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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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정은 극동이고 극동은 극정입니다.
원심력이 있기에 구심력이 있는 것이고 구심력이 있기에 원심력이 있는 것입니다.
구심력이 없다면 원심력도 없고 원심력이 없다면 구심력도 있을수 없습니다. 모든게 흩어져 버리죠.
가는 길이 끊임이 없기에 매 순간 순간마다 완전하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며, 자족 속에 감사를 말할수 있는 겁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과 모험은 평화와 고요와 행복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생기를 줍니다.
어떤 것을 함에, 단순히 행위 자체의 기쁨을 느낄수 없다면 억지로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그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증일뿐이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떤 것을 올바로 선택하기 위해선 앎의 지혜를 성취해야 하는 겁니다.
감사와 자족이라고 해서 단지 현재 어둠에 절여진 자신의 모습과 어둠을 옹호하고 퍼질러 있기 위한 수단으로 그것을 말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요.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자기 존중으로부터 시작하되, 이제 그 다음 단계로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나아가야할길도 압니다.
우리는 매 순간 여기에서 완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가야할길이 있습니다.지금 현재 있는 자기 자신과 이곳을 사랑하는 자는 변화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앎을 지혜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죠. 완전한 것을 알고 만족하고 감사하다면 가야할곳으로 가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먼저 앎의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세계는 근원신이 원하는 바 , 자연의 법칙에 합당한 세계가 아니며 환영입니다. 여러분의 본래의 모습은 근원과 연결된 에테르 신체였습니다. 이 세상은 진리인척 하는, 근원신과 단절된 거짓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영혼을 배제한 주류과학과 종교 그러한 것들이 근원신으로부터의 축복과 사랑속에 여러분을 여러분 답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죠.
근원과 연결은 언제 어디든 매순간에도 가능하지지만 '합일'이라는 것은 또 다른 것으로, 영혼의 신체적 변화이고 진화인데 그것은 말이나 이론뿐만이 아니라, 신체와 실질적 시스템(자연)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체적 변화와 진화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종족 전체와 우주 전체의 일이기도 하지요.'지금 이순간이 완전하다 그 무엇도 할필요가 없다'만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러분들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무엇을 할필요가 있는 겁니다.
전자는 마인드의 일이며 후자는 그것을 뒤받침해주는 실질적인 물리적인 절차와 과정의 일입니다.
자족과 감사와 우리는 매 순간 완전하다는 것은 마인드 사랑의 일이며
무엇이 나아갈인지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다는 것은, 실질적인 일을 함에, 이성과 분별, 지혜와 신체의 일입니다. 이 삼요소는 혼잡을 일으킬것이 없으며, 반드시 하나로 같이 추구되어야 하는 겁니다. 덕에는 선악이 없지만 지혜에는 분별이 있고 의지는 골격을 이룹니다. 덕과 지헤 의지(신체)모두 하나에서 나온겁니다. 이 삼요소는 반드시 함께 추구되어야 하는 겁니다.
원심력이 있기에 구심력이 있는 것이고 구심력이 있기에 원심력이 있는 것입니다.
구심력이 없다면 원심력도 없고 원심력이 없다면 구심력도 있을수 없습니다. 모든게 흩어져 버리죠.
가는 길이 끊임이 없기에 매 순간 순간마다 완전하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며, 자족 속에 감사를 말할수 있는 겁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과 모험은 평화와 고요와 행복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생기를 줍니다.
어떤 것을 함에, 단순히 행위 자체의 기쁨을 느낄수 없다면 억지로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그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증일뿐이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떤 것을 올바로 선택하기 위해선 앎의 지혜를 성취해야 하는 겁니다.
감사와 자족이라고 해서 단지 현재 어둠에 절여진 자신의 모습과 어둠을 옹호하고 퍼질러 있기 위한 수단으로 그것을 말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요.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자기 존중으로부터 시작하되, 이제 그 다음 단계로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나아가야할길도 압니다.
우리는 매 순간 여기에서 완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가야할길이 있습니다.지금 현재 있는 자기 자신과 이곳을 사랑하는 자는 변화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앎을 지혜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죠. 완전한 것을 알고 만족하고 감사하다면 가야할곳으로 가는 것 또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먼저 앎의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세계는 근원신이 원하는 바 , 자연의 법칙에 합당한 세계가 아니며 환영입니다. 여러분의 본래의 모습은 근원과 연결된 에테르 신체였습니다. 이 세상은 진리인척 하는, 근원신과 단절된 거짓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영혼을 배제한 주류과학과 종교 그러한 것들이 근원신으로부터의 축복과 사랑속에 여러분을 여러분 답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죠.
