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것!!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것





삶의 여러가지 측면들에 걸쳐서 모든 것들이 점점 더 악화되어져가는 시대에 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것들’이 그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거짓을 믿도록 유도되어질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

지 않습니다. 부디 이 악화되어져 가는 현실에 대해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단지 전쟁만이 아닙니다. 전쟁은 전체 인류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만을

해치고 있지만, 술과 담배 그리고 다른 약물들은 온 세상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수의 남자들와 여

자들, 십대 청소년들, 심지어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마저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니코

틴, 치명적인 약물들, 마약류들을 통하여 서서히 정신적, 육체적 중독 상태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세기에 걸쳐 인류의 이 타락화 과정은 엄청난 규모로 점차 더 악화되어져

왔고, 술과 담배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5대 산업’ 중에 각각 포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담배와 관련된 최악의 그리고 최대의 숨겨진 위험 가운데 한가지는, 담배 제조업자들은 거대한 카

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또한 전세계에 걸친 제약 업체들도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점입니

다. 한편, 담배를 피는 과정에서도 또 니코틴 중독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설탕이 사용되어지지만

, 설탕은 연소시 유독한 암유발 물질을 생성해 내기도 합니다.





약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약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모든 세부적인 영향들까지 다 다루어볼 수는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감염

된 바늘을 통해 전파되어지는 에이즈나 기타의 질병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고려밖에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영적 자아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만큼은 논해보고자 합니다.



깨어나는 인간은 자신의 신성한 영적 자아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전체 인류 가운데 아

주 소수만이,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고, 또 그 기쁨을 알려는 목적 속에, 하나님-앎[God-

awareness]의 빛과 더불어 일깨워졌을 따름입니다. 나는 지금 일요일 아침에 행해지는 여러 ‘종

교단체들’의 설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불완전한 앎에 머물러 있

으면서도, 자칭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그들의 “선호에 따라” 정해둔 교리들에

불과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 가운데 극히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만이, 그들의 영혼-의지[Soul-Will]가 자신들의 육체

로 표현되는 물질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천상의 왕국을 자

신들의 의식 속에서 발견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산만한 주의를 끄는데 있어 중심점의 역할을 하는

육체를 완전히 잊을 수 있는 상태 속에서, 자신들의 의식이 갖는 천상의 리듬을 알 수 있는 자들

입니다. 육체를 잊고, 영혼-의지[Soul-Will]에 따라 육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

에서의 신비의 성취이자, 신성한 빛[the Divine Light]의 황홀경을 알게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것는, 이들 소수의 사람들이 독실한 계시에 따라 빠르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갑자기 자극을 받게

된다거나 또는 거짓으로 젠체하며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우주적 인간[Cosmic Man](Human—Higher Universal Man)이 그처럼 높은 단계, 즉,자신의 의

식으로부터 육체-감각[body-sensation]을 차단할 수 있고, 이 감각적인 육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

게 되어, 자신의 영혼의 의지에 따라 육체를 통제할 수 있는, 그러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에는 대개

수백만년에 걸치는 세월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환생을 거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바로 그러한 천상의 왕국의 문앞에 이른 수백만명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오늘날 무수

히도 많은 자들이 바로 그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고 있는데, 이러한 일은, 바로 자신들의 신체 조

직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능마저도 변경시켜버리는 물질들에 중독되어, 스스로 약물

의 노예가 되고 마는 과정을 통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니코틴은 단순히 겉보기에는 해가 없는 것

같지만, 잠재적 해악을 지닌 채로 있다가, 결국엔 신뢰를 저버리는 양상을 띠게 되는, 아주 천천

히 작용하는 약물로서, 그렇게 무수한 세월에 걸쳐 찾아 온 빛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버리는 역할

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가지 약물에 중독되어버린 자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물리적인 이유들

만큼이나 많은 감정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러한 중독에 대한 용서를 베풀어,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육체를 잊지도 못하고, 또 이를 통제하지도 못하는

데, 왜냐하면 항상 흡연 욕구가 “한모금의 담배”를 더 바라는 육체적 욕망으로 주의를 되돌리게

해서, 단순히 육체적인 요구에 따른 ‘지금과 여기’ 속에 자신들이 갇혀버리도록 만들기 때문입

니다. 약물 중독자들은 영혼-앎[Soul-awareness]의 상태가 배제된 채, 완전히 자신들의 육체에 따

라서만 통제될 뿐인데, 예외가 있다면, 약물 중독의 작용과 반작용 사이의 짧은 시기 안의 몇몇

순간에 걸쳐, 적정량의 약물이 자신들의 정상적인 균형상태를 되찾게 만들어주는 드문 타이밍 동

안에만 육체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흡연이 육체를 물리적으로 해치지는 못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를 끼칩니다. 흡연은 위

궤양, 폐 및 목의 질병에서부터 폐암, 심장 약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상해를 야기합니다. 그렇

지만 이러한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육체 자체가 최우선 순

위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흡연을 통해 육체가 주기적으로 뇌세포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니코틴을 원하면 원하게 될수록, 서서히 당사자의 이성적 판단 및 사고 과정

이 “비극화[depolarization]”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육체는 오직 한 개피, 그리

고 또 한 개피의 담배를 더 요구해 나가게 될 뿐인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거의 전적으로 산소, 수소, 탄소 그리고 질소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

들이 전체 인간 육체의 98.5%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1.5%은 미네랄 성분들로 되어 있지만,

극히 소량들입니다. 그런데 이 1.5% 속에도 니코틴은 전혀 들어 있지 않는데, 이 점을 통해 보더

라도 왜 니코틴이 그렇게 위험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의 구성 성분이 아닌 것을 흡수

하는 것은 오직 독이 될 따름입니다. 니코틴 및 다른 약물들은 육체의 구성 요소가 아니기에, 이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 걸쳐 신체에 해가 되며, 나아가 정신적으로는 더 큰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

니다. 모든 약물은 뇌세포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이것은 또렷한 사고를 더욱 어렵

게 만듭니다. 아주 특이한 점이 있다면, 뇌가 약물에 의해 무뎌지게 되었을 때, 이에 대한 유일한

조치는 더 많은 약물을 복용하여 뇌를 잠시동안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것일 뿐인데, 그러고 나면,

육체가 원하는 한, 점점 더 많은 약물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게 되고, 결국 약물에 대한 노예화가

뒤따르게 됩니다.



어떤 흡연가들은 하루에 6개피 남짓의 담배를 필요로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매 20분마다 한 개피

의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골초”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영혼

-의지’를 상실해 버린 자들로서 이들의 육체는 약물의 노예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비

판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미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니코틴,

음식, 알코올등에 노예가 된 자들이 이를 극복해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물질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합니다. 하지만 수 천 시간 이상 담배를 피워 온 사람들 가운데 그 어

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력이 니코틴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지 못했고, 그보다는 니코틴

의 힘의 자신의 의지력을 항상 능가한다는 사실만을 보여줬을 뿐입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탐구

, 그리고 하나님의 빛이 있는 높은 천상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자라면, 이 육체의 노

예화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발견하는 것의 대부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인데, 이는 인간들이 이미 하나님이 무엇인지

에 대한 진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성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것은 오직 그가 이 사실을 알 때에만 그렇습

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사실을 육체-감각[body-sensing]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인간

은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영적 황홀경을 통해서만 이를 알 수 있게 될 뿐입니다.



