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느 정도의 토대를 마련했으므로, 하나님의 본질과 이 우주의 창조 목적에 대해 보다 더 직접적인 논의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목적은 여러분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 여러분이 원한다면 -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로 인해, 여러분이 하나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할 수 없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희망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상승한 존재로서, 나는 하나님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내 설명에 만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 인식하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인식을 방해하는 고정된 혹은 각인된 이미지들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에서 상승하지 못한 존재로서의 여러분과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상승한 존재로서의 내가 우리가 살아가고,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곰곰이 따져보기로 합시다.
내가 말한 것처럼, 물질 우주는 영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동일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 우주의 빛은 다른 진동의 범위로 낮추어져 있습니다. 보다 낮은 진동으로 인해, 빛의 강도가 약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아직까지는 물질 우주를 빛으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태양계와 은하들 사이의 공간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거대한 지역들에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어떤 제한된 장소들만 - 여러분의 태양이 하나의 사례가 됨 - 내부로부터 빛을 방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 우주에는 빛보다 어둠이 더 많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은 어떠한 진동수 이상의 에너지들은 볼 수가 없으므로, 물질이 실제로는 미세한 에너지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없으며, 이 미세한 에너지들은 고차원의 세계로부터 물질 우주로 스며들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의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 그 너머에는 어떠한 전망대(observation horizon)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지닌 밀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침투할 수 없는 장벽으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이러한 느낌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길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은 다치지 않고, 타인들과 다른 형태의 생명들 그리고 심지어 물질 행성을 해칠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인간들 간에 모든 갈등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타인들을 해치는 것이 바로 자기 스스로를 해치는 거란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다면, 이러한 사람들 중의 대다수는 거기에 맞도록 행동을 교정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장애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의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해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들조차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세계에서의 삶의 목적은 진실을 제한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여러분의 근원, 즉 여러분의 창조주가 확장한 분신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 우주와는 반대로, 영적 세계는 고차원적인 진동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에너지의 강도가 더 높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영적 세계조차도, 빈 공간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빛으로 충만하며, 마치 빛의 바닷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가 있으며, 이는 곧 모든 것들이 내부로부터 빛을 방사되거나, 혹은 그것들을 통해 빛을
비추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역시도 여러분의 내부로부터 빛을 방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여러분의 진동 영역대(帶)에 존재하는 빛은 고차원의 세계로부터 여러분의 세계로 스며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빛이 나오는 방향을 따라가면, 그 빛은 특정한 형태의 세계를 창조하셨던 존재께서 창조하신 순수한 빛에서 유래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시며, 여러분을 포함하여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 ”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빛이며,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지닌 자유의지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여러분은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어느 존재가 창조주의 법칙과 창조의 의도를 거스르기로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가 무지로 인해, 즉 타인들을
해치는 것이 자기 자신을 해치는 거란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 보다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것에 대해, 많은 존재들이 그러한 것들과 맞서기로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를 해하지 않고도, 타인들을 해칠 수 있다고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한쪽 길은 지옥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른 쪽 길은 천국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가정합시다. 아무도 어떤 길로 가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두 개의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가 있을까요? 선택의 결과를 알지 못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가 있을까요?
따라서 하나님을 직접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혹은 적어도 하나님의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거스를 것인지를 과연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12)”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는 직선적이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은 직선적인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에, 실체에 대한 직선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물질 우주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과학은 이미 물질 우주를 벗어난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인간의 마음은 물질 우주를 벗어난 어떤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를 합쳐, 물질 우주를 벗어난 어떤 것을 보면서, 오직 극소수의 과학자들만 - 늘 그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은 언젠가는 마음이 지닌 주요한 특성들 가운데 하나가 지각 능력이며, 마음으로 지각하는 것이 육체적인 감각을 통한 지각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마음이 지닌 지각능력을 오로지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만 인식하도록 길들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물질 우주를 벗어난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으며, 아니 차라리 그것을 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의식의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마음은 그것을 불필요한 정보로 걸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각 능력이 감각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마음은 훈련을 통해 다시 길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직관이 첫 단계이며, 나머지 것들도 뒤따르게 됩니다. 내 말의 요지는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의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모든 영적 세계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낮은 영적 세계를 지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점차적으로 올라가, 형태의 세계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지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한 단계 더 나아가, 창조주 자체를 체험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해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고차원적인 세계에 대해 세부사항까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관심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물질 우주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 직접적인 체험 혹은 내적인 앎을 통해 - 영적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장 높은 영적 세계마저 뛰어넘어 존재하는 어떠한 현존, 어떠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마음이 지닌 또 다른 능력을 사용하여, 비록 그 어떤 것에 대해 세부사항까지 직접 인식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지닌 능력으로, 어떤 것을 세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상상하거나, 개념화할 수가 있는 능력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되면 - 혹은 결부되어야만 - 이를 통해, 직접 인지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해를 확장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 세계를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영적인 가르침이 지닌 기능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체험을 방해하지 않는 한, 외적인 가르침은 직접적인 체험을 명확하게 해줌으로써, 여러분의 성장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영적 세계의 여러 단계들을 거쳐,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는 여행을 한다고 상상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단계로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요한계시록 21:6)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형태의 세계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께서 자기 자신을 형태로 표현하신 첫 단계가 바로 가장 높은 형태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두 개의 극성들, 즉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확장과 수축하는 힘, 날숨과 들숨, 음과 양으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시게 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힘들은 종종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남성과 여성으로 - 인간의 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 보이게 됩니다.
