것이며 자신의 가치를 타인보다 우위에 두려는 것 등입니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저지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폭력을 사용하는 좋지 못한 사람에게는 문제성 있는 에너지체들이 올 것이며 이 에너지체들은 이 사람이 폭력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의 흐름을 인도할 것입니다. 폭력 뿐 아니라 사심과 욕심, 명예와 이익 등을 추구하는 집착이 강대하다면 모두 돈을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고 남의 재산을 가로채거나 조그만 이득을 위해 쟁투하고 싸울 것이며 남을 해칠 것인데 모두 그런 에너지체들이 사람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일단 좋지 않은 사상이 생기면 즉시 마음속에서 자기 스스로가 정신을 차리고 막아야합니다. 자신의 주왠선(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라고 여겨도 상관없음)은 절대로 남을 해치는 생각을 전해내지 않을 것인데 모두 좋지 않은 존재들이 남을 해치도록 조종하는 것으로 그것을 반대해야합니다. 좋지 않은 사상이 생기기만 하면 그것들이 이 사람의 주위로 오는데 이 사람이 돈이라던지 명예 등을 강하게 추구하면 이 사람이 자신을 원한다면서 그 사람을 통제하려 하고 그 사람의 사상을 장악하려합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나는 정신병은 병이 아니라고 하며, 나는 또한 이런 일을 상관할 시간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정신병자 그는 병독(病毒)이 없고 신체 내에 병리변화가 없으며 궤양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병이 아니다. 정신병은 바로 사람의 主意識(주이스)가 너무 약한 것이다. 어느 정도로 약한가? 마치 그 사람이 늘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정신병자의 主元神(주왠선)은 바로 이러하다.
그는 이 신체를 상관하려 하지 않고 그 자신은 늘 얼떨떨하며 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때면 副意識(푸이스), 외래 정보가 곧 그를 교란한다. 각개 공간 층차가 그렇게 많은데 각종 정보가 모두 그를 교란한다. 더군다나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이 전생에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 있고 또한 채권자가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인즉, 각종 일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데, 정신병은 바로 이렇게 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그를 교육하여 그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하기가 무척 어렵다. 당신이 보라. 정신병원의 그 의사가 손에 전기봉을 들고 흔들기만 하면 그는 즉시 겁이 나서 한마디 허튼소리도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그때 그의 主元神(주왠선)이 정신을 차린 것이며, 그는 자기를 감전시킬까 봐 겁이 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아예 이런 것들에게 잠식당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은 해석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정신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인격이 다양한 것 자체는 성격이 다양한 것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격이 다양한데 그 인격들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외부 공간의 문제성 있는 존재들이 교란하고 있으며 통제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그것들은 이 사람이 문제성 있는 사상을 추구했기에 자신들을 부른 것과 마찬가지이다고 하면서 이 사람의 약점을 틀어잡았습니다.
잠식당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말 문제성 있고 남을 해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좋지 못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려합니다. 이런 사람은 알아서 나쁜 사상에 의해 남을 해치므로 직접 장악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생존환경도 안전하기에 굳이 다른 존재가 직접 이 사람의 몸을 통제하지 않겠지만 다른 이를 배려하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사상을 인도하는 등으로 다른 공간의 존재가 역시 교란하고 나쁜 생각을 일게 하며 자신의 언행이 나쁘다는 것을 덮어 감추게 하고 최후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후회하게 합니다.
