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이야기: 삼세 업을 일세에 갚아
[밍후이왕] 북송(北宋) 시기, 어느 마을에 다리가 불구인 10여세 고아가 있었다. 그 아이는 생활이 궁핍해 이웃의 도움을 받고 구걸하며 살았다. 그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지만 다리가 없어서 사람들은 매번 물속으로 강을 건너야 했는데 특히 노인들은 아주 불편해 했다. 더구나 강물이 불어나기라도 하면 아예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아이가 날마다 돌을 주워서 강가에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아이에게 돌을 줍는 이유를 묻자 그는 그 강에 돌다리를 놓아 이웃들이 편하게 다니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아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정신이 나갔다고 비웃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그 돌무더기가 작은 산만큼 커지자 사람들은 그 아이의 정성에 감동해 모두들 협력해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기술자를 불러와 돌다리를 놓았으며 그 고아도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다리가 다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아이는 돌에 맞아 두 눈을 잃게 됐다. 사람들은 그 불쌍한 아이가 정성을 다해 착한 일을 했는데도 사고를 당하자 하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원망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다리를 놓는데 힘을 보탰으며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끝내 다리가 완공됐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찬탄하는 눈빛을 그 한쪽다리에 장애가 있고 지금은 두 눈이 먼 고아에게 보냈다. 아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평생 가장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내리는 큰 비는 마치 이 돌다리의 흙먼지를 씻어서 그 자태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막이 터질듯한 우레가 지나간 후 사람들은 그 아이가 이미 벼락을 맞고 죽은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멍해졌으며 이어서 아이의 팔자가 사납다고 탄식했고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다.
마침 포청천(포증)이 공무를 위해 이 지역에 들르자 백성들은 가마를 막고 그 아이의 억울한 사정을 히야기하며 “좋은 사람은 왜 좋은 보응을 받지 못합니까? 이후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포청천도 속세의 화식을 먹는지라 백성의 정서에 이끌려 분노하며 ‘차라리 악을 행할지언정 선행을 하지마라(寧行惡勿行善)’라는 여섯 글자를 써놓고 떠나버렸다.
수도에 돌아온 후, 포청전은 황제에게 업무를 보고해 올렸지만 자신이 여섯 글자를 적은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선행을 한 그 아이가 오히려 나쁜 보응을 받은데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 여섯 글자를 적은 것은 바르지 않다고 느꼈다.
황제는 퇴정 후 한사코 포청천을 끌고 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며칠 전에 나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계속 울기만 하는데 아무리 해도 울음을 그치질 않네”하며 포청천에게 태자를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포청천이 보니 태자는 피부가 눈처럼 희었는데 부드러운 작은 손에는 글 한 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자기가 적어놓은 그 여섯 글자였다. 포청천은 얼굴이 화끈거려 황급히 그 글자를 지웠는데 신기하게도 그 글자는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재미 있는 것은 태자 손에 있던 그 글자가 포청천 눈에는 글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다만 태기(태어날 때 지니는 짙은 반점)로 보였다. 황제는 아이의 타고난 복(福)을 포청천이 지운게 아니냐며 질책했다. 포청천이 “신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태기를 지운 내막을 자세히 말했다.
황제는 이상하게 여겨 포청천더러 음양침(陰陽枕)을 이용해 저승에 가서 그 내막을 알아오라고 했다. 포청천이 음양침을 베고 저승에 가보니 진상이 전부 드러났다. 원래 그 아이는 전세에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죄업이 매우 컸으며, 그 한 세(世)에 지은 죄업을 갚으려면 삼세(三世) 동안 보응을 받아야만 다 갚을 수 있었다.
신의 원래 배치는 제 1세(世)는 불구의 몸으로 외롭고 힘들게 사는 것이었고, 제 2세는 두 눈이 멀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으며, 제 3세는 벼락을 맞고 죽어 시체가 황량한 벌판에 버려지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제 1세에 불구의 몸으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오히려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고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으므로 신은 그에게 삼세동안 갚아야 할 업력을 결국 한 세에 다 갚게 했다.
염라대왕이 포청천에게 말했다 “삼세의 악업을 한 세에 다 갚았는데 자네가 보기에 좋은가 좋지 않은가? 그가 오로지 착한 일만하고, 마음속으로 오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자신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기에 덕을 많이 쌓았네. 그러므로 죽은 후 바로 현재의 태자로 환생해 천자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이네."
