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을 제거하자
작자: 진호(眞好)
[정견망]
중화민족 5천년의 휘황한 문화역사 속에서, 우리는 각박하고 매정한 군왕(君王)은 반드시 백성들이 화를 당하게 하고 중생을 도탄 속에 빠뜨리는 것을 보아왔다. 반대로 관용을 베풀고 인자한 군왕은 백성들이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하고 각 업종을 부흥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과위를 성취할 무량한 천체(天體)의 왕(王), 주(主)인 우리들은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을 제거해야만 천체에서 뭇 중생들에게 홍대한 자비와 호탕한 부처의 은혜를 베풀 수 있다.
며칠 전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하면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까 봐 남편에게 이 일에 대처하도록 했는데 역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남편이 돌아온 후 나는 잔소리를 끝없이 했고 다투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이를 보고 말했다. "이 일을 네가 처리할 수 없어서 남편더러 가게 했는데 어찌 다 저 사람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니? 왜 너와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합의를 볼 수 없는 거니?" 나는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았고, 할 말을 잃었다.
집의 에어컨을 옮겨야 했으므로 나는 A/S를 불렀다. A/S는 아침 6시에 오기로 약속했으나 6시 30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나는 밖을 향하여 찾는 마음이 또 일어났다. 그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화를 냈고, 전화로 독촉해서야 그들은 7시에 도착했다. 노크소리를 듣고 나가면서 왜 이제야 오는 거냐고 투덜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이때 남편(속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왔으니 더 말하지 마." 나는 문득 이 작은 일에서 심성이 속인보다 못한 것을 의식하고 비로소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점심때 집에 돌아와서 보니 에어컨이 낮게 설치되었고 파이프가 밖으로 많이 노출되어 또 나의 집착심을 건드렸고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내에는 구멍이 생겼으나 막지 않아 나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곧 남편에게 이것이 좋지 않고 저것이 좋지 않다고 말했는데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났다. 더는 그들을 불러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나에게 큰소리를 치고 나서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남편이 말했다. "높은 곳은 닿지 않아 이렇게 들어서 설치했다구. 계속 비가 내려서 2, 3시간동안 작업하면서 그들의 옷이 다 젖었는데 그들더러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할 수 없잖아."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나의 마음은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내 돈을 썼으니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나더러 부품을 사오라고 말했는데 나는 조금 큰 것을 사왔다. 나는 다시 다녀오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또 밖을 향하여 찾았다. 그 판매원이 잘못 주었다고 나무랐다. 바꿀 때 고개도 들지 않고 두 글자만 말했다. "너무 커요." 판매원은 그것보다 작은 것으로 바꿔주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했으나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작은 것을 샀으니 그만큼의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말투는 선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당신은 이 업종을 하면서 모델을 모르다니, 나만 번거롭잖은가."라고 생각했고, 판매원은 언짢아했다. 내가 문을 나서자 그녀는 물 한 컵을 내 옆에 뿌리고 문을 세게 닫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너와 견식을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신을 때렸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절대 이 집에서 사지 않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급히 안을 향하여 찾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의 마음은 왜 늘 지켜지지 않는가? 왜 늘 불평이 많고, 늘 다른 사람이 좋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는가? 나는 왜 화를 내는가? 나는 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표준이 그렇게 높을까?
나의 마음이 뒤틀려졌을 때가 바로 내가 제고해야 하는 때이고, 몸에 있는 패괴(敗壞)된 물질과 업력이 밖으로 밀려 나와 그것들이 소멸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바로 진일보로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계속하여 안을 향하여 찾았고, 마침내 다른 사람에 대하여 너무나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을 찾아냈다.
만일 이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의 눈에 좋지 않게 보이며, 당신은 곧 계란에서 뼈를 골라내려는 심태이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가늠한다면 자사(自私)적이고 독한 마음으로, 자비가 없는 것이다.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은 전혀 자비가 생겨나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좋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미안하며, 내가 지불한 돈에 그들이 그만큼의 일을 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며, 나의 아까운 시간을 그들이 소모했으며, 책임지지 않았고, 일을 얼버무려 한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매우 잘 대하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감사한 마음이 없다.