근원과 연결은 언제 어디든 매순간에도 가능하지지만 '합일'이라는 것은 또 다른 것으로, 영혼의 신체적 변화이고 진화인데 그것은 말이나 이론뿐만이 아니라, 신체와 실질적 시스템(자연)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체적 변화와 진화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종족 전체와 우주 전체의 일이기도 하지요.'지금 이순간이 완전하다 그 무엇도 할필요가 없다'만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러분들은 완전하지 않으며 그 무엇을 할필요가 있는 겁니다.
전자는 마인드의 일이며 후자는 그것을 뒤받침해주는 실질적인 물리적인 절차와 과정의 일입니다.
자족과 감사와 우리는 매 순간 완전하다는 것은 마인드 사랑의 일이며
무엇이 나아갈인지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다는 것은, 실질적인 일을 함에, 이성과 분별, 지혜와 신체의 일입니다. 이 삼요소는 혼잡을 일으킬것이 없으며, 반드시 하나로 같이 추구되어야 하는 겁니다. 덕에는 선악이 없지만 지혜에는 분별이 있고 의지는 골격을 이룹니다. 덕과 지헤 의지(신체)모두 하나에서 나온겁니다. 이 삼요소는 반드시 함께 추구되어야 하는 겁니다.
2010.02.22 11:45:48 (*.48.163.63)
시간과 함께 우리는 변화합니다. 동일한 속도로.. 우주의 크기와 같은 시간의 배를 타고 변화라는 속도로 움직이고있으므로 우리는 변화의 근본이치를 깨닫지 못합니다. 시간=변화를 알려면 그 우주선에서 내려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내릴수가 없지요 적어도 몸을 가지고있는 한은..그러니 그것을 알려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이룰 수없는 꿈일 뿐입니다. 안다고 느낀순간 이미 변화되었으므로 절대 그 변화 그자체를 알수없는것입니다. 따라서 우린 코스믹의 변화=원리를 결코알수없습니다
2010.02.26 17:39:31 (*.34.108.87)
그게바로 불가지론이란 겁니다. 한걸음식 걸으면서 알만큼은 알면 되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다 알려고 하니까 한숨만 나오는 겁니다. 노자가 말했듯이 단지 하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뭘 얻으려고도 하지 않고 보상도 생각하지 않고 단지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그게 바로 '현존'입니다. 어떤 성과나 결과에 집착했을때 거기에 반대급부로 다 때려 취우자 불만을 가지고 생각하는 불가지론도 나오는 것이지요.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고 정체된 것이지요. 근본이치란게 뭐 대단한게 아닙니다. 님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원심력이 있기에 구심력이 있는 겁니다. 원심력이 없다면 그것을 받아내는 구심력도 없이 넘어집니다. 움직이 없다면 멈춤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죠.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신체라는 것은 육체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육체는 신체의 하나일뿐입니다. 육체를 벗어나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무형의 세계가 나오냐 그것도 아닙니다. 정신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실질적 세계입니다. 정신계도 그나름의 밀도수준에서 물질입니다. 실질적 세계가 있습니다.
2010.02.26 18:16:39 (*.34.108.87)
진화라는 개념을 수평적 수준에서 저희들끼리 생물들이 파충류가 새가 되고 포유류가 되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지 않으며 인간의 영역과 동물의 영역은 다릅니다. 인간은 고유의 루트를 통해서 근원에서 나와 근원으로 돌아가며 동물은 동물대로 고유의 루트를 탑니다.
영체의 발달을 통해 영혼이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근원으로 돌아가는 수직적 여정 그것이 진화입니다. 그 수직의 레벨마다 그 나름의 수평의 삶이 존재하는 것일뿐이죠.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선 수직적인것인데 그 수직의 각 지점마다 수평적 층이 즉 삶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 수직적 과정은 '깨달음'과는 달리 수백만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깨달음은 단지 이 삼차원안에서 그것을 아는 것이고, 개인의 수행을 통해 빛의 신체를 통한 '승천'과 같은 변형 또한 실질적인것이나 그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세계가 존재합니다. 수직이 모여 이루어진 수평이죠. 수직 안에 수평이 있고 수평안에 수직이 있습니다. 개인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우주 전체의 진화라는게 있습니다. 삶은 그것을 위한 실질적 대상이고 무대입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아도 삶은 존재하는 겁니다. 신은 진화이고 생명입니다.