왜냐면 태도표시를 할 때 나쁜 쪽으로 너무 많이 하게 되면 곧 언젠가는 그가 책임을 져야할 날이 오는데 어떤 사람은 아예 후회를 하면서도 복수할거라는 등으로 깨우치지 못합니다. 자신이 다른 공간의 존재에게 통제당하면서도 스스로는 좋은 사람이 되려하지 않으며 좋은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그런 좋지 못한 존재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실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사건, 다양한 면 중 어느 한 면에서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는 확실하게 판별할 수 있는 것으로 어느 한 면에서 좋은 역할을 했고 모두를 배려했다면 그는 역시 그 한 면에서 좋은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현재 표면적으로 그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모든 면은 아니며 일부 좋은 면도 있고 일부 나쁜 면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각 사람마다 좋지 않은 면이 좀 많아졌지만 되려 희망이 큰 것으로 닦을 수 있어서 집착도 희망이고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어서 자신의 태도표시,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모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그에 따라 좋은 미래가 올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며 전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 기억이 있어서 자신의 주왠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므로 다른 공간의 존재가 그의 몸을 대신 주재하는 것이며 한번이상 허용하면 곧 자신이 정신을 차려서 자신의 몸을 다시 주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되려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역시 잠식을 당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최근 드라마 중에 킬미힐미라는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것이 나오는데 사실상 다른 인격이 나오면 자신의 주왠선은 아예 잠자서 나오지 않고 다른 공간의 존재가 마치 다른 인격처럼 자신의 신체를 주재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왠선이 자고 다른 존재가 나왔을 때의 기억은 아예 없습니다. 주왠선이 몸의 주인인데 어찌 다른 존재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겠습니까? 사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특수한 강한 충격을 받아서 정신적인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그 틈을 타서 다른 공간의 존재들이 교란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자신이 정신을 차려야하며 두 번째 경우는 사람이 정신을 놓은 것으로 이는 자신 스스로가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경우는 그보다는 쉬운 것으로 사람이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고 그저 다른 공간의 에너지체들이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쁜 생각을 주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좋은 에너지가 담긴 글들을 많이 보고 사회상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것들도 더 이상 교란을 하지 못합니다. 집착이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느라고 스트레스 쌓이고 항상 마음이 불만족으로 가득한데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사상이 담긴 글, 영상 등을 많이 보면 실제로 자신의 상황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첫 번째의 경우에는 집착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면 두 번째 경우는 자신이 정말 스스로 충격에 대한 기억을 분석하여 다른 공간의 존재가 사상을 침범하는 것을 부정해야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확실히 이러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 사람도 과거에 상당히 정신에 충격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존재가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 순간에 자신의 몸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가 그 존재에게 그 사람을 놓아주고 사라지라고 표현했는데 그 존재는 나를 협박했습니다. 내가 가면 이 사람은 죽을 것이다라면서 자신 덕분에 이 사람이 버티고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그 교란한 존재에게 왜 사람을 통제하고 잠식하는지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잠식당한 사람이 자꾸 비관하고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하여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잠식당한 사람이 나에게 자신이 충격적인 과거가 있다고 하였고 내가 알려달라고 하니 갑자기 그 교란하던 다른 공간의 존재가 나와서 내게 하는 말이 그 사람이 나에게 만약 충격적인 과거 정황을 말하게 된다면 이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라면서 위협했습니다. 결국 듣게 되었고 나는 듣자마자 그 사람에게 그 과거의 원망과 심리적 압력을 준 대상들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그 사람이 그 충격적이었던 과거를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흐름을 제시했고 합리적이었기에 그 사람은 받아들였습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또 이런 정황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날(降生) 때, 특정한 공간 중에는 그의 일생의 존재형식이 모두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생명이 어느 한 부분에 와서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모두 그 속에 있다. 누가 그의 일생을 안배하는가? 아주 분명한데, 바로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이런 일을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속인사회 중에서 그가 출생한 후, 이 집에 그가 있고, 학교에 그가 있으며, 또는 성장하여 직장에 그가 있어, 그의 일을 통해 사회와 다방면으로 연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반 사회의 구성은 모두 이렇게 배치가 잘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생명체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원래 특정한 안배를 따르지 못하고 변화가 일어났다. 그럼 누가 이 일을 혼란시켰다면 그 고급생명마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고층차로 수련하려 하는데, 그 고층차 중의 생명마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여전히 수련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부는 이런 일을 안배한 고급생명보다 층차가 높지 않으므로 그의 사부까지도 따라서 재앙을 당할 것인데, 그러면 모두 떨어져 내려와야 한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것이 보통 문제인가? 그러므로 일단 이런 일을 했다면 수련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 존재는 화가 나서 내게 이 사람을 자신이 통제하여 자살시키겠다며 헛소리를 했는데 그 존재가 모르는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자살은 신들의 일체 배치를 끊어버리는가 하면 혼란시켜서 그 죄업을 스스로 감당해야하는데 사실 방금 이야기한 사례는 다른 공간의 존재가 그를 교란하는 정황이며 그의 주왠선이 잠든 순간 그의 몸을 차지하는데 만약 그런 주왠선이 잠들고 그 존재가 통제하는 정황에서 자살을 하였다면 이는 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타살입니다.
