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담긴 ‘경영의 도(道)’를 근간으로 하자(하)
글/ 당풍(唐風) 정리
[밍후이왕] 고인의 관념 중 생사는 운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한다. 도의를 성실히 지키는 것은 처세의 근본이고, 재부의 많고 적음은 자신의 덕행이 쌓은 결과이다. 다시 말해 부귀는 결과이고 덕행이 원인이다. 원인이 있어야 비로소 결과가 있다. 때문에 도의를 따라야 비로소 인의가 있고 인의가 있어야 비로소 공덕이 있고 공덕이 있어야 비로소 부귀가 있다. 고상한 도덕은 현세의 부귀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도덕을 위배하면 재해와 가난을 불러 온다.
(상편에 이어)
대법 수련에서 경영의 지혜를 얻다
그러면 세속을 이탈하지 않고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은 그들의 신앙과 인생규범이고 그리고 생활, 업무 등 일체 행위에 관통되며 상업 중에 그들의 경영 지혜는 대법의 무한한 내포에서 온다.
모 대법제자는 전형적인 80년대 출신 ‘평민’ 출신이고 부모는 평범한 노동자다. 수련 때문에 박해를 받아 떠돌이 생활을 했고 극히 가난했을 때 심지어 일년내내 옷 한 벌도 산적이 없으며 추운 겨울 내 벽만 있는 집안 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정법을 수련하고 바른 길을 가면 복이 있다’를 확고히 믿었기에 수련생과 빈손으로 한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들은 장사를 하는 경험과 자금 기초가 없어 어려운 초기 단계를 경험했다. 끝내 희망이 보였다. 수련인이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침착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하여 모순을 해결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고객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고객이 틀렸어도 수련인의 태도로 대하고 ‘부이유덕(富而有德-부유해도 덕이 있음)’(정진요지-부이유덕)의 수련의 길을 걸어 나왔다.
그들은 국내 경제정황과 사람들의 소비심리와 결합해, 상품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해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교훈을 반성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때 전혀 경험이 없어 동업분야에서 보면 그들의 조건이든, 경제실력이든 기술실력이든 이 업무 분야에 발을 넣기란 정말로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뒷걸음질하지 않고 자신이 견본을 제작해 고객에게 발송한 이후 인정을 받았다. 고객은 심지어 가격이 저렴하고 기술이 숙련되며 제작이 화려하고 성숙된 브랜드 상품을 선택하지 않고 그들과 합작했다.
동시에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에 관한 지식을 배우고 경영에서 꾀를 부리지 않고 교활한 짓을 하지 않았으며 착실하게 브랜드를 만들고 자신이 선택한 사업 분야에서 상업으로 덕을 부양하고 덕으로 상업을 경영했다. 지금은 수입이 백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이 넘고 심지어 주위 사람들이 대법제자는 곤궁하고 가련하다는 오해와 편견을 개변시켰으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 대법제자는 회사의 이사장이다. 대법을 수련해 망하려던 국가기업을 살렸다. 그녀의 신기한 선약은 아주 간단한데 바로 마음을 수련해 안으로 찾고 직원과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신용을 지키는 인품으로 탄탄한 상품품질을 만들어 끝내 시장을 얻었다.
‘전법륜’ 중에서 말씀하신바 “이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眞(쩐)・善(싼)・忍(런), 그가 바로 불법의 최고 체현이며, 그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불법이다.” 법을 배운 후 그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분석하고 지도하며 법을 사부로 모시겠다고 결심했다.
사업환경을 수련환경으로 보고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될수록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게 했다. 수년간 업무에서 모순에 봉착하면 바로 안으로 찾는 것을 견지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직원에게 사랑을 베풀고 참을성 있고 포용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주 주의를 준다.
