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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인간의 뇌는 철자를 하나하나 인식하는게 아니라...문장 전체로 인식하기때문에 단어 첫글자와 마지막 글자만 알면 뇌에서 인식한다는군요. 또한... 글뿐만 아니라 소리도 이런식으로 인식을 한다는...^^
영단어는 문장으로 외어라...틀린말이 아닌듯...
============================================================
위의 글을 읽어 보세요.
인지적 틀로 단어를 인지하는 것이지 실제의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지적 무늬가 새겨진 이후에 인지적 틀에 맞는 정보만이 인식됩니다.
인간이 '사과'라는 단어만을 배운다면 다른 과일은 사과 비슷한 것으로 밖에 인지되지 않습니다.
먼저 단어가 입력되어야 인지한다는 틀...저는 이를 인지적 무늬라 부르겠습니다.
무늬가 새겨져야 무늬에 맞는 개념이 들어 옵니다.
제가 과거에 말했듯 왜 어린이가 성자의 마음을 가졌다고들 하지만 성자가 아니라는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순수함의 측면에서는 성자와 같은 마음의 상태이지만 에고에 물들 수 있는 순수함은 순수함이 아니기에 성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편안함을 추구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는 분들은 세속에 계신 분들보다 혼란한 마음의 끝자락을 잡고 에고의 몸통을 잡아내는 과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에고적 무늬가 새겨지지도 않고 그 무늬를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찾잔 속의 평안함만 추구하다가 세상을 뜹니다.
인지적 틀이 정밀해져야 사과...배...감을 구분해내듯...
큰 에고 작은 에고 좀 더 미묘한 에고를 하나씩 겪고 그것을 깨는 과정에서 에고적 무늬가 정밀해지면서 미묘한 마음의 흔들림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수양을 하면서 에고가 깨어지면서 다음 에고는 정밀한 무늬로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정밀한 무늬로 드러나면서 좀 더 정밀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에고가 깨지면서 다음 에고가 드러나고 점차로 정밀해지면 어느덧 에고의 거울이 아니라 진리를 비추고 모든 사물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됩니다.
즉 에고의 거울이자 본성의 거울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비출 수 있는 정밀도가 어느 분은 청도 ㅇ 거울로 어느 분은 거울로 어느 분은 초정밀 거울일 뿐입니다.
--------------------------------
부처의 지혜는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라 일컫습니다.
묘관찰지는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이며
대원경지는 모든 것을 비추는 지혜입니다.
묘관찰지가 발달한 사람은 보이되 분별심에 끄달리기 쉬우며
평등성지가 발달한 사람은 평등함을 느끼되 보이지 않는 우매함에 머물며
대원경지가 발달한 사람은 느끼되, 무엇인지 모르는 고요함 속에서만 머뭅니다.
성소작지가 발달한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되 능력에 매이게 됩니다.
묘관찰지는 어떻게 보면 인지의 무늬가 정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보살은 수억겁을 윤회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을 갈고 닦아
이를 중생의 분별심에 응하여 구현하는 지혜를 연마하여
이를 묘관찰지를 닦는다고 말합니다.
즉 앞서 말한 인지의 무늬 그리고 에고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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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무늬가 새겨진 이후에 인지적 틀에 맞는 정보만이 인식됩니다.
인간이 '사과'라는 단어만을 배운다면 다른 과일은 사과 비슷한 것으로 밖에 인지되지 않습니다.
먼저 단어가 입력되어야 인지한다는 틀...저는 이를 인지적 무늬라 부르겠습니다.
무늬가 새겨져야 무늬에 맞는 개념이 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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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어야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이조차도 없는 순수한 아이를 우리는 부처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분별심은 모든 보살과 부처의 지혜입니다.
단순한 분별심을 승화한 것이 묘관찰지입니다.
중생의 갈애에 응하여 수없는 방편을 내어 묘관찰지로 응하되
이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내는 것을 평등성지라고 합니다.
