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위 물병속에 있는 꽃 줄기는 꺽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상을 <빛의 굴절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굴절이 되는 이유가
공기와 물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임을 잘 안다.
그런데 이 빛의 굴절은 물질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도 이 굴절현상이 실제하고 있다.
즉,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만 보고 단정짖는 행위는 이 굴절현상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럼 이 의식 굴절현상은 왜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
그것은 오라장이 탁하고 두텁기 때문이다.
오라장이 탁하고 두터워 외부세계가 굴절된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럼 왜 오라장이 탁하고 두텁게 되는 것일까 ?
그것은 오라장을 만드는 인식의 틀이(신념체계가) 닫혀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누군가로 부터 침탈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외부와의 원할한 소통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우주에서 초래한 카르마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사건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보려면
이 카르마적 상처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상처와 깊이 화해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오라장이 가볍고 밝아 지면
그 밀도가 낮아져 공기와 비슷하게 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건이나 사물이 굴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졸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확장하고 체화하려고 하는 것도
이 오라장을 가볍고 맑게하기 위해서다.
작용을 반작용의 행위를 통해 <제로 포인트 화>하기 위해서 인것이다.
글 수 17,504
위 물병속에 있는 꽃 줄기는 꺽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상을 <빛의 굴절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굴절이 되는 이유가
공기와 물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임을 잘 안다.
그런데 이 빛의 굴절은 물질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도 이 굴절현상이 실제하고 있다.
즉,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만 보고 단정짖는 행위는 이 굴절현상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럼 이 의식 굴절현상은 왜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
그것은 오라장이 탁하고 두텁기 때문이다.
오라장이 탁하고 두터워 외부세계가 굴절된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럼 왜 오라장이 탁하고 두텁게 되는 것일까 ?
그것은 오라장을 만드는 인식의 틀이(신념체계가) 닫혀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와 생명이 누군가로 부터 침탈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외부와의 원할한 소통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우주에서 초래한 카르마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사건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보려면
이 카르마적 상처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상처와 깊이 화해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오라장이 가볍고 밝아 지면
그 밀도가 낮아져 공기와 비슷하게 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건이나 사물이 굴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졸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확장하고 체화하려고 하는 것도
이 오라장을 가볍고 맑게하기 위해서다.
작용을 반작용의 행위를 통해 <제로 포인트 화>하기 위해서 인것이다.
청학
- 2007.05.06
- 15:34:38
- (*.112.57.226)
굴절이니 오라장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입니다.
좀 쉽게 말하면 이런게 아닐까요?
물도 탁하고 청한 물이 있습니다.
또 물은 물이되 기름성분이 강한 물이 있고 휘발성이 강한 물이 있습니다.
결국 기름이나 휘발성분이냐의 차이는 밀도나 운동성의 차이일 뿐입니다.
기운에 맞게 쓰여질 뿐입니다.
물질로 따지면 고체(고정관념, 이기주의적 관점)에 가까운 에너지냐 기체(자유관념, 이타주의적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서는
밝고 맑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탁하고 무거울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완성을 향한 방편의 차이일 뿐인에 공교롭게도 우리의 몸은 이 두가지가 첨밀하게 교차합니다.
다만 이중성이냐 양면성이냐의 차이이죠!~
이중성이라는 두 에너지의 기호에 휘말이리는것이고, 양면성이라는 것은 두 에너지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좀 쉽게 말하면 이런게 아닐까요?
물도 탁하고 청한 물이 있습니다.
또 물은 물이되 기름성분이 강한 물이 있고 휘발성이 강한 물이 있습니다.
결국 기름이나 휘발성분이냐의 차이는 밀도나 운동성의 차이일 뿐입니다.
기운에 맞게 쓰여질 뿐입니다.
물질로 따지면 고체(고정관념, 이기주의적 관점)에 가까운 에너지냐 기체(자유관념, 이타주의적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서는
밝고 맑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탁하고 무거울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완성을 향한 방편의 차이일 뿐인에 공교롭게도 우리의 몸은 이 두가지가 첨밀하게 교차합니다.
다만 이중성이냐 양면성이냐의 차이이죠!~
이중성이라는 두 에너지의 기호에 휘말이리는것이고, 양면성이라는 것은 두 에너지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한 그룹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는 이유로
가해한 술집 종업원들을 산으로 끌고가 직접 폭행을 한것이다.
이 과정을 보면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조폭들의 행태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 사태를 축소 은폐하기 위해
경찰 고위층에 이런 저런 청탁을 한 모양이다.
앞으로 이런 힘있는 자들의 일탈행위가 계속 발생하겠지만
그 이유는 오라장이 탁하고 둔해
세상이 변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에 젖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 원하는 일이 훨씬 빠르게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것은 긍정적인 선택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나 유익한 일이다.
망설이거나 부정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빠름은 더욱 큰 재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와가 사람들에게 전한
<언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올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어라>라는 말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emtc_043emtc_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