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
金文의 秘密
김대성 컬처라인 출판사 2002년 2월 8일 출판
출처 : http://cafe.daum.net/falman/3aa9/1
1. 서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우리는 이루어진 사실로 믿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는 흔히 신화하고 하여 꾸며진 옛이야기로 알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보듯이 곰이 어찌 사람이 되어
사람과 결혼하여 사람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허황한 것으로 알았지만
신화에서 표현되는 상징성을 안다면
단군 왕검이 '虎'족과 '熊'족의 처녀를 선택함에 있어서
성급한 성격보다는 인내심이 강한 착한 여자를 왕비로 삼은 사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단군이 지배했던 고조선을 밝혀주는 책이 바로 금문의 비밀(金文의 秘密)이다.
책에 기록된 역사를 역사시대라고 하고 그 이전시대를 선사시대라고 부르지만
기록된 역사책에서는 신화로 알려져 왔으나
그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 (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말인 금문은
본격적인 역사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가 금문이다.
그러니까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문자 그림문자(금문)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토기나 제기 등을 통하여 4,500년 전의 시대 즉, 중국이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규정하는
삼황오제시대를 '금문(金文)'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낙빈기가 중국의 신화와 전설 시대인 삼황오제 시대를 실제의 역사 시대로 풀어냈고
김재섭씨는 다시 삼황오제 시대가 '조선'과 '한'의 시대라고 재조명하여
삼황오제 시대가 고조선의 역사와 맞물려 있음을 말한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의 219년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2. 중국신화에 숨은 잊혀진 고대사
(1) 고대신화와의 진지한 만남
최근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인기에 비하면 우리의 단순신화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화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여러 부분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고의적인 누락이나 위조가 되었다는 사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에서는 전설적인 왕조인 은(殷)왕조의 유적이 19세기말부터 드러남으로서
실존했던 왕조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신화에는 결코 신화일 수만은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중국학계는 문자의 시작을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보기 때문에 '상고금문'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하여 전설의 시대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용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순한 내용이라서
중국은 이 문제의 책을 '금서'로 취급했으며 출판 유통된 책을 회수하였다한다.
800권이라는 소량이 출판되고 유통된 책을 회수했으니 세상에 유포된 책은 극히 드문 희귀종이다.
그 중 4-5권이 국내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연구한 사람이 소남자 김재섭씨이고
김재섭씨 한테 금문을 배운 사람이 책의 저자인 김대성이다.
낙빈기는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 같은 글자 '금문'을 연구하여
4,500년 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년. 9대 219년간) 시대를
논리 정연하게 역사의 시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을 역사로 주장하며 기존의 통박을 부정하는 것이다.
'금문의 비밀'은 중국의 금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의 내용을 재해석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금문신고는 무엇일까?
금문신고는 중국사학자 낙빈기(1917-1994)가
평생동안 상고금문을 연구하고 풀이한 결과를 1987년 책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금문신고는 크게 4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1)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화폐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
(2)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
(3)병명집(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
(4)인물집(人物集)으로 되어있다.
※ [금문신고]에 인용된 금문 관련 서적(금문 탁본을 엮은 책들)은 아래와 같다.
1. 오대징 편(吳大徵 編) -『가齋集古錄, 상.하』
2. 엄일평 편(嚴一萍 編) -『金文總集, 총10권』
3. 왕의영 편(王懿榮 編) -『 古錄, 3권』
4. 설상공 편저(薛尙功 編著) -『歷代鐘鼎 器款識』
5. 문연각 (文淵閣) -『四庫全書』
6. 우성오 편저(于省吾 編著) -『商周金文錄遺』
7. 용경 편저(容庚 編著) -『金文編』
8. 허신 편저(許愼 編著) -『說文解字』
9. 나진옥 편(羅振玉 編) -『三代吉金文存』
(2) 역사적 인물로 되살아난 위대한 신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써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어떤 연유에서 그 같은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문자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 부호이다.
도형적 기호를 빌려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문자의 탄생과 함께 역사시대는 시작된다.
금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문형으로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인 것이다.
낙빈기가 금문 해석을 통해 밝혀낸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금문을 통해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또한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 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으며
황제는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해독하는 대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은나라의 땅이었던 은허(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가
중국문자 창조의 시초라고 단정하고 있는 1940년대 신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학설이라고 뒤집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삼황오제의 금문보다
1000년이상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三. 삼황오제시대의 인물들
1. 동이족의 시조 신농(神農)
중국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고 부르는 신농은
삼황오제시대를 연 역사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최초의 역사적 인물이 된 것이다.
신농은 웅족(熊族)출신의 소전(少典)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치우씨(蚩尤氏) 집안의 여자 강씨(姜氏)였다.
신농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강이라 했다.
신농씨는 성년이 되어 곰족의 유웅씨(有熊氏) 집안의 딸
임사씨(姙巳氏)에게 장가들어 서방님(西方任)이 된다.
서쪽에서 장가 온 남편이니 서방님이라 부른 것인데
그 당시는 사람 인(人)을 사람 임(任) 또는 사람 님(壬)으로 읽었다.
그러나 신농이 임금이 된 지 43년째 되던 해(기원전 2473년)에
사위 황제와 전쟁을 벌이다가 패해 임금자리를 내놓게 되는데
이에 신농의 어머니계의 치우가 지금의 탁록( 鹿)에서 황제와 수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인지 '황제'는 임금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아들인 '소호 김천'이 '신농'의 뒤를 이어 제위를 잇고 있다.
제위를 빼앗긴 '신농'은 대파산으로 들어가 산사람(山人)이 되었는데
신선(神仙)이란 말은 신농이 산사람이 되었다는 말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신농씨 이야기로 풀이하면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ㅣ'자
'ㅣ'자는 기원전 2517년 신농이 지금 중국 산동성 곡부 태산(泰山)아래에서 나라를 열고
임금을 할 당시 시장터에서 유통되었던 청동으로 만든 돈(화폐)에 새겨져 있다.
소남자는 'ㅣ'을 하나님 신(神)으로 풀이하여 신패(神貝)로 불러야 한다고 했고
님(壬)이라 읽고 임금님(壬金任)으로도 새김질 했다.
'ㅣ'의 다양한 해석을 살펴본다.
(1) 'ㅣ'자를 가마 신으로 읽는 것은
우두머리 가운데 가마가 되는 사람 곧 왕 중의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ㅣ'의 머리 쪽을 정수리, 우두머리 신( )으로 읽는다는 점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가마를 보면
할머니가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은 하늘의 숨구멍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ㅣ'를 아래로 그어 물러갈 퇴 '退' 라는 풀이이다.
이것은 '하야했다'는 뜻으로 보아야한다.
(3) 'ㅣ'을 곤이라 읽는 것인데 이는 옛날부터 근본이란 뜻이고 보면
곤은 당연히 '꽂는다'는 뜻이다
'ㅣ'의 위쪽을 하늘 위라 했을 때 천신(天神)이 되고
밑둥치쪽을 땅 아래라고 했을 때 곤(坤)은 지신(地神)이 된다.
곤이란 소리값은 '꽂는다'의 '꼰'에서 온 것이라면 'ㅣ'을 양(陽)을 상징하는 양물(陽物)이 꽂혀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이치에 합당한 말이 될 것이다.
(4) '기둥 주'라고 보는 것은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고 살 곳을 정해야 산다는 의미이다.
'기둥 주'라고 읽을 때 '기둥을 꽂는다', '세운다' 는 '솟터'가 그 근본 내용이다.
(5) 금문에서 십(十)은 'ㅣ' 의 허리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알을 밴 형상을 하고 있는데
십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 우리말의 씹은 씨(種ㆍ卵)의 입이라는 뜻으로
입이 열려 삼라만상이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6) 셈대를 세우는 모양이라는 뜻의 숫자로 당연히 하나이다.
이 글자를 통하여 우리말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한'이라는 말의 뿌리는 '하라' 또는 '하나'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나'의 '하'는 태양, '나'는 땅의 터라는 뜻으로 '하나'나 '하라'는
'태양의 터, 땅, 태양의 나라' 라는 우리의 故語고어였다.
(7) 밝음ㆍ하늘ㆍ해ㆍ임금ㆍ아버지ㆍ수컷이라는 뜻의 양(陽)으로
또 신농의 족휘(族徽)인 양(羊)으로도 읽는다.
(8) 사람 인(人) 또는 하나님 신(神)으로 읽는다.
'ㅣ'은 하나밖에 님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님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나 말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신의 최초의 글자가 'ㅣ'이다.
(9) 남자의 양물을 뜻하는 좆인데 'ㅣ'자에서 자지 또는 좆의 'ㅈ'을 뿌리로 하는 음이 나온다.
'ㅣ'자는 바로 자지이며 성인 남자의 좆이다. 고조선의 문자인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긴 '조(且)'자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지 조(自持且)'의 '조(祖)'가 그 소릿값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의 씨, 불의 알, 남자의 양물이 바로 조상이라는 금문적인 해석을 모르고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도조(陶祖)'이다.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부랄ㆍ불알도 사실은 불의 알, 불의 씨
즉 염제 신농의 씨알, 신농의 후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글자이다
'불(炎)'은 남주작(南朱雀)이라고 하는데 주작의 의미는 '붉은 새'이다.