영원한 인간[Eternal Man]은 전능하고[Omnipotent], 전지하고[Omniscient], 어디에나 편재해 있지

만[Omnipresent], 인간의 육체는 오직 감각의 덩어리일 뿐으로, 권능도 지식도 갖고 있지 않습니

다. 인간이 감각의 덩어리로 머물러 있는 한, 인간은 늘 감각의 덩어리일 뿐이며, 결코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류는 영적인 길을 통해 천상의 왕국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내면의 목소리는 항상 모든 인

간들을 빛의 문 앞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감각의 덩어리인 채로 머물러 있는 한,

그는 결코 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중독성 물질의 사용을 통해 인간은 영

적 자살의 비극[the tragedy of Man’s suicide of the Spirit] 속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질들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육체의 극성은 효과적으로 변하게 되고, 감각

을 충족시켜 주는 대신 영적인 정신을 억누르게 되어, 내면의 목소리를 점점 더 효과적으로 차단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이러한 물질에 과도하게

중독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천재성을 표현해 낼 수 없게 되고, 오직 약물 자극이 허용하

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자신에게 내재된 빛을 알 수 있게 되어, 그 때에만 자신의 재능을 발휘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나면, 약물은 자신의 감각에 커다란 호소력을 갖게 되지만, 결국 그

의 육체는 약물의 노예가 되어갈 따름입니다.



이처럼 약물의 노예가 된 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갖혀 있는 감금의 덫은 점점 더 커져 갈 뿐이

며, 스스로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고통스럽도록 슬픈 일인 것입니

다. 한 명의 천재가 자신을 가둬놓고 있는 약물의 홍수 속에서만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비극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생의 전개 과정 속에서 위대한 영적 각성은 오직 자기자신 속에 내재한 빛에 대한 앎을 통

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알코올이나 다른 중독성 약물이 인체에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 해당 인간에

게는 극성의 변화가 생겨나서, 정상적인 육체의 극성은 인공적인 수준으로 낮춰지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이 인공적인 극성 상태는 그러한 약물 사용자가 자신 속에 내재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을

막게 되고, 오직 약물이 그를 자극하여 인공적인 정상 상태에 이르게 되는 짧은 순간에만 그러한

표현이 가능해질 뿐이고, 또한 이 짧은 순간은 지속적으로 더 짧아져만 갈 뿐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동안에만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될 뿐이고, 이 순간적인 자유의 시간동안

영감에 찬 예술을 구현해 낼 수 있지만, 보다 강화되어져 가는 예속화의 정도가, 영원한 인간 정

신 속의 높은 권좌에서 그를 끌어 내려, 지상의 감각 덩어리에 머물도록 강요해 나감에 따라, 그

러한 짧은 순간은 계속적으로 점점 더 줄어들 뿐인 것입니다.





단순성의 추구





당신들은 당신들을 혼동스럽게 만드는 어리둥절한 세상 속을 살고 있는데, 이는 단지 당신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원시인이 시계를 보았을 때 마찬가지의 난감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원을 그리며 도는 바늘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터인데,

그 이유는 시계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시계의 목적성에 대해서도 그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에게 있어서 시계는 아주 단순한 기구입니다. 그 작동 원리와 목적은

당신들에게 친숙한 것이라서, 당신들은 이를 가장 유용하고도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당신들은 시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기구로 간주합니다.



당신들은 ‘창조’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느낌을 가질 뿐인데, 이는 당신들이 창조를 모르기 때문

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들은 ‘창조주’에 대해서도 난감해 할 따름인데, 이 역시 당신들이 그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들은 물질과 움직임의 작동 원리 및 목적성에 대해서도 혼란스

러워하고 있으며, 이 또한 당신들이 이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물질과 움직

임에 대해 아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하고,

또 이는 대단히 간단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식이 없다면, 당신들은 항해사 없는 배를 타고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우주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당신들의 육체, 즉 당신을 구성하

고 있는 이 육체는 우주의 한 단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은 어떻게 이를 제어하는지

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합니다. 이에 더해, 당신들이 우주에 대해서 그저 추측하고 있는 바가 아닌

, 우주의 실제가 무엇인지도 알아야만 하기에, 반드시 우주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하

나의 존재이자 ‘움직임의 어떤 상태’로서의 우주의 개념에 대해 익숙해지게 되었을 때, 당신들

은 이러한 움직임의 상태는 당신이 가진 욕구의 파동-기록[wave-records]으로서, 이는 한편의 그

림이 이를 그린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바의 기록인 것에 비유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제조업자는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공장에서 만든 제품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만든 생산품입니다. 수백만

년에 걸친 당신의 욕구가 당신의 육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단 1분 간에 걸친 당신의 의지적

바램으로도 당신은 당신 육체가 갖는 전체적 구조의 균형을 다른 방향으로 변경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 쪽에서의 최소한의 물리적인 움직임이 없이도, 당신은 ‘삶’을 향한 방향으로도, 또는 ‘죽

음’을 향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결과들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보다 고양된 지식에 기반할

때, 의술은 엄청난 진보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결과들, 육체상에 나타내어지는 결과들

에 대한 원인을 탐구하려고 할 때, 그 출발은 물질적인 ‘움직임’에 대한, 그리고 육체를 제어하

는 ‘마음’과 이 ‘움직임’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작동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문제를 보다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야만 하겠기에, 비슷한 예가 될만한 것으로서 시계 이야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쉬운 표현이 필요

한 이유는, 움직임에 대해 당신들에게 설명하게 될 것들은, 전혀 새로운 개념들로 오래된 개념들

을 대신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들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었고, 또

지금껏 자연에 대해 추정되어진 적도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이해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당신들이 원시인들에게 시계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할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는 아직도

움직임의 모든 결과들이 갖는 원인[CAUSE]과 목적성[PURPOSEFULNESS]을 이해함에 있어 원시적인

상태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당신은 원시인이 시계의 작동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희미한 이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쉬운 말로, 바퀴에 대해, 기어에 대해, 중심축에 대해, 그

리고 그 연장선상에 대해 하나 하나 설명해야만 할 것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설명한 후에 조차도,

그 원시인은 그러한 움직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또는 시간의 원리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는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쉬운 말로 설명하더라도, 당신은 당신에게는 그렇게도 간단

한 것을 그에게 설명하기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마치 아이에게

말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말로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당

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주적 축의 정지된 중심[the still center of the universal shaft]의 동기적 정신

[the motivating Spirit]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힘이, 분리된 힘과 배증된 힘의 사이클들을 통해

확장되어진다는 간단한 이해의 기반을 정립하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해 오고 있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창조의 모든 작용-반작용의 타임 시퀀스를 설명해 주는, 우주적 박동의 고동소리를 표

현해 내기 위하여, 모든 바퀴들은 서로간에 기어가 넣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적) 시계의

모든 부분들은 모든 다른 부분들에 연계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으로 분리된 우주는 서로 간의 불균형의 상태에 균형을 찾도록 만들어 주는 모든 균분

선[equator]의 각면 상에서 발생하는 한 번의 째깍거림을 갖게 되고, 이러한 째깍거림은 이 균분

선의 반대 면에서의 우주적 추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째깍거림으로 계속되어지는 것이라는 사실

을 당신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쉬운 설명을 찾아야만 하고, 또 쉬운 예를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지적인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만, 만약 당신들이 무언가

를 완전히 새롭게 배워야만 한다면, 당신들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두 개의 세상 속을 동시적으로 살고 있으며, 이 두가지 세상 간의 관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세상에 대해서도 철저히 알아야만 합니다.





