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빚
【정견망】
나는 매우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9남매의 대가족이었다. 6살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나이가 들면서 오빠와 언니들은 다 가정을 이루었고 나는 초등학교 이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내 학비와 식비를 대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라 농사를 짓기도 어려웠다. 1990년대 결혼할 나이가 되어 남편과 중매 결혼했다. 나는 나의 꿈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녀야 했다. 남편은 재물 운이 없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괜찮아서 남편보다 2배를 벌었다. 2005년이 되어 우리 손에는 어느 정도의 돈이 모였고 또 행운이 있어 대법수련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은 큰 사업가가 될 재목인데 재능을 펼칠 길이 없다면서 늘 하늘을 원망했다. 법을 얻은 초기 나는 법리에 깊지 못해 남편을 제지하지 못했고 그는 공장을 세워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안되어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우리는 무일푼이 되었고 빚만 잔뜩 쌓였다. 만일 내가 속인이었다면 이런 큰 경제적인 타격을 이기지 못해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가정이 파탄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필경 대법을 얻었으므로 이혼이나 자살할 수 없음을 알았다. 어머니도 있고 십대 아들도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니 가정을 유지해야 했다.
당시 나는 온몸에 고통이 감았으며 또 빚쟁이가 빚을 갚으라고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남편 때문이라고 여겼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남편에게 아예 관심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생사조차 마음에 두지 않았다. 우리 둘은 며칠에 한 번씩 대판 싸우곤 했다. 내 생명 깊은 곳에서 나온 그런 원한에 시달려 견딜 수 없었는데 이런 마난은 2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바로 나의 인생과 수련이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을 때 사부님은 내가 너무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나와 남편의 전생의 은원을 보게 하셨다.
바로 지난 생에 남편은 나의 약혼자였다. 그의 집은 큰 마당이 있는 농촌의 집이었고 마당 밖은 온통 옥수수 밭이었다. 어느 날 그가 밭에서 일을 하던 도중 갑자기 병이 발작했다. 나는 그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다가 나갈 때 무의식적으로 그의 증상을 보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숙모집을 찾아가 그의 병세에 대해 물어보았다. 숙모는 그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하면서 시집가면 이번 생은 불행할 것이니 차라리 자신의 수양딸이 되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명의상 나를 수양딸로 불렀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며느리가 되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은 한 가족인데 내가 그에게 시집가지 못하면 당신 집에도 시집갈 수 없다.’ 집에 돌아온 후 속으로 주판을 튕겨보고는 도망을 가야지 이 사람에게 시집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망가려는 생각을 하자 그의 집에서 알게 되었다. 친척들이 우루루 몰려와 나에게 충고했으나 내 마음을 되돌릴 순 없었다. 약혼자는 붉은색의 매우 맛있는 과일을 큰 잎에 싸서 두 손으로 바치며 먹으라고 했다. 그는 매우 자신 있게 내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바로 그의 아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마침내 그를 버리고 멀리 줄행랑을 쳤다.
내가 떠나자 그는 충격으로 인해 정신병은 더욱 심해졌다. 그의 부모는 그의 병을 치료하느라 부채를 줄줄이 짊어졌으나 끝내 치료하지 못했다. 만일 내가 당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정상이 호전되고 우리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임종 전에 내게 원한을 품고 2마디 했다. 내가 바로 그의 아내이며 하늘 끝까지 가더라도 반드시 나를 찾겠다고 했다.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고통은 전생에 남편에게 지은 정신적인 고통과 업, 경제적인 손실, 남편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 업을 갚는 것이었다. 생사윤회 업력 윤보는 암암리에 안배되어 있다. 남편의 전생의 숙모는 이번 생에서 오히려 나의 모친이 되었으며 뚱뚱하고 키가 작았는데 전생에도 그랬다. 아들이 2살 때 나는 의탁할 데 없는 모친을 우리 집에 모셨다. 10년 이상 모친은 우리에게 아이를 봐주고 요리, 집안일을 해주고 있는데 남편은 늘 냉랭하게 대하여 모친이 전생에 입으로 지은 업을 갚고 있다.
우리 집 분위기는 원래 그리 화목하지 못했는데 일가족 4명이 수련에 들어오자 비로소 그런 분위기는 다 사라졌다. 유감인 것은 남편과 아들은 수련한지 1년도 못되어 차례로 대법을 떠났다는 것이다. 모친과 나는 오늘까지 확고하게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나와 남편은 장사를 해서 몇 년에 걸쳐 빚을 다 갚았다. 또 최근 2년에 약간의 저축이 생겼다. 현재 우리 일가는 화기애애하며 나는 다시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남편에 대해 오로지 관심과 자비를 가지고 있다. 또 남편도 나에 대해 더욱 보호해주며 수련을 지지한다.