'새'는 '해'로 새김을 했기 때문에 '붉은 새'는 '붉은 해'를 의미한다.
우리를 동이족이라 하고 동이족 중에서도 새족(鳥族)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지날 쑤어 먹는 동그란 '새알' 그리고 설날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을
둥글게 썰어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 뽕할메가 된 뉘조
뉘조는 신농의 딸이자 중국인의 시조 황제 헌원의 부인이다.
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으로
이곳에서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고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6천 내지 7천년 전의 것으로 판명된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출토돤 물레가락(紡 錘)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해마다 봄이면 임금이 제주가 되어 동대문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신인 선농을 위해 선농제(先農祭)를 지냈고,
성북동 선잠단(先蠶壇)에서는 누에신인 뉘조를 위해 선잠제를 지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 땅에서 누에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왔지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의 정비 서릉(西陵)이라 해야 안다.
신농의 딸아리면 더 더욱 모른다.
우리 민속에서는 뽕할머니, 영동할메 (바람할메), 삼신할머니 등으로 불리는
친근한 할머니가 남의 할머니가 돼버 린 것이다.
신농을 의미하는 하느님
신, 기둥 주('ㅣ')자가 옆으로 누운 'ㅡ'가 뉘조를 뜻하는 글자이다.
누님이라는 뜻은 누워서 씨를 받는 님, 누워서 씨를 만드는 님이 누운님, 누님님 것이다.
따라서 잠을 자려면 누워야 한다.
누에가 뽕잎 을 먹거나 움직일 때는 한 일(ㅡ)자 모양이다.
붓글씨를 배운 사람이면 알겠지만
처음 한 일자를 쓸 때 잠두마제(蠶頭馬蹄)의 형태로 써야한다는 운필법을 배우게 된다.
일(一)자를 쓰기 위해 가로로 획을 긋는데
왼쪽 끝은 누에 머리 모양으로 오른쪽 끝은 말발굽 모양으로 써야 제대로 된 '一'자라는 것이다.
누에는 또 몇 날 며칠이고 잠을 자니 잠자는 벌레라는 의미에서 잠(蠶)이라는 글자도 만들어졌다.
머리와 가슴을 세우고 잠을 자는 모양에서 을(乙)자가 생기고
넉 잠을 자고나면 고치 속으로 들어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새를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새을자가 된 누에는 다시 몸 기(己)자로,
또 활 궁(弓), 뱀 사 (巳), 누에 곡( )으로 변해진다.
지금 농사라는 농(農)자도
누에를 치는데 쓰는 기구인 잠박 곡(曲)과 누에 신(辰)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로
잠박은 처음에는 누에가 구부러진 모양의 입 벌린 감( )의 모양이었다가
지금 쓰고 있는 곡(曲)으로 변했다.
결과적으로는 신농이란 이름이
신농 자신과 그의 딸 뉘조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글자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누에를 의미하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본디 글자는 신(辰)이다.
동이 계열에서 쓰던 누에 신, 진자는 황제계열에 가면
용(龍), 융(戎), 용(庠) 등으로 변한다.
이는 신농을 신융(神戎), 신용(神龍)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뉘조를 삼신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삼신(三辰)이 해와 달 그리고 별(북두칠성)을 뜻하기도 한다.
누에할머니 뉘조의 부호문자인 'ㅡ'자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삼신각(三神閣)에 있는 삼신할머니로 봐야할 것이다.
하늘에서 가장 중심의 하늘을 '자미원'이라고 하는데
그 '자미'라는 글자의 어원이 '잠'이다. 잠이라는 것은
누에가 사는 울타리, 뉘조할머니가 살고있는 궁전이라는 뜻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누에가 될 알을 낳고 죽는 나방(蛾)이라는 글자는 뱌로 뉘조의 딸 상아 또는 항아가 된다.
이처럼 'ㅡ'자 누에는 변화를 일으켜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별(辰)이 되었다가
용(龍)이 되는 등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게된다.
그래서 누에 잠(蠶)을 하늘벌레 '천충( )'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황제계가 누에 잠을 용으로 부르면서 족칭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제일 먼저 누에의 머리에 모계인 신농계를 보호한다는 뜻으로 양의 뿔을 달았다.
후세의 족표에는 뿔이 잇는 용의 모양에 다리가 붙여지고 무섭게 생긴 발가락까지 그려진다.
누에가 변하여 번데기 용(庠)이 되고 상상의 동물인 용(龍)이 되어
황제계열의 대표적인 표 시, 휘장의 그림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또 바람(風), 붕(鵬), 봉(鳳)으로 변해간다.
3. 해의 신, 희화 주(羲和 柱)
신농의 아들 희화 주(羲和 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신농의 아들이며, 그의 누님인 뉘조와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상아와 결혼해
장차 3대 임금이 될 전욱 고양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낙빈기가 신농의 아들을 '희화 주'라고 풀이한 데 대해
소남자는 기둥 주(柱)를 주인 주(主)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인 주로 읽어야 신농의 신(神)과 그 아들 주(主)가 합쳐
우리가 제사를 모시는 신주(神主)가 된 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신주는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뜻하는 가장 친근한 단어가 된다.
소남자는 또한 이 신주를 삼신(三神)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낙빈기에 따르면 문자는 신농 염제 계통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신농 때 처음 만들어 쓴 문자는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를 시조로 삼은 한족(漢族)에 의해
황제 헌원이 문자를 만든 것으로 그 공적이 넘어가 버린다.
이른바 황제의 명을 받아 창힐이 최초의 문자를 만들엇다고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희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술잔을 양쪽에서 받들고 이쓴 모양의 술잔 주(舟)가 있다.
또 다른 희화의 이름은 날 일(日)이다. 그의 이름은 조선 조(朝)의 왼쪽 글자를 이룬다.
그것은 신농의 다른 이름 염(炎)과 같은 뜻으로 태양족임을 나타내는 신농계의 족표다.
신 다음의 글자가 바로 인이다.
희화 주를 뜻하는 인(人)자가 황제가 사는지역으로 가면 이(夷)가 되고,
후대에는 동이의 이(夷)가 되고, 다시 주나라 공자 때 와서는 오랑캐 이(夷)로 그 뜻이 변하고 만다.
따라서 이(夷)가 황제 계열에 의하여 자기 조상을 욕하는 글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4. 중국인의 시조 황제
'낙빈기'는 염제의 덕이 쇠해져 여러 제후들이 서로 침범하였으나
능히 그것 을 제거할 수 없어 황제가 대신했다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사마천'은 사기에서 어째서 염제를 역사 인식 체계에서 제외했는가 하고 묻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 명문을 통해,
'염제 신농'이 최초로 문자를 만든 인물이자 겨레의 시조이며 역사의 단초여야 옳다고 논증하고 있다.
'공자' 또한 전승되어오던 문헌을 모조리 없애고
요순시대의 말만으로 정교훈령을 꾸민 서경(書經)식 수법과 같은 것으로서
하족(夏族)을 하토(夏土)의 역사의 주인으로 설정해 여기에다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제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황제를 뜻하는 글자는 상고금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단고기의 삼성기전(三聖記全) 하편에는
치우 천왕께서 염제 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天兵)을 처음 서쪽으로 일으켰다.
(중략)
'황제 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가서 황제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 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고 하였다.
또한 사기에는 황제가 소전의 아들(子)로 나와있지만
낙빈기는 사마천이 자(子)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사위아들 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역사의 단추를 잘못끼웠다고 지적하며,
소전의 아들은 신농이고 황제는 아들이되 사위아들이라고 했다.
5. 왕위에 오른 아들, 소호 김천(少 金天)
'소호 김천'은 뉘조와 황제에서 태어나 2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또한 신농의 둘째 부인 이 낳은 딸 소진에게 장가를 들었으니 또 작은 사위이다.
소호 김천은 임금이 되자 새로써 관직의 이름을 정했다.
그래서 새족인 조족 (鳥族)의 시조가 된다.
우리민족을 동이 새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좌구명이 쓴 좌씨춘추(左氏春秋)를 보면 알 수 있다.
신라 계림왕(鷄林王)이 계관(鷄冠)을 쓴 것은
소호 김천의 후손이란 설과 일치하며 그들의 왕을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한 것 또한
진(秦)나라가 서천에서 일어나 백제 금방신임 소호를 서치(西 )에 모셨던 것과도 일치한다.
김씨는 곧 양족인 신농의 직계 후손이자 황제 헌원의 외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와서야 중국은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며
신농 염제를 황제 헌원보다 앞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6. 달의 신 상아
항아로도 불리는 상아는 황제와 뉘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소호 김천의 여동생이다.
상아는 달의 신(月神)으로 모계제 사회의 주인이었다.
고조선의 조(朝) 오른쪽 변에 있는 월이 왼쪽의 날 일보다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은
이때 월시(月氏)가 주인이었음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월신(月神) 상아는 일신(日神) 희화 주의 짝이다.
