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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50편. 세 번째 전도 여행.
6. 저녁 수업
저녁 토론 시간에 예수는 많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남은 이 여행 동안에ㅡ모두 나사렛에서 다시 합치기 전에ㅡ"하나님의 사랑," "꿈과 환상," "악의," "겸손과 온유," "용기와 충성," "음악과 예배," "봉사와 복종," "자만과 주제넘음," "용서와 뉘우침의 관계," "평화와 완전," "악하게 말하기와 질투," "악과 죄와 유혹," "의심과 불신," "지혜와 예배" 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고참 사도들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이 젊은 남녀들의 무리는 주와 함께 더욱 거리낌없이 이 토론에 들어갔다.
열두 전도사 한 무리와 이삼일 보낸 뒤에 예수는 자리를 떠서 또 다른 무리에 합세하곤 하였고, 다윗의 사자들로부터 이 모든 일꾼이 있는 곳과 그 움직임에 대하여 통지를 받았다. 이것이 처음 여행이었으니까, 여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다. 사자 서비스를 통해서 이 집단들은 저마다 여행의 진전에 관하여 충분히 통지받았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소식 받는 것은 흩어지고 따로 떨어진 이 일꾼들에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근원이었다.
흩어지기 전에, 열두 사도는 전도사들과 여인단과 더불어, 3월 4일, 금요일에 주를 만나려고 나사렛에서 모이기로 미리 주선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에 중부 및 남부 갈릴리의 모든 지방으로부터 이 여러 집단의 사도와 전도사들이 나사렛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중반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온 안드레와 베드로는 일찍 도착한 자들이 준비하고, 그 도시의 북쪽, 고지(高地)에 자리잡은 야영지에 이르렀다. 대중 봉사를 시작한 뒤로 이번에 처음으로 예수는 나사렛을 방문했다.
7. 나사렛에서 머무르다
이 금요일 오후에 예수는 사람들 눈에 아주 띄지 않고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나사렛 주위를 걸어다녔다. 어릴 때 살던 집과 목수 작업장을 지나쳤고, 소년이었을 때 무척 즐기던 언덕에서 반시간을 보냈다.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 받은 날 이후로, 사람의 아들은 혼 속에서 그러한 인간다운 감정의 큰 물결이 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사렛에서 자라는 소년이었을 때 아주 여러 번 들은 것과 똑같이, 해가 지는 것을 알리는 트럼펫을 불어대는 소리,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다. 야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공부하러 다니던 회당 옆으로 걸어서 내려갔고, 머리 속에서 소년 시절의 여러 가지를 회상하는 데 빠졌다. 그 날 일찍, 안식일 아침 예배에 설교하도록 회당장과 주선하라고 토마스를 미리 보냈다.
나사렛 사람들은 경건함과 올바른 생활로 소문난 적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자, 이 마을은 근처 세포리스의 낮은 도덕 기준에 더욱 오염되었다. 예수의 어릴 때와 젊은 청년기를 통해서, 나사렛에서는 그에 관하여 의견이 갈라져 있었다. 가버나움으로 이사갔을 때, 사람들은 무척 분개했다. 나사렛의 주민들은 옛 목수가 한 일에 대하여 익히 소문을 듣기는 했어도, 초기 전도 여행 중에 어디에도 잔뼈가 굵은 마을을 넣지 않은 것에 비위(脾胃)가 거슬렸다. 정말로 예수의 명성을 들었지만, 대다수의 시민은 그가 어릴 때 자란 도시에서 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여러 달 동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많이 떠들었지만, 그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이렇게 반가이 맞는 귀향(歸鄕)이 아니라 뚜렷이 적대시하고 지나치게 비판하는 분위기 한가운데에 주는 자신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사렛에서 이 안식일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고, 회당에서 그가 말씀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서, 적들은 그를 성가시게 하고 가능한 모든 면에서 소동을 일으키려고 거칠고 천한 수많은 사람을 고용했다.
예수의 옛 친구들의 대부분은, 어릴 때 그에게 쏙 빠졌던 하잔 선생을 포함하여, 죽었거나 이미 나사렛을 떠났고, 젊은 세대는 심한 질투로 그의 명성을 분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가족에게 예전에 헌신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고,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동생과 시집간 누이들을 찾아보기를 소홀히 한 것을 지독하게 비난하였다. 예수의 집안이 그에 대하여 가진 태도도 또한 시민들의 불친절한 느낌을 키우는 경향이 있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정통파의 사람들은 예수가 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으로 가는 길에 너무 빨리 걸었다고 해서 주제넘게 헐뜯기까지 했다.