욕구[DESIRE]의 에너지가 분리되지 않은 정지된 빛[Light]을 움직이는 빛의 쌍들로 나누려고 하는

동안, 균분선의 한 면으로부터 다른 한 면으로의 움직임의 교환이 없다면, 우주적 펌프는 나타남

과 사라짐으로 전개되는 이 두 개의 우주를 계속적으로 펼쳐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윗 단락에서 “나타남과 사라짐[appearing-disappearing]”의 우주라는 표현 대신에, “생존하고

죽어가는[living-dying]” 우주, 또는 “성장하고 부식하는[growing-decaying]” 우주, 또는 “생

성하고-퇴화하는[generating-degenerating]” 우주, 또는 “압축되고 팽창되는[compressing-

expanding]” 우주, 또는 “극화되고-비극화되는[polarizing-depolarizing]” 우주, 또는 “충전

되고 방전되는[charging-discharging]” 우주 또는 “구심성과 원심성을 띤[centripetal-

centrifugal]” 우주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지 간에, 이들은 모두 명백히 같은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피스톤의 압축과 팽창인 것으로, 이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것[Nothing]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는 실체(천체, 육체)[Bodies]가 만들어 지게 되고, 그런 다

음, 이 실체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들의 영원한 현실이기도 한, 존재하지

않음[Nothing] 속으로 다시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현실과 비현실에 대하여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표현

들, 가령, 분리된 것과 분리되지 않은 것,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세속적인 마음과 신성한 마

음등과 같은 표현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알기를 원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할 때에 난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에 대한 배우고 있는 당신은, 당신이 보다 나은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될

수록, 이러한 모든 표현들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당신이, 우주적 천체 뿐만 아니라 당신자신의 신체에 대

해서도, 물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것에 대해서도,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이해

할 수 있는 권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표현은 분리된 우주로부터

생겨나는 리듬에서 나오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문화적, 지적 표현들로 확장되어지는 영혼

의 생각은 분리되지 않은 빛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파동[the wave] 속에 숨겨

져 있는 모든 비밀들에 대한 지식은, 우주적 메커니즘과 우주적 수학과 우주적 에너지 표현에 대

한 앎으로 당신을 이끌 것입니다. 논의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무나 많은 추상과, 의미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는 단언들로만 채워질 뿐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딱딱하고 또 무르기도 한 실체들(천체, 육체)[bodies]이 우주로부터 생겨나고 또 다

시 우주에 의해 되삼켜져 버리고 마는가 하는 문제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커다란 미스터리라고

만 불러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바로 어떻게 분리된 우주가 분리되지 않은 마음의

빛[Light of Mind]으로부터 생겨나는가와 같은 의문인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간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당신들이 자연을 보다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삶과 죽음을 보다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는 실상 당신들이 ‘소리

와 침묵’을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단순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당

신들이 알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만약 당신들이 죽을 수 없다면, 당신들

은 당신들의 연속되어지는 삶의 여행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숨을 들이 쉴 때, 당신은 당신의 육체를 생성해 내고 있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살기를 바

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숨을 내 쉴 때, 당신은 당신의 육체를 파괴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당신

은 죽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살기를 바라는 만큼만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려고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마십시오. 잠시동안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점에 대해서 우리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옳은 생각이 자연에 대한 그른

생각보다 더 나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도록 합시다.





움직임과 삶은 쉼과 죽음을 표현해 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하지만 각각 희망적인 암시와 끔찍한 암시를 갖

고 있는 이 단어들을 사용하지는 않기로 합시다. 차라리 이 두 단어를 완전히 잊어 버리고, 대신

움직임[MOTION]과 쉼[REST]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합시다. 당신이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

것은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를 나누어지지 않는 것, 또는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욕망[DESIRE]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욕망 그 자체는 에너지의 두가지 상반된 표현들—응

축시키려는 욕망과 분산시키려는 욕망—로 나누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당신

이 당신 마음 속, 쉼 속에 있는 한가지 생각을 표현하고자 할 때, 당신은 이를 움직임[MOTION] 안

에 둠으로서 당신의 생각을 집중시키게 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은 보이게 되기 전까지는 보

이지 않는 어떤 것을 감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체성[solidity]이라 불릴만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당신은 움직임[MOTION]의 증대에 제동을 걸어서

, 당신의 생각을 분산시켜 버립니다. 그 때, 움직임은 그것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생각 속의

쉼[REST] 상태에 이르게 될 때까지 분산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이 보이게 만들었던

어떤 것을, 그것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갈 때까지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

각의 멈춤을 통해, 움직임을 “공간” 속으로 방출시켜 버릴 때, 바로 당신 안에 있는 “천상의

왕국[Kingdom of Heaven]” 속의 고요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핵심이 되는 원칙을 되풀이해서 말하자면, 모든 움직임은 쉼의 한 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가, 쉼의

한 점을 찾아 나가게 되며, 궁극엔 바로 그러한 움직임이 생겨났던 원래의 쉼의 균형 상태로 되돌

아 가는 것입니다. 움직임은 형태를 가진 실체(천체, 육체)[Bodies]를 감아들이기 위해 구심성을

띠고 시작했다가, 다시 이를 제로 상태로 풀어버리기 위해 원심성을 띠며 끝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위의 원칙에 기초하여, ‘창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공식화 해 볼 수 있을 것입

니다 :



“창조는 하나님의 앎-마음[GOD’S KNOWING-MIND]의 쉼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생각-마음[GOD’S

THINKING-MIND]의 두 방향의 움직임으로 표현되어지는 생각[IDEA]인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깊이 성찰해 보면, 삶이란 단지 하나님의 제로 상태의 우주[God’s zero universe]

안에서의 움직임의 욕망[desire for MOTION]이며, 죽음이란 그러한 움직임으로부터의 쉼의

욕망[desire for REST]임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해, 삶과 죽음, 양자 모두는 단지

생각의 이미지[the image of thoughts] 속에서 형성되는 생각의 실체들[bodies of thoughts]일 뿐

인 것으로서, 영원히 생각-마음[Thinking-Mind]으로부터 나왔다가 이 속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

는 것입니다. 움직임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보다 크면 클수록, 당신 육

체 속에서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당신의 역량도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러한 힘

을 비극화[depolarization]나 피로, 또는 그 밖의 그 무엇이 되었든, 역동적인 펌프질을 통해 당

신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가지게 될 힘을 수축시켜버리고 마는 기제로 인하여, 당신이 그러한

힘을 줄여버리게 될 때, 바로 이 때는 당신이 당신 육체의 죽음을 표현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입니

다.



