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저작권침해 문제로 걱정하시는 분이 있어서 제 생각을 올려봅니다. 저작권 문제로 걱정되어서 스크랩방지 등의 외부적인 압력과 제제를 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외부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 보다 각자의 심성을 스스로 제약하여 스스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현재는 스크랩 방지를 해도 그것을 뚫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하지 못 할일이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저작권을 지키게 해야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제약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즉 단순히 외부적인 법과 제약만으로 사람의 각각의 심성과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고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심성을 스스로 제약하게끔 기본 내용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심성을 지킬 수 있는지를 알려야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점이 어긋나서 범죄를 저지르려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그럴 목적으로 하는 범죄자도 있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의도로 옮겨 가려던 것을 어떻게 해야 저작권 침해가 안되며 어떻게 해야 범죄가 안되는지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러 나쁜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목적을 가지고, 그런 기점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방법을 알려주면 방법을 스스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알려주면 그 분들은 저렇게 해야지 저작권이 침해가 안 되는 구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쁜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나쁜 짓을 함부로 하지 못할 텐데 만약 그렇게 남의 글 멋대로 끌어다 써서 자신의 해석대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면 명예훼손죄이므로 변호사와 상담하면 됩니다.
저는 저작권 침해에 관한 것에 관심이 있어, 이런 내용이 담긴 것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사실 논문쓸 당시에도 이런 내용을 어떻게 옮겨야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논문 쓸 당시 뿐 아니라 대학교 1학년 생이면 누구나 글쓰기 시간에 이런 내용을 배웁니다. 논문을 보면 참고자료와 주석 다는 법을 배울 수 있는데 모두 어디서 옮겨오고 참고했는지 나오며 아래와 같은 형식인데 이것은 제가 직접 대학교재에서 옮겨온 내용입니다.
“주석(다는 법)
진수정, 「문항 유형에 의한 문항의 차별적 기능 탐색」,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pp.59~60
참고문헌(다는 법)
「총선연대, 탈세의혹 등 87명 공개」, 『조선일보』, 2000. 4. 10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004/200004100108.html> (2000.4.10.).”
“1.인용의 기초
(1) 기본 사항
인용은 논문 작성 시 남의 글이 꼭 필요한 경우 따오는 것을 말한다. 정말 필요한 자리에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도록 하며, 인용문은 짧을수록 좋다.
(2)인용문의 종류와 방법
⓵직접 인용문을 써야 하는 경우
-법률 조문, 정부 시행령, 중요 포고문, 수학과 과학의 공식,
원작자가 표현한 대로 옮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때(예: 문학작품),
어떤 특수한 생각이 특별한 표현 방법을 통해서만 표현되었을 때
-직접 인용 시에는, 맞춤법, 구두점, 문단 등을 원문 그대로 정확히 인용해야한다. 인쇄된 행수로 3행 이내일 경우는 인용 부호로 인용 사실을 표시하고 3행 이상일 때는 행을 바꾸어 다른 문단으로 취급하되, 인용 부호는 뺀다.
⓶간접 인용문
-남의 생각을 필자의 말로 바꿔 인용하는 것. 간접적으로 인용했다 할지라도 그 아이디어는 다른 이의 것을 빌린 것이므로 반드시 인용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인용부호는 쓰지 않고 끝에 주석번호를 달고 주석에 그 출처를 명시한다.
(중략)
(3)인용의 열 가지 규칙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작성법 강의』(김운찬 역, 열린책들, 1994)에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인용하는가>라는 제목 아래 인용의 규칙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제가 위의 두 따옴표 안의 내용은 모두 서울시립대 교재에서 나온 것입니다. 허면 저는 아래와 같이 표시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대 글쓰기 교수진, 『대학생활과 글쓰기』, pp:157~168, 서울: 서울시립대 글쓰기교실, 2010”
서울 시립대 교재에서 인용했다는 사실을 위의 문장으로 정확히 밝힌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인터넷에 글쓰는 것이지 논문 쓰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모두에게 저렇게 원리와 원칙을 지켜서 쓰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역시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원문글을 따옴표를 써서 원문 글의 저작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하실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어떤 방식으로 글 쓰는 가에 대해서 궁금하실 텐데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명확히 글로 써서 밝히겠습니다.
