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게시판

* 굶는 사람이나 나라들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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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쌀로 바이오에탄올 만들자"
농업조합 구성·보조금 지급등 연구 박차 크리슈나
석유수입국인 일본이 고유가 때문에 쌀로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5일 일본정부가 쌀을 이용한 바이오에탄올을 개발하기 위해 농업조합을 구성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고유가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중부에 위치한 니가타현에서는 식용 쌀 대신 바이오에탄올 생산용 쌀 재배가 늘고 있다. 쌀 농사를 하고 있는 야스지 츠카다(60)씨는 “수십년 동안 최고 품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제 쌀의 맛이나 모양은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니가타현에서 바이오에탄올용 쌀을 생산하는 조합원은 360여명에 이른다.
일본인들의 식단이 변하면서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온 가운데 정부의 보조금과 쌀 농사를 선호하는 농부들 덕에 일본에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쌀 에탄올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대학의 시게노리 모리타 교수는 “일본은 쌀 에탄올을 현실화할 수 있는 땅과 농업인력, 기술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휴경지에서 쌀을 재배해 연간 100만㎘에 달하는 쌀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일본 휘발유 소비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다만 니가타의 쌀 에탄올 설비에서 생산될 초기 쌀 에탄올 물량은 연간 1천㎘에 그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쌀을 재배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정부가 보조금을 늘리지 않는 한 쌀 에탄올을 생산해도 수익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글 수 1,339

* 굶는 사람이나 나라들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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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쌀로 바이오에탄올 만들자"
농업조합 구성·보조금 지급등 연구 박차 크리슈나
석유수입국인 일본이 고유가 때문에 쌀로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5일 일본정부가 쌀을 이용한 바이오에탄올을 개발하기 위해 농업조합을 구성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고유가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중부에 위치한 니가타현에서는 식용 쌀 대신 바이오에탄올 생산용 쌀 재배가 늘고 있다. 쌀 농사를 하고 있는 야스지 츠카다(60)씨는 “수십년 동안 최고 품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제 쌀의 맛이나 모양은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니가타현에서 바이오에탄올용 쌀을 생산하는 조합원은 360여명에 이른다.
일본인들의 식단이 변하면서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온 가운데 정부의 보조금과 쌀 농사를 선호하는 농부들 덕에 일본에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쌀 에탄올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대학의 시게노리 모리타 교수는 “일본은 쌀 에탄올을 현실화할 수 있는 땅과 농업인력, 기술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휴경지에서 쌀을 재배해 연간 100만㎘에 달하는 쌀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일본 휘발유 소비의 1.7%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다만 니가타의 쌀 에탄올 설비에서 생산될 초기 쌀 에탄올 물량은 연간 1천㎘에 그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쌀을 재배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정부가 보조금을 늘리지 않는 한 쌀 에탄올을 생산해도 수익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08.06.27 12:28:54 (*.188.5.11)
1915년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에디슨과 테슬라가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수상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이 막판에 수상자를 바꾼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1926년 1월 30일에 그가 호텔 객실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적은 글이 있다.
“모든 실체가 리듬을 가진 분자로서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무선이 완전히 적용되는 날에는 인류는 거리 감각을 잊어버리고
즉각적으로 누구와도 교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원거리 전화(tele-phone)와 원거리 영상(tele-vision)으로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과 다름없이 교신할 것이며……
그때의 TV전화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보다도 훨씬 더 간단해져서
사람들은 윗옷 호주머니에 그 TV전화기를 넣고 다닐 것이다…….
필경 가장 가치있는 무선 에너지의 원리를 적응시켜 만들 수 있는 이기(利器)는
연료 없이 현재의 비행기나 비행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비행기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또 각 가정에 배달되는 종이신문 대신에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무선으로 각 가정에 신문이 직접 배달되어 집에서 인쇄된 신문을 읽게 되는 일은
꿈이라기보다 현실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동차들의 주차문제와 겸하여 상용도로와 개인용무를 위한 도로를
별도로 사용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벨트로 정치된 고층 주차장 빌딩을 세우고 도로는 필요한 대로 겹으로 증폭시키면 된다.
그러나 자동차와 바퀴를 날개로 대치하는 문명이 도래하면
그런 도로마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에테르 연료 자동차
교류모터를 사용,
차 뒤에는 180센티미터 정독 길이의 안테나를 장착했다.
