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donga.com/fbin/output?todayissue=home&f=nis&n=200408030031예수는 정말 결혼해 딸을 뒀을까

예수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딸을 뒀다?

상식을 당연시해온 일반인은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요, 교회 가르침을 신봉해온기독교인은 혼비백산할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성가족의 순결이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여겨졌다. 따라서 성가족의 성적 정체성은 언급하기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이런 의문는 20여년 전에 이미 제기됐다. 마이클 배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은 공저 「성혈, 성배」로 파문을 일으켰다. 기독교계가 `신에 대한 불경서'로 분류한 이 책은 예수가 복음서에 나오는 `다른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도 이런 줄거리를 담고 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를 부부 사이로 추정하며 가톨릭 성직자들이 사악한 거짓말로 이를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댄 브라운은 「성혈, 성배」뿐 아니라 최근국내 번역 출간된 마거릿 스타버드의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루비박스刊)에서 줄거리를 빌려온 듯해 눈길을 끈다.

신심 깊은 가톨릭 학자인 마거릿 스타버드는 「성혈, 성배」을 읽고 충격받아자신의 신앙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든 이 책을 반박할 목적으로 자료 수집에 나섰다.

복음서의 이단적 해석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겠노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종교, 중세사회, 예술, 문학, 상징 등을 바탕으로 이설 연구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자료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면 할수록 '예수의 신부'와 '성배의 교회'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간극을 잇는 다리가 되려는 심정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집필동기를 밝힌다.

저자가 9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잠정 결론은 이렇다. 예수와 그의 신부 막달라마리아는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서 딸 사라가 잉태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숨지자 막달라 마리아는 이집트로 도망쳐 딸을 낳은 뒤 다시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으로 옮겨갔다. 이후 가톨릭계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억압했으나 이에 반발하는 '이단'의 목소리는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사료를 들이댄다. 고대에는 신성한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왕족 신부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는데, 요한복음에 기록된기름 붓는 여인(신부)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다. 저자는 머리에 기름 붓는 행위가성적 의미도 담고 있다고 본다. 남근의 상징인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이는 여신의 대리자인 왕족 여사제로, 이 이야기는 예수 생애를 기록한 사건 중에서 에로스를 가장깊이있게 표현했다는 것. 따라서 기독교계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창녀라는 '오명'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석한다.

예수 추종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박해 받던 기간에 예수의 피를 잔에 담아 배를타고 서유럽으로 가져왔다는 전설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된다. 이집트로 긴급 피난한 뒤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알렉산드리아를 떠난 막달라 마리아와그 아이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흘러들었고, 이 영향 때문인지 이 지역 여성들은 중세시대에 상속권을 인정받아 남성들처럼 많은 봉토와 영지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권리를 누렸다.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마리아와 그 딸이 자신들의 땅으로 탈출했다는 얘기를 사실로 믿었으나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매우 혹독했다고 한다. 로마 교회는 이런 기억을 없애기 위해 그 사실을 믿는 프로방스 사람들을 대거 학살했고, 종교재판을 통해서도 수천 명이 죽어나갔다.

저자는 이처럼 끈질지게 이어져온 이단의 메시지를 유럽 전승동화를 비롯해 보티첼리나 프라 안젤리코 등의 회화를 통해 들춰낸다. 유럽 남부지역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닮은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축제, 미군 군복에 남아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기장, 디즈니 만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이름 등도 유력한 근거로 내세운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중세 이후 남성에 종속된 여성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고대에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 에너지가 균형을 이뤘으나 중세 이후에 조화가깨져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남성이 좌절했고, 그 결과 무모한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칼의 정치를 해왔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중요한 정황 증거로 예수의 아내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멸시받고 잊혀진 여성이 다시 인정받고 포용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했다고 들려준다.

물론 저자는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증명할 확실한 길이 없다"며 한계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설들이 중세에 폭넓게신봉됐던 이교의 교의였고, 그 이교의 흔적을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에서 찾아볼수 있다. 또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교회의 가르침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마리아가 독생자의 동정녀 어머니는 아니다.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성서에는 예수가 결혼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지만 그가 결혼하지 않았고,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이나 맹세를 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자신의 비판을 정당화했다. 당시의 모든 기록에서 예수의 아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는피난생활을 해야 하는 그녀의 생명이 염려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저자의 고백처럼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그의 주장은 매우 민감한 문제를정면으로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위험한 시도이자 용기있는 탐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관습적 가르침과 전통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기독교권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324쪽. 1만4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