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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 크라이언 채널링 / 유영일 옮김
봄 햇살처럼 따사롭고 온화해 보이는 성품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아주 가끔씩은 극도로 화를 내기도 했지요. 온화한 겉모습의 저 깊은 밑바닥에는 폭발할 기회를 노리며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노가 그렇게 한번 폭발하면, 그녀는 서릿발 사나운 원한을 품은 것처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가서는, 닥치는 대로 파괴를 일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자멸의 수준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향해 “넌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소리소리 외치곤 했지요.
온화한 겉모습의 그녀에게 그런 분노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바깥에 드러난 그녀와 속안의 그녀가 너무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최악의 장소, 최악의 시간에만 표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분노를 참지 못했다는 그것이 그녀를 더욱 더 화나게 하곤 했습니다. 분노가 분노를 불러오는 것입니다!화내는 모습의 자기 자신처럼 싫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녀는 그런 자기 모습을 될수록 감추려고 애썼지요.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자기 모습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어찌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폭발하는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의 공든 탑이 쉽사리 허물어져 버리곤 했습니다. 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자친구에게 끝장임을 선언하곤 했고, 그러면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화를 낼 만한 일인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쓸데없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휘말려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도록, 평소의 온화한 그녀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다음 번의 단추가 눌러져서 분노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는요. 분노는 너무나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너무나 추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찌할 수 없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곤 했고,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심정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분노의 밑기둥을 따라내려가 보면, 거기에는 어린 시절 그녀가 당했던 치욕이 뿌리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더구나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에게였습니다. 더러운 욕망을 자신의 딸에게 투사시킨 아버지를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근친상간이라는 들먹이기조차 낯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아버지의 그 모든 행위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분노로 치를 떨곤 했습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그 짐승!그녀는 집에서 뛰쳐 나왔고,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엄마에게조차, 그녀는 자신이 왜 집을 떠나야 하는지 설명조차 할 수가 없었지요. 짐승 같은 그 작자 때문에, 엄마하고도 떨어져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더욱 더 분노가 치밀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엄마와 딸은 다정한 친구처럼 되어가는 법인데, 그런 행운조차 빼앗겨 버린 겁니다.
분노의 뿌리가 밝혀짐에 따라, 어떻게든지 자기 자신을 추스리고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간절하게 ‘깨달음’의 길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과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 친구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녀가 그렇게도 원하던 것들을 그 친구는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놀라운 말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완전히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깨달았지요. 고작 분노와 싸우며 씨름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친구가 믿고 있는 바를 자신도 그대로 믿고 싶었고, 새로운 이 신앙이 이젠 그만 그녀에게서 분노의 뿌리를 거두어가 주기를, 그래서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수호 천사들에게 요청했습니다.
“분노를 피하려면 제가 어떡해야 하지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수호 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 보세요!”
아! 그보다 더 최악의 말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앞이 캄캄할 정도의 두려움이 그녀를 덮쳐 왔습니다. 아버지를 만나 그 작자의 상판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천사에게조차 화가 솟구칠 정도였습니다. 그 작자를 영원히 기억에서 추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숱한 밤을 새워가며 고민해 왔는데, 그 작자를 다시 만나라니요! 오, 안 돼. 그것만은 절대 안 돼!그녀는 천사에게 다시 물었지요.
