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은 무엇인가?



정신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비결이라고 하며 무슨무슨 법으로 전해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 비결을 쓴 사람들의 의견이 각기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하는데 대한 비결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목이 마른 사람은 마셔야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올바른 요결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배가 부르다는 것을 몰라서 안 먹는 것이 아니고,

목이 마른 사람 또한 마실 것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몰라서 안 마시는 것이 아니다.

비록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지만 먹을 수가 없고

마실 수가 없는 까닭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배가 고프니 목이 마르니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거의 다 이런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어야 하고,

몸이 피로한 사람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그 요결 또한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모두 각기 나름대로는 올바른 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행함에 있어서 백 가지 천 가지의 요결이

마음대로 실행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 그 요결이 정해(正解)가 아닌가 하면,

요결은 정해(正解)지만 그 실행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요결이 비록 정해(正解)였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자세한 지침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본격적으로 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정신연구의 중요한 비결을 쓴 앞서간 현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백 수천에 달하고, 그 저술 또한 수천 수만 권에 이르니,

각기 경험대로 최선을 다해 기록한 것이다.

그 어느 것이나 올바른 풀이가 아닌 것이 없지만,

정신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성공한 사람은

깊은 바닷물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보다 더 찾기 힘들다.

이런 현상이 단지 그 요결의 부족함 때문인가,

처음 배웠던 사람들이 성의가 없었던 까닭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 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후학들의 의문사항이 되고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우선 유교의 중용사상이나 주역사상이 있어서

이 요결에 성공하는 사람이 성현군자가 되고 이 요결을 솔성(率性)이라 한다.

또 불교의 대장경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부처·보살·조사·나한이 되어, 그 요결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그리고 도교의 도장경, 참동결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신선·진인·천사가 되고, 그 요결을 명성(明性)이라 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 자신 역시 정신수련에 고락을 같이 했던 사람이었고

또 후학들을 위해서 내가 경험한 바를 간단히 적고자 한다.

  




1. 스승의 도움(師助) :
정신수련계의 중진을 택해서 정신학에 대한 강의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은연중에 신념이 생겨서 스승의 지시대로 정신수련을 해볼 수 있게 된다.



2. 자습(自習) :
천 가지 만 가지 쓰디 쓴 고초를 무릅쓰고

그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기백으로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공부중에 포기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3. 벗의 도움(友助) :
스스로 수련하다 보면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스승에게 문의하기가 곤란 할 때에,

같이 수련을 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하는 선배의 경험담을 들으면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던 마음속에 다시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오히려 신념이 강해지고 경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 마음은 성심·성의가 되어 비로소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