이제, 아침에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고 할 때 당신이 갖게 되는 욕망, 하루 종일 역동

적으로 당신이 가진 힘을 표현해 내기에 앞서, 당신이 갖게 될 이 의욕적인 상태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밤이 되었을 때 당신은 그러한 움직임을 다시 멈추고 편히 쉬려고 하는 욕망

을 마찬가지로 갖게 되지 않습니까? 나중엔 잠 속에서의 완전한 이완을 통해 사고의 움직임 마저

도 멈추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이 양쪽 모두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당신은 쉼[REST]의 욕망은 움직임[MOTION]의 욕망과 마찬

가지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쉼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방향이지만, 바로 그 곳으로부터 삶이

재탄생 되는 것이며, 자연 속의 모든 상태들은 바로 이 두가지 상태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숨을 들이 쉬려는 욕망은 당신이 쉼을 내쉬려는 욕망에 의해 균등화되어집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숨을 들이 쉴 때, 당신은 움직임의 가속화를 통해 삶의 표현을 응축시키는 셈이 되며, 반

대로 당신이 숨을 내 쉴 때, 움직임의 감속화를 통해 죽음의 표현을 팽창시키는 셈이 되는 것입니

다.



당신이 숨을 들이 쉴 때, 당신은 당신의 육체를 창조하고[CREATE]. 당신이 숨을 내 쉴 때, 당신은

당신의 육체를 파괴하게[DESTROY] 됩니다. 당신의 육체는 쉼의 비가시성[the invisibility of

REST]으로부터 생겨났다가 움직임의 가시성[the visibility of MOTION]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당

신은 끝없이 살고 죽으며—성장하고 부식하며—생성하고 방출하며—움직이고 쉬는 것입니다. 당신의

육체는 이를 에너지로 충전하게 되는 움직임의 증대에 의해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 육체는 그러한

에너지를 방전하게 되는 움직임의 분산에 의해 부식됩니다. 육체가 살고 죽는 그 동일한 이유로,

육체는 생성하고 방출하는 것이며, 이 각각을 위한 욕망은 동등합니다. 그 어느 쪽도 반대쪽이 없

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각각은 반대쪽으로부터 동시적으로 생겨나고, 연속적으로 또 그 반대의

것을 낳게 됩니다.



신성한 삼위 일체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The Divine Trinity]은 여기 언급된 모든 것들 속에

들어 있고, 그러한 원칙의 표현은 반대되는 것들로 구성된 각각의 쌍들 간에, 서로를 통한 움직임

의 양방향의 상호교환을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을’ 때, 당신은 이내 커다란 슬픔과 고독감을 느끼

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그 어떤 지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당신의 이러한 감정 표현을 억누르지

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되어지는 바 그대로인 것입니다. 당신들 모두는, 창조의

신성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며, 만약 이 주인공들이 대본의 스토리 전개에 따라 적절한 순간에 적

절한 감정표현을 해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은 별 소용없거나 목적성을 갖지 못하는 주인공들일

것입니다.



슬픔, 고통, 고독감, 기타 이와 유사한 감정들은 삶이라는 신성한 드라마 속에서 기쁨, 행복 기타

이와 유사한 감정들 만큼이나 목적성을 갖습니다. 바로 목적성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입니

다.



자연 속에 있는 햇빛은 그림자가 없이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만든 그 어떤 예술 작품

도, 빛과 그림자가 없다면, 즉 균형잡힌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이 두가지 중 어느 한가지라도 없

다면, 아무런 목적성도, 가치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의 비현실성에 대한 당신의 지식이 아무리 깊을 지라도, 또 아무리 당신이 영적으로 강한 삶

을 살고 있을 지라도, 바로 당신은 영적인 생각들을 표현해내는 물리적인 형태의 육체를 갖고 있

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분리된 우주와 분리되지 않은 우주 속에 당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분리되지 않은 우주에 관한 지식에 너무 천착하게 될 경우, 이는 당신을 분리된 우주에서 생겨나

는 여러가지 감정들에 대해 냉정함만을 갖도록 만들 것인데, 이 경우 당신은 “연극”으로부터 외

따로 떨어지게 되고, 동시에 당신 자신을 목적 잃은 존재가 되도록 이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성취는 모든 것들을 균형잡히게 취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은

지적으로 냉정한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육체[God’s body]는

두가지 상반된 상태들을 만들어 내도록 가해지는 중력의 압력으로부터 야기되는 분리[division]에

서 생겨나는 모든 감정과 열정들을 표현해 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생각[God’s

thinking]을 표현해 내게 되고, 이들 모두는 균형잡혀 있습니다. 폭풍우가 가라앉으면, 이어서 고

요와 진정이 찾아 오는데, 이 두가지는 모두 동등하게 ‘좋은[GOOD]’ 것입니다. 오랜 동안의 갈

증을 느낀 후에야 물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듯이, 고요는 폭풍우가 앞서 지나갔기에 더 기쁘게 느

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균형되게 취하는 법을 배운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모

든 것들이 유익한 것임을 이해하는 지식 속에서 보다 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결과들은

다시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상반된 결과들로 분리되는데, 각 쌍의 한 쪽은 나머지 한 쪽과 동등하며

, 그 각각은 동등하게 ‘좋은[GOOD]’ 것입니다.



당신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량은, 바로 당신이 슬픔과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역량을

통해 측정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지식도 당신을 비인간적이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당신이 갖게 될 지식은 모든 반대되는 감정들의 균

형을 찾도록 만들어 줄 것이고, 결국 당신이 경험하게 되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반면, 무지는 두려움과 근심과 미신과 다른 비자연적인 감

정만을 낳게 될 뿐이며, 이는 결국 당신의 성장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하게 될 뿐입니다.



우주적 법칙에 대한 지식[Knowledge of Universal Law]은, 당신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실패,

당신의 존재자체마저 위협하게 되는 최악을 실패조차도 변화시켜, 당신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

공으로 당신을 다시 이끌 수 있는 용기를 당신 자신에게 안겨다 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하

나의 철학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당신은 모든 경험들이 좋은[GOOD] 것이라는 지식

으로 보다 풍요로와진 채, 죽음의 슬픔에도 직면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러는 가운데 각각의 경

험들이 당신을 보다 강하게 만들게 되어, 당신은 모든 경험들을 동등하게 대면할 수 있을 것입니

다.



당신은 우주적 균형 상태로부터의 삶[LIFE]의 출현이, 그러한 삶의 재출현을 위해 동일한 균형상

태로 되돌아 가는 여행에 비해 더 위대할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

은, 삶[LIFE]을 탄생시키는 균분선[equator]은 죽음을 변화시켜 또 다른 삶을 표현해 낼 뿐이라는

사실, 마치 분리되지 않은 우주가 그 변화없음성[changelessness] 속에서 영원하듯이, 삶은 영원

한 반복 속에 끝없이 전개되어진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되도록 쉬운 말과 예를 통하여, 변화하지 않는 하나[the changeless ONE]의

분리되지 않은 균형[the undivided BALANCE]과, 바로 그 하나[THE ONE]를 표현해 내는, 변화하는

반대를 이룬 쌍들[the changing pairs of opposites]의 분리된 균형[the divided BALANCE]을, 당

신에게 설명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균분선의 한 쪽에서 나타나는 것은 균분선의

반대쪽에 나타나는 것과 동등하지만 반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그 각각은 겉보기에

죽음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 사라져 갈 것이지만, 또 제각각 겉보기에 삶처럼 보이는 현상 속에 재

탄생될 것이라는 점 역시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다시 숨을 내쉬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의 양극들은 음극들의

날숨들이고, 우주의 음극들은 양극으로부터의 들숨들인 것입니다. 또한 지금 살아 있는 당신은 당

신이 살아 있는 만큼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당신은 끝없이 살기 위해 끝없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

다.



