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v.kakao.com/v/356202472
임을 위한 행진곡
5.18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당시 신군부 세력인 전두환,노태후에 맞서서
장렬히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기꺼히 숭고하게 희생된
학생과 교사, 민간인들의 유산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유산을 지켜야만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가사)
임을 위한 행진곡의 유래
임을 위한 행진곡과 역대 대통령
임을 위한 행진곡.mp4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광화문에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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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가사)
문재인, 광주 유세장
수천명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슬픈 영혼결혼식,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시나요
http://v.media.daum.net/v/20170825101106369
[정리뉴스] 당시 미국은 5·18을 어떻게 봤을까?
박용필 기자 입력 2017.08.25. 10:10 수정 2017.08.25. 11:51
[경향신문] 지난 23일 국방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에 대해 특별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18 당시 무장 헬기들이 시민들을 향해 기총 소사를 했음을 입증하고, 최근 당시 공군 조종사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광주 폭격 작전’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헬기 사격’의 경우 여러 명이 증언했습니다. 지난해 ‘광주 전일빌딩 탄흔’이 발견됐습니다. 군 관련 문서 등에서 ‘헬기 사격’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조사는 ‘헬기 사격’의 실재 여부를 밝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초 발포 명령자’ 규명이 최종 목표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즉 누가 주모자였나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죠.
미 국방정보국 비밀문서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이 ‘전두환의 게임 플랜’이었다고 분석한 미 국방정보국(DIA)의 1980년 6월4일 기밀문서.이를 두고 다시 곱씹어 볼만 한 보도를 소개합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 5·18 전후 미 정부 군사·외교 비밀문서 3800여쪽을 분석했습니다.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1991년부터 정보공개로 모아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자료입니다.
이 문서들에선 군의 ‘헬기 사격’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문서 중 헬기 관련 언급은 “한국군이 부상자 이송을 위해 헬기 출동을 요청했다” “폭도들이 헬기들을 향해 사격했다는 보고가 있다” 정도 기록됐습니다. 그러나 해당 문서들은, 5·18 당시 학살과 발포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경향신문 2017년 4월14일자문서를 분석한 경향신문은 지난 4월14일자 기사를 통해 “미 국방정보국(DIA) 소속 요원은 1980년 6월4일 한국에서 본국으로 보고한 전문을 통해 5·18 당시 계엄군 발포의 배후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있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혼란 업데이트’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서 요원은 “5월17일 광주에 배치된 7공수여단이 과잉반응을 보인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 그‘과잉반응’이 전두환의‘게임 플랜(game plan)’의 일부”였다는 분석을 덧붙였습니다.
1980년 5월20일 작성된‘광주 상황 업데이트’에서도 5·18 당시 계엄군의 대응과 관련 “군대는 그들의 힘을 자제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계엄군의 잔인한 대응을 두고 1980년 6월9일 작성된 DIA 문서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군사정권의 지배자들이 베트남전에서 얻은 전투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기사는 이같은 문건의 내용들을 소개하며 “미국 정부는 당시 학살의 배후로 전두환 씨를 지목했다”고 전합니다. “당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며 사실상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당시 미국의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문서에는 당시 미국이 5·18 당시 광주를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관한 내용도 나옵니다.
당시 주한 미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1980년 6월10일 본국에 보고한‘광주사태에 대한 내부 정보원의 기록’ 문서에서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공권력에 의해) 극도로 몰아붙여진 시민들의 시위였다. 이 시위는 정책과 계획이 없는 폭력적 분노였으며,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무법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5·18사태는‘보스턴 차 사건’과 비슷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773년 보스턴 시민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판매권 독점에 항의하자 영국 정부가 무자비하게 진압해, 결국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사건입니다. 기사는 이를 두고 미국이 당시 광주를 “폭도 아닌 자유시민의 도시”로 봤다고 전했습니다.
5·18 당시 미국 비밀전문인 ‘체로키 파일’ 공개를 주도한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4일 광주 동구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상황을 이같이 판단한 미국이 왜 학살을 막지 못했는지도 다룹니다. 기사는 외교 문서를 직접 발굴한 언론인 팀 셔록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는 “미국은 인권보다 안보에, 박정희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보다 군부 내 분열 방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며 “그때 미국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시민들 반감 알았다면 한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했다고 합니다.
