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의식과 관련하여 우리에게는 세 가지 상태가 존재합니다.
즉, 어린아이 같은 상태, 자아가 확립된 어른의 상태, 자아를 사용하는 자유인(自由人)의 상태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상태를 컴퓨터 자판에 비유하자면, ‘어린아이 의식’은 자판을 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자판 위에서 무엇을 두드릴지 몰라 멍하게 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어떤 자판에도 익숙하지 않으므로 하나의 자판에 끌리거나 밀쳐내는 것이 없습니다.그래서 그는 ‘가’를 쳐야하는 상황이 오면 온통 혼돈에 빠지며 헤맵니다. 다만 자신이‘헤맨다는 의식’이 없을 뿐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치심(癡心-어리석은 마음)이라 합니다.
반면 ‘자아가 확립된 이’는 어떤 한두 가지 자판에 손을 대고 있으며, 전체 자판을 대강 익히기는 했으나 손이 늘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판을 칠 때 ‘제자리’란 아무 자판에도 중요점을 두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 어느 자판이든 칠 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자아’는 아직 그런 제자리에 가 있지 못하며 몇 가지 ‘익숙한 자판’에 습관적으로 끌리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그와 다른 새로운 상황이 오면 혼란에 빠져 끌림과 밀침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탐심(貪心)과 진심(嗔心)에 상응됩니다. 탐심은 끌리는 마음에서, 진심은 저항하고 밀쳐내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유인’은 어떤 자판에도 끌림이나 밀침이 없으며 항상 ‘제자리’에 떠 있습니다. 이렇게 떠 있는 것은 ‘어린아이 의식’이 몰라서 멍하게 떠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떤 자판에도 닿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의 의식은, 자판에 익숙한 사람이 중간 줄의 공중에 손가락을 위치시키고 있는 것과 같아, 그의 다섯 손가락은 언제나 ‘현재’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나의 자판을 치고는 다시 원위치에 와 있기에 다른 자판을 빠르게 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자판에 닿는 것’을 ‘어떤 것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비유해보면,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항상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자판에도 닿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판에서 사람은 하나의 자판을 치면 손가락이 지금 친 그 자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자판을 쳐야 할 때가 되면 다시 그 손가락을 움직여 다른 자판으로 가져갑니다. 서툰 사람은 항상 어떤 자판에 손가락이 머물러 있으므로 무언가를 늘 ‘의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닿아 있는 것에 머물고 애착하며 그렇지 않은 것에 저항 합니다.
그러나 능숙한 사람은 손가락이 어떤 자판에도 닿아 있지 않으므로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의식하고는 다시 아무 의식이 없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평시에 ‘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반응할수 있다는 면에서 늘 ‘깨어 있습니다.’
따라서 '깨어있다’는 것과 ‘의식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뭔가 ‘안다’는 느낌이나 생각, 어떤 내용물에 일정부분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면 ‘깨어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나 생각, 의식적 내용물에도 빠져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언제나 ‘의식의 바다’를 수영해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하는 자’는 언제나 ‘의식의 바다’에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인의 의식은 아무런 ‘의식’도 없지만 그렇다고 잠자거나 의식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어떤 것을 ‘안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또 무언가 ‘텅 빈 느낌’이나 ‘순수의식 상태에 있다’는‘느낌’도 없습니다.
텅 빈 느낌이나, 무의 느낌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스페이스 바를 계속 누르고 있거나, 모니터에 어떤 글자도 쓰지 않아 기능하지 않는 쉬프트 키를 누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긴장하거나 노력을 해야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인의 의식은 아무런 노력이 없이 늘 우리의 본성이 텅 빈 상태라는 것을 압니다. 그는 어떠한 안다는 ‘느낌’도 없지만 동시에 모른다는 ‘느낌’도 없고 더욱이 잠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깨어 있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언제든지 ‘아는 상태’를‘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혜의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언제든 ‘아무것도 모른다, 또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면, 또 언제든 거기서 필요에 따라 무언가를 의식하거나 아는 상태로 나올 수 있다면 의식의 ‘제자리’를 보고 그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리를 본 사람은 더 이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흔들릴 중심이 없으며, 그 어떤 자판 또는‘의식’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리’를 안 이는 이제부터 ‘사용하는’이 펼쳐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사용하며’ 살게 됩니다. 그것이 생각이든, 감정이든, 느낌이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쓰면서 살아갑니다. (출처)www.here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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