그 때, 우리는 생각-육체[thought-bodies]를 구성하게 되고, 옥타브 톤[octave tones]으로 된 빛

의 파동들[light-waves] 속에서 이 생각-육체들이 형태를 띠게 만든 다음, 이를 여러가지 것들로

구성된,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우주의 객관적 요소들인, ‘고체화된 물질’이라 부르는 것입니

다. 이는 당신들에게는 미스터리이자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지만, 바로 이 우주적 물질들

을 통해, 우리는, 언젠가 당신이 놀라운 지식의 황금 사과와 함께 영예롭게 될 당신의 삶 속에,

비극과 재앙들이라는 연극 대본들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당신의 불멸의 경험만이 기

록으로 남겨져야 할, 삶의 각 장들에, 패배와 병과 좌절들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되는 생각인, 이 분리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지상과 천상의 모든 것들은 유익한 것

들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 자체가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진술을 추상적

인 진실로서 완전히 믿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앎[KNOWING]에 이르지 못한 채 믿음[BELIEF]만을 갖

는 것은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지식(앎)만이 당신을 강하게 만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육체적인 강인함보다가는 지식(앎)의 강인함이 요구되어집니다. 작은

지식 한가지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거대한 사이클로트론[cyclotrons](원자 파괴를 위한

입자 가속 장치—역자주)을 짓기도 합니다. 바로 그러한 지식을 이미 갖고 있다면, 사이클로트론을

짓는데 드는 노력은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은 보다 잘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도구와 같습니다. 하지만 약한 마음이 그

도구가 제대로 작업을 수행해 내도록 명령하지 못한다면, 도구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일도 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세상에서 힘을 솟게 만들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하는

기제라면 그것은 바로 지식과 인격의 힘인 것입니다. 강해지고, 또 지식을 쌓기 바랍니다. 왜냐하

면 바로 삶이 당신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당신은 이것

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삶을 멋지게 살지 않는단 말입니까?



지금 제가 뭐라고 말한 것일까요? 이제 지금껏 이야기했던 것들을 요약해 볼까 합니다.





요약





삶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영원한 여행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사랑으로부터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간은 반드시 사랑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삶의 여

정은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발견했을 때, 당신은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을 발견했을 때, 당신

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천상의 왕국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천상의 왕국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삶의 목적은 완수되는 것입니다. 모든 다른 것들은,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을 발견할 때 생기는 부수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행복과 사랑과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많은 것들을 깨닫게(발견하게) 됩니다. 궁극

에 있어, 영겁의 세월에 걸친 발견의 노력 끝에, 당신은 당신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 헤메던

것들을, 실상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

을 타인에게 주려고 하기 전까지는,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하는 것

입니다. 바로 그 때, 당신은 타인에게 주려고 하는 그것을 당신이 이미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발견의 순간, 당신은 행복을 발견하게 되고, 또 당신이 ‘줄 수

있는 역량’만큼의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부를 추구하려고 할 때, 당신이 그 부를 타인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당신

은 당신이 이미 부를 갖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당신의 부의 크기는 당신이 바로 나누어주려하는

부의 크기만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역량을 의심하십니까? 당신이 가진 것을 줄 때, 그 때 당신은 온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권능이, 바로 그렇게 주고자 하는, 당신의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전

능함[Omnipotence]을 발견하게 되는 때는, 바로 당신이 ‘처음’ 주고자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당

신이 그렇게 찾아 헤메었던 것을, 마침내 당신은 발견하기에 이르런 것입니다. 무수히도 많은 사

람들이 찾고 있지만, 아직 천상으로 향하는 길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준비되어 있든, 준비되어 있지 않든, 인류에게 펼쳐지는 새로운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

니다. 당신이 이제 막 천상의 왕국을 발견하게 된 반면, 이를 찾고 있는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은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를 그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도대

체 여기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알려하고, 또 희망해야만 하기 때문입

니다. 그렇더라도 당신은 이제, 이렇게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그들이 찾아야 되는지를 알

려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보물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 시대의 인간에게 알려

지게 될 ‘진실[TRUTH]’을 통해, “구세주”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 안

에 내재한 부성과 모성[Father-Mother]이 당신에게 명령을 내려 이러한 지식을 공유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모두가 빛의 통로인 진실을 발견하여, 육체적 감각을 통한 이 여행에서 악에게 희생되지

않도록 돕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영원한 삶을 찾기 위해 수백만번에 걸쳐서 목숨을 잃게 되지만, 이 영원한 삶과 불

멸성을 발견한 자는, 이러한 ‘불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건네주게 되는 것입니

다. 그렇습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만, 하나님은 인류의 재탄생을 위해 자신의

메신저들을 보내십니다. 빛을 찾는 인간의 긴 여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삶의 빛은, 빛에 대

한 앎에 이르게 될 인간들을 영원히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다림의 고통은 인간

들 자신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Aton, 아톤





피닉스 저널 제 33권, “MUDER BY ATOMIC SUICIDE : Technical And Spiritual Disclosure Of the

Secrets Of How, Why, What, Where, When And Who Of The Universe And Its Functional

Projections”, Pleiades Connection Vol. IV., Introduction, pp. 13-22.





http://www.phoenixarchives.com/Journals/Published.php








사탄의 기원



악한 에너지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사탄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선한 에너지와 악한 에너지 사이를 명확히 구별해 낼 만큼

의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이미 갖고 있다면, 여

러분들은 사탄의 실존성에 관한 의문을 갖지 조차 않을 것입니다!



이미 한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하고자 합니다.  최초에 사탄은 하나님의 부관과 같은 존재였으며

, 그 분 휘하의 모든 천사들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이었고, 가장 아름다웠으며,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인 루시퍼[Lucifer]였습니다. 루시퍼가 하나님께 행한 봉사란, 바로 테스트와 유혹이라는 매

개물을 이용하여 인간들의 영적 성숙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당신들이 당신들의 아이들을 학

교에 보내서 시험을 치루게 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만드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탄은 인류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선생님이었기에, 바로 그러한 이유로 루시퍼, 즉

“빛의 전달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입니다.