그래서 일신과 월신이 대 (對)가 되고 음양이란 말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음이 말머리에 붙은 것은 당시 사회제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朝)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왼쪽의 남자의 해(日)와 오른쪽의 여자의 달(月)이 합쳐져
사당에 남자인 할아버지와 여자인 할머니를 함께 모신 글자라는 풀이가 가능해 진다.
四. 고조선을 밝히는 징검다리 「문무대왕비문」
1796년(정조 20년) 경북 경주에서 밭 갈던 농부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문무대왕비’였다.
발견 당시 이미 마모가 심해 상당 부분 알아볼 수 없었으나
추사 김정희의 탁본으로 드러난 비문의 내용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화관지후’(火官之后), 진백(秦伯), 투후( 侯) 등 문무왕 김법민의 먼 조상6명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들은 누구일까?
“화관지후는 신농씨의 직계 후손인 순임금의 관직명이다.”
재야 금문학자 김대성(60)씨가 쓴 ‘금문의 비밀’(컬처라인 발행, 1만 8,000 원)은
“신라 김해 김씨의 조상이 순이며 멸망한 진(秦)나라 지배층의 후예가 신라로 건너왔다”
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오늘날 중국의 요서와 요동, 한반도의 서북과 남쪽 김해 및 제주도,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왕망때 만든 화폐 오수전(五銖錢)이 출토되는 것은
왕망과 정치일선에 같이 참여했던 세력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대륙 밖으로 이동한 흔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따라서 문무왕 비문과 왕망의 시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건대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바로 성한왕, 즉 일제의 5대손인 성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일제의 자손 중 또다른 김씨들이 가락으로 대거 이동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핵심으로 꼽히는 사람이 김일제와 같이 포로로 잡혀온 동생 윤(倫)이다.
윤은 일찍 죽고 그의 아들 안상(安上)이 투후 벼슬과 동격인 도성후(都城侯)가 됨으로써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그리고 윤의 4대 손이자 안상의 3대손 탕(湯) 역시 왕망의 실패 이후
이 땅으로 망명해 오는데, 바로 그가 김수로라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투후 일제의 5대 자손이 신라 김씨계이고
윤의 5대 자손이 가락김씨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진위 여부를 떠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대 중국의
청동 제기, 무기, 농기구, 화폐 등에 새긴 글자(금문 金文)의 해석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금문의 내용은 후대의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씨는 갑골문과 함께 한자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금문 가운데서도
기원전 2,500년 경, 하나라와 그 이전 삼황오제 시대의 것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글자 낱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의 결과는 한중 고대사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금문 기록을 종합해 보면 삼황오제 시대 고대 중국은
신농씨와 순임금, 치우를 비롯한 동이족과 황제 등 화하족(華夏族)의 결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五. 결론
지금까지 금문을 살펴 본 내용으로 보면
신화로만 알아왔던 삼황오제의 시대가 동이족의 고대사를 반영한 사실이란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는
미국식이나 영국식의 발음을 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영어를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중국식 발음을 고집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읽었다는 점에서 강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중국은 항상 우리를 자신의 속국처럼 생각해 왔으며
모화사상에 빠져있는 우리 선비들이 언제나 중국의 영향권 내에서 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그들처럼 발음하려고 노력을 할 수도 있었건만
역관(譯官)만이 그렇게 했을 뿐 우리는 우리의 말로 표현해 왔다는 점이다.
한자는 이 책 내용과 같이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한자의 상고문(上古文)을 보면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음과 같은 사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산동지방의 곡부에서도 고조선이 도읍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우리와 한자를 읽는 방법이 같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어쩌면 한자를 읽는 우리말이 원음이고 중국식 발음이 오히려 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한자(漢字)는 엄밀히 말하면 한자(韓字)로 원래가 우리의 글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한자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란 사실이 지금은 어리둥절할 지 몰라도
앞으로 많은 출토된 유물과 금문의 연구성과에 의하여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으면 한다.
우리는 한글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한자에도 애착을 갖고 앞으로 다가올 국제화시대에
한자가 영어처럼 한ㆍ중ㆍ일 등 동북ㆍ동남아시아인의 의사소통을 나눌
공통언어로서 개발될 수 있었으면 하 는 기대를 가져본다.
좀 더 많은 사실과 연구 성과가 이루어져
『한자(韓字)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니 한자도 널리 씁시다』
하는 사회운동이 국민전체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끝으로 중간 부분이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읽기에 힘들었지만
'금문의 비밀'이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김성기' 교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終)
탁록, 치우, 동이
동이 http://blog.daum.net/ttugi77/14971367
탁록대전 http://blog.daum.net/ttugi77/15711104
禮器 새숭배 http://blog.daum.net/ttugi77/1482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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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컬처라인 편집부>
cultureline@cultureline.co.kr
2002/02/25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 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 이 연구한 4,500년 전 역사 계보도를 통해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과거의 현실은 신화의 환상에 반영되어 있다' 고 했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트로이 전쟁이 끈질긴 노력 끝에 트로이성과 에게 문명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역사 시대로 증명된 것처럼, 중국의 은나라 역시 은허에서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역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렇게 신화에는 오직 신화일수만은 없는 진실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 가능성을 우리 상고사에 적용한 것이 바로 「금문의 비밀」이다.
이 책은 중국 사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금서 아닌 금서가 되어 버린 중국인 사학자 낙빈기의 <금문신고>의 주요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서,
한자나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 문자 즉 금문(그림문자)를 해석하면서
4,500년 전 중국의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하는 동시에 우리 상고사의 기원을 찾고 있다.
우리는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이 연구한 4,500년 전
역사 계보도를 통해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우선 기존 사학계에서 신화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가
신화가 아닌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유적들에 새겨진
그림글자 금문을 해석하면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의 기원도 그 시대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우리 민족(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학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 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맨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느낌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금문'을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한중 역사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읽을수록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그림문자, 사진, 관련 문언들
하나하나의 출전을 밝히면서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는 엮은이 김대성의
우리 상고사 연구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편집을 하는 동안 다른 책과는 달리 그림과 다름없는 금문 때문에 적지 않은 수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각각의 글자들이 말하고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정성을 다했다.
엮은이의 주장에 대한 학계의 인정 여부를 떠나서
책 속에 들어 있는 진귀한 자료들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높게 사고 싶다.
물론 엮은이의 말처럼
그림글자만으로 4500년 전 상고사를 온전히 되살린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계기로 학계와 재야학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고대사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그래서 신화 속에서 당당하게 되살아난 트로이 전쟁과 은나라처럼
우리 고조선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평가절하 되었던 가치를 되찾길 바란다.
출판사 서평
그림문자 금문이 말하는 충격적인 4,500년 전 역사 계보도
이 책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몇 년 전 많은 이의 주목 대상이 되었던 '한단고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광대한 사료와 근거, 그리고 관련 유적들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상고사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고 흥미롭다.
이 책은 중국 사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금서가 되어 버린
중국인 사학자 낙빈기의《금문신고》의 주요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서,
한자나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 문자 즉 금문(그림문자)를 해석하면서,
4,500년 전의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의 노력의 산물이다.
이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기존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나게 된다.
기존 사학계에서 신화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가 신화가 아닌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금문 해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는 점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그림글자 금문을 통해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한《금문신고》
《금문신고(金文新攷)》(산서인민출판사)는 1987년 중국 사학자 낙빈기(1917~1994)가
평생 동안 문자가 시작되는 최초의 문자인 고대 금문을 풀이한 책으로,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 화폐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한 [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푼 [병명집(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한 [인물집(人物集)]으로 나눌 수 있다.
낙빈기는 이 책을 통해 4,500년 전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글자 '금문'을 토대로
중국에서 신화시대로 규정하고 있는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 9대 219년간) 시대가
신화와 전설의 시대가 아니라 역사의 시대임을 논리 정연하게 증명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 문자를 만든 장본인...그리고 금서가 된 《금문신고》
사실 중국 학계에서는 상고금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중국 문자의 시작은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부터이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전설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를 풀어놓은
《 금문신고》에 대한 중국 학계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중국의 사회 특성상 책을 출판하려면 공식적인 허가와 함께 정부 담당 연구원의 검열을 거쳐야 한다.
들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이 책을 검열한 몇몇 학자들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800권이라는 소량의 부수만 인쇄가 가능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회수되고 결국 '금서'로 묶여지고 말았다.
낙빈기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들이 신화 속 인물로 알고 있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은 실제 역사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 역시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을 뒤엎고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최초의 문자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며
이를 통해 이들이 바로 고조선의 주인공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의 뿌리를 뒤흔드는 이러한 주장들은 중국 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금문신고》가 금서로 묶여졌다는 사실은 거꾸로 해석해보면
이 책에 중국 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물 속에 새겨진 그림글자 '금문'
금문은 역사 시대 이후 지금까지 각종 나무류와 동물의 껍질, 뼈다귀, 돌, 금속에
새겨진 글자들을 통틀어 말한다. 금문은 시대별로 상고금문(上古金文, 오제금문),
은주금문(殷周金文), 춘추금문(春秋金文)으로 나눌 수 있다.