마치 수양제(隋煬帝)처럼 백성을 시달리게 하고, 나라의 자원을 물 쓰듯이 절제 없이 낭비한 것과 같다.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백성들이 번뇌와 어려움에 시달려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없었다.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사치한 건물을 지으며 수많은 땀을 흘려도, 세금을 아무리 많이 내도, 그는 만족할 줄 몰랐고 모두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오히려 모자란다고 느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누가 당신에게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당신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조금만 부족한 것이 보이면 당신은 곧 마음속에 꽁하니 담아둘 것이다.
이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과는 매우 엄중하다. 속인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으로 표현될 것이다. 부부사이에 은혜를 잊고,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며, 이혼하며,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돌보지 않을 것이며, 친구의 정을 칼로 자르듯이 끊고, 반목하여 적으로 되며, 은인이 죽을 고비에 처하였으나 오히려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이며, 작은 일로 원망과 원한의 보복을 하며, 시어머니가 아무리 며느리한테 잘해도 좋지 않게 볼 것이며, 각종 추악함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만일 수련하는 사람이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욱 나쁘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많은 대가를 지불했으나 당신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부님의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구도의 일도 잘하지 못할 것이다. 수련생이 당신에게 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어도 당신은 태연하게 받고 감사를 모를 것이며, 수련생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겨 열심히 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수련인은 고험에 직면하거나 생사의 관에 서서 믿을만하겠는가? 뼛속까지 모두 낡은 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고집스럽고 극단적인 본성이니 말이다.
그를 천체의 왕, 주로 되게 하여도 그가 어울리겠는가? 자신의 중생을 위하여 생을 버리고 죽음을 마다하면서 자신의 일체를 지불하여 우주의 진리를 수호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을 제거한다면 언제나, 어떤 일에서나, 누구에게나 좋으며, 적에게도 좋을 것이며, 비로소 한 위대한 각자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각박하고 매정한 마음은 늘 내가 주변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원망하게 한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무지 속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교란하는데 참여한 속인, 우리 주변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 이들이 정말로 당신의 눈앞에서 만겁에도 더는 살아날 수 없이 형신전멸(形神全滅)되는 순간에 당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그들을 구하지 못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회한에 찰 것이며, 비 오듯이 눈물을 쏟을 것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아무리 깊은 상처를 주었어도 그들이 형신전멸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미래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곳은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 2011년 8월 1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1/8/15/76676.html
-------------------------------------------------------------------------------------------
파룬다파를 하는 수련생은 세계적으로 수억이 넘는다. 그렇게 많은 수련생 중에서는 각자 부족한 부분이 다르며 모두 일률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 만약 완벽하다면 수련이 필요없는 사람으로서 그는 곧 신이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단번에 완벽해진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각자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심성을 닦아 채우며 앞으로 생활 중에서 생길 수 있는 집착등의 부족한 일면들을 닦아나가는 것이 바로 수련자이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참음은 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고,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성격이 좋지 않으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理智)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을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
(글이 댓글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휩쓸려 왔는데 실제로는 일체 모든 것이 소중하지 않은가? 사회상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을 중화시켜서 모든 직업을 소중하게 바라본다면 바로 신의 성품에 이미 한 발자국 다가간 것이다.
사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문제로 인식하지만 대다수의 표준이 이렇게 심성이 떨어지면서 돈과 이득을 추구하기에 이를 제대로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었고 그저 몇몇 풍자만화 등에서 댓글로 아이의 동심, 어른들의 세계라는 표현 등으로 아이들이 이런 사회 시각과 흐름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고 쓰지만 정말 어른이 되어서도 생각만 좀 더 하면 그들에 대한 시각을 바로 세울 수 있으며 그들이 좋은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하는 일 자체는 바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할이 아닌가?
