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소시민들 중 일부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수난을 당하는 뉴스들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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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zum.com/?af=ay#!/v=2&tab=home&p=1&cm=newsbox&news=0012017073039444973
굽신거리며 노예처럼 살 것을···" 끊이지 않는 을의 눈물
경향신문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가맹점주들의 피해사례를 싣는다. 간담회에는 피자에땅 가맹점주단체 대표, 아리따움 가맹점주단체 대표, 한국GM 전국정비사연합회 대표 등이 참석했다. 피해사례는 원문을 최대한 반영하되, 문맥을 고려해 일부 수정을 거쳤다.
■김영무 피자에땅 가맹점주협회 부회장
피자에땅 가맹점주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매장을 7년 영업했지만 어이없게 ‘10년차’라는 이유로 가맹해지를 당했다. 이미 3년을 운영한 기존 매장을 양도받았다는 이유였다. 기존 3년에 양도 후 7년을 더해 10년이 됐으므로 ‘갱신거부’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본사의 일방적인 부당행위에 분노가 끓었지만 아내와 아직 학생인 세 명의 아들을 생각하며 “살려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본사 임직원과 만난 자리에서 매장 양도양수때 본사에 가맹금 1000만원을 냈으니 그때부터 10년을 계산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본사는 그 가맹금과 관계없이 기존 3년이 포함되는 것 맞다고 일축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양도양수 매장이 기존 매장 운영 기간까지 승계해야 한다면 당연히 가맹금도 기존 가맹금이 승계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본사는 가맹금은 승계되지 않아 다시 내야 하지만 매장 운영 기간은 기존 것을 승계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거래를 주장했다.
그렇게 7년을 공들인 매장은 하루 아침에 폐점됐다. 살면서 남의 일인 줄 알았던 ‘갑질’에 가정이 짓밟힌 것, 그보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아 폐점 당일 매장 앞에 “권력과 자본을 가진 본사 갑질에 항의하다 강제로 폐점 당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본사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형사고소로 응답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지만, 실제 현장에서 당하는 가맹점주의 고통. 특히 자존감이 짓밟혔을 때 느낌은 아무리 자세히 묘사해도 그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1년 전 한창 본사와 분쟁 중일 때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게 생각난다. 아내는 남편이 가맹점주협회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어느 날 건장한 본사 직원 수명이 들이닥쳐 매장점검을 한다며 조직폭력배 영화에서나 봤을 장면이 펼쳐졌다고 했다.
■공창남 아리따움 가맹점주협의회 회장
아리따움 가맹점은 2008년 9월 1일 시작됐다. 출범식에 전국 아모레 대리점, 소매점을 상대로 사업설명회가 열렸다. 아리따움 부문장이 나와 800~900개 가맹점을 유치할 것이고 아모레퍼시픽 제품 중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등 제품을 공급하고 대대로 이어갈 수 있는 수익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2011년까지 약속을 지키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따움 판매제품은 본사직영인 백화점·면세점·마트·홈쇼핑·인터넷쇼핑·아모레퍼시픽몰 등에 등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제조·도매·소매를 겸하는 공룡기업이다. 가맹점과 본사는 처음부터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2013년 9월 계약기간 중 점주에게 불리한 교육장려금 축소안을 제시해 점주들이 불이익을 당했다. 아리따움 정보공개서에는 가맹점 해지사유가 62가지나 된다.
대표적인 해지사유로는 겸업금지, 샵인샵 금지, 가맹점 운영물품 구입 미완료, 영업시간 및 영업일수 미준수, 조사 거부 등이 있다. 즉시해지사유로는 가맹본부 명성이나 신용 훼손, 영업비밀 및 중요정보 유출 등이 있다. 폐점 시 재고물품 반품이 원활하지 않고 위약금이 있으며 가맹점주협의회에 참가하는 점주들은 가맹해지에 불안해하고 있다. 이미 불이익을 받았거나, 해지를 당한 점주협의회 임원도 많다. 최근에는 가맹점 거리제한으로 신규개점이 어렵다며 협조를 구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아갔다(아리따움간 300m, 아리따움과 계열사(이니스프리,에띠드) 100m, 서울 1급지역은 30m). 담당들이 동의서를 제출하라는데 버틸 점주가 몇이나 될까.