6. 저녁 수업
저녁 토론 시간에 예수는 많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남은 이 여행 동안에ㅡ모두 나사렛에서 다시 합치기 전에ㅡ"하나님의 사랑," "꿈과 환상," "악의," "겸손과 온유," "용기와 충성," "음악과 예배," "봉사와 복종," "자만과 주제넘음," "용서와 뉘우침의 관계," "평화와 완전," "악하게 말하기와 질투," "악과 죄와 유혹," "의심과 불신," "지혜와 예배" 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고참 사도들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이 젊은 남녀들의 무리는 주와 함께 더욱 거리낌없이 이 토론에 들어갔다.
열두 전도사 한 무리와 이삼일 보낸 뒤에 예수는 자리를 떠서 또 다른 무리에 합세하곤 하였고, 다윗의 사자들로부터 이 모든 일꾼이 있는 곳과 그 움직임에 대하여 통지를 받았다. 이것이 처음 여행이었으니까, 여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다. 사자 서비스를 통해서 이 집단들은 저마다 여행의 진전에 관하여 충분히 통지받았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소식 받는 것은 흩어지고 따로 떨어진 이 일꾼들에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근원이었다.
흩어지기 전에, 열두 사도는 전도사들과 여인단과 더불어, 3월 4일, 금요일에 주를 만나려고 나사렛에서 모이기로 미리 주선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무렵에 중부 및 남부 갈릴리의 모든 지방으로부터 이 여러 집단의 사도와 전도사들이 나사렛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중반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온 안드레와 베드로는 일찍 도착한 자들이 준비하고, 그 도시의 북쪽, 고지(高地)에 자리잡은 야영지에 이르렀다. 대중 봉사를 시작한 뒤로 이번에 처음으로 예수는 나사렛을 방문했다.
7. 나사렛에서 머무르다
이 금요일 오후에 예수는 사람들 눈에 아주 띄지 않고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나사렛 주위를 걸어다녔다. 어릴 때 살던 집과 목수 작업장을 지나쳤고, 소년이었을 때 무척 즐기던 언덕에서 반시간을 보냈다.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 받은 날 이후로, 사람의 아들은 혼 속에서 그러한 인간다운 감정의 큰 물결이 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사렛에서 자라는 소년이었을 때 아주 여러 번 들은 것과 똑같이, 해가 지는 것을 알리는 트럼펫을 불어대는 소리,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다. 야영지로 돌아가기 전에, 공부하러 다니던 회당 옆으로 걸어서 내려갔고, 머리 속에서 소년 시절의 여러 가지를 회상하는 데 빠졌다. 그 날 일찍, 안식일 아침 예배에 설교하도록 회당장과 주선하라고 토마스를 미리 보냈다.
나사렛 사람들은 경건함과 올바른 생활로 소문난 적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자, 이 마을은 근처 세포리스의 낮은 도덕 기준에 더욱 오염되었다. 예수의 어릴 때와 젊은 청년기를 통해서, 나사렛에서는 그에 관하여 의견이 갈라져 있었다. 가버나움으로 이사갔을 때, 사람들은 무척 분개했다. 나사렛의 주민들은 옛 목수가 한 일에 대하여 익히 소문을 듣기는 했어도, 초기 전도 여행 중에 어디에도 잔뼈가 굵은 마을을 넣지 않은 것에 비위(脾胃)가 거슬렸다. 정말로 예수의 명성을 들었지만, 대다수의 시민은 그가 어릴 때 자란 도시에서 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여러 달 동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많이 떠들었지만, 그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이렇게 반가이 맞는 귀향(歸鄕)이 아니라 뚜렷이 적대시하고 지나치게 비판하는 분위기 한가운데에 주는 자신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사렛에서 이 안식일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고, 회당에서 그가 말씀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서, 적들은 그를 성가시게 하고 가능한 모든 면에서 소동을 일으키려고 거칠고 천한 수많은 사람을 고용했다.
예수의 옛 친구들의 대부분은, 어릴 때 그에게 쏙 빠졌던 하잔 선생을 포함하여, 죽었거나 이미 나사렛을 떠났고, 젊은 세대는 심한 질투로 그의 명성을 분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가족에게 예전에 헌신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고,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동생과 시집간 누이들을 찾아보기를 소홀히 한 것을 지독하게 비난하였다. 예수의 집안이 그에 대하여 가진 태도도 또한 시민들의 불친절한 느낌을 키우는 경향이 있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정통파의 사람들은 예수가 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으로 가는 길에 너무 빨리 걸었다고 해서 주제넘게 헐뜯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