'상고금문' 또는 오제금문(五帝金文)은 《금문신고》에서 다루는 금문으로,
삼황오제시대부터 하(夏 : 기원전 2050~1550)나라 중기 때까지의 금문을 말한다.
'은주금문'은 천여 년 뒤인 은(殷 : 기원전 1800~1100)나라 때의 갑골문(甲骨文)과
주(周 : 기원전 1134~250)나라 때 대전(大篆)을 말하고,
'춘추금문'은 춘추시대에 이어 진시황(秦始皇 : 기원전 259~210)이 천하를 통일한 후
여러 부족이 제각각 쓰던 문자를 통일하여 만든 소전(小篆)을 말한다.
이들 금문은 한(漢 : 기원전 206~AD 219)나라 때 와서 예서와 해서로 다시 정리되면서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한문'으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언뜻 어려워 보이는 금문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우리말' 즉 한글에 의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에서 '한자는 우리말'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으며,
금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말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 그 219년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는 열쇠 '금문'
금문으로 풀어본 고조선의 역사는 약 219년간이다.
그 219년간은 신농계와 황제계의 분리의 역사, 즉 동이족과 한족의 분리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치열한 왕위 다툼은
우리가 전설적 제왕으로만 알고 있는 요, 순, 우 시절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기존의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즉 왕위를 선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치는 고조선을 역사의 시대로 재조명한 것 외에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시초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 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 없었던 「문무대왕릉비문」을 풀이,
신라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와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과
왜 하필 '알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있다. 게다가 가장 선대의 인물로 순임금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게 하고 있어 우리 고대사에 풍성한 물꼬를 트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말로는 쉽게 풀리지 않던 금문들이 우리말로 풀면 술술 풀린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내뱉는 자지, 좆, 부랄이 무슨 의미인지, 누에와 누님의 상관관계,
산으로 간 신농을 뜻했던 신선(神仙)이 어쩌다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지,
또 왜 동지 팥죽이 동그란지, 돼지 꿈을 꾸면 돈이 생긴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세 발 달린 삼족오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삼신할머니는 누구인지,
중화 문명의 상징이자 중국인 시조의 토템이라는 용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등
우리 민속의 기원을 비롯 각종 한자의 생성 과정이 그림 같은 고대 글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문무대왕릉비문'속에 숨겨져 있는 고조선의 진실
1987년에 출간된 낙빈기의 《금문신고》는 발굴 유물의 청동기 등에 새겨진 최초의 문자, 즉
고대금문을 해독하여 중국이 신화의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를 역사의 시대로 증명한 책이다. 낙빈기가 해독한 오제금문(고대금문)은 중국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글자이다.
그러다보니 내용상 기존의 중국 중심 세계관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 점에서 《금문신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금문신고》가 이를 의식해 쓰여진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 학계가
신화 전설의 시대로 규정한 삼황오제시대가 엄연한 역사의 시대였다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마천의 『사기』나 기존 금석학자들의 글자 풀이에 이견을 제시,
새로운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문자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만들었다는
중국 내 통설을 뒤집고 신농이 처음 만들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고대사의 주인공, '삼황오제'
'삼황오제'는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제왕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삼황은 천황(天皇) 지황(地皇)·인황(人皇, 혹은 태황)을 말하지만,
책에 따라서는 복희(伏犧) 신농(神農) 황제(黃帝) 또는 수인(燧人)·축융(祝融) 여와(女 )를 꼽기도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삼황을 전설 속의 인물로 여겼는지 오제(五帝)부터 언급하고 있다.
사마천은 오제를 황제 헌원,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용 방훈, 제순 중화를 들고 있으나,
별도로 복희 신농(또는 소호)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삼황오제시대의 연대 또한 기원전 4천년, 5천년, 7천년 등 들쭉날쭉이어서
『금문신고』를 쓴 낙빈기 역시 정확하게 삼황은 누구이며, 오제는 누구다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청동기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 속의 기년(紀年)을 해석해
신농이라는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2517년이라고 고증하고 있다.
디자이너를 유혹하는 그림글자 '금문'
고대금문의 특징은
지배 계급의 성이나 이름, 관직명과 땅 이름, 간단한 역사 행위에 대한 기록들인데,
초기에는 주로 지배 계급의 이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족을 대표하는 동물이나 물건의 모양, 사람의 행위들을 도형화시킨 글자들은 마치 그림글자 같다.
특히 한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변해가는 모양은
그 자체로 역사성과 디자인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타이포의 반란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도 충분한 자료적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민족사서 읽기 캠페인 : ‘coo2 회원’ 필수조건 (운영자 희망사항)
-> "규원사화/한단고기/단기고사/부도지/신단실기/신단민사"
-> http://www.coreestory.com
-> 누구나 쉽게 역사클럽 개설이 가능합니다(추천클럽 다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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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으로 밝혀진 우리고대사 / 만화한단고기 / 귀신이여 이제대로를 활보하라 /
/ 고구려를 길러낸 우리뿌리 9000년 이야기/ 규원사화 영인본 / 한단고기 영인본(정본)/
/ 가야.백제.그리고 일본/ 신화.설화 그리고 역사/ 치우천황/ 단군조선/ 싸움신 / 소설유기 /
/ 한단고기(고동영) / 홍암 나철 / 중국북방이족과 조선상고사 / 중국북방이족과 이맥백제 /
/ 규원사화 (고동영) .... 등등
이 모두 최근 2~3년 사이에
우리역사의 비밀과 함께하는 민족사학(강호사학)에서 출판한 역작 들이며
더욱 더 많은 저서들이 발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모두 인터넷을 이끌어가는 여러분의 정신적 후원의 힘과 성원 덕분입니다
정의롭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비겁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역사찾기를 꾸려 나가겠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부러울게 없고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조옥구) 21세기 신 설문해자 / 저자이야기 (매우중요)
오랜 각고끝에 출간된 조옥구 선생님의 저서 출간을 대환영합니다
기존에
김대성 선생님 저 "금문의 비밀"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운점이 있었으나
금반 본책의 출간으로
금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알기쉽게 충족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생 이상 쉽게 접근가능..)
먼길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저서를 전해주신 조옥구 선생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도) 백암 / 마포구 신수동 219번지 / 02-455-6197
- 출판일 2005. 7. 25
- 도서가격 : 15,000원
(저자소개) 조옥구
- '55년생
- (사) 한배달 사무국장
- (사) 한배달 월간지 편집위원
- (현) (사) 한배달 이사
- 천부동 문자교실 운영
송준희 (2005-07-27 09:57:17, Hit : 2274, Vote : 61)
(한배달) 세계적인 학자 낙빈기 드디어 고조선 인정
아래자료는
기존에 소개한 한배달 자료이나
발행당시 편집위원으로 있던
조옥구 선생님의 "신 설문해자" 저서 중요내용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김대성 "금문의 비밀" -> 조옥구 "신 설문해자"가 그 명맥을 이어갑니다
식민사학의 OO들은 절대 따라올수 없음을 ....
감사합니다
- 출처 : 한배달 잡지
(한배달) 세계적인 학자 낙빈기 드디어 고조선 인정
(완)
(출간대환영) 21세기 신 설문해자
오랜 각고끝에 출간된 조옥구 선생님의 저서 출간을 대환영합니다
기존에
김대성 선생님 저 "금문의 비밀"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운점이 있었으나
금반 본책의 출간으로
금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알기쉽게 충족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먼길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저서를 전해주신 조옥구 선생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도) 백암 / 마포구 신수동 219번지 / 02-455-6197
- 출판일 2005. 7. 25
- 도서가격 : 15,000원
(저자소개) 조옥구
- '55년생
- (사) 한배달 사무국장
- (사) 한배달 월간지 편집위원
- (현) (사) 한배달 이사
- 천부동 문자교실 운영
-> 중요내용은 이번주 내내 연재예정입니다
글 수 7,722
金文의 秘密
김대성 컬처라인 출판사 2002년 2월 8일 출판
출처 : http://cafe.daum.net/falman/3aa9/1
1. 서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우리는 이루어진 사실로 믿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는 흔히 신화하고 하여 꾸며진 옛이야기로 알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보듯이 곰이 어찌 사람이 되어
사람과 결혼하여 사람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허황한 것으로 알았지만
신화에서 표현되는 상징성을 안다면
단군 왕검이 '虎'족과 '熊'족의 처녀를 선택함에 있어서
성급한 성격보다는 인내심이 강한 착한 여자를 왕비로 삼은 사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단군이 지배했던 고조선을 밝혀주는 책이 바로 금문의 비밀(金文의 秘密)이다.
책에 기록된 역사를 역사시대라고 하고 그 이전시대를 선사시대라고 부르지만
기록된 역사책에서는 신화로 알려져 왔으나
그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 (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말인 금문은
본격적인 역사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가 금문이다.
