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지구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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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나티의 계획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진정한 일루미나티[Illuminati] 조직인 알롬브라도스[Alombrados]는 1520년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여러개의 단체들을 아우르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그들간의 “계몽”에 중요한 역할을 행했던 로시크루시안[Rosicrucians] 교단이 있었고, 이들는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로시크루시안 교단은 대부분의 프리메이슨들을 계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일루미나티의 목표는 시온의정서[Protocol of the Elders of Zion]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 정부 전복
* 개인 소유권 폐지
* 애국심 타파
* 가족 생활, 결혼, 도덕주의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공교육제도 폐지
* 모든 종교의 폐지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문적인 고리대금업 가문으로 유럽에서 강력한 금권을 형성하였다. 1770년대, 그들은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에게 시온의정서를 새롭게 검토하고 현대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이 작업을 1776년 5월 1일 마무리지었고,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Bavaria] 지방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바이스하우프트에 따르면 일루미나티라는 말은 루시퍼(사탄)에서 따 온 것으로, 빛의 전달자라는 뜻이었다. 1784년 바바리아 정부는 일루미나티를 금지시켰다. 1786년 일루미나티는 본부를 스위스로 옮겼으며 후에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바로 이곳에서 그들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진두지휘했다. 1830년대, 주세페 마치니[Guiseppe Mazzini](1805-1872, 이탈리아 통일운동가?역자주)는 혁명 지도자로서 바이스하우프트의 자리를 승계했고, 1870년에는 알버트 파이크[Albert Pike](1809-1891, 미국의 변호사, 군인, 작가?역자주)가 그의 뒤를 이었으며, 후에는 아드리안 레미[Adrian Lemmi]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이미 1770년대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프리메이슨들을 단일 세계정부 수립시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스코트랜드파 프리메이슨인 존 로빈슨[John Robinson]은 자신이 쓴, ‘모든 정부와 종교 파괴를 위한 음모의 증거들(Proofs of a Conspiracy to Destroy All Governments and Religions)’이라는 책에서 이 점을 밝혀주고 있다. (Americanist Classics, 1967, by Western Islands, Belmont, Massachusetts, 02178, U.S.A.) 브리티쉬 프리메이슨의 내부로 일루미나티가 침투해 들어가 그들을 이용하려는 의도 아래, 바이스하우프트는 로빈슨을 유럽으로 한 번 초대하였다. 프랑스 혁명에서 프렌치 그랜드 오리엔트[French Grand Orient]의 개입으로 인해, 일루미나티가 프리메이슨들을 끌어들여 이용한 사실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로빈슨은 두려움을 느꼈고, 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세상에 알려야 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루미나티는 이미 브리티쉬 프리메이슨들 속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한가지 기억해야 될 점이 있다면, 이 무렵 영국은 세계 최강의 권력을 휘두르던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영국 식민지들 덕택에, 브리티쉬 프리메이슨 역시 이미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다. 1820년대에 이르러 일루미나티는 미국에서 이미 확고한 기반을 잡게 되었다.
“Vrymesselary Ontmasker”라는 책에서, J.D. 포스터[Vorster] 박사와 F.N. 반 니커크[van Niekerk] 목사는 다음 사항들을 지적하고 있다. :
1. 프리메이슨주의는 잘못된 가치관을 지지함을 통해 성경의 말씀들을 훼손시키고,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교회를 받아들였다. 어떤 거짓된 종교에서 비롯된 어떤 형태의 “성스러운 경전”도 성경(Bible)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프리메이슨주의가 주창하는 일반적인 믿음 체계는 비기독교적이다.
3. 프리메이슨주의의 믿음과 고전들에 따르면, 프리메이슨들은 거짓된 이교도-유태인들의 종교를 옹호하고 있는데, 그 궁극적인 목표는 기독교와 또 기독교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받아들이게 된 관습, 생활습관, 삶의 방식들을 파괴시키는 데 있다.
4. 프리메이슨주의는 성서근본주의를 따르는 칼뱅주의 기독교와 그러한 삶의 방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적대적 사상이다.
5. 프리메이슨주의는 일련의 컬트적인 의식을 행하는 종교이다.
6. 프리메이슨주의는 교회를 붕괴시키고자 한다.
7. 프리메이슨주의는 진정한 종교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8. 프리메이슨주의는 기독교적 습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서약의 신중함과 엄격함을 훼손시킨다.
9. 프리메이슨주의는 프리메이슨이 아닌 자들을 차별한다.
10. 프리메이슨주의에 따른 맹세는 우리의 법질서를 심각하게 유린할 수 있다.
11. 프리메이슨들의 맹세는 사람들을 오도하고 위협한다.
12. 이들의 맹세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생활습관 그리고 전통을 파괴하게 만들며, 수천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프리메이슨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역사회 위에 올라앉아, 그들만의 “계명된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13. 프리메이슨주의는 세계를 아우르는 교회, 세계의 그들의 고향화, 세계 정부 그리고 세계 시민주의의 방향으로 경도되어 있다.
14. 프리메이슨주의는 국가의 파괴를 지향한다.
15. 프리메이슨들은 살해를 계획하고 심지어 이를 그들 자신들 간에도 실행으로 옮긴다.
16. 미국의 프리메이슨들과 남아프리카의 프리메이슨들 간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존재한다.
아드리안 레미[Adrian Lemmi]는 파이크[Pike]의 뒤를 이었다. 기 커[Guy Curr]는 자신의 책, ‘게임의 졸들[Pawns in the Game]’에서, 알버트 파이크가 주세페 마치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계 전쟁을 향한 군사 계획을 드러내 보였다고 지적한다. 둘다 프리메이슨이었다. 커의 글(p.14)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파이크의 계획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코뮤니즘, 나치즘, 정치적 시오니즘, 그리고 기타 다른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사조들이 형성되고, 이것들이 세가지 세계 전쟁과 세가지 주요 혁명에 사용되어질 것을 기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루미나티가 러시아 차르 제정을 전복시킨 다음, 이 나라를 무신론적 코뮤니즘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일루미나티가 개입된 선동으로 야기된, 영국과 독일 제국간의 차이점들이 전쟁으로 치닫도록 유도될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뮤니즘은 다른 정부 및 종교들을 파괴하는데 이용되어질 수 있도록 보다 강화되어져야만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스트와 정치적 시오니스트들 간의 차이를 이용하여 조성될 예정이었다. 이 전쟁은 나치즘이 파괴되고, 정치적 시오니즘의 권력이 증대되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주권국이 세워질 수 있을때까지 치뤄져야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국제 코뮤니즘은 보다 기반을 확고히하여, 통일된 범기독교권에 대항하여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정도까지 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선에 멈춰서, 마지막 사회적 대격변이 일어날 때까지 이들 세력의 성장은 제한되고 억제되어져야 한다.
제 3차 세계 대전은 일루미나티가 개입된 선동으로 야기된, 정치적 시오니스트들과 이슬람권 지도자들 간의 차이점들로 촉발될 것이다. 이 전쟁은 이슬람 세력(마호멧주의를 포함한 아랍 세계)과 (이스라엘을 포함한)정치적 시오니스트들이 서로서로를 파괴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며, 그러는 동시에 나머지 국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 견해 차이로 다시 한 번 분열되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완전한 탈진상태에 이를 때까지 그들간에 치열하게 싸우도록 조장되어질 것이다.