좋은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돈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얼마나 편향적인 시각이 커졌으면 노동자들한테 돈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학교라던지, 사회 속에서라든지 시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어쨌든 가슴이 아프다. 나쁜 짓은 꼭 범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된 시각과 남을 무시하는 등의 것도 모두 포함이다. 이건 신들이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수련자라면 이런 좋지 않은 시각도 곧 나쁜 마음이기에 속에서 닦아버릴 수 있으며 전법륜의 이야기처럼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부터 고려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지지하고 감사해하는데 더욱 많은 이들의 인식이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무시까지 받아야 쓰겠는가? 게다가 그들의 그런 책임감 있게 일하는 태도와 우주 중에 봉사함이란 이런 마음가짐은 천금보다 무거운 것으로 가치로 따질 것 같으면 따질 수도 없는 아주 진귀한 것이다. 고층차로 올라가면 갈수록 이런 정성은 더욱 큰 범위로 행해지는데 사람들이 그런 신의 책임감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하고 그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은 도리어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위대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회는 그들을 천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천시하면 사람들이 집에서 쓰고 분리수거해 버린 생활 쓰레기들을 물론이고 많고 많은 본인이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그런 쓰레기들을 본인이 직접 처리하고 그들 대신 처리해야 마땅하다. 또한 사람들이 숨통이 트이게끔 하고 사회를 위해 정화하는 그들의 봉사하는 마음가짐의 정성만큼 사람들이 보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들의 인권도 역시 인권이고 그들의 생명의 권리도 생명의 권리이며 그들의 자유의지도 자유의지이고 그들의 마음가짐은 천금과도 같다. 더 이상 그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천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평소 쓰고 다니는 물건들에 감사하는데 우산에게도 감사한다. 우산은 비를 막아주는 장점이 있지만 들고 다닐때 비가 오지 않으면 무게만 나가는 물건이 되고 특히 긴 것은 휴대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만 보고 장점을 망각할 수는 없으며 마땅히 장, 단점을 모두 이야기해야한다. 단어들에도 모두 장, 단점이 존재하며 직업 등을 포함한 시스템, 물질, 사회 형식에는 모두 장, 단점이 존재한다.
만약 단점만 보고 장점을 말하지 않는다면 바로 편향된 인식,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우산이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서는 안되며 사물이든, 사람이든, 사회 형식이든 마땅히 존재하는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를 드려야한다. 감사를 드리고 우주에 봉사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사회의 각종 차별화된 시각 등은 모두 점점 사라지고 모두 편견없는 세상 속에서 행복해질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루동안 취미를 하던지, 일을 하던지 간에 어떤 일을 하였다면 그 일을 천상에 가서도 그 지혜를 쓸 수 있다. 우리가 건축을 배웠다면 곧 건축에 배운 내용을 천상에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일분 일초가 중요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천상에서 활용될 수 있으니 집청소를 하던지, 아주 작고 작은 일에도 소중함을 느끼면서 해야하며 무엇을 하든 감사한 마음으로 하면 신들이 함께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도 듣고 보는 신들도 아주 기쁘게 바라볼 것이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남겨주어, 여러분이 앞으로 수련하는 가운데 여러분을 지도할 법이 있게 하려 한다. 법을 전하는 전반 과정 중에서 나는 역시 여러분을 책임지고, 동시에 역시 사회를 책임짐에 의거해 하였으며, 실제로 우리는 역시 이 원칙에 따라 했다. 잘하고 못하고에 대해서는 나도 말하지 않겠지만, 자연히 공론(公論)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소원은, 대법(大法)을 전하여 우리의 더욱 많은 사람이 득을 볼 수 있도록 하며,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이 법에 따라 위로 수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법을 전하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또 사람이 되는 이치를 말했는데, 당신들이 학습반에서 돌아간 후에 설령 대법(大法)에 따라 수련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저한도로 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유익한 것이다. 사실 당신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이미 알았기에, 돌아간 후에 당신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파룬다파를 하는 수련자로서 전법륜에서 진실되고 선하며 인내하는 성품에 대해 배우고 또 배우는데 매한 번 볼 때마다 새로운 뜻이 나타난다.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신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이를 통해 부족한 점을 닦아낼때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하다.
다른 이들을 마음으로라도 돕고 현실에서 배려한다면 서로 행복할 것인데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신들은 당신이 무엇을 잃게 하지 않지만 좀 자존심을 담담하게 내려놓으면 절대로 그 공덕을 잊지않고 배치해주실 것이며 아주 감사할 것이다.
신들은 사회상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잘대하고 배려하는 품성을 펼쳐준다면 반드시 그에 대해 잊지않고 가장 좋은 배치를 해줄 것이며 미래의 가장 행복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미래에는 모두가 스스로를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평등하게 보고 편견없이 보는 것만 해도 우주중에 크게 봉사하는 행위이다. 모두 잘되기를 바랍니다.
'줬다 빼앗은 수당'…환경미화원 상대 '갑질 논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7368248&isYeonhapFlash=Y
글 쓰는데 영감을 줬던 기사입니다. 미래에는 우리 모두 서로 응원하고 서로 존재자체로 감사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봅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사람 중에서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사람을 아주 겸손하다고 보고 좋게 보는데 바로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도 이에 속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정적 우주이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권위 있는 학자가 되었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그를 거의 학계의 신처럼 떠받들기에 함부로 그에게 자신의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변호사 허블이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결과를 가지고 그에게 방문하여 말했는데 아인슈타인은 그에게 도리어 감사하면서 바로 다음날 자신의 정적 우주 이론이 잘못되었다면서 전 세계 기자들에게 이를 알렸다.