이 회사는 3000평방이나 되는 건물 한 동을 지었고 현장 작업장과 직원주택이 있다. 평당 600위안(약 11만원)의 가격으로 시장 건축원가에서 가장 낮은 가격이었지만 건축 품질은 가장 좋았다. 공사 측은 그 때 꼭 사례비를 주려고 했고 심지어 그녀에게 집 한 채를 주려 했지만 몇 번이나 사절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인은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의 높은 경지까지 수련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동해서 말했다. “제 누나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내심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정말로 탐오하지 않고 차지하지도 않으며 내가 몇 년간 건축공사를 하면서 만난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기업은 비록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300여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러나 관리는 어려웠다. 국영 기업은 틈새에서 생존하기에 각 방면에서 오는 압력이 크고 간섭하는 부분이 특히 많으며 기업이 정상으로 한 가지 일을 성사하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먹고 갖고 얻으려는 현상이 늘 발생한다. 그들이 과분한지 알면서도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선하게 협상하고 마지막에 그들의 이해를 얻는다. 직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말한다. “우리 주변의 국영 기업은 다 망했는데 다만 우리 한 곳만 남았어요. 우리는 대법의 복을 받았고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여 우리도 이익을 얻었습니다.”
직장에서 그녀 한 사람이 관리도 하고 재무도 주관한다. 하지만 10여 년간 수련에서 기업에서 돈 한 푼 더 가져 간적이 없어 모든 직원의 인정을 받았다.
대법 수련을 하여 사상경지는 승화되고 기업은 갈수록 좋아지고 상품 품질은 동일 업무 분야에서 고객이 가장 선호한다. 고객은 모두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알고 그녀의 인품에 존경을 표하고 이런 사람과 합작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하며 심리적 방어선을 긋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사회 각계의 호평을 받고 각 정부의 자랑이 됐으며 기업은 매년 모두 정부의 특수 공헌 기업으로 선정되고 개인도 몇 번이나 각급 선진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리하여 선전 부서의 인터뷰를 받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기업과 개인의 정황을 소개하고 특히 개인의 성과는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여 얻었다고 했다. 그들은 말했다.
“당신의 사적은 정말로 감동스럽습니다. 하지만 뉴스 부서는 규정이 있는데 파룬궁의 사적은 보도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은 비록 정면으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도덕에 부합하는 것이 비로소 순조로운 경제발전 양식이다
보건대 도덕을 굳게 지키고 좋은 사람이 됨은 한때 손해를 보지만 끝내 복과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많은 식견이 있는 사람이 지적했는데 도덕에 부합하는 경제야말로 비로소 순조로운 경제발전의 양식이다.
어떤 사람은 약육강식의 ‘늑대문화’를 숭배하고 오직 다른 사람을 싸워서 이겨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사실 동물은 동물의 법칙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표준이 있다.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다.”(전법륜) 정법수련과 바른 신앙 중에 사람 됨됨이는 최고의 경영지혜가 내포되어 있다. 정통 신앙의 내수(内修) 법칙은 사람에게 자신의 승화를 주목하게 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한다.
진정으로 튼튼한 내공 수련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시장을 얻는다. 질투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으며 악성 경쟁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마음속에 선한 생각이 있고 타인의 이익을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개인은 정당한 재물을 얻을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8/259915.html
(철도 민영화에 대한 글은 댓글에 있습니다.)
아래는 2002년 필라델피아 설법집의 내용입니다.
"그들은 어떤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수련과정 중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도달하려 하고 있다. 어떤 신(神)이 방법을 제출했을 때, 그들은 급급히 부정하거나, 급급히 자신의 것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른 신이 제출한 방법의 최후 결과가 어떠한지를 먼저 본다. 길은 같지 않으며 매 사람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바, 생명이 법 중에서 깨달은 이치는 모두 같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틀림없이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모두들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조건 없이 묵묵히 보완해주어 그것이 더욱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
신들은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가를 보시며 심성을 보시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서있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면 신들은 마치 우리들을 보실때 세종대왕의 그 아름다운 품성을 우리가 바라보듯이 우리를 보실 것입니다. 모두 잘되기를 바랍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여기서부터 제글입니다.)
철도 민영화에 대해 말하다.
철도 민영화는 정책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수련자로서 말하기는 적합하지 않지만 역시 국민으로서 입장을 밝혀야하고 사람들이 대체 수련자는 그럼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 인가?라고 궁금해 할 수 있으므로 제 태도를 표시합니다.
