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
(역사망상소설) 동이역사 말살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을 버리자 !
(#)『정사 삼국지』를 보면 역사망상소설『삼국연의』에 나오는 명장면들이 대부분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유명서점에 출시된 역사망상소설 삼국지 종류가 1300여종이 넘는다.
정사 삼국지가 2007년도에 출시 되었다.
이시대 모든 삼국지 배출 작가들이여 정사를 읽어보라...
그리고 나의 작품이 서토의 동이역사 말살 정책인 '동북공정'에 얼마나 조력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세상에 서토 중심의 역사를 교육하기위해 조작한 허무맹랑한 서토소설을 숭상하다못해
추앙을 하여 전국민을 소중화 사상에 빠지게 만드니 이무슨 해괴한 일이라는 말인가 ?
대학에서 직장에서 공무원 집단까지
동이역사 말살, 망상소설 삼국지를 몇회독 하지 않는자는 자격이 없다는 등
일만년 천손민족의 자존심은 어디로 가고 소중화 사상에 빠져 동북공정에 조력하는 역적이 되겠다는 말인가 ?
차라리 아래에 소개하는 정사 삼국지를 읽고
북방민족의 단군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웅대한 기상을 찾아보라....
역사망상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전국민을 서토의 망상소설에 취하게 하지마라....
저 중원대륙을 휘저은 치우천자의 역사는 왜 다루지 못하는가 ?
고려조 대명필가 행촌이암 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를 읽어 보시라
일만년 천손민족의 피가 끓지 않는가 ?
......
(역사망상소설) 동이역사 말살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을 버리자 !
(# 1) 정사 삼국지 완역 / 김원중 역 / 민음사 (전 4권) 2007년 드디어 출간
(# 2)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는 서화, 항성(西華, 項城) 동쪽의 東夷(동이) 역사 말살정책 소설이다.
(# 3) 어떤 진실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삼국지에 열광을 할까? (이문규)
(# 1) 정사 삼국지 완역 / 김원중 역 / 민음사 (전 4권) 2007년 드디어 출간
정사를 통해 본 소설 『삼국지연의』의 실체
나관중(羅貫中)의 소설『삼국연의(三國演義)』의 모본이
진수가 지은 『정사 삼국지(正史 三國志)』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관중 자신도 『삼국연의』의 앞머리에 “진나라 평양후 진수가 남긴 역사 기록을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청나라 중기의 역사가 장학성(章學成)이
“칠실삼허(七實三虛, 열 중 일곱은 사실이고 셋은 허구다.)”라고 하였듯이
『정사 삼국지』가 없었다면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사가 번역되어 나오지 못한 탓에
식견 있는 독자들마저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가 정사인 것으로 오판하는 등
『정사 삼국지』는 소설의 빛에 가려져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삼국연의』의 허구와 과장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왜곡된 역사를 진실인양 받아들여 왔다는 점이다.
소설 속 왜곡된 역사들의 바탕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자리 잡고 있다.
나관중은 원말 명초 시기를 살았기에 한족이 몽골족에 지배를 당하는 현실을 비통해하였고,
한족의 정통성을 기치로 내걸고자 천 년 전에 사라진 한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는 곧 한(漢) 황실을 계승한 유비의 촉나라가 정통성을 가졌다는 촉한정통론으로 이어졌다.
이후 소설 속 촉한정통론은
한족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정치적 결속력을 다져야 할 때마다 강화되었고,
청나라 모종강의 재편집을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
건안 문단(建安文壇)을 선도한 시인이자 문학과 사상의 진흥에 앞장선 문치(文治)의 제왕으로
정사에 기록된 조조(曹操)가 소설에서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물도 탈바꿈하고,
유능한 정치가이기는 했지만 군사는 잘 쓰지 못했던 제갈량이
신출귀몰한 군사 전략가로 변신한 데에는 이러한 정치적, 사상적 배경이 있다.
이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삼국연의』의 허구성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정사 삼국지』를 보면 『삼국연의』에 나오는 명장면들이 대부분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 하는 장면,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는 장면,
왕윤이 초선을 이용하는 연환계, 유비가 삼고초려하여 제갈량을 영입하는 과정,
제갈량이 동풍을 불러들이는 장면 등인데,
대부분 촉한정통의 기준에 따라 촉나라의 인물들을 미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반면에 「위서」「동탁전」에서 뛰어난 장군이자 개혁가의 면모를 보인 동탁은
단지 변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설에서 희대의 패륜아로 매도되기도 한다.
(중략)
(#) 김원중 님의 정사 삼국지 출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또다른 역서를 기대합니다.