사실 아인슈타인에게는 물리학 등을 전공한 수많은 전문 학자들도 지적을 감히 하지 못했는데 아인슈타인은 마치 그 한 분야의 부모와 같았다. 그러나 허블은 물리학 전공자도 아니었고 그저 변호사 출신의 천문학 관심가지고 취미로 천체를 관찰했던 정말 아인슈타인의 입장에서는 어린 아이와도 같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래도 그의 말을 차근차근 들었고 화를 내지 않고 꼭두새벽에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밝혔다. 얼마나 큰 대인지심인가? 사회상으로 봐도 아주 좋은 사람이며 드라마 등에서 탈세나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높은 사회 계층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그렇게 권위 있는 사람이 이렇게 공손하고 겸손하게 일체를 대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는 수련자도 아닌데도 그렇게 품성이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좋은 사람이며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조그만 자존심으로 부부간에도 불화가 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이 커져서 사회상의 문제로 까지 붉어진다.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원하는 방향을 강요하다보니 문제가 심화되고 사회상의 직업들에도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이 문제는 사실 배려와 심성의 닦음의 문제가 아닌가?
파룬다파 수련생들은 그저 부족한 부분을 담담히 인정한 후에 부족함을 닦게 해주어서 상대방에게 감사하며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아인슈타인과 같은 아름다운 품성이다. 위의 파룬다파 수련생도 수억이 넘는 파룬다파 수련생 중의 한 명이며 다른 방면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좋을 수 있지만 수련자이기에 좋지 않은 일면들을 인식하고 고치며 좋은 방향으로 앞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헌데 자존심에 따라 인정하지 않으면 그저 사람으로서 수련자와 사람의 구별은 자신의 부족한 점이 이전에 있거나 현재에 생길 수 있는데 바로 이 한 점을 인정하여 바르게 고치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사실 사회 중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배려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봐도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범죄를 누군가 알게 되면 시인을 할 생각은 않고 부인하는가하면 남을 해쳐서 입을 막으려고 들기도 한다. 수련자는 이를 덮으려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어떤 때는 배려하려고 하지만 조그만 자존심에 가족들에게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할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찾으면서 배려하려고 한다. 집착이나 부족함을 찾기만하면 내 주변 상황은 즉시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다 부족함을 버려서 완벽해지려는 것이며 이것이 수련자의 위덕이다.
심성이 부족했던 사람이 파룬다파를 얻은 경우도 있고 심성이 괜찮은 사람이 파룬다파를 얻은 경우도 있어 수억명이 동일하지 않고 천차만별이다. 매 사람의 경우가 같지 않지만 최후에는 모두 심성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며 수련자로서 심성을 지키고 신으로 수련성취되고 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이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인체과학 연구 중에서,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대뇌가 내보내는 사유는 곧 물질이라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사람의 정신 중의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곧 일성(一性)이 아닌가? 마치 내가 말한 우주와도 같이 그것의 물질존재가 있고 동시에 그것의 특성존재가 있다.
우주 중의 眞(쩐)・善(싼)・忍(런) 특성, 그의 존재를 속인은 감각하지 못하는데, 속인들은 모두 이 한 층차 면(層次面)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속인의 이 층차를 벗어났을 때 곧 체험하고 관찰해 낼 수 있다. 어떻게 체험하고 관찰해 낼 수 있는가? 우주 중의 어떤 물질이든, 전체 우주 중에 꽉 차있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모두 영체(靈體)고,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의 법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존재하는 형태다.