또 3~5년마다 과다한 비용의 인테리어를 해야하는데 지방은 평당 350만~420만원, 수도권은 평당 450만~550만원에 달한다. 매장 리뉴얼을 안 하면 계약해지 된다고 겁박하며, 실제 계약해지를 당한 매장도 있다고 들었다. 지방은 매장규모 15평 이상만 인테리어가 되니 이전하길 요구하고, 수도권도 대로변 확장 이전 인테리어를 하기를 강요한다. 15평 이하 매장은 매장 양수 양도를 제한해 관두기도 쉽지 않다.
본사는 직영점-가맹점간 마케팅 차이가 없다하지만 인기 제품은 ‘할당’이라는 명목으로 배급돼 물류창고에 제품이 있어도 주문이 안된다. 연중 과도한 세일행사로 가맹점주 부담이 커 수익성이 최하로 가고 있다. 신제품은 쏟아져 나오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재고는 쌓이는데 단종제품 환입은 지체돼 경영이 어렵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께 두가지 청을 드린다. 첫째 2013년 9월 출범한 아리따움 점주협의회가 협의요청을 하자 본사가 2013년 12월 어용 협의회(아리따움 가맹경영자협의회)를 만들어 점주들을 이간질해 기존 협의회를 파괴한 경위, 2014년 아리따움 점주협의회가 공정위에 제소한 아모레퍼시픽 불공정 행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조속히 답을 주셨으면 한다.
■김형구 한국GM 전국정비사연합회 백석 바로서비스 대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에서 8년간 근무했고, 2001년 11월 같이 근무하던 동료 2명과 퇴직 동시에 현재의 3급 전문정비사업소를 차렸습니다. 당시에는 회사에서 이직·독립을 권유하며 별도 지원도 해줬습니다. 16년 넘게 대우자동차·한국GM 자동차만 정비하며 정비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16년 동안 자동차정비업을 하며 몇 차례 개선 명령과 규정위반 등을 지적당했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고 대부분 고의성 없는 단순 과오·착오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 한국GM 정비연합회가 결성되고 본사는 어떻게든 회유·협박으로 연합회 해산을 원했습니다. 연합회가 공정위 등 여러 곳에 현실을 알리러 다니니 본보기 차원으로 5개업장이 처음으로 경고장을 받고 재계약 거부로 간판을 내렸습니다.
물론 계약서에는 2년에 3회 경고장을 받으면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6년간 경고장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사업장이 큰 곳은 저보다 많은 경고장을 받은 데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경고장 누적으로 지금까지 계약연장을 하지 않은 사례도 들은 바 없습니다.
사업장 시설관리 및 운영관리 등 여러 항목 평가를 하위 등급을 받은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GM 평가항목은 순전히 자기들만의 판단기준이며 환경개선을 위한 지원은 한 푼도 없으면서 청소를 깨끗이 했느니 안했느니 하는 담당직원 기분으로 점수가 깎이고 친분관계가 좋으면 점수가 좋아져 경고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내용증명으로 계약연장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난 3월 ‘쉐보레’ 간판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직장으로부터 쫓겨난 것입니다. 나름대로 많은 해명과 사정을 해봤지만 회사 방침이라는 말 외엔 어떤 설명도 없었습니다. 회사는 그간 일정부품을 재고로 가지고 있으라고 했으면서 그만 둘 때는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반품도 안돼 다 정리될 때까지 일반정비를 계속 해야합니다.
이런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없던 계약해지가 일어난 것은 여태 없었던 연합회를 만들어 한국GM 본사를 압박하니, 본보기로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됩니다. 전국 사업장이 저와 같은 계약해지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고장’은 한국GM이 마음만 먹으면 발급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계약해지한다면 누가 한국GM의 문제를 말할 수 있으며 부당한 대우에 억울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한국GM은 속으로 웃고 있습니다. “너네 정비업자들 아무리 모여봐야 눈도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한국GM 정비연합회가 결성된 게 원망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쭉 굽신거리며 노예처럼 살면 될 것을 뭐가 될 거라고 뭉쳐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연합회를 만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했습니까.
여기 계신 의원님. 공정위 관계자님. 저와 같은 사람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fnnews.com/news/201707230701096478
가맹점주들의 울분…"우린 알바보다 못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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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bSP9fbYbFDE
이명박 아들, 김무성 사위, 의젖한 연예인. 그리고 마약과 섹스 스캔들
http://www.instiz.net/pt/3257135
이명박 아들 마약했다 (+같이 마약한 연예인들)
<입체추적> 김무성사위 마약친구 연관된 범키, 판결로 드러난 은폐 축…
풀리지 않는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 5大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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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nnews.com/news/201707230610165349
'40일 감금 악몽' 탈출해 경찰 찾았더니…부실대응 논란
http://v.media.daum.net/v/20170731152809066
사랑을 위하여
내가 그렇게 즐겨봤던 EBS의 다큐속에
이런 희생과 눈물어린 애환이 있었다니 너무나 슬픕니다.