타살이며 이는 업력이 큽니다. 다른 공간의 그 교란한 존재가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며 그 교란한 존재가 책임을 져야하는 사항입니다. 아마 다른 공간의 존재들이 이것을 안다면 감히 그렇게 교란하지 못할 것인데 정말 이것을 알았다면 그것은 두려워서 감히 하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다른 공간의 존재가 잠식한 사람이 다른 공간의 존재인 자신을 보더라고 하는데 그 잠식당한 사람이 천목이 열렸다라고 하기 보다도 충격에 휩싸인 후 그 충격을 감당할 다른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이 나를 부른 것이며 내가 충격을 대신 감당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즉 충격에 휩싸인 후 충격을 대신 감당할 존재를 찾았고 그것이 그 존재가 인식하기를 나를 보았다라고 표현한 것이고 다른 공간의 존재인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했으며 그 후에 그 사람을 잠식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왔지만 이제는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니 갑자기 나(글쓴이)에 대해서 에너지가 따뜻하고 좋다고 했고 그것은 다른 공간을 볼 수 있기에 저의 주왠선이 어떤 형상인지 보았습니다. 20대의 남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나에게도 똑같이 오려했지만 그것이 보낸 에너지는 모두 청리해버렸습니다. 왜냐면 내 에너지장은 고층 신들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은 그 사람이 그 존재에게서 벗어났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내(글쓴이)가 잘 설명해준 것도 한몫했지만 그 사람도 자신의 배후에 영적부모가 되는 존재들이 존재하는데 사실 에너지가 고갈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 부모 격 되는 존재들이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문제성 있는 존재들이 사람에게 올라붙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고층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계속 주었는데 그 부모격 되는 영적 존재들이 그 문제성 있는 존재들을 처리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그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이렇게 문제를 풀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제가 상대했던 사람은 자신이 그나마 정신이 있을 때 잘 설명하고 그가 받아들였기에 망정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설명한 것을 받아들이자, 다른 공간의 교란하던 존재는 놀라면서 만약 이 존재가 나의 말을 이 사람이 더 듣게 되면 이 사람을 죽일 것이라면서 위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정신을 차리면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므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기에 그가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저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왜냐면 자신도 자신을 통제하던 존재에 대해서 걱정했고 자신의 충격적인 과거 일에 대해서 외면하려 했지만 제가 그 일을 다시 재해석하여 좋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분해한 다음 재조립해서 설명해주었기에 기억에 대한 충격이 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가장 보편적인 연공초마 형식은, 바로 당신이 연공하지 않을 때는 주위환경이 그래도 비교적 조용하다. 공을 배웠기 때문에 늘 연마(煉)하기를 즐기지만 거기에서 가부좌만 하면 갑자기 바깥이 조용하지 않음을 느낀다. 자동차 경적소리도 울리고 복도에는 발자국 소리, 말하는 소리, 문을 쾅 닫는 소리가 있으며, 밖에는 라디오도 틀어 놓아 곧 조용하지 않다. 당신이 연공하지 않으면 환경은 그래도 꽤 좋으나 당신이 연공(煉功)하기만 하면 곧 이렇다.
우리 많은 사람이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다만 이상함을 느낄 뿐 아주 풀이 죽어서 공을 연마(煉)하지 못한다. 한 가지 ‘이상함’에 가로막혔는데, 이것은 바로 마(魔)가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시켜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간단한 교란형식으로서, 당신이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 목적에 도달한다.