그러니까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문자 그림문자(금문)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토기나 제기 등을 통하여 4,500년 전의 시대 즉, 중국이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규정하는
삼황오제시대를 '금문(金文)'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낙빈기가 중국의 신화와 전설 시대인 삼황오제 시대를 실제의 역사 시대로 풀어냈고
김재섭씨는 다시 삼황오제 시대가 '조선'과 '한'의 시대라고 재조명하여
삼황오제 시대가 고조선의 역사와 맞물려 있음을 말한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의 219년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2. 중국신화에 숨은 잊혀진 고대사
(1) 고대신화와의 진지한 만남
최근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인기에 비하면 우리의 단순신화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화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여러 부분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고의적인 누락이나 위조가 되었다는 사실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지금 중국에서는 전설적인 왕조인 은(殷)왕조의 유적이 19세기말부터 드러남으로서
실존했던 왕조임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신화에는 결코 신화일 수만은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중국학계는 문자의 시작을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보기 때문에 '상고금문'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하여 전설의 시대를 해석하고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용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순한 내용이라서
중국은 이 문제의 책을 '금서'로 취급했으며 출판 유통된 책을 회수하였다한다.
800권이라는 소량이 출판되고 유통된 책을 회수했으니 세상에 유포된 책은 극히 드문 희귀종이다.
그 중 4-5권이 국내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책을 연구한 사람이 소남자 김재섭씨이고
김재섭씨 한테 금문을 배운 사람이 책의 저자인 김대성이다.
낙빈기는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 같은 글자 '금문'을 연구하여
4,500년 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년. 9대 219년간) 시대를
논리 정연하게 역사의 시대로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화와 전설을 역사로 주장하며 기존의 통박을 부정하는 것이다.
'금문의 비밀'은 중국의 금서인 [금문신고-金文新攷]의 내용을 재해석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금문신고는 무엇일까?
금문신고는 중국사학자 낙빈기(1917-1994)가
평생동안 상고금문을 연구하고 풀이한 결과를 1987년 책으로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금문신고는 크게 4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1)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화폐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
(2)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
(3)병명집(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
(4)인물집(人物集)으로 되어있다.
※ [금문신고]에 인용된 금문 관련 서적(금문 탁본을 엮은 책들)은 아래와 같다.
1. 오대징 편(吳大徵 編) -『가齋集古錄, 상.하』
2. 엄일평 편(嚴一萍 編) -『金文總集, 총10권』
3. 왕의영 편(王懿榮 編) -『 古錄, 3권』
4. 설상공 편저(薛尙功 編著) -『歷代鐘鼎 器款識』
5. 문연각 (文淵閣) -『四庫全書』
6. 우성오 편저(于省吾 編著) -『商周金文錄遺』
7. 용경 편저(容庚 編著) -『金文編』
8. 허신 편저(許愼 編著) -『說文解字』
9. 나진옥 편(羅振玉 編) -『三代吉金文存』
(2) 역사적 인물로 되살아난 위대한 신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 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써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어떤 연유에서 그 같은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문자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 부호이다.
도형적 기호를 빌려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문자의 탄생과 함께 역사시대는 시작된다.
금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한 유물에 기록된 나무류(대나무 등),
돌, 각종 뼈다귀, 동물(거북)의 껍질, 금속(쇠-철) 등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를 일컫는 문형으로
본격적인 역사 시대(문자) 이전의 각종 기록(그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문자이전의 문자인 것이다.
낙빈기가 금문 해석을 통해 밝혀낸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금문을 통해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또한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 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으며
황제는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해독하는 대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은나라의 땅이었던 은허(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가
중국문자 창조의 시초라고 단정하고 있는 1940년대 신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학설이라고 뒤집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는 삼황오제의 금문보다
1000년이상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三. 삼황오제시대의 인물들
1. 동이족의 시조 신농(神農)
중국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고 부르는 신농은
삼황오제시대를 연 역사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최초의 역사적 인물이 된 것이다.
신농은 웅족(熊族)출신의 소전(少典)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치우씨(蚩尤氏) 집안의 여자 강씨(姜氏)였다.
신농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강이라 했다.
신농씨는 성년이 되어 곰족의 유웅씨(有熊氏) 집안의 딸
임사씨(姙巳氏)에게 장가들어 서방님(西方任)이 된다.
서쪽에서 장가 온 남편이니 서방님이라 부른 것인데
그 당시는 사람 인(人)을 사람 임(任) 또는 사람 님(壬)으로 읽었다.
그러나 신농이 임금이 된 지 43년째 되던 해(기원전 2473년)에
사위 황제와 전쟁을 벌이다가 패해 임금자리를 내놓게 되는데
이에 신농의 어머니계의 치우가 지금의 탁록( 鹿)에서 황제와 수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인지 '황제'는 임금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아들인 '소호 김천'이 '신농'의 뒤를 이어 제위를 잇고 있다.
제위를 빼앗긴 '신농'은 대파산으로 들어가 산사람(山人)이 되었는데
신선(神仙)이란 말은 신농이 산사람이 되었다는 말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신농씨 이야기로 풀이하면 그럴듯한 말로 들린다.
'ㅣ'자
'ㅣ'자는 기원전 2517년 신농이 지금 중국 산동성 곡부 태산(泰山)아래에서 나라를 열고
임금을 할 당시 시장터에서 유통되었던 청동으로 만든 돈(화폐)에 새겨져 있다.
소남자는 'ㅣ'을 하나님 신(神)으로 풀이하여 신패(神貝)로 불러야 한다고 했고
님(壬)이라 읽고 임금님(壬金任)으로도 새김질 했다.
'ㅣ'의 다양한 해석을 살펴본다.
(1) 'ㅣ'자를 가마 신으로 읽는 것은
우두머리 가운데 가마가 되는 사람 곧 왕 중의 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ㅣ'의 머리 쪽을 정수리, 우두머리 신( )으로 읽는다는 점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가마를 보면
할머니가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은 하늘의 숨구멍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ㅣ'를 아래로 그어 물러갈 퇴 '退' 라는 풀이이다.
이것은 '하야했다'는 뜻으로 보아야한다.
(3) 'ㅣ'을 곤이라 읽는 것인데 이는 옛날부터 근본이란 뜻이고 보면
곤은 당연히 '꽂는다'는 뜻이다
'ㅣ'의 위쪽을 하늘 위라 했을 때 천신(天神)이 되고
밑둥치쪽을 땅 아래라고 했을 때 곤(坤)은 지신(地神)이 된다.
곤이란 소리값은 '꽂는다'의 '꼰'에서 온 것이라면 'ㅣ'을 양(陽)을 상징하는 양물(陽物)이 꽂혀야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이치에 합당한 말이 될 것이다.
(4) '기둥 주'라고 보는 것은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고 살 곳을 정해야 산다는 의미이다.
'기둥 주'라고 읽을 때 '기둥을 꽂는다', '세운다' 는 '솟터'가 그 근본 내용이다.
(5) 금문에서 십(十)은 'ㅣ' 의 허리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알을 밴 형상을 하고 있는데
십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 우리말의 씹은 씨(種ㆍ卵)의 입이라는 뜻으로
입이 열려 삼라만상이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6) 셈대를 세우는 모양이라는 뜻의 숫자로 당연히 하나이다.
이 글자를 통하여 우리말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한'이라는 말의 뿌리는 '하라' 또는 '하나'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나'의 '하'는 태양, '나'는 땅의 터라는 뜻으로 '하나'나 '하라'는
'태양의 터, 땅, 태양의 나라' 라는 우리의 故語고어였다.
(7) 밝음ㆍ하늘ㆍ해ㆍ임금ㆍ아버지ㆍ수컷이라는 뜻의 양(陽)으로
또 신농의 족휘(族徽)인 양(羊)으로도 읽는다.
(8) 사람 인(人) 또는 하나님 신(神)으로 읽는다.
'ㅣ'은 하나밖에 님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님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나 말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신의 최초의 글자가 'ㅣ'이다.
(9) 남자의 양물을 뜻하는 좆인데 'ㅣ'자에서 자지 또는 좆의 'ㅈ'을 뿌리로 하는 음이 나온다.
'ㅣ'자는 바로 자지이며 성인 남자의 좆이다. 고조선의 문자인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긴 '조(且)'자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지 조(自持且)'의 '조(祖)'가 그 소릿값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의 씨, 불의 알, 남자의 양물이 바로 조상이라는 금문적인 해석을 모르고는
절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도조(陶祖)'이다.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부랄ㆍ불알도 사실은 불의 알, 불의 씨
즉 염제 신농의 씨알, 신농의 후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글자이다
'불(炎)'은 남주작(南朱雀)이라고 하는데 주작의 의미는 '붉은 새'이다.
'새'는 '해'로 새김을 했기 때문에 '붉은 새'는 '붉은 해'를 의미한다.
우리를 동이족이라 하고 동이족 중에서도 새족(鳥族)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지날 쑤어 먹는 동그란 '새알' 그리고 설날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을
둥글게 썰어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 뽕할메가 된 뉘조
뉘조는 신농의 딸이자 중국인의 시조 황제 헌원의 부인이다.
태산이 있는 산동성 곡부는 신농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곳으로
이곳에서 신농의 딸 뉘조가 누에를 치고 양잠을 가르친 곳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6천 내지 7천년 전의 것으로 판명된
산동성 대문구(大汶口)에서 출토돤 물레가락(紡 錘)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해마다 봄이면 임금이 제주가 되어 동대문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신인 선농을 위해 선농제(先農祭)를 지냈고,
성북동 선잠단(先蠶壇)에서는 누에신인 뉘조를 위해 선잠제를 지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이 땅에서 누에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왔지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의 정비 서릉(西陵)이라 해야 안다.