“수호 천사님, 그럼 다른 걸 묻겠어요. 제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를 찾아가 그를 만나세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두터운 두려움의 안개가 그녀를 다시 덮쳐 왔습니다. 다시 어린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아버지의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인데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극도로 무서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상상 속에서나마 아버지를 다시 만난 셈입니다. 그녀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내 인생을 망쳐 버린 늪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야 말겠어. 그러고 난 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겁하게 대결을 피하진 않을 거다. 정면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주소를 수소문했고, 실망스럽게도 아직 읍내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소를 알아낼 수 없었다면, 일은 차라리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려움과 맞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그 작자가 집에 있을 때, 술에 취하지 않고 멀쩡할 때를 기다리는 거야. 그래서 문을 두드리는 거야. 당당하게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래서 그 작자가 대답하면, 그동안 쌓아둔 말을 다 하고 말 거야! 작자가 나에게 한 짓이 나에겐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를 말해야지. 내 인생을 다 망쳐 놓은 게 바로 당신이라고, 엄마와도 함께 지낼 수 없게 한 게 바로 당신이라고 말할 거야. 바로 당신 때문에 이젠 다른 남자와도 잘 지낼 수가 없노라고,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겠느냐고 퍼부어 줄 거야! 내 맘대로 한바탕 쏟아놓으면 그래도 분이 풀리겠지. 그러고 나서는, 거기에서 해방되는 거야.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 전날 밤 11시,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두려움의 벼랑에 몰린 아브라함 앞에 천사가 나타난 것처럼, 그녀 앞에 생생한 환상이 펼쳐졌습니다. 환상은 아버지의 정체를 밝히 보여주었고, 그녀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듯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에 올 때마다 그녀는 절친한 친구와 서로의 배역을 정하곤 했는데, 아버지가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볼 수 있었지요. 바로 전생에서는 한때 연인 사이였습니다. 전생의 전생에는 서로를 지극히 아껴주는 자매 사이였습니다. 그 전생의 바로 그 이전 생에서는 다정한 친구 사이였지요.
그녀는 두 사람이 이 지구별에서 생을 거듭하며 살며 하늘에서 약속한 것들을 성취하는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이번 생에서 그녀에게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남은 인생을 그 그늘에서 신음하며 지내는 것 또한 하늘에서 이미 계약된 사항이었지요. 그녀 또한 그런 행위를 당하고, 그 그늘 아래에서 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에, 그렇게 살기로 신성한 마음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계획했던 대로, 이 지상에서 지금껏 자기 역할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상이 말해주는 내용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친구 천사였던 두 존재가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벌이는 일종의 시험이었다니요?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준 그 천사에게서는 사랑이 느껴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사랑으로 미역을 감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유로워졌습니다. 분노는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삶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계획했던 대로, 그녀에게 분노를 심어 주는 일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은 환상이었을 뿐이고, 진실이 드러난 마당에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당연합니다. 분노가 끊어지자,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명령에 거역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순수한 염원으로 두려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거기에서 놓여나는 일 또한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그녀의 선택에 달려 있었습니다. 분노가 이미 자취를 감춘 마당에서는 굳이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지상에서의 과업이 완성되려면 두려움 속으로 곧장 들어가야 했습니다. 아니, 이제 와서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환상을 봄으로써 그런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신의 지혜와 통찰력이 이젠 그녀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경계심을 풀고 삶이 주는 배움을 받아들였고, 그런 그녀의 마음에는 평화가 물결쳐 왔습니다.
그녀는 사랑 속에서 마지막 남은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원한과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힘과 희망이 싹트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기분을 꼭 끌어안은 채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문으로 나왔습니다. 그녀 앞에는, 삶의 온갖 쓰라린 상처를 다 맛본,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한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칼이 다 빠진 대머리 노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치켜떠졌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올랐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그를 향해 그녀가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난 아버지를 사랑해요. 당신이 하신 그 일에 감사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그 일을 하러 오신 거죠. 지금껏 혼자 사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가를 치른 거예요. 난 아빠의 딸이에요. 이제는 과거의 그 일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요. 내 마음에는 평화가 넘치고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를 거기 세워둔 채 뒤돌아 섰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버지는 많은 생각 속을 헤매실 테지요.
그녀로서는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과 비탄 속에서 헤매어 왔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망가진 몸을 그나마 추스리려면 술도 끊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난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자조와 한숨 속에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그 또한 삶이 두려웠고, 공포스러웠습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딸애가, 자신이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마침내 다시 찾아오는 꿈이었지요. 물론 딸애의 얼굴을 다시 대할 면목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통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용서를 구걸하건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면 그 아픔은 또 얼마나 클까요! 하지만 어젯밤 그는 딸애가 문 앞에 서서 “아버지, 난 아버지를 용서해요.”라고 말하는 꿈을 꾼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뭔가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 같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신의 계획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 인간 존재로서, 그는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다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두 생명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오랜 동안 자신들을 꼭꼭 감싸고 있었던 두려움과 부정성의 어둠을 벗어 던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밝은 깨달음을 추구했던 그녀의 현명한 결단 덕분이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별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두 천사 친구가 소란스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아버지와 딸로서 보낸 지상에서의 세월에 대한, 자기들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리란,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기를 드러내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진리의 등불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가 없어. 안 그래?”“그럼요. 신의 사랑은 언제나 어둠을 압도하지요.”