숨기지 않고 자료를 남겨주고 먼 이국 땅에서 떠나신 고 박성환PD의 유훈을 받들어 방송계의 적폐를 처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독립피디들이 살아날 것이고 고인의 뜻이 이땅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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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 빼먹는 EBS
입력 2017.07.31. 고 박환성 PD가 받은 정부지원금 40% 가져가…
가난한 독립PD 지원금 최대 60%까지 환수하는 불공정 계약
한국교육방송(EBS)이 외주제작사가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제작지원금의 ‘40% 선납’을 요구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EBS가 자체 규정인 ‘외주협력제작사 협력상생 방안’을 근거로 외주제작사가 정부기관 지원금을 받으면 ‘40% 방송사 회수, 40% 제작비 투여, 20% 제작사 인센티브’ 등의 명목으로 사용할 것을 종용해온 것이다. 인센티브는 EBS가 제작사에 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EBS는 가난한 독립PD들이 받은 정부기관 지원금의 최대 60%까지 환수할 수 있다. 단순히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라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불법 회계처리를 사실상 종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억4천만원에 자연 다큐 2편은 착취”
<한겨레21>이 7월28일 입수한 고 박환성 PD와 EBS 김아무개 편성PD의 통화 녹취록을 보면, 김 PD는 박 PD에게 “40%를 이쪽(EBS)으로 선납하고, 20%를 (우리가) 제작지원비 형태로 돌려주는 게 보통이다. 그게 룰”이라고 통보하는 내용이 나온다. 박 PD는 EBS의 간판 프로그램 <다큐프라임> 2부작 ‘야수의 방주’를 제작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박 PD의 회사 ‘블루라이노픽처스’가 모든 제작 책임을 떠안고, EBS는 방송만 송출하는 계약이었다. 계약 당시 EBS가 지급하기로 한 1억4천만원은 장기간 해외 촬영이 포함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기에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 규모였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어본 독립PD들은 EBS와 박 PD가 맺은 계약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독립PD는 “몇 년 전 지상파 방송에서 내부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동물 자연 다큐멘터리의 경우 편당 제작비가 7억원 안팎이었다. 2편을 1억4천만원으로 제작해오라는 것은 착취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박 PD가 제작에 나선 이유에 대해, 동료 PD들은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방송사 쪽에서) ‘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해봐야죠’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립PD들은 EBS가 “(오랜 시간 다큐를 제작해온) 박 PD의 노하우에 빨대를 꽂아 거저먹겠다고 덤빈 것”이라며 분개했다.
박 PD는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곁에서 지켜본 동료는 “촬영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제작비 마련을 위해 뛰어다녔다. 제작비 지원 서류를 만드는 게 일의 절반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 PD는 구원의 손길을 찾아낸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에 제작비 지원을 신청했고, ‘2017년 차세대 방송용 콘텐츠(UHD)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이를 통해 EBS에서 받게 된 1억4천만원에 더해 1억2천만원이라는 ‘실탄’이 보충됐다. 제작비가 마련돼 한숨 돌릴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다시 시작됐다.
정부기관에서 추가 제작비 지원을 받기로 한 것은 박 PD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EBS가 요구한 부분이었다. 2016년 8월 계약 이후 제작비 부족 상황을 논의하자 EBS 김 편성PD는 박 PD에게 “내년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전파진흥협회 등에 제작비 지원을 신청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막상 추가 제작비 지원을 받아내자 EBS의 태도가 돌변했다. EBS가 정부기관의 제작지원금이 ‘협찬금’이라며 “40%를 선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박 PD가 한국전파진흥협회로부터 선지급받은 금액은 EBS가 요구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한 전체 지원금의 40%, 즉 4800만원이었다. 박 PD가 받은 정부 제작지원금은 ‘1년 이내에 방송이 송출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지원이었다. 박 PD는 이를 잘 아는 EBS가 방송 송출에 목맬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잡고 흔든다고 생각했다.
