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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힘이 지구 행성을 설계하고, 구현하는데 사용했던 7개의 영적인 광선에 대해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행성의 물질적인 형태를 구축한 존재가 엘로힘이기는 하지만, 다음에 전할 내용은 엘로힘의 의식수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광선을 관장하는 별도의 조직이 있으며, 그중에서 광선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존재는 엘로힘과 그 광선을 관장하는 대천사입니다. 그 아래에도 여러 개의 계층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가면 최근에 지구 행성에서 상승한 마스터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지금 이 행성에서 볼 수 있는 짙은 밀도의 에너지로 구성된 육체 속으로 육화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스터들은 각각의 광선을 대표하는 대표 마스터를 선정했으며, 이 대표 마스터를 “초한(Chohan)"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각각의 광선을 대표하는 초한들로부터 7개 광선에 대한 소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광선부터 시작하겠으며, 첫 번째 광선의 초한은 마스터 모어(MORE)입니다. 마스터 모어(MORE)는 몇몇 상승한 마스터들의 가르침과 전통 밀교를 통해 엘 모리아 (El Morya) 혹은 마스터 엠(M)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첫 번째 광선을 잘 표현하기 위해 공식적인 이름으로 마스터 모어(MORE)로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이전의 단체와 가르침에서는 첫 번째 광선이 힘(power)과 의지(will)의 광선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단순한 이해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부터 마스터 모어로부터 첫 번째 광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마스터 모어(MORE) :
나는 마스터 엠, 마스터 엘 모리아, 마스터 모어(MORE)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더 큰 존재(MORE I AM)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든, 나는 그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수십년 전에 나를 알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더 큰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 차례 나 자신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10초 전에 알고 있었다면, 지금도 더 큰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10초가 지나는 사이에 내 자신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설명을 다 마칠 때까지, 나는 최소한 144번의 자기 초월을 하게 될 것이며, 이 144번은 물질세계에서 말하는 각기 다른 144개의 의식 단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전해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내용을 공부해 감에 따라, 여러분도 아마 여러 차례에 걸쳐 144번의 자기초월을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내 말의 의미를 충분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비단 내 이야기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승한 마스터들의 이야기에도 해당합니다. 각기 다른 많은 의식의 단계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의 의식 단계를 뛰어넘는 가르침들에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우리가 전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144 단계의 이야기를 즉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의 의식 단계를 1단계라고 한다면, 144번째 의식 단계를 곧바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의식 수준을 뛰어넘는 단계를 이해하는데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성장한 환경 때문이며, 일단 그 단계를 이해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됩니다. 144개의 측면을 지닌 수레바퀴를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후, 특정한 문제나 과제를 144개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야, 비로소 그 주제에 대해 제대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내 인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를 포함하여 지구 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하는 주요 장애들 중의 하나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으로, 문제의 해결에 함부로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제한된 지식 - 자기 딴에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 과 즉흥적인 판단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열정만 가지고 제대로 이해조차도 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알 수 있는 대부분의 해결책들은 문제만 더 악화시키거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켜, 다른 문제들로 급속히 퍼지게 만들 뿐입니다. 결국에는 사회가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여러 문제들을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문명은 하향 나선으로 들어가게 되고, 모든 것이 점점 지리멸렬해지고, 점점 무질서하게 되어, 결국에는 문명이 열역학의 제2법칙을 생생하게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명은 내부의 마찰로 인해 무너지게 되고, 결국에는 어떠한 질서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전하는 이야기는 - 앞서 성모 마리아께서 전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초한들이 이후에 전해줄 이야기를 포함하여 -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현재 알고 있고,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 사람들과 이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사(人間事)와 관련된 진척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 절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루어진 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에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새로운 것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모든 창조계의 이면에 깔려 있는 목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성모 마리아께서 앞에서 설명하셨듯이, 그 목적은 자기초월의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초월의 성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서구 문명에서는 이에 관한 내용이 이야깃거리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것이 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서구 문명은 실제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각축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을 내세우는 데에만 급급하며, 자신들이 삶의 범위를 정할 수 있으며, 또한 삶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해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쥐려는 자들에 의해 납치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왔으며, 이러한 사실은 중세 시대의 역사를 조사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 인간의 사고에 있어서, 새로운 움직임이 갑자기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교리를 벗어나는 질문을 왜 할 수 없는 거지? 삶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하늘에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반박해야 되는 것 아니야? 정말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면, 교회의 교리 때문에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따라서 아시다시피 인간의 가슴과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상승한 마스터들은 한동안 과학을 지원해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과학에도 똑같은 사례가 생겨났습니다. 점차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가진 자들이 과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개념은 중세의 가톨릭교회의 교리처럼, 인간의 사고와 호기심을 제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비록 종교재판장에 끌려나가, 고문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물질적인 이론을 벗어난 질문들을 공공연히 하거나, 토론을 벌이는데 많은 장애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잘 설명해주셨듯이, 과학자들은 물질과 인간의 의식 사이에 부정할 수 없는 연결고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들마저도 지금까지 이러한 발견에 대해 논리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지구 어머니의 몸을 파괴할 위험을 안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킬 선구자가 되고자 하는 의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되고자 한다면, 내 질문은 “여러분이 성장해온 관념의 틀을 던져버릴 생각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 그리고 과학이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물을 필요조차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이 정말로 의문을 가지고자 합니까? 의문을 가지고자 한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했던 것처럼, 하나하나의 과제와 문제들은 144가지의 다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제들을 144가지의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문제에 대해 충분하고도 전체적인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서구에서 벌이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는 144개의 의식 단계 중 맨 밑바닥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서구에는 우리가 말하는 144개 의식 단계의 사다리를 올랐던 과학자, 정치인,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144개의 의식 단계 중 밑에서 3번째 단계 위로 올라섰던 사람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환경문제를 단순히 물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환경 운동을 소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로 진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현재의 과학적인 이해를 받아들이고, 이 책과 이 메신저를 통해 우리가 전해주는 다른 가르침들을 활용하여 보편적이고 영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학적인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영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의식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으며, 결국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견, 144개의 각기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은 진실은 문제를 모든 각도에서 보게 됨으로써, 문제의 참된 본질과 가능한 해결책들을 훨씬 더 간단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지구 행성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기초를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이미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러한 이해는 우주의 존재 목적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내가 말했던 것처럼, 자각의 성장입니다.
자각의 성장은 앎의 성장과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현재 서구 사회는 문제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의 적임자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앎은 수평적인 것이며, 자각의 성장은 수직적인 것입니다.
자각의 성장은 144개의 의식 단계 중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올라설 때 일어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다른 단계로의 의식의 상승은 가슴으로 배울 수 있는 사실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을 내면화하고, 통합하며, 이해를 통합하는 것으로, 결국에는 마음의 틀 속에 담길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물질세계에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