영체의 발달을 통해 영혼이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근원으로 돌아가는 수직적 여정 그것이 진화입니다. 그 수직의 레벨마다 그 나름의 수평의 삶이 존재하는 것일뿐이죠.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선 수직적인것인데 그 수직의 각 지점마다 수평적 층이 즉 삶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 수직적 과정은 '깨달음'과는 달리 수백만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깨달음은 단지 이 삼차원안에서 그것을 아는 것이고, 개인의 수행을 통해 빛의 신체를 통한 '승천'과 같은 변형 또한 실질적인것이나 그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세계가 존재합니다. 수직이 모여 이루어진 수평이죠. 수직 안에 수평이 있고 수평안에 수직이 있습니다. 개인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우주 전체의 진화라는게 있습니다. 삶은 그것을 위한 실질적 대상이고 무대입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아도 삶은 존재하는 겁니다. 신은 진화이고 생명입니다.
2010.02.26 18:30:23 (*.34.108.87)
앞으로 만년후 혹은 백만년후의 인류가 지금과 같을 거라고 보십니까? 이 우주에서 나온 모든 영혼들은 언젠간 하나도 빠짐없이 근원에 도달합니다. 그러려니까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우주에 사는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며 인간에겐 그것을 낳은(창조한) 아버지 어머니가 존재하고 먼저 간 선배들이나 형들 언니들 오빠들 존재들을 통해서 근본이치를 알수있는 겁니다.
여기서 영혼을 부정하고 영혼의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명이 무생물에서 우연히 저절로 나왔다는 주류과학과 불교의 진화론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죽은 무생물입니다. 현대인은 우주에 신에 대해 어떤 경외심도 염치도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의 근원을 알았을때 님들은 비로서 참되게 님들의 뿌리를 알게 되고 정체성을 자주성을 확보할수 있는 것입니다. 근원의 스스로 분신화된 영혼은 곧 자주성이고 정체성이며 주체성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 영혼을 스스로 외면하고 버려둠으로서 어떤 집단적 구속(관념이나 시스템)에 종속되는 것은 죄라는 것을 아십시요. 마음을 비운다거나 하는 것은 자기 영혼의 주체성을 깨닫는것 그것 이상은 아닙니다.
영혼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왔으면서도 주체적인 다양성을 줍니다. 다양성과 하나로서 근원신을 모두 함께 존중하는 길 영혼을 아는 길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영혼을 부정하고 영혼의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명이 무생물에서 우연히 저절로 나왔다는 주류과학과 불교의 진화론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죽은 무생물입니다. 현대인은 우주에 신에 대해 어떤 경외심도 염치도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의 근원을 알았을때 님들은 비로서 참되게 님들의 뿌리를 알게 되고 정체성을 자주성을 확보할수 있는 것입니다. 근원의 스스로 분신화된 영혼은 곧 자주성이고 정체성이며 주체성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 영혼을 스스로 외면하고 버려둠으로서 어떤 집단적 구속(관념이나 시스템)에 종속되는 것은 죄라는 것을 아십시요. 마음을 비운다거나 하는 것은 자기 영혼의 주체성을 깨닫는것 그것 이상은 아닙니다.
영혼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왔으면서도 주체적인 다양성을 줍니다. 다양성과 하나로서 근원신을 모두 함께 존중하는 길 영혼을 아는 길 밖에 없습니다.
2010.02.26 18:49:16 (*.34.108.87)
'내가 없다'라는 말은 '네가 없다'라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아십시요. 우리는 공통된 하나의 근원으로 나왔으면서도 우리는 모두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근원으로 가려면 실질적 과정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근원에 대한 존중입니다. 각자 있어야 할자리를 근원이 낳았기 때문이죠. 그것의 토대위에 하나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지 무질서가 하나가 아닙니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근원으로 가는 공짜 없는 과정, 승격과 같은 그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해탈하고 승천하는 자는 먼저 누구나 발견해야할 빛의 신체, 유체와 영혼,그 영혼 없이 하는 것은 실질적인것이 아니고 잠든 것입니다, 영혼을 못 보는 것, 영혼이 실질적 루트, 영혼을 배제하는 것, 다시 말해서 빛의 신체를 통한 실질적 변화와 진화를 통한 근원과의 연결이나 합일이 없는, 모든 수행과 체험은 깨어있는 것이 아니며 체험이 아닙니다. 꿈에 불과합니다. 영혼을 만나고 영혼을 마스터하고 정복해해야, 죽음을 극복해야 실질적 수행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모든 수행은 죽었을때 도로아미타불 공염불이 되며 그것은 삼차원의 자기 기만이고 착각이었을뿐 다시 환생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정신계의 일은 말이나 언어의 관념이 아니며 반드시 실질적인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