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인식과 감옥에 대한(고찰)
감각 인식과 감옥에 대한(고찰)
20세기 지구를 찾는 수 많은 외계인종 중에 인간과 조우 후 인간의 감각의 '인지' '인식' 범위가 어느정도 인가를 실험을 통해 입증해 보이기로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당시만 해도 대부분 인류는 우물안의 개구리 마냥 제한적인 인식과 좁은 범위로 지구 속에 역사를 통해 진리화 하고 문명화 되어 가는 시기였다.
오늘날 지식으로는 근원 무극과 양극성 세계와 상반된 세계들 그리고 깨달음이나 해탈에 관한 高고차원적인 영역에 대해 인간적인 제한적인 감각 수준에서 어느정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높은 세계를 직접 수행을 통해 6감 눈이나 여타 감각으로 초월중 초월을 통해 확인 할 수 없다 또 의식 레벨에 따라 인식은 상이하게 다르며 부처가 아닌 이상 완전한 인식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물질 우주사이 평행공간과 다차원 세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또 한 수직적 상승 차원이 존재한다.
현재 대부분 인류가 과도기를 걸처 완전한 각성단계인 깨달음과는 별게로 5차원 진입을 목표로 지구와 공명 주파수 상승과 함께 높은 차원으로 부터 빛줄기가 뿌려지면서 상승 중이다. 나의 이해로는 유망있는 영성그룹중 지도자가 현재의 과정 상 근원과 연결이 최종 목표에 두지 않고 현재의 기점으로 5차원 상승으로 이전부터 인류가 수 많은 카르마와 3차원 에고 윤회를 정리하여 마감하고 다음 생에 5차원에 태어나 지난 세월동안 카르마 에고를 가지고 있지않고 바로바로 그생에 풀어버리고 사후로 돌아간다고 한다.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 부처들이 하는 해탈과 비슷하지만, 완전 부처와 같은 수준상 해탈이 아닌 부분 3차원적 윤회를 마감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물론 5차원은 사이클은 그 한 생 출생으로 카르마 발생과 더블어 동시에 정리하고 한 사이클 생을 마감하고 떠날때는 지워지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깨달은 부처들의 말을 빌려 또 한 우리 물질 우주 너머 의식체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高의 인지영역이 필요한 높은 3계 ~4계 수준들이 존재한다. 4계만이라도 넘는다면 중생들은 윤회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상향될 수도 있다. 이때 에고 수준의 ①마음과 의식을 맑게 정화하고 비워야 가능하다. ②인과를 넘어야 한다. ③창조와 에고를 넘어야 한다. ④깨달은 스승의 인도가 필요하다. 또 한 4계를 넘어 각각 아스트랄100등급 세계들이 있고 그세계들을 각단계마다 깨달음 단계가 있고 이것을 단번에 마스터 하던가 긴 기간을 걸치던가 배움을 통해 극복하고 상념계을 초월해 긍극에 최고의 완전한 깨달음에 들어선다. 이때를 완전한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스웨든보그식으로는 3중 영계 차원이고, 스승이라고 하는 슈리유크라데스식으로는 잛게 보통유계 상급유계 상념계라고 한다. 이 물질적인 세계도 광대하게 넓게 보인다. 또 한 수직 상승차원도 그마다 광대하다. 완전한 해탈에 있을때 전체의 인식이다. 우리가 부처의 통찰이 아닌 이상 인식 범위를 우리 자의식으로 설정 할 수는 없다. 얼마나 광대한지를 우리가 짐작하지 못 한다.
그러나 이런 저와 고차원을 논하기 앞서 우리는 이 우주가 <우주의식>이라는 단편적 귀결로 정리된다. 우주의식 너머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우주의식 또 한 인간이 인식으로 얼마나 광대한 영역인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광대한 영역이 한 일개의 인간이 표현한다면 A와 B의 판단은 각각 다르다. A는 끝도 없는 광대한 영역을 보고 벚어날 수 없어 하면서 영원한 감옥이라고 무료한 집착적 감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B의 일순간 광대한 영역을 한 순간에 파악 인지했다고 해도 그는 광대함 마저 쫍은 영역이나 다름이 아닌 협소한 세계라고 상실적 감정이나 감각으로 공허하다고 판단 할 수 있다.
