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頂上 만찬 합석한 前대사 증언
파월은 "WMD 정보 부실했다" 시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발생 나흘 만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후세인 제거에 합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옵서버가 당시 부시와 블레어 간의 밀약 현장에 동석했던 크리스토퍼 마이어(전 주미 영국대사)의 말을 인용해 4일 보도했다.

마이어의 회고록은 미국의 월간 '배너티페어' 5월호에 상세히 소개될 예정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지난 2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정보가 부실했다"고 '양심선언'을 하고 난 뒤 이라크전의 도덕성이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가열된 전망이다.

◆ 미.영 밀약설=마이어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인 블레어 총리와 만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면 이라크로 가야 한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마이어는 "그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다음은 이라크'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제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미 이때부터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결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회고록을 내놓은 리처드 클라크(전 백악관 테러담당관)의 주장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마이어는 또 "정상회담 중 블레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뿐 아니라 이라크 전쟁에서도 미국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블레어의 경우 평소 전쟁을 통한 정권교체 외에 후세인을 물러나게 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왔다"고 덧붙였다. 옵서버는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블레어 총리는 이미 이라크 전쟁 참전 방침을 미국과 합의해 놓고서도 전쟁 직전까지 '확실한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 파월의 '양심선언'=파월 장관은 지난 2일 "본인이 2003년 2월 5일 유엔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증거로 공개한 내용이 부실한 정보에 근거한 것 같다"며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 정보를 확실하다고 여길 근거가 있었는지 이라크전 관련 위원회가 조사하길 바란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파월 장관은 당시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망명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라크의 생물화학무기 은닉 실태와 이동식 생물무기 실험실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면서 "이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입증하는) 가장 극적인 증거"라 주장했었다.

미국은 당시 이 발표가 '안보리의 대(對)이라크 군사행동 동의안을 이끌어낼 결정적 근거'라고 자신할 만큼 큰 비중을 뒀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라크 종전 1년이 지났지만 미군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라크군 트럭 2대에서 문제의 '실험실'이 발견되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기상관측용 풍선을 위한 수소 제조기'라고 판정했다. 또 발표에 인용된 정보원 중엔 미 정보당국이 '믿기 어려운 자'로 분류한 인물들도 있었으나 무시됐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데이비드 케이 전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의 주장과 테러와 직접 관련 없는 이라크를 공격하는 바람에 정작 대테러전을 악화시켰다는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 리처드 클라크의 주장 등으로 의혹의 눈길을 받아왔다.

런던.워싱턴=오병상.강찬호 특파원 <obsang@joongang.co.kr>
.2004.04.04 17: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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