세인은 진상을 알지 못하고 눈앞의 표면 현상만 보고 하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하며, 다시는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믿지 않으려 했다. 사실 보응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다만 속인이 인연의 원인을 보아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문장발표: 2013년 6월 17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17/2754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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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업력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과거의 인연관계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능력이 있어서 천목이 열렸다면 역시 자신의 과거도 볼 수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타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자신이 겪은 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과거 중에서 원인을 찾지 못할 때도 아주 가끔가다가 있는데 그것은 업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관계에서 잘못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많지 않고 주로 인디고, 크리스탈 등이 그렇습니다.
자신이 과거의 업력이 얼마나 되는지와 상관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매사에 타인을 위한 기점으로 생각하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신은 얼마나 좋은 태도를 보였느냐 하나하나를 보시면서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걸어가는 길에 빛을 비추고 일생을 새로이 배치해주십니다.
사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업을 갚기 위해서 반드시 위와 같지는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처음에 의지를 움직여서 표현하고 태도를 표시하는게 어려운데 저 순진하면서도 선하디 선한 아이의 굳건한 태도와 의지처럼 진실로 마음을 바꾸어야한다는 것이며 모두 저 아이처럼 겪게 할 수 없습니다.
(댓글로 글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신들은 ‘정말 이 아이에게 삼세의 업을, 그 150년간의 배치를 아주 빨리 해도 될까?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급하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이 생명은 아주 바르며 우주의 특성에 이미 동화되었다. 이 아이에게 한번에 갚도록 하자!’라면서 결국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신들의 마음이 이렇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보고 수 천번을 고민하시는데 사람은 이를 모르면서 이래도 불평, 저래도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세에 갚게 했지만 당신은 신들이 그렇게 갚으면서 아이가 죽은 것을 보며 얼마나 거대한 눈물을 신들이 흘리고 있는지 아십니까? 신들은 가슴으로 그를 품었는데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이렇게 크겠습니까?
만약 신들이 가슴으로 모두를 품지 않았다면 다들 과거의 잘못을 견딜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려하지 않고 빨리 갚아버리게 할 것이며 신들은 정말 당신을 고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최후의 흐름 중에서 에너지적인 문제가 생겼거나 심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일부 신들 외에 정신들은 절대로 현재도 이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정말 거대한 업력이라면 절대로 한 번에 갚게 하지 않는데 미래로 미뤄버립니다. 그럼 역시 갚아야하는 기간도 늘어납니다. 이러면 희망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현재는 희망이 되려 큰 것으로 사람의 겉모습과 주변 사람의 심성만을 보며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를 욕하지 마십시오. 실망하는 주체가 자신이지, 남이 아닙니다. 남이 어떠하다면 자신은 되려 바른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고, 모든 이들이 점점 이렇게 한다면 자신이 실망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심성이 대부분 패괴되었기에 지금은 업력을 없애기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과거에는 큰 노력을 들여야 30의 업력을 없앨 수 있다면 현재는 조금의 노력으로도 60을 없앨 수 있는데 이는 제가 숫자를 통한 비유이지만 실제로 같은 태도, 같은 노력을 통해서 더욱 많은 없을 없앨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무슨 심각하게 눈이 멀고 죽지 않고도 충분히 업을 갚도록 신들이 배치해 줄 것이며 자신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신들이 조화롭게 배치해 줄 것이며 모두가 천상으로 쉽게 회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심성은 떨어졌지만 되려 좋은 사람이 되어 업을 갚아 되돌아오는 것은 되려 쉬워졌는데 환경의 사악함이 없다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이며 지금의 환경에 실망하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기회이며 지금이야말로 좋은 사람이 되어, 천상으로 회귀하며 스스로가 신이 될 기회이다!라면서 희망을 잃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들은 당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지켜보고 계시며 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은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수련과정 중에서 사람은 곧바로 이렇게 위로 수련해야 한다. 우리 어떤 사람은 일단 그의 신체 어디가 불편하면 그는 곧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여긴다. 그는 늘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지 못해, 이 일과 마주치면 그는 스스로 병이라고 여긴다. 왜 그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나타나는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미 당신에게서 아주 많이 없애주었으며 당신의 그 번거로움은 아주 적어졌다. 만약 당신에게 없애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번거로움과 마주쳐서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또는 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조그마한 번거로움과 마주쳐도 당신은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그렇게 편안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예를 들면, 내가 장춘(長春)에서 학습반을 열 때 근기가 아주 좋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로 쓸 만한 사람이어서, 나도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로 하여금 빨리 갚아버리고, 개공(開功)하게 하고자, 그의 난을 좀 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뇌혈전에 걸린 증상과도 같이 거기에서 단번에 쓰러져, 움직일 수 없고 사지가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아 병원에 보내 응급치료를 했다. 그런 후 그는 병상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뇌혈전에 걸렸는데 어찌 이처럼 빨리 나을 수 있으며 팔・다리를 모두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는 도리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워 그에게 편차가 생기게 했다고 한다. 그는 생각해 보지 않는데, 뇌혈전이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겠는가? 오늘 그가 만약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단번에 쓰러져 거기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고, 영원히 반신불수가 되거나, 정말로 뇌혈전에 걸릴 수도 있다.