EBS, 박 PD에게 ‘편성 취소’ 압박
EBS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박 PD는 EBS 편성 담당자에게 수차례 관련 문제를 협의한다. 박 PD는 “이미 수차례 협의한 상황이고, 제작 지원 국가보조금이 협찬금에 해당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EBS 내부 규정이 그렇다고 해도 이는 사전 고지된 바도 없으며, 계약서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EBS는 우종범 사장 명의의 공문을 박 PD에게 보내 “EBS가 정부 주관 제작비 지원 사업 신청을 장려하는 입장”인 것은 맞지만 박 PD가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처럼 신청한 것은 계약 내용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녹취록에는 EBS의 외주제작 편성 책임자인 콘텐츠 협력 부장이 박 PD에게 “이 건은 계약 위반이 맞고 그에 따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상당히 고민”이라며 편성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박 PD와 EBS 쪽은 모두 7차례 공문과 내용증명을 주고받는다. EBS 부장은 제작 지원 신청 자체가 계약 위반이라며 ‘편성 취소’로 협박했다. 동시에 다른 EBS 편성PD는 “협력 제작업체 상생방안 기준에 따라 1억2천 수탁금 가운데 20%는 인센티브, 40%는 제작비 투여, 40%는 EBS 간접비 환수로 진행하자”고 종용한다. 1억2천만원 가운데 40%인 4800만원만 제작비에 보태고, 40%는 EBS가 간접비 환수로 회수하며, 남은 20%는 EBS의 판단에 따라 외주제작사에 인센티브로 지급할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EBS는 독립PD가 정부기관에서 받은 제작지원금을 최소 40%, 최대 60%까지 뜯어갈 수 있다. 이 부담은 겹으로 외주제작사에 남는다. 프로그램의 질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에 선납금을 주었다고 정산할 수 없으니 거짓 회계 증빙을 해야 한다. 정부의 제작지원금은 모두 프로그램 제작에만 쓰이도록 규정돼 있다.
박 PD는 출장 가기 하루 전날인 7월7일, EBS와 관련한 진행 자료를 전부 동료 PD에게 넘겼다. 그는 “다시 방송국이랑 일하지 못하더라도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며 자신이 없더라도 협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꼭 대처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익숙한 일이라고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건 나와 EBS의 문제가 아닌 방송가 전체의 적폐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독립PD들 “EBS의 해명은 거짓말”
이에 대해 EBS 쪽은 말을 아꼈다. 이승훈 EBS 정책본부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다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의 장례를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BS가 독립PD들에게 장을 열어주려고 노력하는 방송사인데, 발생한 문제가 구조적 문제인지, 개인적 차원인지 확인 중이다. 공식적으로 선납금을 요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40% 선납금을 언급한 EBS PD는 “해당 업무의 담당자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고, 실무 책임을 맡은 PD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독립PD들은 EBS의 해명이 “시간을 벌겠다는 거짓말이다. 만약 EBS가 여태 선납금 문제를 확인조차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EBS 회계처리는 전부 거짓 정산이었냐”고 주장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731152807064
자연과 다큐를 사랑했던 두 PD의 죽음
2017.07.31. 1[한겨레21]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마지막 재구성…
제작비 부족해 직접 밤운전 하다 사고
2017년 7월8일 오후 2시30분
“행님 전 이제 출국합니다. 제가 나가 있는 동안 대처 부탁해요.”
투박한 말투, 그는 굳이 안 해도 될 당부를 한 번 더 했다. “그래, 잘 다녀와라.” 7월7일 밤 9시 고 박환성 PD는 지금까지 EBS와 주고받은 모든 자료와 녹취파일 전체를 선배 PD에게 넘겼다. 박 PD는 출국을 하루 앞두고 바쁜 와중에 꼼꼼하게 자료를 챙겨 보냈다. 자신에게 닥칠 불행을 예감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꼭 잘해내는 사람. 그것은 차라리 기질이었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실패의 기록이다. 숱하게 기다리고 찾아헤매다 끝내 실패하면, 그 연속된 실패마저 기록해둬야 다음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이다. 과정도 결과도 모두 준비의 연속이다. 언제 완성될지 모를 포착을 끊임없이 대비하며, 박환성 PD는 십수년의 삶을 꾸려왔다.
“형님, 다시는 방송국이랑 작업을 못해도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갈 겁니다.” 그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EBS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싸움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쳐놓은 착취와 불공정의 울타리 그 자체였다. 그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그 실패마저 계산하고 시작한 걸까. 선배 PD는 몇 마디 덧붙이려다 말았다. 박 PD의 마지막 말은 “넵~^^”이었다.