그가 당신을 승화하지 못하게 하면 당신이 제고하려 해도 제고해 올라오지 못하는데, 그가 곧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왜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한 층차에는 모두 부동한 표준이 있다. 층차를 제고하려면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좋지 못한 사상을 버리고 당신의 더러운 것들을 쏟아내어 그 한 층차가 요구하는 표준에 동화(同化)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올라올 수 있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에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상 물질에 보증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어떤 변화인가? 당신이 추구하고 집착했던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은 버릴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병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그것의 마개를 꽉 틀어막아 물에 던지면 그것은 역시 물밑까지 가라앉는다. 당신이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쏟아버리되 많이 쏟아버리면 버릴수록 그것은 더욱 높이 떠오를 것이며, 완전히 쏟아버리면 그것은 곧 완전히 떠오른다.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바로 사람 몸에 존재하는 각종 좋지 않은 것들을 버려야만 비로소 당신이 승화해 올라오게 할 수 있는데, 이 우주의 특성이 바로 이런 작용을 한다. 당신이 당신의 心性(씬씽)을 수련하지 않아 당신의 도덕수준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않고 나쁜 사상, 나쁜 물질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가 당신을 승화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이 어찌 그것을 일성(一性)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각자 모두 자신의 조그만 부족한 점을 크게 보지 않고 담담하게 본다면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자존심보다 커질 것이고 일체를 배려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어릴 때는 쉽지 않았지만 각종 모순을 넘어오다보니 아무리 손해를 보고 아무리 마찰이 있어도 나는 상대방에게 잘되기를 바랄 수 있었다.
현재는 수련자이기에 내 부족한 점을 상대방을 통해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내 집착을 닦아 내 경지가 제고되게 해준 것에 아주 감사드리고 있다. 신들께서 이미 이런 부족한 부분을 닦은 사람에게 미래의 가장 아름다운 길을 열어주시고 있으므로 좋은 사람이 되고 수련자가 된다면 미래에 반드시 만족할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것으로 집착을 닦는 것이다. 즉 자신의 부족하고 남을 고려하지 않는 각종 집착심의 일면을 닦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인식하는가 안하는가에서 좋은 사람이면서 수련자이냐 아니냐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다들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아주 쉽다.
다만 자신이 어떻게 잘하겠는가를 생각한다면 아마도 자신이 직면한 문제는 되려 쉽게 풀릴 수 있다. 매 한 문제는 현재 아주 첨예해져서 좋은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지만 되려 태도 표시는 간단하며 집착심과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른 것으로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하여 할 수 있어서 한다면 정말 신들은 당신에게 감사함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다. 부족한 점이 있어서 사람이지 완벽하면 사람이겠는가?
신들이 중요시 보는 것은 현재 직면한 상황에 대한 태도일 뿐이며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얼마나 나쁜 사람이며 배경이 어떠하고 직업여하가 어떠하던지 등등과 상관이 없이 오로지 현재의 태도와 좋은 사람이 되려하는 것을 중시한다. 좀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바꾸려고 하는 것은 처음에는 작고 소소하게 시작할지라도 이런 작은 마음의 씨앗이 모아져서 결국 큰 행복과 기쁨이 될 것이며 정말 끝은 창대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직업들을 만나고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 대우주중의 아주 극소한 일부를 경험하는 것이며 다만 대우주의 일부분에 대한 핵심을 배울 수 있다. 사실 어느 직업이던지, 어떤 사람이 던지와 상관없이 우주 중에 존재한다면 모두 필요해서 존재하며 그 가치는 따질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일어난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으로 평가하지만 그건 그 사건 내에서 말해야지, 생명의 본질 등의 가치로 이끌고 가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지는 소중하다.
나는 어떤 사람들은 몇 단어들을 싫어하는 것을 보았는데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어찌된 일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사실 일체 지혜는 모두 관할하는 체계가 있다. 직업 중에서는 선호 받지 못하고 오해를 받고 있는 직업들도 있는데 얼마나 그들에게 감사해야하는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사실 드라마에도 이런 정황이 좀 나오는데 특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부유층들은 고유되는 특징이 있는데 직업이 좀 못해 보이면 천하다거나 집안이 좀 부유하지 않거나 배경이 대단하지 않으면 무시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 부유층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들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 경우는 한번 이상은 들어보았을 것인데 저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라는 등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인 인성이 되어야하며 자신이 좀 부유해지더라도 인성이 좋으면 아랫사람을 대할 때 기본 인격도야로 배려하고 직원이나 노동자들을 배려할 것이며 직업에 대한 차별된 의식도 조금씩 중화되어갈 것이다. 직업에도 이런 편향적인 시각이 나타났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단어 몇 개를 두고도 싫다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잘못 여부를 떠나서 그 시각의 대상이 되는 직업, 사람, 단어 등도 각자의 체계가 있는데 그들은 이런 시각을 보고 우리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데 명예, 돈이 무엇이 중요해서 그런 시각으로 보는가? 우리를 그 자체로 인정해달라고 한다. 천상에 갈때도 그런 시각을 가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천국세계에서는 그런 직업적 차별이 없고 단어 차별 등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훼멸, 해체 등의 단어들에 민감하고 싫어하는 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곧 백지다. 훼멸, 해체 등을 사라짐이란 단어로 대체하여 표현하자. 왜냐면 현재는 보기 싫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 중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지혜는 우주 중에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 필요 없는 지혜라면 우주 중에 없으므로 우리도 볼 수 없다.