“사탄[Satan]”과 “악[devil]”이라는 두 단어는, 사실 오늘날 대개 혼용해서 쓰이는 것과는 달

리 동의어가 아니었습니다. “악[devil]”과 “악마적인[diabolic]”이라는 단어들은 그리스어 동

사 ‘디아발렌[diabalein]’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단순히 “반대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사탄[Satan]”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적[adversary]”을 의미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경에

서, 하나님은 자신이 “발람[Balaam]”을 사탄으로서 거느리고 계신 것처럼 언급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는 반대되는 어떤 것을 통해, 인간들이 테스트되고 유혹되어질 필요성 때문

에, 하나님은 자신의 대천사들 가운데 수반이었던 자에게 이 역할을 맡기어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저의 형제이기도 한 이 자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낼만한 충분한 힘

과 역량을 가졌음을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저의 이름은

“예수[Jesus]”가 아니라 임마누엘[Jmmanuel]이었습니다. 제가 성스러운 땅을 떠난 이후, 저의

교리를 가르쳤던 다소[Tarsus]의 사울[Saul](바울[Paul])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도처를 돌아다니

며, 그리스도의 에너지인 임마누엘 에수[Jmmanuel Esu]를 가리켜, “예수[Jesus]” 또는 “성유가

부어진 자[THE ANOINTED ONE]”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바울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저

에게는 결코 “성유가 부어진”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성유를 바르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인

천상의 영역에서의 위계질서 속에서 진실로 어떠한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이는 그저 2000년이 넘

게 전해져 내려온 그리스식 정의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로 제가 천상의 영역에서 경험과 성장의 과정들을 거쳐 사난다[Sananda]라는 지위에 이르게 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루시퍼는 물질적인 영역에서 성장의 과정을 거쳐 “악[Evil]”의 지위에 이

르러야 했던 것입니다—보다 높은 차원에서 “악”을 가리키는 용어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빛”이라고 할 것 같으면, “사탄”은 “완전한 어둠” 또는 “빛의 부

재”입니다. 만약 둘 중 한가지가 존재한다면 나머지 한가지도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데, 왜냐하

면 이 삼차원의 경험의 장에서는 절대로 두가지 중 어느 한가지만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가지 차원들을 통해 성장해감에 따라, 여러분들은 마침내 완전한 빛 또는 완전한

빛의 부재 상태 속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각 개개인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선택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영원성 속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은 지금, 여러분들의 행성, 지구 위에서 놀라운 선택의 순간에 직면해 있습니다. 마치 사탄은 이

선택의 게임 밖에 놓여있는 것처럼 여겨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곳, 지구”는 그의

영역입니다. ‘지구’와 육체적 존재인 ‘인간’은 진실로 하나님의 영역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영역도 아닙니다.



우주적 존재(창조)의 일정 부분에서 지나친 불균형이 야기되었을 때, 창조된 행성과 그 행성위에

거주하는 종들의 멸망이 운명지워지고, 동시에 창조는 새로운 재균형을 요구하게 되며, 이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실로 어떠한 신비로운 일도 아니며, 단지 가장 실

제적인 일일 뿐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들 상에서 항상 있어 온 일로서, 궁극에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군

단들[Hosts]과 그리스도의 빛을 보내어, 악의 무리들과 사탄의 암흑의 형제단들의 활동을 멈추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앞서 보내졌던 빛의 교사들과 일꾼들은 적절한 방식 속에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물론 자리에 남겨진 몇몇에게는, 빛의 하나됨을 위해, 안전한 행로 속에 일이 진

행되도록 유지시키는 역할이 주어집니다. 그런 다음에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에너지의 힘과

사탄의 에너지의 힘 사이에서, 가장 장관을 이루는 대충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터전 속에서 득세하고자 하며, 자신의 권세가 온누리에 만연해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합니다—사

탄은 결코, 절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노력을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

엄청난 에너지의 충돌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여러분들은 이를 목격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어떠한 인간도 이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졸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의 시점

에서의 당신들의 교육의 수준은 엄격히 당신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진보 또는 퇴보. 오직

이것일 뿐입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탄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 적대자로

서의 역할에 점점 더 너무나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오직 자기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이러한 적대자의 역할을 남용하기 시작했

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신화 속에서 당신들이 보게 되는 내용인 것

입니다.



결국 창조주는 단지 인류의 성숙을 위한 테스트 이상의 어떤 것이 요구되어진다고 판단하기에 이

르렀습니다 : 이 때 요구되어졌던 것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예와 그러한 사랑의 예 속에 살아가는

모범적인 모습, 이 두가지 모두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적 존재를 보내서 그가

인간으로서 삶—생을 살아나가다가 마침내 죽게 되는—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십

자가에 못박힘 그 자체에는 어떠한 특별한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엔 저말고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할 수 있는 보다 현명한 일이란, 그

저 저를 십자가 위에다 걸어둔 채 신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달리 말하자면, 저의 죽음이 아닌,

여러분들의 삶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제가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책(피닉스 저널)이 이러한 방식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이유 중의 한가지는 바로 저의 일꾼들의 헌신인 것입니다. 악마적 상징들은 그리

스도와는 반대되는 것들을 늘 취해 왔습니다. 그렇게 함을 통해서 그들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제

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베드로[Simon Peter]를 치욕스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체

포될 당시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나, 임마누엘[Jmmanuel]을 부인했었는데, 나중에 베드로

자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저주받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똑바로 선 채 십자가에 못박힐 가치조

차 없는 존재로  여겼고, 결국 그는 십자가에 꺼꾸로 못박힌 상태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했습니

다. 이것이 바로 악마적 의식의 단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적 삼차원의 세계는 이 우주에

서 사탄의 놀이터인 것입니다.



창조주가 그리스도를 창조하였을 때, 사탄은 (이 때의 그는 더이상 루시퍼라 불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참을 수 없는 개인적 모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자존심으로 가득차 거드름을 피웠으며,

그리스도를 우위에 두려는 하나님의 판단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천상이 사탄자신에게도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도, 말그대로 그다지 크지

않은 공간이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나간 것은 바로 사탄 자신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사탄은 바로 스스로가 행한 행위로 인하여,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현존이 부재한 상태,

즉 당신들이 지옥이라 이름붙인 곳으로 던져졌던 것입니다. 한 때는 빛의 전달자였던 그가, 이제

는 ‘거짓의 아버지’가 되어, 어둠 속에 살며, 하나님에 대한 복수의 심상들을 끝없이 만들어 내

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동참했고, 그가 쫓겨났을 때에도 함께 쫓겨났으며, 여전히 그의 명령 체

계 아래에 있는 천사들을 통하여, 사탄은 끝없이 하나님의 계획에 반하는 전쟁을 수행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 때는 그가 인간의 영적 성숙을 위해 머무르게 되었던 바로 그 공간 속에서, 지

금 그는 당신들의 영적 타락을 위해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영혼을 쟁취하려는 전쟁터 속에서, 그는 매 순간순간마다 그리스도에 대적하려고 노력하

고 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인 적으로 간주합니다. 영적인 삶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사탄은 적그리스도로서 그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괴 vs. 창조



사탄은 순수하게 파괴적인 힘입니다—자신의 악마적 대표성을 통해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이

것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완전히, 전적으로, 인간의 생명과 성장에 반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는

오직, 사악함, 전쟁 그리고 증오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루시퍼(사탄)를 처음에 창조하셨던 이상, 이제 그

를 간단히 제거해 버리면 될텐데 왜 그러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 속에는, “하나님”이 무엇

