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배후에 북한'…'왜곡'은 어떻게 '집단최면'이 됐나

"왜곡 기원은 전두환 신군부

5공 옹호세력·지만원 재생산"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 신군부에 맞선 시민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이다.

항쟁은 '12·12 및 5·18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도 부당한 국가 폭력에 맞선 정의로운 저항으로 정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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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 사건' 선고공판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1980년 5월 당시 주요 사건과 역사 흐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은 어쩌다가 5·18을 왜곡하는 주요 프레임이 되었을까.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는

왜곡의 기원을 학살 당사자인 신군부 세력이라고 지목했다.



5·18연구소에 따르면 '폭동', '사태', '소요' 등 최초로 항쟁에 대한 거짓 정보를 만들어 유포한 주체는 계엄군을 지휘했던 전두환 신군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5·18 때 학살도 발포명령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등 신군부 핵심 책임자로서 참회와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왜곡은 1989년 국회 청문회, 1995년 검찰 조사, 1997년 대법원 판결, 1998년 특별법 제정을 거쳐 5·18 진실규명이 본격화하자 5공화국 정통성 옹호에 나선 일부 세력에 의해 확대됐다.

왜곡은 이후 호남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인터넷 콘텐츠와 결합해 5·18 희생자 시신이 담긴 관을 '홍어 택배'로 조롱한 인터넷 게시물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신군부 논리를 재생산한 지만원(75)씨는 '폭동을 일으킨 북한특수군이 요직을 차지했다'며 5·18이 기획·연출된 폭동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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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지만원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5·18기념재단이 올해 초 전문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1명은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과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서 성인 11.9%, 청소년 8.4%가 '5·18이 북한과 연결됐다'는 질문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성인 13.3%, 청소년 12%는 '5·18이 불순 세력이 주도한 폭력사태'라는데 동의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왜곡 대응 차원에서도 실질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며 "5월 정신이 헌법 전문에 들어간다면 5·18 왜곡헌법 정신 부정이 된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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