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이 보입니다...
- 무슨 의미죠?
(잠시 침묵 후) 부처님 같기도 하고 예수님 같기도 한 분이 오셔서...
제게 손을 대고 " 너를 자유케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 긴장을 풀고 들어보십시오...
사람은 자기 생에, 주어진 생의 의미와 목적대로 사는 것...
원래의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도(道)라고 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놀라운 지혜나 지식이나 초능력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
원래의 자기를 원래의 모습대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도'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 자기'를 볼 수가 없기에 그것을 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참된 도다, 저런 방법이 참된 도다.'하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 즉 자기를 살피고 '내가 누구인가' 를 바로 아는 것이
수행이요 참선이라고 합니다...
계율이나 율법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를 가리려고 하는 요소들, 명예, 공명심,
욕심과 탐욕, 미움, 시기, 질투, 이 모든 것이 자기를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주어진 하나의 한시적인 도구입니다...
'참 자유'는 자기를 바라볼 때, 내가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알 때에 주어집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도'의 출발이요 완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무한(無限)은 하늘나라를 담을 만큼의 공간들입니다...
"원래 악하지 않은 인간을 스스로 악하게 했다." 고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경덕'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그는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 서화담을 얘기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도 도를 깨치지 못했고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기의 수행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다음 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죽었다고 얘기합니다.
많은 도인들...원효대사 같은 사람들도 저 높은 곳에 도가 있는 줄 알고 힘차게 달려갔지
만, 결국 이 '도'의 본질을 바로 알았기에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원효대사 같은 분은 도를 깨달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하나를 알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다 버릴수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영상과, 영상에 담긴 함축적 의미들이 있는데,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옷의 디자인이나 재질이나 색깔을 보지
만, 옷에 대해 바로 아는 사람은 그 옷이 어떤 실로 만들어졌는지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옷이 화려하더라도 그 옷이 짜이기 전에는 한 가닥의 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실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그 실에 집중하고, 화려하거나 비천하거나 볼품없는 옷이라도 그 종류와 상관 없이 그것이
모두 한 올의 실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바로 보고, 그것을 통합해서 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를 깨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미약하지만 하나의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은 그 한 올의 실을 어떻게 엮어 나가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한 올의 실이 고기를 잡는 그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이 되기도 합
니다. 밧줄이 되기도 합니다...
아... 저의 그릇으로는 이런 영상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완벽하게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와 화합은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데서 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출발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빈 것... 비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심장이 비어야 새 피가 들어가고, 위장이 비어야 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통의 물이 비워져야 새 물이 차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나 진리나 지식을 자꾸 비우십시오.
그 만큼 새 것이 찹니다.
진리는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인데, 지식이 진부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가 진부하다면
또 버리고, 또 채우십시오.
버리고 채우는 가운데 참 진리를 알 것입니다.
다시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부인과 부정의 역사는 끝나고, 확장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넓히고 비워야 그 안에 상대의 사랑이 채워집니다...
누구를 처음 사랑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는 자기 마음이 온전히 텅 비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이 우리를 오염시킨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토인이 북을 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빈 북이 큰 공명을 내고...,
북의 이편과 저편 사이가 비어 있지 않으면 울리지 않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내 영혼이 비어 있고, 채워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공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어야 합니다...
나를 알지 못할 때, 나를 알려고 무엇인가로 채우게 되고,
그로 인해서 공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를 알게 되면 더 이상 헛된 것으로 나를 치장하려 하지 않고
그럼으로 드디어 내 속은 텅 비어서 무엇이든지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속은 텅 비어서 내 것들을 더 크게 울려냅니다... 그 공명은 더 커집니다...
가장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가장 크게 비어 있습니다...
지식이나 진리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자기를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디딤돌이 될 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코를 괴롭히는 썩은 재료가 될 것
입니다...
누가 가장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더 많은 지식을 쌓으려 하고 더 많은 수행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도를 알았을 때,
그 자신의 헛된 노력들로 인해 부끄러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이 필연적인 과정이 되겠죠...
"사람을 사랑하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먹다 남은 갈비처럼 뼈에 살이 얼마남지 않은 것들이 계속 날아다니는 그림이 보
입니다...
어떤 교훈이 담겨 있는데... 정리가 잘 안 됩니다...
낚시터에서 지금 낚싯대를 드리우고... 미끼를 따라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낚싯바늘
에 걸리는 그림이 보입니다...
두 가지 대비되는 그림이 보입니다...
고래 잡을 때, 작살로 잡을 때에는 속이지 않고 바로 공격한다고 합니다...
도를 닦는 것은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작은 것을 낚을 때 쓰는 방법을 큰 것을 낚을 때는 쓸 수 없습니다.
즉, 크게 깨달으면 기존의 방법이나 기존의 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작은 고기를 낚는 방법에 익숙해져서,
큰 고기 낚는 방법을 모릅니다...
참된 진리를 알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자기 기준을 버릴 것에 대해 말하고... 규정짓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다'라는 식의 규정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익학당의 윤홍식님이 원효보살에 대해서 강의 하는 걸 듣던 중 ....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원효대사가 파계를 하고 , 요석공주와 동침을 하고 설총을 낳았지만, 그는 가족과 멀어진 것이 아니라 , 처음부터 가족이나 기타 다른 것들에 대해 걸림이 없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오해하고 원효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