남편은 늘 나에게 말한다. “당신이 원만할 때면 나도 꼭 데려가 줘.” 나는 매번 이 말을 들을 때 곧 감상에 젖는다. 우리가 생생세세 윤회하며 온갖 고생을 다 겪은 것은 오늘 대법을 얻기 위함이었는데 빨리 돌아와 수련하라. 한번 생각해보면 금생에 대법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 둘 사이에 어떤 비극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발표시간: 2014년 1월 2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2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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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저 자신의 몸가짐과 언행을 되돌아보고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지나간 현생의 인연들도 되돌아보는데 선연이었든 악연이었든 정말 그 사람들은 잘되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잘 되길 바랍니다. 저는 그들에게 미래에 함께 진입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기도 등을 통해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인연이 모이면 역사가 되고 이 역사는 인류가 마땅히 알아야하는 많은 교훈을 줍니다. 이 교훈들은 바로 신들이 관할하고 있으며 신들께서 하나의 실험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층차에는 신의 과학세계가 있는데 이 인연에 대한 것도 바로 실험 주제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인연관계를 천목이 열렸거나 아니면 다른 이가 최면 중이나 능력이 있어 말해주지 않는 이상은 알기 힘듭니다. 위의 파룬다파 수련자는 연공(명상이라고 이해하셔도 됨)하면서 천목으로 자신의 과거의 일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사실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들은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보게 하지만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적으로 그가 현재에 여러 가지 상황들을 통해서 깨닫게 합니다.
(댓글로 글이 이어집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사실 사람관계의 잘못에서 오는 업과 상관없는데도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것의 과거 원인이 있습니다. 이 과거 원인에 대해서 현재에 결과가 되는 상황이 체현된 것이며 현재 시점에서 각종 상황으로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친 것을 갚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들이 배치하시는 목적이 그것을 똑같이 갚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직면한 문제 속의 부족함을 찾아서 과거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거 잘못된 부분이 무엇이면 비슷한 현재의 무엇을 통해서 현재 다른 이를 보면서 과거의 인연관계의 매듭을 이해하고 푸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나타나면 반드시 누구의 탓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마치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의 탓이더라도 어쩌면 과거의 인연관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과거에 자신의 남편에게 자신이 한 일이 그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하였는데 신들은 경제적인 면을 통해 현재에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신들의 목적이 이 사람들을 파탄나게 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과거 인연관계에서 오는 원망을 닦아버리고 다시 서로를 의지하고 믿으면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고 배려하면 신들은 상황이 악화되지 않고 좋아지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들이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위의 부인은 두 가지 선택권이 있는데 물론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를 끝까지 믿어서 정신적인 충격, 경제적인 충격을 극복하고 더욱 좋은 환경을 수립하라는 것입니다. 신들의 실험은 바로 생명들끼리 생긴 인연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승화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실험의 목표입니다.
헌데 두 번째 선택은 그와 반대로 그를 믿지 않으며 과거와 같이 도망가거나 미워하면서 서로의 탓으로 반목하다가 원망만 더 커진 채 미래에 다시 청산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면 신들은 가슴아파하는데 다음 생을 또 기다려 이 관계가 좋아지고 인연들의 결과가 좋아지도록 다시 배치해야하며 실험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들은 이 실험을 통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생명들이 좋은 방향으로 승화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서 내가 배치를 좀 더 약하게 하고 기간을 길게 할까도 고려하는 등으로 이 생명들이 만든 인연의 결과를 맞춤식으로 배치하여 최후에는 좋아질 수 있도록 하려고 계속 실험 일지를 쓰면서 좋은 선택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고심하십니다.
이것이 실험인 이유는 신들이 이 생명이 좋은 선택을 할지 나쁜 선택을 할지 예측할 수 없으며 신들은 사람을 통제하여 깨닫게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하며 과거 인연관계속의 매듭(문제)을 스스로 풀어버려야지, 사람이 기계가 아니며 자유의지가 존재하기에 신들께서 그렇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정말 나쁜 사람이 생명의 목숨이 달린 악행을 하면 신들이 좋은 사람이 신을 찾으면 즉시 그를 저지할 것이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들은 직접 통제하지 않습니다.
