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도둑과 달
양관선사(良寬禪師)는 산자락에 있는 작은 초가집에 살았다. 어느 날 밤 좀도둑이 그의 초가집에 들어왔는데 훔쳐갈만 한 것이 아예 없음을 알았다.
이때 양관선사가 밖에서 돌아와 도둑과 맞닥뜨렸다. 그는 평온하게 도둑에게 말했다. “자네도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왔을 테니 빈손으로 갈수는 없지. 내 몸에 옷을 선물로 주겠네.” 하고는 옷을 벗어 도둑에게 주었다.
도둑은 어쩔 줄 모르다가 옷을 받아들고 줄행랑을 쳤다.
양관선사는 윗통을 벗은 채로 문 앞의 석대위에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가능하다면 이 아름다운 달도 그에게 줄텐데!”
밤이 물러가고 점점 날이 밝아왔다. 선사는 초가집에서 나와 석대(石台) 앞에 도달했다. 그가 막 앉으려고 하는데 무엇을 발견했다: 어젯밤 좀도둑에게 주었던 그 옷이 뜻밖에 가지런히 석대 위에 놓여 있었다.
양관선사는 자기의 자비심으로 도둑을 감화시킨 것이었다. 그가 도둑에게 준 것은 하나의 옷뿐 아니라 하나의 밝은 달도 주었던 것이다.
이 달은 바로 착한 마음이며 깨달은 정도이다. 오로지 자기의 마음속에 밝은 달이 있고 청결한 달빛이 있어야 타인의 심령을 밝혀줄 수 있다.
2. 울보 할매와 웃는 할매
별명이 “울보할매”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비가 와거나 날이 맑아도 늘 울었다.
어느 선사가 그녀를 보고 물었다. “왜 우시는 겁니까?”
그녀가 말했다:“나는 두 딸이 있는데 큰 딸은 신발장수에게 시집갔고 둘째는 우산장수에게 시집갔습니다. 그러니날이 맑으면 우산 파는 둘째가 먹고 살 일이 걱정되고 비가 오면 첫째의 신발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날마다 딸들을 생각하느라 운답니다.”
선사는 그녀를 깨우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날이 맑으면 큰 딸의 신발장사가 잘될 것을 생각하고 비가 오면 둘째의 우산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세요.”
노파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군요!” 했다.
이때부터 울보 할매는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늘 웃으며 지냈다.
3. 침대 머리맡의 여자 상
안적(安積)이란 남자의 머리맡에 늘 여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는 수시로 그림 아래에 신선한 과일을 바쳤다.
그 속에는 재미있는 혼인의 인연이 있다.
안적이 젊었을 때 아내를 얻었다. 안적은 어렸을 때 천연두에 걸려 얼굴에 매우 보기 싫게 되었다. 온 얼굴이 얽었으며 괴물같았다. 그 여인은 그의 얼굴을 보고 견딜 수 없어 마침내 그를 떠나 이혼했다.
나중에 그가 또 다른 여인을 취했는데 그 여인도 그의 추함을 견디지 못해 떠나갔다.
안적은 거울을 보며 장탄식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어느 날 그는 알았다. 한 사람의 가지는 심령에 있다. 신체적인 결함은 바꿀 수 없지만 심령은 정화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매우 분투하여 마음을 닦았다. 나중에 그는 당시 대학자였던 좌등일재(佐藤一齋)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일류 학자가 되었다.
안적은 이 일체를 자기의 추함을 싫어하여 떠난 그 여인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만약 당초 그 여인이 나를 싫어하여 버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분투하지 못했을 것이니 그녀의 큰 은혜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여인의 초상을 침대에 걸어놓아 보답을 했던 것이다.
발표시간: 2012년 12월 31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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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노자가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자연은 사람과 일체여서 우주 만물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소중합니다. 내가 곧 자연이며, 자연이 곧 나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내가 곧 남이고 남이 곧 나입니다.
수련자는 상대방과 현재 눈 앞에 일어난 사건을 자신의 거울삼아서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마음가짐을 되돌아 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더욱 다른 이들에게 잘 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지요. 비록 스스로 찾는다고 하였지만 신들께서 관여하고 계시며 다른 사람의 언행을 통해서, 눈 앞의 상황을 통해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곧 남과 같다면 다른 이도 나를 대하듯이 소중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외의 남을 격리시켜보고 남을 해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의 각도에서 본다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망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나와 남은 분리시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을 해치는 행위는 스스로 업을 가지게 될 텐데 이 업을 해결하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세월을 견뎌내야 하겠습니까? 곧 신의 각도에서 보면 나쁜 사람들을 볼 때 아주 괴롭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스스로를 자꾸 학대하고 있는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파룬다파 경문인 정진요지 중의 내용입니다.
사부(師): 당신은 나의 제자에게 아직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신(神) : 당신의 제자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신 : 한 부분은 당신의 요구에 따라 법 중에서 정진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비교적 좋습니다. 한 부분은 사람의 것을 품고 놓지 못하며 정진하지 못합니다.
신 : 제가 보기에 신(神)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더 미루지 마시지요. 사실 그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부: (혼잣말) 인간 세상 속에서 그들은 참으로 너무나 깊이 미혹되었다. 최후엔 다만 이럴 수밖에 없다. 최후에 사람마저도 되지 못할까 걱정이다!