즉, 세계는 광대하던 협소하던 감각의 판단 기준에 놓여 스스로 결정할 뿐이다. 스스로 감각에 올가 매어 감각적 행동 양식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마음은 일종에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제한적인 세계 구성 프로그램과 놀이 수준과 더블어 세계를 인식한다. 결코 우주를 벚어나 보지도 않으면서 지구 속에 단정 할 뿐이다. 그러나 의식적 차원으로 여행한다고 해도 여전히 상승 최고의 高를 여행했다고해도 결코 그이상 무엇이 존재한들 물질적 차원에 수십억배 버금가는 생소한 무엇들이 창조의 모습처럼 만물 사물이 보여진다해도 결국은 인식을 넘어 벚어나보아도 여전히 한계라고 판단하며 그이상 무엇의 의미를 제시할 수 없다.
우리는 물질적 차원에서 우리의 육체와 제한적인 인식구조내에 색은 크게 7~9가지 색체를 구별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색체를 이용하여 수만가지를 배합을 해서 정도 차이를 표현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받아드릴 수있는 영역은 육체적 바이오 생물 기계적 기본적인 색체일 뿐이고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다. 음이나 색이나 감각의 여러 형태들이 제한적이다. 5감을 초월한 6감을 통한 감각적 인식이라고해도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우리가 이전부터 전혀 못 보던 색들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전혀 다른 새로운 그 색들을 볼 수 없다. 만약에 수많은 우리 감추어진 질서 면을 본 다고해도 여전히 끝은 제한적이고 협소하다.
우리 인간이 높은 인식이던 낮은 인식을 통해 보던 느끼던 우주의 모든 내용물은 우주의식 범위 앉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2002년 전 꿈 속에 형이상학적 하늘을 나는 흰색 기러기들이 밝은 섬광의 빛으로 변해 땅 바닦에 추락한다. 또 두 무리의 흰 기러기 때들이 모여 두원을 그리다가 두원이 교차 합일하면서 8모양으로 순환 회전하면서 빛으로 변하던히 프라즈마 UFO로 변해버렸다. 이때 꿈은 매우 상징적인 인상을 남곁다.
차원이란 인간의 수학에서 말하는 점 선 공간과는 거리가 멀고 상하 각 차원마다 3차원에서 보는 그런 공간 구조 세계와 거의 같다. 단지 고의 옵션은 의식의 높 낮이에 따라 다르다. 수학에서 1차원 점 이라는 인식의 세계는 없다. 또 더구나 선이라는 것과 면이라는 개념의 세계는 수학일 뿐이지 공간적 차원이 아니다. 수학은 인간의 과정 진리의 도구일 뿐이다. 부처 또 한 이런 동질한 주장을 언급했다.
우리가 자유를 가진들 그것을 뫼비우스띠처럼 영원한 우주 감옥이라고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반대로 감옥이 아닌 자유라고 해도 그럴게 판단할 수 있다. 근원 무극 神신은 단지 지혜도 필요 없다 단지 고요속에 관측할 뿐이다.
이모든 것은 감각적 판단들 일 뿐이다.
뫼비우스띠에 영원히 풀려나지 못 하는 우주의 감옥 저승 3계~4계나 이 우주 넘어 아스트랄100세계나 상념계 너머 근원 사이에도 환상 마야의 꿈과 神신의 세계는 밖이 존재 하지 않는 의식의 세계 영원한 감옥이다. 내가 주장하는 감옥이라는 타이틀은 지옥이나 천당따위를 말하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의 이해는 바다를 떠나 살수 없는 물고기와 같다. 이세계는 추상적으로 인간이 인식하는 공간이라는 개념만 다를 뿐이다.
가끔은 그런생각도 든다.
모든 것은 여러분 분리할 수 없는 神신 여러분 일체 자신들 이다.