1871년 8월 15일, 파이크는 마치니에게 말하기를, 이 제 3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면, 더이상 분쟁없는 세계와 안정적인 통치(지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으로 인해,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가장 큰 사회적 대격변이 야기될 것이라고 했다. [하톤 : 나는 당신들 모두가 이 단락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면밀히 재검토해 보기를 제안한다. 당신들은 항상 누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꾸미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바로 여기, 파이크 자신의 계획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일루미나티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데 있어서, B.M. 쉐만[Schoeman]의 책, “Die Geldmag SA se onsigbare regering”도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17페이지에서 그는, 일루미나티에 대한 가장 공공연한 언급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중의 한 명은, 몇 해 전에 출판된 “비극과 희망(Tragedy and Hope)”이라는 책을 썼던 카롤 키글리[Carroll Quigley] 교수라고 지적한다. 좌익세력들이, 감히 그들을 언짢게 하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미친 극우주의자”라는 표현이, 키글리 교수에게는 아마 적용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해에 걸쳐, 키글리 교수 자신이 좌익 권력층의 한 복판에 있었고, 좌익 활동을 통해 그가 직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들에 바탕하여 그는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이 책 956 페이지에서 키글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세대에 걸쳐 존재해 왔고, 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제 친영(영국)세력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 조직은 몇몇 극우주의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어떤 범위에 있어서는 코뮤니스트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사실상, ‘원탁 회의 그룹[Round Table Groups]’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네트워크는, 공산주의자들과 협력을 하는데 있어 아무런 반감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단체들과의 협력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종종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키글리 교수는,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가 친영세력 네트워크에 어떤 적개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고 한다. 같은 단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이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지난 20년간 이들에 대해서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초반 두 해에 걸쳐 그들의 서류와 비밀 기록들을 직접 검토하는 일도 내게 허락되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체에, 또는 이들이 가진 목표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루미나티는, 한 때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에서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넘어간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 두가지 제국주의적 지배양식은 모두, 세상을 ‘영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로 만들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
[인용의 끝]
하톤 : 나는 여기서 이 책의 인용을 잠시 끊고, 다시 시온 의정서(Protocols for/of the Elders of Zion) 문제로 되돌아 가고자 한다.
그렇다. 몰몬[Mormon]교는 단지 일루미나티 교단의 지부에 불과한 것이다. 몰몬교도들은 그들 자신들을 정확히 “시오니스트들”이라 부르고 있다. 이 교회는 일루미나티가 미국에 진출하는데 있어 필요한, 잘 조직된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신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들”은 세상으로부터 공인된 가장 위험한 살인의 기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종교적인 것”이라는 미명 아래, 거짓된 가르침들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제함을 통하여, 당신들은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인류 전체를 통제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들이 종교적인 편견이 발휘하는 마술을 뒤따르게 될 때, 그들은 이성과 논리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각각이 믿고 있는, 별반 차이없는 마찬가지의 거짓말들을 타인에게 억지로 믿도록 강요하여, 상대도 같은 편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끝까지 싸우고 마는, 말하자면 그들이 동굴 속에 살던 시절의 의식 상태나 비슷한 상황에서, 머리와 머리를 직접 들이받았던 것과 진배없는 양식의 대결 국면 속에 그들이 머물도록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될 따름이다. 당신이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게 될 때, 당신은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SALU.
피닉스 저널 제 222권, “Birthing The Phoenix”, Vol. I, 제 5장, pp. 82-86.
http://www.fourwinds10.com/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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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 일루미나티의 계획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와 공산주의의 기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악한 자가 악한 일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듯 현자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비밀결사에 의하지 않고서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다. 이 교단의 특별한 목표는 기독교를 말살하는 것이고 모든 시민정부를 전복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76년 5월 1일)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용어는 1830년대 말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유럽 내 비밀조직인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광명회)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한 지파로서 18세기 후반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창설됐다.
이 조직의 창시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upt)는 1748년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재학 중 많은 책을 읽었으며, 특히 프랑스의 루소 같은 이의 철학 사상에 심취했는데, 그때 그는 기독교교리에 대해 회의적인 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772년부터 모교인 잉골슈타트(Ingolstadt)대학에서 종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색다른 사상을 주창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후 프리메이슨의 조직법을 모방, 발전시켜서 ‘일루미나티’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일루미나티는 기독교 전통에 따른 모든 제도에 반항하면서 자유사상을 불러일으킨 철학적 비밀 단체로서, 특히 예수회와 수천 년을 이어온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Freemason)을 모방해 엄격한 동지애와 비밀 엄수를 강조했다.
잉골슈타트에서부터 시작된 이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1779년에는 바바리아 (Bavaria)지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때 단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괴테, 쉴러, 모차르트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바바리아의 왕 요셉2세까지도 단원이 될 정도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왕정이 아닌 공화국 정부 제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상황이어서 이들은 모임에서 주로 종교철학과 일반 철학에 대해 토론했다.
프리메이슨,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숭배
이들은 주로 루소, 모렐리, 마블리의 사상 따위를 논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루미나티는 평등주의와 합리주의를 근본 사상으로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루미나티가 항상 내세우는 모토(Motto)는 자유*평등*박애였다. 그러나 이들은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 숭배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맨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정치와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포장한 이들의 사조는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기독교와 대립이 생기면서 쌍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조직의 존재를 몰랐던 대중들은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의 중심세력은 프랑스에 이미 세워진 프리메이슨 총종단에 침투해 패권을 장악했고, 1786년에 미라보 후작(Marquis de Mirabeau)은 자코뱅 파리대학에 일루미나티 종단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자코뱅파가 된다. 프랑스에 뿌리를 내린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을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이를 통해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조직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570만 명의 단원을 확보하고 있다.
美 '해골종단'(Skull & Bones), 일루미나티 하부조직
특히 이들 중 일부 그룹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골종단`(Skull & Bones)을 조직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는 1830년에 이미 인간과 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프리메이슨 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 사상은 후에 니체가 받아들여 체계화 시킨 후 세상에 발표했으며, 이는 다시 파시즘(Fascism)과 나치즘(Nazism)의 근간이 되었다.
일루미나티의 프랑스 활동을 보면, 범법자로서 망명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 ‘파리 범법자동맹’이 있었고, 그 산하 조직으로는 ‘공산동맹’(kommunistische Internationale)이 있었다. 특히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프랑스로 유학 와 있다가 이 조직에 가입했다.
당시 공산주의는 일루미나티 회원들 가운데서도 혁명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어였으며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한편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 뿐만 아니라 ‘러시아 공산 혁명’에도 관여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공산혁명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노동자와 농민을 너무 탄압하고 돌보지 않은 나머지 굶주림을 못 이겨 일어난 자연 발생적인 반정부 폭동이었고, 그것이 공산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여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진실은 따로 있다.
실제로 1814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을 할 때 파리를 점령한 러시아 장교들은 이곳에서 일루미나티 사상과 접하게 된다. 귀국 후 이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에는 두 개의 프리메이슨 종단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북극성종단’(the polar star)과 ‘남극성 종단’(the South Pole star)이 그것인데, 당시 이들은 수많은 부호들과 상류층 사람들을 입단시켰다.
실제로 ‘3면 작전’을 저술한 얀 코자크(Jan Kozak)는 공산혁명당시 러시아에는 3개의 세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러시아 왕가, 유태계 프리메이슨 조직에 의해 무너져
첫째는 러시아의 황제(차르*Tsar)의 권위를 박탈한 임시정부이고, 둘째는 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수많은 프리메이슨 계열 조직중 하나인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1882년 창설)종단, 그리고 셋째는 행동대라고 할 수 있는 조직폭력배가 그 세력들인데, 이중 전체를 통솔하는 세력은 역시 비밀조직이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영국군 첩보장교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전문가인 존 콜먼(John Coleman)박사는 지난 1997년 그의 저서인 ‘The Committee of 300’에서“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주요 공격 목표는 기독교였으며 레닌, 트로츠키, 케렌스키의 배후에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가진 강력한 조직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임시정부의 우두머리로 사회주의자였던 알렉산더 케렌스키(Alexander Kerensky, 1881-1970)는 ‘브나이 브리스’ 단원이었으며 조직 폭력배들의 중심은 사회민주노동당의 ‘블라디미르 레니’이었다.
