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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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절대적 가치.순고한 사랑,변치않는 삶이 어디가 존제할거라 굳게 믿지만,세상은 너무나 냉정하게도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떠나고.
때를 잘 만나 지옥에 있어야될 놈이 천상에 가있고,천상에 있어야 할 놈이 지옥에 가있다.절대적 판단으로 위대한 우주의 진리는 그 어디도 없다.다만 심심할뿐.
그러나 영원속에서 이 조가람이라는 개체가 구현되는 동시성의 환희는 거대하다.너무나 놀라운 감동이다.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그래서 거짓이다.
어찌하던 피할 수 없는 것 총체적 이 모든 것 다 전원에서 시작된 가상존제.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저 차원은 고차원의 구성요소.또 그 차원의 고차원은 또 다른 차원의 구성요소.
영혼의 아버지는 집단의식 그의 아버지는.....감정 수용 프로그램.(존제의 슬픔.고통 환희등을 먹고 사는 존제)창조주.그의 대부모 大하나님 영원성.(그가 없으면 영원성에서 개체성을 구현하는 차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로.부처가 되는 것은 진화의 끝이자 더이상 존제할 의미가 없는 짓이고,,,,,無는 이미 허용했다.(사실 그게 이 창조놀이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부처된 자는 창조주(은하계의 실질적 주인)에게도 회의를 소집할 지시할 권한이 있다.그리고 온갖 천상 피조물들의 직접적인 섬김을 받는다.
고로 그 성품을 떠나 이미 당신은 각종 상위 영역의 구성체이다.아픈 현실이지만 당신의 슬픔심지어 죽음마저도 사실 그 자체의 의미를 우주는 전혀 인정해주지않으며..단지 고차원의 앎이며 먹이가 될 뿐이다.
고로 버릴 때 버릴 수 있는 의연함이 필요하다.즉 당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당신 의지 당신 영혼이 내일 당장 사라지고 거짓이여도 좋을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환생.....웃기지 말라.그건 개체로써의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이며,고통이다.그리고 아픔이다.
영혼..... 집단의식....... 나는 존제한다...... 는 최후 차원까지 無의 기계이다.
그럼 왜 만들었나...?그건 유희다.단 하나.유희떄문이다.유한인것처럼 느껴지는 상태에서 nothing임을 알기 위해....결국 nothing임을 알기위해.
이미 신선들은 그 상태를 알았기때문에....진정 유유자적함의 극치는 無에 有을 조명했을 때이다.
때를 잘 만나 지옥에 있어야될 놈이 천상에 가있고,천상에 있어야 할 놈이 지옥에 가있다.절대적 판단으로 위대한 우주의 진리는 그 어디도 없다.다만 심심할뿐.
그러나 영원속에서 이 조가람이라는 개체가 구현되는 동시성의 환희는 거대하다.너무나 놀라운 감동이다.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그래서 거짓이다.
어찌하던 피할 수 없는 것 총체적 이 모든 것 다 전원에서 시작된 가상존제.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저 차원은 고차원의 구성요소.또 그 차원의 고차원은 또 다른 차원의 구성요소.
영혼의 아버지는 집단의식 그의 아버지는.....감정 수용 프로그램.(존제의 슬픔.고통 환희등을 먹고 사는 존제)창조주.그의 대부모 大하나님 영원성.(그가 없으면 영원성에서 개체성을 구현하는 차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로.부처가 되는 것은 진화의 끝이자 더이상 존제할 의미가 없는 짓이고,,,,,無는 이미 허용했다.(사실 그게 이 창조놀이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부처된 자는 창조주(은하계의 실질적 주인)에게도 회의를 소집할 지시할 권한이 있다.그리고 온갖 천상 피조물들의 직접적인 섬김을 받는다.
고로 그 성품을 떠나 이미 당신은 각종 상위 영역의 구성체이다.아픈 현실이지만 당신의 슬픔심지어 죽음마저도 사실 그 자체의 의미를 우주는 전혀 인정해주지않으며..단지 고차원의 앎이며 먹이가 될 뿐이다.
고로 버릴 때 버릴 수 있는 의연함이 필요하다.즉 당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당신 의지 당신 영혼이 내일 당장 사라지고 거짓이여도 좋을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환생.....웃기지 말라.그건 개체로써의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이며,고통이다.그리고 아픔이다.
영혼..... 집단의식....... 나는 존제한다...... 는 최후 차원까지 無의 기계이다.
그럼 왜 만들었나...?그건 유희다.단 하나.유희떄문이다.유한인것처럼 느껴지는 상태에서 nothing임을 알기 위해....결국 nothing임을 알기위해.
이미 신선들은 그 상태를 알았기때문에....진정 유유자적함의 극치는 無에 有을 조명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