신농의 딸아리면 더 더욱 모른다.
우리 민속에서는 뽕할머니, 영동할메 (바람할메), 삼신할머니 등으로 불리는
친근한 할머니가 남의 할머니가 돼버 린 것이다.
신농을 의미하는 하느님
신, 기둥 주('ㅣ')자가 옆으로 누운 'ㅡ'가 뉘조를 뜻하는 글자이다.
누님이라는 뜻은 누워서 씨를 받는 님, 누워서 씨를 만드는 님이 누운님, 누님님 것이다.
따라서 잠을 자려면 누워야 한다.
누에가 뽕잎 을 먹거나 움직일 때는 한 일(ㅡ)자 모양이다.
붓글씨를 배운 사람이면 알겠지만
처음 한 일자를 쓸 때 잠두마제(蠶頭馬蹄)의 형태로 써야한다는 운필법을 배우게 된다.
일(一)자를 쓰기 위해 가로로 획을 긋는데
왼쪽 끝은 누에 머리 모양으로 오른쪽 끝은 말발굽 모양으로 써야 제대로 된 '一'자라는 것이다.
누에는 또 몇 날 며칠이고 잠을 자니 잠자는 벌레라는 의미에서 잠(蠶)이라는 글자도 만들어졌다.
머리와 가슴을 세우고 잠을 자는 모양에서 을(乙)자가 생기고
넉 잠을 자고나면 고치 속으로 들어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새를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새을자가 된 누에는 다시 몸 기(己)자로,
또 활 궁(弓), 뱀 사 (巳), 누에 곡( )으로 변해진다.
지금 농사라는 농(農)자도
누에를 치는데 쓰는 기구인 잠박 곡(曲)과 누에 신(辰)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로
잠박은 처음에는 누에가 구부러진 모양의 입 벌린 감( )의 모양이었다가
지금 쓰고 있는 곡(曲)으로 변했다.
결과적으로는 신농이란 이름이
신농 자신과 그의 딸 뉘조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글자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누에를 의미하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본디 글자는 신(辰)이다.
동이 계열에서 쓰던 누에 신, 진자는 황제계열에 가면
용(龍), 융(戎), 용(庠) 등으로 변한다.
이는 신농을 신융(神戎), 신용(神龍)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뉘조를 삼신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삼신(三辰)이 해와 달 그리고 별(북두칠성)을 뜻하기도 한다.
누에할머니 뉘조의 부호문자인 'ㅡ'자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삼신각(三神閣)에 있는 삼신할머니로 봐야할 것이다.
하늘에서 가장 중심의 하늘을 '자미원'이라고 하는데
그 '자미'라는 글자의 어원이 '잠'이다. 잠이라는 것은
누에가 사는 울타리, 뉘조할머니가 살고있는 궁전이라는 뜻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누에가 될 알을 낳고 죽는 나방(蛾)이라는 글자는 뱌로 뉘조의 딸 상아 또는 항아가 된다.
이처럼 'ㅡ'자 누에는 변화를 일으켜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별(辰)이 되었다가
용(龍)이 되는 등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게된다.
그래서 누에 잠(蠶)을 하늘벌레 '천충( )'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황제계가 누에 잠을 용으로 부르면서 족칭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제일 먼저 누에의 머리에 모계인 신농계를 보호한다는 뜻으로 양의 뿔을 달았다.
후세의 족표에는 뿔이 잇는 용의 모양에 다리가 붙여지고 무섭게 생긴 발가락까지 그려진다.
누에가 변하여 번데기 용(庠)이 되고 상상의 동물인 용(龍)이 되어
황제계열의 대표적인 표 시, 휘장의 그림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또 바람(風), 붕(鵬), 봉(鳳)으로 변해간다.
3. 해의 신, 희화 주(羲和 柱)
신농의 아들 희화 주(羲和 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신농의 아들이며, 그의 누님인 뉘조와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상아와 결혼해
장차 3대 임금이 될 전욱 고양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낙빈기가 신농의 아들을 '희화 주'라고 풀이한 데 대해
소남자는 기둥 주(柱)를 주인 주(主)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주인 주로 읽어야 신농의 신(神)과 그 아들 주(主)가 합쳐
우리가 제사를 모시는 신주(神主)가 된 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신주는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뜻하는 가장 친근한 단어가 된다.
소남자는 또한 이 신주를 삼신(三神)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낙빈기에 따르면 문자는 신농 염제 계통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신농 때 처음 만들어 쓴 문자는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를 시조로 삼은 한족(漢族)에 의해
황제 헌원이 문자를 만든 것으로 그 공적이 넘어가 버린다.
이른바 황제의 명을 받아 창힐이 최초의 문자를 만들엇다고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희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술잔을 양쪽에서 받들고 이쓴 모양의 술잔 주(舟)가 있다.
또 다른 희화의 이름은 날 일(日)이다. 그의 이름은 조선 조(朝)의 왼쪽 글자를 이룬다.
그것은 신농의 다른 이름 염(炎)과 같은 뜻으로 태양족임을 나타내는 신농계의 족표다.
신 다음의 글자가 바로 인이다.
희화 주를 뜻하는 인(人)자가 황제가 사는지역으로 가면 이(夷)가 되고,
후대에는 동이의 이(夷)가 되고, 다시 주나라 공자 때 와서는 오랑캐 이(夷)로 그 뜻이 변하고 만다.
따라서 이(夷)가 황제 계열에 의하여 자기 조상을 욕하는 글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4. 중국인의 시조 황제
'낙빈기'는 염제의 덕이 쇠해져 여러 제후들이 서로 침범하였으나
능히 그것 을 제거할 수 없어 황제가 대신했다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사마천'은 사기에서 어째서 염제를 역사 인식 체계에서 제외했는가 하고 묻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 명문을 통해,
'염제 신농'이 최초로 문자를 만든 인물이자 겨레의 시조이며 역사의 단초여야 옳다고 논증하고 있다.
'공자' 또한 전승되어오던 문헌을 모조리 없애고
요순시대의 말만으로 정교훈령을 꾸민 서경(書經)식 수법과 같은 것으로서
하족(夏族)을 하토(夏土)의 역사의 주인으로 설정해 여기에다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제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황제를 뜻하는 글자는 상고금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단고기의 삼성기전(三聖記全) 하편에는
치우 천왕께서 염제 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天兵)을 처음 서쪽으로 일으켰다.
(중략)
'황제 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의 벌판으로 나가서 황제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 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고 하였다.
또한 사기에는 황제가 소전의 아들(子)로 나와있지만
낙빈기는 사마천이 자(子)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사위아들 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역사의 단추를 잘못끼웠다고 지적하며,
소전의 아들은 신농이고 황제는 아들이되 사위아들이라고 했다.
5. 왕위에 오른 아들, 소호 김천(少 金天)
'소호 김천'은 뉘조와 황제에서 태어나 2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또한 신농의 둘째 부인 이 낳은 딸 소진에게 장가를 들었으니 또 작은 사위이다.
소호 김천은 임금이 되자 새로써 관직의 이름을 정했다.
그래서 새족인 조족 (鳥族)의 시조가 된다.
우리민족을 동이 새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좌구명이 쓴 좌씨춘추(左氏春秋)를 보면 알 수 있다.
신라 계림왕(鷄林王)이 계관(鷄冠)을 쓴 것은
소호 김천의 후손이란 설과 일치하며 그들의 왕을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한 것 또한
진(秦)나라가 서천에서 일어나 백제 금방신임 소호를 서치(西 )에 모셨던 것과도 일치한다.
김씨는 곧 양족인 신농의 직계 후손이자 황제 헌원의 외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와서야 중국은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며
신농 염제를 황제 헌원보다 앞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6. 달의 신 상아
항아로도 불리는 상아는 황제와 뉘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소호 김천의 여동생이다.
상아는 달의 신(月神)으로 모계제 사회의 주인이었다.
고조선의 조(朝) 오른쪽 변에 있는 월이 왼쪽의 날 일보다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은
이때 월시(月氏)가 주인이었음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월신(月神) 상아는 일신(日神) 희화 주의 짝이다.
그래서 일신과 월신이 대 (對)가 되고 음양이란 말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음이 말머리에 붙은 것은 당시 사회제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朝)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왼쪽의 남자의 해(日)와 오른쪽의 여자의 달(月)이 합쳐져
사당에 남자인 할아버지와 여자인 할머니를 함께 모신 글자라는 풀이가 가능해 진다.
四. 고조선을 밝히는 징검다리 「문무대왕비문」
1796년(정조 20년) 경북 경주에서 밭 갈던 농부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문무대왕비’였다.
발견 당시 이미 마모가 심해 상당 부분 알아볼 수 없었으나
추사 김정희의 탁본으로 드러난 비문의 내용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화관지후’(火官之后), 진백(秦伯), 투후( 侯) 등 문무왕 김법민의 먼 조상6명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들은 누구일까?
