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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하고 절대적 창조주라 무조건적으로 인간은 존경을 다한다
왜일까?
나보다 더 절대적인 상위존재 그렇다고 존경 한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느님이라고 무조건 존경한다
여기에 한대목 내가 탐구한거랑 일치하는 내용 발취해서 올립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존재한단 말이오. 옛부터 문헌에 나와 있어.”
“그 문헌은 누가 썼지?”·
“그 하느님을 본 사람이지.”
“그런 건 온 우주에서 썩어문드러질 만큼 우리는 보아왔다.
그리고, 결과라고 해봤자, 그 모두가 다 서로 전혀 다른 견해들이었다.
허나 공통되는 특징은 있었지.
그건 이렇다. ‘우리 민족이 인식한 그것만이 제일이다.’라는 각 종족의 주장뿐이란 말이다.
힘이 으뜸으로 많고, 지배력이 으뜸이고, 애정이 으뜸이고, 파괴력이 으뜸이고 결국 그놈은 관념의 으뜸 경쟁 표적이 되어버렸다는 공통점이다.”·
“으뜸이니까 신(神)이지”
“왜 버금이면 안되지?”·
“그래서는 궁극의 지배자는 아니야”
“봐라, 역시 자네들은 으뜸 찾아내기를 좋아하는 거지.
그래 그 으뜸인 놈이 있기 전에는 누가 있었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무(無)가 으뜸이잖아?”·
“그건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논할 가치가 없다”
“좋겠지. 그럼 다시 으뜸놀이의 논의를 해보지. 그래, 그놈은 어떤 모습 인가?”·
“장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즉, 더부룩한 머리에 갤쭉한 눈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수염이 있는 장로이고. 그러나 그건 한때의 가상이고 신에게는 모습이 없다."
“그럼 그 작자에겐 뭐가 있는가?”
“지혜, 지식, 힘이다”
“얼마 만큼인가?”·
“무한이다”
“자네는 바보인가?? 무한을 자네는 본 일이 있는가? 설마 별이 반짝이는 공간의 저어기 저편도 아마 그렇게 되어있겠지 하고 짐작을 해서 무한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 아니, 그대로야”
“그럼 무한히 작은 공간을 자네들은 얼마만큼 탐색했나?”·
“지금으로서는 기계를 통해서 직접은 보이지 않지만 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럴 테지. 자네들이 본 것은 무한이 아니라 제한의 세계야.
그러니까 자네들에게는 무한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무한이란 자네들의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좋다. 그럼 당신들은 무한을 알고 있는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허나, 무한이 된 적은 있지.
이봐, 잘 들어, 원숭이씨.
무한이 된다는 건 무한해진다는 거야.
자네들이 말하는 바 시각(視覺)같은 것도, 인식도, 그 범위, 내용, 뭐든 모조리 다 무한이야.
한계없이 퍼져나가고, 또 무한 마이크로까지 오므라드는 거야.
무한히 말이다.
그러므로 끝이 없다.
끝이 없는 무한 속에서는, 인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나누는 것도 가르는 것도 없다.
어디서 어디까지라는 한정도 하지 않아.
따라서, 무한이 될 수는 있어도 그걸 볼 수는 없어. 알겠나, 원숭이??”·
“그럭저럭”
“그럼, 논점을 되돌려보자. 자, 그 우주 속에서, 최초로 한정된 자를 신 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 말이 되겠지”
“단지 최초라고 해서 존경하거나 복종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니, 아니, 신은 모든 시간에 편재하는 것이다. 최초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최후에도 있다”
“그저 있는 것 뿐인가?”·
“우주를 운영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생물이나 물체를 진화시키는 것이 그의 의무인 거야”
“이봐 이봐, 원숭이여. 최초에 있던 놈이, 더구나 최후까지 있는 놈이, 대체 다른 어떤 존재로부터 의무따위를 강요당하는가? 이 멍청이야!”
“아니, 저 …, 의무는 아니야, 그의 즐거움, … 그래, 맞아, 취미야. 창조는 신의 즐거움이라고 동양의 경전에도 씌어있지.”
