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교사들은 특정한 믿음체계라는 외적인 교리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지닌 당시의 의식 수준을 뛰어넘는 것을 갈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지닌 세계관, 즉 우상(graven image)(출애굽기 20:4)을 고수하려고 했으며, 살아 있는 진리와 연결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외적인 하나님, 즉 외적인 구세주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율법교사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악용하여, 현재 자신들이 환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고,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결되라는 부름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름은 예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바울에 의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리보서 2:5) ”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궁극적인 면에서 보면, 붓다와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길을 가는데 있어, 마지막의 단계, 즉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마음과 하나가 되는 단계를 시범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보편적인 마음이라는 전체 속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정체성이며, 이 시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지구의 사람들을 가두어두고 있는 의식을 제대로 초월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때가 되어야만, 세속적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충분히 그리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 즉 진리의 근원과 개인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사실, 여러분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과 분리되어 있으며 (나중에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따라서 중재자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재자는 두 가지 측면, 즉 두 가지의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스승, 즉 상승한 존재 혹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가이드로서 역할을 하는 지구에 존재하는 스승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면의 스승으로, 내가 그리스도 자아 혹은 상위자아라고 부르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 자아는 마음의 일부 혹은 존재의 일부이며, 이 존재는 여러분에 대해 아주 세부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삶에서 처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여러분을 안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의식 상태에 적합한 답들을 여러분에게 제공해줄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모든 진지한 구도자들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 즉 진리의 근원과 이미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결은 어떠한 외적인 스승이나 조직, 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1)”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 어떠한 의식 상태를 의미함 - 이르는 열쇠가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지식의 열쇠, 즉 개인적인 그리스도 자아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 그리스도의 자아를 보혜사(保惠師:Comforter )라고 불렀습니다. 보혜사 곧 .....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여러분의 그리스도 자아는 진실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으며, 여러분이 가진 모든 의문들에 대해 답을 해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여러분이 그리스도 자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연결을 직감으로, 내면의 안내로, 작은 조용한 소리로, 내적으로 어떤 것이 옳은지, 혹은 어떤 것이 옳지 않은지를 경고하는 느낌으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이러한 연결감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느낌을 확장시키기 위해, 적합한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기법들은 성모 마리아의 책과 예수님의 웹 사이트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의 연결을 개인적으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고차원적인 마음속에 저장된 지식은 말의 형태가 아닌, 즉 적어도 지구에 알려진 말들이 아닌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행성에서 사람들은 현재 말을 아주 모호하게 그리고 직선적인 형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은 문장을 읽고도, 서로 다른 두 개의 해석, 심지어 서로 모순되는 해석을 내놓을 수가 있습니다. 경전에 대한 상반되는 해석은 이 행성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주요한 원천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경전에 대한 해석을 놓고 종교적인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양쪽 모두가 지식의 열쇠를 사용하여, 모든 갈등을 해소시켜줄 내적인 이해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천상에는 그러한 갈등이 존재할 수가 없으며, 여러분의 그리스도 자아는 직선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 자아는 지성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며, 사회적인 규범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 자아는 직선적이지 않은, 둥근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며, 여러분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해주게 됩니다. 이러한 대화방식은 대개 마음속의 이미지나 직관적인 느낌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 말은 그리스도 자아가 표현하는 진리를 항상 직선적이고, 말의 형태로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특히 삶에 대한 보다 깊은 의문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말은 너무나 직선적이고, 부정확하며, 애매모호하여, 삶이 지닌 보다 깊은 신비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가져다 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이 지닌 제약은 이 책에도 분명히 적용이 됩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선택한 종교적인 경전을 오류가 전혀 없는 혹은 절대적인 진리의 상태로 격상시키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말로 표현된 어떠한 가르침도 절대적이거나, 혹은 오류가 전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책이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불가능한 것, 즉 삶에 대한 비-직선적이고, 둥근 형태의 진리를 직선적인 말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이 이러한 수수께끼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여러분에게 제공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지, 이 책은 여러분의 그리스도 자아로부터 직접 통찰력을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극제로서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이러한 통찰력은 대개 말이 아닌 둥근 