사실상 그 사라짐이란 단어도 사회 중에서 필요한 단어이며 살아가면서 그 단어를 안 쓰고 살 수는 없는데 필경 그는 어딘가에 쓰이는 단어이다. 허나 어떤 마음의 기점에서 이 단어를 쓰는가가 중요한데 생각해보면 특히 특정 직업군에서는 아주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이 단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있는 단어들은 적절한 곳에 쓰이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필요로 한다.
건축에서도 건물의 삶의 주기가 있기 때문에 건물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지어야하고 다시 짓기 위해 그를 사라짐 시켜야하는데 건축 뿐 아니라 많고 많은 전문 영역에서 이런 것들이 쓰인다. 물건을 분리수거하면 그는 사라짐을 통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데 이런 용어들이 없고 이런 용어를 지키는 배후의 체계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끊임없이 만들기만 한다. 만들고 주기가 끝났을 때 사라지지도 않는다. 쓰레기가 세상에 넘쳐나는데 세상이 쓰레기로 넘쳐나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 아닌가? 쌀을 키우기만 하고 먹지 않아 끊임없이 방치해둔다. 그것은 곧 큰 문제가 아닌가? 사람이 먹기만 하고 배설물을 치우는 사람이 없으며 미생물들이 그것을 사라짐 시켜야하나 그들도 이런 것을 담당하는 체계와 지혜가 없어 사라짐 시키지 못한다.
곧 자정작용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은 아주 심각한 현상이 아닌가? 심성이 문제성이 있어 철저히 망가져버렸다면 곧 심성을 수련시켜야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 헌데 그를 그냥 내버려둔다? 세상이 초토화될 것이다!
사실 그런 용어들의 핵심은 비유상 우주 중의 청소부이다. 이런 용어에 집착하는 분들은 한번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청소부에게 감사한 적이 있는가? 청소부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는가? 정화조 청소부(대변 푸는 직업)들은 그런 직업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돈도 얼마 못 받고 사는 것이 청소부이며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고 계시는데 불평 없이 하는 듯 보이지만 아주 힘들고 지쳐있는데도 고용주들은 그것을 모르며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인권의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사회에 봉사하고 있음에도 돈을 많이 못 받는다.
생각해보자면 청소부 등의 직업은 사회에 직접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직업이며 곧 다른 이들의 편의를 제일 밑의 직업군에서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직업을 천시하며 무시하는데 아이에게 너는 커서 저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인가? 태어나면서 그들이 청소부하고 싶었고 정화조 청소부(대변 푸는 직업)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들이 불평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고 그런 용어는 우주적인 청소부를 뜻하는데 표면의 옷만 보고 그들이 청소부라는 인식만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 인식이 바로 표면을 보는 것인데 바로 용어를 보고 싫어하지만 그들은 정말 청소, 정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진실이고 그들의 내면이며 그들의 체계들에 대한 진정한 인식인데 왜 표면의 형식을 보려하는가? 왜 그들의 표면 글자만 보고 싫어하는가? 그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실제로 그 천시하는 사람은 그가 있어서 비로소 자기가 더러워지지 않았으며 세상이 조금씩 깨끗해진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여름에는 얼마나 더운데 거기서 일을 하고 쓸고 닦으며 겨울에는 얼마나 추운데도 그들이 불평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들이 사람들에게 욕을 하던가? 왜 그들더러 못나다는 인식을 가졌는가? 그들의 직업은 마땅히 인류사회에 필요한 것인데 어째서 그들더러 못나다고 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더 그들에게 배워야한다고 본다. 쓰레기를 버리면 그들이 줍고 청소하는데 누가 누구더러 욕하는가? 청소부의 그 옷을 보면 참 불쌍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나더러 말한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의 그 심성이 더 불쌍하다.
