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브라 메시지가 효과가 없는 이유 - 신년 샤우드에서

번역  :  plovew  


ADAMUS; 여러분은 나중에 나에게 질문할 겁니다, 토바야스가 여러분과 함께 걸으며 말해온 그 모든 메시지들과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온 것들의 일부가 왜 효과가 없느냐고 말이죠. 여러분은 말할 겁니다. "하지만 난 (샤우드에서 말해진) 그 모든 것들을 시도해봤으며, 실제로 그대로 해봤습니다. 근데 내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뭐가 잘못됐을까요? 내가 뭘 질못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당신이 가르치는 내용이 잘못된 건 아닙니까? (아다무스 껄껄~)"  여러분이 질문하게 될 그러한 류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여러분이 메시지에 대해 생각만해오고 있었지 실제론 그것에 여러분의 가슴을 열지 않았다는 겁니다. You are thinking about it but you haven’t opened your heart to it.


LINDA: 그걸 다시한번 말해주세요. Say that again.


ADAMUS: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뿐입니다. 제한된 마음안에서 말이죠. 여러분의 가슴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것에 여러분의 가슴은 어디에 있지요? 여러분의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가슴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Where is your heart? Where is your heart? Where is your love? You’re afraid of your heart.


여러분의 마음은 - 난 꼭 여러분 샴브라에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난 지금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 여러분의 마음은 잠겨졌으며 덫에 걸려졌습니다.마음이 갖혀버린 그러한 덫은 신에 관해 생각하게 하고 무엇이 신이지에 대한 전쟁들을 벌이게 하지만 신을 느끼게끔 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예를들어 토바야스 메시지들을 거쳐간다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그걸 지적으로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다루게 유도해가지만, 그것에 가슴을 열도록 인도하진 않습니다. 그걸 느끼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게 잘못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변이자 그러한 질문들을 해오신 분들에 대한 도전은 이겁니다, 여러분은 언제쯤이나 (생각이 아닌) 느끼실 겁니까? When are you going to feel? 그러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오, 난 느끼려하고 있어요." 그러면 난 여러분에게 자신이 느끼길 두려워한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여기서 난 여러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데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주 오랫동안 마음 감옥속에 있어왔을 때 느낀다는 건 겁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일인데, 왜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더 이상 통제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느낌속으로 들어설 때 그것에 담겨있는 변수들과 가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느낌은 쉽게 정량화되어지거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환되어질 수 없으며,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느낌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Feeling is not rational.


만약 여러분이 바로 지금 삶속에 많은 도전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가슴을 충분히 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러한 큰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습니다. The fact is if you’re having a lot of challenges right now it’s because you’re not feeling. You haven’t opened that heart. You haven’t taken that big leap yet. 오, 여러분은 물속에 발가락을 담그고는 있지만, 전면적으로 물속에 뛰어들지 않았으며, 정말로 느껴본다는 그 커다란 발걸음을 아직 떼지 않았습니다.


네, 여러분이 그토록 오랫동안이나 마음 감옥속에서 살아왔을 때, 느낌에 자신을 연다는 개념은 완전히 이질적인 - 전적으로 낯설게 다가서는 - 것인데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 아다무스, 어떻게 하면 내가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면 난 그저 느끼겠다는 선택을 내리라고 답변할 겁니다. I will say, just make a choice. "그건 방법이 아닌데요, 그건 말이 안됩니다. 그런 얘기 말고 정말로 내가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말해주세요. 난 지금껏 그런 선택을 내려봤지만 효과가 없었으니까 말이죠." 그건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에서 나온 선택이었어요. (그렇기에 효과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마음에 갖혀 지내왔을 때, 느낀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공포가 생기는 겁니다. 그건 마치 자신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공포인 것이며, 그리고 때때로 여러분은 자신이 다시한번 느낄 수 있도록 실제로 죽음을 통해서 몸을 벗는 게 더 낫다고도 생각합니다.    


(중략)


자, 그러한 공포가, 그러한 두려움이 솟아오를 때, 여러분은 뭘 하세요? (청중, 호흡한다고 말한다.) 호흡하면서 절대적으로 그걸 직접 체험하세요, 왜냐하면 그러한 두려움은 단지 겉에 박힌 코팅이자 변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절대적으로 경험하고 느껴보는 걸 자신에게 허락해주세요. Breathe and absolutely experience it, because it’s just a coating. It’s just a camouflage. Let yourself absolutely experience and feel.


아시겠지만, 두려움은 이유가 있어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뭔가를 하기 위해 거기에 있지만, 여러분은 그게 없는 체 하거나 그것에서 달아납니다. 두려움이 거기에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여러분에게 다시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It’s there because it will teach you how to feel again.


하지만 여러분이 거기에서 달아나거나 그걸 억누르게 되면, 스스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껴보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모든 느낌들을 봉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지 않고 여러분이 두려움속으로 잠겨들어 갈 때, 여러분은 두려움이 여러분이 생각해온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신속히 발견해내게 될 겁니다. 두려움은 하나의 환상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세뇌이자 최면 상태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기자신을 대면하고 다뤄가는 것에 있어 그러한 공포는, 진실로 자유로워지는 걸 가로막는 그러한 공포는, 단지 여러분이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길일뿐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호흡해들이마시세요, 그것에서 달아나지 마세요. 이러한 질문을 해주신 라이오넬에게 감사드립니다.  Thank you Lionel.


-아다무스, 2010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