저는 수련자의 입장에서 말하는데 저는 그 문제를 백지상태로 보며 어느 한쪽이 맞다, 틀렸다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며 어떻게 하든 좋은 사람이 맡으면 두 가지 다 좋다라고 표현합니다.
정반합은 변증법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주요 쟁점은 정과 반이 모두 합쳐야지 비로소 새로운 조화의 경지가 나오며 결론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정의 의견이 있고 반의 의견이 대립할 때 수련자는 이것을 시스템의 대립이라고 볼 때가 있는데 바로 철도 민영화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합니다.
철도 민영화 자체의 쟁점은 국민의 재산으로 국가가 관리할 것이냐? 아니면 민간의 경영 자본으로 넘겨서 민간인 경영가가 관리할 것이냐에 있습니다. 즉 관리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허면 나는 수련자로서 정치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습니다. 허면 아무 태도 표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나는 태도표시를 명확히 할 것이며 옳고 그름을 똑똑히 말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속인이 쟁점을 두는 두 의견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태도를 다른 시각으로 표시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가 관리해야한다고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민간의 경영가가 관리해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의견은 그저 어느 것으로 정해지면 곧 풀릴 문제로 다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때서야 이 두 가지 쟁점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인지할 것입니다.
왜냐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문제가 또 발생했다면 두 가지 방식의 선택으로 진정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병을 치료해 주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을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긴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병을 진정하게 치료하지 못했는데, 모두 병을 미루어 놓았거나 전화(轉化)했을 뿐, 그것을 없애버리지는 못했다. 진정하게 이 난(難)을 제거하려면 업력을 없애버려야 한다.
만약 진정하게 이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이런 업력을 철저히 없애버리는, 여기에 진정 도달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층차는 역시 낮지 않다. 그는 이미 한 가지 이치를 보았는데, 속인 중의 이치는 함부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련과정 중에서, 수련자가 자비심에서 일부 좋은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 병을 치료하며,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이것은 허용하지만, 사람을 완전하게 치료해 줄 수는 없다.
만약 정말로 속인의 병을 뿌리째 없애버릴 수 있다면, 수련하지 않는 한 속인이 아무 병도 없이 여기서 나간다 해도, 문만 나서면 여전히 속인이므로 개인 이익에서 여전히 속인과 마찬가지로 쟁탈할 것인데, 어떻게 그의 업력을 함부로 없애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해줄 수 있는가?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이 가장 진귀하기 때문이다. 그가 수련하려 하기에 내보내는 이 일념(一念)이 가장 진귀한 것이다. 불교 중에서는 불성(佛性)을 말하는데, 불성이 나오기만 하면 각자(覺者)들은 그를 도와줄 수 있다.”
“나 여기에서는 병 치료를 말하지 않으며,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병 있는 몸을 가지고서는 당신은 수련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淨化)해 주려고 한다. 신체 정화는 오직 진정하게 공을 배우러 온 사람, 진정하게 법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만 국한한다. 우리는 이 점을 강조한다: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당신이 이전에 병이 있던 곳은 아마 기공을 연마(練)하여 나았고, 또는 어느 기공사가 봐주어 나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또 새로 들춰 나온다. 그것은 그가 당신에게 낫게 치료해 준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에게서 뒤로 미루어 놓았을 뿐, 아직도 그 위치에 있으며, 당신에게서 현재 재발하지 않아도 장래에 재발하게 한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 들춰내야 하고, 당신에게서 모두 쳐서 내보내야 하며, 뿌리부터 전부 없애버린다.”
위에서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이 바로 심성이 아닌 외부적인 시스템을 바꾸려는 마음인데 그는 시스템을 바꾸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꾼들 시스템을 책임지는 책임자가 심성이 부패하면 역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이며 장기적으로 나아가면 그 마음속 심성의 문제가 외부로 체현되어 나올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려하지 않고 그저 심성을 닦아나가면 병업은 신들이 알아서 처리해줄 부분이며 사람이 인위적으로 생각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주재하는 경영진이 심성이 좋으면 저절로 모두를 배려할 것이며 이윤추구의 한방면에만 빠져서 모두를 괴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심성의 문제이며 외부에서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전반 인류가 심성으로 스스로의 양심을 되돌아봐야하며 안으로 찾아야합니다.