저는 글에서 거의 80%이상이 제가 스스로 깨우쳤거나 스스로 알게 된 저만의 방식의 내용을 씁니다. 즉 다른 이가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저는 저만의 형식으로 깨우친 내용은 어디서 가져온 내용이 아니라 출처가 저이므로 따로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몇몇 내용은 참고를 하는데 필경 어디서 읽은 내용이 있어서 쓰려고 할 때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져와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따옴표를 써서 그대로 밝히고 게다가 그것이 인터넷에 어디에 있는 내용이면 출처를 그대로 밝힙니다.
남의 글을 제 멋대로 조작하거나 제 멋대로 이것이 그의 뜻이오라고 하지 않는데 필경 내가 가져온 분의 뜻은 정확히 일치할 수 없더라도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하여 따옴표로 내글과 가져온 글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따옴표를 쓰는 까닭은 바로 가져온 글을 통해 내 글에 대한 내용을 설득력있게 하겠다는 것이며 내 글의 뜻이 바로 그의 뜻이오라는 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따옴표는 내 글의 뜻과 원문의 글의 뜻이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구분하지만 자신의 글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이 따옴표를 쓰거나 출처를 밝히고 링크를 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절차를 다 지키려면 논문을 쓰시라고 추천드리지만 인터넷에서는 기본적 에티켓이 있기 때문에 이 따옴표 등은 필수입니다. 이런 것을 지켜야지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고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모든 글에 이런 것을 적용하여 남의 글을 파괴하는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가 내 글을 가져가서 테러를 일으킨다면 그 당사자는 얼마나 기겁을 하고 아프겠습니까? 내가 그런 일을 언젠가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남이 당하는 것을 나는 안 당하겠지 하면서 멋대로 가져다 쓰면 안됩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야하며 그렇게 나만 안되면 되라고 하다가는 반드시 신들께서는 그 교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그런 비슷한 경우를 당하게 할 텐데 그때 가서 스스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지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전법륜 중의 내용입니다.
“두 번째 요구는 대법(大法) 속에 개인적인 것을 섞어 넣지 말아야 한다. 공을 전하는 과정 중에 당신의 천목이 열렸든, 당신이 무엇을 보았든, 어떤 공능이 나왔든지, 당신은 당신이 본 그 정황으로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말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 층차에서 본 고만한 일은 아직 차이가 너무나도 크고, 우리가 말하는 법의 진정한 함의와는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그러므로 금후 당신이 공을 전할 때 이 일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고유한 것이 변하지 않도록 보증할 수 있다.
또한 나처럼 이런 형식으로 공을 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나의 이런 대보고(大報告) 형식으로 설법함을 허락하지 않는바, 당신은 법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것은 의의가 아주 심원(深遠)한 것으로서, 고층차의 것을 결합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수련하는데, 장래 당신이 제고한 후, 당신이 돌아가 이 녹음을 들으면 당신은 끊임없이 제고될 것이고, 당신이 끊임없이 들을수록 당신은 줄곧 새로운 터득, 새로운 수확이 있을 것이며, 책을 읽으면 더욱 이러하다.
나의 이런 말은 아주 고심(高深)한 것을 결합하여 이야기하므로, 당신은 이 법을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나의 원래 말을 자신의 말로 삼아 이야기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바로 법을 훔치는 행위이다. 당신은 다만 나의 원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고, 책에는 어떻게 쓰여 있다고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이렇게 말함으로써 대법(大法)의 힘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일을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것으로 간주하여 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이 전한 것은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아니며,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사상에 따라 말한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고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떠한 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법을 말할 수 없다.”
위와 같이 전법륜에도 정확히 출처를 밝힐 것을 명시하며 절대로 임의 가공하여 남에게 전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에티켓을 넘어서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게 바로 배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외부적인 제약은 모두가 모두를 믿지 못할 때 세우게 된 것인데 실제로 그 외부적인 제약이 효력이 있으려면 바로 모두가 실질적으로 심성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며 외부적인 제약만을 제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인용해야 비로소 저작권 침해가 안되는가?를 정확히 이렇게 써야한다고 매뉴얼로 알려주어야합니다.
매뉴얼을 몰라서 자신도 모르게 함부러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알려주면 자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설사 나쁜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출처를 밝혀서 쓰지 않으면 자신이 사이버 수사대에 걸렸을 때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도 인지해야합니다.