즉 말하여 사람은 제도하기가 그처럼 어렵다. 그를 위해 그렇게 많이 했건만,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과거와 현재의 표준 심성이 극과 극으로 차이나기 때문에 과거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 쉬우며 현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의지를 움직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모두가 이런 흐름 중에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들이 과거에는 제도하고 싶은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그 범위가 너무도 줄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한 신이 다수의 사람을 돕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현재는 다수의 신이 협력하면서 몇 안 되는 좋은 사람을 보호하고 돕습니다. 과거에는 정말로 좋은 생명이 되고 업을 갚기 위해 죽음 자체가 강력한 태도표시가 될 정도로 태도표시를 아주 명확하게 해야했지만 현재는 보호하는 신들이 많고 같은 태도를 표시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 되돌아가기 위해 죽지 않아도 되는데 필경 이런 시기에 좋은 사람이 된다면 더욱 심성이 패괴되는 중에 더욱 부각될 것이며 신들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100%의 생명을 가르치는데 건질만한 학생은 별로 없고 좋은 사람이 되어 천상으로 회귀하겠다면서 천상으로의 시험을 치르고 과거시험, 대학시험에 합격하여 관직, 대학(둘다 천상세계)을 얻어 귀환하겠다는 학생이 없는데 신들은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정말로 기쁨이 이루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학생을 찾는 교수와도 같이 되어버렸는데 신들은 정말 조급해하며 당신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들의 이 간절한 마음을 정말 사람들이 안다면, 또한 많은 생명이 안다면 그는 감히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는 마음을 되돌리고 심성을 되돌려 좋은 사람이 되려할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면 정말 신들은 학사과정에서 천상의 생명이 되는 것을 초과하여 석, 박사과정을 밟게 하여 거대한 신으로 성취되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줄 것이다. 어떻게 안배하는가? 어떤 사람들의 생명 노정은 얼마나 남았는가? 그 자신도 모르며; 어떤 사람들은 1년이나 반년이 지나 큰 병에 걸릴 수 있고, 병에 걸리면 몇 년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뇌혈전 또는 기타 병에 걸려 전혀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금후의 인생행로 중에서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우리는 당신에게 모두 청리(淸理)해 주어야 하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말해 둘 것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이런 일을 해줄 수 있고, 속인에게 함부로 해주는 그것은 안 되며, 그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속인의 생로병사, 이런 일들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을 가장 진귀하게 보기 때문에, 오직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움직여 줄 수 있다. 어떻게 움직여 주는가? 만약 사부의 위덕(威德)이 아주 높으면, 다시 말해서 사부의 공력이 아주 높으면 그가 당신에게 소업(消業)해 줄 수 있다. 사부의 공이 높으면 당신에게 많이 없애줄 수 있고 사부의 공이 낮으면 다만 조금 없애줄 수밖에 없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의 금후 인생행로 중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것의 일부분을 없애버리는데,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산보다도 더 높다. 어떻게 하는가? 당신이 도를 얻을 때, 아마 장래에 많은 사람이 모두 이득을 볼 것이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이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감당한다.
물론 그들로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당신 자신이 연련(演煉)해 낸 많은 생명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主元神(주왠선)・副元神(푸왠선)을 제외하고도 또 많은 당신이 있으므로 모두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감당한다. 당신이 겁난(劫難)을 지날 때는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상당히 커서 당신은 여전히 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 중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轉化)하여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한다.