설사 지금 시스템을 바꾸든 바꾸지 않던 지금 잠시 문제가 없는 것은 자신의 심성의 부패가 들킬까봐 조심하는 것이며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왜냐면 양심의 법, 심성이 부패되었고 스스로가 개변하려하지 않으며 외부적인 시스템은 그 주재자의 심성에 의해 다른 이를 살리는 도구도 되고, 남을 괴롭히는 도구도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잠시 치료가 되었다고 해도 병업이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나중에 재발할 것이며 역시 시스템적으로 대체하고 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심성을 제약하지 않으면 근본 원인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병업을 해결하려면 고통 중에 갚아버리거나 좋은 사람이나 수련자가 되어 그 병업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린다면 저절로 낫게 될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시립대 교수가 산 속에 들어가서 암 말기였는데도 저절로 치유되고 재생되었다고 했는데 이런 기적과 같은 사례는 모두 이 병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이며 이런 사례가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병업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을 주재하는 경영가의 품성을 상향하는 것이고 경영가의 품성과 심성에 문제가 있다면 경영가를 바꾸고 경영진의 품성을 증명하면 저절로 문제는 해결됩니다.
즉 사실 원인은 심성에 있는 것으로 시스템적으로 이렇게 변형하고 또 저렇게 변형하더라도 모두 근본 원인은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바깥 테두리만 좀 바꾸었을 뿐입니다. 근본 원인은 심성에서 찾아야하는데 왜 밖에서 찾는단 말입니까?
국가가 관리하더라도 책임을 맡은 공무원이 심성이 문제가 있다면 역시 재무적인 부분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계속 부채가 늘어나서 자꾸 돈을 올린다는데 바로 심성에서 원인을 찾지 못해서 조성된 것입니다.
민간인이 관리하면 민간인이 이윤 추구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대국민 서비스도 역시 중요하게 보아 이 부분도 역시 같이 조절해나가면 국민들도 저절로 만족할 것입니다.
사실 민간인의 심성과 국가 책임자의 심성에 달린 것으로서 좋은 사람이, 우주에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진 진실한 자가 이를 맡아보십시오. 그럼 사실 이 문제는 저절로 모두가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가 맡아도 국가가 내정한 책임자의 심성이 문제가 있다면 되려 정비인력을 줄인다던지? 각종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여 빚을 갚으려할 텐데 사실 각종 사회상의 문제는 모두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고 이윤만을 추구하여 심성이 패괴되어 비로소 문제가 나타난 것인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류가 심성을 되돌려야만 하며 누가 경영을 맡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심성이 패괴되면 당연히 재물은 떠나갑니다. 또한 국가가 민심을 잃으면 저절로 국가의 발전에 장애가 형성되며 민간인이 심성이 문제가 있어서 역시 인심을 잃으면 저절로 회사의 발전이 마치 지금 당장은 좋아 보이나 반드시 언젠가는 파탄이 날 것입니다.
국가는 현재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해서 그렇게 철도 민영화에 부딪힌 것인데 그럼 문제를 푸는 것은 신뢰형성에 있지 않습니까? 민심이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어야 비로소 정부의 위엄이 바로 서는 것이며 수련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민영화이냐 아니냐 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합니다.