그들의 직업은 그들이 입는 옷이 있으며 이 옷은 실제로 사람들의 인식 상에서 천대를 받고 있는데 그런 일을 함에 대한 감사는 온데간데없고 그들의 옷만 보고 그들의 직업만 생각하면 불쌍하다고 한다. 이것이 표면만 본 것이 아닌가? 고층차에서도 이런 것들을 책임지는 체계들이 있는데 그런 체계는 내면의 진정한 인식이 무엇인지 보아야하며 외면의 처리형식과 사건들만 보아서는 그 체계의 인식이 곧 자비와 봉사의 마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마음의 기점이 어디에 있는가는 전혀 보지 않는다.
그런 체계들의 외면적인 처리형식과 사건들만 관찰하고 곧 이것이 무섭고 안 좋게 보이면 문제가 있으며 난 싫다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체계들을 무시하고 싫어하면 그들이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아는가? 그것이 곧 오해다. 그런 용어들도 진선인 중에서 나온 것이며 드러난 일과 사건이 부면적인 것 같지만 그들의 마음과 태도와 기점은 우주에 봉사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들이 있어 숨 쉬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있어 좀 더 깨끗하며, 비록 부분적일지라도 깨끗해지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없고 그런 지혜가 없으며 그런 지혜를 관장하는 체계가 없다면 이 세상은 오염속도가 너무 빨라 그 어떤 생명도 숨 쉬고 살지를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바다는 더 심하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작자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바다에 쓰레기 섬이 떠다닌다는 기사가 있는데 쓰레기 섬을 줍는 환경미화원들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 더러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환경미화원, 정화조 청소부(대변 푸는 직업), 쓰레기들을 태우는 그 기계, 청소부 등등 그들이 없다고 생각해보라라는 것이며 이는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여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것은 물론 인권에 대해서도 또한 생명의 권리를 존중하여 그런 용어를 담당하는 체계들에 새로운 인식을 하여 그들에게도 우주를 위해 봉사하고 있으니 감사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흑인을 무슨 유색인종이라고 하며 탄압한 시대가 있었는데 흑인이 겉모양이 다르지 심성마저 문제가 있겠는가? 그들도 사람이며 시민이고 이 지구에 사는 곧 같은 사람이다. 체계의 관점에서 봐도 어느 어느 체계는 처리방식이 너무 강렬하다며 무섭다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그런 걸 뒤처리하기 싫어하는지 아는가? 심성이 차한 사람을 빛의 생명이 싫어하는데 그런 심성차한 사람을 처리하는 체계도 일반 사람들처럼 싫어하는 감정이 없겠는가?
허나 그들은 그것을 처리하고 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며 사람들 대신에 그런 직업을 도맡아 처리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그들더러 마치 청소부처럼 보고 천하게 보는 사상이 있는데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는 것을 아는가? 그 청소부더러 사람들이 당신은 왜 그런 직업을 합니까? 더 좋은 직업을 하지? 라고 하며 앞에서 이야기도 못하면서 사람들은 아 그런 단어 싫고 그런 체계 싫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좋아서 하겠는가? 정화조 청소부(대변 푸는 직업)들은 대변 푸고 싶어서 하겠는가? 그 사라짐에 대한 체계들은 사라짐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에 대해서 그런 체계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바, 그저 우주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눈 질끈 감고 그것들을 처리하는데 나더러 말한다면 그들에게 아주 감사해야한다고 본다.
누가 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신 처리해주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함에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할지 언정 문제가 있다고 하다니? 나는 이런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천시하며 나를 홀대하고 불쌍하게 본다.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타격을 받고 속상해할지 알긴 하는가? 내가 보기엔 그들을 보는 시각이 마땅히 정화되어야하며 그 보는 각도의 정황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마땅히 그런 용어와 배후의 체계에 감사드려야한다.
또한 그들 체계의 진선인중에 나온 지혜인데 어떻게 함부로 우리 체계의 진선인과 우위를 논하겠는가? 곧 그 자체로 인정해 주어야하며 감사하다고 해야 하며 불쌍하게 보는 시각도 해소되어야할 뿐 아니라 그들을 천시하고 싫어하는 그런 감정도 스스로 제어해야한다. 그들은 청소부라는데 표면의 옷만 보고 그 옷의 비유는 용어를 말함인데 용어 뒤에 숨겨진 그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보아야하며 그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직업과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즉 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그들 체계의 기점인데 어떤 기점에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표면의 말과 그들의 사건 처리방식을 염두에 두면 청소부도 나쁜 사람이고 그 정화조 청소부(대변 푸는 직업)는 더 나쁜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인식할 수 있겠는가? 난 가슴이 아프다. 그들에게 감사해야하는데 되려 불쌍하게 보는가 하면 그들을 싫어하고 욕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라. 얼마나 힘들게 살고 가련하며 가슴이 아픈가? 그들의 인생 자체가 힘든데 거기다 욕을 하면 안 된다.