한편 이들은 러시아 공산 혁명에 가장 앞장섰던 순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파에 대해서는 일단 혁명에 성공한 후 대부분 숙청 또는 유배를 보냈으며 이후 레닌파가 권력을 인계받아 악정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산주의는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 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이나 신이 없이도 물질 스스로 존재하고 진화 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다. 유물론은 정신세계를 일체 부정하고 종교, 양심, 도덕, 기존의 가치 등을 전면 부인하고 오직 혁명사상을 전파하며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이다.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종교 말살론
공산주의는 무신론 사상이며 종교 말살론 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아편”이라고 말했으며, 레닌의 경우 “현대 종교 특히 기독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 한 뒤 “교회는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의 원수이기 때문에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형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엥겔스는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을 물질로 구성된 고깃덩어리로만 보았다. 이외에도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는 서기장이 된 다음 “3년 안에 크리스천들을 다 없앤 후 마지막 한 사람 남은 것을 전국 TV에 보여 준 후 처치하여 크리스천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했다.
한편 공산주의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후버 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박사는 그의 저서인 `The Great Terror`(엄청난 폭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56년 2월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폭로하기를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의 90%를 죽였고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은 50%를, 군 장성 급의 60%를 처형했다.”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 소련은 귀족 및 군인, 지식인의 저항에 부딪쳐서 국내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켜 1941년 6월 바바로사(Barbarossa)계획에 의하여 소련을 침공함으로서 오히려 스탈린으로 하여금 공산혁명의 완성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당시 스탈린은 혁명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별하여 애국이라는 명분을 주고 이들을 징집하여 전선(戰線)으로 몰아넣어 이들 전부를 죽게 만들었다. 실제로 모스크바 전투시기인 1941년 6월 22일에서 11월 말까지 단일 전투에서 400~500만의 사상자를 냈다.
소련과 중국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대학살 사례
이 전투에서 제일 먼저 총알받이가 되어 죽은 사람이 바로 혁명의 방해가 되는 모스크바 인사들이었다. 소련은 전체적으로 2차대전시 군인 750만이 전사하였고, 군인부상 1400만, 민간인 사망이 1500만이 발생했다. 스탈린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하였다.
그는 소위 ‘에조프시치나’라고 불리는 대학살로 세계를 경악시켰다. 스탈린의 군부 대숙청은 계속되어 5천명이 넘는 고급장교가 처형되었다. 이 숙청으로 5명의 원수 중에서 3명, 15명의 군사령관 중에서 13명을, 85명의 군단장 중에서 57명을, 195명의 사단장 중에서 110명을, 406명의 여단장 중에서 220명이 처형되었다.
혁명에 방해가 되는 군부의 고급 장교들을 두하체프스키 원수의 죄목에 뒤집어 씌워서 처형했다. 공산주의의 대학살은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1948년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에게 패한 후, 대만으로 탈출을 못하고 본토에 남아 있는 옛날 장개석 총통의 군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공산혁명의 저해요소로서 한국전이 발발하자 이 군인들 20만을 소집하여 한국전에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명분 있게 다 죽일 수 있을까?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말 그대로 UN군의 지뢰밭과 화망(火網)지역을 사람으로 바다를 만들어 공격을 하는 전술이다. 혁명의 방해요소인 장개석 군대의 국부군 출신을 항미(抗美)전쟁이라는 구실로 자연스럽게 제거했다.
그 후 모택동은 전 세계가 경악한 홍위병의 문화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혁명의 적대세력인 지식층을 10대와 20대 초반의 공산주의 맹신자를 동원하여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다. 폭력과 체형 및 체벌 행위를 자행하고 대상자를 비참하게 참살했다.
가난한 자가 지식인과 가진 자에 대한 투쟁은 항구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은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칼 막스의 계급투쟁 정의를 철저히 이행했다. 이때 피해를 입은 인사가 처형된 사람이 10만을 넘고 투옥(投獄) 및 고문으로 불구가 된 인사가 2억에 이른다.
칼 포퍼, “공산주의는 악마가 꾼 꿈”
2차대전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한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Sir Karl Riamund Popper)는 그의 저서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敵)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칼 포퍼는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 공산주의는 날조된 것이며 ‘악마가 꾼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사회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 도래해야 한다고 예견했던 ‘역사주의적 관점’도 오늘날에 와서 오류임이 판명되었다. 칼 포퍼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생각을 도덕적으로 매우 그릇된 발상이라고 보았다.
과학자의 이론, 법관의 판결, 정치인의 정책, 경영자의 결정, 신학자의 교설 등 우리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포퍼는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적 진리, 영원한 지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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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유태계 커넥션’ 대(大) 해부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타임을 포함해 이 회의에 참석하신 여러 대형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임원 여러분들께 지난 40년간 보여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일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세계를 향한 ‘우리의 계획’을 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세계정부’(world government)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1991년 6월 5일 Bilderberg 회의 기조연설)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주도하는 사회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 그룹은 유태계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 커넥션은 대체로 미국 내 현실주의 그룹과도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미국 내 유태인 숫자는 약 700백 만 명 정도(미국 전체 인구의 약 2.5%)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총인구 2억 8천 1백만 명 중 백인이 1억 9천4백만 명(69.1%), 히스패닉계가 3천5백만 명(12.5%), 흑인이 3천 3백만 명(12.1%), 아시아계가 1천 1백만 명(3.6%)인 것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숫자이다.
유태인이 미국에 최초로 정착한 역사는 1654년 7월 8일 바르심슨(Jacob Barsimson)이라는 네덜란드계 유태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태인의 미국 이민을 1840~1880년간 있었던 독일계 이민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러시아, 동구계 이민으로 본다면 약 150년 정도의 이민역사밖에 되지 않으며, 오래된 가계(家系)라 해도 많아야 평균 3~4대 정도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유태인들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태인이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막후에 숨어 세계경제를 맘대로 주무른다는 이른바 ‘유태인 음모설’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유행이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줄곧 유태인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해왔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 서점 가에는 ‘유태코너’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유태관계 서적이 붐을 이룬 적도 있었다.
▲정치 분야 :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 내 유태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며 부(富)를 축적한 반면 정계에는 많은 인물을 진출시키지 못했다. 이는 만약 유태계 인사들이 미국의 주요 정치적인 상·하의원이나 또는 주지사에 많이 진출하게 되면 일반인의 반감, 나아가서는 반(反)유태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염두에 둔 신중한 자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각자가 능력만 있으면 어떤 직종에나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유태인도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유태인도 상·하원에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태인의 대다수는 매우 리버럴하다. 이로 인해 이들의 정치적 성향도 자연히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수민족을 우대하며 리버럴한 성향을 띤 민주당 선호로 기울어져 있다. 과거 미국 유태인 중에는 사회주의자도 많았다. 더욱이 미국 내 정치색이 짙은 각종 사회활동(노동·여성운동)에는 유태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단체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1886년 시가(담배) 제조 노동자들의 조합을 이끌던 유태인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가 창설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의 경우 1904년 1백75만 조합원을 거느린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 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이후 흑인 민권운동을 성원한 주축세력도 유태인이었으며, 월남전 이후 기승을 부리던 인권단체 등의 지도부 역시 거의 유태인 일색이었다.
