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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는 '엘리엘리 레마 사박다니', '탈리타쿰' , '케파' 등 아람어를 그대로 적는 경우가 몇번 있으며, 이때는 보통 바로 뒤에 그 뜻을 풀이해주고는 한다.
현대 비평적 성서주석학에서 아람어 역본은 칠십인역과 함께 중요한 참고 번역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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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
- 2023.04.27
- 06:27:49
- (*.235.178.233)
2. 역사[편집]
아람어의 역사는 꽤 특이하다. 피지배계층의 언어가 오히려 외부 지배층을 동화시켜 널리 퍼진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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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늘날까지 알려진 대로 그렇다고 히브리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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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제적으로 아람어가 훨씬 세력이 강했기에 결국 유대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쓰게 되었고,
■히브리어 자체는 19세기 말에 시오니스트들이 다시 부활시킬 때까지 의례용으로만 사용되는[2], 사실상 사어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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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시 아람어로 돌아와보면, 이 언어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정복한 후,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용어가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영토를 넓히면서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였고, 언어가 각기 다른 여러 민족 사이에는 공용어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아람어였다. 이 시기 아람어의 위력이 강했는지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아람어는 이란 계통의 언어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다. 아람어와 함께 아람 문자도 함께 퍼졌다. 페르시아어는 결국 이전까지 사용해왔던 쐐기 문자를 버려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팔라비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고, 이 뿐만 아니라 아랍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몽골 문자 등도 이 시기의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세운 석비들에도 고대 프라크리트어(옛 인도아리아어군 언어들), 그리스어와 함께 아람어로 칙령이 새겨져있다. 이렇듯 헬레니즘 제국 이후에도 아람어가 중동 지역의 공용어로 남게 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이 크다.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도 아람어는 중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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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시 아람어로 돌아와보면, 이 언어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정복한 후,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용어가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영토를 넓히면서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였고, 언어가 각기 다른 여러 민족 사이에는 공용어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아람어였다. 이 시기 아람어의 위력이 강했는지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아람어는 이란 계통의 언어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다. 아람어와 함께 아람 문자도 함께 퍼졌다. 페르시아어는 결국 이전까지 사용해왔던 쐐기 문자를 버려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팔라비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고, 이 뿐만 아니라 아랍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몽골 문자 등도 이 시기의 아람 문자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이 세운 석비들에도 고대 프라크리트어(옛 인도아리아어군 언어들), 그리스어와 함께 아람어로 칙령이 새겨져있다. 이렇듯 헬레니즘 제국 이후에도 아람어가 중동 지역의 공용어로 남게 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공이 크다.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도 아람어는 중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슬람 이후에도 한동안 아람어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7세기 말 우마이야 칼리프조의 칼리파 압둘 말리크 빈 마르완이 디완[3]에서 아람어와 그리스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아랍어만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을 계기로, 아람어의 입지가 약화되어 아람어 사용 인구는 급속히 아랍인들과 동화되기 이른다.
○아람어와 콥트어 사용 지역이 아랍어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아람어는 여전히 네스토리우스파와 시리아 정교회의 전례 언어로서 남아있었고, 인도 반도의 시리아 전례 교회[4]에서도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몽골 제국의 팽창과 함께 몽골인들이 네스토리우스파를 접하면서 아람어는 몽골 고원과 시베리아까지 퍼졌다. 이런 아람어는 몽골 제국의 쇠망과 함께 사용 지역이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베릭
- 2023.04.27
- 06:37:10
- (*.235.178.233)
3. 현대의 아람어[편집]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아람어는 12세기 이후의 신(新) 아람어(Neo-Aramaic)이다. 아시리아인 등이 신봉하는 시리아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칼데아 가톨릭 등의 동방 기독교의 전례 언어로서, 북부 이라크와 시리아 근방에서 아직도 쓰인다. 그러나 중동에서 이슬람이 대세인데다 이들이 나라 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사멸 위기에 처했다. 본래 아시리아인들은 아카드어를 주로 사용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피정복민이던 아람족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쓰게 되었다.
아람어는 서방어파와 동방어파가 있다.
아람어는 서방어파와 동방어파가 있다.
- 유대-아람어(Judeo-Aramaic languages) - 이스라엘에서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 사용한다. 10세기까지는 레반트(유대-팔레스타인 아람어)와 메소포타미아(유대-바빌로니아 아람어)에서 여러 방언으로 사용되었지만
- 현재는 유대 아시리아 신아람어(Jewish Assyrian Neo-Aramaic)만 사용한다.[6] 그 언어도 대여섯 개 방언으로 다시 나뉘는데 가장 큰 방언도 사용자가 수천 명 수준이다.
예를 들면 아시리아 신아람어에서 '안녕하세요'는 Shlamalokhon, 신은 Alaha, (남)선생은 Rabi, 책은 Ktava/Ktawa이다.
베릭
- 2023.04.27
- 06:57:10
- (*.235.178.233)
4. 성경과 아람어[편집]
■ 아람어는 예수를 포함한 1세기 팔레스티나 지역 유다인들의 모어로, 성서학에서 매우 중요한 언어 중 하나이다.
● 당시 유다인들의 아람어는 히브리어적인 특성이 섞여 '아람어의 히브리 방언' 내지는 '아람어화된 히브리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성경)와 그리스어(신약성경)로 쓰인 문서이지만 아람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일부는 직접 아람어로 적혀있다.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성경)와 그리스어(신약성경)로 쓰인 문서이지만 아람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일부는 직접 아람어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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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시리아 문자가 아닌 사각 문자(히브리 문자)로 썼고, 언어 자체도 기존의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던 화자들에 의해 유대화된 방언이었기 때문에 문법과 발음에서 정통 아람어와 차이가 있다.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 안에도 아람어의 흔적이 다수 존재한다. 이슬람에서도 예수를 창시자인 무함마드와 더불어 위대한 예언자로 추앙하기에 아람어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신약에서는 '엘리엘리 레마 사박다니', '탈리타쿰' , '케파' 등 아람어를 그대로 적는 경우가 몇번 있으며, 이때는 보통 바로 뒤에 그 뜻을 풀이해주고는 한다.
