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꿈은 깨어나는 자와 잠자는 자가 구분되어 있죠. 즉 주시자와 주시당하는 자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저는 공성이라는 것은 공한 성품으로 이해하지 공의 세계가 있다....라고 현실계와 구분되는 공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시자를 상정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공의 세계와 그와 반대되는 상대계를 있다는 의미이죠. 공성은 말그대로 공한 성품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인연에 의해 이합집산하기에 거기에 독자성이 없다는 의미로 공하다...라는 의미를 씁니다. 만물이 서로 인연법에 의해 나투어지기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로 공하다...라고 쓰지요....여기서 없다는 의미의 없을무를 쓰지는 않습니다.
현실은 이 공한 성품이 그림자처럼 비추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공한 성품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빛이 밝음이라고 보이는 것은 주변 사물이 또렷이 빛날 때 빛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 빛을 실제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성은 실제로는 없으며 현실로서 알 수 있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봐요. 공성이 있기에 즉 서로 집착할 것이 없는 성품이 만물에 머금어져 있기에..그 성품이 물질계를 비롯한 전우주에 머금어져 있기에 서로 인연되고 인연되어져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삼라만상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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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에게 보내드린 카톡이다.
불교에서도 헛되다 혹은 무상하다, 덧없다, 번개불 같이 이슬처럼 덧없는 것이 사바세계이다..라는 말을 한다.
힌두교에서도 마야이다, 거대한 꿈이다, 혹은 환상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안다.
불교에서 덧없다고 할 때는 무상하다는 것이고, 이는 연기법..모든 것이 인연지어진 것이기에 인연이 흩어지면 스러지는 것이기에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사바세계는 꿈이다, 환상이다, 만물은 브라흐마가 꿈꾸는 환상의 세계이다..라는 적극적 개념은 아니다.
미묘한 어감차이인데, 여기서 수행의 지향점이 확연히 벌어진다.
어떻게 보면 집착하기에 덧없는 것이지
반대로 덧없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덧없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영성계와 수행계에서 석가모니께서 내주신 결론을 받아쓰기한 것일 뿐...
석가모니께서 의도하신 진짜 의도는
집착하는 중생심이 부질없고 덧없고 무상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중생심을 깨는 바즈라의 힘은
연기의 법으로 인해 만물이 서로 엮어지고 다시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그러한 이합집산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한 '법' 다르마로서 존재하기에
석가모니불의 법문으로 만물이 시들고 다시 피어나고 생장하고 다시 시드는 연기의 과정을 드러내었다.
덧없기에 꿈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까?
아니면 집착하는 것을 보시고서 석가모니께서는 그것을 덧없다고 한 것일까?
연기(緣起)의 공성(空性)에서는 일체의 집착이 더럽고 환상이고 마야이고 원래는 없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집착이 연기법의 철저히 지켜짐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집착이 시들고 다시 모이는 그러한 과정에서 덧없음의 공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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