셔록은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한국을 잘 이해했던 괜찮은 외교관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외교 활동이 주로 정부와 군의 고위인사들에 국한돼 있었고 김영삼·김대중 등 야당 지도자들이나 정부 반대파들과 직접 만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미국은 박정희 체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이 얼마나 큰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한국 사회 전체보다 군부 내의 균열을 막는 데 더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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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싫어하는 이유
http://hub.zum.com/yanoljacast/7173
반드시 실제로 봐야 할
세계 속 랜드마크 7곳
문재인 박근혜
우산으로 알아보는 매너차이 어떻길래?
박근혜 청와대 관저 거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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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70825110505240
취재파일] 5.18 당시 공군작전사령관
"광주 폭격 준비 안 했다"..엇갈린 증언
김태훈 기자 입력 2017.08.25. 댓글 1408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공군 F-5 전투기들이 광주를 폭격할 준비를 했었다는 의혹이 대통령의 진상 조사 지시로 확대일로입니다. 의혹은 "5.18 당시 F-5에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광주 지역 폭격을 준비했었다"는 경기도 수원 1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퇴역 조종사의 증언에서 촉발됐습니다.
현재까지는 의혹입니다. 역사적 사실로 판명되려면 다른 관련자들이 일치된 증언을 하고 계엄사령부 또는 공군 지휘부가 광주 폭격 준비를 명령한 문서 같은 것이 나와야 합니다. 문서는 국방부가 5.18 관련 문건을 파기하지 말라고 전군에 지시했다고 하니, 만약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햇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서를 제외하면 당장 확인해볼 수 있는 지점은 당시 10전투비행단의 지휘 계통입니다.
의혹을 제기한 공군 조종사의 당시 지휘관들은 김홍래 대대장, 정홍식 10전투비행단장, 김상태 작전사령관, 윤자중 참모총장이었습니다. 윤자중 전 참모총장과 정홍식 전 단장은 작고했습니다. 김홍래 전 대대장은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5.18 때 공대지 폭격 준비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공군의 작전을 총괄하는 공군작전사령관이었던 김상태 예비역 공군 대장이 남았습니다. 10전투비행단이 광주 폭격을 준비했다면 지시는 작전사령관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5.18 광주 폭격 준비'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쥔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김상태 예비역 대장입니다. 김 예비역 대장은 어제(2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5.18 때 광주 폭격 준비를 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다음은 김 전 대장과의 일문일답입니다.
Q. 북한 도발에 대비해 F-5에 공대지 무장하는 일이 있나?
"(대북 공대지 무장은) 여러 (전투기) 부대에서 다 한다. (대북 공대지) 임무를 받은 부대들이 있다."
Q. 대통령의 진상 조사 지시가 있었다.
"조사해도 아무것도 없을 텐데….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다."
Q. 당시 계엄사에서 내려온 지시는 없었나?
"그런 것은 없었다. 공군 작전은 계엄과 관계가 없다. 계엄사에서 항공기 출동에 대해서 내려보낸 것이 없다. 내가 작전사령관이었으니까 잘 안다. 지시 내려온 일도, 받은 일도 없다."
Q. 계엄령이 떨어지면 각 전투비행단에서 자동으로 대비태세를 격상하나?
"계엄령이라서가 아니라 데프콘이 상향 조정됨에 따라 대비태세를 격상하는 것이다. 데프콘에 따라 각 비행단은 매뉴얼대로 대비태세를 올린다. 전 부대가 각각 대비태세를 취한다."
Q. 작전사령관 모르게 전투비행단에 광주 폭격 준비 같은 특별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나?
"없다. 절대 없다."
5.18 당시 공군 작전사령관이었던 김상태 예비역 대장은 '광주 폭격 준비'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F-5도 대북 작전에서 공대지 무장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의혹을 폭로한 퇴역 조종사의 "대북 작전을 할 때는 F-5에 공대공 무장만 장착한다"는 증언과 전혀 다른 말입니다.
그런데 공군에는 '쥐를 때려잡는다'는 뜻인 '구서'(驅鼠)라는 작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북한의 해안 침투를 격퇴하는 작전입니다. 공군 현역 대대장인 모 중령은 "북한이 침투정이나 반잠수정을 동원해 해안 침투를 시도하는 상황을 상정해 F-5에 공대지 무장을 하고 출동하는 구서 훈련을 했다"며 "북한 도발에 대비해 공대지 무장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F-5에 공대지 무장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 광주 지역 폭격을 준비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5.18 광주 폭격 준비' 의혹은 이제 진실 게임의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습니다. 조종사들과 지휘관들의 증언이 철저히 배치됩니다.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든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지휘 라인에 있던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 부정확한 사실, 또는 부분적인 사실만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가 움직이고 있지만 국방부 만으로는 풀지 못할 의혹으로 보입니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증언에 나서고, 또 관련 자료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