일례로 1921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유대인이 차지했던 비율은 33.5퍼센트였으며 평당원 수준에서는 40퍼센트를 차지했다. 1950년대를 거쳐 5만 명에 달했던 미국 공산당에서 유대인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으며 이들에 있어 입당자의 숫자는 항상 탈당자의 숫자를 상회했다.
다른 민족출신들에 비해 인구비례상 유대인의 공산당 입당율은 10배가 넘는 것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비슷한 숫자의 유대인 사회주의자 및 무정부주의자들과 같은 좌경급진주의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Natha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1920년대 초반부터 미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내에서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소련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지하에서는 소련 비밀경찰의 지령에 따라 미국에 대한 간첩임무도 수행했다. (1947년 소련에 원자폭탄 비밀을 넘긴 죄로 처형된 유대인 로젠버그 부부 역시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지하세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1947년 스미스 법안에 의해 기소된 공안사범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유대인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를 만인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미국 공산당의 유대인 수뇌부는 간부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개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외부의 눈에 띄는 직위에는 항상 지방출신의 비유대계 인물을 배치했다. (Source: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K. Kann, Joe Rapoport, 1981; Klehr, Haynes & Firsov,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 1995; A. Liebman, Jews and the Left, 1979)
특히 유태계 좌파 핵심세력들은 미국의 베트남 완전철수를 요구했으며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자 공산주의자들의 완전한 승리를 원하기도 했다. 특히 반전론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자 美 의회 앞으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증오했던 사람들 그리고 존 케리(John Kerry·체코계 유태인)와 제인 폰다(Jane Fonda)처럼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미국의 북 베트남 폭격을 비난했다. 뉴욕 출신의 여성 국회의원이었던 벨라 앱저그(Bella Abzug·유태계 페미니스트)의 경우 수천 명에 이르는 남부 베트남의 정치범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유태인은 낙태문제, 정교분리 등 주요 사회문제에 있어 민주당보다 더 개방적이다. 특히 각종 선거 때마다 미국 일반인의 평균 투표율은 53%인데 비해 유태인의 투표율은 80%를 넘는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있은 출구조사를 보면 유태인 78%가 클린턴(민주당)에게 투표하고 12%는 부시(공화당), 10%는 페로(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태인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당락에 상관없이 평균 55~65%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약 10%선이 공화당후보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리버럴 혹은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Jewish Power’, 1997년 판) 특히 친(親)유태적 성향이 강했던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4선 모두 유태인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반대로 유태계 혈통이지만 보수주의자 이었던 골드 워터(Barry Goldwater) 공화당 후보의 경우 1964년 대선서 약 10%의 유태인 득표에 그쳤다.
▲매스컴 : 유태인 파워는 미 언론계에서도 막강하다. 20세기 들어와 미디어의 위력은 날로 확대되고 정치도 여론에 의해 움직이며 이 여론도 결국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언론은 모든 국가권력을 압도 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특수기관으로 성장했다. 유태인은 리버럴한 데다 탈무드의 영향으로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및 경제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언론·영화·정보 산업의 속성에 꼭 들어맞는 기본 훈련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언론계의 유태인은 전체 종사자의 6%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 언론인이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거의 모두 주요매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유태 언론인의 27%는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워싱턴 포스트(WP), 월스트리트 저널(WSJ), 뉴욕타임즈(NYT), 타임, 뉴스위크 및 CNN, CBS, NBC, ABC 등 TV 4사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유태 언론인들은 여론을 만들고 확산하는 위치에 있는 주필, 정치평론가, TV 뉴스쇼 제작진 등의 요직에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정예의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뉴욕 타임즈(사주인 ‘아서 옥스 설즈버거’가 유대인), 월 스트리트 저널(사주인 ‘앤 드류 스타인’이 유대인)의 경우 대표적인 친(親)유태계 언론이다.
뉴욕타임즈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유태계 칼럼니스트는 닉슨 대통령의 연설집필을 한 적이 있는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phire)와 아브라함 로젠탈(Abraham Rosenthal), 프랭크 리치(Frank Rich)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새파이어의 경우 지난 1993년 12월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바비 인맨(Bobby R. Inman) 전 CIA 부국장의 국장 임명을 반대하는 내용의 칼럼을 통해 그의 임명을 저지한 일도 있었다.
방송의 경우 윌리엄 페일리(전 CBS 사주), 앤드류 랙(전 NBC 사주, 현 소니 뮤직 최고 경영자) 및 레오나드 해리 골덴슨(ABC 사주)등이 유태 언론의 중추로 볼 수 있다. 한편 AP, UPI, AFP, 로이터(Reuter)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모두 유태인 소유이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6개의 영화사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MGM, 워너 브러더스, 콜롬비아, 유니버설)가 유태인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분야 : 지난 2000년 10월 ‘포브스’지(誌)가 발표한 미국의 4백대 자산가 가운데 유태인은 64명(16%). 유태인의 인구비율(2.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같은 유태인의 경제력은 지난 85년의 부호 순위 점유율 26%를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특히 지난 18년간 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온 앨런 그린스펀은 뉴욕 태생의 유태인이다.(현 FRB 의장인 벤 베닝키도 유태인임) 뿐만 아니라 M&A의 ‘달인’인 시티그룹의 샌 포드 웨일,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의 모린스 그린버그, 메트라이프의 로버트 벤 모세, 리만 브라더스의 리처드 풀스, 골드만 삭스의 헨리 폴슨 회장 등이 모두 성공한 월가(Wallstreet) 유태인들이다. 미 연방은행은 사립은행의 집합체로 주요 소유자는 록펠러,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등의 유태계 재벌이다
FRB는 상업어음의 재할인이나 공개시장의 조작으로 각 지구의 금융통제를 맡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오늘날 FRB가 공개수수료를 얼마만큼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일희일비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FRB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금융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FRB는 사립은행의 집합체로 직접적인 FRB의 주요 소유자는 록펠러,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등의 유태계 재벌이다.
실제로 미국의 ‘Yellow Page’(업종별 전화번호부)를 보면 ‘연준’은 정부기관란이 아닌 민간기업란에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영국의 중앙은행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은 원래 로스차일드 가문의 개인 소유 은행이었다가 1946년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 했다. 공식적으로는 국가 소유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민간은행의 성격을 띠고 있다.
로스차일드가(家)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났다. 제1대인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1812)는 아들이 5형제가 있었다. 그는 아들들을 모두 어릴 적부터 상인으로 철저하게 훈련시킨 다음, 당시의 유럽 5대 도시에 파견했다.
5대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나폴리, 파리, 그리고 런던 이었다. 5형제는 모두 각 도시에서 금융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로스차일드가는 돈을 꿔주는 입장에서 전쟁이 날 때마다 더욱더 발언권을 얻게 되었고, 강력한 세력으로 중앙은행을 지배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지배력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FRB를 통해서였다.