신뢰 형성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경영가를 검증하고 또 검증해서 품성이 이미 대국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경영가에게 철도를 맡기고 국민에게 약속을 하며 이를 법으로 보장해주어서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당연히 국민들은 신뢰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내용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민간 경영가가 얼마이상은 이윤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대국민 서비스의 질에 어떤 부분은 건드리지 말며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민간인 경영가를 내정하려고 할 때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투표권을 행사하여 입찰자를 정하는 것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한 국민들은 외국처럼 너무 비싸질까봐 걱정인 것인데 민간인 경영가가 잘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교체하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방법은 많으나 심성을 지킬 수 있는 경영가를 국민이 직접 뽑게 하고 정말 약속을 지킨다면 아마 국민도 정부를 정말 신뢰하게 될 것이며 민영화를 하더라도 정부를 믿을 것입니다. 왜냐면 약속을 지켰고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법을 만들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가를 내세워서 민영화를 시킨 다음 확실하게 그런 사람이 국민에게 한 대국민 서비스의 약속을 지킨다면 그럼 국가도 민심을 얻고 국민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으며 민간인 경영가도 역시 자신의 품성을 증명하여 각종 사업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민영화를 시키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책임자의 성품을 갈고 닦아야하며 철도는 국민이 이용자이므로 봉사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안전과 대국민서비스를 추구한다면 사실 부채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시스템적인 문제를 시스템을 바꾸어 해결하려는 것은 최하책입니다. 최상책은 바로 시스템을 주재하는 사람이 누가 될 지언정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약속을 지키면 모두가 믿고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왜냐면 필경 국가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약속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민영화를 하냐 안하냐는 시스템을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것으로 시스템 바꾸어도 사람의 마음을 제약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스스로 욕심을 부려 이윤만 추구하려한다는 것은 그런 욕심 많은 사람을 경영가로 내정했거나 책임자로 내정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이윤 추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이를 배려하고 고려해야하며 인류가 존재하는 까닭은 모두가 모두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며 천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지 여기서 자신만 고려하면서 남이 죽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명예와 이익만 추구하여 남을 해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내정한 책임자가 정말 그 문제가 되는 시스템을 정확히 잘 경영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고 그의 품성과 인성을 검증해야합니다. 그가 안전 면이나 기타 면을 줄이지 않더라도 책임감 있게 다른 이를 배려하는 태도로 경영을 한다면 저절로 부채문제는 해결되어갈 것인데 왜냐면 국민들이 신뢰할 것이며 만약 국민들이 신뢰하면 생업에 더 열심히 종사하여 더 벌어들인 부분은 자연히 국가도 어느 정도 이익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그 GDP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국가도 이득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내정한 책임 공무원이 책무를 다하면서도 국민을 배려하고 다른 부분을 줄여서 눈속임으로 부채를 갚으려하지 않는다면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을 걱정시키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민들을 응원하는 국가는 당연히 저절로 발전하게 마련이며 IMF때처럼 인력 감소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두가 열심히 살게 되므로 모두가 이득을 볼 것입니다.
민영화를 한다해도 역시 위와 같이 믿을 수 있는 경영가를 내정하며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투표라던지 각종 방식으로 그 경영가의 품성을 증명해야하는 것이 신뢰와 소통의 기본 방향입니다.
국민이 생업을 놓게 만드는 원인은 민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경영을 맡는 공무원 혹은 민간 경영자에게 있는 것이며 바로 그 책임 경영가의 심성에 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생업을 놓으면 그만큼 국가의 손해입니다. 다른 국가들을 보면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거리를 가는데도 십 만원 이상이 됩니다. 이것은 그 경영가의 심성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까?
그 경영가가 국민을 배려해보십시오. 이윤만 추구하여 국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그가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경영을 맡아 보십시오. 그럼 국민들이 저절로 그를 존경하고 우러러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이윤도 추구하지만 조금 금전적으로 적정한 선을 국민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배려할 것이며 비록 이윤은 조금 덜 추구해도 민심과 인심을 얻었는데 이 민심과 인심은 이 민간 경영가가 다른 사업을 하더라도 좋은 작용을 가져올 것이며 국가 공무원이 이렇게 책임을 다한다면 저절로 국민이 공무원을 칭송하며 국가의 덕이 큰 것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세종대왕을 보면 자신보다 백성들을 더 챙기고 백성을 자식처럼 생각하였는데 이윤만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버이처럼 모시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처럼 대해주었는데 그가 이윤만 추구하였다면 오늘날의 한글을 만드셨겠습니까? 시간도 귀중한 돈인데 귀찮아서 한글 만들지 않았으면 우리는 다른 문자를 쓸 것이며 이런 과학적인 문자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하는데 마치 현재의 사람들을 보면 한글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듯합니다. 한글을 너무 줄여 써서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욕을 하는 것을 즐겨하기도 합니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품성을 난 향기처럼 맡을 수 있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글을 통해서 나는 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예전에 드라마를 보고 깨우친 점이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있는데 동생은 심장병이 있습니다. 언니가 후에 동생에게 심장을 이식해줬고 언니는 죽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언니를 보고 가슴아파하면서 언니는 나와 함께 한다고 하였습니다. 언니는 죽었는데 왜 함께 합니까?