또한, 사람이 수련하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아주 엄숙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속인을 벗어난 것으로서,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더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초상(超常)적인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당신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아야 한다. 우리 사람은 元神(왠선)이 있으며, 元神(왠선)은 불멸(不滅)하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元神(왠선)이 불멸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元神(왠선)이 당신 전생의 사회활동 중에서 나쁜 일을 한 적이 있지 않겠는가? 분명 그럴 것이다. 살생을 했거나, 누구에게 뭔가 빚을 졌거나, 누구를 괴롭혔거나, 누구를 해쳤거나, 이런 일들을 했을 수 있다. 만약 이렇다면, 당신이 이쪽에서 수련하는 것을 그것은 저쪽에서 매우 똑똑히 보고 있다.
당신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면 그것은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뒤로 미루어 당신이 현재 갚지 않으면 장래에 갚아야 하며, 장래에 갚을 때는 더욱 많이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잠시 갚지 않아도 그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파룬다파를 창시하신 리대사님께서는 전법륜을 통해 우리 파룬다파, 이 한 법문 중에서는 어떻게 해주는가를 위와 같이 알렸습니다. 즉 사부의 공력이 높으면 업을 많이 없애줄 수 있다는 것이며 남은 부분도 역시 처리할 방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파룬다파를 하지 않더라도 역시 좋은 사람이 되고 매사에 타인을 비롯한 모두를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신들은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서 보호해주고 지켜주며 업력을 가장 빨리 없애면서도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신들은 조그만 충격에도 업을 많이 갚을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하고 찾으셔서 반드시 충격이 적도록 노력을 해주실 테지만 여러분이 얼마나 의지가 굳건하고 태도를 잘 표시하느냐에 따라서 신들은 더욱 일하기 쉬워지고 인내력을 고려하기가 쉬워집니다.
파룬다파를 하게 되면 사부님의 법신이 당연히 모든 면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데 진정으로 전법륜의 이치들을 매사에 체현하려고 하고 연공인의 씬씽을 지킨다면 그 무엇도 생명을 해칠 수 없습니다. 사실 전법륜을 한번만 읽어도 이미 사부님의 법신은 그의 선념이 유지되는 그 한점에서 지켜주실 것이며 이미 신들과의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면 역시 정법을 수호하는 정신들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고 그 사람의 앞길을 거대한 빛으로 비추어주시고 응원해주십니다. 전법륜을 보면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체현할 수 있으며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면 곧 신들이 그의 앞길을 가장 합리적으로 배치해주실 것이며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내가 태원(太原)에서 설법하고 공을 전할 때, 50여 세 되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들 노부부가 학습반에 참가하러 왔다. 그들이 큰길 가운데에 왔을 때 승용차 한 대가 아주 빨리 달려왔는데, 그 승용차의 백미러가 순식간에 노부인의 옷을 걸었다. 걸고는 그녀를 10여 미터 끌고 가다가 땅바닥에 ‘탁’ 내동댕이쳤고, 차는 20여 미터나 더 가서야 멈췄다. 기사가 차에서 뛰어내린 후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아니, 당신은 길을 가면서 보지도 않습니까.
오늘날의 이 사람은 바로 이러한데, 문제와 마주치면 우선 책임을 떠넘기고, 탓할 것이든 탓하지 않을 것이든 그는 모두 밖으로 미루어 버린다. 차 안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했다: 넘어진 게 어떠한지 보고 병원으로 모셔야지. 기사가 알아듣고 얼른 말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다치지 않았습니까? 우리 같이 병원에 가 봅시다. 그 수련생이 땅에서 천천히 일어난 후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들은 가보세요. 먼지를 툭툭 털며 남편을 이끌고 갔다.
학습반에 와서 나에게 이 일을 말했을 때 나도 아주 기뻤다. 우리 수련생의 心性(씬씽)은 확실히 제고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는 오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웠기에 망정이지, 제가 만약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저는 오늘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퇴직한 데다, 지금 물가가 이렇게 높고 아무런 복지대우도 없다. 50여 세나 되는 사람이 승용차에 그렇게 멀리 끌려가서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어디 다쳤나요? 어디나 다 다쳤다.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도 않는다. 병원으로 갑시다. 가자. 입원해 있으면서 퇴원하지도 않는다. 속인이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공인(煉功人)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나이에 속인이라면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살갗 하나 안 다쳤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거기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하자: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도 다쳤고, 저기도 다쳤다.