1931년 피어스-애로사와의 계약하에 진행된 테슬라의 실험중
자동차를 시험운전한 사람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으며,
테슬라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피타 사보(Petar Savo)라는 32세의 청년이었다.
1960년대에 와서 사보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버팔로의 어느 작은 차고에 들어가서
자동차 본네트를 열고 가져온 진공관 12개를 장치에 꽂고
무언가를 조금 조종하고 시동을 걸었다.
전기를 일으키는 장치는 길이 60센티미터에 폭 30센티미터,
높이 15센티미터의 상자처럼 생겼으며,
사용한 진공관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후에 3개는 70L7-GT 진공관으로 밝혀졌다.
사보가 운전대에 앉고 테슬라는 보조석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시동스위치를 켰는데 아무 소음이 없었고,
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앞으로 굴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버팔로 시내를 거쳐 시외에까지 다니면서 시험운전을 했다.
속도계는 120마일(시속 192km)까지 있었으나 90마일(시속 145km)까지 밟았고
그런 고속에서도 자동차는 아주 조용했다.
시험운전을 마친 테슬라는 확신을 얻고 자동차에 대해 설명했다.
자동차는 연료가 전혀 필요 없으며,
여기에 사용된 원리는 자동차를 움직일 뿐 아니라
가정에 전기도 공급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차, 선박, 비행기에도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터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그의 장치는 단순히 에테르에 있는 신비스런 방사선을 받는 장치일 뿐이며,
그 방사선은 공중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므로
인간은 대기에 그런 에너지가 한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보는 그 후 8일 동안 계속 그 차로 시내와 시외를 운전하고 다녔으나 피어스-애로사의
휘발유 차종 8기통 125마력(bhp), 366in³ (6천cc)짜리 차의 성능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운전을 끝낸 그들은
자동차를 다시 버팔로에서 20마일 떨어진 교외의 어느 비밀장소에 가져다 놓고,
시동키와 전기장치를 떼어내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테슬라의 비서가 허락도 없이 차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덕분에
테슬라는 어떻게 배터리 없는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며
전원은 어디에서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테슬라는 주변에 널려 있는 에테르에서 얻는다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피어스-애로사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정 때문인지
이 전기자동차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이로 인해 테슬라는 다시 뉴욕시로 돌아가면서 그 장치를 분해해서 없애 버렸다.
참고로 에테르에 대해 설명 하겠다.
원래 에테르는 하나의 가설로, 19세기에 빛, 열, 전자파 같은 것을 전달하는 매체이자
우주공간을 채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켈슨-몰리(Michelson-Morley)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같은
과학자 덕분에 불필요한 가설이 되었고,
지금은 마치 전기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가정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사회의 통념을 따라 ‘에테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그가 말한 것은 ‘슈만공명’을 의미했다.
그는 지구 표면에서 전리층(고도 약 80킬로미터) 사이를 슈만층(Schumann cavity)이라 하고,
슈만층에는 7.83헤르츠의 전자기파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슈만공명 또는 ‘지구 자장의 맥박’이라고 했다.
이 파장은 지구 표면의 슈만층 어느 곳에나 전혀 약화됨이 없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동차에 사용한 무료전기는
바로 이 슈만공명을 잡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의미였고,
누구나 간단한 변환기만 있으면
지구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이미 그 기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cosmic-ray motor:1932년 특허,
테슬라는 방사에너지와 그것의 자유로운 이용가능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크룩의 radiometer(진공유리관 내의 바람개비가 태양빛을 받으면 돌아가는 장치)를
"아름다운 발명품" 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76세 생일을 맞은 회견에서,
테슬라는 "cosmic-ray motor"를 발표.
그것이 크룩의 radio meter보다 더 강력히 돌아가는가하는 질문에
그는 "몇 천배가 더 강력하다"고 대답했다.
위쪽의 극판 (+) 과 접지된 판 (-) 사이의 전위차로부터,
커패시터에 에너지가 축적되며, "적정한 시간이 경과" 후,
축적된 에너지는 "스스로 강력한 방전"을 하여 일을하게 된다.
커패시터는, 테슬라가 말하길, 충분히 정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용량"을 가져야 하며,
그것의 유전체로는 "최고품질의 마이카(운모)"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위차를 견딜 수 있고 깨어지지 않아야 한다.