언니가 심장을 이식해줬으니 언니는 내 가슴 속 심장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필경 그 동생의 심장은 언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을 깨달았나요? 한글은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이식해준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의 발전도 어쩌면 조금 늦춰졌을 지도 모르며 이렇게 편리한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가 세계에 자랑 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었을 것이며 우리 모두 언어 면에서 불편하게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은 오로지 국민과 국가의 미래만을 생각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민영화를 하던 안하던, 공무원과 민간인 경영자가 본받아야할 심성의 경지가 아닙니까?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이 공간에서 되돌아 올라올 수 있음을, 도가의 연공(煉功)에서는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 하는데, 그에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곧 불성(佛性)이 나온 것으로서, 이 마음을 가장 진귀하게 보아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것이다.
사람이 이처럼 고생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아직 방향을 잃지 않고, 또 되돌아가려고 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것인데, 무조건 그를 도와주며 무슨 일이든 그를 도와줄 수 있다. 왜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는 해줄 수 없는가? 바로 이런 이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도자와 관리자는 물론 각 개개인이 좋은 사람이 되어 모두를 배려한다면 사회 상의 각종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진실되고 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경영을 맡는다면 이윤과 서비스 등에서 모두 균형을 맞추어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외부적인 시스템을 개혁하고 바꾼다고 해결 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사람이 되면 신들은 반드시 문제가 풀리게 도와줄 것이나 심성이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 바꾸어도 신들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진심을 담은 자, 진실을 전하는 자의 글, 언행, 사상은 영원히 그 품성이 시스템을 통해 전해집니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이든 그것이 한글이던, 철도던 어떤 시스템이던지 간에 심성이 부패한 사람이 그 시스템을 맡게 되면 각종 재난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좋은 사람이면 당연히 복을 불러올 것이며 재난이 아닌 재물이 모두에게 흘러들어오고 국가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국강병을 중시한 사람이 역사 속에 많은데 그들이 모두 심성을 추구했겠습니까? 심성을 추구한 사람들은 정말 국가에 큰 교훈을 주었는데 당연히 국가가 그들의 심성을 본받았다면 그 국가는 승승장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수련자이기에 수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의 의견이던 반의 의견이던 나는 두 가지 대립된 의견은 시스템상의 것으로 수련자의 시각에서는 의의(문제 해결면에서)가 없다고 봅니다.(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이 있을지라도 수련자 입장에서는 진정한 문제가 시스템 바꾸어 해결되지 않을것이며 심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봄)
수련자는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정책적인 부분을 설사 말하더라도 정치에 상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성에대한 부분을 말하기 위해서 말하며 특정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 심성은 인권인데 바로 인권상향에서 문제가 풀릴 것이라면 이런 의견을 표현할 뿐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법률이 속인 중의 일을 상관하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연공인이라면 바로 초상(超常)적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초상적인 사람으로서, 초상적인 이치로 당신에게 요구해야 하지, 속인 중의 이치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한 가지 일의 인연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이 일을 잘못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위(無爲)를 말하는데,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단지 나쁜 사람을 단속하려 한다. 그러면 당신은 가서 경찰이 되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 역시 당신에게 살인 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속인이 속인의 일을 상관하는 것은 관계가 없으며, 그는 속인의 이치로 가늠한다. 당신은 초상(超常)적인 이치로 가늠해야 하는데, 살인 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당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心性(씬씽)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겠는가?