당신이 연공하면 당신이 도를 얻는데, 당신이 그렇게 많은 것을 빚지고도 당신은 갚지 않겠단 말인가? 그것은 가만있지 않으며, 그것은 당신을 연마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 층차 중의 반영으로서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이런 현상이 다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한 몫 빚을 치른 후에는 그것이 다시 와서 교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은 수련함이 비교적 빠르고 층차의 돌파 역시 비교적 빠르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병은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료를 못하는 것으로 병원에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빠릅니다. 정신병은 스스로가 받아들여야하며 이런 사람은 수련하기 전에 이 정신병을 해결한 다음 수련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생각을 해본다면 그 다른 공간의 존재들이 교란을 하다가 이 사람이 수련하려하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수련하면 도를 얻고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기에 죽어라 못하게 할 텐데 이런 사람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이 문제를 해결한 후에 수련을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은데 좋은 사람이 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가기에 자신들이 교란하고 올라올 환경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사람이 정신들과 인연을 맺지 못하도록 죽어라 반대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실 저도 어쩌다가 만난 사람이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자비심을 내어서 이 사람을 교란하던 존재를 배후의 영적부모들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며 설사 영적부모에게 에너지 주어 힘을 실어주어도 이 사람 스스로가 정신을 차려서 자신의 충격적인 일에 대해 재해석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럼 이 정신병을 해결할 방법이 없고 저도, 그 사람의 영적부모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 다른 공간의 존재가 교란한 이 사람이 충격적인 과거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한 것이며 그래서 다른 공간의 존재를 원한 것이다라는 이치, 명분을 틀어잡고 이를 방어책으로 삼았기에 이를 풀지 못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서 해결은 했지만 정말 천우신조인 것이며 이렇게 될 확률은 적습니다. 저는 일부러 그런 사람을 찾지는 않는데 내가 만난 사람은 나와 인연이 있고 신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도 있을 수 있기에 비로소 그의 사정을 듣고 해결한 것이지, 사실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실 좋지 못한 일면을 덮어 감추는 사람도 다른 공간의 에너지에 통제당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전혀 모르는데 위의 해리성 정체성 장애처럼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실에서 다른 이와의 마찰 등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상대방과 싸워서 이기려는 심리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커지면 당연히 상대와 문제만 생기면 싸우려들고 원인 등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지적하기 바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때는 문제성 있는 존재들이 그 때 그 사람의 사상을 지지하고 돕고 있는데 이 사람을 보는 신들의 심정은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과 잘못이라 하여 덮어 감추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데 최소한 인정하려는 태도와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하자는 소리이지, 자신을 범죄자로 보면서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른 이가 조그만 문제를 일으켜도 그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면 안 됩니다. 내가 상처를 받듯이 상대도 인격이 있어서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핍박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잘 헤아려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아마 병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것을 병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은 속인과 같은 높이로 되기 때문이다. 연공(煉功)과 진정한 수련, 특히 이런 상태에서는 그것이 병을 불러올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정으로 병을 얻는 것은 정신이 7할이고 병이 3할이다. 흔히 사람의 정신이 먼저 무너져서, 먼저 안 되고, 부담이 아주 중하여 병세를 급격히 변화하게 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 예를 들면 과거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침대에 묶어 놓고 그의 팔을 잡고는 그의 피를 뽑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의 눈을 가리고 그의 손목을 한 번 긋고는(전혀 그의 피를 뽑지 않았음), 수도꼭지를 열어 그에게 똑똑똑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했다. 그는 자기의 피가 아래로 떨어지는 줄로 알고 잠시 후 이 사람은 죽어버렸다.
사실 그의 피를 전혀 뽑지 않았으며 흘린 것은 수돗물로서, 그의 정신이 그를 사망하게 한 것이다. 당신이 늘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당신 자신이 병을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이미 속인 그 기초로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속인은 당연히 병을 얻게 마련이다.
연공인인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당신이 구하여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은 눌려 들어갈 수 있다. 한 연공인으로서 心性(씬씽)은 마땅히 높아야 한다. 당신은 늘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병이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집착심이며,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자신이 집착이 있고 잘못이 있다면 스스로 인정하고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지, 자신이나 남을 탓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은 마땅히 자신을 배려해야하며 자신을 배려하고 고려할 때처럼 다른 이에게도 배려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만약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고려하지 않고 일을 할 때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압력이 형성될 것이며 이는 위의 피를 흘리지 않았는데도 사망한 사람과도 같은 경우가 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타인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어떤 부족한 점이 보이고 어떤 문제점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심하게 탓하지 말고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도 영원히 실수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그의 부족한 점을 최대한 포용하고 감싸려한다면 상대방도 자신의 실수를 언젠가는 스스로 보완하게 될 것입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게 되더라도 다른 이가 망신스럽지 않도록 그를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꼭 지적해야하는 것이라면 그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주면 그도 지적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것이며 아랫사람은 당신에게 좋은 상사나,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수련자는 이보다 한 층 더 나아가서 배려하여 말해주는 것뿐이 아니라 상대방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집착을 닦으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집착을 찾게 해주어서 상대방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합니다. 집착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며 먼지는 청소를 통해 사라지는데 자신의 부족한 점은 채워 넣을 수 있어서 희망적인 것이 아닙니까? 사실 그 집착도 긍정적인데 청소하고 닦아내기 만하면 자신의 영혼이 반들반들, 광이 나고 빛이 납니다. 도자기에 쌓은 먼지를 닦아내면 도자기가 빛이 번쩍이지 않습니까?