테슬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환장치를 소개했다.
한 가지는 테슬라회로 조절기를 닮은 회전형 스위치이다.
다른 하나는 진공중에 장착된 매우 가볍고 얇은 박막의 도체로 이루어진 정전장치이다.
이것은 커패시터 내의 에너지 축적을 감지하여,
하나의 양극으로, 다른 하나는 음극으로 되어,
어느 일정 충전레벨에서 서로 잡아당겨 접촉됨으로서 커패시터를 방전시킨다.
테슬라는 또 다른 변환장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간극 또는 약한 유전체필름을 사용하여
일정 전위에 도달했을 때 방전되는 형태이다.
테슬라는 공사 좌절 이후 특히 1905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1907년과 1908년에는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술회했다.
이때 러시아로간 테슬라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류방패막연구소를 시베리아의 퉁구스카지역에 설치한다,
1908년 포탄을 전류방패막으로 막아내는 실험중에 대폭발이 발생,
2000제곱킬로미터(=제주도면적)가 소멸되었다,
(15메가톤급 핵폭발과 같은 위력)
1938년 나치독일로 간 니콜라 테슬라,
광속의 수백배~무한배로 추진하는
초광속 전기추진 비행접시 제2호버젼을 1938년 나치독일에 특허를 냄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수상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이 막판에 수상자를 바꾼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1926년 1월 30일에 그가 호텔 객실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적은 글이 있다.
“모든 실체가 리듬을 가진 분자로서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무선이 완전히 적용되는 날에는 인류는 거리 감각을 잊어버리고
즉각적으로 누구와도 교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원거리 전화(tele-phone)와 원거리 영상(tele-vision)으로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과 다름없이 교신할 것이며……
그때의 TV전화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보다도 훨씬 더 간단해져서
사람들은 윗옷 호주머니에 그 TV전화기를 넣고 다닐 것이다…….
필경 가장 가치있는 무선 에너지의 원리를 적응시켜 만들 수 있는 이기(利器)는
연료 없이 현재의 비행기나 비행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비행기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또 각 가정에 배달되는 종이신문 대신에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무선으로 각 가정에 신문이 직접 배달되어 집에서 인쇄된 신문을 읽게 되는 일은
꿈이라기보다 현실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동차들의 주차문제와 겸하여 상용도로와 개인용무를 위한 도로를
별도로 사용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벨트로 정치된 고층 주차장 빌딩을 세우고 도로는 필요한 대로 겹으로 증폭시키면 된다.
그러나 자동차와 바퀴를 날개로 대치하는 문명이 도래하면
그런 도로마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에테르 연료 자동차
교류모터를 사용,
차 뒤에는 180센티미터 정독 길이의 안테나를 장착했다.
1931년 피어스-애로사와의 계약하에 진행된 테슬라의 실험중
자동차를 시험운전한 사람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으며,
테슬라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피타 사보(Petar Savo)라는 32세의 청년이었다.
1960년대에 와서 사보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버팔로의 어느 작은 차고에 들어가서
자동차 본네트를 열고 가져온 진공관 12개를 장치에 꽂고
무언가를 조금 조종하고 시동을 걸었다.
전기를 일으키는 장치는 길이 60센티미터에 폭 30센티미터,
높이 15센티미터의 상자처럼 생겼으며,
사용한 진공관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후에 3개는 70L7-GT 진공관으로 밝혀졌다.
사보가 운전대에 앉고 테슬라는 보조석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시동스위치를 켰는데 아무 소음이 없었고,
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앞으로 굴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버팔로 시내를 거쳐 시외에까지 다니면서 시험운전을 했다.
속도계는 120마일(시속 192km)까지 있었으나 90마일(시속 145km)까지 밟았고
그런 고속에서도 자동차는 아주 조용했다.
시험운전을 마친 테슬라는 확신을 얻고 자동차에 대해 설명했다.