7월14일 오후 4시15분
“이제 일어났어... 이제 나가 촬영하고 또 이동해... 이동이 많아서 운전 많이 할 거 같아... 청소하고 있겠네... 보고 싶다... 집이 걱정이네... 더우면 에어컨 켜고 있어.” “사랑해. 에어컨은 너무 많이 틀면 전기세 감당 안 될까봐. 더워서ㅠㅠ” “벌써 일주일 지났네... 이주일 남았는데... 아직 멀었구나... 이사는 일주일 남았네... 자기도 정신없겠네... 너무 보고 싶다.” “나도 보고 싶어. 언제 연락 올지 몰라 핸드폰 보고 있었는데 너무 졸려ㅠㅠ 문자 줘. 사랑해.” 고 김광일 PD가 마지막으로 아내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10살 딸과 8살 아들을 둔 부부의 대화였다. 아내는 다음주 홀로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의 더위를 걱정했지만, 아내는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잘 틀지 않았다. 대화 사이사이 서로 ‘사랑해’라는 말을 했다. 짧은 대화 속에 ‘보고 싶다’는 말이 네 번 나온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둘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
7월15일 밤 9시13분
“무슨 일 있어? 연락이 없네ㅠㅠ” 김 PD의 아내는 꼬박 하루 넘게 남편의 연락이 없자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쁘고 상황이 고돼도 하루에 한 번은 생사 확인을 하고 아이들의 안부를 묻던 남편이었다. 아내의 걱정은 사흘간 이어졌다. “배터리가 없느냐”고 묻고 “충전+오지 탐험이라 그러느냐”고 묻고, “힘들어서 그러느냐”고 또 물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집에 가고 싶다’던 남편이었다. 방송일이 너무 비전이 없어 이번 작품만 하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다고 하던 남편이었다. 아내는 대답 없는 남편을 향해 “잘게~” “오늘은 정신이 없네” “태보 언니들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고 꾸준히 안부를 전달했다.
7월22일 밤 11시31분
남편을 데리러 가기 전날 밤, 김 PD의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대체 어디로 가려 했던 것일까.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내가 만든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변할 수 있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하나의 빛이 될 거야”라고 말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왜 돌아오지 못하고 데리러 가야 할까. 데려온들 내 품에서도, 아이들 품에서도 그 사람은 떠났는데. 아내는 남편의 페이스북에 “너무 안타깝고, 아프고, 또 아프다. 춥고, 배고프고, 집에 너무너무 오고 싶었다던 당신. 나도 너무 애타게 그립다”고 적었다.
7월23일 오후 2시
한국독립PD협회 송규학 회장, 복진오 PD, 박 PD의 동생 박경준씨, 김 PD의 아내 오영미씨가 두 PD의 주검을 수습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다. 출국장에는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함께했다. 엇비슷한 시각 EBS는 사옥에 분향소를 차렸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홀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엄마는 “시신 상태가 너무 많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막막했지만 애써 씩씩한 척했다.
7월27일 저녁 7시
예상보다 15분 늦은 시간. 수척한 얼굴의 사람들이 모이고 1시간쯤 지나자 비행기가 착륙했음을 의미하는 C에 불이 들어왔다. “아, 왔나보다.” 홍콩에서 들어오는 대한항공 KE614편. 지난 7월8일 출국했던 두 PD를 살아 있는 몸(體)이 아닌 혼(魂)으로 태우고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모여선 이들은 그제야 낮은 탄식을 한숨으로 뱉어냈다.
7월27일 저녁 7시45분
박환성·김광일 PD의 영정을 마주한 한국독립PD협회 회원들.“어, 저기 나온다.”
열리고 닫히기만 반복하던 게이트 문 뒤로 검은 정장에 하얀 장갑을 낀 사람들이 나타났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이들은 이미 모두 빠져나간 뒤였다. 검은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들고 있던 김영미 PD가 급히 뛰어갔다. “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짧고 건조한 제지를 거쳐 검은 물건이 게이트 안으로 전달됐다. 영정 사진이었다. 신원 미상자로 숨진 뒤 얼굴을 찾기까지 꼭 12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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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환성·김광일 PD는 한국시각으로 7월15일 새벽 3시45분(현지시각 밤 8시45분)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 차량은 BMW였고, 박 PD와 김 PD는 닛산 차량을 운전기사 없이 몰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밤에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프리카로 동물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가면 최소 7~8명이 한 팀을 이룬다. 연출 PD, 조연출 PD, 촬영감독, 촬영 보조, 작가, 현지 코디네이터, 그리고 운전사다. 두 PD는 베테랑이다. 하루 종일 야생동물을 기다리다 밤에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
두 PD는 가이드를 호텔에 남겨둔 채 번갈아 운전했다. 차량 뒷자리에선 먹다 남긴 햄버거와 콜라가 발견됐다. 둘은 끼니도 차에서 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공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한경수 PD에게 물었다. “뭘 왜 그래요. 돈이 없으니까 그랬죠. 독립PD들이 해외 나가면 현지 가이드들이 깜짝 놀라요. 하나같이 국제 거지꼴이니까. 캐리어 끌고, 카메라 조명 장비 다 짊어지고. 그렇게 가서 ‘한국의 ○○○ 방송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 안 믿어요. 걔네들 생각엔 그래도 방송국이라는데 그러고 올 리 없잖아요.”
