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 "미국은 파산 중">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진정한 힘을 결여한 외로운 초강대국, 추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존경하는 사람마저 거의 없는 세계의 지도자, 그리고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전지구적 혼돈의 와중에서 위험스럽게 표류하고 있는 나라".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74)이 진단하는 9.11테러 이후 미국이 처한 초라한 모습이다. 이런 미국을 그는 나아가 '불시착한 독수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내려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추락한 독수리.

그렇기에 그는 1870년대 이후 누린 미국의 패권은 이제 파탄났다고 말한다.

"(미국이 처한) 진짜 문제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기울고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미국이 세계와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손상만을 보고 우아하게 하강하는 길을 찾느냐아니냐인 셈이다".

흔히 국내에는 '세계체제론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주요한 저작 대다수는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월러스틴은 최근에 완역된 또 하나의 신간 「미국 패권의 몰락」에서 그 특유의 허를 찌르는 어법으로 여전히 미국을 조롱한다.

예컨대 중국 공산혁명에 대해서는 "미국 우파는 미국이 중국을 잃었다고 하나실은 중국을 잃은 쪽이 소련"라고 선언하는가 하면, 구소련 붕괴로 그 대상을 잃어버린 자유주의는 몰락했다고 진단한다.

9.11테러를 전후해 쓴 강연록과 발표문 13편을 수록한 이번 책에서 신랄한 어조로 '미국의 파산'을 선언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로 직면하고 있는 미국의 딜레마가 미국을 더욱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월러스틴은 9.11이 ▲미국 군사력의 한계 ▲세계의 뿌리깊은 반미감정 ▲1990년경제활황의 후유증 ▲미국 민족주의의 (고립주의와 팽창주의 사이의) 모순적인 압력▲미국의 시민적 자유전통의 취약성의 다섯 가지 현실을 고민하게 만든다고 본다.

9.11테러에 즈음해 미국 매파는 세계를 향해 "우리편 아니면 반대편"의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월러스틴의 진단에 의하면 이러한 헤게모니의 이면에는 첫째, 그렇게 해도 누구도 미국을 제지하지 못하며, 둘째, 무력을 쓰지 않으면 미국은 세계에서 점점 더 무시당하리라는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다.

이런 신념에서 단행된 것이 아프간침공과 그에 이은 이라크 침공.

하지만 미국의 팽창주의 전략은 군사적ㆍ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탄나고 말 것이라고 월러스틴은 경고한다. 전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며 또 도덕적 명문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파탄났을까? 무엇보다 미국만이 세계에 대해 우월한 미덕을지니고 있고, 다른 곳보다 더욱 문명화되어 있다는 뿌리깊은 독선과 오만을 꼽는다.

하지만 실제 미국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곳은 없다. 월러스틴은 묻는다.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가 대영제국보다 미국을 나은 나라라고 하겠는가?"그렇다면 파탄난 미국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그의답변은 간단하다.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특유의 역설이 되살아난다.

"사실 우리가 이런 기획된 미래 가운데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도덕적 선택을 남겨두고 있다".

월러스틴은 반미적인 지식인으로 인식되고 있고, 실제 이런 면모 때문에 한국지식인 사회에서 매우 환영받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을 향한 칼날 같은 비판은 미국에 대한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판은 월러스틴이 미국을 사랑하는 방식인 셈이다. 창비刊. 한기욱ㆍ정범진 옮김. 44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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