형태의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며, 이 책에서 말하는 개념들이 진실한 것이지만, 그러한 통찰력은 외적인 말로 표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진리를 오직 내가 사용하는 말로만 표현될 수 있다고 여기는 구시대적인 덫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나는 이 책에서 현재 서구 사회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솔직하고, 이성적이며,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진리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다른 문맥에서도 똑같은 의미를 지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동일한 개념을 일리아드(Iliad)나 우파니샤드 혹은 기타 서사시처럼, 고전적인 시적 형태의 언어와 상징성을 사용하여 표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은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외적인 말에 너무 많은 초점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말의 한계성을 뛰어넘기 위해, 앎의 열쇠를 사용해야 하며, 여러분의 그리스도 자아가 말을 뛰어넘어, 내적이고 둥근 형태의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반응을 주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말보다 더 깊은 단계에서, 즉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저장된, 다시 말해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진리와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수수께끼를 알고자 하는 진지한 학생들은 더 높은 의식 상태를 향해 가는 영적인 길에서, 여러분의 진보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세력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그러한 세력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세력들이 여러분을 통제하고자 하며, 오로지 무지와 환상을 통해서만, 이들이 여러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늘 사용하고 있는 수법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해줄 (요한복음 8:32) 진리를 찾아내지 못하게 하고, 내면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재 의식 상태에서, 이러한 세력들은 여러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차원적인 이해를 찾아낸다면, 현재의 의식 상태를 초월할 수 있게 되므로, 그들의 통제력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세력들은 여러분이 현재의 믿음체계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해를 찾아내고, 받아들이며, 내면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항상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현재의 삶의 방식 혹은 삶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으며,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대로, 그리고 현재 알고 있는 이대로 삶을 지속해야 한다고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이나 기타 영적인 가르침들처럼, 여러분이 현재의 믿음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될 때, “위험한”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막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필히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고차원적인 이해를 제공해줌으로써, 여러분의 성장을 도우려는 내면의 스승과 외적인 스승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거짓된 내면의 스승과 거짓된 외적인 스승이 존재하며, 이들은 참된 스승이 제공해주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외적인 스승은 대중 의식과 나중에 설명하게 될 어떠한 세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거짓된 내적인 스승은 인간의 에고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리스도 자아를 사칭하는 가짜입니다. 에고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에고는 언제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의 믿음체계는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되므로, 모든 새로운 개념들은 이 기준에 따라,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에고는 항상 이렇게 할 것입니다.
에고는 안전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으며, 이렇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혀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떠한 믿음체계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고는 특정한 종교의 신도가 됨으로써, 혹은 어떤 외적인 교리를 믿음으로써, 여러분이 자동적으로 구원받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새로운 영적인 개념을 접하게 되면, 에고는 곧바로 그러한 개념을 “절대 오류가 없는” 믿음체계와 비교하게 되며, 실재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모든 특징들을 활용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큰 소리로, 혹은 큰 설득력을 가지고 넌지시, 새로운 개념은 잘못된 것이며, 위험하다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한 명의 진지한 학생으로서, 여러분은 에고의 소리를 인식하는 법을 배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것을 내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부드럽고 섬세한 그리스도 자아의 소리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 두 개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에고의 소리를 알지 못한다면, 에고의 소리는 아주 쉽게 작고 고요한 내면의 소리로부터 여러분의 관심을 빼앗아 가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서를 읽어보았다면,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까지도 -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셨습니다. 인류의 영적 교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인간들이 에고에 기초한 믿음체계라는 필터를 통해 모든 것들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색깔이 들어 있는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러한 렌즈들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 교사들인 우리는 사람들이 착용하고 있는 렌즈를 벗게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고의 설득에 넘어가, 필터를 통해 보는 것이 유일한 참된 모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렌즈를 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착용하고 있는 특정한 종류의 콘택트렌즈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데 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여러분이 얻게 되는 혜택은 전적으로 에고의 소리를 듣느냐, 아니면 그리스도 자아의 소리를 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내가 말한 것처럼, 나는 단지 지식의 열쇠만을 제공해줄 뿐이며, 그 열쇠를 사용하여, 여러분을 고차원의 의식 상태로 안내해줄 마음의 문을 내가 강제로 열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나는 모든 책임을, 그것이 있어야 할 곳, 즉 여러분에게 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나는 내 역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재능들을 증식시킬 것인가요, 아니면 그 재능들을 땅 속에 묻어두고, 현재의 믿음들로 덮어버릴 건가요?
[출처] 영적인 자유에 이르는 열쇠 / 번 역
흥미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