당신이 살인 방화하는 것마저 상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상관할 것인가? 다만, 이런 것들은 우리 수련하는 사람과 무슨 관계가 없다. 반드시 당신에게 안배하는 것은 아니며, 꼭 당신이 만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자는 살인, 방화와 같은 인권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옳고 그름을 표현해야 합니다. 수련자는 심성을 지키려고 하는데 인권에 대한 문제와 심성에 관한 문제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련자가 아닙니다. 정책에 찬, 반하지 않더라도 심성에 관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철도 민영화는 살인, 방화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심성의 부분만 잘 지킨다면 모두가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수련자로서도 반대하는 정책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인권 탄압 정책이며 파룬궁의 인권탄압으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과 수련자가 목숨을 잃는 것도 모자라 각종 고문과 장기적출을 하는데 이것은 인권을 소멸하는 정책이 아닙니까?
저는 이런 인권침해 정책은 반드시 반대하며 그를 시행한 중국 공산당 정부도 반대합니다. 철도 민영화는 이에 속하지 않으므로 정책 자체를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허나 인권을 소멸하고 세계 인권선언에 위배되는 짓을 하는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은 저는 반대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저 인권을 직접적으로 위배한 사건이 아니면 반대하지 않고 되려 심성만 지켜준다면 백기를 들고 환호합니다. 저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던지 심성적인 면에서 신뢰를 준다면 국가는 반드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잘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민영화가 되던 안 되던 맡은 책임자의 심성이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재난을 불러오게 되며 시스템을 바꾼다고 근본적인 심성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도 심성을 스스로 제약하여 좋은 품성을 지니도록 해서 국민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 국민들이 생업에서 이탈하여 걱정을 하게 하지 않아야하고 국가의 공무원들도 역시 이렇게 해야 하며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민주주의 원칙대로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게 태도표시를 하되 국가를 고려하고 심성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말해야합니다.
민간인 경영가도 국민인데 당연히 모두를 배려해야하며 누가 되는지와 관련 없고 시스템이 바뀌고 안 바뀌고는 수련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문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양심의 법에 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의 심성에 관한 문제이지,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바꾸어 해결한다고 사람의 심성이 바뀌겠습니까? 보지 않을 때 나쁜 짓을 여전히 할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면 국가의 각종 문제는 모두 빛을 뿌리면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모두 남을 탓하지 말기를 바라고 국가의 탓도 아니며 민중의 탓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의 심성 문제이며 이 심성을 제대로 바꾸어야지 시스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내 생각에는 심성이 높은 사람은 어떤 시스템을 맡더라도 세종대왕처럼 모두를 배려하여 모두가 이득을 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지금 시대에 살아계셔서 철도 경영을 맡으신다면 국민들은 모두 찬성할 것입니다. 한글과 여러 가지 시스템으로 비춰지고 전해진 그분의 품성을 국민들이 믿고 우러러볼 것인데 바로 그의 품성, 양심, 심성을 믿는 것이 아닌가요? 당연히 국민들은 국가가 이런 사람에게 맡기면 모두가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철도의 경영자가 공무원이 될 것이냐? 민간인이 될 것이냐? 는 무슨 관건문제가 아니며 진정한 문제는 내정된 경영가의 품성과 심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련자라서 정치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그저 정치를 하시는 분들과 국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심성과 품성에서 상대방과 모두를 배려하여 세종대왕과 같은 품성을 모두가 본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글의 본문에 나온 파룬궁 수련자들도 신의 품성을 증명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며 국가도 품성을 증명하는 사람을 내세운다면 저절로 국가 발전이 되며 국민 모두가 이득을 보게 할 것입니다. 성공은 사실 쉬운 것이며 자신의 양심에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되며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저절로 사회의 각종 문제는 풀릴 것입니다. 저는 심성에서 원인을 찾고 심성을 돌려세우며 품성을 증명하는 것이 진정한 법(法)과 도(道)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모두가 잘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