“화관지후는 신농씨의 직계 후손인 순임금의 관직명이다.”
재야 금문학자 김대성(60)씨가 쓴 ‘금문의 비밀’(컬처라인 발행, 1만 8,000 원)은
“신라 김해 김씨의 조상이 순이며 멸망한 진(秦)나라 지배층의 후예가 신라로 건너왔다”
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오늘날 중국의 요서와 요동, 한반도의 서북과 남쪽 김해 및 제주도,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왕망때 만든 화폐 오수전(五銖錢)이 출토되는 것은
왕망과 정치일선에 같이 참여했던 세력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대륙 밖으로 이동한 흔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따라서 문무왕 비문과 왕망의 시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건대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바로 성한왕, 즉 일제의 5대손인 성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일제의 자손 중 또다른 김씨들이 가락으로 대거 이동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핵심으로 꼽히는 사람이 김일제와 같이 포로로 잡혀온 동생 윤(倫)이다.
윤은 일찍 죽고 그의 아들 안상(安上)이 투후 벼슬과 동격인 도성후(都城侯)가 됨으로써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그리고 윤의 4대 손이자 안상의 3대손 탕(湯) 역시 왕망의 실패 이후
이 땅으로 망명해 오는데, 바로 그가 김수로라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투후 일제의 5대 자손이 신라 김씨계이고
윤의 5대 자손이 가락김씨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진위 여부를 떠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대 중국의
청동 제기, 무기, 농기구, 화폐 등에 새긴 글자(금문 金文)의 해석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금문의 내용은 후대의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씨는 갑골문과 함께 한자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금문 가운데서도
기원전 2,500년 경, 하나라와 그 이전 삼황오제 시대의 것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글자 낱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의 결과는 한중 고대사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금문 기록을 종합해 보면 삼황오제 시대 고대 중국은
신농씨와 순임금, 치우를 비롯한 동이족과 황제 등 화하족(華夏族)의 결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五. 결론
지금까지 금문을 살펴 본 내용으로 보면
신화로만 알아왔던 삼황오제의 시대가 동이족의 고대사를 반영한 사실이란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는
미국식이나 영국식의 발음을 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영어를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중국식 발음을 고집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읽었다는 점에서 강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중국은 항상 우리를 자신의 속국처럼 생각해 왔으며
모화사상에 빠져있는 우리 선비들이 언제나 중국의 영향권 내에서 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그들처럼 발음하려고 노력을 할 수도 있었건만
역관(譯官)만이 그렇게 했을 뿐 우리는 우리의 말로 표현해 왔다는 점이다.
한자는 이 책 내용과 같이 동이족이 만들었으며 한자의 상고문(上古文)을 보면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음과 같은 사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된다.
그리고 산동지방의 곡부에서도 고조선이 도읍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우리와 한자를 읽는 방법이 같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어쩌면 한자를 읽는 우리말이 원음이고 중국식 발음이 오히려 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한자(漢字)는 엄밀히 말하면 한자(韓字)로 원래가 우리의 글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한자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란 사실이 지금은 어리둥절할 지 몰라도
앞으로 많은 출토된 유물과 금문의 연구성과에 의하여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으면 한다.
우리는 한글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한자에도 애착을 갖고 앞으로 다가올 국제화시대에
한자가 영어처럼 한ㆍ중ㆍ일 등 동북ㆍ동남아시아인의 의사소통을 나눌
공통언어로서 개발될 수 있었으면 하 는 기대를 가져본다.
좀 더 많은 사실과 연구 성과가 이루어져
『한자(韓字)는 우리 글이고 우리말이니 한자도 널리 씁시다』
하는 사회운동이 국민전체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끝으로 중간 부분이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읽기에 힘들었지만
'금문의 비밀'이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김성기' 교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終)
탁록, 치우, 동이
동이 http://blog.daum.net/ttugi77/14971367
탁록대전 http://blog.daum.net/ttugi77/15711104
禮器 새숭배 http://blog.daum.net/ttugi77/1482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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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컬처라인 편집부>
cultureline@cultureline.co.kr
2002/02/25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 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 이 연구한 4,500년 전 역사 계보도를 통해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과거의 현실은 신화의 환상에 반영되어 있다' 고 했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트로이 전쟁이 끈질긴 노력 끝에 트로이성과 에게 문명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역사 시대로 증명된 것처럼, 중국의 은나라 역시 은허에서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역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렇게 신화에는 오직 신화일수만은 없는 진실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 가능성을 우리 상고사에 적용한 것이 바로 「금문의 비밀」이다.
이 책은 중국 사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금서 아닌 금서가 되어 버린 중국인 사학자 낙빈기의 <금문신고>의 주요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서,
한자나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 문자 즉 금문(그림문자)를 해석하면서
4,500년 전 중국의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하는 동시에 우리 상고사의 기원을 찾고 있다.
우리는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이 연구한 4,500년 전
역사 계보도를 통해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우선 기존 사학계에서 신화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가
신화가 아닌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유적들에 새겨진
그림글자 금문을 해석하면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의 기원도 그 시대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우리 민족(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학계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 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 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맨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느낌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금문'을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한중 역사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읽을수록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그림문자, 사진, 관련 문언들
하나하나의 출전을 밝히면서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는 엮은이 김대성의
우리 상고사 연구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편집을 하는 동안 다른 책과는 달리 그림과 다름없는 금문 때문에 적지 않은 수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각각의 글자들이 말하고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정성을 다했다.
엮은이의 주장에 대한 학계의 인정 여부를 떠나서
책 속에 들어 있는 진귀한 자료들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높게 사고 싶다.
물론 엮은이의 말처럼
그림글자만으로 4500년 전 상고사를 온전히 되살린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계기로 학계와 재야학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고대사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그래서 신화 속에서 당당하게 되살아난 트로이 전쟁과 은나라처럼
우리 고조선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평가절하 되었던 가치를 되찾길 바란다.
출판사 서평
그림문자 금문이 말하는 충격적인 4,500년 전 역사 계보도
이 책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몇 년 전 많은 이의 주목 대상이 되었던 '한단고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광대한 사료와 근거, 그리고 관련 유적들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상고사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고 흥미롭다.
이 책은 중국 사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금서가 되어 버린
중국인 사학자 낙빈기의《금문신고》의 주요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서,
한자나 상형문자의 전(前) 단계 문자 즉 금문(그림문자)를 해석하면서,
4,500년 전의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평생을 금문 연구에 바친 중국 사학자 낙빈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밝히려 했던 소남자 김재섭 선생,
그리고 10여 년간 2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직접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엮은 김대성의 노력의 산물이다.
이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4,500년 전의 역사 계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기존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사실들을 만나게 된다.
기존 사학계에서 신화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가 신화가 아닌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금문 해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는 점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
특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실제 역사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의 기원도 이 시점에서 찾고 있다. 충격의 정점은 뭐니뭐니해도 문자의 시작이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만들었다는 대목인데,
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존 역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삼황오제시대가 다름아닌 고조선 219년의 역사시대와 동일하다는 추론은
우리 상고사를 다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동이족)이 한족과 함께 삼황오제시대의 주인공이며
문자 역시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금문이 밝히는 메시지이다.
그림글자 금문을 통해 삼황오제시대를 추적한《금문신고》
《금문신고(金文新攷)》(산서인민출판사)는 1987년 중국 사학자 낙빈기(1917~1994)가
평생 동안 문자가 시작되는 최초의 문자인 고대 금문을 풀이한 책으로,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각종 전적을 정리한 [전적집(典籍集)],
출토된 각종 화폐에 새겨진 글자를 풀이한 [화폐집(貨幣集)],
병장기에 새겨진 글자를 푼 [병명집(兵銘集)],
오제시대 인물을 집중 연구한 [인물집(人物集)]으로 나눌 수 있다.
낙빈기는 이 책을 통해 4,500년 전 고대인들이 각종 청동기에 새긴 그림글자 '금문'을 토대로
중국에서 신화시대로 규정하고 있는 삼황오제(三皇五帝 : 기원전 2517~2298, 9대 219년간) 시대가
신화와 전설의 시대가 아니라 역사의 시대임을 논리 정연하게 증명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 문자를 만든 장본인...그리고 금서가 된 《금문신고》
사실 중국 학계에서는 상고금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중국 문자의 시작은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부터이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전설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를 풀어놓은
《 금문신고》에 대한 중국 학계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중국의 사회 특성상 책을 출판하려면 공식적인 허가와 함께 정부 담당 연구원의 검열을 거쳐야 한다.
들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이 책을 검열한 몇몇 학자들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800권이라는 소량의 부수만 인쇄가 가능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회수되고 결국 '금서'로 묶여지고 말았다.