장인들은 도자기를 만들 때 상당한 인내력과 정성을 쏟아 붓는데 만들고 나서도 닦고 또 닦습니다. 자신의 마음도 이렇게 청소를 통해 깨끗해지는데 당신의 모든 세포들이 당신께 아주 감사할 것이며 집착과 분리된 당신의 깨끗한 마음은 도자기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다른 이의 부족한 점이나 집착을 보았다고 더럽다고 볼 것이 아니라 신들께서 내 마음속의 앞으로 생길 수 있거나 과거에 생겼던 이런 집착을 닦아서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라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며 다른 이에게도 내가 찾은 이런 집착을 알려서 태도 표시하고 나도 그에게 기회를 주어 위덕을 닦으라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해야합니다.
기회를 주기 위해 내가 찾은 것을 말하더라도 심하게 지적하기보다 최대한 선의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상처받지 않도록 말하며 격려해주고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는 경우에는 한번 심하게 말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소 한 번 이상의 기회를 주어야하며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자신과 직장에서 같이 일해서 항상 마주보아야하며 항상 불편한 경우가 아니라면 엄중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바인 자신의 집착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말해주면 신들께서는 당신이 할 일은 모두 다했다라고 보시고 이 부족한 점을 말해준 사람이 책임감이 있다고 높게 평가하십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그의 선택이며 그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당신이 태도표시를 했고 그에게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것을 다했기에 신은 당신께 감사하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태도 표시하여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얼마의 시간이 걸려서 받아들이든 심성이 바뀌어 상대방이 언젠가 좋은 사람이 되면 모두 당신의 위덕입니다. 왜냐면 당신이 그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했고 그가 언제 어떻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여 좋은 사람이 되든지, 그가 당신이 준 기회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었으므로 모두 당신의 위덕입니다.
상대방이 설사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당신은 할 일을 다 했으므로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한 위덕이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여 기회를 준 위덕도 있으므로 역시 일석이조인 것이며 아마 미래에는 정말 자신이 이룬 것을 보고 만족하고 행복해할 것입니다. 사실 상대방의 인생을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내가 아닌 상대방이 그 상대방의 인생을 책임지는 주체입니다. 태도 표시하여 알려주었다면 상대방이 그 다음 자신의 태도를 표시하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지금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며 잘되길 바란다면 그는 분명히 언젠가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며 끝까지 깨닫지 못할지라도 인생이 끝나면 신께서 그에게 그의 인생의 잘잘못을 가려줄 것이니 당신이 그에게 선의로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말해준 일체에 대해 감사할 것이며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할 것입니다. 태도 표시하면 이렇게 어떤 경우이던지 모두 좋은 미래와 자신의 마음이 깨끗해지므로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깨끗해지면 자신이 조그만 행복을 보고 조그만 선행을 해도 아주 기뻐할 것인데 작은 행복이 모여 큰 행복 못지않으며 자신이 전에는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평했고 만족하지 못했다면 작은 것을 봐도 만족하고 감사해 할 텐데 이는 사회상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입니까? 아마 매사에 책임감있게 일할 것이며 국민들이 모두 이렇게 만족하는 상황에서 좋은 사람이 되면 자연히 국민소득이 높아질 것이며 국가도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은 태도 표시를 잘한 것을 보고 신들의 일을 대신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표현하며 아주 기뻐하십니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알아야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즉 자신이 올라간다면 그만큼 겸손해져야한다는 소리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작은 단점과 작은 집착, 작은 부족한 점을 보아도 크게 확대하여 남을 지적하는데 상대방은 견디지를 못할 수도 있으며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한 가지 개념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당하고 살았으니 나의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라는 심보입니다.
새로 며느리가 들어오면 자신이 며느리였을 때 당했던 것처럼 일부로 그렇게 심하게 대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이며 선배가 자신이 후배일 때 당했던 것을 돌려준다고 자신이 받았던 괴로움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후배를 괴롭히는 것도 있고 친구에게 상처받았다면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등으로 사회상에 수많은 문제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바로 상대방이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지적하는 것으로 신들이 원하는 것과는 상반된 것입니다.