명상을 위한 쉼터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달음으로써, 해묵은 두려움이나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녀가 답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진짜이고, 그녀가 거둔 승리 또한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이언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뒤 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는 크라이언의 이야기가 거기에 참석했던 한 사람의 실화임을 확증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희생물이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결국 배움을 위한 장치이며, 이런 장치는 인생 곳곳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노와 두려움의 불길에 휩싸여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험이 있습니까? 그래서 신께 왜 나를 그런 시험에 빠지게 하느냐고 항의하며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자기 발견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왜 우리가 이곳에 와 있으며, 그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우리는 흔히 질문을 제기하지요. 해답을 듣는다면, 당신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냐구? 왜냐 하면 당신이 그걸 계획했으니까!”
분노와 두려움에 불길에 휩싸이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위대한 사랑의 손길에 의해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놓여 있습니다. 크라이언은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험은 때로 혹독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과했을 때는 사랑의 빛과 희망이 우리를 가득 채워 줍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크라이언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 걸어 들어온 이상 기꺼이 시험을 당하고 단련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유일한 가치라고.
* 이와 관련하여 "운명의 비밀"이라는 글을 다음의 사이트에 올렸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skyventure.co.kr/club/main.asp
* 크라이언 채널링 / 유영일 옮김
봄 햇살처럼 따사롭고 온화해 보이는 성품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아주 가끔씩은 극도로 화를 내기도 했지요. 온화한 겉모습의 저 깊은 밑바닥에는 폭발할 기회를 노리며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노가 그렇게 한번 폭발하면, 그녀는 서릿발 사나운 원한을 품은 것처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가서는, 닥치는 대로 파괴를 일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자멸의 수준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향해 “넌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소리소리 외치곤 했지요.
온화한 겉모습의 그녀에게 그런 분노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바깥에 드러난 그녀와 속안의 그녀가 너무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최악의 장소, 최악의 시간에만 표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분노를 참지 못했다는 그것이 그녀를 더욱 더 화나게 하곤 했습니다. 분노가 분노를 불러오는 것입니다!화내는 모습의 자기 자신처럼 싫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녀는 그런 자기 모습을 될수록 감추려고 애썼지요.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자기 모습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어찌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폭발하는 분노 때문에, 인간 관계의 공든 탑이 쉽사리 허물어져 버리곤 했습니다. 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자친구에게 끝장임을 선언하곤 했고, 그러면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화를 낼 만한 일인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쓸데없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휘말려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도록, 평소의 온화한 그녀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요. 적어도, 다음 번의 단추가 눌러져서 분노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는요. 분노는 너무나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너무나 추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찌할 수 없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곤 했고,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심정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분노의 밑기둥을 따라내려가 보면, 거기에는 어린 시절 그녀가 당했던 치욕이 뿌리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더구나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에게였습니다. 더러운 욕망을 자신의 딸에게 투사시킨 아버지를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근친상간이라는 들먹이기조차 낯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아버지의 그 모든 행위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분노로 치를 떨곤 했습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그 짐승!그녀는 집에서 뛰쳐 나왔고,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엄마에게조차, 그녀는 자신이 왜 집을 떠나야 하는지 설명조차 할 수가 없었지요. 짐승 같은 그 작자 때문에, 엄마하고도 떨어져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더욱 더 분노가 치밀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엄마와 딸은 다정한 친구처럼 되어가는 법인데, 그런 행운조차 빼앗겨 버린 겁니다.