“그래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 즐거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거지?”·
“우리가 웃을 때의 감정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작용이다”
“허허…??? 그럼 이런 말인가?자네들이 포르노잡지를 보면서 빙싯거리고,‘이거 정말 끝내주는군’ 하면서 빙싯거리며 하느님인지 뭔지의 창조물을 먹기도 하고, 또는 먹지도 않으면서 낚시질을 하거나, 빙싯거리면서 깔아뭉개고 살육을 한단 말이지. 그런가, 신이란 그런 것인가… 요컨대 수단이야 어떻든 ‘빙싯빙싯’ 한단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야. 신의 유희는 보다 건전하다”
“허헛헛헛…???? 건전하다고? 그래? 그럼 건전이라는 걸 여기서 정의해보라”·
“즉, 그…, 말하자면, 즉, 좋은 놀이이다. 악의 없는”
“허자네들의 아이들이 악의도 없이 곤충의 다리를 톡톡 분지르면서 빙글 빙글 웃음을 흘리고 즐기는 것을 보는데, 바로 그건가?”·
“아니야. 그건 달라. 그들은 아직 생물의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건 다르다. 그것은 신의 유희가 아니다”
“이봐, 아가야. 벌레에겐 아픔이 없어요.
애를 쓰긴 하지만 자네들이 아주 싫어하는 그 꿈틀꿈틀 움직이는 발이 없어지니 말이야.
하지만 아픔은 없어”·
“다른 생물이 곤란해 하는 짓을 하느님은 하지 않는다”
“그럼 자네들에게 먹히는 다른 생물들은 곤란해하지 않는단 말이군??”
“아니…, 그…, 그야 곤란하겠지. 그러나 신이 이 먹이의 사슬이라는 법칙을 만들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지”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신은, 먹혀서 곤란한 것과, 먹지 않으면 곤란한 것 두 가지를 만들고는, 한쪽은 곤란해도 좋고, 한쪽은 곤란하지 않도록 편을 들어주는 놀이를 하느님은 묵인하고 있다고 해도 되겠군”·
성경에 창세기 빛이 있으라 하메 빛이 있어 좋았더라
지구와 인간은 악세사리 개념일까 ?
깨달음 의 세게에선 하느님 있기전 그것은 없음 이다
무 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모든 붓다도 공을 야기 하듯 없음 이라 하겠다
하느님을 존경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왜일까?
나보다 더 절대적인 상위존재 그렇다고 존경 한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느님이라고 무조건 존경한다
여기에 한대목 내가 탐구한거랑 일치하는 내용 발취해서 올립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존재한단 말이오. 옛부터 문헌에 나와 있어.”
“그 문헌은 누가 썼지?”·
“그 하느님을 본 사람이지.”
“그런 건 온 우주에서 썩어문드러질 만큼 우리는 보아왔다.
그리고, 결과라고 해봤자, 그 모두가 다 서로 전혀 다른 견해들이었다.
허나 공통되는 특징은 있었지.
그건 이렇다. ‘우리 민족이 인식한 그것만이 제일이다.’라는 각 종족의 주장뿐이란 말이다.
힘이 으뜸으로 많고, 지배력이 으뜸이고, 애정이 으뜸이고, 파괴력이 으뜸이고 결국 그놈은 관념의 으뜸 경쟁 표적이 되어버렸다는 공통점이다.”·
“으뜸이니까 신(神)이지”
“왜 버금이면 안되지?”·
“그래서는 궁극의 지배자는 아니야”
“봐라, 역시 자네들은 으뜸 찾아내기를 좋아하는 거지.
그래 그 으뜸인 놈이 있기 전에는 누가 있었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무(無)가 으뜸이잖아?”·
“그건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논할 가치가 없다”
“좋겠지. 그럼 다시 으뜸놀이의 논의를 해보지. 그래, 그놈은 어떤 모습 인가?”·
“장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즉, 더부룩한 머리에 갤쭉한 눈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수염이 있는 장로이고. 그러나 그건 한때의 가상이고 신에게는 모습이 없다."
“그럼 그 작자에겐 뭐가 있는가?”
“지혜, 지식, 힘이다”
“얼마 만큼인가?”·
“무한이다”
“자네는 바보인가?? 무한을 자네는 본 일이 있는가? 설마 별이 반짝이는 공간의 저어기 저편도 아마 그렇게 되어있겠지 하고 짐작을 해서 무한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 아니, 그대로야”
“그럼 무한히 작은 공간을 자네들은 얼마만큼 탐색했나?”·
“지금으로서는 기계를 통해서 직접은 보이지 않지만 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럴 테지. 자네들이 본 것은 무한이 아니라 제한의 세계야.