지혜나 우주특성은 누군가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같은 지혜와 아이디어를 얻어도 얻은 형식이나 방식은 좀 다른데 글의 표면적인 형태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금융권의 경제와 사회, 문화 방면의 경제의 내용은 같은 경제적인 면이지만 표현 방법등이 다르지 않습니까? 표현형태도 다릅니다. 허나 표현형태도 같고 표현방식마저 같은데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참고하여 배낀 것이라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합니다.
이곳은 영성에 대해 시작하시는 분들도 많으므로 견해를 써주실때 경우와 장점, 단점 세가지를 정확히 분석해서 세분화하여 댓글과 글을 써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저작권을 지키면서 쓴다면 순수성 변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단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두루뭉실한 판단에 두루뭉술하게 몇 단어를 던져놓는 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테러를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즉 이것이 순수성 변질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의 글은 대다수가 치유가 목적인데 전하는 목적이 불순 하지 않다면 순수성이 오염될 일이 없습니다.
석가불의 말을 맘대로 재해석한 승려들에 의해 불교는 더이상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고 전법륜에 원만씀은 아니나 나옵니다. 그들은 석가불의 층차가 아니어서 자신의 층차에서 쓰고 정의 내리다보니 본래의 뜻이 아니었는데 저는 베릭님에게 제 생각과 다른 채널링 등의 글의 함의 가 같은지에 대해서 물어 볼 때가 있는데 만약 같은 소리라 하면 저는 만약 남에게 그의 형식으로 전할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지만 제 형식대로 전할 때는 밝히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용이 같아도 표현 형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들과 소통할 때도 함의가 같은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남의 글을 함부러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습니다. 단 제가 남의 글의 함의를 알 때는 제가 그냥 쓰지만 함의를 모를때는 함부러 경거망동 하지 않고 물어봅니다.
곧 함의에 변화가 없고 물어보았으며 함부러 물어보지 않고 정의 하지 않는데 또 남에게 전함이 아니라 본인에게 전한 것으로 이는 순수성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곧 세분화 시키고 해답을 내어 문제를 풀어야지 전하기만 하면 순수성을 잃는 것은 자신의 멋대로 해석하고 본인이 아닌 남에게 전하면서 그의 함의가 아닌 자기의 함의대로 그가 말했다가 위험한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중에는 수구를 주장하는데 일체 모든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법륜에서는 연공인의 표준에 따라 말을 하면 문제가 없다는데 사회 생활 하되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 자체와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면 사회 생활 중 말로 하는 직업도 있는데 그더러 사회 생활 마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해치지 말라는 것이지, 개미를 죽일 까봐 건너뛰어 다닌다면 곧 집착입니다. 사람은 생존하는 환경을 수호해야하며 밟혀죽은 개미는 수명이 끝난 것으로 일부러 해친 것이 아니라고 전법륜에서 원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이치들이 나옵니다.
곧 순수성을 저더러 말한다면 연공인의 표준인 진선인에 따라 상대방을 고려하여 말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그의 이 말은 곧 이 뜻이오라고 한다면 곧 그것은 변질된 것입니다.
(댓글로 글 내용이 이어집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즉 이 표준을 지키며 말하며 스스로 심성을 제약하는 이것이 바로 순수성을 보증한다는 것이며 말을 전하기만하면 오염된다는 것은 수련을 하려면 경문의 말씀을 보아야하는데 그 경문이 입이 있어 그에게 예수님이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진의는 이것이오라고 말해줄수 없는바 이러면 그 수련마저 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사회중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넣은 무슨 뉴턴법칙 등이 있는데 이들의 법칙마저 오염된 것인데 그럼 모두가 모두에게 죄를 짓는 것인가라고 모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회 생활 중에서 수련하는 이는 수련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며 집착을 담담하게 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라는 것이 수련이며 제가 만약 남에게 무엇을 전한다면 함의가 똑같이 말했는가를 물어본 다음 아 함의가 같구나를 확인한 후 쓰며 본인에게 전했다면 순수성 문제는 저의 글들에 해당되지 않고 저의 대다수 글은 치유라는 서로 기뻐하길 바라는 좋은 의도이기에 기점에서 쓰기에 무엇을 전한다 하여도 순수성이 보존되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알립니다. 허나 개인 호불호를 존중해야 되므로 만약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다는 사람에게는 저도 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약 남에게 꺼낸다면 남의 글의 형식을 따오지 않고 그냥 제가 본래 처음에 스스로 깨달아냈던 말의 형식을 그대로 써서 필요한 세부적으로 나누어야 하는 곳에 썼을 것으로 두 단어, 문장, 문단의 함의가 같지만 표면 말 형식이 다를 뿐이므로 제 말 형식대로 전합니다.