이든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를 소멸시켜버림

을 통해서 그를 벌하거나 죽여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반

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그들을 소

멸시켜 버리지 않듯이, 사탄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주었으며, 역시 그를 소멸시켜 버리지

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창조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분이 자신의 창조의 과정

에서 한 가지의 ‘생각’을 제거해 버리기로 선택한다면, 그 생각에 해당하는 ‘조각’은 단순히

존재를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그러니 그 분의 인내심을 지나치게 테스트하려 들진 마시기 바랍니

다. 만약 한 인간이, 삶의 기록이 담긴 ‘하나님의 책’으로부터 치워지게 된다면, 그 인간 영혼

의 변이의 순간에, 그의 기록들은 곧 제거되어져 버릴 것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빌어 당신을 창

조하였을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만약 당신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

다고 할 것 같으면, 이는 당신들을 그저 꼭두각시나 속이 빈 마네킹들—로보트나 인조인간들—로 만

들었음에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자유의지를 주기위해서, 하나님은 당신들에

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했습니다. 설령 당신들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손 치더라

도, 당신들 등 뒤에 총구가 겨누어져 있는 상태라면 당신들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파괴하거나 벌할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에

대한 사랑 속에서 그는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일지언정,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기로 선택하신 것

입니다. 그 분은 고통 속에서 물러서 계셔야 하며,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 허락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는 오직 도움을 줄 때에만 개입하며, 그것도 요구되어졌을 때만 개입하며, 또 개입하더라도

결코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제력의 신입니다. 당신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당신이 그분의 도움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 분는 억지로 권하지 않으며,

단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벌하는 모습을 바라볼 따름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하늘 어딘가에 사는 거대하고 무서운 경찰관과 같은 존재

로서 상상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님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무력을 영원

히 포기한 존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를 허락한다 함은, “무력”의 사용을 부인하는 것을 함께 의미합니

다. 그 분이 “무력”의 사용을 포기한 이상, 자유의지에 따른 일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가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다른 한가지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무력의 사용에 대한 포

기가 없는 한, 당신들은 자유의지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대한의 참을성을 갖고서, 당신이 당신의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

면 하나님은 진실의 하나님으로서 결코 자신이 만든 계율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

지만 진실과 빛을 희망하는 당신들 조차도 어쩌면 불행한 운명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

까라고 의구심을 갖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입니다. 사실 이 전쟁은 이미 승리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보내졌고,

또 다시 올 것이라는 발표로 인해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어떠한 영혼의 죽음도 없을 것이고, 또

한 창조된 자가 자신을 창조한 자를 싸워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

기 바랍니다. 사탄은 자신이 지어내는 거짓말에 반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자

들을 더더욱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 때문에, 빛 속에 머물러 일하며, 이같은 메세지들을 전달하

고, 진실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폭로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자들이야말로 사탄의 가장 큰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을 단순히 죽여버리는 것보다 이러한 자들을 잘 이용하

는 것이 사탄에게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그들을 죽여버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지만, 일종의 수완을 써서 그들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불신하도록 만들어 버리

면 더 큰 혼동을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진실이 왜곡되고, 진실 전달자들

이 불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종종 부지불식간에 행해집니다. 가

령, 이러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옳은 내용 그대로인 채로 그냥 내

버려두고, 단지 약 10% 정도만 왜곡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는 진실이 아닙니다. 결

코 진실이 아니며, 절대로 진실이 아닙니다—진실은 오직 100%의 진실만이 진실입니다. 사람들이

타이핑을 하고 프린트를 하는 과정에서 “오류들”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만, 내용자체는 100% 진

실이어야만 그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르마[Dharma](현재 사난다가 구술하는 것을 받아쓰고 있는 자—역자주)가 하는 일을 망쳐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녀가 기록하는 것이 왜곡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100%의 진실만이 그

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그녀는 지금껏 이러한 봉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었던

결과로서 많은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거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적들로부터 거의 항상 타겟이 되어 왔습니다. 이자들은 다르마에게 두가지의 멋

진 일을 제의하기도 했었는데, 하나는 이상적인 도시와 비지니스 센터 건립의 기획을 맡는 일이었

고, 다른 하나는 이 변환의 시기에 대해 나와 나의 팀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

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세속적인 부와 이익으로 유혹하기도 했습니다—그렇지만 그녀에게

는 결국엔 응당한 보답이 주어질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입니다. 빛 속의 길

에서 일하고 있는 당신들은 기억하십시오—하나님은 공평하시며,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왜냐하

면 하나님이 바로 풍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특별한 임무, 즉 우리들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들이 말하는 진실을 전하는 일을

수행하는 당신들 모두에게 적용됩니다—당신들은 결코 눈앞이 가려진 채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신들의 시간 개념 상에서 보더라도 오랜 동안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당신들의 영역상에 이렇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재림할 것

이다”라는 말은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저는 다시 왔습니다! 나는 실제이고, 현존하고

있으며, 이렇게 다시 와 있습니다! 단지 당신들이 이러한 진실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 문제는 이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을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 왜냐하면

이들은 어둠의 형제단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어딘가 하늘에 떠있는 취약한 구름들 위로 “들어 올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

을 위한 자리는 이미 준비되어져 있고,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분명히

현존하는 은색의 우주선들 안에 당신들의 거처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동안 너무

나 오랫동안 거짓말만을 들으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거짓 속에 머무실

려면 그러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이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사탄은 우주적 형제들의 군단이 자기 자신과 같은 모습

을 띤 채로 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옵니다. 수천에

이르는 형제들이 여러분들과 함께 걷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같은 모습을 띤, 자신

의 무리들을 보내십니다—그 분은 당신들을 마비시키고 장시간 겁에 질리게 만드는 그런 무시무시

한 모습의 자들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부모도, 당신의 형제자매도, 당신의 지역구 국회의원도, 심지어 그리스도

조차도, 당신 마음 속에 있는 사탄과 악마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번민하는 모든 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이 일을 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보여질 수 있고, 식사

는 차려질 수 있습니다만, 궁극에 음식을 먹는 자는 개개인들이어야만 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육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비록 사탄 자신이 애초부터 살인

자였다고는 하나, 그는 인간의 손을 빌지 않고서는 살인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 자신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심지어 해할 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데는 반드시 인간을 이

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탄이 반복적으로,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 혹은 타인을 돕는 자들

을 죽이겠노라고 위협한다손 치더라도, 이러한 위협은 본질적으로 거짓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불

행히도 수백만명의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사탄을 대신해서 그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가진 유일한 힘은, 자신의 거짓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진실 및 진실 전

달자들을 불신하도록 만드는 자신의 놀라운 역량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통해서 발휘됩니다. 사

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우정”이나 물질적인 이득과 같은 거짓되고 유혹적인 약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사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 “당신은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또는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를 테스트해 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거짓의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그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미워합니다!