자동차는 연료가 전혀 필요 없으며,
여기에 사용된 원리는 자동차를 움직일 뿐 아니라
가정에 전기도 공급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차, 선박, 비행기에도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터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그의 장치는 단순히 에테르에 있는 신비스런 방사선을 받는 장치일 뿐이며,
그 방사선은 공중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므로
인간은 대기에 그런 에너지가 한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보는 그 후 8일 동안 계속 그 차로 시내와 시외를 운전하고 다녔으나 피어스-애로사의
휘발유 차종 8기통 125마력(bhp), 366in³ (6천cc)짜리 차의 성능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운전을 끝낸 그들은
자동차를 다시 버팔로에서 20마일 떨어진 교외의 어느 비밀장소에 가져다 놓고,
시동키와 전기장치를 떼어내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테슬라의 비서가 허락도 없이 차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덕분에
테슬라는 어떻게 배터리 없는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며
전원은 어디에서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테슬라는 주변에 널려 있는 에테르에서 얻는다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피어스-애로사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정 때문인지
이 전기자동차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이로 인해 테슬라는 다시 뉴욕시로 돌아가면서 그 장치를 분해해서 없애 버렸다.
참고로 에테르에 대해 설명 하겠다.
원래 에테르는 하나의 가설로, 19세기에 빛, 열, 전자파 같은 것을 전달하는 매체이자
우주공간을 채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켈슨-몰리(Michelson-Morley)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같은
과학자 덕분에 불필요한 가설이 되었고,
지금은 마치 전기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가정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사회의 통념을 따라 ‘에테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그가 말한 것은 ‘슈만공명’을 의미했다.
그는 지구 표면에서 전리층(고도 약 80킬로미터) 사이를 슈만층(Schumann cavity)이라 하고,
슈만층에는 7.83헤르츠의 전자기파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슈만공명 또는 ‘지구 자장의 맥박’이라고 했다.
이 파장은 지구 표면의 슈만층 어느 곳에나 전혀 약화됨이 없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동차에 사용한 무료전기는
바로 이 슈만공명을 잡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의미였고,
누구나 간단한 변환기만 있으면
지구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이미 그 기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cosmic-ray motor:1932년 특허,
테슬라는 방사에너지와 그것의 자유로운 이용가능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크룩의 radiometer(진공유리관 내의 바람개비가 태양빛을 받으면 돌아가는 장치)를
"아름다운 발명품" 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76세 생일을 맞은 회견에서,
테슬라는 "cosmic-ray motor"를 발표.
그것이 크룩의 radio meter보다 더 강력히 돌아가는가하는 질문에
그는 "몇 천배가 더 강력하다"고 대답했다.
위쪽의 극판 (+) 과 접지된 판 (-) 사이의 전위차로부터,
커패시터에 에너지가 축적되며, "적정한 시간이 경과" 후,
축적된 에너지는 "스스로 강력한 방전"을 하여 일을하게 된다.
커패시터는, 테슬라가 말하길, 충분히 정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용량"을 가져야 하며,
그것의 유전체로는 "최고품질의 마이카(운모)"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위차를 견딜 수 있고 깨어지지 않아야 한다.
테슬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환장치를 소개했다.
한 가지는 테슬라회로 조절기를 닮은 회전형 스위치이다.
다른 하나는 진공중에 장착된 매우 가볍고 얇은 박막의 도체로 이루어진 정전장치이다.
이것은 커패시터 내의 에너지 축적을 감지하여,
하나의 양극으로, 다른 하나는 음극으로 되어,
어느 일정 충전레벨에서 서로 잡아당겨 접촉됨으로서 커패시터를 방전시킨다.
테슬라는 또 다른 변환장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간극 또는 약한 유전체필름을 사용하여
일정 전위에 도달했을 때 방전되는 형태이다.
테슬라는 공사 좌절 이후 특히 1905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1907년과 1908년에는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술회했다.
이때 러시아로간 테슬라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류방패막연구소를 시베리아의 퉁구스카지역에 설치한다,
1908년 포탄을 전류방패막으로 막아내는 실험중에 대폭발이 발생,
2000제곱킬로미터(=제주도면적)가 소멸되었다,
(15메가톤급 핵폭발과 같은 위력)
1938년 나치독일로 간 니콜라 테슬라,
광속의 수백배~무한배로 추진하는
초광속 전기추진 비행접시 제2호버젼을 1938년 나치독일에 특허를 냄
바이오 에탄올 , 바이오 디젤
옥수수 카사바 자트로파등 식량이 연료로 사용됩니다.
곧 프리에너지가 나와서 좋은 세상 만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