신들은 이렇게 배치하면 좋아질까? 저렇게 배치하면 좋아질까? 하면서 그들의 태도와 표현을 보는데 위의 파룬다파 수련생처럼 좋은 태도로 일체를 대하면 아주 좋아하시면서 실험의 목표를 드디어 달성했구나!라고 하십니다. 신들은 정말로 이때 아주 기쁜 나머지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사람의 정(情)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 정(情)은 속인 중의 것으로서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표현을 해내는 것이 실험을 마치는 것이며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실험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며 신들은 다시 고심합니다. 즉 좋은 표현과 좋은 태도를 하지 않는다면 신들의 일이 많아져서 야근을 하시게 될지도 모르며 신들에게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지요. 좋은 사람이 되면 신들이 실험할 양을 줄이게 해드리니 이것은 효도가 아닙니까? 새로운 실험이 생길 수 있지만 업력이 아니라 좋은 선택을 하는 것에 관한 것일 수 있으므로 아주 즐거워하십니다.
신들께서는 우리를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시는데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좋은 사람은 매 사람에게 잘 대하고 배려하면서 이런 전생부터 시작된 길고 긴 실험에 대한 결론을 내서 레포트를 완성한 것입니다. 교수님이신 신들에게 A학점을 받을 것이며 수련자는 집착심도 닦아버리고 집착심을 닦게 해준 상대방에게 감사드리면서 A+학점을 받을 것입니다.
신들은 교훈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집착을 닦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베푸는 등의 현재의 태도를 중시할 뿐이지 반드시 과거 해친 만큼 돌려주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똑같이 돌려준다고 하여 잘못을 늬우치고 부족한 점 등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문제는 수 천년을 기다려온 인연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신들은 그저 깨닫고 바른 방향을 지향하기 만하면 그 한 면에서 신의 품성을 이루었으며 너무나 긴 세월동안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도리어 감사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긴 세월동안 신들이 똑같은 일을 이렇게 고심하고 저렇게 고심하게 하면서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신을 그렇게 긴 세월동안 일을 하게 했는데 우리는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될 때 미안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신들께서 어디 불평하시던가요? 사람이 불평하는 것이지, 신들은 사람에게 되려 자비를 베풀고 다시 배치해주시는 것은 물론 부모님처럼 우리들이 잘되기를 고심하면서 자신의 배치에 어디 좀 부족한 점이 없는가 하면서 열공을 하십니다. 마치 논문 쓰시는 교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리고는 최후에 태도 표시를 통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모순을 바로잡으며 원망 등을 내려놓았을 때 신들은 과거의 긴 세월의 보상을 받았다면서 정말 유레카라고 말하십니다. 사실 행복해하시는데 신들의 자비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그런 신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를 모르고 실험 내내 신들이 흘리시는 땀과 눈물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중국 고대의 과학은 우리의 현대 서방에서 배운 과학과는 같지 않으며, 그것이 걷는 것은 다른 한 갈래 길로서 다른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현재의 이런 인식방법으로 중국 고대의 과학기술을 인식해서는 안 된다. 중국 고대의 과학은 인체・생명・우주를 겨냥하여 직접 이것을 향해 연구했기 때문에 걷는 것은 다른 한 갈래 길이었다.
그때에 배우러 다니는 사람은 모두 가부좌를 중시했으며, 앉음에는 자세를 중시했고, 붓을 잡는 데는 기를 운행하여 호흡함을 중시했으며, 각 업종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고, 호흡 조절(調息)을 중시했는데 전반 사회는 모두 이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중국의 고대 과학을 따라간다면 오늘날의 자동차・기차가 있을 수 있는가? 오늘날의 현대화가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당신이 이런 환경 중에 서서 다른 상태를 인식할 수 없으며, 당신의 사상관념은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사람의 머리 앞면에 자신이 가지고 있어 무엇을 보려면 바로 그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공능도 존재한다.
기차・자동차가 없어도 사람은 거기에 앉은 채 뜰 수 있고, 엘리베이터도 필요 없다. 그것은 부동(不同)한 사회발전 상태를 가져올 것이며, 이 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외계인의 비행접시는 오고감이 신속(神速)하며,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그것들이 걷는 것은 더욱 같지 않은 발전노선으로서, 또 다른 과학방법이다.”