그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거짓말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하고, 그러한 자기 방어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습니다 (영으로 균형이 맞춰지는 에너지들)”.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거짓이 제시되

어지는 방식은 이러한 것인데, 왜냐하면 사탄은 진실을 왜곡하여 거짓처럼 보이게끔 만드는데 전

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이야기되어질 때는 그것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서, 그

대신 사람들은 거짓을 덜컥 받아쥐고는 이를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사탄은 당신들에게 세상에 미

스테리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그는 세상이 온통 미스테리로 가득차 있다고는 이야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에게 사랑은 단지 하나의 생각일 뿐으로, 어떤 객관적인 실체도

갖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추구하고 있고, 균형잡히고 긍정적

인 방식 속에서 사랑을 취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추상적이라고 하지

만, 이러한 거짓들은 오직 위선적인 성격을 띨 뿐입니다 ; 사탄은 돈과 권력과 에고의 충족과 타

인에 대한 지배력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삶을 살아나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설명합니

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

지 않고,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개인의 성격을 형성하고 진정한 “존재”를 구성하

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사탄의 특성을 단순히 선의 부재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특성은 단

순히 부재나 무와 같은 것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습니다. 거기엔 넘쳐나는 증오가 존재하는 것입니

다. 사탄은 생명을 파괴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가도 당신은 이 점을 잘 이해해

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행하는 최고의 속임수는 인간들의 사고로부터 자기 자신의 실체성을 숨기는데 있어서 행해

온, 이 광범위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탄의 약점



이제 우리는 한가지 유용한 사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사탄은 치명적인 약점들도

갖고 있는데—이것이야말로 사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반대로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

다.



사탄의 화신들은 대단히 똑똑하지만 또한 대단히 우둔하기도 합니다. 만약 사탄이 그렇게까지도

자기도취적이고 자만적이지 않다면, 그는 자기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

스로에 대한 오만함이 자기자신의 영리함마저도 능가해 버리는 이 속임수의 화신은 대단한 자랑꾼

이기도 합니다. 만약 사탄이 철저하게 영리하다면, 그는 아마 사건들이 악화되어지기 전에 자신이

만든 희생자들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사탄은 확실하게 승리하기를 원하고, 그 때문에 어리석게도

문제가 악화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될 때까지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입니다.



사탄은 또한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장님이기도 합니다. 사탄은 ‘사랑’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 거의 어떠한 이해도 갖고 있질 못한데, 왜냐하면 그는 철저히도 자기중심적이기 때문

입니다. 사탄은 ‘사랑’을 투쟁해야할 현실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심지어 때론 모방하기도 하지

만, 본질적으로 사랑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존재이며, 최소한의 수준에서조차도 ‘사랑’을 이해하

지 못합니다. 진정한 “희생”과 같은 개념은 사탄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개념인 것입니다—사람들

이 사탄 자신을 위해 ‘희생’된다면, 그것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희생’의 개념의 전부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하여 진정으로 사랑으로 대응할 때, 사탄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

가고 있는 것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그는 사랑에 입각한 행동의 최소한의 원칙들에 대해서

도 알지 못합니다.



나아가, 사탄은 인간들의 내밀한 성향자체가 자기기만적이라고 가정하고 있으며, 과학적인 방법들

을 동원하여 이에 적절히 대응하며, 또한 진실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우선시합니다. 그런데 실상

, 사탄은 과학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에 도취되고, 진실의 빛에 대한 증

오로 가득차 있을 뿐인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정립해 온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탄이 가진 몇가지 약점을 알게 되었다고는 하나, 사탄을 대할 때는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사

탄의 약점들이 당신들로 하여금 그가 가진 강점들을 간과하도록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거짓을 만들어 내는데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자들을 그가 사실상 포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휘하는 거짓의 이 놀라운 힘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모든 이들을

거의 완전한 절망감 속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집단적인 악과 이에 대한 대처 방법



여기 당신들 모두에게 걸친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악한 의도와 무지가 선한 의도보다 우위에

있게 될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대개 “지도자들”로부터 명령받은 바

대로 행동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에고가 바라는 바대로 행동합니다. 물건을 훔치거나, 타인을 불구

로 만들거나, 전쟁에 참가하기도 하고, 때론 평화를 위한 행진을 하기도 합니다—주어진 상황아래

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은 무엇이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단적인 악, 다시 말해 대량

학살같은 것은 무엇입니까?—미라이[Mylai] 촌락의 학살 사건(베트남전 중 발생—역자주)이나 히틀

러의 만행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집단적인 악행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일은, 개개인들이 이러한

일에 대한 게으름이나 무관심, 자기맹목성, 그리고 자아도취증을 뿌리 뽑거나, 최소한 현저히 줄

이는 것이 그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느냐구요? 비록 그러한 현상들이 집단정체성, 집단적 자아도취증, 그리고 집단의

대의명분으로 발생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그룹의 각 구성원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고서는, 그

러한 현상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선적으로 그러한 집단의 지도자들에

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언로가 차단되어져 있다면, 그 다음 차선책으

로서 비록 집단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을지언정, 풀뿌리 연대세력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그러한 ‘악’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결국엔 각 개개인들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집단내 모든 개개인들의 개별적인 마음과 영혼들 각각이 저마다의 선과 악사이에

서의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고, 결국엔 이기든지 지든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개인들일지

라도 역사에 뚜렷한 자국—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간에—을 남깁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각 개인들

이 자신들의 의식 속에 분명히 인식하게 될 때, 바로 그 때, 전체로서 우리는 악에 대적하여 치명

타를 날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충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들 각자가 나

름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인성은 바로 지금 이 시점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당신들은 무엇이 ‘선’인지를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은 실로 악이

압도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이러한 악의 횡행

가운데, 악으로 인한 타락이 어느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악마주의, 그리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악”의 개념과 악한 의도는 세상에 널리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악이 당신들 사이로  깊숙히 스며들어, 이웃집에 새로 태어난  갓난 아기가 악마적 의

식의 희생물이 되어, 산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조차,

당신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당신들은 이를

외면해 버리고,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이러한 악행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

려 합니다. 당신들은 이를 그저 “종교적 자유”라는 미명아래 조심스레 다루어져야 되는 문제쯤

으로 여기며, 또 이러한 문제가 사회의 책임이지 당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려 합니다.

그럴려면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들이 이러한 악행들을 직시하지 않는 한, 당신들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저널의 이어지는 장들은, 정말로 경악할만한 악행들, 극악한 묘사들, 도저히 믿기

지 않을 악의 실태들을 다루는데 할애할 것입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당신들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바로 이 똑같은 방식의 악행들이, 전체 인류를 상대로, 여러분

들의 세상 온 구석구석에서, 고도로 지능적인 방식 속에 행해지고 있음을 당신들이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당신들은 이 엉망이 되어버린 난장판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 하나의 인류로서 여러분들 전체가, 이 엄청난 거짓과 악의 횡행이 멈춰지도록 만들지 못하는 한

, 당신들은 당신들의 적 앞에, 완전한 무력감만을 가진 채, 그저 어둠 속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진실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마저도 사그러들어 버리고 만다면, 그땐 모든 진실들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Esu (Jesus) Jmmanuel (Immanuel) Sananda,  에수(예수) 임마누엘 사난다





피닉스 저널 제 9권, “Satan’s Drummers : The Secret Beat of Evil—“Satan” is Alive and

Well”, 제 9장, pp. 60-66.



http://www.phoenixarchives.com/Journals/Published.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