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가 전·현직 각료들을 공개 청문회에 불러 증언을 듣고 있는 가운데 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만이 이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라이스는 28일에도 TV에 출연해 공개증언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현직 국가안보보좌관이 증언하지 않는 게 오랜 관례라는 것이다. 의회에서 증언을 하게 되면 의회와 행정부간의 권한분립을 규정해놓은 헌법정신이 침해된다는 논리다. 또 대통령 보좌관이 대통령에게 한 정책조언이 공개되는 것 역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이날 TV에 나와 “그것은 오래된 규정이며 전통이자 관례”라면서 라이스를 두둔했다. 그 역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들은 지난 25년동안 국가안보보좌관이 공개증언한 경우가 세번 있었다고 지적했다.

라이스의 증언거부가 계속되자 비난의 화살이 대선을 앞둔 부시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다. 언론들은 라이스가 자신을 공격한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반테러담당관의 폭로 이후 TV와 신문을 통해 무수히 클라크를 반격하면서도 공개증언을 거부하는 데 대해 잔뜩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학자 출신인 그가 선서를 하고 공개증언을 할 경우 대통령의 대테러 정책과 관련한 ‘곤란한 진술’을 우려하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공화당 내에서도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 조사위의 공화당측 위원인 존 레먼은 “라이스가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데도 공개증언을 거부함으로써 백악관이 숨겨야 할 무엇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대실수”라고 말했다. 국방부 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펄도 “헌법상의 우려도 있긴 하지만 상황이 그것을 요구할 때에는 그런 우려를 접어둬야 한다”며 라이스의 증언을 촉구했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dosjeong@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03월 29일 19: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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