실제로 미국 내 유태계 은행들은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때문에 순이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5대 은행(시티, BOA, J.P.모간 체이스, 와코비아, 웰스파고)은 체이스 맨하탄과 J.P. 모건 등의 유태 재벌이 직영하고 있으며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유럽의 로스차일드와 제휴하여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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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진정한 일루미나티[Illuminati] 조직인 알롬브라도스[Alombrados]는 1520년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여러개의 단체들을 아우르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그들간의 “계몽”에 중요한 역할을 행했던 로시크루시안[Rosicrucians] 교단이 있었고, 이들는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로시크루시안 교단은 대부분의 프리메이슨들을 계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일루미나티의 목표는 시온의정서[Protocol of the Elders of Zion]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 정부 전복
* 개인 소유권 폐지
* 애국심 타파
* 가족 생활, 결혼, 도덕주의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공교육제도 폐지
* 모든 종교의 폐지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문적인 고리대금업 가문으로 유럽에서 강력한 금권을 형성하였다. 1770년대, 그들은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에게 시온의정서를 새롭게 검토하고 현대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이 작업을 1776년 5월 1일 마무리지었고,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일루미나티가 바바리아[Bavaria] 지방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바이스하우프트에 따르면 일루미나티라는 말은 루시퍼(사탄)에서 따 온 것으로, 빛의 전달자라는 뜻이었다. 1784년 바바리아 정부는 일루미나티를 금지시켰다. 1786년 일루미나티는 본부를 스위스로 옮겼으며 후에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바로 이곳에서 그들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진두지휘했다. 1830년대, 주세페 마치니[Guiseppe Mazzini](1805-1872, 이탈리아 통일운동가?역자주)는 혁명 지도자로서 바이스하우프트의 자리를 승계했고, 1870년에는 알버트 파이크[Albert Pike](1809-1891, 미국의 변호사, 군인, 작가?역자주)가 그의 뒤를 이었으며, 후에는 아드리안 레미[Adrian Lemmi]가 바톤을 이어 받았다.
이미 1770년대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프리메이슨들을 단일 세계정부 수립시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스코트랜드파 프리메이슨인 존 로빈슨[John Robinson]은 자신이 쓴, ‘모든 정부와 종교 파괴를 위한 음모의 증거들(Proofs of a Conspiracy to Destroy All Governments and Religions)’이라는 책에서 이 점을 밝혀주고 있다. (Americanist Classics, 1967, by Western Islands, Belmont, Massachusetts, 02178, U.S.A.) 브리티쉬 프리메이슨의 내부로 일루미나티가 침투해 들어가 그들을 이용하려는 의도 아래, 바이스하우프트는 로빈슨을 유럽으로 한 번 초대하였다. 프랑스 혁명에서 프렌치 그랜드 오리엔트[French Grand Orient]의 개입으로 인해, 일루미나티가 프리메이슨들을 끌어들여 이용한 사실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로빈슨은 두려움을 느꼈고, 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세상에 알려야 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루미나티는 이미 브리티쉬 프리메이슨들 속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한가지 기억해야 될 점이 있다면, 이 무렵 영국은 세계 최강의 권력을 휘두르던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영국 식민지들 덕택에, 브리티쉬 프리메이슨 역시 이미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다. 1820년대에 이르러 일루미나티는 미국에서 이미 확고한 기반을 잡게 되었다.
“Vrymesselary Ontmasker”라는 책에서, J.D. 포스터[Vorster] 박사와 F.N. 반 니커크[van Niekerk] 목사는 다음 사항들을 지적하고 있다. :
1. 프리메이슨주의는 잘못된 가치관을 지지함을 통해 성경의 말씀들을 훼손시키고,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교회를 받아들였다. 어떤 거짓된 종교에서 비롯된 어떤 형태의 “성스러운 경전”도 성경(Bible)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프리메이슨주의가 주창하는 일반적인 믿음 체계는 비기독교적이다.
3. 프리메이슨주의의 믿음과 고전들에 따르면, 프리메이슨들은 거짓된 이교도-유태인들의 종교를 옹호하고 있는데, 그 궁극적인 목표는 기독교와 또 기독교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받아들이게 된 관습, 생활습관, 삶의 방식들을 파괴시키는 데 있다.
4. 프리메이슨주의는 성서근본주의를 따르는 칼뱅주의 기독교와 그러한 삶의 방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적대적 사상이다.
5. 프리메이슨주의는 일련의 컬트적인 의식을 행하는 종교이다.
6. 프리메이슨주의는 교회를 붕괴시키고자 한다.
7. 프리메이슨주의는 진정한 종교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8. 프리메이슨주의는 기독교적 습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서약의 신중함과 엄격함을 훼손시킨다.
9. 프리메이슨주의는 프리메이슨이 아닌 자들을 차별한다.
10. 프리메이슨주의에 따른 맹세는 우리의 법질서를 심각하게 유린할 수 있다.
11. 프리메이슨들의 맹세는 사람들을 오도하고 위협한다.
12. 이들의 맹세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생활습관 그리고 전통을 파괴하게 만들며, 수천명에 이르는 아프리카 프리메이슨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역사회 위에 올라앉아, 그들만의 “계명된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13. 프리메이슨주의는 세계를 아우르는 교회, 세계의 그들의 고향화, 세계 정부 그리고 세계 시민주의의 방향으로 경도되어 있다.
14. 프리메이슨주의는 국가의 파괴를 지향한다.
15. 프리메이슨들은 살해를 계획하고 심지어 이를 그들 자신들 간에도 실행으로 옮긴다.
16. 미국의 프리메이슨들과 남아프리카의 프리메이슨들 간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존재한다.
아드리안 레미[Adrian Lemmi]는 파이크[Pike]의 뒤를 이었다. 기 커[Guy Curr]는 자신의 책, ‘게임의 졸들[Pawns in the Game]’에서, 알버트 파이크가 주세페 마치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계 전쟁을 향한 군사 계획을 드러내 보였다고 지적한다. 둘다 프리메이슨이었다. 커의 글(p.14)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파이크의 계획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코뮤니즘, 나치즘, 정치적 시오니즘, 그리고 기타 다른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사조들이 형성되고, 이것들이 세가지 세계 전쟁과 세가지 주요 혁명에 사용되어질 것을 기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루미나티가 러시아 차르 제정을 전복시킨 다음, 이 나라를 무신론적 코뮤니즘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일루미나티가 개입된 선동으로 야기된, 영국과 독일 제국간의 차이점들이 전쟁으로 치닫도록 유도될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코뮤니즘은 다른 정부 및 종교들을 파괴하는데 이용되어질 수 있도록 보다 강화되어져야만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스트와 정치적 시오니스트들 간의 차이를 이용하여 조성될 예정이었다. 이 전쟁은 나치즘이 파괴되고, 정치적 시오니즘의 권력이 증대되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주권국이 세워질 수 있을때까지 치뤄져야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국제 코뮤니즘은 보다 기반을 확고히하여, 통일된 범기독교권에 대항하여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정도까지 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선에 멈춰서, 마지막 사회적 대격변이 일어날 때까지 이들 세력의 성장은 제한되고 억제되어져야 한다.
제 3차 세계 대전은 일루미나티가 개입된 선동으로 야기된, 정치적 시오니스트들과 이슬람권 지도자들 간의 차이점들로 촉발될 것이다. 이 전쟁은 이슬람 세력(마호멧주의를 포함한 아랍 세계)과 (이스라엘을 포함한)정치적 시오니스트들이 서로서로를 파괴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며, 그러는 동시에 나머지 국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 견해 차이로 다시 한 번 분열되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완전한 탈진상태에 이를 때까지 그들간에 치열하게 싸우도록 조장되어질 것이다.