(# 2)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三國志演義, 水滸傳, 烈國志)는 서화, 항성(西華, 項城) 동쪽의 東夷(동이) 역사 말살정책 소설이다.
요(遼)의 남쪽인 하남성(河南省)에 서화(西華)와 항성(項城)이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4세기말에 나관중이 창작했다.
수호전(水滸傳)은 시내암(施耐唵)이 쓰고 나관중이 집성(集成)한 것이다.
열국지(烈國志) 또한 명대(明代)의 작품으로 본다.
명(明)은 1368년-1662년까지 존재했는데 이 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魏(위), 吳(오), 蜀(촉) 삼국시대가 패망한 이후 약천백년 지났을때 쓰여진 작품인데
9세기 이전 장안(長安) 중심의 한족(漢族)과 서화, 항성의 동쪽에 동이(東夷)((우리=高句麗, 遼東, 百濟, 江淮, 新羅, 倭(위))의 영역이
나관중시대에는 명(明)의 영역이 되어
동이역사를 반도역사로 축소시키는 시대에 창작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위서, 송서, 남제서, 양서, 북사, 남사, 구당서, 당서가 있는 한
한족과 동이의 경계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 遼之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6-7세기의 경계를 보면
은산, 고대인성, 신성, 석문, 석성, 항성, 덕안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산서성 요(遼)중심의 동쪽에 남북으로 있는 지명이다.
서화, 항성 동쪽에 있었던 동이역사를 밀어내기 위하여
'삼국지연의'를 중국대륙 전체의 사건으로 볼 수 있게 소설화시켰던 것이다.
9세기 이전 BC11세기까지 한족 어느 국가도 중국 전체를 통일한 국가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중국25사는 모두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25사를 인정하는 한 '삼국지연의'는
동이(東夷)(우리)역사를 대륙에서 삭제시키려는
명(明) 조정의 의도에 의하여 지원되고 창작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반도인들은 사서를 숨기면서까지 이 소설을 극구 칭찬하고만 있는 것이다.
九黎(구리)시대 치우천자(蚩尤天子)의 활동 현상을 나타낸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철가면(鐵假面)과 갑옷을 입고 구리(九黎)의 통일국가 건설에 매진하였는데
우리는 철면피를 나쁜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본뜻을 모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이치일까 ?
삼국지연의는
BC2-AD9세기 사이에 동이의 일부인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가 서화, 항성의 동쪽에 있었을때
220-265년 사이에 서화, 항성의 서쪽에 있었던 위오촉(魏吳蜀) 삼국을 토대로 하여 만든 소설인데
마치 서화, 항성의 동서를 전부 즉 현 중국 전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수 있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도 서화, 항성에서 반도까지 우리민족 영역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연의'를 심취한 애독자들은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우리)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九黎)시대, 고조선시대,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시대, 일본시대를 이어온
서화 동쪽의 동이 기록을 구분하고
"삼국지연의"와 "삼국지"도 소설과 역사서를 분명히 하여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중국25사 동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광개토대왕비 등에서 서화에서 반도까지는
동이(우리)민족의 영역이었고 역사기록도 구리시대에서 9세기까지로 되어 있는데
"수호전"에서 중심이 되어 있는 양산박 주위에 우리민족의 중심부분 중의 하나 였다.
양산박 주위에는
구리시대 치우천자의 능이 있으며(동평군 수장현)
백제 의자왕시대의 황산, 동명, 대산, 백마하가 있었던 "웅진"이 있어야 하는데
파웅진(罷熊津)하고 말을 바꿔 비성( 城)으로 하여(?) 비성(肥城)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669년과 672년 자석(磁石)과 침(針)을 당에 보낸 신라의 석성, 항성도 양산박의 서쪽에 있으며
기자때부터 양잠(養蠶)을 시작했는데
삼국시대 발달한 신라금(新羅錦 : 실크 : SILK = SILLA KEUM)의 생산지 雎(저, 襄邑 : 양읍)도 양산박의 서쪽에 있다.
최치원의 태수로 있던 태산(太山)은 양산박의 동쪽에 있다.
이렇게 동이(우리)민족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의 양산박을 무대로 하여 소설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守胡傳(수호전)와 같은 수호전(水滸傳)이다
9세기 사로신라가 망하고
그유민들이 동이(동이)역사를 계승한 국가를 만들려고 투쟁하던 기록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무대가 동이의 땅이고 고구려, 백제가 패망한 이후이고 사로신라가 패망한 이후의 작품이며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를 "호(胡)"라 기록하기도 하였으니 수호(水滸)를 수호(守胡)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이의 후예들이 살고 있기에 수호전의 내용을 의로운적으로 꾸며나간 것이 아닐까 ?
