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실미도 보다는 우수하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이 나는 영화다.

실미도가 작은 공간에서 심리묘사에 충실했다면, 태극기는 넓은 공간에서 여러 볼거리와 장동건의 성격변화에 촛점을 맞췄다. 때문에 실미도는 깊이는 있으나 답답한 느낌이 드는 반면, 태극기는 시원하기는 하나 깊이가 부족하다. 감정이입이 되기도 전에 화면이 바뀐다. 즉 전자는 미시적인 접근을 한 것이고, 후자는 거시적인 접근을 한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양자를 모두 갖추는 것인데,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라고나 할까...

장동건은 구두딱이, 원빈은 서울대를 목표로 할 만큼의 수재다. 그러나 6.25가 발발하며 무차별적 징집에 원빈이 끌려가고 장동건도 항의하러 갔다가 같이 끌려간다. 그 당시엔 무조건 끌고 갔단다.
낙동강 전선에 배치되어 동건은 훈장을 받으면 원빈을 제대시켜 준다는 언질을 대대장으로부터 받는다. 그때부터 동건은 전쟁영웅이 되기로 결심한다. 북한군에 고립되어 진퇴양난에 빠진 부대를 독려하여 반격을 시도하여 승리한다. 이때부터 동건은 두각을 나타낸다. 총격씬은 사실적이다. 원빈은 선두에 서려고 하는 동건에게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다.

평양시가전에서도 동건은 북한군 대좌(최민식)를 잡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공형진이 죽는다. 최민식은 악랄하게 반항을 잘 했다. 원빈은 왜 그러냐고 형을 질책한다. 평양 탈환후 계속 북진중에 양민들이 무수히 학살된 광경을 보고 동건은 포악해지기 시작한다. 포로로 잡은 적을 무차별 사살하고, 구두딱이 시절의 동네 후배가 징용되어 북한군이 되었음에도 그를 죽이려 한다. 원빈은 이 때부터 형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북진통일의 마지막 순간 중공군이 밀려온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물밀듯이 쳐들어오는데 아쉽게도 장면이 너무 짧았다. 이 부분은 불가피하게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단다. 후퇴하던 중 복한 포로들의 반격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동건은 동네 후배를 죽이고 만다. 이 때 원빈은 동건과 인연을 끊는다. 후퇴행렬은 서울까지 지나치게 되어 원빈은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형수(동건의 부인)를 만난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반공 청년단에 공산당에 부역을 했다는 죄목으로 형수가 끌려가 처형될 순간에 동건과 원빈은 청년단을 상대로 싸운다. 동건은 훈장 때문에 부대로 복귀되었으나 원빈은 빨갱이로 분류되어 북한군과 함께 갇히게 된다. 부대가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는 중에 원빈이 갇혔던 곳이 불타고 동건은 원빈의 유품을 보고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후방인 대전에서 치료를 받던 원빈은 방첩대에게 심문을 당한다. 바로 형인 동건이 인민군 깃발부대 소좌가 되어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동건은 청년단에 아내가 죽고 국군에 의해 동생도 죽었기에 더 이상 국군에 있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가장 사랑하던 이들이 자기 조국 사람들에 의해 희생되었으니...

이 때문에 인민군에 사기를 불어넣고 있는 동건을 투항시키려고 원빈은 두밀령 고개로 보내진다. 형을 만나기 위해 부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민군 진지에 진입을 하다가 포로가 된 순간, 국군의 공세가 시작되고 고지를 지키고 있던 인민군은 밀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 인민군의 최정예인 깃발부대가 들이닥친다. 그 부대장이 장동건이다. 국군은 그 위세에 눌려 후퇴하고 원빈은 동건과 마주치지만 원빈이 죽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동건은 이성을 잃은 야수와 같이 원빈을 죽이려고 기를 쓴다. 이 장면이 나로 하여금 장동건이 좋아지게 만든 장면이다. 눈이 돌아가고 이전 동건의 모습은 없었다. 그야말로 한마리 야수였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원빈을 죽이기 직전 동건은 동생을 알아본다. 같이 떠나자는 원빈의 애걸에도 불구하고 동건은 먼저 가라고 오히려 원빈을 달랜다. 자기도 조만간 따라갈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동건은 원빈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북한군에 기관총 세례를 가한다. 이 과정에서 결국 동건은 전사하고 만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후에도 원빈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형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장면은 할아버지가 된 원빈의 회상이었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다. 인간의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 하더라도 너무나 끔찍한 것이다.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전쟁광들은 아직도 많다. 부시의 뜻을 받들어 이라크에 파병하자고 선동하고, 핵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을 미국과 함께 치자고 주장하는 철없는 인간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아무쪼록 이 영화가 반전운동에 불을 당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완성도가 그리 높다고는 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감정적인 깊이가 부족하다.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한국영화의 새지평을 연 것은 분명하다. 6.25 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나이든 분들도 많이 볼 것같다. 난 부모님과 같이 보았다. 모두 6.25 세대다. 재미없단 소리 절대로 안했다. 아마도 1000만을 훨씬 넘어갈 것 같다. 반전영화니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