상대방의 작은 집착을 본 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보고 나는 앞으로 저러지 말아야지를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선의로 입장을 배려하여 말해주되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는 것을 진정 해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좋은 사람이며 신들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지 말고 없는 것처럼 대하고 자신의 마음에 담아두지 말되 조그만 은혜는 더욱 크게 베풀 줄 안다면 그야말로 신들이 이 사람은 그야말로 대단하며 그 한 면에서 신의 품성을 이루었고 정말 신에게도 큰 효도를 했으며 다른 이에게 이런 좋은 사람이 어떤가를 알린 대단한 위덕이 있다면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다음은 조선의 기생인 황진이의 시조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기생이지만 시를 아주 창의적으로 썼는데 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저장해뒀다가 님이 오셨을 때 굽이굽이 펴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각자가 다를 수 있고 그것이 사람이 아닌 취미, 물건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을 모든 생명, 물질에 펼쳐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자비심과 사랑의 범위를 확장하는 배려심입니다. 황진이가 말하는 님의 범위만 확장한다면 이 시간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이며 현재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애착입니다. 이 애착만큼 같은 크기로 님의 범위만 넓힌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자체로 감사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상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어쩌면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문제로 체현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너무 나쁘게 보지말고 그들 뒤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직접 말을 걸어서 그 존재에게 너도 미래에 진입하길 바라고 잘되길 바란다고 표현하면 그 존재도 알아서 물러갈 수도 있습니다. 즉 본래 좋은 존재였는데 사람에게 화가 나거나 기타 정황이 있고 사정이 있어 교란을 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배후의 존재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정말 감사해 할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을 하면 곧 그 존재도 듣는 바, 그 존재에게 직접 말하려면 곧 전할 말을 생각하면 그들이 듣는 형식입니다.
다른 공간의 존재들을 달랠 수 있다면 달래되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다면 질책도 할 수 있고 법적대응도 가능한데 제가 겪은 그 사람의 경우에는 그 존재가 도저히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위협하므로 좋게 달래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의 기억을 재해석하여 그를 돕고 그 존재를 처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즉 저는 먼저 기회를 주었으며 그 존재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 다른 공간의 존재가 아니라 내 동료, 가족 등에게도 모두 하나의 기회를 주고 봉사의 기점에서 대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이기에 최대한 하고 나서 안되는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냥 넘겨버리거나 그보다 더 심하게 하면 곧 너도 나도 미래가 힘들어지는 것이며 신들도 다시 배치해야합니다. 이러면 불효가 아닐까요?
양심의 법을 지키고 다른 이를 자신의 마음 속에 두어 홍대하게 고려하고 이해해 줄 수 있다면 부동한 천국세계는 곧 자신의 곁에 있으며 신들께서 당신을 지켜줄 것입니다. 황진이의 시조처럼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좋은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고 누가 배려했다면 곧 그의 위덕입니다. 신들은 이런 사람에게 가장 좋은 미래를 펼쳐주시는바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며 친자식처럼 아껴줄 것입니다.
님의 범위에 다른 이가 들어올 여유공간을 두면 신들도 여러분들을 위한 여유공간을 꼭 남겨두십니다. 저는 전법륜을 통해 더욱 좋은 사람이 되었고 매사에 감사하면서 여유를 두고 사는데 전법륜은 정말 인류가 천국으로 가기 위한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는 모두가 만족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할 날이 올 것입니다. 모두들 미래에 신들의 홍대한 관용과 자비 속에서 기쁨으로 환호하시길 바라며 항상 함께 존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잘되길 바랍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은 이런 깨달음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개인 이익에서 조금 어리석다고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이다. 물론 정말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절실한 이익, 이런 문제에서 담담하게 볼 뿐이며, 다른 면에서 우리는 모두 아주 똑똑하다. 우리는 과학 항목을 연구하면서 상사가 무슨 임무를 맡겨주든지, 무슨 일을 완성하든지 우리는 모두 매우 똑똑하고 명명백백하게 아주 잘한다. 그러나 바로 우리 자신의 조그마한 개인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충돌 중에서 우리는 담담하게 본다. 누가 당신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당신을 어리석다고 할 수 없는데, 보증코 이러하다.