그러니까 자네들에게는 무한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무한이란 자네들의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좋다. 그럼 당신들은 무한을 알고 있는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허나, 무한이 된 적은 있지.
이봐, 잘 들어, 원숭이씨.
무한이 된다는 건 무한해진다는 거야.
자네들이 말하는 바 시각(視覺)같은 것도, 인식도, 그 범위, 내용, 뭐든 모조리 다 무한이야.
한계없이 퍼져나가고, 또 무한 마이크로까지 오므라드는 거야.
무한히 말이다.
그러므로 끝이 없다.
끝이 없는 무한 속에서는, 인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나누는 것도 가르는 것도 없다.
어디서 어디까지라는 한정도 하지 않아.
따라서, 무한이 될 수는 있어도 그걸 볼 수는 없어. 알겠나, 원숭이??”·
“그럭저럭”
“그럼, 논점을 되돌려보자. 자, 그 우주 속에서, 최초로 한정된 자를 신 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 말이 되겠지”
“단지 최초라고 해서 존경하거나 복종할 가치가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니, 아니, 신은 모든 시간에 편재하는 것이다. 최초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최후에도 있다”
“그저 있는 것 뿐인가?”·
“우주를 운영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생물이나 물체를 진화시키는 것이 그의 의무인 거야”
“이봐 이봐, 원숭이여. 최초에 있던 놈이, 더구나 최후까지 있는 놈이, 대체 다른 어떤 존재로부터 의무따위를 강요당하는가? 이 멍청이야!”
“아니, 저 …, 의무는 아니야, 그의 즐거움, … 그래, 맞아, 취미야. 창조는 신의 즐거움이라고 동양의 경전에도 씌어있지.”
“그래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 즐거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거지?”·
“우리가 웃을 때의 감정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작용이다”
“허허…??? 그럼 이런 말인가?자네들이 포르노잡지를 보면서 빙싯거리고,‘이거 정말 끝내주는군’ 하면서 빙싯거리며 하느님인지 뭔지의 창조물을 먹기도 하고, 또는 먹지도 않으면서 낚시질을 하거나, 빙싯거리면서 깔아뭉개고 살육을 한단 말이지. 그런가, 신이란 그런 것인가… 요컨대 수단이야 어떻든 ‘빙싯빙싯’ 한단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야. 신의 유희는 보다 건전하다”
“허헛헛헛…???? 건전하다고? 그래? 그럼 건전이라는 걸 여기서 정의해보라”·
“즉, 그…, 말하자면, 즉, 좋은 놀이이다. 악의 없는”
“허자네들의 아이들이 악의도 없이 곤충의 다리를 톡톡 분지르면서 빙글 빙글 웃음을 흘리고 즐기는 것을 보는데, 바로 그건가?”·
“아니야. 그건 달라. 그들은 아직 생물의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건 다르다. 그것은 신의 유희가 아니다”
“이봐, 아가야. 벌레에겐 아픔이 없어요.
애를 쓰긴 하지만 자네들이 아주 싫어하는 그 꿈틀꿈틀 움직이는 발이 없어지니 말이야.
하지만 아픔은 없어”·
“다른 생물이 곤란해 하는 짓을 하느님은 하지 않는다”
“그럼 자네들에게 먹히는 다른 생물들은 곤란해하지 않는단 말이군??”
“아니…, 그…, 그야 곤란하겠지. 그러나 신이 이 먹이의 사슬이라는 법칙을 만들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지”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신은, 먹혀서 곤란한 것과, 먹지 않으면 곤란한 것 두 가지를 만들고는, 한쪽은 곤란해도 좋고, 한쪽은 곤란하지 않도록 편을 들어주는 놀이를 하느님은 묵인하고 있다고 해도 되겠군”·
성경에 창세기 빛이 있으라 하메 빛이 있어 좋았더라
지구와 인간은 악세사리 개념일까 ?
깨달음 의 세게에선 하느님 있기전 그것은 없음 이다
무 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모든 붓다도 공을 야기 하듯 없음 이라 하겠다
하느님을 존경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