현대 비평적 성서주석학에서 아람어 역본은 칠십인역과 함께 중요한 참고 번역으로 꼽힌다.
베릭
- 2023.04.27
- 07:05:00
- (*.235.178.233)
4.1. 예수의 아람어 어록[편집]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일단 예수가 살았던 마을인 나자렛과 카파르나움은 아람어가 쓰였던 지방이었으므로 아람어가 예수의 모어임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 그리고 예수가 당시 히브리어로만 되어 있던 타나크(구약성경)를 읽는 구절이 성경에 기술된 것으로 보아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꽤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었다.
■
또한 나자렛과 카파르나움에서 멀지 않은 세포리스(칩포리)에서 활동하던 목수로서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세포리스는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온 갈리래아의 보석"이라고 칭송했던 국제적인 도시로 외국인들과의 교류가 왕성한 대도시였다.
그리스어는 로마 제국의 동부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언어였기 때문에 세포리스에서도 흔히 사용되었으며, 거기서 목수 일에 종사했던 예수 또한 그리스어를 접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현대인들의 편견으로는 사회 상류층도 아닌 예수가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순 있지만, 외국어 실력은 교육수준보다는 실전 회화가 좌우하므로 이상할 건 전혀 없다.
■곧, 최소한 예수는 실용적인 구어체 그리스어로 이방인들과 소통하는 것에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예수가 일상에서 일차적으로 썼던 말은 아람어이고, 히브리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았을 것이며, 실용적인 구어체 그리스어 회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예수가 일상에서 일차적으로 썼던 말은 아람어이고, 히브리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았을 것이며, 실용적인 구어체 그리스어 회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a growing body of evidence indicates that Greek language and culture had made significant inroads into first-century Galilee. The situation described by scholars is that of a thoroughly bilingual society, in which Aramaic and Greek were both spoken among the working classes.
[증가하는 증거는 그리스 언어 및 문화가 1세기 갈릴래아에 중대한 진출을 했다고 가리킨다. 학자들이 묘사하는 사회는 철저히 이중 언어 사회이다. 그곳에서는 아람어와 그리스어가 노동 계급들(working classes) 사이에서 둘 다 말해졌다.]-《The Ignatius Catholic Study Bible》, 유다 서간 INTRODUCTION
- 탈리타 쿰(ܛܠܝܬܐ ܩܘܡܝ)
집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왜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다음에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 에파타[7](ܐܬܦܬܚ)
그 뒤 예수께서는 띠로 지방을 떠나 시돈에 들르셨다가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주시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어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 하고 말씀하셨다. '열려라.'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ܐܠܗܝ ܐܠܗܝ ܠܡܢܐ ܫܒܩܬܢܝ)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베릭
- 2023.04.27
- 09:19:51
- (*.235.178.233)
베릭
- 2023.04.27
- 09:21:02
- (*.235.178.233)
((((( 구약시대에 즉 솔로몬 왕의 부흥기와 웅대한 시대가 지난후 이스라엘민족은 나라가 두개로 나뉘고 결국 / 강대국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된 이스라엘인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었으며, 몇천년을 유랑인들 신세로 살아온것이 팩트였음 / 예수시대는 로마의 식민지였었으므로, 언어들이 다국적으로 혼재했을것임.
■ 언어(말소리)는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섞인것 같으며, 글자는 히브리어로 기록했다고 하지만, 예수의 주기도문을 기억해서, 그것이 영감을 주므로 아람어로 기록을 해두었던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었기에 두루마리로 발견된것인즉, 아하! 그런가 보구나~~~여기면 되는 일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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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늘날까지 알려진 대로 그렇다고 히브리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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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제적으로 아람어가 훨씬 세력이 강했기에 결국 유대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쓰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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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시리아 문자가 아닌 사각 문자(히브리 문자)로 썼고, 언어 자체도 기존의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던 화자들에 의해 유대화된 방언이었기 때문에 문법과 발음에서 정통 아람어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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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뉴스
http://unnews.net/ViewM.aspx?No=2795415
[ 원본 주기도문 ]
아람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된 주기도문
주님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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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과 진동을 가진 우주의 탄생자여,
우리 존재의 땅을 부드럽게 하고, 우리 안에
당신의 존재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개척하십시오.
여러분의 창조성으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여러분의 사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소망에 따라 결실을 맺게 하소서.
각각의 존재가 성장하고 번영하는데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부여하십시오.
과거의 실수의 얽힘에서 다른 사람들을 풀어주듯이, 우리를 묶는 운명의 얽힘을 풀어주세요.
우리의 진정한 목적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에 우리를 유혹하지 말고,
현재의 기회를 밝혀주십시오.
모든 것이 다시 모여 하나가 되게 하듯이, 여러분은 땅이요, 결실 있는 비전이요, 탄생이요, 힘이요, 성취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아람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되었습니다.
(아람어에서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고고학자들은 1892년에 이 기도의 버전이 포함된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수천 년 동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잘못 번역되어 왔습니다.
몇 년 동안 번역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다른 것들이
사라졌는지 상상해 보세요.
https://youtube.com/@AwakeningDesignerTV
[깨달음디자이너 TV ]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81O_sgDt3Ew
1892년 원본 (주기도문)
시원스런 알프스의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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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성경)와 그리스어(신약성경)로 쓰인 문서이지만 아람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일부는 직접 아람어로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