9세기 이후에 창작되어진 수호전은
9세기 이후 서화, 항성 동쪽에서 잃어버린 동이역사의 부분으로 보면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열국지 또한 서화, 항성의 서쪽 장안중심의 한족과
서화 동쪽의 동이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지 않고 있는 구리에서 9세기 사이에서
기자이후 조선말기의 현상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
이 또한 서화 동쪽의 동이 역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소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 3) 어떤 진실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오래전에 복사해둔 자료라 책이름을 모르겠습니다
단순 참고 바랍니다
운영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요논점은
220-280년
즉 불과 60년 동안
서화/항성 서쪽에서 있었던 위오촉(魏吳蜀)의 역사를
마치 중국 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과대포장한 소설책 삼국지연의의 실체를 바로 보자는 취지입니다
정사 삼국지는 "위 정통론"을 세우고 있는데
후대에 조작된 소설삼국지연의는 "촉 정통론"으로 바꾸었다는 것도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입니다
이제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소설책 삼국지를 우대하고 그기에 빠지는 행위는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무불통님이 올려주신 표)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완)
(#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삼국지에 열광을 할까?
- 글쓴이 : 이문규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은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
삼국지를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교양이 없는 사람이다.
=> 우리나라 삼국지 출판 광고 때 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삼국지를 읽은 사름은 교양인이고, 안 읽은 사람은 비교양인이다는 논리는 흑백논리 아닐까?
삼국지 안 읽은 사람 중에 교양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에게 있어, 삼국지는 교양 필독서 1위다.
왜 우리 한국인은 나관중의 삼국지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한 때 삼국지를 열 번이상 읽었고, 삼국지 매니아였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삼국지 못지 않게 스펙타클한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이다.
현재 필자와 가장 친한 형이 있는데, 그 형은 삼국지 매니아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역사에 대해 논할 때 몇 번이고 충돌하곤 한다.
그 형은 중국의 삼국은 대단하다면서 정작 우리의 선조 국가인 고구려, 백제는 중국의 위, 오, 촉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논리에 대해 반박을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위, 오, 촉 세 국가의 역사는 극히 짧다
위(AD.220~265): 45년
촉(AD.221~263): 42년
오(AD.222~280): 58년
많은 영웅 호걸들이 이 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일까?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705년(900년이라는 설도 있음),
백제는 678년, 신라는 992년,
고려는 475년,
조선은 518년 등 무려 장구하게 이어져왔다.
오히려 위, 오, 촉에 비하면 내실면에서 우리의 국가들이 튼실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 나라가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된 것에는 강력한 군사력, 체계화된 제도, 군신관민의 일치된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중국 후한 때 외척과 환관의 폭정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이 농민난 때문에 후한은 위, 오, 촉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고구려에서는 9대 고국천왕이 을파소라는 뛰어난 인물을 기용하여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많은 후한 사람들이 고구려로 넘어왔다.
이는 당시 고구려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는 것을 뜻한다.
백성을 폭압하는 후한보다는 백성들을 위하는 고구려야 말로 당시 후한 백성들이 꿈꾼 나라가 아니었을까?
삼국지 매니아들은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중국의 삼국은 백만대군은 기본이고,
몇 십만 대군끼리 전쟁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수천의 대군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고,
그러니 중국에 게임이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는 과장이 심한 소설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기본 병력이 몇 십만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를 보면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병력이 얼마나 미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위: 66만호(인구 440만), 병력 20만~50만
오: 52만호(인구 230만), 병력 15만~20만
촉: 28만호(인구 94만), 병력 8만~12만
이를 통해 나관중 삼국지에서 조조가 적벽대전 때 백만 대군을 동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중원의 패권 다툼이라 할 수 있는 관도대전 때 조조가 동원한 대군이 10만 안팎인 것을 보면
나관중 삼국지의 병력수는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최고의 지략가는 제갈량, 뛰어난 장수는 관우 운장, 조운 자룡 이라고 한다.
그리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태어난 연도까지 줄줄이 외우면서,
정작 우리의 위인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오히려 이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보다 우리 역사 속의 위인들이 더 훌륭하다.
백성 구제책인 진대법을 마련한 을파소, 좌원에서 한나라 대군을 격파한 명림답부,
살수에서 수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당 태종의 침입을 막고 당을 공격한 연개소문,
말로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차지한 서희,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왜군을 크게 무찔러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 등
우리 역사 속의 위인들이야 말로 삼국지의 영웅보다 더 영웅적이고 훌륭한 지략가이다.