그러면 아마 근육이 끊어지고 골절하여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돈을 얼마를 주든지, 당신은 병원에 머물며 남은 생에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당신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구경꾼들마저 이상하게 느낀다. 이 할머니는 왜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지 않는가.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의 사람은 도덕수준마저 비뚤어짐이 발생했다.
기사가 차를 빨리 몰았지만, 그가 일부러 사람에게 부딪치려고 했겠는가? 그는 본의 아니게 한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 지금의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만약 그에게 돈을 좀 뜯어내지 않으면 이 구경꾼들조차 마음속으로 불만스러워한다. 내가 말하는데, 지금은 좋고 나쁜 것조차 분명하게 분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당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도덕 수준에 모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의 도덕 수준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든지 이 우주의 특성-眞(쩐)・善(싼)・忍(런), 그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해서 당신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비뚤어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우주의 이 특성에 부합(符合)해야만 그는 비로소 좋은 사람이며, 이것이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이것은 우주 중에서 승인받은 것이다. 당신은 인류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가만 보지 말라. 인류의 도덕 수준이 크게 미끄러지고, 세상 기풍이 날로 떨어져 오직 이익만 탐내고 있지만, 우주의 변화는 인류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속인의 표준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속인이 이 일이 옳다고 한다 해서 당신이 이것에 따라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속인이 좋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이 아니고, 속인이 나쁘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도덕 표준이 비뚤어진 시대에는 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다! 한 수련인으로서 우주의 특성으로 가늠해야만, 비로소 무엇이 진정 좋고, 무엇이 진정 나쁜가를 변별해 낼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스스로 실천하고 나서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데 처음에는 위의 이야기에서 그 아이를 비웃었던 사람들처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 사람이 싫거나 질투가 나고 내 치부를 드러내니 나는 당연히 이래도 된다라는데 실제로는 남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음을 전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며 당신이 나쁜 일을 한다고 알려주면 들을 생각도 안하고 스스로의 심성이 마취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흐름의 차이인데 과거 인세는 현재의 인세와 똑같이 놓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인세는 사실 사람들이 지금처럼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서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우리가 보는 각종 드라마에도 이런 부분이 없다면 마치 볼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필수요소처럼 들어가 있고 사실 현실에서도 각종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떤 치부를 숨기고 있는지, 뉴스와 신문 등의 언론을 통해 간간이 폭로되고 있는데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 실제로는 얼마나 되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과거의 인세는 현재와 같지 않고 왕들은 현재의 독재자처럼 권력에 취한 것이라기보다 백성을 위한 길은 어떤 것이 있고 군왕의 도리는 어떤 것이 있으며 좋은 정치는 어떤 것인가를 매사에 생각하면서 자신을 계속 갈고 닦았습니다. 과거의 몇몇 폭군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왕들이 자신의 사상 중에서 백성을 위해 선정을 펴려고 노력한 왕이 많습니다.
게다가 국민들도 순박했으며 아는 것이 많지 않고 정보가 현재처럼 많지 않더라도 현재처럼 불평, 불만을 품지 않았고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는 기본적인 사람의 표준이라 생각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제약했습니다. 허나 결국 이 우주는 현재 갱신의 순간이 왔고 현재는 많은 이들이 새로운 우주로 진입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는 많은 이들이 심성에 입각하여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는데 인류의 표준 심성이 과거와 다르게 패괴된 것이며 이런 것이 일반화되었고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과거 인세는 이런 정도로 심각하게 표준적인 심성이 내려가지 않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심성이 인류의 표준적인 흐름이었습니다. 현재는 갈수록 심해져서 이런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몇 가지 기본적인 법을 알고 지키는 정도이지만 심성의 법이 아니라 외부의 법일 뿐이며 그나마도 어떤 사람은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법도 있습니다.