낙빈기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들이 신화 속 인물로 알고 있는 신농과 황제,
요임금과 순임금은 실제 역사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며,
문자 역시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을 뒤엎고
동이족의 시조이자 삼황오제시대의 첫 장을 연 신농이 최초의 문자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며
이를 통해 이들이 바로 고조선의 주인공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의 뿌리를 뒤흔드는 이러한 주장들은 중국 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금문신고》가 금서로 묶여졌다는 사실은 거꾸로 해석해보면
이 책에 중국 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물 속에 새겨진 그림글자 '금문'
금문은 역사 시대 이후 지금까지 각종 나무류와 동물의 껍질, 뼈다귀, 돌, 금속에
새겨진 글자들을 통틀어 말한다. 금문은 시대별로 상고금문(上古金文, 오제금문),
은주금문(殷周金文), 춘추금문(春秋金文)으로 나눌 수 있다.
'상고금문' 또는 오제금문(五帝金文)은 《금문신고》에서 다루는 금문으로,
삼황오제시대부터 하(夏 : 기원전 2050~1550)나라 중기 때까지의 금문을 말한다.
'은주금문'은 천여 년 뒤인 은(殷 : 기원전 1800~1100)나라 때의 갑골문(甲骨文)과
주(周 : 기원전 1134~250)나라 때 대전(大篆)을 말하고,
'춘추금문'은 춘추시대에 이어 진시황(秦始皇 : 기원전 259~210)이 천하를 통일한 후
여러 부족이 제각각 쓰던 문자를 통일하여 만든 소전(小篆)을 말한다.
이들 금문은 한(漢 : 기원전 206~AD 219)나라 때 와서 예서와 해서로 다시 정리되면서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한문'으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언뜻 어려워 보이는 금문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우리말' 즉 한글에 의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에서 '한자는 우리말'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으며,
금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말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 그 219년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는 열쇠 '금문'
금문으로 풀어본 고조선의 역사는 약 219년간이다.
그 219년간은 신농계와 황제계의 분리의 역사, 즉 동이족과 한족의 분리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치열한 왕위 다툼은
우리가 전설적 제왕으로만 알고 있는 요, 순, 우 시절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기존의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즉 왕위를 선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치는 고조선을 역사의 시대로 재조명한 것 외에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시초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 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 없었던 「문무대왕릉비문」을 풀이,
신라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와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과
왜 하필 '알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있다. 게다가 가장 선대의 인물로 순임금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게 하고 있어 우리 고대사에 풍성한 물꼬를 트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말로는 쉽게 풀리지 않던 금문들이 우리말로 풀면 술술 풀린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내뱉는 자지, 좆, 부랄이 무슨 의미인지, 누에와 누님의 상관관계,
산으로 간 신농을 뜻했던 신선(神仙)이 어쩌다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지,
또 왜 동지 팥죽이 동그란지, 돼지 꿈을 꾸면 돈이 생긴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세 발 달린 삼족오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삼신할머니는 누구인지,
중화 문명의 상징이자 중국인 시조의 토템이라는 용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등
우리 민속의 기원을 비롯 각종 한자의 생성 과정이 그림 같은 고대 글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문무대왕릉비문'속에 숨겨져 있는 고조선의 진실
1987년에 출간된 낙빈기의 《금문신고》는 발굴 유물의 청동기 등에 새겨진 최초의 문자, 즉
고대금문을 해독하여 중국이 신화의 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를 역사의 시대로 증명한 책이다. 낙빈기가 해독한 오제금문(고대금문)은 중국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글자이다.
그러다보니 내용상 기존의 중국 중심 세계관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 점에서 《금문신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금문신고》가 이를 의식해 쓰여진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 학계가
신화 전설의 시대로 규정한 삼황오제시대가 엄연한 역사의 시대였다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마천의 『사기』나 기존 금석학자들의 글자 풀이에 이견을 제시,
새로운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역사 시대의 첫 장을 연 인물이 중국인들이 시조로 받들고 있는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동이족의 수장이라 부르는 '신농'이라는 점,
또 황제와 신농의 관계에 대한 중국 내의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아들 '자'가 당시에는 '사위아들'의 뜻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며,
신농과 황제는 장인과 사위 사이임을 밝히고 있다.
또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추어 부르는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의 오랑캐 '이(夷)'자가 한족들이 중간 시조로 받들고 있는 하나라를 세운 시조,
즉 우(禹)임금의 이름이었음을 밝히고, 문자는 황제의 명을 받고 창힐이 만들었다는
중국 내 통설을 뒤집고 신농이 처음 만들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삼황오제시대의 제왕들이 동이족의 직계이거나 외가가 되고 있으며,
고조선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낙빈기가 밝혀낸 삼황오제시대의 주역들이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어
「문무대왕릉비문」이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고대사의 주인공, '삼황오제'
'삼황오제'는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제왕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삼황은 천황(天皇) 지황(地皇)·인황(人皇, 혹은 태황)을 말하지만,
책에 따라서는 복희(伏犧) 신농(神農) 황제(黃帝) 또는 수인(燧人)·축융(祝融) 여와(女 )를 꼽기도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삼황을 전설 속의 인물로 여겼는지 오제(五帝)부터 언급하고 있다.
사마천은 오제를 황제 헌원,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용 방훈, 제순 중화를 들고 있으나,
별도로 복희 신농(또는 소호)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삼황오제시대의 연대 또한 기원전 4천년, 5천년, 7천년 등 들쭉날쭉이어서
『금문신고』를 쓴 낙빈기 역시 정확하게 삼황은 누구이며, 오제는 누구다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청동기에 새겨진 원시 상형문자 속의 기년(紀年)을 해석해
신농이라는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2517년이라고 고증하고 있다.
디자이너를 유혹하는 그림글자 '금문'
고대금문의 특징은
지배 계급의 성이나 이름, 관직명과 땅 이름, 간단한 역사 행위에 대한 기록들인데,
초기에는 주로 지배 계급의 이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족을 대표하는 동물이나 물건의 모양, 사람의 행위들을 도형화시킨 글자들은 마치 그림글자 같다.
특히 한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변해가는 모양은
그 자체로 역사성과 디자인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타이포의 반란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도 충분한 자료적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민족사서 읽기 캠페인 : ‘coo2 회원’ 필수조건 (운영자 희망사항)
-> "규원사화/한단고기/단기고사/부도지/신단실기/신단민사"
-> http://www.coreestory.com
-> 누구나 쉽게 역사클럽 개설이 가능합니다(추천클럽 다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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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으로 밝혀진 우리고대사 / 만화한단고기 / 귀신이여 이제대로를 활보하라 /
/ 고구려를 길러낸 우리뿌리 9000년 이야기/ 규원사화 영인본 / 한단고기 영인본(정본)/
/ 가야.백제.그리고 일본/ 신화.설화 그리고 역사/ 치우천황/ 단군조선/ 싸움신 / 소설유기 /
/ 한단고기(고동영) / 홍암 나철 / 중국북방이족과 조선상고사 / 중국북방이족과 이맥백제 /
/ 규원사화 (고동영) .... 등등
이 모두 최근 2~3년 사이에
우리역사의 비밀과 함께하는 민족사학(강호사학)에서 출판한 역작 들이며
더욱 더 많은 저서들이 발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모두 인터넷을 이끌어가는 여러분의 정신적 후원의 힘과 성원 덕분입니다
정의롭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비겁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역사찾기를 꾸려 나가겠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부러울게 없고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조옥구) 21세기 신 설문해자 / 저자이야기 (매우중요)
오랜 각고끝에 출간된 조옥구 선생님의 저서 출간을 대환영합니다
기존에
김대성 선생님 저 "금문의 비밀"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운점이 있었으나
금반 본책의 출간으로
금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알기쉽게 충족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생 이상 쉽게 접근가능..)
먼길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저서를 전해주신 조옥구 선생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도) 백암 / 마포구 신수동 219번지 / 02-455-6197
- 출판일 2005. 7. 25
- 도서가격 : 15,000원
(저자소개) 조옥구
- '55년생
- (사) 한배달 사무국장
- (사) 한배달 월간지 편집위원
- (현) (사) 한배달 이사
- 천부동 문자교실 운영
송준희 (2005-07-27 09:57:17, Hit : 2274, Vote : 61)
(한배달) 세계적인 학자 낙빈기 드디어 고조선 인정
아래자료는
기존에 소개한 한배달 자료이나
발행당시 편집위원으로 있던
조옥구 선생님의 "신 설문해자" 저서 중요내용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김대성 "금문의 비밀" -> 조옥구 "신 설문해자"가 그 명맥을 이어갑니다
식민사학의 OO들은 절대 따라올수 없음을 ....
감사합니다
- 출처 : 한배달 잡지
(한배달) 세계적인 학자 낙빈기 드디어 고조선 인정
(완)
(출간대환영) 21세기 신 설문해자
오랜 각고끝에 출간된 조옥구 선생님의 저서 출간을 대환영합니다
기존에
김대성 선생님 저 "금문의 비밀"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운점이 있었으나
금반 본책의 출간으로
금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알기쉽게 충족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먼길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저서를 전해주신 조옥구 선생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도) 백암 / 마포구 신수동 219번지 / 02-455-6197
- 출판일 2005. 7. 25
- 도서가격 : 15,000원
(저자소개) 조옥구
- '55년생
- (사) 한배달 사무국장
- (사) 한배달 월간지 편집위원
- (현) (사) 한배달 이사
- 천부동 문자교실 운영
-> 중요내용은 이번주 내내 연재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