요지는 첫 단계의 표현으로써, 하나이신 창조주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두 개의 극성으로 표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성들은 반대되는 것들이 아니며, 서로를 상쇄시키지도 않습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해주고, 고양시키는 힘들입니다. 이 두 개의 극성이 서로 만나, 균형 잡힌 표현을 하게 되면, 이들은 서로를 증식시켜, 더 커지게 됩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지게 되므로, 새로운 삶의 표현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형태의 세계에서 이어지는 모든 단계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이신 창조주께서는 자기 자신을 두 개의 극성으로 표현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이신 창조주께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형태의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고 계십니다. 달리 표현하면,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비록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요한복음 1:3)”고 하더라도, 하나이신 창조주께서는 하나가 되는 것, 즉 나뉠 수 없는 전체가 되는 것을 결코 중단하시지 않으십니다.
지구 상의 많은 종교들이 이 하나이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다만 이름을 달리하고, 동일한 실체를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몇몇 종교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잘못된 개념에 대해 언급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에 따르면, 하나이신 하나님을 뛰어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뛰어난, 혹은 궁극적인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오해가 생겨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초월적인 어떤 것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부족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에고가 우월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참된 종교이며, 여타 종교들보다 우수하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는 종교가 유일한 참된 종교이며, 궁극의 하나님을 숭배하는 유일한 종교라면, 그 종교는 마땅히 지구에서 최고의 종교가 되어야 하며, - 아니라면, 적어도 에고는 그렇게 추론할 것입니다. 종교들 간의 이러한 다툼으로 인해, 상승한 호스트들은 이 행성에 고차원적인 이해를 전해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계수준에 도달했으므로, 우리는 이러한 고차원적인 이해를 볼 눈을 가진 자들을 위해, 전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실체는 직선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에게 직선적인 이미지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마음속으로 숫자 8을 상상해보세요. 숫자 8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은 연결점입니다. 여러분의 창조주는 연결점, 즉 윗부분과 아랫부분 사이의 만나는 점으로 표현이 됩니다. 아랫부분은 여러분의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형태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윗부분은 -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 여러분의 창조주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단계, 즉 하나님의 실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하나님의 단계를 하나님의 순수한 존재( Pure Being of God) 혹은 모든 것인 하나님의 현존(the Allness of God’s Presence)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Allness)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선적인 말이나 이미지로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형태의 세계를 초월해 있으며, 형태의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은 분리된 형태들을 보게 되며, 이들은 서로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차이에 의해 구별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들은 어떠한 제한들(limitations)로서, 이러한 제한들로 인해 각각의 형태는 제약을 받게 되며, 전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차이들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며, 이 세상을 일관된 전체로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Allness) 속에는 분리된 형태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모순이나 제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분리가 없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분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책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가 창조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서 여러분은 분리된 존재감을 지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개별적인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연과 분리되어 있으며, 여러분이 살고 있는 광활한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리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은 - 마음이 지닌 상상하고, 개념화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 자기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도, 타인들을 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개념화할 수가 있지만,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지는 여러분의 범위를 벗어나 있으며, 여러분의 의지와 반대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념화할 수 있지만, 그러한 법칙들은 권위를 가진 외적인 존재에 의해 여러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성향이 있으며, 이러한 법칙들로 인해, 분리된 존재로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구속당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길을 걸어감에 따라, 이러한 외적인 하나님과 유대감을 더욱 공고하게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라고 말씀하셨을 때, 표현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하나님과 하나라는 느낌을 형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그것” 혹은 더 큰 “나”와 하나가 된 “나”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서는 분리라는 느낌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 속에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 나는 이러한 존재들을 현존들이라 부르고자 하며 - 존재합니다. 이들은 개별적인 지각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와 하나라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라는 지각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 비록 전체(Allness) 속에서는 시공간이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 어떤 특정한 “점(point)”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으며, 또한 전체가 지닌 특정한 속성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과 하나이며, 전체 속의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결코 상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들을 해치면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하고자 한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분리된 결정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다른 존재들보다 더 낫다거나, 더 중요한 존재로 올라서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전체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전체 속에 존재하는 현존들은 하나님과 하나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들이 외적인 권위를 지닌 존재에 의해 자신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법칙 혹은 창조의 목적에 거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법칙이고, 그들이 그러한 목적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출처] 영적인 자유에 이르는 열쇠 / 번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