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지구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 (1/3) Healing Earth / 번 역
2015/05/2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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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스터 모어이며, 나는 이 장을 통해 환경문제를 개선하고, 지구 어머니를 치유하려는 여러분의 의지가 실질적으로 지구 어머니를 치유하는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1광선에 대해 간단하지만, 함축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원성적인 투쟁을 영속화하고, 지구 어머니의 몸체에 많은 불균형을 야기해온 긴장감도 불러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1광선의 의미에서 설명한 것처럼, 진실로 제1광선은 초월의 광선, 즉 더 큰 것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광선입니다. 하지만 제1광선은 종종 의지와 힘을 나타내는 광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부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더 큰 것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더 큰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의지를 지녀야 하며, 더 큰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며, 이 힘을 또한 표현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은 지구에서의 의지와 힘이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모든 생명이 초월하여, 더 큰 것이 되게 하는 것이며, 자각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 궁극적으로 최고의 자각 단계, 즉 창조주 그 자체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생명도 빠지지 않고,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고자 하신다는 말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유일신을 섬기는 3개의 종교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종교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은 실제로 하나님을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받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벌하고자 하시는 분노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이미지는 실제로 창조주와 분리되기로 선택했던 자들, 즉 타락한 존재들이 참된 창조주에게 투사해온 그릇된 이미지입니다.
대개 지구 행성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존재들로부터 나오는 힘의 왜곡, 즉 힘의 악용입니다. 이들은 힘을 왜곡시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류가 지닌 자유의지를 제한시키거나 통제하려는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힘의 남용은 의지의 왜곡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의지의 왜곡은 타락한 존재들이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는 것을 원치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들만이 올라가고, 다른 형태의 모든 생명들은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와 같은, 외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이 더 높고, 더 강력하며, 더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모마리아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환경논쟁과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알 수가 있지 않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타락한 존재들은 생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지구 어머니의 몸체 그리고 자연의 과정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종(種)에 대해서도 전혀 존경심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락한 존재들은 어디든 나타나서, 전체지역을 강탈해갈 자들입니다. 이들은 수은 혹은 DDT와 같은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환경의 전반으로 파급시킬 것이며, 먹이사슬에도 영향을 미치게 할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자연환경과 자연의 균형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핵무기나 기타의 무기들을 사용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왜곡으로부터,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의 의지는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이며, 심지어 물질 그 자체도 끌어올려, 물질 우주가 영적 세계에 추가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지가 왜곡되면,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려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의미는 근본적으로 분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끌어올려지는 것과 내려앉는 것 사이를 나눌 수 있는,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로 인해, 옳고 그름이라는 이원성적인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옳은 사람들은 끌어당겨질 것이며, 옳지 못한 사람들은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기준을 강화시키려고 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기준을 사회에 강요하려고 했던 강력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출현했는지도 살펴보십시오. 그러한 기준은 많은 경우에, 특정한 사고체계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에 강요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Emperor Constantine)처럼, 그 대상이 종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기독교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으며, 이들은 중세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교리와 교의를 강요했었습니다. 또한 칼 막스 (Karl Marx)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치체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레닌(Lenin)과 트로츠키(Trotsky) 그리고 스탈린 (Stalin)이 이러한 체제를 따랐으며,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러한 체제를 강요했으며, 그 이후 나머지 세계에도 강요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이 과학적 유물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서구 사회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영적인 가능성, 즉 열린 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영(Spirit)을 위한 열린 문이 된다면, 타락한 존재들에게는 이것이 실제로 최고의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존재들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정확히 말해, 이러한 위협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문제를 통해, 아주 많은 교묘한 개념들이 집단의식을 구속시켜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우리는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결핍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몇 십 년 전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성장의 한계( Limits to Growth)”라는 책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나 문명이 성장하는데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는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인구의 규모면에서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해서도 제약이 있었으며, 그리고 모든 것들에 제약이 뒤따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제약은 대다수 사람들이 어떠한 의식 단계에 있을 때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명한 것처럼, 의식의 48단계 아래로 내려가면, 이러한 사람들은 오로지 물리적인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연자원이라 부르는 것을 얻기 위해, 힘에 기초한 기술을 사용해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인구의 증가와 사회의 성장에 제약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장의 한계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힘에 기초한 기술을 뛰어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나요?