바다도 자정작용이 있기에 안심하고 누가 감히 거기다 버리겠는가? 플라스틱 등이 땅에 묻히면 세월이 한참 지나야 분해되는데 물에서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려야 분해되겠는가? 그나마도 그런 지혜와 체계가 없고 그런 용어가 없다면 아무도 그것을 처리할 수 없는바, 사람들은 쓰레기가 난무하는 바다에서 수영하고 즐길 마음이 생기는가? 일부 사람들의 그런 사상과 각도에서 그들의 표면에 드러난 것만 보고 천시하는 시각으로 오해하여 그들마저 오염시키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한데 그 사람들이 절대자라서 다른 이의 사상을 요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 생각하고 남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가? 마치 그런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초과했다는 듯 한데 이 세상에 얼마나 오해하고 오해받는 일들이 많은가? 그 오해받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하고 가슴이 아프게 사는지 아는가? 왜 그들을 헤아려주지 않는가? 아래는 전법륜 내용입니다.
“사회교제 중에서 각양각색 모순과 모두 마주칠 것이다. 우리 속인에서 수련하는 이 부분은 당신이 돈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높은 벼슬을 하며, 당신이 개인 업체를 경영하거나 회사를 차리고, 무슨 장사를 하든지 모두 상관없이, 공평하게 거래하고, 마음을 바르게 놓으면 된다. 인류사회의 각 업종은 모두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은 탓이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무슨 ‘장사꾼 열이면 아홉은 간상배’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속인들이 한 말로서, 그것은 사람의 마음 문제라고 나는 말한다. 만약 사람이 마음을 모두 바르게 놓고, 공평하게 거래하고, 당신이 대가를 많이 치렀으면 마땅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속인 중에서 당신이 대가를 치러야 비로소 얻는 것으로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함이라, 노동소득이다.
각종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부동(不同)한 계층에는 부동한 모순이 존재한다. 높은 계층에는 높은 계층의 모순 형식이 있는데, 모두 모순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으며, 어느 계층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든지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모두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부동(不同)한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으며, 자신이 있는 계층 중에서 모두 수련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하여 표면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바,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더러 물어보라. 물어보기는 했는가? 권력이 그렇게 좋아 그런 것만 보고 직업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가? 그럼 높은 사회 계층 일수록 심성과 품성이 더 완벽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사회상의 직업은 생명의 계층을 나타내는 게 아니며 사회상의 많은 지혜와 방식은 생명의 계층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라 진정한 척도는 심성이며 마음의 갈고 닦음이다. 표면의 말과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아야하며 심성을 보아야하는데 실제로 이해 안 되면 물어야 되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정의한다하여 그것이 실제로 천하며 문제가 있겠는가?
청소부등에 관련한 체계들을 오해하지 말고 그들도 이런 좋은 작용을 하고 있으며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마음에 정성을 담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데 사람들이 그들에게 오해를 계속 할 것인가? 그들이 싫다고 계속 말할 것인가? 아래는 전법륜중의 내용입니다.
“우리 사람마다 모두 안으로 수련한다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心性(씬씽)에서 찾고, 무엇을 잘하지 못했으면 스스로 원인을 찾아 다음번에 잘할 것이며,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사회도 좋게 변하고 도덕도 되돌아 승화되며, 정신문명도 좋게 변하고 치안상황도 좋게 변해, 또 경찰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다른 사람이 상관할 필요 없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의 마음 안으로 찾는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법률이 점차 완비되어 가고 점차 완벽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여전히 나쁜 짓을 하는가? 법이 있어도 따르지 않는가? 바로 당신이 그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나쁜 일을 할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내심을 향해 수련한다면, 그럼 확연히 달라진다. 또 당신이 불공평한 일에 대해 나설 필요도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회 속에서 직업적인 차별을 하고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취업문제등이나 가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불안정한 미래와 돈 많이 버는 등이 좋은 직장이라는 시각 속에서 달려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