과거의 인세 중에서 위와 같은 삼세에 업을 갚은 이야기는 그 당시 상황이 그렇게 패괴되었던 상황이 아니라 대부분은 표준 심성이 높은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파악하지만 몇몇 일부 행위에서 인류의 기본 도덕적 준칙에 약간 어긋나는 정도였기에 저렇게 갚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허나 지금은 너무나도 복잡할 뿐 아니라 각종 문제들이 첨예해져 버렸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누가 만약 위와 같은 아이처럼 좋은 역할을 하자면 되려 위처럼 심각하지 않고 쉽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걸음 물러서면서 스스로의 치부를 인정하는 것과 배려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힘든 것이지,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려하는 것은 이치가 간단하므로 어렵지 않습니다.
파룬다파하는 사람들이 전법륜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은 수련중의 새로운 이치를 증득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바로 기본적인 도덕 준칙에 동화되어 매사에 잊지 않고 도덕준칙을 고려하여 생활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매사에 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의 길을 걷는 수련자입니다. 사실 노력하려하며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이렇게 전법륜과 같은 좋은 품성의 이치들이 실제로 문제를 직면할 때마다 생각속에서 그런 좋은 이치들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며 스스로의 심성을 단속하여 좋은 언행을 하며 좋은 에너지를 뿌릴 것입니다. 또한 읽을 때 진심으로 정성을 들여 읽었다면 문제를 푸는 방법에서 반드시 타인을 고려하는 방향이 보일 텐데 실제로 일으킨 작용은 문제를 모두가 만족하게끔 풀어버렸습니다.
문제를 반드시 매사에 모두 풀어내기는 힘들지라도 문제의 푸는 방향에 있어서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고려하므로 이것이 수련자와 좋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실제로 이렇게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면 문제와 마주칠 때 스스로가 괴로울 지라도 스스로가 전보다 덜 괴롭고 충격이 조금씩 미약해지는 것을 느낄 텐데 바로 완충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이 좋은 태도를 표시하여 만든 에너지와 신들이 빛과 공력으로 앞길을 비추어주기 때문에 그 강력한 에너지들이 충격을 덜 받도록 균형을 잡고 있으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더욱 쉽게 되기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당사자가 얼마나 무량무계한 신들이 돕고 있는지 모를 뿐이지, 신들은 정말로 의지만 있다면, 의지가 강하다면 그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철저히 파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로지 사람들의 선념에 달렸고 그 문제를 푸는 각도가 선념으로 배려하는 준칙에 맞는가? 우주특성에 동화되는 가 등의 태도상의 면만 보며 이렇게 진정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 문제와 마주쳐도 모두 잘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처음 마음을 움직여서 좋은 사람이 되는 의지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 후에 자신의 의지를 견고하게 갈고 닦는 것은 사실 쉽습니다. 무엇이든 처음 하려는 것이 힘들지 하고 나면 되려 쉽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실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습관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사상을 진실되고 선하며 인내하는 좋은 품성에 동화되는 것은 자신이 노력을 통해 습관으로 형성되기만하면 무량무계한 신들과 거대한 에너지들이 저절로 이를 조화롭게 나아가도록 도울 것이며 처음이 어렵지 습관만 형성되면 그 후는 무슨 너무나 쉬워서 오르지 못할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엄중한 교훈을 주게 될 것입니다.
미래에 그와 위치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 보십시오. 정말 자신이 위대한 시기에 위대한 위덕을 세웠구나!를 알게 될 것이며 신들도 얼마만큼 위덕을 세웠다면 무슨 사람처럼 질투하지 않고 되려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른 이가 잘되면 얼마나 기쁩니까? 바로 이런 상태까지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일을 이룬 것입니다. 허나 우주는 일생을 좋은 사람이 되도 새로운 상황이 나타날 것인데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영원히 해도 모자를 것이며 여러분이 현재 이룬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겸손함까지 갖춘다면 신들은 정말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과 흘러가는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최후에 차이가 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비교는 하지 말고 그저 잘되기를 바라면서 매사에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신들은 겸손한 자를 스스로 돕는 자라고 표현하며 천상으로 회귀할 때는 이런 사실을 더욱 진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며 스스로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현재에는 기본적인 인류의 표준 심성이 내려가서 이 표준 심성 자체가 큰 압력이 되었기에 그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똑같은 태도를 표시해도 저 아이보다 더 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업력을 저 아이만큼 갚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똑같은 태도이지만 이렇게 압력이 큰 상황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과 압력이 덜한 상태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똑같은 위덕으로 칠 수 있습니까? 똑같이 고려는 하겠지만 똑같을 수 없는데 필경 지금의 환경은 표준 심성이 내려가서 그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압력을 형성하고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학입학을 위해 논술시험을 치른다고 합시다. 그런데 앞에 감독관이 교수가 아니라 총과 칼을 찬 헌병이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똑같은 시험점수이지만 헌병이 지키는 그 압력 속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을 당신은 더욱 대단하게 보지 않습니까? 신들은 바로 이렇게 보아 대단하다면서 그에게 같은 태도이며 같은 시험점수이지만 되려 업력은 더 많이 없애버립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도 표준적인 심성에 따라 좋은 면들이 많았기때문에 쉽게 다른 이들을 보며 좋은 사람이 되기 쉬웠지만 현재는 다들 심성으로 제약할 줄 모르고 자신이 하는 것이 나쁜 행동인지를 모르고 있고 이것이 평균적인 흐름이기에 다른 사람을 보고 좋은 사람이 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신들께서는 바로 이 점을 고려하시는 것이며 비록 환경적인 것이지만 스스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초탈해나올 수 있습니다.