심지어 무당들도 관우를 모시면서,
정작 지나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치우를 모시는 건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조상인 치우를 모신 사당은 없다.
우리는 삼국지의 명장면을 삼고초려라고 꼽고있다.
삼고초려를 언급하면서 유비의 덕망을 칭송한다. 하지만 삼고초려가 고구려에 있었다면 믿겠는가?
고구려 9대 황제인 고국천왕 때 고국천왕은 좌물촌에 농사짓고 사는 을파소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걸 알고 그를 찾아가 각고의 노력 끝에 국상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보다는 고국천왕과 을파소의 만남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tv에서 모교수가 말하길 중국교수가 한국에 와보고 놀라면서 자기에게 말하길,
한국인들이 삼국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놀랐다고 한다.
자기들은 중국사에서 단명한 나라들이라 이름만 알고 지나치는 정도였는데,
한국에 오니까 삼국지의 인물들은 물론, 제갈량이 무슨 병법을 펼치고, 삼국의 지명들이 어떻고 훤히 다 꿰더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왜 우리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열광하는가?
나관중의 삼국지는 중화민족 최고, 이민족은 열등하다는 중화사상이 깔려 있는 책이다.
삼국지를 보면 이민족은 전부 야만족이다.
더군다나 삼국지의 최고 맹장인 여포 역시 출신이 북방 몽골 지역이라 그런지 그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이다.
게다가 삼국지를 보면 유비 빼고 전부다 도둑놈처럼 그린다.
더군다나 모사, 암투 등 정정 당당하지 못한 방법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삼국지에서 얻을 교훈이 있을까?
더군더나 나관중의 삼국지는 한족중심의 소설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청류의식, 중화주의가 깔려있다.
나관중은 삼국지를 지을 때 유비를 성인군자로 그리고 조조, 여포는 악인으로 그렸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 시대 상황과 맞닿아 있다.
당시 중원은 원나라로 중국 한족들은 몽고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만큼 나관중을 비롯한 한족 지식인들의 머리 속엔 몽고족의 지배를 받는 한족의 현실을 개탄하고
한족이 위대하다는 중화사상이 깔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삼국지를 읽을 때 바로 이 점을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단지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점 때문에 성인군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유비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는 무능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양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비정한 인간이었다.
이에 비해 조조는 어떤가?
그는 탁월한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둔전제를 시행하여 유랑하는 유민들을 안정시킨 뛰어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단지 환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난세의 간웅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뛰어난 무장 여포가 몽골 출신의 오랑캐라는 이유로
그를 자신을 보살펴준 2분의 양아버지를 죽인 희대의 악한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포는 악한이 아니다.
그는 유비를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해주었으며 우직하지만 신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 점은 삼국지 해제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삼국지를 재미로 읽고 있는데,
재미로 읽는 건 좋지만 삼국지에 깔려있는 그들 특유의 중화사상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삼국지 매니아 중 일부는 고구려가 위나라에게 깨졌으니
고구려는 위나라보다 약하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물론 고구려가 위나라의 방진법에 크게 깨진 바 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땐 고구려가 승리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그 이전 후한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하고 후한의 영토를 잠식한 강대국이었다.
삼국지의 위, 오, 촉은 높이면서 정작 중국이 두려워한 고구려는 왜 낮추는가?
우리는 삼국지의 영웅보다 더 뛰어난 영웅들이 있는데도 왜 이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까?
한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좌원에서 청야수성작전을 펼쳐
한나라 군인 한 사람도 살려보내지 않은 좌원대첩의 영웅 명림답부야 말로 제갈량을 능가하는 지략가가 아닌가?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를 원정하여 당나라 사람들의 간담을 벌벌 떨게 하고
훗날 경극 속의 주인공이 된 연개소문이야 말로 관우, 여포를 능가하는 장수가 아닌가?
연개소문이 얼마나 무서우면 중국인들은 우는 아이 달랠 때 "연개소문 온다"고 할까?
왜 우리는 중국 삼국지 영웅보다 우리나라 위인들 한 명을 알려고 하지 않은가?
참으로 답답하다.
삼국지를 백 번 읽는 것보다 우리민족 위인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지에서 경영 철학, 교훈, 정치 철학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국인의 습성에 맞게 서술되어진 책일 뿐, 우리에게 대입할 수 없다.
권모술수로 점철된 삼국지보다는 단신으로 거대제국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으로부터
경영 철학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삼국지 읽을 시간에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 선조들의 위인전을 읽는게 낫다고 본다.
(완)
글 수 7,723
(역사망상소설) 동이역사 말살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을 버리자 !