한 가지 알리자면 에너지, 고층의 이치는 누가 특허낸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알아낸 것이라면 함의가 같아도 깨달아낸 말의 표현만 다를 뿐이기에 자신의 표현대로 전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지혜는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시 열때가 되면 열리는 것입니다.
저는 세부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앞으로 사이트에 글 쓰시는 분들게 정중히 이렇게 해주십사하고 요청드립니다. 글 쓴 사람을 배려할 수 있으며 우리도 저작권을 고려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글 쓸때 단어만 던지거나 개념만 던지지말고 그 개념이 현실에 적용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의 활용에 대해서 장, 단점을 모두 정확히 기술하여 다른 이들이 오해하지 않고 잘 나아가게끔 글 쓰는 태도를 길러야한다는 것입니다.
글 쓰는 성품과 태도에 대해서 다른 이를 배려하는 사상이 있다면 당연히 이렇게 할 텐데 글을 쓸 때 글을 보는 이들의 이해력을 돕고 누가 보는지를 고려하여 제대로 정리하고 심사숙고하며 장, 단점과 경우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세분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상대방을 고려하는 태도이며 글을 쓸 때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제가 주장한 것이 바로 글 쓰는 태도입니다. 옮겨올 때는 조심하자는 소리입니다.
글 쓰는 태도가 겸손의 각도에 있느냐 없느냐는 마음의 기점에 달린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제가 주장하는 심성의 일부이자, 자비심의 일종입니다. 이는 헤아리는 태도를 포함하며 선한 마음의 집중은 바로 이런 작은 기점과 배려들로 부터 시작합니다.
스스로의 글은 자체가 다른 공간에서 생명이기에 그들도 소중히 여기려면 그들의 심장, 위, 간만 그리지 말고 육체의 일체를 갖추어주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그게 자신이 창조한 생명에 대한 배려아닙니까? 저는 이런 것을 고려하면서 글 씁니다. 그래서 정성이 담긴 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런 정도까지 말할 수 있지요.
사실 다른 이의 글을 비판하고자 할 때나 보충해 주고자 할 때도 선한 마음의 집중은 어려운게 아니며 매사에 다른 이를 배려하고 감사하고 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태도가 아니라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그런 태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른 이의 글을 임의 가공하면서 글 쓰면 안됩니다.
저와 같이 순수성이 보존되는 길은 정확히 어떤 경우와 어떤 태도를 보였을 때인지에 대해서와 순수성을 변질시키는 것은 어떤 경우와 어떤 태도를 보였을 때인지를 정확히 밝혀야하는데 왜냐면 만약 누가 순수성이란 단어를 던지고 단순히 변질된다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말하고 전하기만 하면 순수성이 오염되는 구나하고 편향적이고 잘못된 인식을 하게 마련입니다. 순수성만 던졌다면 그는 자비심이 없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곧 누가 듣는지에 따라 예방을 할 수 있는가 하면 문제를 만들고 확대하며 고착시킬 수도 있습니다. 장황하게 쓰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장,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제가 위의 글에서 표현한 대부분의 것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 느꼈기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세분하여 표현 해야 한다는 저의 배려심이자, 저의 봉사심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제가 보는 것은 심성이며 다른 이가 자신의 글을 어떻게 쓰든지 그가 책임질 문제이며 상관없으나 다른 이의 글이나 댓글에는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하는데 아부하란 소리가 아니며 마땅히 나누고 세분시킬 일이면 나누어 글을 보는 사람에게 완벽한 도움이 되도록 글을 쓰야 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완벽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하자는 것이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심성을 닦는 연공인이므로 부족하나 노력할 뿐입니다. 전 제글로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비로소 경우를 나누고 상황을 나누어 분석을 제대로 하여 심사숙고하여 글 쓰는데 이것이 선한 마음의 집중이며 정성이 담긴 성심성의의 태도입니다.
저는 겸손함을 주장하는데 글의 말에 대한 장,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남을 무시하는 듯하는 인상을 주며 남이 문제가 일어났다면 곧 글 쓴 사람도 그런 경우도 포함시켜야하는데 필경 이리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면 곧 앞으로 그가 책임져야 합니다.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