분노의 뿌리가 밝혀짐에 따라, 어떻게든지 자기 자신을 추스리고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간절하게 ‘깨달음’의 길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과 기쁨과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 친구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녀가 그렇게도 원하던 것들을 그 친구는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놀라운 말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완전히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깨달았지요. 고작 분노와 싸우며 씨름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친구가 믿고 있는 바를 자신도 그대로 믿고 싶었고, 새로운 이 신앙이 이젠 그만 그녀에게서 분노의 뿌리를 거두어가 주기를, 그래서 그것이 영원히 제거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수호 천사들에게 요청했습니다.
“분노를 피하려면 제가 어떡해야 하지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수호 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 보세요!”
아! 그보다 더 최악의 말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앞이 캄캄할 정도의 두려움이 그녀를 덮쳐 왔습니다. 아버지를 만나 그 작자의 상판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천사에게조차 화가 솟구칠 정도였습니다. 그 작자를 영원히 기억에서 추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숱한 밤을 새워가며 고민해 왔는데, 그 작자를 다시 만나라니요! 오, 안 돼. 그것만은 절대 안 돼!그녀는 천사에게 다시 물었지요.
“수호 천사님, 그럼 다른 걸 묻겠어요. 제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를 찾아가 그를 만나세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두터운 두려움의 안개가 그녀를 다시 덮쳐 왔습니다. 다시 어린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아버지의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인데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극도로 무서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상상 속에서나마 아버지를 다시 만난 셈입니다. 그녀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내 인생을 망쳐 버린 늪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야 말겠어. 그러고 난 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겁하게 대결을 피하진 않을 거다. 정면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주소를 수소문했고, 실망스럽게도 아직 읍내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소를 알아낼 수 없었다면, 일은 차라리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려움과 맞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그 작자가 집에 있을 때, 술에 취하지 않고 멀쩡할 때를 기다리는 거야. 그래서 문을 두드리는 거야. 당당하게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래서 그 작자가 대답하면, 그동안 쌓아둔 말을 다 하고 말 거야! 작자가 나에게 한 짓이 나에겐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를 말해야지. 내 인생을 다 망쳐 놓은 게 바로 당신이라고, 엄마와도 함께 지낼 수 없게 한 게 바로 당신이라고 말할 거야. 바로 당신 때문에 이젠 다른 남자와도 잘 지낼 수가 없노라고,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겠느냐고 퍼부어 줄 거야! 내 맘대로 한바탕 쏟아놓으면 그래도 분이 풀리겠지. 그러고 나서는, 거기에서 해방되는 거야.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 전날 밤 11시,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두려움의 벼랑에 몰린 아브라함 앞에 천사가 나타난 것처럼, 그녀 앞에 생생한 환상이 펼쳐졌습니다. 환상은 아버지의 정체를 밝히 보여주었고, 그녀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듯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에 올 때마다 그녀는 절친한 친구와 서로의 배역을 정하곤 했는데, 아버지가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볼 수 있었지요. 바로 전생에서는 한때 연인 사이였습니다. 전생의 전생에는 서로를 지극히 아껴주는 자매 사이였습니다. 그 전생의 바로 그 이전 생에서는 다정한 친구 사이였지요.
그녀는 두 사람이 이 지구별에서 생을 거듭하며 살며 하늘에서 약속한 것들을 성취하는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이번 생에서 그녀에게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남은 인생을 그 그늘에서 신음하며 지내는 것 또한 하늘에서 이미 계약된 사항이었지요. 그녀 또한 그런 행위를 당하고, 그 그늘 아래에서 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에, 그렇게 살기로 신성한 마음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계획했던 대로, 이 지상에서 지금껏 자기 역할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상이 말해주는 내용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친구 천사였던 두 존재가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벌이는 일종의 시험이었다니요?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준 그 천사에게서는 사랑이 느껴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사랑으로 미역을 감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유로워졌습니다. 분노는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삶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계획했던 대로, 그녀에게 분노를 심어 주는 일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은 환상이었을 뿐이고, 진실이 드러난 마당에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당연합니다. 분노가 끊어지자,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명령에 거역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순수한 염원으로 두려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거기에서 놓여나는 일 또한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그녀의 선택에 달려 있었습니다. 분노가 이미 자취를 감춘 마당에서는 굳이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지상에서의 과업이 완성되려면 두려움 속으로 곧장 들어가야 했습니다. 아니, 이제 와서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환상을 봄으로써 그런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신의 지혜와 통찰력이 이젠 그녀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경계심을 풀고 삶이 주는 배움을 받아들였고, 그런 그녀의 마음에는 평화가 물결쳐 왔습니다.
