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로 한정된 체험, 한정된 지역에 고착되어 윤회하는 것은
정보량의 누적 면에서 불리한 면이 많고
수많은 분별심과 망상이 곧 지혜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인 묘관찰지를 닦는 것에 부족함이 있음입니다.
서원은 윤회의 흐름 속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끝에 도달한 자들은 전생의 공력에 연연해하지 않고 범부(凡夫)로 돌아옵니다.
누구나 이번 생애에 도달한 경지를 잃어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제자를 찾아내고 제자가 다시 스승을 찾아내어 수행만을 닦는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수행력을 잇고자 하는 마음...잇는 것은 가능하나 더 나아가질 못합니다.
더 나아가는 것에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께서 가정을 이루고, 인간사 번뇌를 겪고, 6년 간의 고행이 없었다면
아님 밀라레빠님께서 흑마술을 하여 그 업보를 치루면서, 스승에게 혼나는 체험이라든가 인간적 체험이 없었다면....
과연 대도를 이루셨을까요...?
사람들은 석가모니께서 남겨주신 위빠사나나 밀라레빠께서 남겨주신 나로빠육법을 열심히
행하나...이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만다라화 하거나 의식을 고양시키는 과정일 뿐...
타고 있는 장작에 장작을 더하여 더 크게 하여 세상을 빛나게 하는 것은
수많은 윤회를 통하여 복덕자량과 지혜를 쌓아 묘관찰지를 구비하는 보살도로 가능합니다.
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망각이기 때문에
수행의 끝에 도달한 자들이라 여겨지는 이들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윤회합니다.
그 시작은 시작처럼 보이나
영혼의 시작점은 아니기에 그것을 아는 이들은 다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린포체들의 환생을 보면서 신기하다 혹은 그 한우물을 파는 열정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전생 전생마다 모습과 직업과 성별과 성격이 다르더라도
비록 수행 공력에 연연하는 윤회가 아니더라도
진짜 한우물을 파는 존재도 있습니다.
그들 보살들은 자신의 서원에 의한 윤회로 한생 한생이 다 성별과 성격이 다 다르더라도
보살의 서원에 의한 나툼이지
수행력을 잃어버린다고 여기며 윤회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툼에 의한 행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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