(#)『정사 삼국지』를 보면 역사망상소설『삼국연의』에 나오는 명장면들이 대부분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유명서점에 출시된 역사망상소설 삼국지 종류가 1300여종이 넘는다.
정사 삼국지가 2007년도에 출시 되었다.
이시대 모든 삼국지 배출 작가들이여 정사를 읽어보라...
그리고 나의 작품이 서토의 동이역사 말살 정책인 '동북공정'에 얼마나 조력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세상에 서토 중심의 역사를 교육하기위해 조작한 허무맹랑한 서토소설을 숭상하다못해
추앙을 하여 전국민을 소중화 사상에 빠지게 만드니 이무슨 해괴한 일이라는 말인가 ?
대학에서 직장에서 공무원 집단까지
동이역사 말살, 망상소설 삼국지를 몇회독 하지 않는자는 자격이 없다는 등
일만년 천손민족의 자존심은 어디로 가고 소중화 사상에 빠져 동북공정에 조력하는 역적이 되겠다는 말인가 ?
차라리 아래에 소개하는 정사 삼국지를 읽고
북방민족의 단군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웅대한 기상을 찾아보라....
역사망상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전국민을 서토의 망상소설에 취하게 하지마라....
저 중원대륙을 휘저은 치우천자의 역사는 왜 다루지 못하는가 ?
고려조 대명필가 행촌이암 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를 읽어 보시라
일만년 천손민족의 피가 끓지 않는가 ?
......
(역사망상소설) 동이역사 말살소설 '삼국지연의' 숭상현상을 버리자 !
(# 1) 정사 삼국지 완역 / 김원중 역 / 민음사 (전 4권) 2007년 드디어 출간
(# 2)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는 서화, 항성(西華, 項城) 동쪽의 東夷(동이) 역사 말살정책 소설이다.
(# 3) 어떤 진실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삼국지에 열광을 할까? (이문규)
(# 1) 정사 삼국지 완역 / 김원중 역 / 민음사 (전 4권) 2007년 드디어 출간
정사를 통해 본 소설 『삼국지연의』의 실체
나관중(羅貫中)의 소설『삼국연의(三國演義)』의 모본이
진수가 지은 『정사 삼국지(正史 三國志)』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관중 자신도 『삼국연의』의 앞머리에 “진나라 평양후 진수가 남긴 역사 기록을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청나라 중기의 역사가 장학성(章學成)이
“칠실삼허(七實三虛, 열 중 일곱은 사실이고 셋은 허구다.)”라고 하였듯이
『정사 삼국지』가 없었다면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사가 번역되어 나오지 못한 탓에
식견 있는 독자들마저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가 정사인 것으로 오판하는 등
『정사 삼국지』는 소설의 빛에 가려져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삼국연의』의 허구와 과장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왜곡된 역사를 진실인양 받아들여 왔다는 점이다.
소설 속 왜곡된 역사들의 바탕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자리 잡고 있다.
나관중은 원말 명초 시기를 살았기에 한족이 몽골족에 지배를 당하는 현실을 비통해하였고,
한족의 정통성을 기치로 내걸고자 천 년 전에 사라진 한나라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는 곧 한(漢) 황실을 계승한 유비의 촉나라가 정통성을 가졌다는 촉한정통론으로 이어졌다.
이후 소설 속 촉한정통론은
한족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정치적 결속력을 다져야 할 때마다 강화되었고,
청나라 모종강의 재편집을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
건안 문단(建安文壇)을 선도한 시인이자 문학과 사상의 진흥에 앞장선 문치(文治)의 제왕으로
정사에 기록된 조조(曹操)가 소설에서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물도 탈바꿈하고,
유능한 정치가이기는 했지만 군사는 잘 쓰지 못했던 제갈량이
신출귀몰한 군사 전략가로 변신한 데에는 이러한 정치적, 사상적 배경이 있다.
이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삼국연의』의 허구성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정사 삼국지』를 보면 『삼국연의』에 나오는 명장면들이 대부분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 하는 장면,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는 장면,
왕윤이 초선을 이용하는 연환계, 유비가 삼고초려하여 제갈량을 영입하는 과정,
제갈량이 동풍을 불러들이는 장면 등인데,
대부분 촉한정통의 기준에 따라 촉나라의 인물들을 미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반면에 「위서」「동탁전」에서 뛰어난 장군이자 개혁가의 면모를 보인 동탁은
단지 변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설에서 희대의 패륜아로 매도되기도 한다.
(중략)
(#) 김원중 님의 정사 삼국지 출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또다른 역서를 기대합니다.
(# 2) 삼국지연의, 수호전, 열국지(三國志演義, 水滸傳, 烈國志)는 서화, 항성(西華, 項城) 동쪽의 東夷(동이) 역사 말살정책 소설이다.