마음이 깨끗하고 자세를 중시하였던 과거 사회에서는 사실 인연관계를 바로 잡기가 지금보다 오히려 쉬웠을 것입니다. 왜냐면 현재는 과거의 심성표준보다 많이 내려온 상태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고 상대방과의 인연관계가 좋은 사람이 되면 저절로 풀려 간다라는 사실을 지금은 더욱 깨닫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야기는 제가 살아가는 내내 교훈이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우리 학교를 방문한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젊은 시절 길을 가는데 어느 거지가 갑자기 교회 목사님을 붙잡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역시 자신이 신께 봉사하는 직업을 하고 있으므로 그를 인근 가게로 데려가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거지는 정말 10시간을 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현재까지 말하였습니다. 내용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상과 꿈이 변해가는 것과 자신이 최후에 어떻게 거지가 되었는지를 말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들어주었고 그에게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그가 한마디 합니다. “목사님, 저는 기독교로 개종하겠습니다.” 목사님은 놀라서 “왜 그러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목사님, 저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고 시간이 없다고 대다수가 거절해버렸는데 목사님은 저를 처음 보시면서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감동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작고 큰 인연들이 있는데 불가에 따르면 지나가는 사람도 아마 몇 백번의 전생 중에 마주친 사람이며 나의 배우자, 나의 부모, 나의 친구 등은 모두 몇 천 번의 만남 후에 다시 만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상관이 있는 인연들에게도 이해와 배려를 항상 나타내기 힘들어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미 무수하게 만난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데 단지 머리를 씻어서 전생의 인연관계를 알아보지 못할 뿐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작은 인연들을 쉽게 지나치지만 심성을 닦는 목사님은 갑자기 생긴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겼고 그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한 것입니다. 그 분은 아마 다른 일이 있었겠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의 마음을 우선으로 여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에 감동을 불러 왔습니다. 신들이 이런 사람을 어찌해야합니까? 그 한 면에서 신으로 성취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시간 이상 들어준 것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상대방을 평소에라도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에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여유공간을 남겨둔다면 신과 인연을 맺으며 신의 과학 실험을 완성시킨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정이 긴박하고 꼭 해야될 일이라 미루거나 사정을 잘 말하면 그도 알아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려할 수 있다면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움직이고 의지를 움직인 것 자체가 중요하지, 표면상 누가 그렇게 했다고 하여 나도 이렇게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사람의 상황은 천차만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현실중에서 마음을 움직이고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상 이렇게 저렇게 정해진 것은 없고 그저 각자가 직면한 현실 중에서 타인과 나를 모두 만족시키고 모두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순간 바로 신의 품성에 다가간 것이며 이는 심성과 마음상의 변화이지, 행동은 저절로 그 후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임산부는 젊으나 노약자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만 표시해도 되는 것(예를 들어서 힘드실텐데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구나. 저분이 목적지 까지 잘 가셨으면 좋겠다. 등을 생각하는 것입니다.)이며 일률적으로 할 수 없지만 건장한 사람이라면 노약자에게 자리를 마땅히 양보해드리는게 좋겠지요.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으며 목사님이 다른 일이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배려할 수 있는 만큼 현실에서 배려하는 것이 바로 신들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거지도 위덕이 있는데 아마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수년이 흘렀기 때문에 그 거지도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목사님이 상대방을 배려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며 목사님에게 그의 품성을 증명하고 신에게 한층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이 그 목사님에게 준 기회이며 이 기회를 통해 그 한 면에서 신의 품성을 증명하고 나와 그 한 면에서 동화되어 세인들에게 이를 알리고 신의 품성이 어떠하며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는지 실험결과를 만천하에 밝히라는 것입니다.
거지도 주인공이며 거지는 목사님에게 신을 대신하여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었고 목사님은 거지가 없었다면 이런 좋은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을 것인데 그럼 이 거지도 복이 있고 위덕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거지도 다른 이들에게 신의 품성이 어떠한지 알리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니 반드시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거지도 좋고 목사님도 좋으며 신도 좋아하시는데 너도 좋고 나도 좋아 모두 화기애애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거지가 종교를 바꾼 이유는 바로 목사님이 신의 품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며 신의 품성을 증명할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신입니다. 또한 실험을 통해서 신들이 신의 성품을 증명하는 상황을 제공해주었고 목사님이 끝까지 들어주었던 것이 바로 태도 표시한 것입니다. 신들은 현재의 태도만 볼 뿐 과거의 실험 기록들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고 현재에 태도 표시를 통해 실험을 완성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신들이 실험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바로 이 태도 표시인데 목사님의 배려심과 사랑의식, 자비심이 상대방을 감화한 것이며 신들의 실험을 완성시켰기에 이 한 면에서 위덕이 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사람이 되면 신들은 정말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元神(왠선)은 불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전생의 사회활동 중에서 누구에게 빚을 졌을 수 있고, 누구를 괴롭혔을 수 있으며, 또는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 있는데, 그 채권자는 당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불교 중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아갈 것이며, 더 많이 받아 가면 다음번에 그가 다시 당신에게 갚아준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거꾸로 되는데, 바로 이렇게 돌아오고 돌아간다.”
