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퀜치커피 이누림, 매일 커피를 내리는 리듬으로
한결같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누림 대표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애독자.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라면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 (2021.11.30)
합정과 망원 사이 골목길에 자리한 퀜치커피는 책 읽는 리듬을 닮은 공간이다. 편안한 분위기와 훌륭한 커피 덕분에 작가들의 ‘마감 명당’으로 입소문이 났다. 한결같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누림 대표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애독자.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라면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
작가들의 숨은 마감 명당
카페에 책 읽는 손님들이 많이 보여요. 작가들이 마감을 할 때 자주 찾는다는 소문도 들었고요.
여기가 작가분들의 마감 명당이에요. 카페가 차분한 분위기다 보니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손님도 많은데요. 딱 보면 알아요. 저분 오늘 마감 앞두고 있다.(웃음) 그러면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죠.
카페 한쪽의 책장을 보고 감이 왔어요. 이분 책 좀 읽는다.(웃음)
처음부터 책이 많은 건 아니었어요. 함께 일하는 김연우 로스터가 책을 좋아해서 집에서 읽는 책을 기증하면서 조금씩 늘어났죠. 눈앞에 책이 있으니까 손님이 없을 때 카운터에서 틈틈이 읽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독서량이 갑자기 늘었어요. 한창 상황이 심각할 때는 정말 할 일이 없는 거예요. 텅 빈 카페를 보면 내가 이러려고 카페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그래서 하염없이 책만 읽었죠. 그때 책 읽는 습관이 든 것 같아요.
주문을 하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까지 배려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결이 궁금했어요.
카페를 열 때 원칙이 누구든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가게를 열 당시만 해도 손님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이 너무 많았거든요. 테이블은 밑에 있고 의자는 너무 높아서 불편한 자세로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거예요. 손님을 빨리 내보내려는 전략이었던 거죠.
공간은 예쁜데 사진만 찍고 빨리 나왔던 기억이 나요.
맞아요. 카페는 손님을 불편하게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구 높이부터 재기 시작했어요. 앉았을 때 가장 편안한 높이의 의자를 골랐어요. 탁자도 팔을 올렸을 때 대리석 소재는 너무 차갑더라고요. 책 읽기 좋도록 매끈한 목재 테이블을 들였죠.
작은 노트에 적어서 주문을 받으시더라고요.
포스기로 주문을 받으면 편리하지만 손님과 대화가 안 되거든요. 손으로 쓰면 손님과 눈을 맞추면서 인사를 할 수 있고 주문을 받으면서 고개를 숙일 수 있어요. 그동안 손님은 숨을 돌리고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거죠.
바가 있어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모습도 자주 봤어요.
신기하게도 낮은 바를 두니 손님들을 더 깊이 알게 돼요. 카페 업이 단순히 커피가 맛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일임을 알게 됐죠. 물론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바에 앉더라도 조용히 쉬고 싶은 분이 있고, 대화를 원하는 분도 있으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세심하게 조절하려고 노력해요. 상대가 이 정도 거리가 좋다고 하면 멈추고, 원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가죠. 그 거리감을 조정할 수 있도록 작업대와 바를 나누었어요. 이 사이를 제가 이동하는 거죠. 어쨌든 일하는 시간은 제 시간이니까 저도 약간은 존중 받고 싶었어요.
잘하는 일을 찾은 순간
합정역 뒤편을 쭉 걸어오면 주택가 골목에 카페가 있어요. 위치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여기가 가게를 알아볼 때 가장 처음 본 곳이에요.
역시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나요?
아니요. 정반대였어요.(웃음)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밤에는 다니기 무섭겠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골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봐도 마땅한 곳이 없는 거예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죠. 건물에 들어가보니까 화장실이 2개고 나름 다 갖춰져 있는 거예요. 인테리어만 하면 되겠다 하고, 여기로 결정한 거죠.
걱정은 안 되셨어요?