우리 정말로 어리석은 이 바보를 말해 보자. 이 이치는 고층차에서는 전부 다 반대로 된다. 바보는 속인 중에서 크게 나쁜 일을 하기가 불가능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며, 명예를 구하지 않아, 그는 德(더)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오히려 그에게 德(더)를 줄 것이다. 그를 때리고 그를 욕하면 모두 그에게 德(더)를 주는데 이런 물질은 극히 진귀하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곧 이런 이치가 있다: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면 잃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 바보를 보고 모두 그를 욕할 것이다: 너, 이 바보야. 입을 열어 욕함에 따라 한 덩이 德(더)를 던져준다. 당신이 이익을 점하면 얻은 한 편에 속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곧 잃어야 한다. 다가가서 그를 발로 한 번 찬다: 너 이 바보야. 자, 한 덩이 德(더)를 또 묵직하게 던져주었다. 그는 누가 그를 괴롭히고, 누가 그를 발로 한번 차도, 그는 허허 웃는다: 당신은 해봐라. 어쨌든 德(더)를 나에게 주었으니 나는 조금도 밖으로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고층차의 이 이치에 따른다면 누가 약은가? 바로 그가 약은 것이 아닌가? 그가 가장 약다. 그는 德(더)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 당신은 德(더)를 그에게 던져주는데, 그는 조금도 되돌려 보내지 않고 전부 다 가지며 싱글벙글하며 모두 다 가진다. 금생에는 어리석지만 내생에는 어리석지 않으며, 元神(왠선)은 어리석지 않다. 종교 중에서는, 사람의 德(더)가 많으면 내세에 높은 벼슬을 하거나 돈을 많이 번다고 하는데, 모두 사람의 德(더)로 교환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德(더)가 직접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했든 바로 당신의 이 德(더)가 연화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직접 공으로 연화될 수 있다. 사람의 층차 고저, 공력의 대소를 결정하는 공은 바로 이런 물질이 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이 진귀한가 진귀하지 않은가?
그것은 확실히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다. 불교 중에서는 당신이 얼마만한 높이로 수련했으면 그것이 당신의 과위라고 한다. 당신이 얼마만큼 대가를 치르면 그만큼 얻는, 바로 이 이치다. 종교 중에서는 德(더)가 있으면 내세에 높은 벼슬을 하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한다. 德(더)가 적으면 밥도 빌어먹지 못하는데, 교환할 德(더)가 없기 때문으로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지 않는가! 德(더)가 조금도 없다면 형신전멸(形神全滅)되어야 하는데, 정말로 죽는다.”
모두가 정말 아름다운 생명들이며 우리도 모두 아름다운 생명들입니다. 다만 조금 부족한 집착들이 좀 많아도 그것 자체로 우리를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되고 모두가 모두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 하고 기회를 주려 한다면 곧 그 사회는 편견 없는 사회가 되며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정신이 강해야하는데 정신이 강하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매사 일사일념을 배려와 포용, 봉사 정신으로 일체를 대하는 것입니다. 비록 말은 이렇게 해도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으며 사람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으며 조그만 단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하려고 노력하기에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단점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어서 바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또한 어떤 경우는 실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잘못이 없는데도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나 최대한 배려하려고 먼저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사람의 마음 속 문제는 살아봐야 하거나 아니면 횡령이나 기타 등등으로 문제를 일으켜야만 볼 수 있지만 외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마치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회상에서 각종 이익을 위하는 마음이 강하게 체현되어 돈과 명예를 위해 다른 이를 해치면서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은 외적으로 드러난 장애보다 문제가 크지만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학교 폭력 중에 말과 소문으로 욕을 하고 사회적인 압력을 형성하는 폭력이 있고 때리는 폭력이 있다고 했는데 전자는 내적인 상처라서 드러나지 않지만 후자는 겉으로 보이기 때문에 심각하구나를 알고 후에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내적인 상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여 결국은 정신이 망가지거나 자퇴를 고려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등으로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보이지 않으므로 가해자는 뉘우치려하지 않는데 인권은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어떤 더러운 물체를 볼 때 나는 크게 거기에 신경을 쓰지는 않는데 그때마다 사람의 집착보다야 깨끗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상처와 내면을 먼저 보고 그의 인권을 먼저 고려하는데 문제에 대해 타인의 인권을 고려하는 것이 치유의 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학생에게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학생들이 다른 이가 문제가 있고 마치 더럽다는 듯이 보는 시각에서 보며 그 시각은 다른 사람의 일정 부분,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 지적하고 괴롭히려하는 근본 원인인데 이런 사상을 자신의 집착으로 보고 제거하려한다면 곧 타인의 인권과 내면을 고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