두 PD가 가이드를 호텔에 남겨둔 이유는 누군가는 다음 일정을 챙겨야 다음날 다시 촬영을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두 PD의 죽음이 확인될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을 확정해야 하는 현지 가이드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체크인하기로 했던 호텔에도 오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는 두 PD와 10년 넘게 일해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촬영을 펑크 낼 사람도, 연락을 안 할 사람도 아니었다. 직감했다. 가이드의 신고로 사고가 확인됐다.
7월27일 저녁 8시
랩에 싸여 도착한 두 PD의 짐.김 PD의 아내 오영미씨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다. 몇 개의 짐이 랩에 싸여 딸려 나왔다. 작품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감독들, 오늘의 현실에 질리지 않고 내일을 도모하려 했던 리얼리스트들은 커다란 트렁크 한 개와 백팩 2개, 3개의 카메라가방 꾸러미를 남겼다. 취재하는 기자는 많지 않았다. 그 흔하던 방송사 ENG카메라는 EBS에서 나온 딱 한 대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경수 PD가 말했다. “PD연합회장이 그러더라고. 외주제작사 문제를 지상파 정상화 과제에 넣겠다고. 내가 그건 아니라고 했어요. 방송사 정규직들이 말하는 지상파 정상화는 해고자 복직 아니에요. 고작 옛날로 돌아가보자는 거. 근데 그때도 우리는 마찬가지였어요. 해고자가 복직된다고, 지상파 뉴스가 좀 나아진다고 방송사와 외주사의 관계가 달라져요? 천만의 말씀이지.”
7월27일 밤 10시
김 PD의 두 아이가 상복을 입었다. 10살, 8살 남매가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곤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독립PD 몇 명이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무너져내렸다. 8살 아들은 바지가 큰지 연신 허리를 추켜올렸다. 조금 의젓한 딸은 아빠의 사진에 절을 올렸다. 영정 사진 앞에 고개를 숙여 “아빠가 PD여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박 PD의 마지막 파일을 넘겨받은 최영기 PD는 울부짖었다. “이건 적폐다. 동일 노동을 하고 있는 동일 노동자들이 신분에 따라 비정규직 PD들을 착취하는 거다. 박환성·김광일 PD가 어떻게 사고사야. 이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야. 내가 끝까지 싸울 거야. 내가 박 PD랑 약속했어.”
7월27일 밤 11시
박환성, 김광일 모두 맏아들이다.
1968년생 박환성은 결혼하지 않았다. 그의 동생이 맏상제를 맡았다. 박 PD 가족실에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오열이 터져나왔다. 흐느끼는 곡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미어지듯 이어졌다.
김 PD의 부인은 비정규직 방송작가다. 남편도 그녀도 너무 젊다. 김광일 PD의 아내는 누군가의 품에서 계속 울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딸은 우는 엄마의 까만 치마폭에 안겼다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린 아들은 장례식장 로비에서 놀잇거리를 찾았다.
한국독립PD협회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내키지 않던 술자리에서 안부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 박환성 50살. 한국 자연 다큐멘터리의 독보적 존재.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서 자연과 사람을 고민하던 저널리스트.
고 김광일 38살. 자연 다큐멘터리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던,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15년차 독립PD.
글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김지혜 교육연수생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http://v.media.daum.net/v/20170801093059875?rcmd=rn
[위기의 프랜차이즈②] 乙의 눈물..가게도 망했는데 수수료 폭탄
2017.08.01.
지난 6월 피자헛 영업을 종료한 백모씨는 최근 갑작스러운 통보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결국 백씨는 폐업을 결정했고 피자헛 측에서 데려온 양수인에게 가게를 넘겼다.
백씨는 이같은 행태가 피자헛과 가맹점주가 협의한 상생협약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자헛 측은 사실상 새로운 계약자가 매장을 인수했음에도 그가 백씨의 양수인이라는 이유로 수수료를 부과한 상태다.