신 : 사실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괜찮은 것입니다. 우주 중에서 역사에 의해 도태된 무수한 고층 생명과 비교해 보면, 이미 비할 바 없는 행운입니다.
신 : 현재 이 한 패의 사람들을 놓고 말하면, 그들 어떤 사람이 법을 공부하러 옴은, 인생목표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변하지 않으려는 이러한 인식을 품고 있습니다.
신 : 그들 중에는 또 그들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법의 일면을 찾으러 온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그들 자신이 법을 전부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일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 : 이러한 문제는 이미 몹시 심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청성(淸醒)하게 하며 그들의 환경을 진정으로 수련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진정한 신(神)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댓글로 이어집니다.)
PS.
전법륜은 파룬다파라는 기공수련의 서적인데 사람이 살아감에 마음을 갈고 닦고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과 책임감을 가르치는 내용이며
사람이 가져야하는 도덕적인 품성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용을 보면 진실됨, 선함, 인내함이란 진리를 가르치는데 저는 이런 이치를 사회상에서 체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여 좋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로 느꼈습니다.
파룬다파는 전 서적과, 연공 음악, 동작 등이 모두 무료라고 하며 공법이 쉽다고 하여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감사함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의 링크인데 좋은 내용인 만큼 공유하고 싶어 링크를 올립니다.
읽으면서 저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www.falundafa.or.kr - 파룬다파 기공 소개 사이트
http://kr.falundafa.org/book/HTML/zfl.html - 전법륜 전체 내용이 수록된 링크
상대방을 거울로 보고 자신은 상대방과 다르게 좀 더 선하고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언행에 정성을 들이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이를 더 좋게 하려는 생각이 바로 자신을 천상으로 향하게 하는 근본 조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이 나의 거울이라면 다른 이를 해치는 것은 곧 나를 해치는 것이므로 해서는 안 되며 다른 이에게 큰 포용감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의 거울이므로 다른 이를 고려하고 배려함은 곧 내가 나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냐면 노자의 사상에 따르면 자신이 곧 자연만물인 우주와 같으며 동시에 자연만물인 우주가 곧 자신과 같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의아해할 것은 이치는 쉽지만 어찌 사람이 같을 수가 있는가?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전법륜 내용입니다.
“어느 직장에서나 혹은 직장 밖에서 상을 받았거나 또는 조그마한 좋은 일이 있어도 돌아와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알고는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 서방 사람은 이것을 가리켜 동방질투 또는 아시아질투라고도 한다. 온 아시아 지역은 모두 중국 유교의 영향을 비교적 깊게 받아 모두 조금씩 갖고 있는데, 유독 우리 중국에서 비교적 강렬하게 표현된다.
이는 우리가 과거에 실시했던 절대평균주의와 일부 관계가 있는데, 아무튼 하늘이 무너져도 다 같이 죽어야 되고, 어떤 좋은 것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야 하며, 임금이 올라도 무슨 백분의 몇으로 사람마다 한 몫씩 있어야 한다. 이런 사상은 보기에는 마치 썩 맞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이 다 같다는 것이다.
사실 어찌 같을 수 있는가? 하는 일이 같지 않고 성심껏 책임지는 정도도 같지 않다. 또 우리 이 우주에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 속인 중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많이 일하면 많이 얻으며, 적게 일하면 적게 얻고, 대가를 많이 치르면 마땅히 많이 얻어야 한다고 한다.
과거에 절대평균주의를 실시하면서, 사람이란, 태어날 때는 모두 같은 것인데, 후천적으로 사람을 개조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절대적이며, 어떤 것이든 너무나 절대적이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왜 사람이 태어남에 남자가 있고 또 여자가 있는가? 생김새 또한 다르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있고 기형인데,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층차에서 보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의 일생이 거기에 놓여 있는데, 같을 수 있겠는가? 모두 균등하게 하려 하지만 그의 그 인생에는 없는데 어떻게 균등하겠는가? 같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법인가? 이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眞(쩐)・善(싼)・忍(런), 그가 바로 불법의 최고 체현이며, 그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불법이다. 불법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체현 형식이 있으며,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지도 작용이 있는데, 층차가 낮을수록 표현이 더욱 번잡하다.
공기미립자・돌・나무・흙・강철・인체, 모든 물질 속에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이 존재하며; 고대에는 오행(五行)이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구성한다고 했는데, 역시 모두 眞(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이 존재한다. 수련하는 사람이 어느 층차까지 수련되면 다만 그 층차 중의 불법의 구체적인 체현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한 과위(果位)・층차(層次)다. 펼쳐 놓고 말하면 법은 매우 크다.
극히 높은 곳에 이르러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眞(쩐)・善(싼)・忍(런)이며, 각개 층차에서 현현(顯現)하면 극히 복잡하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도가(道家)에서는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사람에게는 물질신체가 있지만, 이 물질신체만 가지고는 완정(完整)한 사람을 구성할 수 없으며, 또 반드시 사람의 성격(脾氣)・천성(秉性)・특성(特性)・元神(왠선)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완정하고 독립적이며 자아개성을 가진 사람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서, 은하계와 기타 성계(星系)가 있고 또 생명과 물이 있는데, 이 우주 중의 만사만물, 이것은 물질로 존재하는 한 방면이고; 동시에 그것은 또 眞(쩐)・善(싼)・忍(런) 특성이 존재한다. 어떤 물질의 미립자 중이든지 모두 이런 특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극히 작은 미립자 중에도 모두 이런 특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