수없는 지혜에 끄달리지 않는 중심은 모든 지혜가 하나의 지혜로 귀결되는 평등성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구체적인 중생 구제로 드러내는 능력 자체를 성소작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생의 마음이 그대로 비추는 경지를 대원경지라고 하지요...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인간의 뇌는 철자를 하나하나 인식하는게 아니라...문장 전체로 인식하기때문에 단어 첫글자와 마지막 글자만 알면 뇌에서 인식한다는군요. 또한... 글뿐만 아니라 소리도 이런식으로 인식을 한다는...^^
영단어는 문장으로 외어라...틀린말이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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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읽어 보세요.
인지적 틀로 단어를 인지하는 것이지 실제의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지적 무늬가 새겨진 이후에 인지적 틀에 맞는 정보만이 인식됩니다.
인간이 '사과'라는 단어만을 배운다면 다른 과일은 사과 비슷한 것으로 밖에 인지되지 않습니다.
먼저 단어가 입력되어야 인지한다는 틀...저는 이를 인지적 무늬라 부르겠습니다.
무늬가 새겨져야 무늬에 맞는 개념이 들어 옵니다.
제가 과거에 말했듯 왜 어린이가 성자의 마음을 가졌다고들 하지만 성자가 아니라는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순수함의 측면에서는 성자와 같은 마음의 상태이지만 에고에 물들 수 있는 순수함은 순수함이 아니기에 성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편안함을 추구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는 분들은 세속에 계신 분들보다 혼란한 마음의 끝자락을 잡고 에고의 몸통을 잡아내는 과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에고적 무늬가 새겨지지도 않고 그 무늬를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찾잔 속의 평안함만 추구하다가 세상을 뜹니다.
인지적 틀이 정밀해져야 사과...배...감을 구분해내듯...
큰 에고 작은 에고 좀 더 미묘한 에고를 하나씩 겪고 그것을 깨는 과정에서 에고적 무늬가 정밀해지면서 미묘한 마음의 흔들림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수양을 하면서 에고가 깨어지면서 다음 에고는 정밀한 무늬로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정밀한 무늬로 드러나면서 좀 더 정밀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의 에고가 깨지면서 다음 에고가 드러나고 점차로 정밀해지면 어느덧 에고의 거울이 아니라 진리를 비추고 모든 사물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됩니다.
즉 에고의 거울이자 본성의 거울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비출 수 있는 정밀도가 어느 분은 청도 ㅇ 거울로 어느 분은 거울로 어느 분은 초정밀 거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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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지혜는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라 일컫습니다.
묘관찰지는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이며
대원경지는 모든 것을 비추는 지혜입니다.
묘관찰지가 발달한 사람은 보이되 분별심에 끄달리기 쉬우며
평등성지가 발달한 사람은 평등함을 느끼되 보이지 않는 우매함에 머물며
대원경지가 발달한 사람은 느끼되, 무엇인지 모르는 고요함 속에서만 머뭅니다.
성소작지가 발달한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되 능력에 매이게 됩니다.
묘관찰지는 어떻게 보면 인지의 무늬가 정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보살은 수억겁을 윤회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을 갈고 닦아
이를 중생의 분별심에 응하여 구현하는 지혜를 연마하여
이를 묘관찰지를 닦는다고 말합니다.
즉 앞서 말한 인지의 무늬 그리고 에고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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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무늬가 새겨진 이후에 인지적 틀에 맞는 정보만이 인식됩니다.
인간이 '사과'라는 단어만을 배운다면 다른 과일은 사과 비슷한 것으로 밖에 인지되지 않습니다.
먼저 단어가 입력되어야 인지한다는 틀...저는 이를 인지적 무늬라 부르겠습니다.
무늬가 새겨져야 무늬에 맞는 개념이 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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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어야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이조차도 없는 순수한 아이를 우리는 부처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분별심은 모든 보살과 부처의 지혜입니다.
단순한 분별심을 승화한 것이 묘관찰지입니다.
중생의 갈애에 응하여 수없는 방편을 내어 묘관찰지로 응하되
이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내는 것을 평등성지라고 합니다.
수없는 지혜에 끄달리지 않는 중심은 모든 지혜가 하나의 지혜로 귀결되는 평등성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구체적인 중생 구제로 드러내는 능력 자체를 성소작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생의 마음이 그대로 비추는 경지를 대원경지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