“유교의 것들도 불교 중에 들어갔고 무슨 부모 효도와 자식 정 같은 것들조차 들어갔지만, 불교 중에는 이런 내포가 없다. 무슨 뜻인가?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왠선)이기 때문에 당신의 元神(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실 이렇게 보면 현생의 가족 뿐 아니라 대다수가 모두 가족이며 모두 사랑으로 서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길고 긴 세월을 함께 서로 지나왔는데 지금에 와서 인연이 끊어진다면 정말 아쉽지 않을 까요? 작고 작은 인연이더라도, 스쳐가는 사람일지라도 은혜를 베풀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며 말하기 전에 배려하려고 노력한다면 전생의 인연을 선연으로 바꿀 수 있는가하면 본래 내가 은혜를 받았던 선연이었다면 현재에 상대방에게 좋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며 나 자신도 함께 승화되어 미래에는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학연, 지연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자체는 순수하고 좋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재는 욕심과 사심에 의해서 변질되어버렸는데 본래 학연과 지연은 모두가 모두를 배려할 수 있는 좋은 의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신들이 전해준 것인데 엉뚱하게도 이것이 현재는 질투를 불러오는가 하면 이를 통해 차별하고 편향된 시각으로 색안경 끼면서 일체를 바라보는데 학연, 지연이라는 색안경에 대한 것이 아예 일반화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사심이 첨가되어 마치 이 학연, 지연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학연, 지연을 좋은 사람이 모두를 배려하여 사용한다면 절대로 질투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며 아주 합리적이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심성의 사람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스템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찾아보면 배려할 수 있는 면은 아주 많지만 현재의 무너지는 심성 속에서 균형을 잡고 태도 표시를 하여 초탈해 나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가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제가 과거의 인연관계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여기에 집착할 필요가 사실 없습니다. 위의 파룬다파 수련제자처럼 자신이 과거 인연관계 몰라도 괜찮고 신들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재의 태도를 통해 좋은 사람이 되어서 실험을 어서 끝내고 각자의 천국세계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실 천국세계는 무수히 많으며 각 천국세계에 있는 신들이나 백성들이 그 천국세계를 주지하는 대각자가 에너지를 분화하는 등으로 생긴 직접적인 자식은 아닙니다. 설사 이렇지 않아도 신들은 자신들의 성품에 누군가가 부합하면 그 누구를 자신의 직접적인 자식으로 생각합니다. 천국세계의 백성들은 모두 그 천국세계를 주지하는 신의 직접적인 자식이며 신의 성품에 부합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친족을 중히 여기고 가문을 중시하며 부유한 것이 사람을 보는 표준이 되었지만 신들은 자신이 직접 낳고 안 낳고의 개념보다 자신의 성품에 부합하는가 안하는가를 중시하십니다. 신들께서는 자신의 성품에 부합되면 누구든 자신의 직접적인 자식으로 삼으시며 우리는 수억이 넘는 정신들과 연이 있든 없든 그분들의 직접적인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신들은 우리를 편견없이 바라보시는데 바로 학연, 지연을 바른 방향으로 타파하는 방법은 바로 누군가에게 편애를 하지 않는 것이며 매 사람에게 잘대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신들은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학연, 지연을 타파하였다고 하시며 시스템이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그에 대한 편견과 편애를 하는 집착심을 닦았다고 보시면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뭇 정신들이 바로 우리의 부모인데 당연히 효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신들께서 그렇게 노심초사하시면서 기다리고 우리를 위해 실험(일)을 하시는데도 흘리는 땀과 눈물을 말하시지 않고 불평하시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신들을 부모로 모시고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서 빨리 되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우주 중의 한 분자인데 당연히 부모가 되시는 신들을 위해서 효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실험 완성해서 신들을 쉬게 해드립시다. 좀 일거리를 줄여드립시다. 우리는 신들의 과학세계 안에서 신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데 신들께 효도 관광할 수 있도록 선물을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신들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좋은 사람이 되고 내 주위의 수많은 세월동안 전생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인연들에게 존재자체로 감사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응원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모 되시는 입장인 신들께서 얼마나 우리를 바라보면서 격동되고 행복해하시겠습니까?
저도 부족하지만 효도를 하고 신들께 부담을 좀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고 미래에 휘황찬란하고 빛나는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존재자체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