1871년 8월 15일, 파이크는 마치니에게 말하기를, 이 제 3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면, 더이상 분쟁없는 세계와 안정적인 통치(지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으로 인해,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가장 큰 사회적 대격변이 야기될 것이라고 했다. [하톤 : 나는 당신들 모두가 이 단락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면밀히 재검토해 보기를 제안한다. 당신들은 항상 누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꾸미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바로 여기, 파이크 자신의 계획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일루미나티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데 있어서, B.M. 쉐만[Schoeman]의 책, “Die Geldmag SA se onsigbare regering”도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17페이지에서 그는, 일루미나티에 대한 가장 공공연한 언급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중의 한 명은, 몇 해 전에 출판된 “비극과 희망(Tragedy and Hope)”이라는 책을 썼던 카롤 키글리[Carroll Quigley] 교수라고 지적한다. 좌익세력들이, 감히 그들을 언짢게 하는 말들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미친 극우주의자”라는 표현이, 키글리 교수에게는 아마 적용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해에 걸쳐, 키글리 교수 자신이 좌익 권력층의 한 복판에 있었고, 좌익 활동을 통해 그가 직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들에 바탕하여 그는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이 책 956 페이지에서 키글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세대에 걸쳐 존재해 왔고, 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제 친영(영국)세력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 조직은 몇몇 극우주의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어떤 범위에 있어서는 코뮤니스트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사실상, ‘원탁 회의 그룹[Round Table Groups]’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네트워크는, 공산주의자들과 협력을 하는데 있어 아무런 반감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단체들과의 협력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종종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키글리 교수는,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가 친영세력 네트워크에 어떤 적개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고 한다. 같은 단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이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지난 20년간 이들에 대해서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초반 두 해에 걸쳐 그들의 서류와 비밀 기록들을 직접 검토하는 일도 내게 허락되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체에, 또는 이들이 가진 목표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루미나티는, 한 때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에서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넘어간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 두가지 제국주의적 지배양식은 모두, 세상을 ‘영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로 만들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
[인용의 끝]
하톤 : 나는 여기서 이 책의 인용을 잠시 끊고, 다시 시온 의정서(Protocols for/of the Elders of Zion) 문제로 되돌아 가고자 한다.
그렇다. 몰몬[Mormon]교는 단지 일루미나티 교단의 지부에 불과한 것이다. 몰몬교도들은 그들 자신들을 정확히 “시오니스트들”이라 부르고 있다. 이 교회는 일루미나티가 미국에 진출하는데 있어 필요한, 잘 조직된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신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들”은 세상으로부터 공인된 가장 위험한 살인의 기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종교적인 것”이라는 미명 아래, 거짓된 가르침들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제함을 통하여, 당신들은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인류 전체를 통제할 수도 있게 된다. 인간들이 종교적인 편견이 발휘하는 마술을 뒤따르게 될 때, 그들은 이성과 논리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각각이 믿고 있는, 별반 차이없는 마찬가지의 거짓말들을 타인에게 억지로 믿도록 강요하여, 상대도 같은 편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끝까지 싸우고 마는, 말하자면 그들이 동굴 속에 살던 시절의 의식 상태나 비슷한 상황에서, 머리와 머리를 직접 들이받았던 것과 진배없는 양식의 대결 국면 속에 그들이 머물도록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될 따름이다. 당신이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게 될 때, 당신은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SALU.
피닉스 저널 제 222권, “Birthing The Phoenix”, Vol. I, 제 5장, pp. 82-86.
http://www.fourwinds10.com/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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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 일루미나티의 계획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와 공산주의의 기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악한 자가 악한 일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듯 현자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비밀결사에 의하지 않고서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다. 이 교단의 특별한 목표는 기독교를 말살하는 것이고 모든 시민정부를 전복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1776년 5월 1일)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용어는 1830년대 말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유럽 내 비밀조직인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광명회)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한 지파로서 18세기 후반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창설됐다.
이 조직의 창시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upt)는 1748년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 재학 중 많은 책을 읽었으며, 특히 프랑스의 루소 같은 이의 철학 사상에 심취했는데, 그때 그는 기독교교리에 대해 회의적인 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772년부터 모교인 잉골슈타트(Ingolstadt)대학에서 종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색다른 사상을 주창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후 프리메이슨의 조직법을 모방, 발전시켜서 ‘일루미나티’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일루미나티는 기독교 전통에 따른 모든 제도에 반항하면서 자유사상을 불러일으킨 철학적 비밀 단체로서, 특히 예수회와 수천 년을 이어온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Freemason)을 모방해 엄격한 동지애와 비밀 엄수를 강조했다.
잉골슈타트에서부터 시작된 이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1779년에는 바바리아 (Bavaria)지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때 단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괴테, 쉴러, 모차르트 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바바리아의 왕 요셉2세까지도 단원이 될 정도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왕정이 아닌 공화국 정부 제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상황이어서 이들은 모임에서 주로 종교철학과 일반 철학에 대해 토론했다.
프리메이슨,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숭배
이들은 주로 루소, 모렐리, 마블리의 사상 따위를 논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루미나티는 평등주의와 합리주의를 근본 사상으로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루미나티가 항상 내세우는 모토(Motto)는 자유*평등*박애였다. 그러나 이들은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사탄 숭배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프리메이슨 최고 계급인 33도까지 올라갔던 맨리 P. 홀(Manly P. Hall*1990년 사망)은 그의 저서인 `The Lost Keys of Freemason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단 프리메이슨의 신비한 의식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참된 신은 ‘루시퍼’(Lucifer)라고 믿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서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
정치와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포장한 이들의 사조는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기독교와 대립이 생기면서 쌍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조직의 존재를 몰랐던 대중들은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의 중심세력은 프랑스에 이미 세워진 프리메이슨 총종단에 침투해 패권을 장악했고, 1786년에 미라보 후작(Marquis de Mirabeau)은 자코뱅 파리대학에 일루미나티 종단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자코뱅파가 된다. 프랑스에 뿌리를 내린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을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이를 통해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조직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570만 명의 단원을 확보하고 있다.
美 '해골종단'(Skull & Bones), 일루미나티 하부조직
특히 이들 중 일부 그룹은 미국으로 건너가 `해골종단`(Skull & Bones)을 조직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바이스하우프트는 1830년에 이미 인간과 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프리메이슨 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 사상은 후에 니체가 받아들여 체계화 시킨 후 세상에 발표했으며, 이는 다시 파시즘(Fascism)과 나치즘(Nazism)의 근간이 되었다.
일루미나티의 프랑스 활동을 보면, 범법자로서 망명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 ‘파리 범법자동맹’이 있었고, 그 산하 조직으로는 ‘공산동맹’(kommunistische Internationale)이 있었다. 특히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프랑스로 유학 와 있다가 이 조직에 가입했다.
당시 공산주의는 일루미나티 회원들 가운데서도 혁명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어였으며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한편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 뿐만 아니라 ‘러시아 공산 혁명’에도 관여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공산혁명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노동자와 농민을 너무 탄압하고 돌보지 않은 나머지 굶주림을 못 이겨 일어난 자연 발생적인 반정부 폭동이었고, 그것이 공산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여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진실은 따로 있다.
실제로 1814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을 할 때 파리를 점령한 러시아 장교들은 이곳에서 일루미나티 사상과 접하게 된다. 귀국 후 이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에는 두 개의 프리메이슨 종단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북극성종단’(the polar star)과 ‘남극성 종단’(the South Pole star)이 그것인데, 당시 이들은 수많은 부호들과 상류층 사람들을 입단시켰다.
실제로 ‘3면 작전’을 저술한 얀 코자크(Jan Kozak)는 공산혁명당시 러시아에는 3개의 세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러시아 왕가, 유태계 프리메이슨 조직에 의해 무너져
첫째는 러시아의 황제(차르*Tsar)의 권위를 박탈한 임시정부이고, 둘째는 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수많은 프리메이슨 계열 조직중 하나인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1882년 창설)종단, 그리고 셋째는 행동대라고 할 수 있는 조직폭력배가 그 세력들인데, 이중 전체를 통솔하는 세력은 역시 비밀조직이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영국군 첩보장교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전문가인 존 콜먼(John Coleman)박사는 지난 1997년 그의 저서인 ‘The Committee of 300’에서“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주요 공격 목표는 기독교였으며 레닌, 트로츠키, 케렌스키의 배후에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가진 강력한 조직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임시정부의 우두머리로 사회주의자였던 알렉산더 케렌스키(Alexander Kerensky, 1881-1970)는 ‘브나이 브리스’ 단원이었으며 조직 폭력배들의 중심은 사회민주노동당의 ‘블라디미르 레니’이었다.