-가맹점 양도했더니 수수료만 700여만원
-잔여가맹비 돌려달라 VS 그런 개념 없다
“양도수수료 700만원 납부 바랍니다”
지난 6월 피자헛 영업을 종료한 백모씨는 최근 갑작스러운 통보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는 “피자헛에 3억을 투자, 적자를 면치못하다가 1억5000만원 헐값에 매장을 넘겼는데,
양도수수료를 내라니 웬 날벼락”이냐며 고개를 숙였다.
백씨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지난 2013년 11월 대전서 피자헛 배달형 매장을 냈지만 소위 ‘오픈발’ 이후 매출은 갈수록 떨어졌다. 결국 백씨는 폐업을 결정했고 피자헛 측에서 데려온 양수인에게 가게를 넘겼다.
생계의 막막함도 잠시, 본사는 가맹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라며 양도수수료를 요구했다.
[사진=백씨가 2013년 11월부터 올 6월까지 운영하던 피자헛 매장]백씨는 이같은 행태가 피자헛과 가맹점주가 협의한 상생협약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피자헛 상생협약’ 4조 ‘가맹점주의 영업양도’에 따르면 “가맹본부는 가맹점주가 영업양도를 할 때 양수하고자 하는 자의 선택에 따라 신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양도인 가맹점주에게 양도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피자헛 측은 사실상 새로운 계약자가 매장을 인수했음에도 그가 백씨의 양수인이라는 이유로 수수료를 부과한 상태다.
백씨는 “책 한권 분량의 계약서를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
내용도 가맹본부에 전면적으로 유리한 데다 이를 제대로 설명해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백씨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점은 또 있다. 바로 가맹비다.
백씨는 5년 계약 가맹비를 지불했지만, 3년반을 영업했으니 나머지 1년반에 대한 가맹비를 돌려줘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총가맹비 2만5500달러 중 16개월분인 6800달러를 돌려달라”고 호소하며 피자헛 측에 내용증명을 발송한 상태다. 하지만 피자헛 측은 “가맹비는 매장 운영 기간과는 상관없는 초기 운영비”로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씨는 “영업 당시도 40% 방문할인 등 각종 프로모션을 100% 점주에게 부담시켜 고혈을 짜내며 영업했다”며 “물품 대금을 이틀 늦게 납부했다는 이유로 가맹해지 갑질을 당하기도 했다”고 했다.
가처분 소송 승소해 영업을 재개했던 그는 “끝까지 가맹점주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피자헛의 갑질을 규탄한다”고 했다.
[사진=가맹비 잔여금 반환과 양도수수료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서. 백씨는 이를 피자헛 본부에 발송한 상태다.]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가맹계약서는 본부가 정한 내용이기 때문에 점주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피자헛은 가맹점주와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본사는 계약서에 없는 수십억원의 가맹금을 부당하게 거둬들였다며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5억2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5년 10월엔 피자헛 본사와 가맹점협의회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재로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가맹점주들은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일방적으로 가맹점에 메뉴얼 개정에 따른 통보를 전달하면서 갑질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806143906780
마시던 물 얼굴 뿌리고 "머리를 뽑아서" 폭언..박찬주 부인의 추가 갑질
군인권센터 "강제수사로 증거 확보 총력 기울여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 News1
(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부인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사건과 관련, 박 사령관이 7군단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병사들이 공관 텃밭관리와 식당 허드렛일, 집안일 등을 떠맡는 등의 피해 사례가 추가로 공개됐다.
군인권센터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 사령관이 7군단장 재임 당시 경계병들에게 공관 경계가 아닌 텃밭의 작물관리를 맡기고 군단 내 식당에서 장군들의 식사 시중을 들게 하는 등 가해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날 추가 폭로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7군단 경계병들은 본래 담당업무인 공관 외 시설관리가 아닌 70여평 규모의 공관 텃밭관리를 맡았다.
경계병들은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텃밭에서 박 사령관 가족들이 먹을 작물을 수확해 공관병에게 전달해야 했다. 오리와 닭에게 먹이를 주고 키우는 일도 맡았다.
박 사령관은 7군단 내 복지시설 '상승레스텔'에 휴무일인 월요일마다 예약도 하지 않은 채 식사를 하러 오기도 했다. 박 사령관과 부군단장, 참모장 등이 식당에서 팔지 않는 음식을 달라고 요구한 탓에 식당 근무병들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식당 등을 찾아가 생선회와 후식 등을 공수해와야 했다.