그녀는 사랑 속에서 마지막 남은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원한과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힘과 희망이 싹트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기분을 꼭 끌어안은 채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문으로 나왔습니다. 그녀 앞에는, 삶의 온갖 쓰라린 상처를 다 맛본,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한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머리칼이 다 빠진 대머리 노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치켜떠졌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올랐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그를 향해 그녀가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난 아버지를 사랑해요. 당신이 하신 그 일에 감사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그 일을 하러 오신 거죠. 지금껏 혼자 사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가를 치른 거예요. 난 아빠의 딸이에요. 이제는 과거의 그 일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요. 내 마음에는 평화가 넘치고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를 거기 세워둔 채 뒤돌아 섰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버지는 많은 생각 속을 헤매실 테지요.
그녀로서는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과 비탄 속에서 헤매어 왔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망가진 몸을 그나마 추스리려면 술도 끊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난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자조와 한숨 속에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그 또한 삶이 두려웠고, 공포스러웠습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그 딸애가, 자신이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마침내 다시 찾아오는 꿈이었지요. 물론 딸애의 얼굴을 다시 대할 면목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통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용서를 구걸하건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면 그 아픔은 또 얼마나 클까요! 하지만 어젯밤 그는 딸애가 문 앞에 서서 “아버지, 난 아버지를 용서해요.”라고 말하는 꿈을 꾼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뭔가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 같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신의 계획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 인간 존재로서, 그는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다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두 생명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오랜 동안 자신들을 꼭꼭 감싸고 있었던 두려움과 부정성의 어둠을 벗어 던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밝은 깨달음을 추구했던 그녀의 현명한 결단 덕분이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별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두 천사 친구가 소란스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아버지와 딸로서 보낸 지상에서의 세월에 대한, 자기들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리란,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기를 드러내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진리의 등불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가 없어. 안 그래?”“그럼요. 신의 사랑은 언제나 어둠을 압도하지요.”
명상을 위한 쉼터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달음으로써, 해묵은 두려움이나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녀가 답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진짜이고, 그녀가 거둔 승리 또한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이언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뒤 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는 크라이언의 이야기가 거기에 참석했던 한 사람의 실화임을 확증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희생물이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결국 배움을 위한 장치이며, 이런 장치는 인생 곳곳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노와 두려움의 불길에 휩싸여 자기를 잃어버리는 경험이 있습니까? 그래서 신께 왜 나를 그런 시험에 빠지게 하느냐고 항의하며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있나요?
자기 발견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왜 우리가 이곳에 와 있으며, 그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우리는 흔히 질문을 제기하지요. 해답을 듣는다면, 당신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냐구? 왜냐 하면 당신이 그걸 계획했으니까!”
분노와 두려움에 불길에 휩싸이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위대한 사랑의 손길에 의해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놓여 있습니다. 크라이언은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험은 때로 혹독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과했을 때는 사랑의 빛과 희망이 우리를 가득 채워 줍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크라이언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 걸어 들어온 이상 기꺼이 시험을 당하고 단련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유일한 가치라고.
* 이와 관련하여 "운명의 비밀"이라는 글을 다음의 사이트에 올렸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skyventure.co.kr/club/main.asp
>자기 발견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왜 우리가 이곳에 와 있으며,
그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우리는 흔히 질문을 제기하지요. 해답을 듣는다면,
당신은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냐구? 왜냐 하면 당신이 그걸 계획했으니까!”
>우리가 겪는 시험은 때로 혹독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과했을 때는 사랑의 빛과 희망이 우리를 가득 채워 줍니다.
크라이언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 걸어 들어온 이상 기꺼이 시험을 당하고 단련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유일한 가치라고.
이 말들이 하하의 가슴에 종이 울리듯이 계속 메아리 칩니다.
긴 가뭄에 쩍쩍 갈라져 타들어가는 목마른 대지에
쏟아지는 폭우와도 같은 메세지였읍니다...
유영일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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