한편 이들은 러시아 공산 혁명에 가장 앞장섰던 순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파에 대해서는 일단 혁명에 성공한 후 대부분 숙청 또는 유배를 보냈으며 이후 레닌파가 권력을 인계받아 악정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산주의는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 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이나 신이 없이도 물질 스스로 존재하고 진화 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다. 유물론은 정신세계를 일체 부정하고 종교, 양심, 도덕, 기존의 가치 등을 전면 부인하고 오직 혁명사상을 전파하며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이다.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종교 말살론
공산주의는 무신론 사상이며 종교 말살론 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아편”이라고 말했으며, 레닌의 경우 “현대 종교 특히 기독교는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 한 뒤 “교회는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의 원수이기 때문에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형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엥겔스는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을 물질로 구성된 고깃덩어리로만 보았다. 이외에도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는 서기장이 된 다음 “3년 안에 크리스천들을 다 없앤 후 마지막 한 사람 남은 것을 전국 TV에 보여 준 후 처치하여 크리스천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했다.
한편 공산주의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후버 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박사는 그의 저서인 `The Great Terror`(엄청난 폭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56년 2월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폭로하기를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의 90%를 죽였고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은 50%를, 군 장성 급의 60%를 처형했다.”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 소련은 귀족 및 군인, 지식인의 저항에 부딪쳐서 국내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켜 1941년 6월 바바로사(Barbarossa)계획에 의하여 소련을 침공함으로서 오히려 스탈린으로 하여금 공산혁명의 완성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당시 스탈린은 혁명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별하여 애국이라는 명분을 주고 이들을 징집하여 전선(戰線)으로 몰아넣어 이들 전부를 죽게 만들었다. 실제로 모스크바 전투시기인 1941년 6월 22일에서 11월 말까지 단일 전투에서 400~500만의 사상자를 냈다.
소련과 중국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대학살 사례
이 전투에서 제일 먼저 총알받이가 되어 죽은 사람이 바로 혁명의 방해가 되는 모스크바 인사들이었다. 소련은 전체적으로 2차대전시 군인 750만이 전사하였고, 군인부상 1400만, 민간인 사망이 1500만이 발생했다. 스탈린은 혁명에 방해가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한 처형을 단행하였다.
그는 소위 ‘에조프시치나’라고 불리는 대학살로 세계를 경악시켰다. 스탈린의 군부 대숙청은 계속되어 5천명이 넘는 고급장교가 처형되었다. 이 숙청으로 5명의 원수 중에서 3명, 15명의 군사령관 중에서 13명을, 85명의 군단장 중에서 57명을, 195명의 사단장 중에서 110명을, 406명의 여단장 중에서 220명이 처형되었다.
혁명에 방해가 되는 군부의 고급 장교들을 두하체프스키 원수의 죄목에 뒤집어 씌워서 처형했다. 공산주의의 대학살은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1948년 장개석 군대가 모택동에게 패한 후, 대만으로 탈출을 못하고 본토에 남아 있는 옛날 장개석 총통의 군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공산혁명의 저해요소로서 한국전이 발발하자 이 군인들 20만을 소집하여 한국전에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명분 있게 다 죽일 수 있을까?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말 그대로 UN군의 지뢰밭과 화망(火網)지역을 사람으로 바다를 만들어 공격을 하는 전술이다. 혁명의 방해요소인 장개석 군대의 국부군 출신을 항미(抗美)전쟁이라는 구실로 자연스럽게 제거했다.
그 후 모택동은 전 세계가 경악한 홍위병의 문화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혁명의 적대세력인 지식층을 10대와 20대 초반의 공산주의 맹신자를 동원하여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다. 폭력과 체형 및 체벌 행위를 자행하고 대상자를 비참하게 참살했다.
가난한 자가 지식인과 가진 자에 대한 투쟁은 항구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은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칼 막스의 계급투쟁 정의를 철저히 이행했다. 이때 피해를 입은 인사가 처형된 사람이 10만을 넘고 투옥(投獄) 및 고문으로 불구가 된 인사가 2억에 이른다.
칼 포퍼, “공산주의는 악마가 꾼 꿈”
2차대전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한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Sir Karl Riamund Popper)는 그의 저서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데 서로 협력할 동반자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敵)을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칼 포퍼는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 공산주의는 날조된 것이며 ‘악마가 꾼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사회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 도래해야 한다고 예견했던 ‘역사주의적 관점’도 오늘날에 와서 오류임이 판명되었다. 칼 포퍼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자들의 생각을 도덕적으로 매우 그릇된 발상이라고 보았다.
과학자의 이론, 법관의 판결, 정치인의 정책, 경영자의 결정, 신학자의 교설 등 우리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포퍼는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적 진리, 영원한 지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미래정책과 전략, 지속가능한 번영의 균형과 조화의 정부를 위한 폴로그(Political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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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유태계 커넥션’ 대(大) 해부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타임을 포함해 이 회의에 참석하신 여러 대형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임원 여러분들께 지난 40년간 보여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일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세계를 향한 ‘우리의 계획’을 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세계정부’(world government)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1991년 6월 5일 Bilderberg 회의 기조연설)
일반적으로 미국 사회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주도하는 사회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 그룹은 유태계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 커넥션은 대체로 미국 내 현실주의 그룹과도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미국 내 유태인 숫자는 약 700백 만 명 정도(미국 전체 인구의 약 2.5%)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총인구 2억 8천 1백만 명 중 백인이 1억 9천4백만 명(69.1%), 히스패닉계가 3천5백만 명(12.5%), 흑인이 3천 3백만 명(12.1%), 아시아계가 1천 1백만 명(3.6%)인 것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숫자이다.
유태인이 미국에 최초로 정착한 역사는 1654년 7월 8일 바르심슨(Jacob Barsimson)이라는 네덜란드계 유태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태인의 미국 이민을 1840~1880년간 있었던 독일계 이민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러시아, 동구계 이민으로 본다면 약 150년 정도의 이민역사밖에 되지 않으며, 오래된 가계(家系)라 해도 많아야 평균 3~4대 정도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유태인들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태인이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막후에 숨어 세계경제를 맘대로 주무른다는 이른바 ‘유태인 음모설’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유행이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줄곧 유태인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해왔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 서점 가에는 ‘유태코너’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유태관계 서적이 붐을 이룬 적도 있었다.
▲정치 분야 :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 내 유태인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며 부(富)를 축적한 반면 정계에는 많은 인물을 진출시키지 못했다. 이는 만약 유태계 인사들이 미국의 주요 정치적인 상·하의원이나 또는 주지사에 많이 진출하게 되면 일반인의 반감, 나아가서는 반(反)유태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염두에 둔 신중한 자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각자가 능력만 있으면 어떤 직종에나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유태인도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유태인도 상·하원에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태인의 대다수는 매우 리버럴하다. 이로 인해 이들의 정치적 성향도 자연히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수민족을 우대하며 리버럴한 성향을 띤 민주당 선호로 기울어져 있다. 과거 미국 유태인 중에는 사회주의자도 많았다. 더욱이 미국 내 정치색이 짙은 각종 사회활동(노동·여성운동)에는 유태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단체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1886년 시가(담배) 제조 노동자들의 조합을 이끌던 유태인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가 창설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의 경우 1904년 1백75만 조합원을 거느린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 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이후 흑인 민권운동을 성원한 주축세력도 유태인이었으며, 월남전 이후 기승을 부리던 인권단체 등의 지도부 역시 거의 유태인 일색이었다.
