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hosun.co.kr/w21data/html/news/200312/200312140050.html백양사 방장 서옹 큰 스님 입적



“호산(湖山), 호산! 동서남북에서 눈 밝은 사자새*끼가 나온다. 동서남북에서 용맹스런 사자새*끼가 나온다. 호산! 속히 일러라.” 서옹(西翁) 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자인 호산 스님과 이 같은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공부를 지도했다. 서옹 스님의 제자 스님들은 “큰 스님은 이어 ‘이제 가야겠다’며 혜권 강사스님을 찾았고 강사스님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큰 숨 한 번 들이쉬고는 좌탈입망(앉은 채 열반에 듦)하셨다”고 말했다. 20세기 후반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꼽혔던 서옹 스님이 13일 밤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일반 대중들도 깨달음을 얻어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도록 이끄는 데 평생을 바쳤다.
물질만능·과학만능의 서구문명이 잉태한 폐단을 불교에 바탕을 둔 정신개혁운동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 스님은 평소 “지금 인류는 미증유한 대규모의 ‘불난 집’ 속에서 그 위험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어린애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불난 집’의 불을 끄기 위해 스님이 찾아낸 해답은 참선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각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참 나’ ‘참 사람’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

스님의 법문에는 데카르트·헤겔·니체·프로이트·하이데거·야스퍼스 등 서구 철학자와 자연과학·지리학 심지어 미술사까지 등장하고, 매우 논리적인 점이 특징이었다. 전통적인 선승들의 법문과는 구분되는 모습으로, 서구문명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 숨어있었다.

스님이 8순을 넘긴 지난 96년 사회운동으로 ‘참사람운동’을 펼치고, 98년엔 ‘깨달음의 실체가 있느냐’는 주제를 놓고 전체 불교인들이 참가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백양사에서 개최한 것도 보다 높은 차원에서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님의 상좌인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은 “IMF때는 ‘나라가 망했는데 종교지도자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고 꾸짖고 백양사를 개방, 실직자들이 자기성찰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단기출가 수련회를 만들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계 내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974년 제5대 종정 취임법어에서 스님은 “종교의 기능인 사회 정화는 차치하고 자체 정화도 못한다”며 “한국불교 교단은 버릴 것이 너무 많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버려야 한다”고 질타했다.

지난 2001년 주간 ‘법보신문’과 격월간 ‘불교와 문화’가 스님·불교학자·종무원·불교언론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성철 스님에 이어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꼽히기도 했다.

스님은 수행의 일환으로 익힌 서화(書畵)로도 이름이 높아 지난 2000년 서암 스님과 함께 ‘선필전(禪筆展)’을 열어 특유의 강직한 필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2003년 들어 서암 스님과 청화 스님, 월하 스님에 이어 서옹 스님 등 광복 후 우리 불교계를 이끌어온 원로 스님들이 잇따라 열반에 듦으로써 한국 현대불교사의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

▲서옹스님 임종게송·열반송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은13일 밤 입적 바로 직전 임종게송(臨終偈頌)을 남겼다. 서옹스님은 임종게송외에 별도로 열반 하루전에 열반송(涅槃訟)도 남겼다. 스님은 백양사 주지 두백스님, 시자호산스님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좌탈입망(坐脫立亡)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게송은 다음과 같다.

方丈云(방장운) 湖山(호산) 湖山(호산)/
東西南北(동서남북)에 出明眼金毛獅子兒(출명안금모사자아)로다/
東西南北(동서남북)에 出勇猛金毛獅子兒(출용맹금모사자아)로다/
湖山(호산)아 速道速道(속도속도)하라/
湖山(호산)이 直下(직하)에 霹靂(벽력)할(喝) 일갈(一喝)하니/
方丈云(방장운) 着脚下(착각하)하하라/
兩箇對坐(양개대좌)笑微微(소미미)하다

(방장스님께서 이르시되. 호산 호산!/
동서남북에서 눈 밝은 사자새*끼가 나온다/
동서남북에서 용맹스런 사자새*끼가 나온다/
호산! 속히 일러라 속히일러라/호산이 바로 벽력같이 할을 하니/
방장스님께서 이르시되, 발 밑을 보아라/
두사람이 마주 앉아 빙그레 웃다)

또 열반 하루전 남긴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雲門日永無人至(운문일영무인지)/
白巖山頂雪紛紛(백암산정설분분)/
一飛白鶴千年寂(일비백학천년적)/
細細松風送紫霞(세세송풍송자하)

(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없고/
백운산정에 눈이 분분하네/
한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솔솔 부는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