無限 끝이 없는 영역을 볼 수 없다 해도 인식하는 자는 감옥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無限하지 않는 유한한 광대한 영역을 한 순간에 파악한다고해도 여전히 감옥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나 후자의 인식이던 간에 모든 것은 우주의식 속에 있다. 인간은 제한적인 사고로 자신과 사물을 분별하는데에서 지각하기때문에 이런 익숙한 지각방식으로 저 높은 高세계를 똑같이 볼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우주의식 속에 내제하든 제한적인 사고와 지각을 통해 인식되는 3차원 일상 세계와의 내 외부 자각은 판이 하게 다르지만, 얼마든지 우주의식 속에 삶의 선택은 주어진다. 밖이라고 인식하는 세계와 내부라는 세계는 본래 하나에서 시작한다. 당신들의 감각적 판단만이 인식 지각 분별할 뿐이다.(高)上下 세계를 구별하고 나누어도 감옥개념은 당신 감각 감정 인식 판단에 헤메이는 것과 같다. <외부라는 것은 우주의식 범주 않에 있고 내부라는 것도 우주의식 범주 않에 있다. 단지 내부로 통하여 외부의 우주 일체 전체로써 자각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의식이 우주의식이 되는 것이다. 작게는 여러분 뇌의 의식이다. 그래서 스승들은 내부를 찾으라 한다>
수조년을 통한 창조 드라마에서 수 많은 배역과 드라마와 게임을 한다해도 긍극에 부처와 크라이스트가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과제는 이 우주만물이 미스터리한 존재 자체가 영원한 과제로 남는다. 순수한 영은 영원하고 항상 존재 한다고 한다.
무와 끝이란 마야 환상속에서의 개념 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無는 근원 무극의 정지된 神신적 본질이고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고 하는 개념의 無가 아니다.
그러나 창조된 세계의 게임꾼인 우리 절대적 진아의 측면은 상대적인 다단계 하위 자아들을 통해 진아는 꿈 꾸는 방편의 꿈 조각들 일 뿐이다. 여기서는 빛의 프리즘 영역 세계에 창조 묘사된 가상 꿈 세계는 상대적 존재와 무가 있다.
창조는 우리 근원에서 끌어온 리듬과 에너지와 암호 빛 기하학 코드 기호를 빌려와 창조의 세계를 펼처놓았다. 그러나 창조는 본래 있던 내용물을 재구성 한다기보다 빛 세계와 환상세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내용물과 예술적 가치를 품는 고품격 예술품과 영적 경이의 빛 과학적 기술이라는 창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세계를 신성한 측면에서 다양하게 새롭게 재구성하게 된다. 또 한 인간이 제한적인 자아를 통해 그보다 낮은 수준의 양극성 창조를 하므로써 (高)上의 세계와 下세계가 대치되는 구도에서 부조화된 세계와 조화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진화의 한 틀로 보여진다. 진화는 세롭게 창조되는 세계를 통해 창조이전의 습을 따라 경험을 통해 조화를 이룩하는 거대한 의식들의 세계라고 본다. 상징적인 것은 펼쳐진 세계와 접혀진 세계이다. 의식의 흐터짐과 재구성이다. 부처 크라이스트 근원 무극 神신 적 질서와 카오스 개념은 단지 제한적인 망각과 완전성 사이의 차이 점이다.(아마도 누군가는 수많은 화신은 꿈을 통해 복습해야할 과정과도 같다 그러나 누구던 부처가 될수 있는 선택권은 영원히 주어진다. 부처가 된다고 해도 놀랄만한 무엇은 아니다.)
그것은 내부가 외부세계라고 하는 또 다른 세계를 탐험하면서 긍극에는 내부에 대한 세계를 탐구해나가게 된다.
우리에게 남는 물음의 과제물은 영원한 감각 내지 의식의 존재가 미스터리 할 뿐이다.
P.S 뭔가가 느껴지는 것을 이야기 해야 할때 현실의 메카니즘이나 개념이나 언어가 필요하다. 잡히지 않는 소스들 나는 지금 뇌에 에너지와 정보 기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적절하게 자극을 주어야할 새로운 용어와 발견을 해야 할 것 같다. 뇌가 정적인 펠스로 가는듯 하다. 인식 너머 무의미하면서도 쓰고자 하는 것이 흐트러져 명확하지 않다.
無限의主人 김경호 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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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옴 마니 반메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