7군단장이 교체되던 당시 박 사령관이 전·현직자 부부동반 모임을 하기 위해 레스텔에서 판매하지 않는 한정식 상차림을 요구하면서 조리병들은 식당에 구비하지 않은 돌솥을 구입하기도 했다.
공관 손님맞이 행사에서는 상승레스텔에서 식기류 등을 빌리고 레스텔 근무병과 간부식당 취사병을 차출해 행사 서빙에 동원했다. 이때 박 사령관의 부인이 '독일식 테이블보'가 아니라며 다시 갈아끼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령관 부인은 한달에 5번씩 냉장고 7~8개를 모두 비운 뒤 정리하는 작업을 7군단장 공관병들에게 시키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주방을 비우고 세제로 닦는 대청소를, 목요일에는 집 전체 대청소를 시켰다.
박 사령관 부인은 요리를 전공한 공관병에게 "너 같은 게 요리사냐", "머리는 장식이냐", "머리를 뽑아다 교체하고 싶다"는 등의 폭언을 퍼붓고 공관병의 등과 팔뚝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했다. 토마토가 물러터졌다며 공관병에게 토마토를 던지거나 마시던 물을 얼굴에게 뿌린 적도 있었다.
또 감기를 앓던 박 사령관 부인에게 레스텔 조리병이 쑤어준 죽을 한 입 먹고는 "맛이 없다"며 눈앞에서 설거지통에 부어 버리기도 했다. 유학 중이던 둘째 아들이 귀국하는 날에는 늘 공관병을 동원해 바비큐 파티를 열고, 공관병이 짠 일주일치 식단표를 수차례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박 사령관 부부가 공관병들에게 전자팔찌를 억지로 착용하게 했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벨을 누르는 횟수에 따라 와야 하는 병사를 지정하고, 박 사령관 부인의 방에 벌레가 나왔을 때에도 벨을 누르는 등 수시로 전자팔찌를 사용했다는 증언이다.
아울러 박 사령관이 지인이나 예하 간부의 부인들로부터 소고기나 과일, 인삼 등의 선물을 받았고, 부인이 휘하 간부 부인들에게 이삿짐을 싸도록 지시했다는 등의 비위 의혹 도 나왔다. 이 외에 박 사령관의 7군단장 후임으로 부임한 장재환 교육사령관, 윤의철 육군 28사단장의 '갑질' 의혹도 추가로 드러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군인권센터가 확인한 피해자는 박 사령관이 7군단장, 육군참모차장, 2작전사령관에 재임하던 당시의 공관병·조리병·운전병·경계병·레스텔근무병 등 총 33명으로 드러났다.
군인권센터는 "이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관과 관용차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며 "박 사령관이 폐쇄된 병영 내에서 직권으로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변 확보를 위해 긴급체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국방부 검찰단장인 송광석 대령이 육사 선배인 박 사령관을 감싸며 사실상 수사를 포기하고 있어 향후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송 검찰단장을 즉각 보직 해임하고 박 사령관에 대한 즉각적인 압수수색, 긴급체포 등의 강제수사를 실시해 군 수뇌부 인사 전에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http://zum.com/?af=ay#!/v=2&tab=home&p=1&cm=newsbox&news=0432017080839610443
[뉴스pick] "병X들이 왜 여기 있냐" 이재용 재판 법원에서 삼성 반도체 피해자 울린 말
어제 이 부회장의 결심공판을 법정 안에서 직접 보기 위해 시민들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모여들었습니다.
이 부회장 재판의 '선착순 방청권'을 받기 위해 전날 오후부터 줄을 서서 밤을 지새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노동인권 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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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는 삼성 LCD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피해 노동자로, 이들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엄중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삼성이 어쩌라고" "문재인한테나 가"라며 손가락질과 항의를 받았습니다.
또 이들이 법원 밖에서 삼성 노동자 직업병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일부 시민들은 "야 이 XX야", '남의 돈을 그냥 먹으려고 드느냐", "재벌 되기 쉬운 줄 알아" 등의 막말을 내뱉어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엄벌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한 씨는 재판 참관을 위해 대기하던 줄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언어폭력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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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X들이 왜 여기 와있어? 돈 뜯어내려고 왔냐?", "인천 앞바다에나 들어가 버려라", "돈은 백남기한테 가서 달라 그래"라고 소리치는 사람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욕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한 씨는 법원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청사를 빠져나갔습니다.
한 씨와 한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너무 심한 거 아니냐"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한 씨는 199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생산직으로 입사해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 후 의사 표현은 가능하지만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이날 반올림과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기자회견에서 "돈과 권력이 있더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어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부회장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