일례로 1921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유대인이 차지했던 비율은 33.5퍼센트였으며 평당원 수준에서는 40퍼센트를 차지했다. 1950년대를 거쳐 5만 명에 달했던 미국 공산당에서 유대인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으며 이들에 있어 입당자의 숫자는 항상 탈당자의 숫자를 상회했다.
다른 민족출신들에 비해 인구비례상 유대인의 공산당 입당율은 10배가 넘는 것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비슷한 숫자의 유대인 사회주의자 및 무정부주의자들과 같은 좌경급진주의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Natha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1920년대 초반부터 미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내에서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소련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지하에서는 소련 비밀경찰의 지령에 따라 미국에 대한 간첩임무도 수행했다. (1947년 소련에 원자폭탄 비밀을 넘긴 죄로 처형된 유대인 로젠버그 부부 역시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지하세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1947년 스미스 법안에 의해 기소된 공안사범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유대인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를 만인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미국 공산당의 유대인 수뇌부는 간부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개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외부의 눈에 띄는 직위에는 항상 지방출신의 비유대계 인물을 배치했다. (Source: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K. Kann, Joe Rapoport, 1981; Klehr, Haynes & Firsov,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 1995; A. Liebman, Jews and the Left, 1979)
특히 유태계 좌파 핵심세력들은 미국의 베트남 완전철수를 요구했으며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자 공산주의자들의 완전한 승리를 원하기도 했다. 특히 반전론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자 美 의회 앞으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증오했던 사람들 그리고 존 케리(John Kerry·체코계 유태인)와 제인 폰다(Jane Fonda)처럼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미국의 북 베트남 폭격을 비난했다. 뉴욕 출신의 여성 국회의원이었던 벨라 앱저그(Bella Abzug·유태계 페미니스트)의 경우 수천 명에 이르는 남부 베트남의 정치범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유태인은 낙태문제, 정교분리 등 주요 사회문제에 있어 민주당보다 더 개방적이다. 특히 각종 선거 때마다 미국 일반인의 평균 투표율은 53%인데 비해 유태인의 투표율은 80%를 넘는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있은 출구조사를 보면 유태인 78%가 클린턴(민주당)에게 투표하고 12%는 부시(공화당), 10%는 페로(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태인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당락에 상관없이 평균 55~65%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약 10%선이 공화당후보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리버럴 혹은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Jewish Power’, 1997년 판) 특히 친(親)유태적 성향이 강했던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4선 모두 유태인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반대로 유태계 혈통이지만 보수주의자 이었던 골드 워터(Barry Goldwater) 공화당 후보의 경우 1964년 대선서 약 10%의 유태인 득표에 그쳤다.
▲매스컴 : 유태인 파워는 미 언론계에서도 막강하다. 20세기 들어와 미디어의 위력은 날로 확대되고 정치도 여론에 의해 움직이며 이 여론도 결국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언론은 모든 국가권력을 압도 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특수기관으로 성장했다. 유태인은 리버럴한 데다 탈무드의 영향으로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및 경제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언론·영화·정보 산업의 속성에 꼭 들어맞는 기본 훈련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언론계의 유태인은 전체 종사자의 6%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 언론인이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거의 모두 주요매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유태 언론인의 27%는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워싱턴 포스트(WP), 월스트리트 저널(WSJ), 뉴욕타임즈(NYT), 타임, 뉴스위크 및 CNN, CBS, NBC, ABC 등 TV 4사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유태 언론인들은 여론을 만들고 확산하는 위치에 있는 주필, 정치평론가, TV 뉴스쇼 제작진 등의 요직에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정예의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뉴욕 타임즈(사주인 ‘아서 옥스 설즈버거’가 유대인), 월 스트리트 저널(사주인 ‘앤 드류 스타인’이 유대인)의 경우 대표적인 친(親)유태계 언론이다.
뉴욕타임즈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유태계 칼럼니스트는 닉슨 대통령의 연설집필을 한 적이 있는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phire)와 아브라함 로젠탈(Abraham Rosenthal), 프랭크 리치(Frank Rich)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새파이어의 경우 지난 1993년 12월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바비 인맨(Bobby R. Inman) 전 CIA 부국장의 국장 임명을 반대하는 내용의 칼럼을 통해 그의 임명을 저지한 일도 있었다.
방송의 경우 윌리엄 페일리(전 CBS 사주), 앤드류 랙(전 NBC 사주, 현 소니 뮤직 최고 경영자) 및 레오나드 해리 골덴슨(ABC 사주)등이 유태 언론의 중추로 볼 수 있다. 한편 AP, UPI, AFP, 로이터(Reuter)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모두 유태인 소유이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6개의 영화사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MGM, 워너 브러더스, 콜롬비아, 유니버설)가 유태인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분야 : 지난 2000년 10월 ‘포브스’지(誌)가 발표한 미국의 4백대 자산가 가운데 유태인은 64명(16%). 유태인의 인구비율(2.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같은 유태인의 경제력은 지난 85년의 부호 순위 점유율 26%를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특히 지난 18년간 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온 앨런 그린스펀은 뉴욕 태생의 유태인이다.(현 FRB 의장인 벤 베닝키도 유태인임) 뿐만 아니라 M&A의 ‘달인’인 시티그룹의 샌 포드 웨일,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의 모린스 그린버그, 메트라이프의 로버트 벤 모세, 리만 브라더스의 리처드 풀스, 골드만 삭스의 헨리 폴슨 회장 등이 모두 성공한 월가(Wallstreet) 유태인들이다. 미 연방은행은 사립은행의 집합체로 주요 소유자는 록펠러,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등의 유태계 재벌이다
FRB는 상업어음의 재할인이나 공개시장의 조작으로 각 지구의 금융통제를 맡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오늘날 FRB가 공개수수료를 얼마만큼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일희일비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FRB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금융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FRB는 사립은행의 집합체로 직접적인 FRB의 주요 소유자는 록펠러,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등의 유태계 재벌이다.
실제로 미국의 ‘Yellow Page’(업종별 전화번호부)를 보면 ‘연준’은 정부기관란이 아닌 민간기업란에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영국의 중앙은행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은 원래 로스차일드 가문의 개인 소유 은행이었다가 1946년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 했다. 공식적으로는 국가 소유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민간은행의 성격을 띠고 있다.
로스차일드가(家)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났다. 제1대인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1812)는 아들이 5형제가 있었다. 그는 아들들을 모두 어릴 적부터 상인으로 철저하게 훈련시킨 다음, 당시의 유럽 5대 도시에 파견했다.
5대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나폴리, 파리, 그리고 런던 이었다. 5형제는 모두 각 도시에서 금융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로스차일드가는 돈을 꿔주는 입장에서 전쟁이 날 때마다 더욱더 발언권을 얻게 되었고, 강력한 세력으로 중앙은행을 지배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지배력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FRB를 통해서였다.
실제로 미국 내 유태계 은행들은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때문에 순이익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5대 은행(시티, BOA, J.P.모간 체이스, 와코비아, 웰스파고)은 체이스 맨하탄과 J.P. 모건 등의 유태 재벌이 직영하고 있으며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유럽의 로스차일드와 제휴하여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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