요(遼)의 남쪽인 하남성(河南省)에 서화(西華)와 항성(項城)이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4세기말에 나관중이 창작했다.
수호전(水滸傳)은 시내암(施耐唵)이 쓰고 나관중이 집성(集成)한 것이다.
열국지(烈國志) 또한 명대(明代)의 작품으로 본다.
명(明)은 1368년-1662년까지 존재했는데 이 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魏(위), 吳(오), 蜀(촉) 삼국시대가 패망한 이후 약천백년 지났을때 쓰여진 작품인데
9세기 이전 장안(長安) 중심의 한족(漢族)과 서화, 항성의 동쪽에 동이(東夷)((우리=高句麗, 遼東, 百濟, 江淮, 新羅, 倭(위))의 영역이
나관중시대에는 명(明)의 영역이 되어
동이역사를 반도역사로 축소시키는 시대에 창작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위서, 송서, 남제서, 양서, 북사, 남사, 구당서, 당서가 있는 한
한족과 동이의 경계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 遼之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6-7세기의 경계를 보면
은산, 고대인성, 신성, 석문, 석성, 항성, 덕안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산서성 요(遼)중심의 동쪽에 남북으로 있는 지명이다.
서화, 항성 동쪽에 있었던 동이역사를 밀어내기 위하여
'삼국지연의'를 중국대륙 전체의 사건으로 볼 수 있게 소설화시켰던 것이다.
9세기 이전 BC11세기까지 한족 어느 국가도 중국 전체를 통일한 국가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중국25사는 모두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25사를 인정하는 한 '삼국지연의'는
동이(東夷)(우리)역사를 대륙에서 삭제시키려는
명(明) 조정의 의도에 의하여 지원되고 창작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반도인들은 사서를 숨기면서까지 이 소설을 극구 칭찬하고만 있는 것이다.
九黎(구리)시대 치우천자(蚩尤天子)의 활동 현상을 나타낸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철가면(鐵假面)과 갑옷을 입고 구리(九黎)의 통일국가 건설에 매진하였는데
우리는 철면피를 나쁜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본뜻을 모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이치일까 ?
삼국지연의는
BC2-AD9세기 사이에 동이의 일부인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가 서화, 항성의 동쪽에 있었을때
220-265년 사이에 서화, 항성의 서쪽에 있었던 위오촉(魏吳蜀) 삼국을 토대로 하여 만든 소설인데
마치 서화, 항성의 동서를 전부 즉 현 중국 전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수 있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문도 서화, 항성에서 반도까지 우리민족 영역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연의'를 심취한 애독자들은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우리)역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구리(九黎)시대, 고조선시대,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 왜시대, 일본시대를 이어온
서화 동쪽의 동이 기록을 구분하고
"삼국지연의"와 "삼국지"도 소설과 역사서를 분명히 하여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중국25사 동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광개토대왕비 등에서 서화에서 반도까지는
동이(우리)민족의 영역이었고 역사기록도 구리시대에서 9세기까지로 되어 있는데
"수호전"에서 중심이 되어 있는 양산박 주위에 우리민족의 중심부분 중의 하나 였다.
양산박 주위에는
구리시대 치우천자의 능이 있으며(동평군 수장현)
백제 의자왕시대의 황산, 동명, 대산, 백마하가 있었던 "웅진"이 있어야 하는데
파웅진(罷熊津)하고 말을 바꿔 비성( 城)으로 하여(?) 비성(肥城)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669년과 672년 자석(磁石)과 침(針)을 당에 보낸 신라의 석성, 항성도 양산박의 서쪽에 있으며
기자때부터 양잠(養蠶)을 시작했는데
삼국시대 발달한 신라금(新羅錦 : 실크 : SILK = SILLA KEUM)의 생산지 雎(저, 襄邑 : 양읍)도 양산박의 서쪽에 있다.
최치원의 태수로 있던 태산(太山)은 양산박의 동쪽에 있다.
이렇게 동이(우리)민족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의 양산박을 무대로 하여 소설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守胡傳(수호전)와 같은 수호전(水滸傳)이다
9세기 사로신라가 망하고
그유민들이 동이(동이)역사를 계승한 국가를 만들려고 투쟁하던 기록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무대가 동이의 땅이고 고구려, 백제가 패망한 이후이고 사로신라가 패망한 이후의 작품이며
서화, 항성 동쪽의 동이를 "호(胡)"라 기록하기도 하였으니 수호(水滸)를 수호(守胡)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이의 후예들이 살고 있기에 수호전의 내용을 의로운적으로 꾸며나간 것이 아닐까 ?