됐죠. 여기서 망하면 공무원 시험 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하하. 지금은 부모님도 제 일을 좋아하시지만, 예전에는 선뜻 반기진 않으셨어요. 고생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요. 첫 가게를 열 때도 잘 안되면 고향에 돌아가야지 하면서 시작했어요.(웃음)
스무 살부터 커피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하셨어요.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제가 뭔가를 잘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원래 음악을 하려고 무작정 서울에 와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시키는 대로 커피를 내렸는데 처음부터 너무 잘한 거죠. 어, 나도 잘하는 일이 있네 하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3개월만에 매니저를 달았어요. 그때만 해도 커피 맛은 잘 몰랐는데, 하루는 누나가 유명한 카페에 데려 갔어요. 핸드드립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신세계인 거예요. 아, 이건 한번 배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날 이후로 매일 카페에 출석하고, 사장님 소개로 커피를 배웠어요. 군대에 가서도 커피를 내릴 정도였어요.(웃음)
슬럼프가 올 때는 없었나요?
한꺼번에 밀려 온다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와요. 오늘은 자신 없는데 하다가도, 다음날이면 아 좀 알 것 같다. 그러다 아니야 내 인생은 끝났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아요.
매일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네요.
일상은 조금씩 달라져도 저는 리듬을 잃으면 안 돼요. 힘을 빼고 완전히 유연한 상태로 있어야 하죠. 어차피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도 않아요. 이 태도는 예전에 검도를 할 때 배운 것 같아요. 도장에 가면 천 번 내려치기를 시키거든요. 처음에는 잘하려고 잔뜩 힘을 주거나 딴생각도 드는데, 계속 반복하다 보면 다 비우게 돼요. 그때만 해도 그 수련법이 제 인생이 될 줄은 몰랐어요.
결국 리듬이 중요해요
인스타그램(@quench_coffee_nulimlee)에도 꾸준히 음료의 유래나 문화에 대한 글을 올리시잖아요. 칵테일의 유래부터 1930년대 근대 조선의 카페 문화까지 음료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어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예상 못 했어요.(웃음) 음료를 만들다 보면,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언제 시작됐는지 궁금해지거든요. 자료를 찾다 보면, 숨겨진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글이 길어지는 거예요. 음료 하나에서 문화와 역사가 보이는 거죠. 가끔 자료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오은 시인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 세 번이나 볼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쓴이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떤 시를 읽으면 어린이 같다가도, 다른 페이지를 펼치면 군대에서 만난 형 같기도 하고.(웃음) 한 권의 시집 안에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시를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시간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든 게 바뀌면서 더 절실히 와 닿는 책이었어요.
책 읽을 때,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나요?
소설을 읽을 때는 따뜻한 메뉴를 추천해요. 아이스 음료는 마시면서 녹으니까 물 때문에 집중이 깨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따뜻한 드립커피나 카페라테를 드세요. 만약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처럼 재밌는 에세이를 읽는다면 아포가토도 좋아요. 처음의 맛과 끝 맛이 다르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흐름을 같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집은 에스프레소 꼼빠냐를 단숨에 훅 드시고 보세요. 심장이 뛰는 상태로 보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독서도 일상도 리듬을 중시하시네요.
어쩌면 박치라서 더 리듬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웃음) 매일 눈뜨고 일하는 것이 다 리듬이니까요. 독서도 결국 리듬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카페를 찾아 마감을 하는 (미래의) 작가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오늘 반드시 다 끝내야 하는 글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음악을 조용히 틀고 최대한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 안 써진다 싶으면, 살짝 귀띔해주시면 영업시간이 지나도 조금은 더 열어둘 수도 있고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이누림 대표가 카운터에서 읽은 책들. 『일인칭 단수』의 기발함과 『시선으로부터,』의 감동 모두를 사랑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책. 어려운 철학 이야기이지만 작가의 재치 있는 입담에 빠져들어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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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결같은 마음과 따뜻한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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