이러한 개념, 즉 성장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환경논쟁과 사람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영적인 가능성을 부정하는 유물론적인 개념과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결합하게 되면, 서방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거의 피해갈 수 없는 진퇴양난 (Catch-22)의 상황, 즉 완벽한 관념의 틀 속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관념의 틀, 성장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현재의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제1광선을 가장 심하게 왜곡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나요? 제1광선이 지닌 기본적인 욕구, 즉 기본적인 속성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더 큰 것이 되고자 하는, 자기 초월에 대한 욕구입니다.
제1광선에 대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때, 성장에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불렀던 궁극의 상태를 실현할 때까지, 여러분은 언제나 더 큰 것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초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궁극의 상태는 물질우주가 비약적으로 도약하여, 영적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또한 지구가 이러한 초월의 과정을 겪게 된다면, 지구의 진동수가 증가함에 따라, 타락한 존재들은 이 행성에서 더 이상 육화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나요? 왜냐하면 우리가 설명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닌 자유의지의 지배를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식이 어느 단계 이상으로 상승하게 되면, 타락한 존재들은 - 자신들의 의식을 그 단계 위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이 행성에 육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심판하기 위해, 내가 왔다.(요한복음 9:39)”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로 여러분이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한 존재들을 심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타락한 존재들 중의 일부는 당시에 로마제국에 육화해 있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유대교의 지도자로 육화해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어떤 단계의 의식을 대표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공격하여, 죽임으로써, 이들은 심판을 받았으며, 지구에 재-육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구는 이러한 존재들로부터 자유로워져,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 단계 아래에 있던 존재들은 더 이상 이 행성에 육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지속됨에 따라 -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의식을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과정은 지속될 것이며 - 점점 더 많은 타락한 존재들이 이 행성에서 육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타락한 존재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집단의식이 어느 단계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이 행성에서 더 이상 육화할 수 없게 되는 상황 그리고 이 행성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행성을 생명의 강과 분리시킴으로써, 이들은 이 행성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스스로 최고의 권한을 가진 자들로 군림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타락한 존재들이 가진 꿈은 이 물질 우주에서 실제로 신(神)으로 군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과 같은 권한을 가짐으로써, 지구에서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기에 권력을 쥐었던 일부의 지도자들을 목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물리적인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러 개념들을 이용하여, 신과 같은 권력을 쥐려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람들이 믿어야 할 것을 자신들이 정할 수 있다면, 그들은 신과 같은 권력을 가지게 될 거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물론적인 사고체계를 믿게 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영성을 부정하고, 지구의 내재되어 있는 영성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정확히 말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능력과 의지이며, 또한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고, 스스로의 의식 상태를 초월하려는 의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의 본질이며, 종교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들은 타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길을 표방하고 있는 외적인 종교로 전락해 버렸으며, 그러한 종교들은 여러분이 신도가 되어, 어떤 가르침들을 따른다면,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을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참된 길은 구원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로지 한 가지의 사항, 즉 여러분의 마음의 수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함으로써, 최고의 단계인 144번째 의식 단계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시킴으로써, 여러분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의식을 살펴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 큰 것이 되고자 하는 자기 초월의 참된 길은 창조적인 길입니다. 왜냐하면 자동적으로 이러한 참된 길을 따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살펴봄으로써, 그리고 더 큰 것이 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결정을 함으로써, 이러한 참된 길을 따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상태, 즉 최고의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어떠한 지식, 즉 숨어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영적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어딘가에 이러한 궁극적인 앎, 즉 궁극적인 책이 존재한다고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을 읽고 나면, 즉시 깨닫게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전해준 이야기들을 참고로 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타락한 존재들이 투사하고 있는 완전한 환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얻을 수 있고, 또한 즉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궁극적인 앎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창조적인 과정이며, 소위 깨달음이라는 상태조차도 정지된 의식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생명의 강과 함께 끊임없이 흐르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더 큰 것이 되어가는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출처]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지구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 (1/3) |작성자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