9세기 이후에 창작되어진 수호전은
9세기 이후 서화, 항성 동쪽에서 잃어버린 동이역사의 부분으로 보면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열국지 또한 서화, 항성의 서쪽 장안중심의 한족과
서화 동쪽의 동이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지 않고 있는 구리에서 9세기 사이에서
기자이후 조선말기의 현상을 소설화 한 것이 아닐까 ?
이 또한 서화 동쪽의 동이 역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소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 3) 어떤 진실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오래전에 복사해둔 자료라 책이름을 모르겠습니다
단순 참고 바랍니다
운영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요논점은
220-280년
즉 불과 60년 동안
서화/항성 서쪽에서 있었던 위오촉(魏吳蜀)의 역사를
마치 중국 대륙 전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과대포장한 소설책 삼국지연의의 실체를 바로 보자는 취지입니다
정사 삼국지는 "위 정통론"을 세우고 있는데
후대에 조작된 소설삼국지연의는 "촉 정통론"으로 바꾸었다는 것도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입니다
이제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소설책 삼국지를 우대하고 그기에 빠지는 행위는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무불통님이 올려주신 표)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진실)
(완)
(#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삼국지에 열광을 할까?
- 글쓴이 : 이문규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은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
삼국지를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교양이 없는 사람이다.
=> 우리나라 삼국지 출판 광고 때 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삼국지를 읽은 사름은 교양인이고, 안 읽은 사람은 비교양인이다는 논리는 흑백논리 아닐까?
삼국지 안 읽은 사람 중에 교양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에게 있어, 삼국지는 교양 필독서 1위다.
왜 우리 한국인은 나관중의 삼국지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한 때 삼국지를 열 번이상 읽었고, 삼국지 매니아였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삼국지 못지 않게 스펙타클한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이다.
현재 필자와 가장 친한 형이 있는데, 그 형은 삼국지 매니아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역사에 대해 논할 때 몇 번이고 충돌하곤 한다.
그 형은 중국의 삼국은 대단하다면서 정작 우리의 선조 국가인 고구려, 백제는 중국의 위, 오, 촉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논리에 대해 반박을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위, 오, 촉 세 국가의 역사는 극히 짧다
위(AD.220~265): 45년
촉(AD.221~263): 42년
오(AD.222~280): 58년
많은 영웅 호걸들이 이 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일까?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705년(900년이라는 설도 있음),
백제는 678년, 신라는 992년,
고려는 475년,
조선은 518년 등 무려 장구하게 이어져왔다.
오히려 위, 오, 촉에 비하면 내실면에서 우리의 국가들이 튼실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 나라가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된 것에는 강력한 군사력, 체계화된 제도, 군신관민의 일치된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중국 후한 때 외척과 환관의 폭정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이 농민난 때문에 후한은 위, 오, 촉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고구려에서는 9대 고국천왕이 을파소라는 뛰어난 인물을 기용하여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많은 후한 사람들이 고구려로 넘어왔다.
이는 당시 고구려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는 것을 뜻한다.
백성을 폭압하는 후한보다는 백성들을 위하는 고구려야 말로 당시 후한 백성들이 꿈꾼 나라가 아니었을까?
삼국지 매니아들은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중국의 삼국은 백만대군은 기본이고,
몇 십만 대군끼리 전쟁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수천의 대군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고,
그러니 중국에 게임이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는 과장이 심한 소설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기본 병력이 몇 십만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를 보면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병력이 얼마나 미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위: 66만호(인구 440만), 병력 20만~50만
오: 52만호(인구 230만), 병력 15만~20만
촉: 28만호(인구 94만), 병력 8만~12만
이를 통해 나관중 삼국지에서 조조가 적벽대전 때 백만 대군을 동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중원의 패권 다툼이라 할 수 있는 관도대전 때 조조가 동원한 대군이 10만 안팎인 것을 보면
나관중 삼국지의 병력수는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최고의 지략가는 제갈량, 뛰어난 장수는 관우 운장, 조운 자룡 이라고 한다.
그리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태어난 연도까지 줄줄이 외우면서,
정작 우리의 위인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오히려 이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보다 우리 역사 속의 위인들이 더 훌륭하다.
백성 구제책인 진대법을 마련한 을파소, 좌원에서 한나라 대군을 격파한 명림답부,
살수에서 수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당 태종의 침입을 막고 당을 공격한 연개소문,
말로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차지한 서희,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왜군을 크게 무찔러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 등
우리 역사 속의 위인들이야 말로 삼국지의 영웅보다 더 영웅적이고 훌륭한 지략가이다.
