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고요히 나는 새님이 쓰셨던 글입니다.
새님의 혜안이 엿보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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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라는 말은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말 자체로 본다면 나쁜 의미가 아니죠.
우리 주위에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짝퉁이라는 말로 불리는 가짜 명품에서부터 사이비 종교까지 다양한 경우가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나쁜 것이 아닌데 사이비라는 말은 오늘날 나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이비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원래 사이비로 불렸다가 나중에 가서 정통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죠.
사회 도덕적 윤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거나 교묘한 논리로 중언부언 하는 경우를 보통 사이비로 부르는 듯 합니다.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그들이 사이비 교주를 원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3차원 세계가 어떻게 된다느니, 많은 사람들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게 된다느니 하는 말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맞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볼 수 있는 상태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오로지 그 말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 말이 맞는가의 진위여부를 따질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단지 그 말이 맞아들어가기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배타적이 되가고 교묘한 논리로 중언부언하며 자신의 상태를 합리화합니다.

사이비 교주의 입장에서 보면 더 처절합니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속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모두 거부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서 자신을 철저히 세뇌시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거나 말이 막히면 입을 다뭅니다.
상황이 변하면 그때 그때 적당히 말을 바꾸며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묶어놓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철저히 세뇌시키고 나서 다른 희생자들이 빠져들게 만듭니다.

의외로 지적인 사람들이 이런 구조에 쉽게 빠져듭니다.
사이비 집단에 명문대 출신들이 많은 것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잘 따지긴 하지만 논리의 근본을 잘 모릅니다.
얄팍한 논리로 그들을 설득하면 그들은 확신범이 되지요.
앝은 논리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무서운 광신도가 됩니다.

논리의 근본까지 깊숙히 들어가본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철학을 깊이 공부했거나 궁극적인 논리까지 파고 들어가보기 전에는 좁은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이비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 때는 그럴듯한 논리를 펴다가
정확하게 모순을 짚어주면 논리와 분별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런 집단에서 정확하게 모순을 짚어내는 날카로운 영적 분별력을 갖춘 사람은 왕따를 당하거나 사탄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가면 절벽이고 뒤를 돌아보면 맹수가 쫓아오고 좌우 어느쪽으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에 빠져듭니다.
자신들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하고
말이 안되는 말을 믿기 때문에 더욱 훌륭하다고 합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급한 해결책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문제는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시당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만나기 싫은 원수같은 사람고 만나야 하고
돈이 없어 굴욕적인 상황에 처해야 하고
한 큐에 세상을 뒤엎어 자신에게 굴욕감을 준 사람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제로 철썩같이 믿고 있는 한 사이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 때문에 사이비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해야 합니다.

결국 현실은 변하지 않는 듯 서서히 변합니다.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이 바뀌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입니다.
마음의 장난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
사이비와 광신도의 연극은 계속 될 것입니다.

현실이 바뀌고 안 바뀌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이비와 광신도의 연극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허무하게 끝날 이런 연극이 지나고 한참 후에는 또 다시 말만 바꾼 새로운 연극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주장이 최초의 것이라고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