즉 저 이야기속의 아이도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서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되려 저렇게 눈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죽지 않고도 저절로 갚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특수한 시기이므로 다들 심성이 떨어지고 잊는 중에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다른 이에게도 좋은 사람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었다고 여기기에 신들은 이 아이를 정말 거대한 신에 봉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저 아이와 같은 태도를 표시한다면 당연히 신이 되게 해야 하며 저 아이는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은 반드시 보답을 할 것인바 신들이 공손히 예를 표할 것입니다. 사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미래에 스스로가 위덕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정말 기뻐할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직면한 상황은 위의 저 아이와 같지 않고 시대흐름도 다릅니다.
저때는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그 유명한 포청천 판관은 정의로운 송나라의 판관이며 우리와 시대가 다르지만 실존 인물입니다. 과거의 흐름과 현재의 흐름은 다른데 인류의 역사도 사실 시스템적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변했고 영적인 흐름도 심성의 면에서 크게 변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에는 현재에 맞게 고려해야하기에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회이며 적절한 때라고 생각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 역시 부족하지만 저는 정말 모두 함께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모두가 함께 닦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과거에 잘못을 한 사람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잘못을 한 것이고 남에게 큰 피해를 주어서 남의 정신을 망가뜨렸다면 그 보응을 받을 때 불평한다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필경 수련자라면 원만되어 하늘로 돌아갈 때 자신의 과거의 사건과 인연관계를 모두 알게 될 것이며 수련자가 아니더라도 생을 마치게 되면 스스로가 신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과거의 인연관계, 전 몇 생의 인연관계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자신이 잘못하여 그것을 갚은 것이라면 왜 그 당시에 불평만하고 제대로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비심을 내어 포용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스스로 후회할 것입니다.
자신이 과거에 업력이 있는지를 몰라도 되고 그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업력이 있고 없고를 무슨 카스트 제도처럼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신들이 보시기에는 현재의 태도만으로 여러분을 바라보시므로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동시에 현재야말로 태도표시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위덕을 세우기에는 지금처럼 적합한 때가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신경 쓰면 괜히 확인도 쉽게 안 되는 것에 심력만 소모하게 되지 뭐하러 그런 업력, 윤회등등에 대해 스스로 신경을 쓰면서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까? 확인을 한 사람은 확인한 만큼 스스로 잘하면 되는 것이고 좋은 사람은 더욱 좋은 사람이 되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현재 조금 부족할 뿐이며 모두에게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크게 천상으로 가는 문이 열려있습니다.
위의 아름다운 품성의 소녀는 천자가 되어 황실의 황태자로 왕이 될 운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위덕의 체현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휘황찬란한 신으로 성취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사실 위의 소녀보다 여러분들은 되려 태도표시하여 위덕 세우기에는 더욱 좋은 환경 중에 있기에 마땅히 신들과 세상에 감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긍정적인 면들이 많습니까? 업도 갚기 쉽지요. 미래에 대한 위덕도 세우기 쉽지요. 신으로 성취되기도 쉽지요. 나 스스로 건강도 좋아지지요. 문제를 직면해도 완충작용이 일어나서 스스로 문제를 좀 더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지요 등등 좋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신들이 세상을 여러분에게 주려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시대의 겉모습과 현재의 심성의 흐름만 보고 실망하지말고 좋은 면들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면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미래의 우주에 진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도 진정으로 전법륜을 보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사람들은 사실 제가 보기엔 낙오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항상 존재자체로 감사드리며 모두들 힘든 현실 속에서 빛을 찾고 신들의 가슴 속 깊은 자비와 사랑을 찾으면서 조화로운 미래의 흐름에 합류하길 바랍니다. 우리 미래에 다시 만납시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시작해도 아름다운 품성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품성에 대해 미래에 자랑스러워하는 모두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저도 나아갈 것입니다.