심지어 무당들도 관우를 모시면서,
정작 지나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치우를 모시는 건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조상인 치우를 모신 사당은 없다.
우리는 삼국지의 명장면을 삼고초려라고 꼽고있다.
삼고초려를 언급하면서 유비의 덕망을 칭송한다. 하지만 삼고초려가 고구려에 있었다면 믿겠는가?
고구려 9대 황제인 고국천왕 때 고국천왕은 좌물촌에 농사짓고 사는 을파소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걸 알고 그를 찾아가 각고의 노력 끝에 국상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보다는 고국천왕과 을파소의 만남이 아름답다고 여긴다.
tv에서 모교수가 말하길 중국교수가 한국에 와보고 놀라면서 자기에게 말하길,
한국인들이 삼국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놀랐다고 한다.
자기들은 중국사에서 단명한 나라들이라 이름만 알고 지나치는 정도였는데,
한국에 오니까 삼국지의 인물들은 물론, 제갈량이 무슨 병법을 펼치고, 삼국의 지명들이 어떻고 훤히 다 꿰더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왜 우리는 나관중의 삼국지에 열광하는가?
나관중의 삼국지는 중화민족 최고, 이민족은 열등하다는 중화사상이 깔려 있는 책이다.
삼국지를 보면 이민족은 전부 야만족이다.
더군다나 삼국지의 최고 맹장인 여포 역시 출신이 북방 몽골 지역이라 그런지 그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이다.
게다가 삼국지를 보면 유비 빼고 전부다 도둑놈처럼 그린다.
더군다나 모사, 암투 등 정정 당당하지 못한 방법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삼국지에서 얻을 교훈이 있을까?
더군더나 나관중의 삼국지는 한족중심의 소설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청류의식, 중화주의가 깔려있다.
나관중은 삼국지를 지을 때 유비를 성인군자로 그리고 조조, 여포는 악인으로 그렸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 시대 상황과 맞닿아 있다.
당시 중원은 원나라로 중국 한족들은 몽고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만큼 나관중을 비롯한 한족 지식인들의 머리 속엔 몽고족의 지배를 받는 한족의 현실을 개탄하고
한족이 위대하다는 중화사상이 깔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삼국지를 읽을 때 바로 이 점을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단지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점 때문에 성인군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유비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는 무능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양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비정한 인간이었다.
이에 비해 조조는 어떤가?
그는 탁월한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둔전제를 시행하여 유랑하는 유민들을 안정시킨 뛰어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단지 환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난세의 간웅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뛰어난 무장 여포가 몽골 출신의 오랑캐라는 이유로
그를 자신을 보살펴준 2분의 양아버지를 죽인 희대의 악한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포는 악한이 아니다.
그는 유비를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해주었으며 우직하지만 신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 점은 삼국지 해제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삼국지를 재미로 읽고 있는데,
재미로 읽는 건 좋지만 삼국지에 깔려있는 그들 특유의 중화사상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삼국지 매니아 중 일부는 고구려가 위나라에게 깨졌으니
고구려는 위나라보다 약하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물론 고구려가 위나라의 방진법에 크게 깨진 바 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땐 고구려가 승리했다.
그리고 고구려는 그 이전 후한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하고 후한의 영토를 잠식한 강대국이었다.
삼국지의 위, 오, 촉은 높이면서 정작 중국이 두려워한 고구려는 왜 낮추는가?
우리는 삼국지의 영웅보다 더 뛰어난 영웅들이 있는데도 왜 이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까?
한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좌원에서 청야수성작전을 펼쳐
한나라 군인 한 사람도 살려보내지 않은 좌원대첩의 영웅 명림답부야 말로 제갈량을 능가하는 지략가가 아닌가?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를 원정하여 당나라 사람들의 간담을 벌벌 떨게 하고
훗날 경극 속의 주인공이 된 연개소문이야 말로 관우, 여포를 능가하는 장수가 아닌가?
연개소문이 얼마나 무서우면 중국인들은 우는 아이 달랠 때 "연개소문 온다"고 할까?
왜 우리는 중국 삼국지 영웅보다 우리나라 위인들 한 명을 알려고 하지 않은가?
참으로 답답하다.
삼국지를 백 번 읽는 것보다 우리민족 위인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지에서 경영 철학, 교훈, 정치 철학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국인의 습성에 맞게 서술되어진 책일 뿐, 우리에게 대입할 수 없다.
권모술수로 점철된 삼국지보다는 단신으로 거대제국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으로부터
경영 철학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삼국지 읽을 시간에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 선조들의 위인전을 읽는게 낫다고 본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