모두들 항상 선한 빛을 인식하고 심성의 주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사실 보면 신의 자비인데 저 아이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며 과거의 어떠한 잘못이 있어 환경이 불우했으나 그 환경이 불우함을 불평하지 않고 되려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며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을 치워주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태도를 신들이 보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이 생명은 아주 바른 의지가 있구나, 이 생명이 본래 삼세에 걸쳐 긴 시간을 공을 들여 조금씩 갚아나가야 버틸 수가 있을 텐데... 긴 세월에 걸쳐서 갚게 되면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하며 조금씩 갚는 것이 허용되지만 그때마다 의지가 저럴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은가?’
‘게다가 환생 할 때마다 머리를 씻고 전생의 기억을 잃게 되면 또 새로운 삶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구나. 저 아이를 위해서도 지금이 모두 한꺼번에 갚기가 적절한 시기이다. 우리는 함부러 시험해서는 안 되기에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해서 너무 갚아야할 재난이 많고 과거 지은 죄가 가볍지 않다면 한생에 갚게 하지 않으나 이 생명의 태도를 통해 이생에 한 순간에 모두 갚게 해야겠구나!’라고 신들이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즉 이 생명이 그저 서비스정신과 좋은 태도를 표시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돌이 크게 쌓이면서 이 생명의 진심을 보고 결정을 내리신 것인데 만약 이렇게 굳건하게 태도표시하고 묵묵히 모두를 위해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신들은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선을 행했는데 어찌 이런 악보를 내리는가? 신들이 존재하는가? 라면서 따지는데 실제로 신들은 그 생명이 삼세에 갚을 업을 한 세에 그것도 한순간에 갚게 한다면 이 생명이 견디지를 못할 것인데 신들은 그래서 이 생명의 견딜 수 있나 없나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것입니다.
헌데 생각해보세요. 보통 옛 사람들이 50년을 산다고 보면 150년을 가난한 상태로 살면서 자신이 조금씩 갚는다고 생각하면 그 긴 시간 동안 사람이 반드시 매 한순간 좋은 태도를 표시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아마도 긴 시간 동안에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수 있으며 다시 환생하면 전생의 기억이 나지 않기에 그는 되려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신들은 이 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이렇게 150년을 그렇게 불우하게 걸었다면 아주 힘들고 지치고 고달팠을 것인데 그는 되려 몇 년도 안 될 뿐더러 한순간에 갚아버렸습니다. 즉 무슨 150년 동안이나 걸릴 필요가 없고 사람이 인연관계를 몰라 신을 이해 못할 뿐이지 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며 신들은 가장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정말 150년을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조금씩 갚는다면 갚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은 그렇게 길고 긴 세월 속에서 조금씩 갚고 있는게 힘들다고 불평하는데 만약 그 아이처럼 갚고 싶다면 불평하기 전에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헌데 아이러니 한 것은 신들이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해서 몇 세 동안 마치 150년처럼 긴 시간에 갚게 해주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씩 갚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들에게 불평하면서 위의 이야기와 같이 좋은 사람이 되었을 때는 한 번에 갚게 해주는 신의 자비를 또 불평하고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해도 불평하고 저렇게 해도 불평하는데 사람은 신의 자비를 진정하게 이해를 못하면서도 삶 속의 전반 부분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들은 견딜 수 있나 없나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하며 가장 먼저 이 생명의 인내력을 고려하여 배치합니다. 또 저 아이의 감동적인 면모에 신들은 얼마나 감동하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감동이 있기 전에 이미 신들은 가슴깊이 감동하시면서 같이 그를 위해 가슴아파 하시고 그를 위해 에너지로 그의 선행을 응원하고 있는데 직접 육화해서 도와주지 못함을 가슴아파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